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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 영화에 나타난 불교적 시간의식 / 하재봉
[6호] 2001년 03월 10일 (토) 하재봉 영화평론가

쿠엔틴 타란티노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 영화의 전복적 가치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를 거치지 않고서는 현대 영화의 한복판으로 진입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타란티노는 현대 영화의 복잡한 잠금 장치를 풀 수 있는 키워드이다. 스스로의 꼬리를 자르며 도망치는 뱀처럼 빠른 속도로 진화되면서 향방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예술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신생의 장르이다.

다른 예술 장르들이 인류의 기원과 거의 궤를 같이 하는 데 비해 영화는 이제 태어난 지 100년이 조금 넘는다. 영화의 발전은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보화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영화도 디지털로 몸을 바꿔가고 있다.

지금까지 영화는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거대한 변화를 겪었었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영화에 대한 모색은 지금까지 형성되었던 영화라는 매체 전체를 뒤흔들 만큼 혁명적이다. 디지털 영화가 제작자에서 관객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생산과 공급의 전과정을 뒤바꿔 놓고 있다면, 타란티노는 영화에 대한 내적 사유의 측면에서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예술에 공헌한 위대한 감독들은 많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제 겨우 3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은 30대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지난 100여 년 동안 진화되어온 영화예술의 토대를 뒤흔든, 무서운 혁명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990년대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해서 세계 영화의 조류를 뒤바꿔 놓은 타란티노의 엄청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왜 모든 젊은 감독들은 타란티노처럼 되고 싶어하며, 불과 3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은 타란티노의 작가론, 작품론은 왜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는가. 대형서점의 영화 전문 코너에서 우리는 타란티노 연구서를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에이젠스타인도 아니고, 장 뤼 고다르도 아니며 타르코프스키도, 짐 자무쉬도 아닌 도대체 왜 타란티노인가? 타란티노는 시나리오 작가에서 출발하여 세 편의 장편영화를 찍었고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했으며 여러 편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고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산업의 전방위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고 해서 타란티노가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필자는 타란티노의 영화적 사유 핵심에, 그 동안 서구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기독교적 세계관의 붕괴와 그 대안적 출구로서 불교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타란티노 영화미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독특한 시간의식은, 한계상황에 다다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면서 발생되며, 그것이 타란티노 영화를 혁명적으로 인식시킨 힘의 원동력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지금부터 그 구체적 이유를 살펴보자.

1.

타란티노는 1963년 5월 27일 미국 테네시주의 녹스빌에서 태어났다.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이름은 갱영화 〈건스모크(Gunsmoke)〉에서 버트 레이놀즈가 맡았던 퀸트의 이름을 모방한 것이다. 타란티노가 태어날 당시 그의 아버지 토니는 21세의 법대생이자 배우 지망생이었고, 어머니 코니는 불과 16세로서 체로키 인디언 피가 반쯤 섞인 간호사 지망생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영화광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8살 때부터 극장을 들락거리던 타란티노는 저주받은 걸작들을 섭렵하였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는 포르노 극장의 매표소 직원을 거쳐 L.A 변두리의 비디오 가게 〈비디오 아카이브스〉의 점원으로 일한다. 그는 “내가 영화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은 모두 비디오로 배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수업을 했다. 타란티노는 특히 홍콩영화에 중독되었다.

〈첩혈쌍웅〉 〈영웅본색〉의 오우삼을 발견한 것도 이때였다. 그 외에도 아벨 페라라, 샘 페킨파,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있지만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의 작품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진로를 영화로 결정하고 보다 전문적인 학습을 위해 선댄스 전문 학교 영화 워크숍에서 연출 실기를 배웠고 16밀리 영화를 찍었다. 1985년 타란티노는 〈비디오 아카이브스〉의 동료들과 최초의 16밀리 영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My Best Friend’s Birthday)〉을 만들기 시작했다.

86년까지 계속된 이 작업에서 그는 직접 연출, 각본, 주연까지 맡았지만 현상 도중 필름이 손상되어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것을 발전시킨 시나리오가 타란티노 최초의 시나리오 〈트루 로맨스〉이다. 1987년 완성된 〈트루 로맨스(True Romance)〉는 타란티노가 감독하고 그의 친구인 로저 애버리가 제작을 맡기로 했었는데, 그러나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무산되었다. 결국 이 시나리오는 3년 뒤 메이저 제작사에 5만 달러라는 헐값에 팔렸고, 타란티노가 데뷔작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자 1993년 토니 스코트 감독(〈탑건〉 〈크림슨 타이드〉를 만들었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트루 로맨스〉는 토니 스코트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스타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속도감 있는 액션 전문 감독 토니 스코트는 타란티노의 감각적 대사와 컬트적 요소를 잘 살려서 표현을 했다. 그래서 타란티노는 토니 스코트 감독이 만든 잠수함 영화 〈크림슨 타이드〉의 각본 수정에 비공식적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1989년에 완성한 〈내츄럴 본 킬러〉의 시나리오는 〈플래툰〉의 거장 올리버 스톤에 의해 1994년 영화화되었다. 그러나 올리버 스톤은 타란티노의 각본을 대폭 수정하여 자신의 색깔을 입혔고, 크레딧에는 타란티노가 각본이 아닌 원안자로 소개되었다.

