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보는 환경과 생태

1. 들어가는 말

환경문제는 단순히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관, 사회의 구조를 이루는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동안 환경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환경활동가들마저도 깨달음과 수행이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서 왜 중요한가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깨달음·수행·영성이라는 영역의 용어들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환경문제는 무엇이 행복한 삶이냐에 대한 성찰,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전지구적인 위기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엔드류 돕슨은 현재의 환경운동을 생태주의 운동과 환경주의 운동으로 구분하고 있다.

환경주의 운동은 환경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보다는 환경오염의 정화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환경문제를 일으킨 사회구조, 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을 문제삼는다. 요컨대 환경문제는 인간의 의식과 사회구조 및 경제·정치·시스템 등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1)

사실 환경문제는 엄밀하게 말하면 지구의 위기라기보다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위기다. 공룡이 멸종했을 때 공룡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가 멸망한 것이지만, 미생물이나 다른 작은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수많은 생명 중의 하나가 멸종했을 뿐 지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결국 환경문제는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환경 위기는 사회 위기인 것이다.

따라서 환경문제는 인간 내면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구조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깨달음에 이르러야 해결되는 것이다. ‘생태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환경과 나를 분리시켜 그것을 합치려하기보다는 이미 하나로 수용된 환경을 찾아 나서야 하고, 바로 나 그리고 자아 속에 투영되어 있는 자연을 찾아 자연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나도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라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2)

2. 사찰의 환경파괴에 대한 참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불교의 가치관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자연으로 살아가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삶이 바로 연기적 삶이며 생태적 삶인 것이다. 세상 만물의 연관된 이치를 말씀하신 부처님의 연기사상은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 사회의 많은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제자라 하면서도 붓다의 가르침과 너무나 동떨어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한 참회와 더불어 현 시대 환경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불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지난해 불교계 환경운동단체들은 “사찰의 환경훼손에 대한 참회와 불교의 생명운동에 대해 건의합니다.”3)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갖는 한편 조계종 총무원에 건의서를 전달한 바 있다.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그 동안 자원이 무한정하다는 미망에 빠져 물질적인 소비와 편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삼림을 파괴하며 국립공원을 훼손하는 등 한정된 자원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조금씩 썩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과, 환경위기는 지구상에 오로지 인간만이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생명을 파괴한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 후, 미래세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세대만을 생각한 과보라고 참회하고 있다.

지역 내에 사찰이 존재하면서 주변 자연을 지켜온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나 각종 개발과 불사로 인해 사찰이 주변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이에 대해서는 자기 살을 깎는 아픔으로 참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사찰의 환경문제와 환경파괴 사례들

우리 나라는 사찰이 산지에 위치해 있다. 그런 입지적 특성으로 인해 사찰 인근의 사하촌과 위락시설에서 배출하는 오폐수, 수세식 변소의 오물, 산중에 버려지는 일회용품과 온갖 쓰레기 등 많은 환경훼손이 직간접적으로 사찰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사찰측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찰은 불교교리와 승가집단의 자치 규범에 의해 자연친화적인 관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통사찰들이 자연적, 문화적 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계법령에 의해 관리되면서 제도적·행정적·관리상의 문제가 노정되었고, 그와 더불어 도로의 신설, 확장, 이용자들을 위한 편익 시설의 설치 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국립공원 내의 자연림 훼손과 직접적 환경파괴에 대한 것, 사찰 주변의 수질오염에 대한 것, 그리고 쓰레기 문제 등을 다루고자 한다.

