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탐구

1. 들어가는 말

전통적인 출세간적 불교는 혜능의 선종에 이르러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는 소농(小農) 경제사상의 세례를 받고 입세간(入世間)적인 인생불교, 생활불교로 탈바꿈했다. 이 점이 바로 혜능의 선종을 ‘불교혁명’, ‘선학혁명’으로 평가하는 구체적 내용의 핵심이다.

선종이 지향한 불교혁명의 실천 코드는 바로 자성불도(自成佛道)이다. 선종 수행론의 돈오성불(頓悟成佛)과 농선병행(農禪竝行), 그리고 해탈론에서의 즉심성불(卽心成佛)과 자재해탈(自在解脫)은 전적으로 자급자족의 소농경제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선불교의 중요한 핵심사상인 ‘돈오(頓悟)’나 ‘즉심즉불(卽心卽佛)’ 등은 농민들의 소농 경제사상에 대한 부응이자 융합이었다.

혜능의 “자아 해탈사상과 자력 수행론은 중국적인 소농경제의 자급자족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급자족의 경제 상황이 ‘자력해탈’이라는 혜능선의 해탈사상을 탄생시킨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종은 원래 농민의 불교이다. 물론 후대에 이르러 본래의 출발과는 달리 사대부 불교로서의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농민 지향적인 그 본색에는 변함이 없었다.

선종은 불교 종파 중 농민 의식(意識)을 가장 많이 흡수, 보존하고 있다. 선종의 유구한 지속과 광범위한 전파의 주요한 요인도, 그러한 선학사상이 소농경제의 자급자족 정신과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본심을 똑똑히 인식하여 자기 본래의 진성(眞性)을 명확히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면, 누구나 부처님이 성취했던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자력으로 획득할 수 있다. (識心見性 自成佛道) 《壇經》30절

농민은 계절적 자연 운행을 따라 열심히 농사일을 하면서, 모든 곤경을 자력으로 극복한다. 또 그들은 가정의 생계유지는 물론 자신이 설정한 이상(理想)을 실현키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자성불도(自成佛道)’라는 혜능의 해탈론도 이와 같다. 각자가 자신의 자성(自性)과 인격 역량을 확신하고, 가시밭길의 심리적 노정(路程)을 신심(信心)과 용기로 인내하면서 꾸준히 걸어가 해탈이라는 목표점에 도달한다.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수행은 바로 소농경제의 특징인 자급자족 정신의 구체적 실현이다. 돈오 남종선의 수행론과 해탈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 대들보는 자신(自信)․자주․자립의 ‘3자(自)’로 요약되는 자력사상이다. 이 같은 자력수행은 소농경제의 자립사상에 대한 부응이며 불교 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급자족적인 소농경제는 밖으로부터 무엇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또 소농 경제의 자급자족은 현실 생활 속에서 자아 만족의 정신적 경계(境界)를 만들어 낸다. 선종의 수행론과 해탈론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결코 밖으로부터 구하지 말라(不假外求)”라는 설법이나, “틀에 박힌 형식적, 외재적 수행의 단호한 거부(不假外修)”는 소농경제의 자급자족 정신을 그 사상적 원천으로 하고 있다. 혜능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스스로 마음이 미혹되어 외적 수행으로 부처를 찾기 때문에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품성이 낮은 사람이다. [근기가 얕은 사람일지라도] 돈교(頓敎)의 가르침을 듣고 외적 수행에 의지하지 않으며, 본성이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킨다면, 비록 번뇌와 괴로움에 가득 차 있는 중생일지라도 곧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自有迷心 外修覓佛 未悟本性 卽是小根人. 聞其頓敎 不假外修 但於自心 令自本性常起正見 煩惱塵勞衆生 當時盡悟) 《壇經》29절

혜능의 수행론과 해탈론이 소농경제 생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혜능선의 출발이 당시 정체․경제 상황과 인구의 절대 다수를 점한 농민의 전통적 생활방식에 기반을 둔 농민불교였기 때문이었다. 고대 중국 경제는 자연환경과 지리적 여건에 영향을 받는 농업을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하는 농업입국이었고, 중화민족과 중국인의 상황에는 이 같은 농업문명의 낙인이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깊이 찍혀 있다.

