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전쟁의 사례를 계기로 -
1. 머리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에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맥없이 무너졌다. 전 세계인이 목격한 바 ‘공포와 전율’의 승리였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미국이야말로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을 정직하게 관철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임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공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세계화 시대의 국제관계가 미국 주도로 재편되고 있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 시대의 전쟁은 미국의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전세계에 똑똑히 주지시켰다.
이제는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사실상 우리가 좀 더 유능하고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전쟁 개시 이전에 혹은 전쟁의 징후가 포착되자마자 이라크 전쟁을 보는 우리의 입장을 말했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전쟁의 와중에라도, 그리고 전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강요받고 있을 때라도 우리의 입장을 분명한 어조로 표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한국불교는, 이번 전쟁에 대해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금에는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는 이번 전쟁에 대해 과연 아무 할 말도 없는가?
아니다. 모든 존재의 의존적 발생의 원리를 인정하는 불제자라면, 아니 최소한 불상생계라도 수지하려고 하는 불제자라면, 이번 전쟁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전쟁 일반에 대해서도 해야 할 말이 분명히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을 경험한 불제자라면, 미국에 의해 강요된 이데올로기적 호명 속에 은폐되어 있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아니, 호명 그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우리는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으나 지금이라도 이번 전쟁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실상을 이해해 보고, 다음으로는 이러한 전쟁을 보는 불교적 관점을 정립해 본 다음, 세계화 시대의 전쟁 억제를 위한 불교적 실천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이라크 전쟁과 새로운 국제질서
1) 전쟁발발의 배경
미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결국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응징하기 위해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일방적 ‘침략전쟁’을 결행하였다. 미국 행정부의 관점에서 바라 본 전쟁 개시의 형식논리는 간단하다. 수 차례에 걸쳐 UN 무기사찰단도 찾아내지 못한 대량살상무기의 집약인 ABC무기(Atom-, Bio- and Chemical Weapon: 방사능․생물․화학무기)를 이라크를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고, 이러한 위협적 무기의 최대보유국이면서도 9.11. 테러 이후 외부 공격에 대한 과잉 히스테리 증세에 시달리는 미국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후세인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검은 금’(Black Gold)으로 표현되는 석유의 확보에 있으며, 아울러 거대한 석유매장량을 보유한 중동지역의 맹주가 워싱턴에서 기획한 국제 패권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려 한다는 정치경제적 동인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이라크(150억 톤)는 사우디아라비아(350억 톤)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석유 보유국이다. 반면에 미국은 다른 산업국가와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연간 9억 톤의 석유를 소비하는 국가이다.
오늘날 석유매장량이 고갈되어 가는 지역에서 고비용의 투자와 함께 개발이 가속화될수록 아랍세계의 원유매장량 존재는 더욱 더 중요해지며, OPEC(석유 수출국 기구)카르텔의 정치권력 또한 향후 더 강화될 전망이다. 2020년까지 미국의 석유소비량은 현재 수준의 세 배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교토 프로토콜을 거부한 정치적 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환경파괴를 방지하는 에너지절약 혹은 에너지대체정책이 포기된 미국에서 경제발전의 석유 의존도는 대단히 높다.