타란티노는 자신의 대본이 너무나 많이 수정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지만, 살인광에 대한 소재를 올리버 스톤 특유의 사회적 시선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에 영화는 완성도 있게 표현되었다. 타란티노의 세번째 시나리오는 90년에 완성한 호러 액션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이다. 이 시나리오는 타란티노처럼 선댄스 키드 출신인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에 의해 96년에 영화화되었다.

두 사람은 9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멕시코 출신의 로드리게즈는 7천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불과 8백만원의 믿지 못할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 〈엘 마리아치〉를 출품해서 관객상을 받았다. 〈엘 마리아치〉에서 로드리게즈는 감독, 각본, 촬영, 편집, 조명, 음향 등을 모두 맡았으며 친척과 친구들을 무보수 배우로 동원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는 미국 메이저영화사(콜롬비아사)에서 배급한 최저예산 영화이자, 스페인어로 개봉한 최초의 미국영화의 기록을 갖고 있다.

〈엘 마리아치〉로 로드리게즈는 스타가 되었고, 콜롬비아사는 7천 달러의 천 배가 넘는 제작비를 주어서 〈엘 마리아치〉의 속편을 만들게 하였다. 그 영화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데스페라도〉이다. 타란티노는 로드리게즈와의 우정으로 이 영화의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또 두 사람은 선댄스 키드 출신인 다른 두 사람의 감독과 함께 95년 옴니버스 영화 〈포 룸〉을 연출했다. 왕년의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만든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창조적 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들이 모여 들었는데, 타란티노나 로드리게즈도 그 중 하나였다.

로드리게즈는 타란티노의 시나리오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읽고 난 후 미친 듯이 열광하면서, 이 영화의 연출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는 타란티노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영화의 총 제작 지휘를 맡았다. 1992년, 타란티노는 자신의 극장용 장편영화로서는 최초인 〈저수지의 개들〉을 연출했다. 이 영화로 그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타란티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트루 로맨스〉 〈내추럴 본 킬러〉 〈황혼에서 새벽까지〉 등의 시나리오로 벌어들인 돈을 모아 혼자서 〈저수지의 개들〉을 제작하려고 했는데, 하비 케이틀이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제작을 지원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미국 인디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하비 케이틀이 〈저수지의 개들〉에 합류했다는 소문은, 실력 있는 배우들을 이 영화에 합류하게 했고, 타란티노는 애초의 계획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좋은 여건 속에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완성된 〈저수지의 개들〉은 선댄스 영화제와 칸느 영화제에 출품되어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하였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 한편으로 미국 인디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젊은 관객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를 매혹적으로 패러디한 〈저수지의 개들〉은 새로운 내러티브 구조를 선보였다. 엄청난 피와 폭력으로 점철된 영화지만 그 속에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타란티노만의 독특한 유머와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 이 영화로 그는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라맥스사는 〈저수지의 개들〉의 화려한 성공을 보고 타란티노의 다음 작품인 〈펄프 픽션(Pulp Fiction)〉에 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타란티노의 영화미학에 매료된 브루스 윌리스, 샤뮤엘 잭슨, 우마 서먼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참여한 94년작 〈펄프 픽션〉은 40년대 하드보일드 3류 소설 〈펄프 픽션〉과 60년대 팝 아트의 스타일을 자유롭게 섞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전미비평가상을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9천 2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젊은 영화광들 사이에서 타란티노는 이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펄프 픽션〉에서 타란티노는, 70년대 말 디스코 붐을 일으키며 〈토요일 밤의 열기〉 〈그리스〉 등의 영화로 청춘의 우상으로 군림했지만 디스코 붐이 시들어가면서 퇴락한 배우로 잊혀졌던 존 트라볼타를 화려하게 재기하게 했고, 브루스 윌리스는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며 새로운 배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헨리 밀러의 금기 소설 〈북회귀선〉을 영화화한 작품에서 섹시함을 드러냈던 우마 서먼도 〈펄프 픽션〉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의 대열에 들어섰다. 또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촬영기법, 시나리오 작법, 영화철학 등을 보여주었다. 타란티노 영화미학이 집대성된 〈펄프 픽션〉의 미학적 가치에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95년 타란티노는 옴니버스 영화 〈포 룸〉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92년 선댄스 영화제 출신 감독 네 명이 각각 하나의 에피소드를 연출하였다. 알렉산더 록웰, 앨리슨 앤더슨, 로베르트 로드리게즈,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등 선댄스 키드 네 명의 천재악동이 모여 만든 영화 〈포 룸〉은 제작 전부터 대단한 화제를 일으켰지만 완성된 영화는 범작에 그쳤다. 가장 점수를 딴 사람은 로드리게즈. 그가 연출한 세 번째 에피소드가 완성도가 있었으며, 타란티노는 장편 연출작에 비해서 평범한 스타일을 드러냈다.