 1가1호(一家一戶)의 소농경제적 생산방식은 중국 봉건사회 경제의 주도적 지위를 차지했고, 농민은 국가의 주요 생산자였다. 그들은 밥을 먹고 일하는 것이 생활이었다. “배고프면 밥을 먹는다(饑來喫飯)”는 수연임운(隨緣任運)의 평소 생활이 바로 수행 공부이며, 선자(禪者)가 소요하는 자아만족의 정신경계라는 선리(禪理)도 이 같은 농민의 생활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 귀의한다는 것이다. (自悟自修 卽名歸依也) 《壇經》29절

혜능의《단경》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자는 ‘자(自)’ 자이다. 돈황본 《단경》에 ‘불성(佛性)’이라는 단어는 단 5회만 등장한다. 반면에 ‘자성(自性)’은 수도 없이 나오고 있다. 혜능선의 신유심론이 거듭 강조하는 ‘자성’과 ‘자심(自心)’은 중생이 지금, 여기에 가지고 있는 찰나(刹那)의 마음, 즉 ‘당하지심(當下之心)’의 현존적 가치를 확립했다.

자력과 자립의 근원인 당하지심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이 바로 즉심즉불이고 돈오다. 자성이란 중생이 내재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규정성을 말한다. 자성은 인간의 본성․인간성․인성(人性)․평상심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지칭으로, 흔히 말하는 불성이나 부처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혜능선에서 깨달음의 주체인 당하지심은 일상 생활 속에서 부단히 유동하는 보통 사람의 마음을 말한다. 혜능선의 유심론은 지금 당장의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 같은 중생심을 만법의 주체로 인식하는 신유심론이다. “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卽心卽佛)”라는 혜능선의 설법은 과거 추상적 본체 개념의 ‘청정심(淸淨心)’이나 ‘여래장사상’과는 다른 농민들의 일상 생활 중의 마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는 행주좌와(行住座臥), 어묵동정(浯黙動靜)이 모두 선이 되며, 농사일이 지극한 수행이고 현상적 인격, 또는 인성으로 주체화된다. 따라서 선의 실천 무대는 세속을 떠난 정적 속의 산사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중생(농민)이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 사회로 옮겨진다.

선불교의 즉심즉불과 돈오는 전적으로 농민들의 현실 생활을 모태로 한 수행론이고 성불론이다. 농민의 현실에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역사적 필연’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의 집권과 소농경제의 생산방식이 상호의존하고 있었던 것이 중국 봉건시대의 사회구조였다. 따라서 농민들의 생활 상황과 태도는 사회의 안정 여부, 문화의 번영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였다. 어떠한 종교도 사회 현상을 외면한 채 구름 속을 배회하는 신비감만으로는 존립하지 못한다.

종교도 인가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산물이다. 돈오 남종선은 창립자인 혜능이 나무꾼 출신으로 개산(開山) 당시부터 하층민을 기반으로 했고, 농민과 서민, 소지주 등이 신도의 절대 다수를 구성했다. 6조 혜능은 농민들이 생각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피부로 실감나게 체험했다. 따라서 그가 구축한 자성불도론(自性佛道論)은 일정 정도 농민의 자급자족적 정신 수요에 대한 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심을 통한 해탈이 타종교와 비교되는 뚜렷한 특징인 ‘자력불교’는 인도불교의 인생론이 내포한 적극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혜능의 해탈론은 인도불교의 출세간주의적인 해탈이나 서구 종교의 피안세계 신앙과는 크게 다르다. 그는 불교를 현실 생활과 차안(此岸)의 인생 속으로 끌어 들여, 현세당하적(現世當下的, Now and Here)으로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이 같은 당하 해탈론도 소농경제 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소농경제 사상은 현세․현생의 발전과 행복이 그 출발점이면서 귀결점이다.

선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기봉(機鋒)과 화두도 전적으로 자수(自修)․자오(自悟)에 귀결된다. 돈오 남종선이 흔히 방편으로 사용하는 기봉과 화두의 관건은 바로 자력성불을 일깨우는 데 있다. 물론 혜능의 선사상 모두가 자급자족의 소농경제 사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혜능선은 자급자족의 소농 경제생화 방식, 유가의 종법(宗法) 윤리, 강력한 왕권정치, 도가사상, 현실주의․인문주의 같은 전통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당나라 중기 봉건사회의 문화적 산물이다. 그러나 혜능의 선종에 대해 불교학적 천착은 적지 않았지만, 경제․사회사적 통찰은 불모지였다는 점에서 최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혜능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적 측면의 조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담론에서는 돈오 남종선 수행론의 핵심인 동오와 백장청규의 농선병행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입장에서 소농 경제사상이 선종 형성에 끼친 영향을 살펴 보고자 한다.