미국은 현재 그들이 매일 소비하는 원유의 절반을 해외에서 조달하며, 그 중 20퍼센트는 페르시아 만 지역에 의존한다.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철회한 후 원유개발을 독려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중동지역에서 요구되는 미국 석유수요의 상당량은 충족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단지 석유산지로서 이라크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국제정치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전쟁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대량살상무기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은 군사적 측면에서 어떠한 동맹도 필요로 하질 않았다. 1991년 걸프전과는 달리 실제로 이번 이라크전쟁에는 단지 영국만이 유일하게 허울 좋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바로 이 점이 미국이 바라보는 대 이라크 전쟁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겠다. 전쟁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전쟁장관’ 럼스펠트는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이해에 반대 입장을 천명한 독일과 프랑스에 대하여 “독일과 프랑스는 구(old) 유럽이다. 그들이 (전쟁을)원하지 않는다면 신(new) 유럽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신 유럽은 동유럽을 뜻한다. 이러한 언급은 서유럽 중심의 유럽연합이 동유럽으로의 정치적 세력확장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중을 내보인 것이라 하겠다. 그렇게 보면 이라크 전쟁은 단순한 ‘주유소 습격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전쟁에는 석유확보의 차원을 넘어서 국제질서의 패권을 둘러싼 정치공학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2) 새로운 국제질서를 둘러싼 각축
미국의 이기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라크 전쟁은 국제질서에서 약소국의 지위가 얼마나 무력한 것임을 새삼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형식적으로는 파리-베를린-모스크바로 이어지는 유럽의 정치노선이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에 도전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세 국가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전쟁을 이라크 국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공세적 전쟁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는 동시에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새로운 결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이라크 전쟁의 개시와 함께 무력화된 UN의 지위는 일부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도덕적 대칭개념으로 이해되는 듯 하다.
그러나 과연 UN 권력의 핵심인 안전보장이사회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지금까지 안전보장이사회는 평화적 입장을 견지하기보다는 단지 국제적 세력관계의 반영에 불과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이미 지난 수십 년 동안에 미국과 소련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토권을 남발하여 국제질서의 혼란만 가중시켜 왔다. 냉전 시기에 국제법의 기준을 유지하고, 국제정치의 분쟁을 조정할 포럼으로서 유일한 지위를 지녔던 UN은 이빨 빠진, 단순한 ‘토론클럽’으로만 존재하였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안전보장이사회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게 되었으며, 1990년 걸프전을 통해 이를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체제경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변화된 국제질서는 신 냉전질서를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국제질서의 규칙을 새롭게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만족만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라크를 해방시키기 위한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단지 선택적 연합에 따라 미국의 정책을 무력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려는 데 기본적인 이해를 제한하고 있다. 이들 국가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UN과 국제법을 도구화하기는 미국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독일과 프랑스의 외교공세로부터 더 나은 세계를 기대한다면 대단히 순박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구 유럽의 선택적 평화주의는 그 정반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1999년에 UN 위임통치를 배제한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에 대해서는 ‘휴머니즘적 개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반면, 이제 사담 후세인에 대한 개입은 UN 위임통치를 전제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에 기초한 실질적 개입주의는 결과적으로 국제정치의 구조와 국제법의 악용에서 실패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엄밀히 보아 이러한 미국과 구 유럽, 두 열강 사이의 관계 악화는 늦어도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초래된 정치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공동의 적은 사라져버렸고, 유럽은 이제 새로운 초강대국(Superpower)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넘버원의 권력약화는 필연적으로 넘버 투, 넘버 쓰리, 넘버 포 등의 동맹을 초래하였다. 유럽은 이제 패권정치의 공백에 뛰어든 셈이며, 미국은 유럽에게 더 이상 보호국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세계질서는 미국주도의 패권주의가 관철되고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무성해지고 있다. 때문에 약소국가의 생명과 안정은 안중에도 없으며 세계평화의 길은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이제 미국의 이해관계, 특히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 한, 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 관련 전쟁설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듯 전쟁의 가능성을 내장한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불교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3. 세계화 시대 불교의 반전운동
1)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
주지하듯이, 붓다는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부왕의 왕위를 계승하기보다는 출가하여 깨달은 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붓다는 왜 온갖 부귀와 영화가 보장되는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깨달음을 향해 힘든 고행을 스스로 자처하고, 나아가 깨달음 이후 열반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설법의 길을 쉼 없이 걸아 간 것일까?
