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나키즘이 불교와 닮았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평등의 이름으로,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자유의 이름으로 공격하면서 한껏 자유인의 나래를 펼쳤던 아나키즘은 1930년대 이후 사상계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아서 사라진 이데올로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아나키즘의 사상은 신선한 저항 이념과 운동으로 관심과 흥미의 대상으로 다시 거론되기 시작하였고, 80년대부터는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과 함께 아나키즘의 이론이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공산 국가의 와해에 따른 이념적인 대결 구조가 붕괴되면서 아나키즘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종래의 국가 기능에 대한 논쟁과 국경 개념의 변화 등 소위 세계화적 논의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아나키즘적 영감들과 연결되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부활 현상은 현실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사상이나 운동으로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 패러다임의 틀로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무정부주의로 알려진 일제 시대의 아나키즘 독립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나키즘 문예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환경운동, 지역 공동체운동, 협동조합적 상호부조운동 등이 아나키즘적 사유틀과 연계되어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한국 전통사상에 나타난 각종 상생(相生)사상과 아나키즘 사상과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은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관심보다는, 아나키즘적 사유의 틀과 삶의 양식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것이다.

19세기의 실패한 이데올로기로서 평가받은 아나키즘이 재생되는 원인은 오늘날 지구촌의 현상과 인간 삶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있어 이것이 많은 시사성과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데 있다 하겠다. 필자가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거의 20여 년 전이다. 그 당시만 해도 냉전 구도하에서 아나키즘은 꽤나 위험스러운 사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고,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도 조잡스러운 수준이었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또는 테러리즘적 성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었다. 그러나 아나키즘을 연구하면서 그 동안 아나키즘이 얼마나 많은 오해 속에서 논의되어 왔는가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오해는 아나키스트에게도 얼마간의 책임도 있지만……. 필자가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기묘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나키즘의 사유 양식이 불교와 많이 닮았다고 느끼는 점이다. 꼭 집어서 어디가 어떻게 닮았는지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아 왔다.

이것은 분석적인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것에 바탕을 둔 그 어떤 느낌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었고,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의 일화를 동화처럼 재미있게 들으면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필자는 지금도 지구별에 인간의 몸을 받아 와서 제일 큰 행운으로 감사하는 것이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필자가 아나키즘에 대해 불교적 체취를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아나키즘을 박사학위의 주제로 삼게 만들었으며, 미흡한 대로 우리 나라에서 아나키즘으로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불교평론〉으로부터 불교와 아나키즘의 관계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이래저래 고민하면서 시일을 미루어 왔다. 필자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드러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와 아나키즘을 과연 비교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을 맺는다. 비교함의 가치는 비교의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좌우된다. 금강산과 설악산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백두산과 우리 동네 뒷산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불교와 아나키즘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바다와 개울을 비교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다음으로 어렵게 생각했던 것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불교의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는 불교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본 적이 없다. 마냥 좋아했을 뿐이다. 좋아했기에 분석도 하지 않았다. 게으른 사람의 불교 믿는 방법인지는 몰라도 경전보다는 조사(祖師)의 화두(話頭)에 느낌을 받는 양 흉내내어 온 필자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본 글을 논문의 형식보다는 좀더 자유분방한 형식의 글로 끌어가고자 한다. 따라서 논리적인 무엇보다는 직관적인 성격의 내용도 많을 것이다. 글의 순서는 먼저 아나키즘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을 그려보고, 다음으로 불교와 닮은 요소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아나키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일반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이기에 아나키즘에 대한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이것이 불교 사상과 어떤 유사성이 있는가의 논의는 안내자의 역할로 만족하고 독자의 상상력과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