2. 돈오성불론

농민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노동의 중요한 객관적 조건인 동시에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인간이 자연을 추앙하고 자연에 의지하는 것은 소생산 농업사회의 현실이고 필요였다.

기후와 지리 환경은 농사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래서 농민은 체력과 지력을 자연 극복에 경주하지 않고 사유적 수련을 통해 우주의 심오한 섭리와 인생의 진제(眞諦)를 탐구하고자 한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입장에서 자연의 은혜를 갈구하는 농민의 인식은 전적으로 직관과 경험에 의존한다. 자연의 본질을 선(善)하다고 보고 자연을 숭배하며, 그에 순종하고 학습하는 관조가 이른바 ‘천인합일사상’이다.

천인합일은 우주가 인간에 대해 감정을 표출한다고 보는 유정(有情) 우주관이 그 사상의 논리적 기점이다. 식사와 취침이 입출과 일몰을 따라 행해지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원시적 계합이었으며, 농업사회의 대표적인 천인합일사상의 체현(體現)이었다. 농민 등은 천인합일사상 아래서 일종의 직관 체오적(體悟的)인 사유방식을 키워 왔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 큰 비가 온다는 것은 농민들의 직관적 체오이며, 경험이지 과학적․논리적 분석이나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가뭄은 임금의 부덕(不德) 때문이라는 사유방식도 천인합일사상에서 비롯한다. 천인합일사상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사회(윤리와 도덕)․정치(개인의 자유와 권리) 문제의 관계로 그 지평을 넓혀 갔다. 선종 해탈론의 핵심인 직관적 체오, 곧 ‘돈오(頓悟)’는 소농 농업사회의 산물인 천인합일사상을 따라 성장한 직관 인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농민은 문화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농민의 직관적 인식은 때로는 신비스런 통찰력을 발휘하여, 지성이나 지식이 전개하는 추론과 분석을 뛰어넘는다. 일상생활 중의 ‘당하즉오(當下卽悟: 지금 당장 즉각적으로 깨달음)’도 자연 가운데서 일하는 농민들의 생활에서 유래하였다. 혜능선을 널리 전파한 많은 선사들의 어록들에는 ‘한 뙈기 땅(一片田地)’, ‘한 자루의 호미(鉏頭)’, ‘한 마리의 소(水牯牛)’, ‘당나귀를 매는 말뚝(系驢橛)’ 등과 같은 농업사회의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 용어는 선학적으로 주체적 자아를 상징하는 말이다. 혜능선은 이처럼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만나는 용어들을 비유적으로 사용,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법문으로 중생을 일깨웠다. ‘당하즉오’라는 돈오의 쾌속성은 농민들의 직관적 체오가 가지는 특성이다. 무상한 자연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농민의 직관적 통찰은 쾌속성과 민첩성이 그 생명이다.

돈오견성이 농민을 위한 수행론이라고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시간의 문제이다. 농민들은 생존을 위한 바쁜 노동 때문에 오랜 시간을 요하는 계단적 수행을 할 틈이 없다. 따라서 돈오라는 쾌속의 깨달음은 그들의 생활에 딱 들어맞는 해탈방식이었다. 이런 점에서 혜능의 돈오견성은 초기 선종의 기반인 농민들의 요구에 부응한 수행론이며 해탈론이라고 볼 수 있다.

고로 반야 지혜는 각자의 자성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스스로 이 지혜를 사용하여 마음을 관조한다면 문자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故知體性自有般若之智 自用智慧觀照 不假文字) 《壇經》28절

혜능은 문자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나무꾼 출신이다. 농민들 역시 무식하다. 그는 이런 점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해탈은 실천의 문제이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의 어록인 《단경》은 “불성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으며, 만법 또한 자성(자심) 가운데 있다”는 불성 인식론을 설한다.

이는 개개인의 본성은 모두가 본래부터 원만구족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외부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그 천부의 본래적인 자아 역량으로 해탈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혜능은 인간의 본성이란 본래가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구족성(具足性)과 함께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대자연처럼 생생하다고 거듭 역설한다.

지연은 그대로가 완전한 미(美)이고 원만하다. 혜능은 자성의 원만성을 빗물, 허공, 햇빛 등과 같은 자연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농민들의 자연관과 일치하는 혜능선의 불성관이며 역대 조사들의 한결 같은 자성에 대한 인식이다. 농민들의 자연 친화는 선종에 그대로 이식되어 조사선 시대를 거치면서 문인선(文人禪)으로 전향한 5가7종의 분등선(分燈禪) 시대에도 자연을 직관․체오한 많은 현량경(現量境)의 선시들을 남기는 등 그 지평을 더욱 넓혔고, 학인들의 돈오를 촉발하는 나침반 구실을 하였다. 선지식(善知識)들은 자연현상을 빌어 선리를 설파하고 직관적인 돈오 체험의 소재로 활용했다.