그 이유들 중에서 가장 빈번히 거론되는 것은, 약육강식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발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붓다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고, 브라만이 수드라를 계급적으로 지배하고, 나아가 코살라 제국이 석가국을 종속국으로 식민화시켜 가는 모순적 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 세상에서 그러한 모순적 현실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붓다가 깨달은 것, 즉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적 발생의 원리가 그 궁극적 해결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타 존재에 대한 착취나 폭력은 존재의 연기적 본질과 그 구체적 실상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는 탐․진․치 삼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근본고(根本苦)는 사회고(社會苦)와 내적 연관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상호의존의 원리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분별심과 탐심에 의한 타 존재의 착취와 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인식관심의 초점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불교는 근본고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사회고의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식관심의 초점을 국제관계에 맞출 경우 불교는 풍부한 국제정치적 함의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면 붓다의 끝없는 실천행의 일단을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재구성해 보자. 붓다 당시 석가족 주변의 국제관계의 현실은 전제군주국 형태의 정치체제를 정비한 마가다국이나 코살라국이 석가족과 같은 공화국형태의 작은 왕국들을 이미 속국화했거나 혹은 식민화하기 위해 침략행위를 일삼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정치국면에 처해 있었다.
붓다가 깨달은 상호의존적 발생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국제관계의 현실은 끊임없이 고통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악업(惡業)의 악순환일 뿐인 현실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정치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질서를 근원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에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연기법의 원리를 무기로 당시의 각 제국들을 상대로 지적 헤게모니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에서 최고의 수행자로 추앙되던 깟사빠(Kassapa)와 무소불위의 빔비사라왕을 붓다의 제자로 개종시킨 것은 국제적 차원의 불교적 헤게모니 전략이 성공적이었음을 실증해 주고 있다.
이렇듯 붓다의 일부 실천행을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국가 간 전쟁의 현실을 평화적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정치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연기법의 원리가 국제정치적 차원에도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국제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국가 간 갈등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탐․진․치에서 연유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호의존적 발생의 원리는 국가 간에도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 간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를 직접적으로 변혁시키려 하기보다는 그 체제의 토대인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한 사회의 지배질서야말로 국가의 정치형태의 형성은 물론, 최고통치자의 선출이나 의사결정과정에 결정적인 규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간 무력이나 폭력이라는 수단으로는 결코 국제적 평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비폭력적이고 비타협적 속성을 지닌 헤게모니 전략이야말로 평화의 목적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또한 효과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2)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치노선과 불교의 이념적 모순
앞에서 우리는 붓다의 실천행을 통해 불교의 국제정치적 함의를 도출해 보았다. 그러나 붓다 당시의 정치적 현실과 오늘날의 국제정치적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때문에 앞에서 도출한 정치적 함의를 적용하기 이전에 그 적용 대상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라크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오늘날의 국제정치의 현실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패권주의 정치노선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고자 한다.
미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제임스 베이커는 1996년에 보스니아 위기에 대한 빌 클린턴의 말뿐인 위협을 비판하면서 미국 외교정책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미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무력협박이 실질적인 결과를 초래할 만큼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 결코 무력을 통한 위협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는 무기로 위협하지 말아야만 한다.
공화당 내의 UN 우호적 개입주의자인 제임스 베이커는 기본적으로 백 년 전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테오도르 루스벨트에 의해 정식화되었던 독트린, 즉 “부드럽게 말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지녀라”를 재천명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시 W. 부시는 최소한 2001년 9월 11일 이후부터는 이러한 미국 외교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항시적 무력위협은 그의 정치적 프로그램이 되었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다자간 개입주의 외교전략’으로 요약되는 미국의 국제패권질서 전략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외교를 NATO와 UN 등의 국제기구와 국제적 협력에 비중을 두어 미국의 패권질서를 유지하려 하였다. 이러한 외교 전략은 특별히 클린턴 정부에 의해 주도된 세계화 과정에서 미국의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강화해나갔다. 그러나 현재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2000년 선거를 위한 강령에서 ‘신 현실주의’라는 공식으로 압축되었다.