2. 아나키즘의 특성과 유형

인간은 나름대로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현실을 해석한다. 이러한 안경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결정된다. 이것은 세계관이니 인간관이니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것이 사회, 국가의 영역과 관련되어 논의될 때에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데올로기는 정치 사회적 실현을 정당화하거나 혁명과 개혁의 필요성을 합리화시키는 신념 체계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사는 사회 현실을 규정하고, 지향 가치를 제시하고, 또한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사회 구성원의 삶과 그 방향을 통합시키고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틀이 된다. 인간의 사회성을 고려할 때 인간은 이데올로기를 떠나 존재하기 어렵다. 여기에 우리들의 고뇌가 있다. 이데올로기는 칼과 같아서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만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무서운 흉기로 변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류의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이념을 창출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이념의 역기능을 극복할 수 있는 비판 의식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이다. 아나키즘을 불교의 사상과 함께 어우러져 논해 보는 것도 이런 뜻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아나키즘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은 마치 변신술에 능한 제우스의 경호신 프로테우스(Proteus)와 씨름하는 것과 비유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독선과 권위를 배제하고, 또한 완벽한 이론을 거부하면서 자유와 개인적 판단의 우위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의 자유인적 태도의 성격은 각양 각색의 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이미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적 사유 형태와 사상은 동서 고금을 통해 그 궤적을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아나키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은 18세기말 구라파의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 혁명과 볼셰비키 혁명 사이의 사상사적 불연속성의 시대에 구체화된 아나키즘은 다양한 모습과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고드윈(William Godwin), 스티르너(Max Stirner),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 바쿠닌(Mikhail Bakunin),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등 구라파 여러 나라의 열정적이고 개성이 강한 사상가들에 의해 아나키즘의 전통이 형성된 이래 아나키스트들은 ‘뒤죽박죽의 혼란된 설교자’ 또는 ‘천진난만한 꿈의 옹호자’로 비춰지기도 하였다.

반면에 이러한 아나키즘은 다양한 정치철학적 덕목들을 함께 연결시킬 수 있는 규범적 교의로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은 니힐리스트, 테러리스트, 부르주아 급진주의자로 비춰지는가 하면 자유주의자, 평등주의자, 평화주의자, 자연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아나키즘은 바다로 향하여 흐르는 강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각의 여러 구멍을 통해 스며 나오는 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의 흐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기도 하고, 지면의 갈라진 틈새로 분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교의로서 또는 운동으로서의 아나키즘은 끊임없는 변동 속에서 생성되고 붕괴된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사라지지 않고 잠복되어질 뿐이며, 계기적인 맥락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아나키(Anarchie)라는 용어는 종래에는 무질서, 혼돈의 동의어로서 이해되어 왔으나, 프루동이 이 용어를 역설적으로 채택하여 그의 사상을 표상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나키라는 용어의 어원에 근거하여 혼돈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논쟁의 혼란을 더욱 조장하는 익살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이 점에서 바쿠닌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아나키는 거대한 혼란이면서, 동시에 자유와 연대성에 기초를 둔 새롭고 안정된 합리적 질서를 표상하는 역설의 용어였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많은 신봉자들은 아나키라는 용어의 이중성과 유연성에 불만을 느꼈으며, 또한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사상으로 비쳐지고 오해를 야기할 위험의 가능성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기를 주저했다.

프루동 자신도 말년에 자신을 조심스럽게 연합주의자(Federalist)라 불렀고 그의 추종자들은 상호주의(mutuallism), 코뮨주의(communism)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19세기말에 세바스티엥 포르(Sebastien Faure)가 리베르테에르(Le Libertaire)라는 말을 신문의 명칭으로 사용한 이래 오늘날에 와서는 아나키스트란 말과 리버터리안(Libertarian)이라는 말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현대의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좀더 명료한 술어를 채용하여 애매성을 줄이려 하고 있는데 자유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 또는 자유마을주의(Libertarian communism)란 말이 쓰여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어 한동안 쓰여졌는데 이것은 일본인의 번역을 차용한 데서 비롯된다. 무정부주의로의 번역은 일제가 아나키스트를 탄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제 일본에서도 무정부주의가 아나키즘을 표상하는 용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원음을 그대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나키즘이란 원음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자유사회사상, 자유공동체주의, 자주공동체운동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제 독립투쟁기에 우당 이회영(又堂 李會永), 단재 신채호와 함께 아나키즘의 기치 아래 독립운동을 한 우관 이정규(又觀 李丁奎)는 해방 이후 ‘자유사회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아나키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최근 대구와 부산 등에서는 ‘아나키즘 연구회’를 만들어 시민운동, 환경운동, 공동체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으나 아나키즘을 한국어로 어떤 용어로 표상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를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체로 많이 쓰이는 용어가 자유공동체, 또는 자주공동체가 아닌가 느껴진다. 아나키적 입장에서 볼 때 용어를 획일적으로 통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할 것이다. 아나키즘은 이데올로기적 분광도(分光圖)에 다양하게 위치하고 있다.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상호주의적 아나키즘, 집산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대별할 수 있다. 다양한 아나키스트 유파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들이 같은 아나키스트로 불릴 수 있는 공통적 특징들이 있다.

