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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불교문화 개화의 조건 / 주강현
유형 중심의 문화에서 무형문화로의 전환
[7호] 2001년 06월 10일 (일) 주강현 문화재전문위원

1. 금강반야바라밀다의 뚜렷한 칼자욱

울산 아랫땅인 웅촌(熊村). 원적산(圓寂山, 일명 千聖山·元曉山) 운흥사(雲興寺)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현암·남암·불지암·불일암·부도암·금지암·북암·서암·원적암 등을 거느렸던 거찰이 잡초 우거진 폐허가 되었다.

경남에 3대 동천이 있었으니 쌍계사 화개동천(花開洞天), 해인사 홍류동천(紅流洞天), 운흥사 운흥동천이었다. 쌍계사와 해인사는 여전히 번화한데 운흥사는 그저 풀잎만이 바람에 서걱인다. 당대 운흥사도 영고성쇠의 만고진리를 벗어날 수 없었음인가.1) 1) 이글은 불교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의도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하는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사변적인 견해를 제시함보다 오늘의 불교문화가 처한 유형 중심관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무형문화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데 본 글의 목적이 있음을 전제하고자 한다.

난세의 피난지로 복거지촌(福居之村)이라 불렀던 길지. 운흥사 가는 길은 지금도 아늑한 숲길이 가히 복거지촌임에 분명하다. 절터는 지극히 일부만 흔적을 남긴 채 망가졌다. 다섯 개의 큰 수조, 석등, 좌대, 부도 등이 방치된 채 풀숲에 뒹굴고 있어 황량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폐사지에 새로 지은 조그마한 암자에 운흥사판 목판본이 전해진다. 《금강경오가해(五家解)》 상하권이 그것이다. 《오가해》는 우리 불교의 근본 소의경전이 아닌가. 운흥사의 힘, 운흥사의 위력은 바로 그 목판본이다. 운흥사의 스님들은 불상을 크게 세운다거나 탑을 세우는 따위의 불사에 주력하지 않았다. 다행히 효계 신흥사에 〈운흥사 사적문〉이 전해지고 있어 옛 행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네들은 선원(禪院)으로 널리 알려진 금당요사(金堂療舍)를 세워 공부하였고, 직접 종이를 만들었으며, 장경각(藏經閣)을 세워 경문을 인출하였다. 거대한 수조가 다섯 개나 폐사지에서 발견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닥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넣어 씻었던 수조임에 틀림없다. 장경각은 거꾸로 운흥사를 망하게 만든 원인이 되고 만다. 과중한 종이 공출을 당했음이 분명하며, 울산에 병마절도사를 두면서 승군을 주둔시키게 되어 잡역과 노역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2) 2) 졸저,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해냄, 1997.

운흥사 소장본을 보건대 정교하게 새겼다. 연희 스님이 칼로 새겼다는 뜻으로 ‘연희도(演熙刀)’라 목판에 적어 넣었다. 각자(刻者)를 명분 있게 걸고 목판을 완성하였다. 힘있고 분명할 뿐더러 단아한 서체로 꾹꾹 눌러박아 한 장 한 장 인출하였다. 《금강경》 《부모은중경》 《영가집》 《기신론》 따위의 판본이 통도사에 보존되어 있어 뛰어난 목판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날 절집의 문화를 평가함에 있어 탑, 불상, 건축물 따위에만 초점을 둠은 그릇된 편향이 아닐까. 삼보(三寶)를 안다면 불법의 중요성을 낮출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거대 불사에만 신경을 쓰는 시대에는 운흥사의 장경각이 그리워짐은 당연한 일이다.

왜 21세기 불교문화의 미래를 대망하면서 운흥사 목판본 이야기를 서두에서 던지고 있는 것일까. 오늘의 절집은 겉모양은 번지르하되 속의 내용은 텅 비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불사를 끝낸, 단청도 화사하고 정부에서 내려준 ‘시호’인 보물 간판이 서있는 보탑도 장엄하데 왜 절집이 텅 비었다는 말인가. ‘하드웨어’는 갖춘 정도가 아니라 넘쳐나는데 정작 절집의 ‘소프트웨어’인 불교문화가 빈약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교문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두말 할 것 없이 유형의 문화가 있는 반면에 무형의 문화가 더불어 있어야 한다. 그 동안 ‘불교문화’ 하면 으레 탑과 불상 따위만을 연상해왔다. 그러나 절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무형의 자산 또한 불교문화의 또 다른 절반이다.