문: 처음들어 온 학인인데 스님께서 나갈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답: 저 시냇물 소리를 듣는가?
문: 예, 듣습니다만.
답: 그것이 바로 그대가 나갈 길이다.
(《경덕전등록》권18, 〈玄沙從一大師〉)

현사 사비 선사(835~908)와 한 학인의 선문답이다. 사비(종일)는 학인의 나갈 길이 임운자연(任運自然)하는 평상심의 회복이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고 있다. 임운자연은 혜능의 적전(嫡傳)인 마조의 홍주선(洪州禪)이 특별히 좋아하며 즐겨 쓰는 개념이다.

청원계(靑原系)의 석두선문(石頭禪門) 선사들인 도오, 현사, 운문 같은 선사들도 자연의 운행 질서를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임운자재한 삶이 곧 깨친 사람의 선열(禪悅)임을 강조했다. 사물의 본신적(本身的) 운행을 따르는 것이 ‘임운’인데, 도가의 무위(無爲)와 비슷한 개념이다. 추우면 불을 쬐고 더우면 부채질하는 일종의 자연법 사상인 임운자연은 일상 생활이 갖는 윤리적 의의를 소중히 여기는 조사선의 수행방법이고 선영의 경계이다.

임운자연, 수연임운(隨緣任運)의 선법문은 모두가 자연 속에서의 직각적인 체험을 통한 돈오를 일깨워 주고 있다. 현사는 일을 하다가 논두렁에 앉아 땀을 식히던 중 한 학인으로부터 “열반 뒤의 소식을 좀 일러 주십시오”라는 질문을 받자,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려 더위를 식힌다”고 대답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더우면 옷소매를 걷어올려 바람을 쐬는 것이 임운자연의 일상생활이며 자연을 따르는 삶이다. 그 도리를 아는 것이 바로 직관 체오이다. 이 같은 직관 체오에 대한 감수성은 농민들이 문자를 희롱하는 지식인들보다 훨씬 예민하고 생생하다. 혜능선의 돈오와 소농 경제사상의 관련성은 선의 중국화를 촉진시킨 요인이기도 했다. 천인합일 속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은 우주 자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의 인식을 갖는다.

(1) 객관 존재로서의 우주 자연.
(2) 주재자로서의 자연.
(3) 진리 원천으로서의 우주 자연.

농민들의 삶에서 하늘은 곧 우주 자연을 대표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한다. 일출과 일몰에 맞추어 일을 하고 잠을 자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천인합일 사상의 실천구조이다. 천인합일의 삶은 해탈한 도인의 선경(禪境)이기도 하다.

해가 뜨면 밭에 나가 김을 매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경작하는 데 임금님의 권력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

이것은 요순 시절의 〈격양가(擊壤歌)〉이다. 요 임금이 자신의 치정(治政)을 확인하기 위해 시골로 나가 밭에서 일하는 늙은이에게 “요즘 살기가 어떠냐”고 물은 데 대한 촌로(村老)의 답이다. 농부가 밭을 일구며 부르는 이 노래는 천인합일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임운자연의 삶이 제왕의 부귀와 권력을 능가하고 있는 정신적 초월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선가가 추구하는 열반의 경계라는 것도 바로 이롸 같은 것이다.

돈오라는 신속한 회심(回心) 방법을 통해 도달하는 깨침은 이 농부의 자족감과 같은 ‘초연 인격’으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경제사회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선불교는 소생산 농업사회의 인생관을 불교에 접목시켜 종교화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억설은 아닐 것이다.

3. 선농일치

혜능선의 중국화는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선문규식(禪門規式)》(일명 ‘백장청규’) 제정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백장은 혜능 하 4세 선장(禪匠)이다. 선불교의 율장이기도 한 《선문규식》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대목은 선농일치(禪農一致)와 사찰에 불전(대웅전)을 두지 않고 법당(강당)만을 건립하는 선찰의 사원제도이다.