이것은 아나키즘 정의론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① 자연론적 사회관 ② 자주인적 개인 ③ 공동체의 지향 ④ 권위에의 저항 등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아나키스트 유파간의 차이는 사회혁명의 방법과 경제조직이라는 두 개의 한정된 범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모든 유파는 만일 아나키스트의 희망이 달성되어 권위적 정치지배가 끝난다면 경제적 관계가 사회조직의 중요분야로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아나키스트의 여러 유파간의 차이는 ‘협동적 사물의 관리’가 개인의 자유와 자주성을 침해할 위험 없이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견해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분광도의 한쪽 끝에 선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금욕적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를 넘는 협동을 위험시한다.

그 협동이 개인의 자유와 자주성을 침해할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방향의 극에 선 아나르코 코뮨주의자들은 상호 연결하는 상호 부조제도의 광범위한 연결 조직을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보호수단으로 구상하고 있다. 알란 리터(Alan Ritter)는 아나키즘의 목표를 ‘공동체적 개체성(Commual Individuality)’으로 단일 명제화하고 이를 추구하려는 아나키스트들의 계획들을 분석하면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와는 다른 아나키즘 나름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자주적 개인과 공동체를 결합시키는 구도는 그것이 실천 프로그램으로 화할 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난하면서 자유주의로 남아 있길 원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면서 사회주의자로 남아 있길 원한다. 그래서 아나키즘 속에서 환상이 가득 찬 사회인식의 풍요한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리라.

3. 아나키즘과 불교의 유사성

1) 무집착의 논리

아나키즘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아나키즘이 논리의 벽을 뛰어 넘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논리 자체를 파괴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특성은 서양 문명이 창출한 근대의 이념적 특징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근대 서양 문명의 기조는 ‘과학’과 ‘이성’이라는 두 기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을 대체하는 또 다른 신으로서 과학이 등장하였고 이것은 인간이 이성이라는 그 무엇을 가졌다는 자신감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과학과 이성에 바탕을 둔 사유는 합리성이란 것을 강조하게 되고 이것은 동시에 논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불란서 혁명의 와중에서 생성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도 idea와 logic의 합성어로 ‘관념의 과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과학과 논리의 틀로 무장시킨 대표적인 이념으로 우리는 마르크시즘을 들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이 논리를 의식적으로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논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아나키스트들이 그들의 사상을 표상하는 용어로 아나키(anarchie)를 선택한 것도 논리에 도전한 것으로 필자는 느끼고 있다. 그 당시 아나키란 용어는 반대자를 비난하기 위한 언어였고 또한 욕설이었다.

