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부천대 교수

1. 구술사란 무엇인가

구술사(oral history)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있는 내용을 구술로 재현, 증언하고 그 구술자료를 해석하여 역사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계에서는 생소한 말이지만, 역사학과 인류학에서는 구술사라는 분야가 개척되고, 그에 연관된 연구 업적이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되고 있다.

불교학에서는 경, 율, 론 이른바 삼장을 기본 텍스트로 부처의 사상과 생애를 그려내고, 나아가서는 불교의 교리, 사상,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삼장 이외에도 다양한 문헌을 통하여 불교의 사상과 역사는 정리, 분석, 재해석되고 있으며, 그 관련 문헌을 지속하여 발굴하였다.

요컨대 불교학의 경우에도 문헌에 의거한 연구 작업이 주종을 이루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불교(원시불교) 시대의 불교사의 경우 기억, 증언, 여시아문적인 회고 등의 구술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지금 우리들이 논의하고 있는 구술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요컨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여시아문의 전승은 단순히 전승에서 머물렀고, 그 전승에 기초하여 부처의 사상과 행적을 담은 불경이 결집되었다. 요컨대 현재 구술사 분야에서 논의하고 있는 구술과 청취를 통한 해석, 평가, 의미 부여와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역사학의 일반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근대 역사학의 발달에는 문헌고증학과 실증주의적 사관의 이론이 깔려 있었다. 특히 한국 근대, 현대사학에서는 이러한 성격은 더욱 지배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문헌고증, 실증주의적인 접근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측면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헌기록은 그 수량이나, 포괄하는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문헌자료의 발굴과 함께 그 제한된 문헌자료를 놓고 재해석을 하거나, 다양한 관점을 갖고 문헌의 이면 및 본질에 담겨진 역사의 진실을 캐려는 노력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학과 여타 학문이 기본적으로 문헌에 의지하여 역사와 자료를 해석하다보니, 여러 가지의 문제와 모순이 제기되었다. 즉 문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광신적인 믿음, 문헌을 생산하고 소유하는 계층의 주관성, 문헌에서 배제되고 문헌기록을 생산할수 없는 계층의 문제 등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요약하면 곧 역사는 지배자의 이론이자 해석이라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배자는 국가, 지배계급, 승자, 남성, 제국주의, 정치 중심적인 인식, 우익 중심, 반공 이데올로기 등을 말한다. 이 지배적인 인식의 반발, 저항에는 민중중심적인 역사 해석이 개입되었던 면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구술사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문헌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려는 차원에서 간혹 ‘증언’이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 반발이라는 흐름과 무관한 경우이다. 즉 구술사를 의식치 않으면서도 구술사 작업을 한 경우이다. 이는 구술사의 적극적인 도입, 강조는 아니었다. 다시말하자면 ‘알게 모르게’ 구술사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구술사의 영역을 개척하고, 지배적인 문헌역사를 비판하며, 구술에 의한 역사를 창조하려는 일단의 집단(흐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략 저항적인, 피해를 입은, 아래에 위치한, 기존 역사해석에 불만을 갖은, 배제된 역사를 복원하려는 부류들이었다.

물론 이들의 명분은 역사의 창조, 다양한 자료의 동원, 인간 삶의 픙성함의 강조 등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주류적이고 정통적인 역사 해석을 부정하는 의식 짙게 배어 있었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보조적인 증언 차원에서, 이제는 적극적인 구술사 차원으로 구술을 이용한 학문의 영역이 확대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구술사를 인식하고, 적극 지지하여, 새로운 역사를 복원시키려는 흐름들이 정부 유관기관, 단체, 지방자치제 하의 도시까지 파급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구술이 갖고 있는 한계, 특성으로 인하여 구술사는 다양한 측면에서 난관, 유의할 대상, 활용의 어려움이라는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러한 모순과 지뢰를 무사히 넘지 않고서는 구술사 지평 확대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구술사 영역은 구술이 갖고 있는 문제, 그리고 그 구술자료를 만드는 작업, 나아가서는 그 자료를 이용하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를 만드는 해석의 작업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이 문제를 대별하여 그들의 내적인 속성을 살펴보자