타란티노는 이후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더 록〉의 각본에 참가했고,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제작, 각본, 주연을 맡았다. 97년 말, 타란티노는 세 번째 장편영화 〈재키 브라운〉을 연출한다. 타란티노는 토크쇼에서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 목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적도 있어서 타란티노가 연출을 포기하고 배우 전업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었지만, 그는 한층 깊은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재키 브라운〉을 만들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 “〈펄프 픽션〉과 같은 흥행 성적은 기록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타란티노는 말해서 제작사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싸구려 B급 장르 영화에 대한 타란티노의 애정의 결과물이고 스릴러 장르를 타란티노식으로 비틀어서 해체한 완성도 있는 영화였다. 한편으로 배우 활동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드러낸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의 미스터 브라운, 〈에디 프레슬리〉(93)의 남자 간호사, 〈썸바디 투 러브〉(94)의 바텐더, 〈나와 함께 자요〉(94)의 시드, 〈코리올리스 효과〉(94)의 목소리 출연, 〈타이프라이터, 권총, 그리고 무비 카메라〉(95)의 타란티노 감독, 〈포 룸〉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체스터, 〈데스페라도〉(95)의 픽업 가이 등의 단역을 거쳐 〈데스피니 라디오를 켜다〉(95)의 주인공 조니 데스티니를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96)에서는 제작, 각본, 주연을 겸했다. 동시에 그는 미라맥스 계열사인 ‘롤렁 썬더 필름’의 배급업자로서 홍콩의 왕가위 감독과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를 미국 전역에 소개하기도 했으며, 로렌스 벤더와 함께 광고회사 ‘어 밴드 어파트 커머셜’을 운영하고 있다.

2

타란티노 영화미학의 출발점이 된 갱스터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부터 우리는 종래의 영화와는 다른 타란티노만의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장 뤼 고다르 이후 가장 뛰어난 데뷔작”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90년대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 창조”라고 격찬받았던 이 영화에는, 기승전결식의 관습적인 이야기 구조가 해체되어 있다. 갱스터 장르는 1920, 30년대에 장르로 자리를 잡은 낡은 형식이지만 타란티노는 이것을 놀랄 만한 창조력으로 비틀어 해체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이야기 문법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10분 정도로 길게 진행되는 도입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다. 레스토랑에 모여 있는 8명의 인물들을 카메라는 비춘다. 6명은 검은 양복과 흰 와이셔츠, 검은 넥타이를 메고 있고, 두 명은 일상복을 입고 있다. 일상복을 입은 사람은 프로페셔널 도둑인 죠 캐봇과 나이스 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의 아들 에디이다. 두 부자는 보석상을 털기 위해 6명의 갱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그러나 테이블을 빙 둘러싸며 자리잡은 8명의 인물들 뒤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상스러운 농담들뿐이다.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라는 힛트곡 제목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 등 시중에 떠도는 음담패설류를 왁자지껄하게 떠들 뿐이다.

그리고는 웨이터에게 팁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갖고 멤버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들이 장황하게 늘어져 있는 것이다. 이제 레스토랑을 나선 8명의 인물들은 비스듬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간다. 그들의 뒷 배경으로 붉은 벽돌들이 보인다. 그리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온다. 그러나 다음 신은 갑자기 차 안으로 바뀐다. 운전을 하고 있는 미스터 화이트(하비 케이틀 분)는 땀을 뻘뻘 흘리며 뒷좌석을 돌아다본다.

그곳에는 복부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미스터 오렌지(팀 로쓰 분)가 앉아 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비어 있는 창고. 영화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진행된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전개된 놀랄 만한 점프 컷은 영화사상 가장 폭력적으로 편집된 것이다. 이야기는 시간을 훨씬 건너뛰면서 전개된다. 관객들은 느닷없는 신의 등장으로 갑자기 혼란에 빠진다. 어떻게 된 것일까? 창고에 도착한 화이트는 엄청나게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오렌지를 바닥에 눕힌다.