오늘날 한국불교문화는 일상적인 ‘무형문화’를 배제시킨 채 ‘유형문화’란 유령만이 참으로 ‘까닭없이’ 저 홀로 배회한다. 하드웨어만 중시하고 소프트웨어는 무시당하고 있다. 우람한 건축물이 하드웨어라면 역시 그 내용을 채워 나가는 것은 무형문화일 수밖에 없는데도 사정은 그러하다.

유형문화만을 중시하는 문화정책이 휩쓸고 간 절집 마당답게 그저 국보와 보물딱지만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그 누가 국보와 보물의 중요성을 핍하하려는 의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논지를 펴려고 함일까.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주의주장은 일종의 문화정책 전환을 위한 시론적 성격을 지닌다. 도대체 문화정책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이야기한다. 문화정책이란,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최소화시키는 것’만이 상대적으로 문화진흥에 이바지하는 왕도라고 한다. 한국 같은 상황,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여 문화에 대한 국가개입이 일상화된 나라에서 문화정책은 두 가지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다.

첫째, 국가의 문화정책에 대한 개입을 단계적으로 줄여서 좀더 유연하게 시민문화적 정책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가령, 문화재 보호정책은 국가의 직접적인 노력만으로 불가능해지고 있다. 지역단위의 시민문화적 운동으로 지켜낼 수 있는 노력이 보태져야만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국가권력의 절집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불교문화는 시민문화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절집의 불교문화를 스님 중심의 문화에서 재가가 함께 주체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해야 할 시점이다.

둘째, 이왕 국가의 문화정책 개입이 일상화된 상태라면 개입을 하더라도 제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막말로 국가가 잘 모르면서 ‘어정쩡한’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방관, 방조, 불균형 따위로 문화의 흐름을 차단 및 굴절·왜곡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3) 그 동안 국가는 절집의 유형문화를 지정보호하는 정책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그러나 유형문화에만 신경을 쓰는 동안 무형문화는 거의 무시당하거나 방치되어 왔다. 무형문화를 무시함으로써 생겨나는 불교문화의 불균형을 국가가 스스로 도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3) 도정일, 〈문화정책은 왜 필요한가〉, 《민예총 심포지움자료집》, 1998. 1. 21.

한국의 상황에서 국가는 불교문화정책에 깊숙이 관여한다. 국가문화재정책을 짤 때 불교문화는 가히 절대적이다. 문화정책은 결국 예산과 직결되며, 예산의 정해진 목이 어디에 쓰여지는가에 따라 문화정책의 관심도가 측정된다. 구두선으로 들리는 구호는 의미가 없다. 정부정책에서 예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불교문화정책에서 무형예산은 거의 없다.

분명한 것은 국보와 보물지정, 사찰보수에만 골몰하다가 끝내 무형문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홀대당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유형 중심의 문화관에 포로된 채로 무형문화는 안중에 없다. 그래서야 어떻게 불교문화가 온전하게 뻗어나갈 수 있겠는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는 분명해졌다. 무형으로의 전환을 꿈꾸지 않고서 불교문화의 21세기를 어떻게 꿈꿀 수 있을까.

2. 불교무형문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불교문화에서 무형은 무엇이고 유형은 무엇인가.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의 범주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로 가른다.

  • 유형문화재 : 건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
  • 무형문화재 :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4) 4) 《문화재관계법령집》, 문화재청, 2000, p.16

국가문화재정책의 지표가 되는 문화재보호법 제2조는 이와 같이 엄정하게 유형과 무형문화재를 대별하여 구분하여 놓았다. 거듭 논하거니와 유형문화의 중요성이 평가절하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탑과 불상, 탱화와 건축물 등이 보여주는 문화사적 가치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무형문화재다. 절집에서 먹고 입고 살던 풍습, 재공양과 놀이풍습, 절집의 세시절기 등이 모두 무형문화재다. 불행하게도 이들 무형문화의 소중함은 거의 망각되었거나 무시당한다. 유형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빚어지고 있을까.