우선 구술에 대하여 살펴 보면, 구술은 구술하는 분위기, 환경, 감정 등등에 의해서 큰 편차를 갖는다. 그리고 구술은 이야기 하는 구술자와 이야기를 유도하고 대담에 참여한 청취자(연구자, 해석자) 간의 의사소통이라는 공간적인 한계를 갖는다. 요컨대 대담하는 날의 분위기, 대담자의 기분, 청취자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대화를 진행하고, 구술자의 기억을 되살리는 청취자의 지식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성격은 곧 구술의 개인성, 주관성, 자의성 등을 말한다.

이 점이 구술사의 특성이자, 한계인 것이다. 구술자의 기억과 경험에 의지하여 역사를 회고할 경우에 자기 중심적인 회고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담자의 기억이 분명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내용과 대상도 있을 수 있고, 그가 틀린 기억, 오류로 입력된 내용을 정확한 사실로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구술사의 이론가들은 구술의 주관성과 개인성으로 개념화 한다.

다음으로는 위에서 제기한 구술의 특성으로 인하여 그 구술사 자료 제작 및 재편집의 어려움이 있다. 대담자와 청취자간의 신뢰, 청취자의 전문 지식, 숙련된 대화의 진행 요령, 대화의 녹음과 보존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때문에 구술사는 대담자와 청취자 간의 공동작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그 대화는 1회에 그칠 것인가, 몇 차례를 행하는 것이 좋은가. 혹은 추가의 배석자가 있어야 좋은가, 청취자의 역할은 어느 선에서 머물러야 하는가 등등 이 분야에서도 제기할 내용이 적지 않다. 대담할 시에 준비할 대상과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대담 내용(구술자와 청취자간의 대화)을 어떻게 정리하고, 기록물로 남길 것인가? 녹음과 비디오의 상태로 보관은 해야 하겠지만, 그 자료를 갖고 일정한 작업을 하여 어떠한 문헌 기록을 만들어 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어떤 대상, 내용이라 하여도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로, 1차적인 산물을 그대로 역사기록으로서의 산물로 인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른바 편집, 청취자 혹은 연구자들의 개입의 한계, 총 연출자의 의도, 역사기록을 만드는 주체의 의도 등에 관한 내용이다. 요컨대 구술한 기초자료를 어떤 선에서 작업을 하고, 그를 분류하여 보관하고, 그를 2차적인 구술자료로 만드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구전, 구술 증언, 구술 생애사 등으로 나뉘어 볼수도 있다.

그 다음에 검토할 측면은 생산, 보존, 편집된 구술자료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만들기 문제이다. 요컨대 구술, 구술자료를 갖고 각 학문 분야에서 어떠한 접근 자세로 학문의 대상, 자료, 기준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내용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구술자와 청취자의 구술과 의견은 구분되어야 하고, 대담자의 구술에 있어서도 그 구술이 자신의 경험인지 아니면 타자의 증언인지를 구분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활용에 있어서 1차 자료로 과감이 쓸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조 자료로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각주의 참고 정도로만 이용하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문헌의 기록과 구술의 기록을 대등하게 처리할수 있는 것인지도 자못 어려운 과제이다. 나아가서는 총괄적으로 구술을 갖고 단독적인 저술을 하였을 경우, 그 저술이 갖고 있는 메시지와 기존 문헌중심 역사에서 말하는 메시지와의 상충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어려운 과제이다.

