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본지 주간 / 고려대 철학과 교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서는 12월 8일(음)을 성도절(成道節)이라 하여 붓다가 정각(正覺)을 이룬 날을 기념하고 있다. 붓다의 탄생을 기념하는 석탄일이 공휴일이고 불교인뿐만 아니라 타종교인들도 함께 축복해주는 명절인 데 비해 성도절은 불교 내의 행사에 그치고 그것마저 몇몇 단체의 썰렁한 행사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불교인들에게 있어 진정한 명절은 석탄일이라기보다 성도절이 아닐까 싶다. 불교의 시작은 싯다르타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싯다르타의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엄격한 수행 그리고 깨달음이 없었다면 ‘불교’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그의 탄생이 아니라 그의 깨달음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석탄일의 봉축 메시지의 대부분이 “이 세상에 진리를 전하러 부처님께서 오신 날”이라 하여 탄생에 큰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석탄일은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일일 뿐 부처님의 탄생이 아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성도일이다. 그럼에도 왜 불교인들은 태자의 탄생일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의 경우 예수의 탄생은 교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유일신 여호와가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의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와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탄생은 곧 구주(救主)의 탄생이요, 인류구원이라는 기독교의 미션은 바로 예수의 탄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탄절 날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노래하고 그 날을 축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종교적 정서일 뿐 아니라 기독교 교리적으로도 이치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도 붓다의 탄생과 관련한 많은 종교적·신화적 요소가 불전(佛傳) 문학을 통해 발전해 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든지 “도솔천에서의 하강” 등은 전통적으로 불교인들의 상상력과 종교적 외경심을 자아내는 불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이었고, 불교 문학과 건축이나 미술 등의 주요 모티프가 되어 왔다.

하지만 불교 교리나 특히 수행과 관련하여 볼 때 붓다의 탄생과 관련한 신화적 요소들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거나 어떤 의미에서는 비(非)불교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탄일이 불교의 가장 큰 명절로 기념되어 온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것은 불교가 전통적으로 신화와 종교적 신비성을 간직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해온 것이 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예수의 탄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한 종교의 교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문제가 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인간의 종교적 감성으로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서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보편적인 종교적 감성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고유의 역사나 교리를 볼 때 성도절의 의의나 의미가 석탄일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도절의 의미를 확인하고 재정립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을 오늘날에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성도의 한 중요한 의미는 성도의 내용이 아니라 성도의 과정에 있다.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이 아무리 위대하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붓다가 보여주었던 위대함에 비하면 오히려 초라하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 믿고 있던 이 길 저 길을 붓다 또한 걸었고 실패했다.

7년 가까운 시행착오의 연속 끝에 붓다는 당신 이전 누구도 가본 일이 없는 전인미답의 ‘없는 길’을 가야 했다. ‘없는 길’의 불확실한 미래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전통’의 무게이다. 인류가 지구에 생존한 이래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찾아 간다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당시 모든 사람들이 ‘길’이라 믿어온 길을 길이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붓다는 그 오랜 ‘전통’의 무게를 극복하고, “아니라”고 거부하였다. 불교 경전에서는 수행하는 싯다르타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용기를 찬탄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더욱 더 위대한 것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거부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이다.

불교 전통에서는 붓다가 출가한 후 7년간의 긴 수행 끝에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었음을 강조하곤 한다. 붓다가 이룬 깨달음이 높고 깊음을 그 긴 세월에 비추어 역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행의 시간에 비례하여 깨달음의 높이와 깊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불교사를 보면 붓다가 정각을 이루는 데 든 시간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다. 나머지 6년 11개월 3주의 긴 세월은 ‘시행착오’의 과정이었다.

성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깨닫는 데 불과 일주일이면 되는 것을 6년 11개월 3주 동안의 오랜 시행착오를 했다는 것은 그 이전에 누구도 그 길을 간 사람이 없었고, 그 길을 보여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스스로 “무사 독오(無師 獨悟)”, 즉 스승이 없이 혼자 깨달았음을 자부하였다. 먼저 가서 길을 보여주었던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붓다는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진정한 길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성도 후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모두 이 ‘진정한 길’을 보여주는 데 있다. 스승이 없이 헤매었던 붓다와 달리 우리에겐 스승이 있으며 그 스승이 보여준 걸어야 할 길과 도달해야 할 목표가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

“무사 독오(無師 獨悟)”의 어려움은 또 다른 데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이전에 그 길을 보여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길이 진정한 길인가, 아니면 잘못된 길인가 하는 끊임없는 회의와 의심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회의와 의심을 물리치고 전인미답의 길을 믿고 가는 것은 지극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점이 붓다가 위대한 점이며, “우리에겐 스승이 있으며 그 스승이 보여준 길이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새겨야 할 성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이다.