현재 《선문규식》의 원전은 유실되고 내용의 일부만이 《경덕전등록》에 전해지고 있으며, 원대(元代)에 재편한 《칙수백장청규》와 청대의 《백장총림청규현의》 등이 남아 있다. 선불교 농선병행의 하이라이트는 ‘보청법(普請法)’이다. ‘보청’이란 선찰의 모든 승려가 상하노소 차별 없이 공동 노동을 해서 농사를 짓는 노동의 의무화를 말한다. 이를 규정한 《청규》의 내용을 바로 보청법이라 한다. 한국불교 선림에서는 농선병행을 ‘선농일치’라고 부르며 보청법의 단체 노동을 ‘울력(運力)’이라고 한다.

농선병행이 내함하고 있는 중요한 의의는 농사를 짓는 노동도 참선 수행과 대등한 가치를 갖는 수행이라고 보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선종은 승려와 농민의 노동을 하나의 수행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 같은 ‘노동의 수행화’는 세계종교사에 그 유례가 없는 선불교만의 노동관이다.

인도불교는 농사일 중의 살생을 우려해 승려와 신도들의 농사일을 금기시 했다. 선사들은 노동(농사일)을 일종의 예술적 창작 작업으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선승들은 보청을 하면서 농사일 자체를 서로 기쁘게 감상하고 그 속에서 선리를 천착했다. 선승들의 보청은 고되다거나 어렵다는 흔적이 조금도 없는 즐거운 노동이다. 그들에게 노동은 그 자체가 참선 정진 이상으로 즐겁고 의미 있는 수행이다.

왜냐하면 선승들의 단체 노동은 곧 반야의 구체적 실천이었고 선불교 불성론이 설파하는 ‘인인평등(人人平等)’의 체현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승들의 ‘노동 미학’은 선불교 미학이 가지는 두드러진 특징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기서 선승들의 노동은 하나의 수행차원으로 승화되면서 농사일의 즐거움이 곧 선수행에서 느끼는 선열(禪悅)이 된다.

〈구름위의 밭(雲頂田)〉

구름은 높이 솟은 난운령 고개에서 흩어지고
구름 밖 뜬구름 속의 하늘엔 녹색 가득한 논.
(雲居高銷亂雲嶺 雲外浮雲綠滿田)

5정의 사찰 언덕밭을 개간한 것은 누구더냐.
앉아서 보니 백 두럭의 논이 호천에 솟는구나.
(誰是五丁開梵塢 座看百苗湧湖天)

하늘의 별들이 밤의 가사 그림자에 와 닿고
학두루미는 아침의 쟁기와 써래 연기를 머금는다.
(星河夜接袈裟影 鸛鶴朝嚂犁把烟)

하늘 위에서 논갈이 가꾸기를 즐겨 배우니,
승복과 삿갓 하나 석양빛에 떠오르네.
(肯學耦耕霄雲上 僧衣一笠夕陽邊)

이 시는 회산(晦山) 선사가 운거사(현 중국 강서성 운거산 진여선사[眞如禪寺]) 승려들의 논일하는 모습을 찬미해 읊은 선시이다. 지대가 높아 늘 구름과 안개에 쌓여 있는 논밭을 보청으로 경작하는 운거사 승려들을 마치 천상 세계에 살고 있는 신선들처럼 묘사하고 있다. 제3, 제4연의 묘사는 농선병행의 멋을 문학적 표현에 의탁해 한껏 찬양한다.

이 시에 공연히 어줍잖은 평을 더하면 군더더기가 되기 십상이다. 그저 소박한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 옳다. 운거사는 조동종의 명찰로 나말여초(羅末麗初) 개산한 우리 나라 9개 선종 사찰, 이른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황해도 수미산 광조사를 개창한 진철이엄 선사(870~936)가 당시 운거사에서 남존 돈오선법을 펼치던 운거도응 선사를 찾아가 법맥을 이어온 선찰이기도 하다.

현재는 중국 선종의 본산이다. 사찰 창건 이래 계속 청규 정신의 농선병행 가풍(家風)을 받들어 오고 있는 운거사 승려들의 농사일과 전답 찬미는 농민 친화적인 선종의 본래 면목이기도 하다. 필자는 1996년 봄, 진여선사를 답사, 이 같은 농선병행 가풍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원래 선승들의 단체노동 의무화는 식량조달을 위한 자급자족의 사원경제 구축이 그 출발점이었다. 교종 사찰에서 독립해 나온 선승들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띠풀집을 짓고 좌선을 하다 보니 민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탁발을 나가기도 어려웠고, 길도 나 있지 않은 험산이라 신도들의 시주가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산비탈과 개울가에 논밭을 일구어 식량을 조달하게 되었고, 농사를 위한 노동력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따라서 선승들의 공동노동은 불교 교단 내적으로 보면 식량 해결을 위한 절대절명의 필연이었지만, 경제사회사적 측면에서 보면 소생산 농업사회의 자급자족 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승단 윤리였다.
선불교는 자급자족 사원경제 체제 구축에서 출발한 승려의 노동을 농사일 중의 법거량(法擧揚), 자연을 통한 선리 파악 등과 같은 학습과정으로 승화시켰다.