지금까지는 역사해석에 있어서 구술은 주로 ‘증언청취’ 차원에서 이용되었다. 우리는 이따금 논문의 각주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내용을 필자가 증언청취하였다는 문맥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녹취 중심’의 활용이 있었다. 이는 논문(글쓰기) 서술에서 구술자의 구술을 대폭 인용하거나, 심지어는 본문의 인용문으로 등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문헌 중심의 자료와 대등하게 그 자료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술, 구술자료를 갖고 ‘공동연구’ 수준의 활용은 미진하였다. 공동연구라 함은 구술의 청취, 청취과정, 구술자의 분석, 그 구술자료의 분석, 그 관련 분야의 주류적인 역사 해석의 수정과 보완 등에 이르는 종합적인 연구를 말한다. 이런 연구는 추후 접근, 확대될 것은 자명하다. 다만 그에 대비하여 다양한 이론 분석과 문제점을 사전에 정비해야 할 것이다.

지금껏 구술사가 갖고 있는 문제, 특성 등을 대별하여 살펴 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구술사 작업을 불교계 보다 먼저 수행한 타 학문, 특히 역사학 분야의 주요 성과에서 일부 사례만을 제시하겠다.

구술자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은 이른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다. 협의회는 군위안부 대상자들의 관련 기록이 부재한 것을 타개하기 위한 차원에서 몇 차례의 증언집을 발간하였다. 최근에는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구술사 저작을 발간하였다. 이 저작은 현재 4권까지 출간되었다.

협의회는 그 산하에 증언팀을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군위안부 출신자들의 구술을 녹취, 정리하였다. 협의회는 이 구술사를 통하여 위안부의 진실을 추구하고, 그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당사자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삶을 살려내고 있다. 이로써 일제 만행, 피해, 과거 청산 연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다음으로 구술사의 영역을 독립운동, 이데올로기에 왜곡된 근현대사의 분야까지 확대한 연구집단은 한국역사연구회이었다. 역사연구회는 그 산하에 현대사 증언반을 구성하여 현대사의 왜곡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역사의 극복, 왜곡된 역사를 복원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증언을 통해 역사의 복원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로 현대사증언록 1집, 󰡔끝나지 않은 여정󰡕(대동, 1996)이라는 제목의 저작을 내놓았다. 이는 일제하, 해방공간에서 활동하였던 ‘장기수’들의 구술을 통하여 새로운 분야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 장기수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빨갱이’라고 지칭된 부류로서, 역사의 무대에서 배척당하였던 그들의 고뇌, 활동, 성격을 그려냈던 것이다.

역사연구회와 유사한 작업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도 시도되었다. 정신문화연구원 내의 한민족연구소에서 펴낸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선인, 2001)은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로 이끌어 냈다. 그들은 다양한 경력을 소유한 8명의 대상자들인데, 그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활동하였지만 지금껏 역사의 보조자, 숨겨진 인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역사의 주연으로 전환시키고, 해방공간의 이해를 진전시켰던 것이다. 물론 이 작업에서도 문헌자료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대안과 고뇌가 있었다. 정신문화연구원의 작업과 유사한 시도는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그 성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는 독립운동에 관련된 회고, 증언, 이면사를 청취하려는 방향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에서는 󰡔주민생애사를 통해본 20세기 서울현대사󰡕(서울학연구소, 2000)를 간행하였다. 이는 구술사의 개인생애사와 마을 단위의 역사를 접목시키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또한 수원시에서도 수원 근, 현대사의 주역, 조역 등 그 관련 인물들에 대한 삶에 대한 구술을 녹취하여 현재 2권의 󰡔수원 근현대 증언자료집󰡕의 성과물을 발간하였다.

구술사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움직임은 근현대 역사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시도되고 있다. 충남대 교수인 박찬승은 <한국전쟁과 진도 동족마을 세등리의 비극>(󰡔역사와 현실󰡕 38호, 2000)이라는 논고에서, 서울대 강사인 이용기는 <마을에서의 한국전쟁 경험과 그 기억>(󰡔역사문제연구󰡕 6호, 2001)이라는 논고에서 구술사를 도입하였다. 또한 이향규가 펴낸 󰡔나는 조선공산당원이오!󰡕(선인, 2001)는 2000년에 북송된 장기수 김석형의 삶을 구술사의 방법을 이용하여 재구성한 저작이다.