오늘날 한반도의 우리 문화는 불행하게도 유형 중심 사고에 젖어 있다. 그러나 유형 중심 사고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유럽 중심의 문화관이다. 세계문화유산의 실상은 여전히 유형 중심이며, 그 중독의 여파를 심하게 받아서 우리 역시 유형을 가장 중시하고 무형은 뒷전으로 밀려 있는 현실이다.

이 같은 사정은 세계문화유산이 다분히 제1세계 중심의 유형 중심관에 포로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1972년 11월16일, 유네스코 제17차 정기총회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보호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다. 이 협약의 적용상 문화유산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제1조를 보자.

  • 기념물 : 건축물, 기념적 의의를 갖는 조각 및 회화, 고고학적 성격을 띠고 있는 유물 및 구조물, 금석문, 혈거 유적지 및 혼합 유적지 중 역사, 예술및 학문적으로 현저한 세계적 가치를 갖는 유산.
  • 건조물군 : 독립된, 또는 연속된 구조물들, 그의 건축상, 균질성 또는 풍경 안의 위치로부터 역사상, 미술상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갖고 있는 유산.
  • 유적지 : 인공의 소산, 또는 인공과 자연의 결합의 소산 및 고고학적 유적을 포함한 구역에서 역사상, 관상상, 민족학상, 또는 인류학상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갖는 유산.

선진국이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유형 중심의 문화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과테말라에 있는 마야문명의 ‘피라미드’, 이디오피아에 있는 ‘또 하나의 예루살렘’이라는 돌로 지은 교회 등이 그것인데 대부분 유형적 증거물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 문화유산은 소중한 인류의 자산임은 분명하나 제3세계 특유의 무형문화적 전통을 대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네스코 협약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실천되는 탓으로 국가에서 중시하는 동산문화를 가장 높게 친다. 1996년 기준, 세계문화유산목록에는 유형이면서 부동산 유산에 국한하여 1백여 개 국의 469개 유산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세계유산 지정기준이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가장 일반적인 종류로 인정되는 유산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동 협약은 143개국이 가입되어 문화유산 분야 국제규약 중에서 가장 널리 비준을 받고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협약을 통한 대부분의 이익이 일부 선진국에 집중되는 부적절한 구조를 지닌다.5) 5) 박성용, 〈세계유산의 국제적 의의와 향후과제〉, 《개발과 유산의 보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1996, p.57.

제3세계는 다양한 무형유산, 가령 춤이나 음악, 종교의식이나 공예, 구전문학 따위의 쓰여지지 아니 한 문화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유럽의 중요 박물관이 ‘약탈박물관’이란 말이 나오듯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유형적 재화만을 보물창고식으로 이끌어온 유형 중심 사고는 제3세계의 문화 현실과는 상반된다.

웅장한 사원, 거대한 피라미드, 장엄한 교회, 오래된 고문서, 황금빛 투구, 화려한 방패, 튼튼한 전함……. 그러한 유형의 유산은 인간의 놀라운 능력과 기술발전의 예찬, 그리하여 20세기 사람들이 ‘현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이르는 인간사의 역정을 드러내는 증거물로 제시되기에 충분하였다.

모든 박물관은 이들 유형의 자산으로 가득 차고, 멀쩡한 무덤이 고고학 발굴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지거나 도굴되어 박물관 수장고를 채웠다. 그리하여 서구를 방문한 수많은 견문록들은 오로지 유형의 유산을 예찬하기 바쁠 뿐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조금씩이나마 유형에서 무형으로 이전하는 변화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993년, 제142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인간문화재 제도 보급’을 위한 결의문을 제안, 채택되도록 하고 1996년 ‘무형문화재 보존방법론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무형문화 유산보존의 주요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하였다.

유네스코는 최근 세계 구전문화 유산제도(Masterpieces of Oral Heritage of Humanity) 도입을 제154차 집행이사회(1998년 5월)부터 논의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문화유산사업이 종래의 유형문화유산 일변도에서 무형문화유산 쪽으로 점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하였다.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보다 전문적인 훈련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1999년부터 공연예술 분야는 한국이, 공예 분야는 이탈리아가 담당할 것을 제안하였다. 실제로 1999년 ‘무형문화재 보존을 위한 제1차 유네스코 국제연수 워크샵’이 1998년 10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문화재관리국 공동 주최로 유네스코 협력하에 개최되었다.6) 6) 한국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보존을 위한 제1차 유네스코 국제연구 워크샵 자료집》, 1998. 10. 13, p.156.