다시 말해 일을 하고 있는 논밭이나 걸어가고 있는 논둑 길 위에서 돌발적인 문답으로 학인들을 격발시켜 선리(禪理)를 깨치도록 하는 ‘현장학습’이었다. 농사일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현상은 이 같은 현장학습의 훌륭한 교재였다. 선승들에게는 논밭이라는 일터가 그대로 선을 배우는 학습장이었다. 선림의 화두를 탄생시킨 많은 선문답이 농사일이나 땔나무를 하는 중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선어록 등에는 호미․괭이․삽․들오리 같은 농사일 관련 일상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백장청규》는 인도 불교의 계율과 승려 일상생활의 중대 개조였고, “청규를 통해 제도화된 선종의 농선 병행은 중국 고대 소농 경제의 생산방식과 생활 관습에서의 적응”이었다. 또 선승들의 농선병행은 선종이 거듭 천명하고 있는 인인평등관(人人平等觀)의 실천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청규》는 그 핵심인 보청법에서 학인들의 연령․지위 고하를 구분치 않고 평등하게 참여케 하고, 다만 출가기간(法臘)의 장단에 따라 승당(僧堂) 좌석을 배치함으로서 “불법 앞에서의 인인평등을 체현”했다.

보청에서는 총림의 가장 웃어른인 방장이 솔선수범해 맨 앞에 서서 나가고 똑같이 일을 했다. 백장 선사는 스스로가 이를 엄격히 지켰고 노쇠해져 건강을 염려하는 제자들이 농사일을 더 이상 못하도록 호미를 감추어 버리자 호미를 다시 가져올 때가지 밥을 먹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구(一句)를 남겼다.

일을 하지 않는 날은 먹지도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보청법은 유구한 중국 소농경제의 봉건사회 속에서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면서 사원경제의 기초를 공고히 했고, 기층민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청규》의 성립은 불교 계율과 유가의 예악(禮樂)제도, 그리고 도가사상이 결합해 탄생시킨 산물이다. 혜능선의 자재해탈은 도가적 경향이고 현실생활 중의 해탈사상은 유가적 경향이다.

또 그의 불성평등론도 여래장․불성사상에 “도는 평등하다(道通爲一)”는 장자의 평등사상을 결합한 것이다. 백장의 제자이며 임제선의 비조(鼻祖)인 황벽희운(黃蘗希運) 선사는 “대도는 본래가 평등하다(大道本來平等)”(《古尊宿語錄》 권3)고 설파하여 도가의 사상을 수용하고 있다.

혜능의 선종이 유가․도가의 사상을 흡수했던 것과는 달리 송․명대에 와서는 오히려 유가가 선가의 사상과 제도를 역수입했다. 송대 유가의 서원(書院) 창립은 전적으로 《청규》의 총림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원․명․청대에서 서원이 향학(鄕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선종의 총림제도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제 《청규》의 보청법과 소농경제 사상의 관계를 좀더 조명해 보자. 우선 결론부터 말한다면 소농경제의 생산방식과 생활관습이 그대로 승단의 생산방식과 생활방식으로 이식되어 《청규》의 보청법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소농경제와 《청규》의 농선병행은 다같이 자급자족 정신을 그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일치한다. 도가는 농민의 개별적인 분사 경영과 자유, 불간섭을 요구한다.

 반면 유가는 중앙집권적 정치집중을 통치의 전범(典範)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선가의 농민에 대한 태도는 도가 쪽에 훨씬 기울어 있다. 선종은 농민 의식과 생활방식을 그대로 흡수, 《청규》의 보청법을 탄생시킴으로서 기존의 전통 불교에 대한 대혁명을 단행한다. 이 같은 선종의 불교혁명은 중국불교가 중국 고대 봉건사회의 경제구조와 진일보한 결합을 통해 획득한 전혀 새로운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었다.