그리고 인류학 분야에서는 참여관찰, 심층면접이라는 독특한 구술사 방법을 이용하여 그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이 같은 현황을 고려하면 구술사의 영역은 확대되며, 그에 연관된 이론화 작업도 다양화될 것이다.

2. 근현대 불교의 복원, 자료와 서술

한국 근현대 불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불교계 내외에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불과 10여전이다. 이 무렵에 선우도량이 창립(1990.11.14)하면서 조계종단의 정체성 정비 차원의 일환으로 불교정화운동을 정리, 연구하기 위한 한국불교근현대사연구회가 등장하였다.

이는 불교현대사를 본격적으로 정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로부터 선우도량은 자료수집에 착수하고 그 결과물을 학계 및 불교계에 상재하였다. 그리고 친일불교의 문제를 공론화 한 󰡔친일불교론󰡕이 임혜봉에 의해 민족사에서 발간된 것이 1993년이었다. 그리고 발제자도 위의 흐름에 영향과 충격을 받고 1993년부터 이 시기 불교사를 연구하였으며, 그 성과물을 정리한 󰡔한국근대불교사연구󰡕를 민족사에서 발간한 것은 1996년이었다.

그 밖에도 세부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근현대 불교의 연구가 활성화함은 대략 최근 10여년 이내의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각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지닌 연구자가 속출하였고, 그에 따라서 그 성과물도 축적되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왕성해지면서 부수적으로 그 관련자료를 수집, 정리, 간행하려는 성과도 뒤따르게 되었다. 예컨대 󰡔한국근현대불교자료 전집󰡕(민족사, 79권)과 󰡔대한불교󰡕(민족사․불교신문사, 9권)의 영인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료수집과 서술․연구는 불가분의 동전 앞뒤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하에서 불교계에서는 즉 근현대불교를 정립하려는 차원에서 다각적인 자료수집을 전개하면서 자연 구술, 증언을 주목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를 주목할수 있다. 첫째, 근현대 불교의 주역인 승려들의 행태가 운수납자였기에 그 관련자료는 문헌으로 남긴 것이 거의 없었다. 이에 자연 그 보충 작업 차원으로 증언이 활용되었다. 둘째, 파란만장한 불교사의 영욕으로 사찰, 총무원, 단체에서 자료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였고 그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전무하였다. 셋째, 종단, 단체, 사찰 등지에서 이른바 ‘큰스님 만들기’ 차원에서 증언, 회고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이는 일정 부문 선어록을 중요시하는 것과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불교계에서 구술을 청취하고 그를 사료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는 삼보학회가 1965~69년에 추진한 󰡔한국불교최근백년사󰡕 편찬 작업시에 간헐적으로 시도되었다. 당시 그 실무자인 정광호, 서경수, 박성배, 안진오 등은 당시 승려들의 증언을 요약, 정리하여 그 요지를 ‘백년사’의 각 분야에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구술을 활용한 두 번째 사례는 박경훈에 의해 시도된 󰡔불교근세백년󰡕이었다.

이 저술의 집필은 박경훈이었지만 그 공동저자는 강석주이었다. 이는 1979년 경(?) 중앙일보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란에 게재할 대상자로 석주스님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된에서 나온 것이다.

요컨대 그 란의 실제 집필자는 박경훈이었고, 석주스님은 당신의 인생의 회고 대신에 근대 불교사의 正史의 입장에서 연재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 박경훈은 문헌 기록으로 글의 줄기를 잡고 세부적인 내용 등은 강석주의 증언에 의지하였던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회고, 증언, 구술 등이 은연중, 자연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들이 광범위하게, 다양한 분야 특히 신문에서 이용되었지만 그에 대한 객관화 작업은 보이지 않았다. 즉 ‘구술사’ 혹은 ‘증언사’라는 학문적인 심화, 검토는 부재하였다.