이곳은 그들의 제2차 집결장소이다. 이미 영화적 내러티브는 그들이 보석상을 털기 위해 모의하는 장면을 보여준 뒤, 정작 그들이 보석상을 터는 장면은 건너뛰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모의하는 신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후에 전개된 영화적 상황을 보고 관객들이 판단한 것이었고, 오프닝 신 어디에서도 범행과정에 대한 모의는 등장하지 않는다. 타란티노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소재였다면 지금까지 대부분의 영화들은 오히려 갱들이 범행을 세밀하게 모의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란티노의 뛰어난 점은 그것들을 과감하게 배제한 데 있다. 화이트와 오렌지가 나누는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은 무엇인가 커다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보석상을 털고 나오면서 경찰과 총격전이 있었고 그때 일행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그들은 2차 집결장소를 마련해 놓았는데 그곳이 바로 이 창고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미스터 블론드(마이클 매드센 분)가 들어온다. 그는 경찰과 총격전에서 미스터 불루가 죽었고 그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을 인질로 붙잡아 현장을 탈출했는데, 그들이 보석상을 탈출하기 전 이미 경찰들이 그곳에 매복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면서 내부에 내통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 누가 프락치인가? 그러나 화이트는 동의하지 않는다. 보스인 죠 캐봇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 6명의 갱들을 각지에서 불러모았고 그들은 철저하게 나름대로 신원 검증 작업을 마쳤기 때문이다. 범행 과정에서 누구 한 사람 경찰에게 붙잡혀도, 다른 사람의 신원에 대해 자백할 수 없게끔 그들은 본명 대신 오렌지, 화이트 이런 코드네임으로 서로를 불렀던 것이다. 블론드는 경찰을 의자에 묶어 놓고 고문을 한다. 자신들 중 누가 프락치인가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뒤늦게 창고로 온 화이트와 핑크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블론드는 경찰의 귀를 자르며 고문을 한다. 그리고 경찰을 죽이려는 순간,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던 오렌지가 블론드를 살해한다. 이제 관객들은 오렌지가 경찰의 첩자, 아니 갱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잠입한 경찰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경찰에서는 갱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중의 한 명을 철저하게 갱으로 위장해서 조직 내에 침투시켰던 것이다. 영화는 플래시백 되면서 오렌지가 경찰에서 갱으로 위장해 그들과 접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갱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뒤늦게 창고로 합류한 보스와 그의 아들 에디, 그리고 화이트는 블론드의 죽음을 의아해한다. 오렌지는 블론드가 경찰의 첩자라고 주장하지만 에디는 블론드가 경찰의 첩자가 될 수 없는 증거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오히려 오렌지라고 주장하며 총을 겨눈다. 그러나 화이트는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는 탈출 과정에서 오렌지와 함께 동행했었고, 지나가던 차량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오렌지가 총상을 입으며 운전자를 총으로 쏘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화이트는 보스에게 총을 겨누고, 보스는 오렌지에 총을 겨누며 오렌지는 에디에게 총을 겨누고 에디는 다시 자신의 아버지인 보스에 총을 겨눈 화이트를 겨냥하고 있다. 빨리 총을 내려놓으라는 외침이 들리지만 순간 총이 발사되고 연쇄적으로 총소리가 이어지며 모든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진다.

오우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신은 총을 난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서로가 서로에게 집단적으로 총을 겨누며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폐쇄공간인 창고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진행되는 핵심공간이다. 보통의 갱스터 무비 같았으면 보석상이 중심 공간이 되었겠지만, 타란티노는 변두리 외곽의 허름한 창고 건물 안에서 세계 영화의 변혁을 꿈꾼다. 제한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연극적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또 실패한 범행 뒤 창고에 모여서 배신자를 색출하는 귀납적 서술구조는 기존의 영화에서 보던 전개방식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저수지의 개들〉을 외면적으로 특징 지우는 것은 피에 가득찬 영상과 극단적인 폭력, 갱들의 저질스러운 농담과 독설로 가득 찬 다이얼로그 등이다. 그러나 내러티브적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기묘한 구조를 띄고 있다. 실패한 갱들의 후일담이라는 소재 자체가 독특한 데다가 갱들 각자의 주관적 시점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는 관객들을 관음증적 위치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내러티브 속으로 쉴새없이 개입시킨다. 타란티노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해체한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재구성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 시간의 해체이다.

수 천년 동안의 서구 문명을 지탱해준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하느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휴식을 취했다는 구약성서 천지창조 속의 이야기는,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로 하여금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끝나는 것으로 귀결된다. 예수 부활 이후의 시간은 신화 속의 시간을 모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적 세계관 속의 시간관은 천지창조에서 최후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적으로 진행되는 선적 시간이다. 이것은 내러티브적 측면에서 기승전결식의 구성을 갖는다. 이야기의 시작이 있고 발단이 있으며 전개가 있고 결말이 있다.

부르조아 계급의 발달과 함께 대중화 된 담화 중의 하나인 소설문학 속의 시간 구조도 근본적으로는 기승전결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전개방식이다. 태초부터 시간은 그렇게 흘렀으니까. 현실적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허구적 이야기 구조인 소설이나 영화 역시 그 시간적 구조를 모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다르다. 그는 지금까지 영화예술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선적 시간관을 벗어나 그것을 해체한다. 커다란 칼을 들고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를 뚝뚝 잘라 여기 저기 파편화하여 해체함으로써 관객들은 극도로 이야기 전개의 정보에 목말라하게 된다.