또한 한국의 외교통상부장관은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하나의 문서에 합의하였다. 유네스코는 2년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선정하여 ‘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에 대해 아리랑상(Arirang Prize)을 설립할 것을 합의하였으며, 이에 대한 의향서를 서명 교환하였다. 유네스코의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 선포 제도’에 따라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및 그 보존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시상할 예정이다.

〈뉴욕 타임즈〉는 연초에 사라지는 캐러번(낙타 대상)을 주목하여 보도하였다. 푸른색 옷과 터번을 즐겨 착용하여 ‘사하라의 푸른 영주’로 불려온 사하라 사막의 대상들이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특집으로 보도한 것이다. 낙타를 끌고 사막 이남과 알제리,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지역을 오가면서 물건은 물론이고 문화를 전파시켰던 중요한 메신저들이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사막을 낙타로 이동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대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민족지(民族誌)학자들은 낙타 대상의 소멸로 말미암아 수천년의 전통을 지닌 캐러번 문화의 역사와 풍습이 사라지고 오로지 획일적인 이른바 ‘현대문명’으로 통일되어감을 주목한다. 이들 문화야말로 제3세계 무형문화의 특장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은 1960년대 초반, 일본으로부터 무형문화제도를 받아들인 이래로 근 40여 년 제도화시켜 왔다. 그 결과, 전세계적 범주에서 무형문화제도에 관한 한 ‘선진국’에 속한다.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와는 별도로, 제도상으로는 일단 자부심을 느낄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전체적인 문화유산정책을 놓고 본다면, ‘빛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이 무형문화정책에 고스란히 들어맞는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 없이 유형 중심 문화관에 젖어 있다. 그 풍부한 무형의 자산을 버려 두고 일찍이 일제시대에 도입된 유형 중심 문화관에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몰각하고 있다.

동화정책을 구사한 일제는 우리의 생활과 풍습은 전적으로 동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에 ‘멸종’시키는 정책을 구사하였으며, 따라서 일제가 이 땅에서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전통 보존은 오로지 동산문화재로서의 ‘보물챙기기’였다. 절집의 불교문화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제1세계적 관점에서 제3세계적 관점으로의 전환논리 속에는 바로 유형적 관점에서 무형적 관점으로의 전환, 거대한 정치권력 중심의 문화에서 평범한 민중의 문화로의 전환이라는 전환시대의 논리가 스며들어있다. 불교문화에서도 더 이상의 유형문화 중시정책에서 벗어나 절집의 내용물을 채워 나갈 수 있는 질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유형문화지정정책에 대해서도 엄정한 자성을 해야 한다. 2000년 9월 4일에 문화재청은 비지정문화재 절도사범에 대한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 규정을 정한 문화재보호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비지정문화재절도사범은 형법에 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단순절도범과 큰 차별성이 없어 재범이 계속 이루어진다. 사실 도굴범들에게는 도굴이 하나의 어엿한 직업일 뿐이다. 문화재 도난사건의 대부분은 물론 비지정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에서도 나름의 대비는 하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뿐만 아니라 시도지정 문화재에 대해서도 가(假)지정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문화재가 지정 절차를 밟는 동안 보존 및 보호 소홀로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했다. 조계종은 전국 각지의 산야에 흩어져 있는 사찰의 비지정 문화재가 문화재 절도범들의 집중 표적이 됨에 따라 비지정 문화재 보호를 위한 법령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했다. 전국 사찰에서 관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이전 문화재급 유물은 모두 1만5000여 점에 이른다. 문제는 상당수가 비지정이며, 도난의 주공격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비지정 문화재 절도의 경우 발각되거나 검거되어도 단순 절도 행위로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는 법리적인 모순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7) 7)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신동아》, 2001. 3월호.