물론 이 외에도 문화적 환경면으로 사찰 참배객들의 무질서와 혼잡스러움이 주는 또 다른 환경오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위의 세 분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국립공원 내 자연림의 훼손과 환경파괴

국립공원 관리공단을 비롯한 정부의 무분별한 공원화 시책과 개발정책 등으로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국립공원 내 사찰 주변의 환경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오래전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다. 그전에는 주차장에서 내려서 관광상품을 팔고 있는 사하촌을 지나 숲속 오솔길을 따라 약간은 땀을 흘리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자연식생을 관찰하면서 올라가는 맛이 있었다. 대자연속에서 오만하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참회하기도 하고,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기울이며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일주문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지금의 해인사는 일주문까지 아스팔트로 잘 뚫려 있다. 그로 인해 동식물과 미생물들의 생활터전은 갈라졌고, 숨도 못 쉬게 황폐해졌다. 국립공원 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서 자연경관이 파괴되고 있는 곳이 비단 해인사뿐이랴?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에 수해복구의 명분으로 돌계단을 대대적으로 축조하고 있어 말썽이 일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수많은 등산객으로 흙이 유실되고 있으므로 그것을 방지하고자 흙을 덮어주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환경단체도 있다. 그런데 지금 수해복구를 한다는 명분으로 엄청난 세금을 들여 벌이고 있는 공사는 명분을 벗어나 등산로를 인공시설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공사의 주된 목적이 홍수피해 복구와 예방인지, 등산로 확장인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4)

국립공원 내 훼손과 더불어 관통되는 도로, 터널 건설 등의 공사로 인하여 사찰들은 순환도로의 정거장으로 변하고 있다. 도로가 개발되면서 사찰과 사찰 주변의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찾아드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 관광객을 맞는 시설 또한 집단화, 대형화되고 있다. 그로 인한 사찰지역의 나무와 화초의 훼손도 심각하다.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사찰 주변의 자연림과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훼손되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찰도 반성할 점이 많다. 동양최대, 세계최고 등의 수식어가 붙는 대형불사는 결국 더 많은 위락시설 개발을 부추기게 하여 자연환경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불교의 수행기풍을 흐리게 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찰의 불사는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하고, 순차적이고 점차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2) 사찰 주변의 수질오염

근래에 물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20세기에 국가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전쟁의 상당 부분이 석유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물 때문에 각종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만큼 물 사정이 다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바닥까지 말라붙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강들이 세계 곳곳에 생겨나고 그로 인해 농업용수를 비롯한 각종 관개용수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며, 지구상의 크고 작은 많은 강들 역시 인구증가와 인간활동의 확대로 점차로 말라가고 있고 수질오염 또한 위험수위를 알리고 있다고 한다. 지하수(地下水)의 사정도 지표수 즉, 하천수나 호수 못지 않게 심각하다. 지하수는 지표수와 달리 대기와 접해 있지 않고 유속도 거의 없고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도 못 되므로 자정작용(自淨作用)이 없다.

지금의 기술로는 오염된 지하수를 지상으로 뽑아 올려 맑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지하수들이 비료성분·농약 그리고 기타 유해물질로 인하여 세계 도처에서 영구적으로 오염돼 가고 있다. 그나마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도 지나친 개발로 오염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의 지하수는 12,000년 전 마지막 빙하가 사라지면서 형성된 것으로 엄청난 수량을 보유한 마치 거대한 지하호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지하수에 빗물이 지하 삼투(渗透)를 거쳐 보충되는, 그 보충속도 이상으로 많은 양의 지하수를 빠른 속도로 뽑아 올리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대다수 사찰들이 산 속에 위치함으로 인해서 비교적 유명한 관광지나 유원지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사찰 주변에는 관광객이 넘쳐나고, 이들의 불법 취사행위로 인해 인근 계곡·하천이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찰 내에서 발생되는 생활하수와 분뇨 정화조 유출수, 여관·음식점 등 사하촌을 형성하는 많은 시설물들의 생활하수 등으로 인한 오염도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찰 지역의 계곡이나 하천의 수량이 많아 자정능력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일부 수량이 적고, 자정능력이 부족한 사찰 내외의 계곡이나 하천이 하수도로 변한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3) 늘어나는 이용객과 더불어 나타나는 그림자, 쓰레기

‘쓰레기’라는 말은 본래 ‘쓰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쓰레기란 ‘쓰고 남은 것’ ‘다시 쓸 수 있는 것’이지 ‘못써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은 물론 똥·오줌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문헌을 통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재를 버리면 곤장이 30대요, 똥을 버리면 곤장이 50대라는 법도 정해져 엄격히 시행되었다고 한다.