마치 흩어진 퍼즐을 모아서 하나의 그림을 구성하듯, 관객들은 영화 속의 물리적 시간이 지속될수록 그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시간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적 시간관인 선형적 질서를 거부하고 비선형적 세계를 창조한 타란티노 영화미학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탈기독교적이다. 그렇다면 타란티노의 비선형적 세계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시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원시불교에서 시간은 존재 그 자체였다. 즉 존재를 인식하는 주관의 인식능력 속에 이미 시간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교사상에서의 시간은 과학적·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 시간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심리적 시간은 법의 무상(anitya)에 근거하고 있다. 불교에서의 현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상태 그것만의 모습은 아니다.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소통한다. 타란티노 영화의 독특함은 바로 서구 문명을 지탱해온 선적 시간과 그 결과물인 현재의 가시적 모습을 벗어나 현재의 시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나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나를 휩쓸고 가는 강이다. 하지만 나 또한 강이다. 시간은 나를 잡아먹는 호랑이다. 그러나 내가 그 호랑이다. 시간은 나를 태우는 불이다. 그러나 내가 불이다.”라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독백은 인간의 본질이 시간임을 깨우쳐 주고 있다. 나와 타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한 몸이라는 이 자각은, 명백하게도 불교적 영향에 의한 것이다.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서 많은 서구인들에게 불교강의를 계속했던 보르헤스는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비조로 꼽힌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탈중심, 탈권력의 중심 화두야말로 서구문명을 지탱해온 시간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관은 일회적인 인간의 시간의식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다.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죽음이며 죽음은 인간에게 시간의 문제로 다가온다. 많은 작가들이 생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하면 시간이란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즉, 인간의 모든 정신적인 체험은 시간체험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 역시 형이상학의 핵심 문제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삶의 진실을 포착하는 영화 역시 시간예술이다.

극장에 앉아 있는 100여 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생의 수많은 압축된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극장 안에서 흘러가는 100여 분의 물리적 시간 동안 우리는 재창조된 또 하나의 시간을 만나게 된다. 영화 속의 시간은 대부분 선형적으로 흘러가지만 〈플래시백〉이라는 기법에 의해 영화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교차편집에 의해 동일 시간대에 각각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함께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이러한 영화 속의 시간 기법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면서 비선형적 질서를 창조한다. 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은 이렇게 놀랍도록 영화사상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간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탈기독교적인 동시에 친불교적이다.

일종의 선적(禪的) 체험이라고 보여진다. “불교의 참선이란 일상의 시간을 거슬러 생생한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한 방법이며, 선이란 일종의 시간체험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선이란 곧 스피드인 것이다.”라는 보르헤스의 말은 타란티노의 영화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불교적 시간은 원형적이라는 점에서, 직선적 구조를 갖는 기독교적 시간과 대비된다. 그 원형적 구조는 그러나 둥글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파편화되어 있지만 우리들의 삶은 업(業)에 의해서 보이지 않게 연결된다. 타란티노 영화의 비선형적 세계질서―파편적 시간관은 바로 이것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시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시간 밖에 영원이라는 무한한 시간을 설정했다. 불교의 윤회사상은 원형적이고 순환하는 시간관의 표현이다. 반면에 기독교적 시간은 직선적이고 일회적이며 유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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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두번째 영화이자 그의 천재적 재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만든 영화가 〈펄프 픽션〉이다.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기 전까지 전세계 영화팬들은 아직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92년 〈저수지의 개들〉이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직 전문가나 마니아 수준에서 그 미학성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펄프 픽션〉은 94년 칸느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타란티노의 존재를 전세계적으로 알렸다. 〈펄프 픽션〉은 원래 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미국 대중을 사로잡았던 싸구려 소설잡지를 말한다. 그레이 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 가판대에 꽂혀 있는 싸구려 대중소설이나 잡지를 펄프 픽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조악하게 인쇄되어 있고 야한 삽화가 그려진 이런 소설들은 대부분 추리물로서 내용적으로는 살인, 강도, 불륜 등의 범죄를 다루고 있다. 대실 해밋, 데이비드 구디스, 코넬 울리치, 제임스 M 케인, 레이몬드 첸들러, W.R. 버넷 등의 작가들이 범죄로 얼룩진 어두운 도시에 관해 하드보일드 터치로 소설을 썼다. 이런 소설들은 후에 50년대 프랑스 영화평론가들인 장 뤼 고다르 등에 의해 ‘필름 느와르(film noir)’라는 장르로 불리우기도 했다.

〈펄프 픽션〉에서 타란티노 영화미학은 확연하게 색깔을 드러낸다. 투기꾼들의 수많은 돈이 걸린 복싱시합에서 패하기로 약속해 놓고는 약속을 어기고 도주하는 삼류 복서와 그의 여자 친구, 보스의 애인을 경호하기로 되어 있지만 이상한 관계로 발전하는 갱들, 레스토랑에서 한 탕을 꿈꾸며 총을 들고 설치는 얼치기 연인들, 이 세 가지 에피소드가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다.