혜능의 선학은 그 사상과 이론 체계를 개성화․평민화․민족화의 방향으로 전개해 전통 민족문화와 민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농민들의 자급자족 생활과 선종의 ‘자오(自悟)’는 사상적 맥락이 일치한다. 자급자족의 “소농경제 생활이 자기해탈의 사상을 만들어 냈다”고 볼 때, 선종의 농선병행은 이를 구체적․실천적으로 증명해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선종의 선사들은 중앙집권과 분산된 소농의 이해, 즉 통제와 자유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제시했다. 봉건체제의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대형사업들이나 조세․병역 등에서 발생하는 정부의 통제와 소농민들의 자유가 빚어내는 갈등 및 대립은 당장 그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현실적인 생활의 문제였다. 선가는 여기서 중앙집권 지향의 유가와 분산․자유를 요구하는 도가의 상반된 모순을 통일해 선농일치의 보청법을 개방함으로써, 승단과 농민이 국가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대안(代案)으로 제시했다. 보청법은 농민선(農民禪)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 선승들은 문인적인 습기(習氣)가 점점 증가되면서 청담가적(淸談家的) 경향으로 흘렀다.

인도불교의 출가수행과 계율은 중국인의 생활방식․윤리․도덕관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승려의 독신주의와 일을 하지 않는 ‘무노동’에 대해 내심 강한 반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선종은 일찍이 이 같은 반감을 의식해 4조 도신(道信)과 5조 홍인(弘忍) 때부터는 유가의 윤리도덕을 수용하고 농민의 생활방식과 사유체계를 그대로 도입했다.

농선병행의 수행생활은 선종 특유의 자연주의적 풍도(風度)를 드러내 보여준다. 선종은 선수행과 물을 긷고 나무를 나르는 농민의 일상생활을 하나로 통일, 특유의 도풍(道風)을 확립함으로써 농민 등의 광범한 호응을 받았다.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선종이 농선병행을 통해 현실 생활 가운데서 생명의 본질을 체오(体悟)하는 자아해탈의 사유방식을 도출해 냈다는 점이다.

선종의 스승과 제자들은 농선병행과 각종 잡일들을 하는 중의 상호 문답을 통해 선리를 공부한다. 여기서는 추상적 술어나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공중을 날아가는 새나 논둑을 기어가는 뱀과 같은 생동적인 화두가 선리를 상량(商量)하는 교재가 된다. 따라서 선종은 언제나 돌발적이고 생동적인 화두가 흘러 넘치면서 노동에 대한 열정과 낙관적인 정신으로 전통적 과구(窠口)에 떨어지지 않는 특색을 지닌 불교발전에 있어서는 지대한 영향을 준 새로운 조류를 형성했다.

이는 전적으로 농민들이 생동적인 상황들에 늘 직면하면서 직관적 감수성으로 문제를 해명해 나가는 생활방식과 일치한다. 선림의 화두(공안)들은 농민의 돌발적인 현장성과 즉흥성을 그대로 다고 있다. 화두의 속성은 ①돌발성, ②기특성, ③암시성, ④몽롱성, ⑤상외지의성(象外之意性), ⑥불가반복성(不可反復性) 등으로 요약된다. 화두의 이 같은 속성들은 대부분이 소생산 농업사회의 농사일과 상통한다.

화두의 특징은 악보가 없는 채 현장성과 즉흥성을 따라 연주하는 재즈음악의 속성과도 일치한다. 선이 거듭 강조하는 ‘자성청정(自性淸淨)’은 바로 이러한 농민과 아프리카 흑인들의 순수한 원시성에 다름 아니다.

선승들의 노동(농사일)은 왜 수행(修行)이 되는가, 선승들은 농사일을 통해 ‘원시 경계(생명)’를 들여다 보는 선적 체험과 물아일체의 ‘고급 무의식상태(열반)’를 체험한다. 선수행이란 곧 선적 체험이다 선이 요구하는 체험은 원시경계와 심미(審美)경계의 체험이다. 선승들의 농사일은 바로 자연에 대한 ‘심미’이기도 하다. 앞에서 소개한 화산 선사의 선시에 담겨 있는 시정(詩情)도 바로 ‘자연심미’이다.

자연심미는 선이 목표하는 심리적 평형상태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회심(會心)과 식심(識心)의 중요 내용이기도 하다. 선은 생명의 각성이며 생명의 가치에 대한 대긍정이다. 생명의 가치에 대한 대긍정이 곧 지혜의 획득이요 보리의 파악이다. 선은 ‘무정설법’(無情說法: 돌과 시냇물 같은 무정물도 설법을 하고 듣는다는 선사상)을 통해 무정물에까지도 생명의 가치와 도덕적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 선승들은 이러한 생명의 대긍정을 농사일 중의 자연심미를 통해 체득한다.