약한 사람들은 곤장 10대만 맞아도 실신하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하니, 조선시대에는 함부로 버린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조상들은 버리지 않고 아니 버릴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쓰레기는 인간이 남긴 욕망의 흔적으로 비판받으며,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나라 1일 쓰레기 배출량을 보면 쓰레기를 가득 채운 4.5톤 트럭이 서울에서 대전까지 한 줄로 늘어설 수 있는 양이라니 가히 그 문제는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부처님 당시 전통에 따른 분소의(糞掃衣), 발우공양 등의 무소유적인 삶은 그 자체로 친환경적 생활양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 지역에서 쓰레기 발생으로 인해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우울하게 한다.

쓰레기의 대부분은 이용자들의 음식물 찌꺼기와 비닐봉지 그리고 빈 병과 깡통 등인데 특히 주말이나 휴일의 경우 더욱 그 양이 늘어난다. 서울 강남의 한 전통사찰의 경우, 밥을 배분하고 난 후 양푼에 붙어 있는 많은 양의 밥알들을 그냥 씻어 하수구에 흘리고 있다.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삼보정재를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사찰에서, 환경문제에 관해서 어느 집단이나 단체보다 더욱 더 엄격해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사찰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4. 불교문화를 통해 본 환경문제 해결방안

환경문제에 대해 불교와 불교사상이 던지는 생명살림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불살생계의 생명존중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채식문화, 음식물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씻어서 먹는 발우공양의 전통, 생태적 순환을 말해주는 전통양식의 사찰 해우소(解憂所),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판받고 있는 지금의 방생이 아니라 생명살림의 원력을 세우는 방생법회 등 다양한 생활문화 속에서 우리들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지침들을 제공받을 수 있다.

1) 불살생의 생명운동, 채식문화

세상사의 근원적인 문제는 먹는 문제이다. 먹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서 먹는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정도로 먹는 행위는 인간의 생존에 대단히 중요한 일상사이다. 그래서 일용행사가 도(道)라는 말도 있다. 먹고 배설하는 행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불교에서 발우공양할 때 소심경(小心經)을 외우고, 똥을 눌 때 입측오주(入厠五呪)를 염하는 것도 일용행사를 단순히 보지 않고 일상생활에 깨달음의 모든 내용을 담기 위해서다. 사람은 먹는 것을 통해 자연과 교감한다.

먹고 있는 음식물이 나의 몸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먹는가 하는 것은 내 몸의 성분과 체질을 결정하고, 또한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정서와 성격을 결정한다. 먹는 것은 이토록 중요하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가를 결정하는 모든 것이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연관성과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네가 살면 나도 산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연기적 세계관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는 살아 있는 무수한 생명을 비롯해서 생명 없는 모든 무정물까지도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직도 산사에 가면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혹여 뜨거운 물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될까 조심스러워서다.

요즘에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옛날 고승들은 길을 갈 때에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면서 다녔다고 한다. 작은 미생물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밟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사찰의 일상은 그 자체로 생명존중사상을 구현하는 생활이었다. 우리도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몹시 고생하였는데, 오늘날에도 북한을 비롯한 제3세계의 어린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도리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비만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들이 어린이들에게까지도 생겨나고,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서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사람들의 먹거리로 도살되는 동물의 생명은 매년 200억에 달한다. 이러한 동물들의 사육을 위해 벌채되는 숲은 매년 한반도의 남한만한 크기이며, 벌채된 숲은 몇 년 후 사막화된다. 또 벌채되는 숲으로 인해 멸종되는 생물종은 매년 최소 1천 종에서 최대 1만 종에 달한다고 한다.5)