불란서 혁명 당시 아나키는 “법률은 실시되지 않고, 권위는 무너지고 경멸당하고, 범죄는 처벌되지 않고, 재산은 약탈당하고, 개인의 안전은 침해되고, 국민의 도덕은 타락되고, 헌법도 정부도 없고 정의도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나키란 말은 무질서, 혼돈, 혼란의 동의어로서 경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역설의 인물이요, 모순의 선동자임을 자부하는 프루동이 《재산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이 아나키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의 사상을 표상하는 용어로 맨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아나키란 용어를 혼란과는 전혀 반대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혼란을 조성한 책임은 권위적인 통치기구에 있으며, 통치하는 기관이 없는 사회만이 자연스러운 질서와 사회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프루동은 아나키란 용어의 이중성을 통해 논쟁의 허구성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점에서 러시아의 아나키스트인 바쿠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 용어의 두 가지 정반대의 의미를 사용하는 데서 야기되는 혼동을 희롱하는 심술궂은 쾌락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근대적 아나키즘의 창시자들은 용어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용어는 결코 현실 그 자체가 아니고 현실을 추상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현실 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언어적 상징이다. 이러한 언어적 상징과 현실 자체를 혼동하면 이데올로기는 절대적 가치로 등장하여 인간을 질식시킬 것이다. 언어적 상징은 거의가 논리라는 틀로 무장되어 등장한다.

논리는 어디까지나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떤 것이 논리적이면 참이고, 비논리적이면 거짓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상 비논리적인 것이 참으로 밝혀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세련되게 대변한 아나키스트 학자가 있다. 파이아벤트(Paul Feyerbend)는 그의 저서 《방법론의 도전》에서 기존의 과학 방법론이 지니고 있는 권위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그의 반론을 한번 들어보자 “과학이 고정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진행될 수 있고 또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이 현실적이지 못한 이유는 인간의 재능과 발전을 진작시키고 야기시키는 환경에 대해서 지나치게 단순한 견해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그 규칙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규칙의 타당성에도 반대한다. 모든 방법론은 그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지지될 수 있는 유일한 규칙은 ‘어떻게 해도 좋다’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좋다’라는 표현은 얼마나 아나키적인 표현인가? 파이아벤트의 이러한 주장은 결코 부정을 위한 부정의 논리가 아니다. 그는 “자유를 증대하고 충족된 삶과 보람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옹호하고 또한 “전인적으로 발전된 인간을 길러내고 또 길러낼 수 있는 개성의 함양”을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가 과학을 제도화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태도와 일치될 수 없다. 또한 그는 자유 사회의 성숙한 시민은 “스스로 결정하면서, 그에게 가장 맞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좋아하도록 결정되어진 그러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파이아벤트의 과학과 논리에 대한 저항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 그리고 주체성의 확보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아나키스트들의 태도는 그들을 직관적 신비주의(Gnosticism)의 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게 하는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직관적 신비주의는 궁극적인 실재와 전체적인 의미와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낭만적 절대주의와 상통하기도 할 것이다. 낭만적 절대주의가 예술운동으로 표현된 것이 다다이즘(Dadaism)인데 여기서 아나키즘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다이즘은 1916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운동으로서 예술을 모든 제약과 합리성과 형식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예술가의 운동이다. 다다주의자들은 “진실한 다다는 다다에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다’라는 용어는 어린애의 옹알이를 의성화시킨 용어이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예술 분야에서 자유와 해방의 몸짓을 한껏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과학으로 표상되는 합리성과 논리 그리고 언어의 의미에 도전하는 아나키스트의 태도를 보면서 불교의 사상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노자의 사상과 아나키즘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많은 식자들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불교와의 유사성에 비중을 더 두고 싶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으며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두려움도 앞선다. 마치 화두를 언어로 풀어 해석하여 오히려 화두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나키즘이 불교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 원인은 순수 직관의 지혜를 강조하는 반야의 사상, 불립문자적(不立文字的)인 선불교의 특성 등이 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세계는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진리의 세계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일체의 차별상을 없애는 것이 반야(般若)의 실체이다. 논리에 집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분별적인 이해는 결국 상대적인 입장을 면하기 어렵고 결국 우리는 무명의 세계에서 언어의 장난에 춤추게 될 것이다. 필자는 아나키즘의 사상속에서 반야의 절대공(絶對空)의 체취를 맡고 있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이 논리보다는 실천을 통해 자기수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반야의 실천성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은 필자의 아전인수인가?