세인들 생각에 지정 문화재가 월등히 뛰어나고 비지정 문화재는 급수가 낮다고 생각하는 데서 구멍이 뚫리고 있다. 물론 지정 문화재가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또는 사료 가치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여 비지정 문화재가 덜 중요하거나 문화재적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 지정된 정책에 의하여 비지정 문화재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비지정 문화재가 점수도 많을 뿐더러 자그마한 사찰을 비롯하여 곳곳에 산재되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것이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보존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유형문화정책이라고 하여 잘 되고 있는 것만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20세기 한반도의 문화지형도는 하드웨어 중심의 문화였다. 우리 문화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하드웨어에만 치우쳐 왔다. 1960년대 이래로 현충사를 위시하여 전국에서 새롭게 복원된 건물들을 가보면 내용물이 빠져 있는 건축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비슷비슷한 규모로 불도저로 밀어서 주차장을 만들고, 매표소가 있고, 거대한 건축물이 나타나고, 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전시물이 있고, 지극히 관변적인 조각물이 서있거나 육중한 돌에 관행적인 글귀로 대통령의 잘 쓰지도 못한 글씨로 휘호를 아로새긴 대리석을 세워 두었거나, 돌과 나무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인공연못을 판 일본식 정원이 서있다. 한 번 와본 사람은 다시는 오지 않거나 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하드웨어만이 서 있을 뿐이다. 오늘의 절집 사정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보관창고인 판전(板殿)과 더불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석굴암이 지정되었고, 종묘가 지정되어 도합 3개가 국제적으로 인정되었다. 팔만대장경은 목각에 새겨진 불경 그 자체의 소중함이 돋보이며, 팔만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조속히 완료하여 대중이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의 신수대장경이 전세계에 널리 퍼져서 국제불교학의 중심서로 기능하고 있음에 반하여, 우리의 팔만대장경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뒤늦게 전산화가 이루어졌다. 유물로 남아 있는 판본의 유형적 가치도 소중하지만,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이를 기반으로 한 무형의 자산을 확충하는 데 있지 않을까. 같은 이치로 600년 역사를 지닌 종묘의 뛰어난 건축군들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기능하는 국가의례로서의 제사기능과 이에 수반되는 종묘제례악의 무형적 자산도 그와 똑같이 중요하다.

휼륭한 절집이 소중하다면, 절집의 균형성은 건축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집이 외형적 유형문화라면, 절집의 내용물은 무형문화일 수밖에 없다. 공양에 쓰이는 사찰 음식 전통, 의례에 쓰이는 범패 따위의 음악 무용적인 불교예술, 심지어 절집에 전승되어온 그릇조차도 소중하다. 사찰을 고스란히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움직여 놓기 어려워도 범패는 워싱톤에 가서도 공연이 가능하다.

종을 매달고 장대한 대웅전을 짓는 거대불사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도 정작 아름다운 목판본 판각술을 전승시켜 섬세한 불교문화의 소프트웨어를 이어나가는 데는 인색하다. 모든 가치는 오로지 동양 최대의 불상, 세계 최대의 건축 따위의 허명세에 넋을 잃고 있다. 문화적 거대 콤플렉스가 불교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21세기 불교문화의 미래는 그 동안의 관행을 180도 회전하여 무형문화를 채워 나가는 방식으로 질적으로 고양되어야 마땅하다.

3. 불교무형문화의 점검과 몇 가지 현실적 대안

차제에 불교계의 무형문화를 한 번쯤 점검했으면 한다. 문화유산의 대다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불교문화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분야는 사정이 다르다. 총 103분야에 이르는 무형문화 지정종목 가운데 불교문화에 속하는 무형문화는 몇 가지 안 된다. 범패로 알려진 영산재, 불교조각, 승무, 단청 등에 불과하다. 승무야 일반 무용화하여 사찰과는 별 관계 없는 것으로 떨어져 나간 지 오래다. 실상 범패나 불교조각 등에 겨우 명맥을 걸고 있다.

첫째, 지정종목이 절대 다수 작다. 100여 개가 넘는 무형문화재에서 불교 관련 문화재는 제50호 영산재·제48호 단청장·제108호 목조각장 등에 불과하다. 지방문화재조차 고작 부산 9호 부산영산재·대구 14호 단청장·대전 6호 불상조각상·전북 18호 영산작법·전남 31호 탱화장 정도가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가령 조선조 궁중 음식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바, 사찰 음식이라고 지정되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목장을 지정하였으니 사찰의 건축도 지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사찰에서 쓰이는 각종 도구나 의례 자체도 확대 지정할 필요가 있다. 지정을 위해서라기보다 불교문화의 양적 확대를 위하여 무형문화에 대한 인식을 넒혀야 한다. 만석중놀이 같은 사찰의 그림자 연극·불교음악·불교무용, 심지어 불교에서 전승되어온 무예전통·피모·금속·골각·제지·목공예·직물·악기·매듭 등에 이르는 불교공예, 차문화 같은 불교 음식 등등이 모두 포괄될 수 있다.