 아니 그보다는 전연 그를 의식치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 회고 및 증언을 갖고 그에 유관한 내용의 엄격한 서술은 거의 시도치 못하였다. 문제는 객관화, 학문화는 고사하고 그 작업의 이면에는 ‘큰스님 만들기’와 그를 통한 주체측의 몰역사의식이 개재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상업성, 독단성, 신화성이 개재되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들에서 회고, 증언은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한 진지한 검토나 검증은 부재하였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이 활용은 무작위로, 진행되었지만 그는 학문의 영역 밖이었다. 역사학, 인류학, 여성학 분야에서는 구술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인 검증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불교계의 구술사 도입, 응용, 성찰 작업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이 분야에 관련하여 느낀 점은 증언이나 회고가 그 당시 배경, 진실, 사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근거, 실례가 필요하다. 불교사의 자료, 연구가 황무지 같은 지경하에서는 더욱 신선한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정리는 없었다.

3. 선우도량의 성과물과 구술사

선우도량, 한국불교근현대사연구회는 자료집 성격의 󰡔22인의 증언을 통해 본 근현대불교사󰡕를 출간하고(2002.4.23) 그 기념행사를 갖었다. 이 출간은 불교계 내에서는 뜻 깊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불교계 내외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여기에서는 그 출간서적의 내용과 성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구술사라는 시각에서 그 성격을 도출하고자 한다. 발제자도 그 작업에 일정 부분 참여하였고, 그 진행과정을 지켜본 당사자였기에 그 지적은 적지 않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분석과 지적은 무원칙하게 개진하고자 한다.

첫째. ‘증언을 통해 본 근현대 불교사’라는 주제상으로 광의적인 성격이 우선 두드러진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1부 ;불교와 함께 한 세기를 살아오다 2부 ;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3부 ; 내가 겪은 종단 정화 등이다. 즉 책의 제목과 주제상에서 구술사의 특성인 미시사, 생활사, 새로운 대상 주제의 발굴이라는 취지가 미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자면 증언을 통해서 근․현대불교사를 보아야만 하는 가에 대한 검토, 설명이 미약하다.

둘째, 인터뷰 대상으로 정한 인물(승려, 재가자 등)의 균형성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종단정화(불교정화)라는 면에서 그는 가장 두드러진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조계종, 태고종)를 인정하드라도 균형이라는 면에서는 한계가 나온다. 즉 조계종단내부에서도 더욱 다양한 대상을 발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윤월하, 이법홍, 이범행과 같은 인물이 제외된 것은 납득이 안된다. 즉 대상자 선정의 원칙과 기준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셋째, 구술하는 주체 즉 선우도량 내부의 한국불교근현대사연구회의 역량에 대한 문제이다. 불교계 내부의 몰역사성 즉 역사를 홀대하는 집단 내부에서 다양한 성과물을 내놓은 것은 큰 평가를 해주어야 하겠지만 선우도량 내부의 학문적 축적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즉 전문 학자, 연구자 등과 효율적인 연계, 유대 조직화가 있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충분한 예산 지원이라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넷째, 선우도량내에서 이 저술을 만들어 낸 실무팀의 역량은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실무자들의 공로는 인정할수 있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그 실무자의 한계, 성격, 능력, 취향 등이 결과적으로는 이 성과물의 성격을 좌우할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는 인터뷰 대상자 선정, 비사, 특성 등을 사전 인지함에도 제기된다. 그리고 인터뷰 성과물의 간행시에도 전문가의 지적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물을 갖고 어떻게 연구, 저술에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간단한 것은 아니다.