공화당의 대통령은 강력한 미국의 국가적 이해를 확인하고 추구해야 한다. 그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확정해야만 한다. 미국은 그의 지위아래 평화를 창출하고 확보해야만 한다. 공화당원은 어떻게 이를 완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이는 강력한 군대, 강고한 동맹관계, 팽창적 대외무역, 그리고 단호한 외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화당의 국가안보 우선의 전략은 9.11. 이후 탈레반을 상대로 한 대 테러전쟁을 통해 강화되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UN과 NATO 등을 상대로 국제적 지원과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전혀 무시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국제정치에서 자국이 가진 영향력을 과신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무역분쟁 등으로 대변되는 세계경제의 또 다른 갈등으로 표출될 공산이 크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실증해 주었듯이, 미국주도의 패권주의는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적 관례조차도 무시한 채 무력이나 폭력으로 다른 국가를 침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적 발생의 원리를 교리로 하는 불교는 이러한 패권주의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
붓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에 있어서 패권주의는 하나의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불교의 정치철학』의 저자인 피야세나 딧사나이케에 따르면, 심지어 붓다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를 하나의 가족으로 통일하고자 하였으며, 곧 민족주의를 국제주의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3) 신국제주의의 가능성과 불교의 반전운동
이라크 전쟁은 개전 이전부터 국제법상의 적법성과 정당성과 관련, 전 세계 시민으로부터 거대한 도전에 부딪혔다. 1945년 이후 세계 어떤 곳에서도 전쟁 개시 이전의 평화운동이 이처럼 거대하게 전개된 적은 없었다. 세계 도처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에 나와 전쟁반대를 외치고, 국제적 연대를 위해 시위하고 있다. 이는 심지어 침공 당사국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조직되는 데 수년이 걸렸다면, 이번의 경우엔 불과 수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아가서 이라크 전쟁은 전쟁에 반대하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시민의 저항을, 자본주의와 세계시장의 팽창 그리고 전쟁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논리적 통일체라는 정치적 인식과 결합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화과정은 코소보전쟁에서처럼 실제로 전쟁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강대국 정부에 의해 유린된 국제법이 이제까지 정부 간 패권정치의 포로가 된 시민들에 의해 복권될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세계화시대의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풀뿌리 국제주의가 확산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그렇다면, 불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불교가 교리적 근거에 기초하여 반전운동을 해야 한다면, 둘째 신국제주의적 질서가 창출되고 있다면, 셋째 미국주도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려 한다면, 불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는 불교의 이념적 실천에 철두철미해야 한다. 그 이념적 실천이 비록 패권주의와 상호 모순되더라도 철저하게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특히 미국주도의 패권주의에 대항하여 전 세계적 차원의 헤게모니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신국제주의적 세력들과도 부분적으로는 연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불교는 비폭력적 투쟁노선을 철두철미하게 견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폭력노선은 불교교리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붓다의 사례나 인도의 독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간디의 사례는 불교적 방식의 반전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4. 나오는 말: 한국불교를 위한 제언
지금까지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실상을 이해하고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불교적 대안은 사실상 이론적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물론 사회문제에 대한 한국불교의 무관심이나 그 밖의 한국불교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이론조차도 감히 제시하기 쉽지 않다. 특히 국제문제와 관련하여 한국불교는 아직까지도 어떠한 활동을 시도해 본 경험조차 없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및 파병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찬성 혹은 반대가 강요되었듯이, 미국의 주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질서의 재편과, 그로 인한 전쟁의 가능성 및 신국제주의의 가능성 앞에서, 이제 한국불교는 하나의 실천적 노선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두 가지 노선 중에서 전쟁의 길은 한국불교가 선택할 길이 결코 아님은 자명하다. 때문에 한국불교는 또 하나의 노선, 즉 전쟁을 억제하는 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한국불교는 무엇보다도 먼저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와 같은 세계적인 참여불교운동가가 개척해 나가고 있는 국제주의적 활동에 참여하거나 혹은 연대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세계적인 참여불교운동가로 알려진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는 이미 국제참여불교도연대를 설립하여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소비주의에 정면으로 맞서서 국제적 차원의 대안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국불교는 최소한 전 세계를 무대로 전쟁억제를 위한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달라이라마나 틱 낱한과 같이 세계적인 평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도 있다. 물론 한국불교가 이러한 국제주의적 불교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한국불교 스스로가 오늘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세변화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유승무
한양대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사회학박사.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불교사회학의 성립조건(Ⅰ․Ⅱ)》 등이 있다.
임운택
한양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마부르크 대학 졸업(사회학 박사).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