영화는 풋내기 좀도둑 커플 하니 버니(아만다 플러머 분)와 펌킨(팀 로스 분)이 싸구려 레스토랑에 앉아 강도를 모의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던 그들은 술집 대신 지갑에 돈이 두둑한 손님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런 레스토랑이 한 탕 하기에는 적당하다고 의견을 교환한다. 그리고 그들은 총을 빼어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며 엎드리게 하는데, 이때 레스토랑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빈센트 베가(존 트라볼타 분)와 줄스 윈필드(사무엘 잭슨 분)이다.

그러면서 화면은 빈센트와 줄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도입부의 레스토랑 강도 신은 이야기를 여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빈센트와 줄스는 조직의 보스인 마르셀러스 윌러스(빙 레이스 분)의 명령을 받고 검은 서류 가방을 찾기 위해 그들을 배반한 사기꾼들을 뒤쫓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배반자들이 숨어 있는 아파트로 가서 그들을 몰살시키고 인질을 붙잡아 현장을 빠져 나온다. 그

런데 돌아오는 차안에서 인질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는 바람에 차안은 피범벅이 된다. 보스는 보고를 받고 해결사를 보낸다. 빈센트와 줄스는 친구인 지미(쿠엔틴 타란티노 분)의 집에서 보스가 보낸 해결사(하비 케이틀 분)를 기다린다. 해결사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차를 청소하고 시체를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없애 버린다. 살인의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보스는 사업차 출장을 떠나면서 심복인 빈센트에게 정부인 미아(우마 서먼 분)를 부탁한다. 그들은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다가 춤 경연대회에 나가 우승을 한다. 신나는 춤으로 기분이 상승된 미아와 빈센트는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빈센트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려고 애를 쓴다. 그때 미아는 빈센트의 재킷을 뒤져서 마약을 찾아내고 그것을 복용한다. 그러나 미아가 복용한 마약은 치사량이었다. 정신을 잃고 호흡곤란 상태에 있는 미아를 구하기 위해 빈센트는 마약상의 집으로 가서 응급처치로 미아를 구출한다. 보스의 사무실에서 빈센트는 버치(브루스 윌리스 분)와 마주친다. 버치는 삼류 복서인데 보스인 마르셀러스에게 거액을 받고 권투 시합에서 다운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버치는 돈을 모아서 자기 자신에게 거액의 돈을 걸고 상대 선수를 다운시켜 시합에서 이긴다. 그리고 애인 파비엔느(마리아 드 메데로이스 분)와 함께 도망을 친다.

그러나 미리 약속대로 변두리 싸구려 모텔에서 파비엔느를 만난 버치는, 애인이 버치 아버지의 유물인 금시계를 놓고 왔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무릅쓰고 혼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예상대로 보스의 심복인 빈센트와 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치는 금시계를 찾아서 도망치다가 그들과 마주치자 총을 집어 그들을 살해한다. 버치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다시 보스와 조우하는데 그들은 변태 게이 조직의 지하실에 붙잡혀서 치욕을 당한다.

버치는 보스를 구해주고 그곳을 탈출하는데 보스는 자기를 구출해준 버치에게 다시는 이 도시로 돌아오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다시 첫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빈센트와 줄스는 풋내기 좀도둑을 제압하고 그들에게 돈을 주어 돌려보낸다. 〈펄프 픽션〉의 시간적 구조는 교묘하게 비틀어져 있다. 이야기들은 서로 파편화되어서 각각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우한다. 타란티노는 이미 구세대의 인물로 버려져 있던 왕년의 디스코의 황제 존 트라볼타를 새로운 모습으로 멋지게 재창조했다.

존 트라볼타는 올백으로 머리를 넘기고 살찐 모습으로 등장해서 바람둥이 디스코 황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킬러로서 눈부시게 변신했다. 또 브루스 윌리스 역시 싸구려 액션 배우처럼 생각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유물에 집착하는 내면 연기를 뛰어나게 표현하고 있다. 내기 시합의 약속을 어기고 도망치는 복서나, 보스의 애인과 눈이 맞는 갱들, 좀도둑이 강도를 하다가 고수를 만난다는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3,40년대에 등장했던 싸구려 범죄 소설에 수없이 반복되었던 이야기들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이미 낡은 장르와 소재를 자신의 독창적 상상력으로 과감하게 비틀어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낯선 형식을 창조했다. 그것은 이미 서술한 대로 시간의 해체와 재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일직선적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의식이 타란티노 영화미학의 근저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윤회를 기초로 하는 불교적 세계관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 물론 타란티노가 불교 정신에 입각해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고뇌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서구 형이상학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우리의 삶은 일직선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은, 비선형적 서사구조를 창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것은 시간의 비틀림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타란티노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에서 보여준 놀랍고 대담한 시간의 해체와 〈펄프 픽션〉에 나타난 시작과 끝이 모호한 비선형적 세계질서의 드러냄은 타란티노 영화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일탈해 있다는 뚜렷한 증거로 보인다. 존재를 제외하고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는 불교의 존재론 속에는 움직이는 시간과 움직이지 않는 시간에 대한 폭넓은 자각이 있다.