육식은 채식을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데, 사료용 곡물생산으로 인한 열대우림의 파괴와 더불어 환경파괴까지 급증하고 있다면서 쇠고기 햄버거 1개를 만드는 데 소모되는 자원을 도표로 세밀하게 설명하며 야채버거의 생산을 주장하는 채식주의자들의 모임을 안내해 주는 매체들도 많이 볼 수 있다.6) 이렇듯 육식소비문화는 대단히 반생명적이다. 불교적 가치관으로 볼 때 환경파괴는 불살생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7)

채식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율의 금제가 아니라 불살생, 생명살림운동의 적극적인 한 모습이다. 불교도들이 앞장서서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는 문화를 만들어 감으로써 채식은 환경문제 해결에 대한 불교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채식전문식당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2)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해결, 발우공양

필자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정토회관에서는 매일 아침, 새벽예불 뒤 발우공양을 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외우는 소심경은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다. 소심경의 전발게에 삼륜공적(三輪空寂)이라고 하여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물건이 깨끗하길 기원하는 구절이 있다.

실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베풀거나 순수한 마음으로 받지 않는다면 이 또한 청정한 보시물이 아니다. 청정한 음식을 정갈한 마음으로 받되 항상 스스로 먹을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보며 먹는 행위는 단순히 식사가 아니라 거룩한 의식이다. 발우공양은 철저히 위생적인 청결공양이며, 조금도 낭비가 없는 절약공양이다. 먹을 만큼의 양을 자신의 그릇에 담아 먹고 뜨거운 숭늉에 남긴 김치나 무 조각으로 깨끗이 그릇을 닦아 마시고, 다시 청수를 이용해 손으로 깨끗이 닦아낸 뒤 발우 수건으로 닦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식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대중들과 함께 하므로 찬이 모자라면 서로 가반(加飯:밥과 반찬 등을 덜어 모으는 것)하여 모자란 사람과 공평히 나눈다. 그리고 공양을 마친 후 공동체 성원들 사이에 의견을 나누고 알리는 대중공사를 한다. 이처럼 발우공양은 공동체의 단결과 화합을 고양시키는 성스러운 의식인 것이다. 소심경에는 모든 중생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하고, 하루의 삶과 수행에 대해 반성하고 마음을 점검하며, 모든 중생과 함께 평등하게 나누어 먹겠다는 자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공양에 깃든 이웃들의 공덕을 생각할 때 저의 덕행은 부끄럽습니다. 욕심내지 않으며 약으로 알고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計功多少量彼來處 忖己德行全缺應供 防心離過貪等爲宗 正思良藥爲療形枯 爲成道業應受此食 -소심경 중 오관게 오관게(五觀偈)를 암송하며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생명과 사람들의 노고와 고마움을 생각한다.

그리고 과연 내가 이 음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고 맛에 탐닉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수행과 남을 돕는 보살행을 하기 위한 약으로 먹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는 이치를 깨달아 많은 생명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환경문제는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을 단절된 것으로 인식하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상의상존(相依相存)·상호보완의 이치를 깨닫고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환경적 인식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음식은 태양과 바람, 물과 풀벌레, 그리고 새들과 사람들의 온갖 노고의 결정체이다.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의 노고가 바로 이 음식에 들어 있는 것이며, 시간적으로 과거의 모든 중생들의 기술과 노고가 축적된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거룩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먹음으로써 맑은 물로 들어와 맑은 물로 나가는, 그야말로 수질오염을 시키지 않는 청결한 공양으로 모든 생명과 사람들의 연기적 존재로서 이 법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8)

젖은 쓰레기의 대표격인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 매립에 큰 문제가 되고 있고 그 처리비용으로 1년에 5조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고, 북한에서는 약 350만의 동포가 굶어 죽어가며 고통받고 있는데, 이들을 생각한다면 음식을 남겨 버린다는 것은 죄악이다. 음식물쓰레기를 걱정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음식물 남기지 않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역할을 이야기한다면 단순히 음식물을 아낀다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우선 음식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발우공양의 정신을 받아 ‘그릇을 닦아 먹는’ 운동을 전개하자. 그것은 음식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닦아 먹는 그릇에 유해한 세제를 사용할 리 없어 자연히 세제사용을 자제하거나 쌀뜨물이나 기타 자연세제를 사용하는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그리고 김치로 그릇을 닦아 먹은 후에 설거지한 쌀뜨물은 화초나 나무에 주어도 좋다.