붓다가 출가한 당시 인도 사회에는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제시되고 있었다. 하나는 브라흐마니즘에 입각한 구원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소위 사문으로 통칭되던 자유사상가들의 고행을 통한 구원의 길이다. 출가 직후 몇몇 스승들을 통해 붓다는 당시 사문으로서는 최고이자 ‘더 위없는’ 목표에 도달하였다. 여기에 붓다는 안주할 수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목표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의 한계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더할 나위 없이 최고라고 확신하는 단계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내면적 정직성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붓다는 스승들의 가르침과 세인들이 ‘최고’라고 믿고 안주하는 목표를 거부하고 홀로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찾아 수행을 계속하였다. 이 기간이 바로 흔히 알려진 대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넘는’ 고행의 기간이었다.

그런데 붓다의 위대함은 초인적 고행을 감당할 수 있었던 그의 정진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 둘 수 있었던 판단력과 용기에 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만 둘 수 있는 것은 정확한 판단과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더구나 당시 고행을 통한 수행은 사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다.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실천력만이 문제가 되었지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은 수행의 나태함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다섯 사문들이 붓다의 고행 중단을 타락으로 간주하고 붓다를 떠나버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붓다가 고행을 중단한 것은 고행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행의 마지막 극점까지 가 본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판단과 용기이다. 고행을 그만 두는 이 사건은 불교사에서뿐만 아니라 인류 사상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출가 후 수년 간을 매달려 왔고, 당시 모든 사람들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믿던 그 길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인류 정신사의 한 터닝 포인트를 이룬다. 이 거부야말로 성도를 향한 첫 걸음이었다.

붓다는 단지 거부만을 한 것이 아니었다. 거부는 곧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작을 의미한다. 이제 싯다르타는 그 이전의 어떤 인간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다. 이 또한 위대한 순간이다. 돌아보면 길은 있지만 앞에 펼쳐진 길은 없다. 돌아보면 그간 자신과 수많은 수행자들이 걷다 실패한 그 길은 있지만 앞을 보면 아무런 길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설사 길을 택했다 하더라도 그 길이 목적지로 인도할지, 실패로 끝날지 아무런 보장도 없는 길이다.

붓다는 선정 수행이라는 중도의 길을 갔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붓다는 “나는 마침내 인간의 덫과 천(天)의 덫에서 해방되었다.”고 성도의 순간을 표현하였다. 인(人)과 천(天)의 덫이란 인간들이 신(神) 혹은 도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사회적 제도나 관습,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스스로를 얽어매는 잘못된 신념과 가치에 대한 통칭이며, 당시 인간의 진정한 해방을 장애하던 브라흐마니즘에 입각한 카스트적 신분에 의한 구원의 길과 사문들의 고행주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성도의 위대함은 그 달성한 목표에 있기보다 그 과정에 있다. 일찍이 붓다에게는 스승이 없었기에 그가 갔던 길은 지난(至難)했고 오랜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붓다라는 스승이 있기에 가야할 길을 안다. 그리고 그 길은 정확히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한편 성도 후 붓다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성도 후 붓다가 보여준 삶은 성도 이전에 그에 이르기 위해 살았던 삶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무소유와 계·정·혜 삼학(三學)의 실천이며,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여읜 중도의 삶이다. 성도에 이르는 수행의 길과 성도 후의 삶의 길이 같다고 하는 의미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는 흔히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깨달음을 위해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붓다의 경우처럼 앞서 그 길을 보여준 스승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럴 때에는 무엇이 올바른 수행법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우리에게는 먼저 길을 보여준 스승이 있고, 그 스승은 정확히 당신이 걸은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당신의 성도 후의 삶을 통해서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길이 있다. 그리고 그 주어진 길이 올바른 길임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정확히 그 길을 가면 된다. 그리고 그 길은 성도에 이르는 길일 뿐 아니라 성도 후 살아갈 삶의 길이기도 하다. 이는 수행의 삶이 곧 깨달음의 삶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점은 팔정도의 수행이 잘 보여주고 있다. 팔정도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면서 동시에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하다. 수행의 첫 머리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정견의 내용은 팔정도 수행의 마지막 단계인 정삼매를 통해 깨달음의 내용으로 그대로 체득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 붓다와 그의 깨달음은 너무 신비화되어 있고 잘못된 숭배의 대상이 되어 있다. 성도(成道)의 의미 또한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또 다른 우상이 되고 있다. 수행은 그 우상적 깨달음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성도 전과 성도 후의 붓다의 삶이 보여주듯 일상 자체가 곧 수행이며 수행 자체가 깨달음이며, 깨달은 삶이란 곧 수행적 삶이다. 이러한 자명한 불교의 진리를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

2003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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