봄이 오니 풀이 스스로 푸르구나(春來草自靑). 《경덕전등록》 권30.

중당(中唐) 선습 남악나찬 화상의 〈낙도가(濼道歌)〉에 나오는 유명한 선구(禪句)이다. 자연심미에서 체득한 원시 경계의 생명에 대한 경외이며 감탄이다. 후일 운문(雲文) 선사는 불법의 대의를 묻는 학인의 질문에 이 선구로 대답을 대신했다. 불법의 진리란 번쇄하고 난해한 형이상학적 개념도 아니고 미사여구의 경전적 설법도 아니다.

봄이 오면 길가, 논밭 등에서 쉽게 만나는 온갖 풀 등의 파릇파릇한 새싹들에서 감오하는 생명인식 바로 그것이다. 선승과 농민들은 논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산속을 헤매며 자가 치료용 약초를 채취하는 ‘노동’이라는 수행과정을 통해 이 같은 생명의 신비감과 그 본질을 체감한다. 농민들의 심령 깊은 곳에 누적돼 온 인간과 자연의 공존 및 융합이라는 ‘집단 무의식’은 혜능의 선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자연 규칙에 순응하는 농민의 생활방식이 혜능선의 자아해탈에 침잠돼 펄펄뛰는 생명철학을 탄생시켰다.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농민의 자연 순응적 생활은 선이 갈망해 마지않는 언제나 생동적인 영원한 생명을 가진 대자연의 일부이다.

4. 맺는 말

농민들의 자립적인 소농 경제체제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는 선종의 돈오와 농선병행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의 하나는 염세적․비관적 불교의 문제이다. 선적인 깨달음의 핵심내용인 생명에 대한 대긍정은 흔히 일반에 알려져 있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의 허무주의, 비관주의적 불교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해탈이다.

혜능은 해탈을 속세를 떠나지 않는 ‘정신적 초연’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몸을 고목처럼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불씨 꺼진 재처럼(身如枯木 心如死灰)”한 채 앉아 있는 고목선(枯木禪)을 단호히 거부한다. ‘선(禪)’이란 ‘생명의 유동’을 뜻한다. 선승들이 농선병행을 하는 논과 밭이라는 자연은 생명이 유동하는 곳이다. 그래서 바로 논밭의 노동이 곧 수행이 된다.

선사상이 설파하는 한도인(閑道人)․만법본한(萬法本閑)․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 등의 ‘한가로움’이나 ‘일없음(無事)’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에 티끌만큼의 집착도 없는 무심(無心)을 뜻한다. 원래 선법은 무위법(無爲法)인데 진정한 무위란 ‘하지 않는 일이 없는(無不爲)’ 모든 일의 완수를 뜻한다. 그렇기에 무사(無事)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최근의 실화 한 토막을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한 미국 기자가 멕시코 시골의 농촌을 취재하러 갔다. 그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기자는 아침 일찍 시장을 둘러보던 중 자몽 5개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와 팔고 있는 한 남루한 차림의 노파를 보았다. 오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다 보니 노파의 자몽은 2개 밖에 팔리지 않은 채 3개나 남아 있었다. 기자는 노파에게 “나머지 자몽을 다 사줄테니 일찍 집으로 돌아가라”고 측은지심의 동정심을 발휘했다. 이때 노파는 단호한 어조로 기자에게 말했다. 즉 “이 자몽을 당신에게 다 팔고 나면 내가 오후에는 팔게 없지 않느냐”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노파에게는 어서 자몽을 다 팔고 돌아가 쉬거나 일을 하는 것이 상식적인 논리이다. 그러나 노파는 이런 세속의 상식을 뛰어넘은 선자(禪者)였다. 그의 대답은 생명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진정한 생활이란 빨리, 많이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활동하는 데 있다는 생활철학이다. 이 노파의 삶이 바로 선적인 삶이다. 멕시코 노파의 이야기는 공자나 장자 시대의 옛 일화가 아니다.

바로 오늘날의 이야기이다. 혜능의 선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팔만대장경 속도 아니고 정적만이 흐르는 산사의 선방도 아니다. 선은 바로 멕시코 노파의 자몽 보자기 안과 농부들이 앉아 쉬고 있는 논두렁 위에 있다. 과연 시간에 쫓기고 타산적인 도시문명에 사는 기자와 농촌문명의 노파 중 누구의 생활이 더 과학적이고 냉정한 객관적 삶을 사는 생활일 것인가?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질문 앞에 당혹해 할 수밖에 없다.

이은윤 
전〈중앙일보〉국장․종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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