둘째, 그나마 지정 방식에서도 문제가 많다. 영산재만 해도 기왕의 봉원사류 말고도 호남의 우도범패 따위의 소박한 것들이 있었는데 ‘지방문화재’로 소외시켜 버렸다. 신촌 봉원사의 영산재만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지방의 영산재가 별도로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영산재가 태고종에 속해 있는 관계로 조계종 쪽의 범패는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산재 예능보유자였던 송암(松岩) 스님이 근년에 입적하고 난 다음에 실제로 일응(一鷹) 스님이 대를 이어야 할 처지지만 건강이 좋지 않다. 그보다도 태고종과 조계종 출신이란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존재한다. 그 결과, 현실적으로 한국 최고의 종단이라는 조계종에 영산재의 전승체계는 미력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불교문화의 전승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무형문화재 확대지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지정확대정책이 이루어지는가.

첫째, ‘투망식 독점지정’은 안 된다는 것이다.8) 어떤 것을 선별하여 지극히 작위적으로 지정하는 방식은 문제가 많다. 가령 사찰 음식을 지정한다면, 특정 사찰 음식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골고루 조사하여 종합적으로 지정하여 균등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라도 쪽 사찰의 음식 문화가 있다면 경상도 쪽의 사찰 음식 문화가 있다. 각각의 차이가 나는 부분을 골고루 안배하여 종합, 혹은 일괄 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8) 문화재관리국, 《21세기를 대비한 무형문화재 전승보급제도의 발전방향-무형문화 전승보급제도 개선 공청회 자료집》, 1998. 12. 8.

둘째, 기왕에 지정된 것의 확대 구조조정도 함께 꾀할 필요가 있다. 대개 무형문화 지정정책의 최대 문제점은 특정 것만 단일 지정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을 없애고 독점화를 보장하는 결과를 빚었다는 점이다. 가령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영산재도 대표적인 사례다. 조계종에서 나름의 법도로 이어지고 있는 호남 범패류의 별도 지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담당 관료들뿐 아니라 관계 전문가들도 모두 아는 문제지만 막상 이해관계가 걸린 ‘뜨거운 감자’인지라 선뜻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조계종을 비롯한 범불교종단 내에 사찰 무형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협의틀이나 제도적인 틀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칭 불교무형문화재보호재단 식의 적극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 또한 불교문화유산 관련 학회 등에서도 불교무형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이론화할 수 있는 제도적인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불교계는 그 동안 지나칠 정도로 건축물만 세우는 외형적 하드웨어 구축에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21세기는 분명히 소프트웨어의 시대다. 사찰의 내용물을 채워줄 무형문화에 대한 인식이 요청된다. 유형에서 무형으로의 전환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지정 확대 정책 같은 것 외에도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추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사찰에서 소장 유물을 관리하기 위하여 소속 박물관을 다수 만들기 시작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유물로 정확히 보관할 것과 일반에게 공개할 것을 구분하여 박물관에 유물 처리함으로써 보안을 유지함은 당연지사다. 도난은 물론이고 화재 등으로 인한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 차제에 불교민속박물관 같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야 한다. 일반적 의미에서의 사찰 박물관이 유물 중심이라면 불교민속박물관은 불교 생활사 중심의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이 될 것이다.

