경영마인드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지도 이젠 꽤 오래 되었다. 경영이라 하면 기업이나 사업을 관리하고 운영한다는 뜻이겠고, 그러니까 경영마인드란 그와 관련된 마음가짐이라든가 뭐 그런 것을 뜻할 터이다.
경영, 즉 기업이나 사업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에 대해 경영마인드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영에는 경영마인드로 임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이 새삼스럽게 들렸던 것은 그렇지 못한 실정에 대한 비판이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인 변수를 비롯하여 경영 이외의 요소가 기업 경영에 너무 많이 작용해왔고, 그러다 보니 이른바 IMF 사태 같은 것도 겪게 되었다는 비판인 것이다. 옳은 얘기요 중요한 자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경영마인드라는 개념이 유행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뿐 아니라 그 밖의 온갖 부문에도 경영마인드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경영마인드 지상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시각인데, 단적인 예로 서울특별시장의 올해 신년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지난 시절에만 해도 정치는 정치마인드, 행정은 행정마인드, 기업은 경영마인드로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영마인드가 없으면, 기업은 물론 정치도, 행정도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영마인드에서 중시하는 것은 바로 경쟁이라고 하였다. 그리 새삼스러운 말은 아니고, 근래에 많이 퍼져서 거의 상식화되다시피 한 시각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경영마인드란 곧 자본주의적인 경영마인드이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중요한 동력은 경쟁이다.

어차피 경제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부문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종속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제지상주의’ 상황인 만큼, 그 모든 부문에 자본주의적 경영마인드가 요청된다는 인식도 일리는 있다. 예를 들어 교육기관인 학교의 관리와 운영에도 어느 정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는 기업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교육기관이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각 학생이 지닌 서로 다른 소질을 최대한으로 함양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 사실상 대단히 경쟁 중심적이었다는 것, 심지어 이른바 ‘국민의 정부’에서는 아예 본격적으로 경쟁을 교육현장의 원칙으로 도입하였다는 것, 그것이 결국 교실 붕괴니 어쩌니 하는 참담한 상황까지 몰고 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에 인용한 서울시장의 신년사에는 정치와 행정만 언급하고 있지만, 그 밖에도 교육을 비롯한 온갖 부문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함이 옳다는 인식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단순히 삶의 어느 부문에나 경영의 부분은 있게 마련이므로 그 부분에만큼은 경영마인드로 임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라면 상식적으로 건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근래 경영마인드 개념의 유행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제지상주의, 즉 삶의 모든 것을 경제 문제로 수렴시키는 치우친 가치관의 전횡이 담겨 있다.

심지어는 기업의 관리와 운영에도 경쟁을 중시한다는 좁은 의미의 경영마인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올린다는 원칙만 가지고 임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기업 또한 사람의 일이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에는 늘 방침이나 원칙에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꽤나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행정, 교육, 환경운동에 정치마인드나 행정마인드, 교육마인드, 환경마인드뿐 아니라 경영마인드가 어느 정도 요청되듯이, 경영에도 마찬가지로 경영마인드뿐 아니라 심지어 환경보존을 위해 때로는 경제적 손실도 감수한다는 환경마인드까지 필요하다.

하물며 삶의 여러 가지 부문에는 결코 경영 내지 경제의 문제로 수렴시켜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하면 왜곡되고 타락하여 본령이 훼손되게 마련인 그런 것들이 있다. 앞에서는 교육을 예로 들었는데, 종교도 이에 해당하는 중요한 예로 들 수 있다. 종교단체의 운영에도 경영의 요소가 분명히 있을 뿐 아니라 꽤 중요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경영이라든가 경쟁의 문제로 수렴시킬 때 종교라는 인간 문화의 특수한 부문 그 자체가 본령을 상실한다는 점 또한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다.

불교계에서는 사찰운영에도 경영마인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무조건 틀린 의견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찰은 우선 종교시설이지만, 거기에도 엄연히 경제가 돌아가고 조직이 움직이므로 그 운영에는 경영의 요소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마인드’라는 개념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시정에서 돌아다니는 그 개념의 독소적인 함축에 대하여 분명한 안목을 갖추지 못한 채, 그리고 종교의 본령에 대한 확고한 인식 없이, 자칫 경망스러운 세태의 유행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것이다.

사찰운영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한다는 취지에서 흔히 벌이는 사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방문하도록 하기 위하여 찻길을 닦고 인근에 위락시설을 마련 또는 유치한다거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사찰 경내에 가까이 설치하곤 한다. 그런 일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사찰의 본령은 역시 수행도량으로서의 청정성에 있다.

다시 말해 청정한 수행으로 부처의 경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사찰의 본령이다. 그런 삶의 모습을 통해 대중을 교화하는 것이 사찰경영의 최고 원칙이요 방침이다. 고덕대승이 있으면 아무리 길도 없는 깊은 산 속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아는지 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런 대중에게 교화의 경영을 펴는 것이 사찰의 본령이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사찰경영의 최대 현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어느 부문에서든 본말이 제자리를 잡고 있는가 아니면 전도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근본이 확실하게 서 있지 않은 채 말(末)만 가지고 꾀를 부려대면 조만간 말(末)이 본(本) 노릇을 하고 마침내는 접시가 깨지게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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