2) 권위에의 저항과 자아의 구현

한 사상의 특징은 그 사상이 지니는 기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아나키즘에 있어서는 어떤 사상체계보다도 이것이 지니는 저항적인 기질로 인해 줄곧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 생명력도 이 저항적 기질에 기인되고 있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앞에서 논한 아나키즘의 무집착의 논리적 성향도 이러한 기질을 뒷받침하는 방편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아나키즘의 정의관에는 본능적인 저항감이 깔려 있다.

세바스티엥 포르(S. Paure)는 “권위를 부정하고 그것과 싸우는 자는 누구나 아나키스트다.”라고 말한다. 포르의 이 말은 아나키즘에 많은 혼동을 야기하고 있으나 아나키즘이 존재할 영역만은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 아나키스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을 반항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일체의 신성한 것에 대하여 속박되지 않고 무수한 우상을 파괴한다. 이것은 아나키스트의 개인의 자율성과 자주성의 강조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 아나키스트들은 그 자신보다 우월한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강제적 규율과 권위에 저항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통치기구와 교회에 대한 혐오감이다. 통치기구와 국가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공포와 의구심은 그들의 문헌에 빠짐없이 발견된다.

아나키스트들의 통치기구에 대한 혐오감은 그들의 국가관으로 연결된다. 왈터(N. Walter)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스스로 지켜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국가는 위험스럽다.”고 말한다. 국가는 주권 기관이며 강제적 기관이며 또한 독점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체제의 특징으로 인해 국가는 강제적이고 처벌적이며, 또한 착취적이고 파괴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이 현대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비권력적 기능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능을 국가에게만 적합하다는 데에는 반대한다.

지면상 여기서는 상론할 수 없지만 오늘날 많이 거론되는 시민사회론은 아나키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이것은 참여민주주의 이론과 신사회 운동과 연계되어 아나키즘의 부활로 평가되기도 한다. 19세기의 아나키스트들은 통치기구에 대한 비난만큼이나 교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면서 “진정한 사회 해방의 제일 선결조건은 국가와 교회의 폐지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와 세속적 지배자 양측에 대한 복종과 공손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권신수설에 가장 분명히 나타나듯이 세속적 지배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 종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아나키스트들이 종교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매우 영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자기 발전의 무제한적 가능성, 그리고 인간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통합시키는 유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여러 종교의 아나키즘적 요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이에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상기한 바와 같이 아나키스트들은 기존의 굴레를 깨면서 개인의 자주성과 자아 구현을 위한 몸짓이 매우 격정적이다. 필자가 이러한 내용 속에서 불교와의 유사성을 느낀다는 것은 필자가 불교를 이해하는 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나키즘의 사상 안에서 필자는 해탈의 맛을 느낀다. 불교의 해탈과 아나키즘의 그것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바닷물의 짠맛과 간장 종기 속의 짠맛을 비교하는 것과 같겠지만 그래도 동질감을 느낀다.

또한 필자는 불교가 지구상의 종교 중에서 제일 저항적인 종교이며, 제일 권위를 싫어하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석가재세의 여러 사례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기까지의 선교의 역사와 한국불교의 행간속에서 불교가 권위에 대해 얼마나 저항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임제 선사나 마조 선사의 일화속에서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스스로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불조(佛祖)를 죽여야 한다. 참으로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은 불교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3) 자연론적 세계관과 생태주의

서구가 생성시킨 근대 이념 중 아나키즘이 제일 환경친화적 성격을 지녔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현대의 아나키스트들이 환경문제에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에코 아나키즘(Eco-Anarchism)이란 명칭으로 한 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나키즘의 환경친화적 성격은 아나키즘의 사회인식체계의 근원인 자연론적 세계관에서 연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자연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자연과 사회적 조화 속에서 살 수 있기 위한 모든 성질을 타고나면서부터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로비치(Irving L. Horowitz)는 아나키즘이 자연이라는 아이디어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아나키스트들은 ‘자연’이라는 아이디어에 강박당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연개념은 거의 모든 주도적인 이론가들의 저작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개념은 아나키즘의 교의, 즉 권위의 거부, 강제적 통치기구에 대한 혐오, 상호부조, 소박성, 조직의 분산화, 정치에의 직접참여 등의 원천이다.