생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오욕칠정의 세계 속에서는 오직 움직이는 시간만이 존재한다. 삶의 숙명적 허무와 맞부딪치게 되는 선형적 시간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결국 움직이지 않는 시간, 이미 존재하는 그 자체로 충분한 절대에 대해 자각케 한다. 일상적 시간을 초월하는 세계에 대한 탐구가 아직 타란티노 영화 속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제 그 절대적 시간 속으로 막 한 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유럽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타란티노 영화는 바로 그 바탕에 이처럼 시간의 해체를 깔면서 정신적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뛰어난 기교를 갖춘 감독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근저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무서운 실험의식과 도전정신이 있기 때문에 타란티노인 것이다.

사실 타란티노 정도의 기교를 갖춘 감독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세계 영화의 물결을 뒤바꾼 혁명아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이유는, 타란티노의 영화가 단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기댄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유의 새로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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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는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보다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전문가에게서는 타란티노가 이미 만든 두 편의 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결합한 최고의 걸작이라고 극찬을 받은 〈재키 브라운〉에서도 역시 타란티노의 시간의 해체는 계속된다.

그는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성공한 할리우드 감독의 전례를 따르지 않는다. 시나리오는 엘모레 레오나르드의 소설 〈럼 펀치(Rum punch)〉를 각색하면서 타란티노 스타일로 재창조되었다. 블랙엑스플로이테이션 필름(Blackexploitation Film)은 원래 흑인 배우들이 등장하며 흑인 관객들을 겨냥하여 제작한 영화를 말한다. 고돈 파크스가 1971년 감독한 갱스터 무비 〈샤프트(Shaft)〉가 가장 대표적인데, 흑인 영웅의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재키 브라운〉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블랙엑스플로이테이션 영화로서 만들어졌다. 70년대 흑인 여성 배우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역시 오랫동안 잊혀졌던 팜 그리어라는 배우를 영화 타이틀롤인 재키 브라운 역으로 캐스팅한 이 영화는, 다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50만 달러의 현찰을 얻기 위해 온갖 전략과 전술을 구사한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일은 커다란 캔버스 위에 작업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난 문학적인 형식을 영화에 도입하길 좋아한다. 한 예가 래리 맥머트리나 J. D. 샐린저 같은 소설가들의 책에서처럼 한 캐릭터를 계속 등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타란티노는 말하고 있다. 욕망에 사로 잡혀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을 거쳐 〈재키 브라운〉까지 계속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엘모어 레오나드의 소설 〈더 스위치(The Switch)〉에 매혹되어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열 다섯 살 때 대형 슈퍼 마켓인 K마트에서 도둑질을 한다. 대중소설이지만 엘모어 레오나드의 소설은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코믹한 대사나 아이러니, 그리고 긴박한 내러티브가 타란티노를 매혹시켰다. 타란티노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더 스위치〉에는 〈재키 브라운〉에 등장하는 오델과 루이스 가라가 등장한다. 〈재키 브라운〉에서 재키 브라운(팜 그리어 분)은 독신녀로서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는 항공기의 스튜어디스이다. 그러나 월급은 형편없다. 재키는 무기 밀매상인 오델(샤뮤엘 잭슨 분)을 알게 되는데 오델은 멕시코에 숨겨둔 거액의 돈을 미국으로 밀반입해 주는 조건으로 상당히 많은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재키가 공항의 세관에서 체포되면서 사건은 복잡해진다. 수사관은 재키를 심문하면서 배후세력에 대해 말하라고 다그친다. 오델은 사건 브로커인 맥스(로버트 포스터 분)를 통해서 재키를 석방시킨다. 그러나 맥스는 재키에게 경찰에 오델을 신고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충고한다. 재키는 오델에게 총을 겨눈 다음 만약 자신이 실형을 선고 받으면 10만 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배후세력에 대해 침묵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멕시코에서 50만 달러의 밀반입을 최후로 제시한다. 오델은 자신의 정부 멜라니(브리지드 폰다 분)와 멍청한 동료 루이스 가라(로버트 드니로 분)와 함께 무사히 그 돈을 빼돌릴 계획을 세운다. 재키가 밀반입하기로 되어 있는 50만 달러를 둘러싸고 재키와 맥스가 한 팀, 세관의 수사관들이 한 팀, 그리고 오델과 그의 하수인들이 한 팀이 되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얼핏 〈재키 브라운〉은 지금까지 타란티노의 영화에 나타난 시간의 해체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백미인 50만 달러 바꿔치기 장면을 분석해보면 타란티노의 독특한 세계관은 여전히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형 쇼핑몰 안의 옷가게에서 정장을 구입하면서 피팅룸으로 들어간 재키 브라운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돈을 바꿔치기 하는 데 성공한다. 이 신은 각각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3번이 반복되어 있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처음에는 재키 브라운이 피팅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며 돈의 대부분을 다른 봉투로 바꿔치기 한다.