다섯째, 이 저술에는 다양한 인물이 협조, 동원, 참여하에 인터뷰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알기로 인터뷰 작업은 철저한 사전 준비, 그 문헌 조사, 다양한 경험, 임기응변의 대응 등이 종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우도량 작업에 참여한 대상자들이 적임자였는가에 대해서는 냉철한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섯째, 이 책은 그 대상자의 약력, 보충 각주, 사진, 년표 등을 게재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독서에 유용한 자료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자에 따라서는 그 균형이 어긋나고, 더욱 그 보충 자료를 추가할 필요성도 있다. 문제는 이 책의 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겠지만 말이다. 그 자료도 문건, 선언서, 관련 주장, 약간의 해설 등도 검토할 수 있다.

지금껏 제기한 바와 같이 선우도량의 성과물은 다양하고, 중요한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위에서 분석한 분야에 대한 아쉬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이 저작물의 의의, 특성적인 것을 대별하여 제시하겠다.

첫째, 불교계의 구술사의 최초성을 갖는 것이다. 불교계에서 증언, 회고를 녹취하여 역사의 증언을 남기자는 주장은 벌써 40여년이나 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저술을 우리는 접하지 못하였다. 동시에 우리는 이 책자는 구술사의 1차 단계인 자료집이지, 최종단계의 구술사 혹은 불교사가 아님을 분명 인식해야 한다.
둘째, 구술사의 영역은 무궁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22인의 대상으로 한권의 책을 간행하였지만 다양한 시각, 분야에서 구술사의 대상은 심화될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사지, 회고록, 문집 등에서 구술사의 도입은 이미 시작되었다.

셋째, 선우도량에서 녹취, 정리하여 간행한 본 저술의 내용에는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다수 제기되어 있다. 이런 점은 예의 분석하여, 그 주변 자료들과 대조하면서 역사의 자료로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4. 불교계 구술사의 재정립을 위하여

필자는 이 근현대 불교를 대상 분야로 하여 자료수집, 분석, 연구, 간행을 해 왔다. 그리하면서 누구보다도 증언, 인터뷰, 채록 작업을 다양하게 추진하였다.

최근에는 구술의 자료를 논문 서술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발제자는 선우도량의 작업을 누구보다도 격려,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선우도량이 뿌린 그 씨앗을 가꾸고 그 열매를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 준비, 꾸준한 추진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본장에서는 구술사의 심화를 위한 제언을 하겠다. 이는 주로 불교계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구술작업 즉 인터뷰하여 그 구술의 채록을 갖고 간행하는 일련의 작업시에 주제, 성격에 대한 분명한 한계 설정이 있어야 하겠다.

이는 출판 및 채록의 기획을 말하는 것인바, 일의 추진에 대한 냉철한 주제의식을 필요로 한다. 발제자의 경험으로는 다양한 주제하에, 그 간행도 외피도 다양한 형태를 띠고, 그 성격도 역사, 정사라는 차원말고도 사상, 신행, 수행, 체험 등의 분야에서도 흥미있는 분야와 대상이 있다고 본다.

둘째, 인터뷰받는 대상 인물(구술자) 및 사건에 대한 충분한 조사,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터뷰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상자(청취자)와 인터뷰를 받는 대상자(구술자) 간의 역사 복원 작업이라고 볼수 있다. 구술작업을 실제 하다보면 인터뷰 진행자가 구술자의 역사, 생애, 사건 등을 훤히 알고 있어야 진실에 더욱 접근할 수 있다. 구술자가 30~40년, 심지어는 60년전의 일을 정확하게 기억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그 구술자의 생애, 그가 관련 맺은 사건 및 단체, 당시 불교사와 일반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셋째, 구술 작업의 이후 출판 기획시에는 구술자의 의견․발언과 청취자, 녹취자(기획자)의 의견이 같고 다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최근 불교계의 지면을 보면 구술자와 청취자의 의견을 혼재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는 반역사, 몰역사 정신이다. 그리고 그 구술 전체를 그대로 정리하여 출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를 가감하여 출간할 경우도 있다.