그리고 발우공양의 뜻을 현대화한 다음의 게송을 하고 식사를 하도록 하자.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여 있고 한 톨의 밥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여 있으며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직녀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3) 생태적 삶의 순환고리 - 해우소

사람의 배설물은 오염원(汚染源)이 아니라 생태순환의 중요한 고리이며 자연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인간의 무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생산력주의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에너지 수탈(과잉소비)과 더불어 자연의 생태순환을 가로막고 있다. 물질문화를 강조하는 서구적인 가치체계가 현대사회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인간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도 반생태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9)

우리가 귀농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생태적인 뒷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먹으면 싸야 하는 것이 생명의 이치인데 지금의 문명은 먹기만 하고 싸는 것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10) 오랫동안 사찰의 해우소는 생태적인 뒷간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어 왔다. 사찰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던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오는 방문객의 수가 늘어나면서 수세식 변기를 이용한 화장실문화가 산 속의 사찰에까지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아침에 눈뜨면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뒤도 보지 않고, 물을 내려 깨끗하게 흘려버린다. 더러움과 얼마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으로 문명적 삶의 잣대로 삼으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무신경과 무책임이 환경문제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정토회관에서는 ‘쓰레기 제로(0)운동’을 시작하면서 화장실의 화장지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인도와 태국의 경우처럼 화장실에 뒷물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반발하는 활동가들도 많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주저하는 활동가들도 많았다. 하지만 직접 한 번 해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뒷물을 한다. 화장실에는 외부인을 위해서 밖에 화장지를 걸어 두고, 화장지 사용의 절감을 위해서 각 사무실에는 걸레를 비치하는 등 여러 가지 실천 프로그램을 합의 속에 진행하고 있다.11)

4) 생명살림의 기원, 방생법회

방생은 본래 ‘묶여 있고 갇혀 있는 생명을 해방시켜 주는’ 의미를 가진 불교적 의식이다. 하지만 요즈음 방생의식은 이러한 본래의 뜻을 살리지 못한 채 ‘강물에 물고기 풀어주고 복덕을 비는 의식’ 정도로 협소하게 이해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방생 장소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곳에 적합하지 않은 어종들을 마구 풀어놓음으로써 방생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생태계의 교란과 환경파괴를 초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뿐만 아니라 방생법회가 무분별하게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음식물이나 기타 오염물질들이 하천이나 강에 유입되어 수질오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상류에서 물고기를 놓아주면 낚시꾼이나 상인들이 하류에서 다시 잡아 되파는 상업주의까지 판치는 현실 앞에 생명살림의 의미를 담은 본래의 방생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방생 지역의 특성을 면밀히 조사하여 생태계 질서를 교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어류 방생뿐만 아니라 야생 동물이나 조류에게 먹이를 주는 등 방생법회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특히 눈이 쌓인 겨울철 산에는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므로 이때 먹이를 마련해 주는 방생법회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요즈음은 나무심기, 꽃씨뿌리기 등으로 방생법회를 하는가 하면 사찰 주변의 산야에서 생태관찰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생태방생법회를 진행하는 곳도 간혹 눈에 띈다. 이렇게 방생법회의 다양한 주제와 내용은 일반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함께 참여하여 진행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기획될 필요가 있다.