둘째, 근자에 우리 사회에서 자주 논의되는 아키브(Archiv)9)가 하루바삐 탄생되어야 한다.10) 인멸해 가는 불교무형문화의 자료들이 한 자리에 집적되어 불교문화의 생동감 넘치는 현장으로 대중을 안내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찰의 생활을 담은 옛 사진, 비디오, 녹음 테이프 같은 영상자료, 편지, 공문, 주요문서, 토지대장 등등 사찰과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 수집되어야 한다. 9) 아키브는 ‘기록보존물’ 혹은 ‘기록보존소‘라고 번역하면 타당할 것이다. 10) 〈민속기록보존,어떻게 할 것인가〉, 《국립민속박물관심포지움자료집》, 2000. 8. 23

이들 아키브는 불교 생활사의 살아 있는 기록보존소로서 훗날 당대 불교의 진면목을 엿보는 데 결정적이다. 이들 자료의 성격이 당대에는 그다지 비싼 가치를 지니지못하기 때문에 손쉽게 유실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행사 팸플릿 하나조차도 꼼꼼하게 챙겨두면, 100여 년 지난 뒤에는 대단히 소중한 문서로 둔갑할 것이다.

4. 불교무형문화의 참뜻은 느림의 문화

유형문화에서 무형문화로의 전환,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전환 등이 뜻하는 불교문화적인 참뜻은 무엇인가. 이는 느림의 문화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자 함이다.

매번 반복되는 각종 재해, 그리고 늘상 발표되는 부실공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빠름의 문화’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정신 없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상의 삶을 늘상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느리게 살면 안 될까. 왜 우리는 늘상 빠름만을 강조하는가. 저마다 빨리 달려가는 시대에 불교마저 빨리 달려가라고 재촉한다면 중생들은 어떻게 견뎌낼수 있을까. 그런데 불교문화계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예전에는 참 좋았는데, 오랜 만에 절을 찾았더니 확 변했다고 언짢아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문제의 주범은 바로 거대불사다. 불사를 잘하여 삼보의 터전을 잘 가꾸는 일이야 누가 나무라겠는가. 그런데 요즈음의 불사는 그야말로 ‘군사문화’식이다.

연병장을 만들고 막사를 짓듯이 불도저로 밀어붙인다. 수려한 산세를 살려가면서 절집을 배치하고 자연경관과 인공건물의 조화를 통하여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건축을 해내는 것만이 올바른 복원일 텐데 사정이 그러하지 못하다. 선승들이 풍수를 강조하고, 절집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던 슬기를 잊고 말았다. 풍수가 무형문화적인 자산이라면, 그저 건물만 짓는 일은 유형문화적인 속도감 창출일 뿐이다.

목불인견의 참상은 도저히 가람의 풍경과는 상반되는 건물군이 느닷없이 들어선다는 점이다. 현대 문명 생활에 필요한 이기들이라 하더라도 불요불급한 시설들은 가능한 억제하면서 자연과 함께 사는 가람을 일으키는 길이 올바른 법도가 아닐까. 불교도 현대화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실용적인 건축군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가령 대규모의 공공회관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천년 세월의 건축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전통과 개발의 조화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높은 것만 가지고 중생들에게 다가가려는 심성도 불교 본래의 정신에서 위배된다. 동양 최대, 세계 최대식의 접두사가 붙는 방식의 복원이라야만 성에 차며, 매스콤도 격찬한다. 산세는 낮고 대웅전도 낮은데 탑과 불상만큼은 어마어마하게 조성한다면, 누구나 부조화를 느껴 절집에 들어서는 순간 위압당하여 불안해질 것이다.

조급성은 시멘트 문화에 잘 드러난다. 일제에 의하여 시멘트로 마구잡이로 복원된 익산 미륵사지를 보아라. 절의 축대를 복원하는 데 석수쟁이가 일일이 손으로 다듬는 돌쌓기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고 하여 기계톱으로 두부 자르듯이 쌓는다면 어떤 결과를 빚을까. 당장은 싼 값으로 쌓을 수 있겠으나 100년 뒤의 후손들은 우리 시대의 문화재 복원 솜씨를 비난할 게 틀림없으며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다. 성벽 하나 복원하는 데 20여 년 세월을 걸려서 하고 있다는 프랑스식의 문화재 복원 정책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라진 건축물 따위를 복원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는 것에 반대한다. 그 많은 비용을 가지면 그나마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는데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비가 새고 있는데 자꾸만 새집을 지어서 쓰겠는가. 복원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나마 남아 있는 절집을 잘 보존하는 데 우선적인 신경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최단시일 내에 복원공사를 완료하자는 식의 군대식 작전명령서를 남발하지 말자. 복원의 실수는 잠깐이며 우리 시대의 몫이지만 그 화근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넘어간다. 새벽종이 울렸다고 하면서 초가집이 무슨 원수라고 초가집도 부수자는 새마을 노래를 외친 결과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초가집이 민속촌 같은 곳에서나 잔존한다. 그결과는 무엇인가.