현대의 생태환경론자에 제일 많은 영감을 준 고전적 아나키스트는 크로포트컨이라 할 수 있겠다. 크로포트컨은 1899년 그의 저서 《농장·공장·직장(Fields. Factories and Workshops)》에서 생태론적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델은 꽤나 루소적이다. 이것은 아나키스트들의 테크놀로지에 관한 양가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근대산업이 발달하면서 테크놀로지가 공동체의 사회적, 심리적 전제조건을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대개의 아나키스트들은 산업화 기계화로 인한 직업의 단편화와 불평등, 구성원의 공동체적 개성의 손상 등을 테크놀로지가 미칠 부정적 영향으로 거론하고 있다. 또한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심리적 악영향뿐만 아니라 그것의 정치적 효과도 염려하였다. 바쿠닌은 테크놀로지가 더욱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렵게 되고 동시에 기술관리자들이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얻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모든 체제 가운데서 가장 귀족적이고 전제적이며 오만하고 남을 잘 경멸하는 체제인 과학적 지성의 지배가 사회를 위협할 것이다. 전문가라는 새로운 계급, 새로운 위계제도가 생겨날 것이다. 세계는 과학으로 지배하는 소수와 무지해진 다수로 분리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결코 기계파괴주의자(Luddites)는 아니다. 아나키스트들이 권위주의적 제도나 조직에 대하여 엄청나게 비난할 것과 비교해 볼 때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난은 상대적이다. 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규제할 수 없는 테크놀로지이다.

적절히 통제된 테크놀로지는 성장하는 희망의 원천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은 테크놀로지를 통제하고 이용하여 좋은 하인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계획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와 자본주의자를 막론하고 19세기의 테크놀로지 숭배자들은 테크놀로지의 무제한적인 성장을 믿었다. 반면에 아나키스트들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경우에만 테크놀로지를 선택했다.

산업 테크놀로지의 기계적인 면을 이용하는 반면 조직화된 측면은 거부함으로써 아나키스트들은 당시 낙관적인 테크놀로지의 미래에 대해 우려의 전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태도는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우주론적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기계가 저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자연이라는 용어에 대해 고향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것이 명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선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이라는 용어는 서술과 평가라는 두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자연은 ‘사물이 현재하는 상태’와 ‘사물이 마땅히 지향할 바’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아나키즘의 자연친화력은 우리에게 《윌든(Walden)》이란 소설로 잘 알려진 아나키스트 헨리 소로(Henry David Thoreau)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신을 자연과 동일시할 수 있고 강줄기가 인도하는 대로 맡겨둘 용의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창조적인 무위성 내지 자율성은 인간의 정신적인 안녕, 건강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또한 그에게 있어 여타의 사회적 경험과는 달리 자연을 접함으로써 얻어지는 경험은 창조적 상상력에 촉진제의 역할을 하는 것에 못지 않게 도덕적 의지의 형성을 위한 단련과 수양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로는 인간과 자연의 친교와 합일은 인간과의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나키스트들의 경우, 직접행동의 요구 내지 참여에의 요구도 그 근저에는 호로비츠의 어구를 빌자면 ‘무위, 자율의 심리적인 제 가치에 대한 주장 내지 고집이 깔려 있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인식, 즉 자연의 유일성·화합성·자율성이 아나키스트로 하여금 개인의 자유와 질서정연한 사회생활과의 조화 내지 통일을 믿게 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자연론적 인식체계는 현대 아나키스트들이 생태론적인 환경운동에 앞장서게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현대의 많은 환경론자들은 스스로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아나키즘적 사유의 틀과 유사하다.