 이는 지면의 부족, 기타 현실적인 난제에서 비롯된다. 후자의 경우 기획, 관련자는 매우 난감한 문제에 부닥치는 것이다. 어떤 발언이 중요한 것인가, 혹은 어떤 내용을 삭제할 것인가, 어느 내용을 축약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원칙이 있어야 하며, 그를 수립할 상식과 지식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을 기록, 정리하는 작업도 불교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분명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

넷째, 구술사의 정상화, 정립을 위해서는 그 추진 주체가 관련 씽크 집단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는 일면 당연한 상식이지만 불교계 내부에서는 찾기 힘들다. 특 불교 언론 집단내부에서는 이 내용이 가장 절실한 기관으로 보이는데 실상은 어떠한가?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자는 제언이다.

다섯째, 구술자의 발언, 지적중에 나오는 역사의 진실을 그 말 전체 표현, 100%을 기록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일정한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불교계 내부에는 문중, 문도, 계파, 정파 등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여기에는 종권, 이기주의, 고승만들기, 큰스님을 만들고 지키기 등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이런 현실하에서 그 구술이 갖고 있는 사실, 진실, 거짓을 검증할 장치와 원칙이 필요하다.
여섯째, 구술을 통한 일련의 작업은 구술자나 대담자(청취자)나 상호 간에 신뢰를 갖고, 역사 복원이라는 공동의식을 갖을 수 있는 토양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어느 사찰, 스님, 상좌 등은 인터뷰를 거부,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고백, 진실, 양심이라는 소박한 심성에서부터 불교사 복원이라는 차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증언, 구술에 대한 신뢰 문화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일곱째, 불교계에서의 증언 대상자는 대부분 기득권자인바, 이는 극복되어야 한다. 요컨대 조실, 회주, 원로, 주지, 실력자 등이 그 대상자이다. 물론 이들이 그 관련 내용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상자 이외에도 다양한 대상자들은 많다. 요컨대 증언 대상자의 발굴, 다양화가 절실하다. 일반사 분야에서의 구술사는 소외계층, 권력에서 이탈한 대상자 중심의 역사 찾기 차원에서 구술사가 등장하였지만 불교계는 그와는 성격이 판이한 것도 주목할 내용이다.

여덟째, 근현대 불교사상에서 문헌적인 근거를 갖고 나타난 역사와 구술(증언, 회고, 소문, 와전 등)에 의한 역사가 상호 혼재된 것을 정리,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불교사에는 이 양자의 구분 자체가 미흡하였는바, 여기에는 신화적인 ‘입소문’의 요인이 작용하였다고 보인다.

아홉째, 불교계의 증언 채록, 구술, 인터뷰는 그간 단시간 안에 처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후에는 이런 단시간, 단 기간의 추진을 지양하고 집중적이고 성실한 작업을 기획,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졸속 시도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1회, 1~2시간으로 작업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정성으로 어떻게 40여 년의 기억을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열번째, 인터뷰 진행시나, 녹취된 산물을 정리할 경우에는 제3자의 증언 혹은 문헌에 전하고 있는 것과의 차별성과 동질성을 구분해내고 그에 대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이는 증언 채록시에도 유의해야 하고, 그 성과물을 갖고 분석, 정리, 연구하는서술 작업시에도 필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그 차별성에 대한 의미가 갖고 있는 구술사의 특성도 찾아내야 한다.

지금껏 발제자는 불교계의 현실을 고려하면서 근현대 불교사에서의 증언사, 구술사가 정립될 수 있는 방향을 점검하여 보았다. 이러한 제안과 방향은 곧 역사의식, 불교사에 대한 신뢰에서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서 불교사, 한국불교사 재정립은 불교계 구성원의 성찰에서 비롯됨을 거듭 강조한다.

김광식
건국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현재 부천대 교양과 교수. 저서로 ≪한국근대불교사 연구≫≪한국근대불교의 현실인식≫≪용성≫≪근현대불교의 재조명≫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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