그리고 옷값을 지불하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 다음 재키 브라운이 피팅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오델의 하수인 멜라니와 루이스 가라가 들어가 재키 브라운으로부터 세관원의 눈을 피해 빼돌린 50만 달러의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이 봉투는 윗 부분만 돈이 있고 그 아래는 다른 것들이 들어 있다. 위장된 돈 봉투인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재키 브라운과 미리 짠 맥스가 피팅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완벽하게 빼돌린 50만 달러의 봉투를 들고 나온다.

상당히 길게 편집된 이 신은 그러나 각각의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상대 인물들이 슬쩍 모습을 비추면서 재미를 주고 있다. 타란티노는 한꺼번에 이 모든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세 인물의 시점으로 하나의 사건을 분절하여 세 번을 거듭하면서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것이다. 역시 〈저수지의 개들〉에서부터 시작된 시간의 해체, 파편적 구성은 여기서도 계속되고 있다. 타란티노는 정보를 통제하고 관객들에게 서서히 하나씩 드러낸다. 관객들은 제한된 정보를 조금씩 제공받으며 그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이 맞춰가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동일시간에서 진행된 이야기들은 각각 등장인물에 따라 세 개의 이야기로 파편화되어 펼쳐진다. 단일한 물리적 시간 안에서 관객들은 서로 다른 시점의 이야기들을 부분 부분 볼 수 있다.

〈재키 브라운〉의 내러티브는 전체적으로는 선형적 시간의 전개를 따르고 있지만, 그러나 영화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세 갈래로 갈라져 전개된다. 역시 비선형적 세계질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쓰고 감독하고 편집할 때 웃음소리를 듣는다. 감독은 영화가 의도하는 내용 이전에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타란티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타란티노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그의 독특한 블랙 유머에 있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선적 시간관은 결국 현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일상적 시간관념으로 가득찬 현상계에서 벗어나 무명(無明, avidya)의 거대한 무지를 확고하게 인식하게 될 때, 타란티노의 영화는 또 다른 차원으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다. 타란티노는 본능적으로 서구문명의 근간인 선적 시간을 파괴하며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한 모색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그가 존재 그 자체가 시간인 불교적 세계인식에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영화미학으로 가득찬 그의 작품과 마주칠 수 있을지 모른다. 5. 타란티노는 시나리오 작가, 연출가뿐만 아니라 제작자와 배우로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영화마다 직접 출연해서 익살스런 연기를 보여 준다. 타란티노 이후 등장한 후배 감독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타란티노의 영향권 안에 있다.

제2의 쿠엔틴 타란티노라 일컬어지는 대니 보일 감독의 〈쉘로우 그레이브〉 〈트레인 스포팅〉, 마돈나와 결혼하면서 화제를 일으킨 영국의 타란티노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 또 프랑스의 타란티노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 〈매트릭스〉로 흥행에 성공한 워쇼스키 형제의 놀라운 데뷔작 〈바운드〉에서도 우리는 손쉽게 타란티노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영화로도 이어진다.

최근 개봉한 〈자카르타〉와 〈새벽의 7인〉은 기승전결식의 서사구조를 무너뜨리고 비선형적 시간관을 보여 줌으로써 타란티노식의 이야기 해체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외형만을 모방했을 뿐 타란티노 영화의 시간적 해체가 등장한 그 배경에 대해 깊은 탐구가 없었기 때문에 치기 어린 형식적 모방에 그치고 있다. 세계가 타란티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재키 브라운〉의 원작자인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40 Lashes〉를 영화화하고 있으며 또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다.

타란티노의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포 룸〉의 네 번째 에피소드는 그것이 선적 시간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 룸〉에서 내러티브는 비타란티노적이다.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목격했던 비선형 서사구조에서 타란티노가 벗어나 있을 때, 타란티노가 얼마나 왜소한가를 〈포 룸〉은 보여주고 있다. 짧은 시간에 세계 영화계의 제왕이 되어버린 타란티노. 인터넷에는 천 개가 넘는 타란티노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있을 정도이니, 그가 세계 영화팬들로부터 얼마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타란티노 영화미학이 단순히 형식적 파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밑바탕에는 서구 문명을 지탱해 온 기독교적 시간관을 파괴하고 비선형적 질서를 보여주는 불교적 시간관에 근접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타란티노 영화는 하나의 상징이다. 서구 문명은 막다른 벽 앞에서 동양 정신, 특히 불교 정신에서 새로운 자양분을 얻고 있는 것이다.<끝>

하재봉
중앙대학교 대학원 졸업.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1981년 문예중앙 신인상 당선(소설). 현재 한성대 겸임교수이며, 인하대에 출강하고 있다. 시집 《안개와 불》 《비디오 천국》 《발전소》, 소설집 《콜렉트 콜》 《블루스 하우스》 《쿨재즈》 《황금동굴》 《영화》, 영화평론집 《하재봉의 비디오 천국》 《하재봉의 영화 읽기》 《하재봉의 시네마 클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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