칼렌바흐(E. Callenbach)나 슈마허(E. Schmacher)가 제시한 에코토피아(Ecotopia)의 그림들도 아나키즘이 제시한 공동체의 모습과 유사하다. 특히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고 주장한 슈마허가 《A Guide for the Perplexed》라는 저서에서 통일(Unit)과 획일(Uniformity)을 서로 반대축으로 설정하고, 통일은 천당으로 가는 길이고 획일은 지옥으로 가는 길로 표현하면서 제시하는 사회상은 아나키즘의 자연친화적 공동체상과 궤도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 서양사상이 인간 중심적(homocentric)이며 기계론적·원자론적 자연관의 성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것이 현대의 기술 모방적 문화(technomorphic culture)의 근원으로 지적받고 있다. 또한 이것이 오늘의 환경문제를 야기한 원인으로 거론됨을 감안할 때 아나키즘은 근대 서양사상의 이탈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자연론적 세계관과 생태주의적 성격은 동양적 체취가 물씬하게 풍긴다. 동양의 세계관, 자연관은 직관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동양적 자연관이 옮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특히 불교의 자연관과 우주관이 현대를 사는 인간 삶의 양식에 주는 의미는 매우 예언적이다. 불교는 모든 실상이 무상하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삼라만상은 생겼다 사라지며 유전하고 변화하는 것이 우주와 생명의 근원적인 모습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번뇌는 움직이고 변하는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정된 현상과 관념에 집착하는 데서 생기는 것으로 본다. 불교가 주객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을 분별지(分別知)라 하여 이것을 배척하고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中道)의 논리를 내세워 주객의 통일의 경지를 나타내는 무분별지를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불교의 전일적(全一的) 우주관, 우주론적 자연관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화엄의 생명철학이 모든 생명의 연계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모든 생명이 서로 인연을 맺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우주의 대생명을 조직하고 있는 모습을 화엄경에선 제망무애(帝網無碍)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우주의 생명은 개인 생명의 망매듭과 같이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지 말고 책임을 지는 것을 자기 인격의 확충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전일적 세계관, 우주론적 자연관이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근래에 서구에서도 이러한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 레오폴드(Aldo Leopold)는 ‘대지의 윤리’를 주장한다.

이는 ‘도덕 공동체의 확장’이라는 의미로 종래의 인간 중심의 윤리를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게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지구를 살리는 환경 윤리의 정립에 불교가 주는 의미는 참으로 심대하다.

4.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아나키즘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불교와 어떻게 닮았는가를 그려보았다. 글을 쓰면서 아나키즘에 대한 안내를 하는 부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이것은 아나키즘은 일반인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또한 많은 오해를 받는 이념이기도 하고 또한 불교에 대해 필자가 가지는 경외심 때문이다. 불교를 글로 풀어쓰기에는 왠지 두렵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나키즘을 연구하면서 불교사상이 현세적인 정치 이념으로 현신한다면 상당 부분이 아나키즘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곤 했다.

이 글은 이러한 느낌을 정리해 본 것이다. 오늘날 아나키즘은 유토피아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의 특성과 관련하여 아나키즘적 사유의 틀은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나키즘의 존재 여부를 인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아나키즘적 사유의 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정치 이념으로서 아나키즘은 해체되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서부터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역에서 아나키즘적 사유의 틀을 차용해 갔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아나키즘은 정치이념이라기보다는 생활양식과 사회운동적 차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하겠다. 기실 아나키즘은 생성시부터 가장 비정치적인 이념으로 평가되어 왔다.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사명에 대해 진지한 탐구가 필요한 시기에 아나키즘의 재등장은 불교의 사회운동 방향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본다. 불교의 사상이 단지 개인의 깨달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깨우치고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채찍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구촌은 지금 새로운 미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방영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및 서울대 대학원 졸업. 교육학 박사. 현재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 논저로 《한국인의 윤리의식 연구》《 민족과 자유의 이념》 《아나키즘의 정의관에 관한 연구》《환경문제의 가치론적 접근》 《남북한 사회·문화 공동체 형성 방안》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