5. 생태적 삶을 위한 사찰의 역할

1) 생태 사찰 만들기

우리 나라의 경관 좋은 곳, 사람들이 쉬어갈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사찰이 위치해 있다. 사찰은 비단 불자에게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쉼터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고 발심하여 원력을 세울 청정도량이 현대식 대형 불사로 손상되고 있으며, 무분별한 국토개발과 위락단지 조성으로 사찰주변 환경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

오늘날 불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대웅전까지 잘 닦여진 너른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을 기도와 발심으로 헤쳐나가려고 하는 원력이다. 생태 사찰은 주변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림의 문화가 넘쳐나는 사찰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 내에서 서로를 살려주고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쉼터의 공간으로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찰에서의 행위 하나하나가 친환경적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찰 내에는 환경위원회를 두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또는 사찰 주변의 동물과 식물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등 동·식물 생태계를 조사하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사찰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찰 알기운동’과 ‘우리 사찰 가꾸기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주변 생태계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사찰마다 만들어진 생태계 보고서는 훌륭한 사찰 안내 자료가 되고, 생태계 이해 자료가 될 것이다.

2) 쓰레기 제로(0)운동

사찰의 공양간에서는 합성세제보다는 쌀뜨물이나, 밀가루 및 무공해 세제를 사용하며, 발우공양의 정신을 살려 음식을 남기지 않고 접시를 닦아먹는 것을 실천한다면 잔반(殘飯) 처리로 인한 음식물 쓰레기 걱정은 없을 것이다. 정토회관은 1999년에 새 건물에 입주한 이래로 음식물 쓰레기를 밖으로 배출한 적이 없다. 이 또한 ‘쓰레기 제로(0)운동’의 실천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텃밭에 거름으로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밖으로 배출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음식물은 기본적으로 남기지 않고 먹기 때문에 잔반에 대한 걱정은 없었으나 여름철에 늘어나는 과일껍질이 문제였다. 그래서 음식물 찌꺼기를 분쇄한 다음 옥상의 화단에서 썩히는 방법을 택하였는데 건조기간과 썩는 기간의 단축으로 음식물쓰레기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며, 고질(高質)의 거름까지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이 과정에서 환경적 부담으로 여러 가지 반대여론도 있었지만 ‘일단 해보고 주장하고 실천한다’는 처음 취지를 살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분리배출·수거함을 설치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충분히 재활용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가급적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등 여러 가지 실천적 모습으로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처음에 정토회관에서는 ‘우리가 먼저 해보고 주장한다’라는 취지로 ‘쓰레기 제로운동’을 선언했다. 이것은 분명히 선언이었다. 첫 프로그램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가 결정한 것이 ‘캔음료수 반입금지’였다. 캔제품의 사용금지 선언이었다.

캔 부식방지를 위한 약품처리, 환경호르몬 등의 이유로 캔제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하필이면 캔제품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많았다. 여름철을 지내면서 분리수거함에 넘쳐나는 것이 캔제품이었으며, 대체용품이 가능했고 실천 가능한 주제로 접근한다는 판단으로 캔제품의 사용을 금지한 것었다. 두 달간 시행된 이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다. 캠페인이 어느 정도 진행돼 가자 회관 밖에서도 캔제품을 취하지 않는 변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계속적으로 진행된 실천 프로그램은 화장지 사용금지, 비닐봉지 사용금지, 커피 및 차 종류의 1회용 포장제품 사용금지 등 여러 가지가 실험단계에 있고,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다.

3) 정기적인 알뜰시장 및 유기농 생협매장 운영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재활용물품의 교환, 환경상품의 구입, 생활협동조합 사무실 운영, 환경정보와 도서전시 판매, 환경위원회 모임공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설매장을 운영하면 매우 좋을 듯하다.

아나바다 운동은 단순히 물자절약을 위한 캠페인운동이 아니라 사찰 내 신도들의 적게 쓰고, 작게 사는 수행운동으로 확산해야 한다. 기술과 능력을 갖고 있는 신도들이 참여하여 서로의 기술을 교환하는 자원재활용 운동을 한다면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큰 교육효과도 있을 것이다.