요즈음 지방 주택 양식을 보면 지붕이 모두 서양식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서양식도 아니고 ‘짬봉’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조악한 건축문화가 양산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초가집이 연출하던 공동체적 문화심리를 파괴해 버린 덕분에 중심축을 잃은 민중들은 저마다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다양성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문제는 그 다양성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있다.

안목을 키우자. 그러나 그것조차도 참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함을 깨닫자. 안목을 키움에서조차 속도전을 벌인다면 반드시 무리가 따를 것이다. 빨리 가서 백년을 못 넘기는 불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더디 가더라도 천년을 약속하는 불사를 할 것인가. 스님과 신도는 생명이 유한하나, 절집의 전통은 천년을 갈 수 있다. 그 천년 가는 절집에 고풍스런 전통을 남겨 주기 위해서 어떤 형식의 불사를 할 것인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의 돌풍이 몰아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자본의 효율성은 오로지 시간의 빠름만을 요구한다. 전근대사회의 전통문화는 느림의 문화이며, 어쩌면 ‘미개’의 문화이다. 그러나 느림과 완만함도 중요하고 긍정적인 역사의 동력이다. 속도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전격전’이란 개념이 대변해준다. 전쟁은 빠르고 파괴적이다.

그러나 평화는 느리다. 평화를 사랑하는 것, 평화적인 것은 느림을 요구한다. 빠름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느림은 경시된다. 속도는 창조력이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이 된다. 우리의 현대사회에 점점 가속이 붙으면서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 생각, 그리고 다른 많은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11) 우리들은 전근대사회의 미덕, 가령 자연의 주기가 생활리듬을 결정하는 연관성을 상실하였다. 불교의 무형문화는 절집의 자연적 주기를 되살려 주는 하나의 방도이기도 하다. 11) 주강현, 《21세기 우리 문화》, 한겨레신문사, 1999.

속도의 문화와 미학은 자본주의에는 걸맞은 논리일지는 모르지만, 사람과 환경에는 지극히 적대적이다. 속도는 타인과 환경에 대한 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 오늘날 유럽 사회에서 20세기가 밀어붙인 빠름에 대한 신화를 거부하려는 뒤늦은 반성이 쏟아져 나옴은 그럴 만한 시기에 이르렀음을 반증한다.

21세기 과학기술의 새로운 가치와 윤리를 모색하는 1999년 6월의 부다페스트 ‘세계과학회의’의 주제도 20세기 후반의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낸 보건·식량·통신 등에서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과학이 오로지 속도 숭배에만 빠져 신뢰와 윤리 측면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즉각, 즉시, 금방, 곧바로, 지체 없이, 빨리빨리, 얼른얼른, 빠르게, 좀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대단히 빠르게, 말할 수 없이 빠르게, 숨가쁘도록, 죽기살기로……. 이같은 용례들이 불교문화계에는 없는가.

우리가 흔히 ‘문명’이라고 예찬해 왔던 것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조금은 불편한 삶을 살겠다는 용기, ‘야생의 사고’12)가 필요하다. 제4세계의 현장에서 서구 중심과는 전혀 다른 문명관을 발견하듯이, 우리 자신의 지난 100년간의 오류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판독해야만 하고, 21세기에도 생동감 넘치는 문화로 이어 나가야만 한다. 무형문화 속에서 우리 현대인들이 미처 몰랐던 소중한 삶의 가치들이 온존되어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12)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야생의 사고》, 한길사, 1996.

한국불교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같은 속도전의 시대에 느림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아닐까. 한국불교여, 느림을 설파하고 느림의 진리를 널리 대중에게 가르치자. 느림은 바로 우리 시대 중생들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진리가 아닐까. 불교문화 21세기의 미래는 바로 그들 중생들의 잃어버린 느림의 철학을 되찾아 주는 데서 새롭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느림의 철학 밑바탕에 무형 중심의 사고가 강력이 버티고 있음은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주강현
현재 문화재전문위원.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저서로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마을로 간 미륵》 《21세기 우리 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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