아나바다 운동은 사찰을 매개로 일반 시민들에게도 참여하도록 하여 새로운 포교전략으로 이용되는 것과 더불어 훌륭한 지역운동이 될 수 있다. 유기농 생협매장 운영은 우리의 먹거리 문화가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찰이 그 매개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생활협동조합운동12)은 생활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 교환과 도시와 농촌을 잇는 유기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환경운동을 실천해 나가는 데 각 지역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나 포교원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4) 환경교육

각 사찰 단위별로 환경보존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일을 해 나갈 사람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이 없다면 모든 노력들이 단순히 일회적인 행사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교육은 활동을 할 일꾼을 발굴하고 양성하며, 훈련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환경교육은 어린이, 청소년, 청년, 보살, 스님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사찰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환경교육으로 법문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부처님의 사상을 재조명한다면 훌륭한 법문이자 환경 강의가 될 것이다. 또 환경전문가를 초빙하여 환경강좌를 개설할 때에는 지역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주민과 함께 하는 환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의 주요 사업은 환경문제의 근본원인을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환경문제의 근본원인을 교육활동을 통해서 알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개인의 실천과 사회적 활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일환으로 1991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온 교육이 ‘생태학교’와 ‘생명운동 아카데미’이다. 생태학교는 인간 중심적인 이기와 편리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생태적 삶의 중요성과 생태적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대중 환경 강좌이다.

대학생, 청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 토론, 현장답사, 실천, 자연명상, 숙박교육 등의 교육을 통해 생태적인 대안사회를 위한 실천가를 양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환경문제는 개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 없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생태학교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환경문제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되어져 있는지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생태학교가 생활을 중심으로 나의 변화를 살펴보는 반면, 새로운 문명의 대안을 찾는 작업의 하나로 생명운동 아카데미가 진행되어 왔다.

92년 ‘생태주의 사상 모색강좌’를 시작으로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의 분야별 대안이론의 맥을 짚어 오고 있는데 ‘동양사상과 환경문제’ ‘현대과학사상의 흐름과 환경문제’ ‘대안적 생활양식과 녹색소비자운동’ ‘생태위기시대의 공동체운동’ 등이 그것이다. 특히 생명운동 아카데미는 매 회를 끝낼 때마다 전체 강좌를 종합하는 심포지움을 수강생을 비롯하여 각계의 전문가, 활동가, 관심 있는 일반인과 함께 마련하여 이론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으며, 대안이론의 흐름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5) 지역운동의 중심, 사찰

이제는 환경운동을 위해서 지역의 사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 사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관심조차 없다가, 해당 사찰과 관련된 각종 환경문제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무관심해지는 이전의 불교의 환경운동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불교계가 지리산댐 문제를 기점으로 100여 개의 전국 주요환경단체가 참여한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각 지역을 기반으로 사찰은 이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지역의 환경문제는 그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앞장서야만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의 정신적 구심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사찰이 앞장서서 신도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하는 환경운동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찰 내 사찰환경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종교단체, 환경단체들과 함께 지역환경위원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향후 발생하게 될 지역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갈 기반을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사찰은 지역과 지역의 네트워크를 결성함으로써 전국적이며 세부적인 네트워크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6. 맺는 말

환경문제는 지역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지구적인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환경 사회단체와 불교 내 환경단체들과 협력하고 사찰 환경위원회와 힘을 합쳐 공동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종교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돈을 목적으로 숭배하는 유일신 ‘유물교’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환경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주체적인 가난과 자발적인 청빈을 강조한 옛 성현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적게 갖고 적게 소비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타종교와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포교전략을 비롯한 여러 가지의 열등의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불교는 불교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역대 조사들의 수행력으로 오늘을 살고 있고, 그런 ‘과거를 갉아먹으면서 살고 있는 불교,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있는 불교’라는 비판과 오명을 더 이상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교는 환경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박석동
부산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졸업. 민간 환경 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사회단체회의’의 간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사)한국불교환경교육원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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