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미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왔지만 지난 해 여중생이 죽음을 당한 이후로 부쩍 반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규모 촛불시위가 연속적으로 열렸고 운동권 학생들은 훈련 중인 미군 부대를 급습하기도 했다. 물론 사회의 일각에서는 친미, 아니 친미보다는 종미주의(從美主義: 미국에 종속해 있자는 운동)의 움직임도 강하게 있었지만 그쪽 계열의 운동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겠다.

사람들의 촛불·침묵시위를 보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은, 물론 저런 시위도 해야겠지만 과연 우리가 정말로 미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국민들인지 의아심이 드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미국은 한국인들의 모국이자 영원한 조국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대체로 세 나라로 나누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세 나라라 함은 지방민국, 강북민국, 강남민국, 이런 세 나라를 말한다.

이 가운데에 지방국민들은 모두 서울만 바라보고 살고 있고 서울 사람들은 강남만 바라보고 산다. 강남 중에도 가장 핵은 대치동 혹은 개포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이 사슬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대치동이나 개포동을 포함해 이 강남민국 사람들은 모두 미국만 바라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회만 되면 미국으로 튈 생각을 한다. 원정출산 같은 게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게다가 국민 반 이상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데 그 일 순위 대상국이 미국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 국기를 불태우고 미군은 돌아가라고 외치고 다닐 때 정작 미국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혹시 어이없어해 하지 않을까? 나는 미국인들이 ‘if there was no America, then no Korea(미국이 없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6·25때 남한을 지켜주었고 그 뒤에도 가없는 원조를 제공했으며 지금까지도 한국의 상품들을 사주어서 한국의 경제개발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미군을 주둔시켜 한국의 안전과 군사비 절감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아직도 모든 것을 우리(미국)에게 의존해 살면서 이제 와서 살만 하니까 우리를 내치려고 하니 참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미국인들은 우리가 아무리 반미를 외쳐도 내심으로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한국이 미국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거의 미국의 속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여러 가지 때문에 놀라게 된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한집 건너 있는 교회라고 한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보면 마치 그네들의 공동묘지처럼 보일 게다. 온통 (빨간) 십자가만 보일 테니 말이다.

서양에서는 교회가 텅텅 비어 가는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가 번성하는 나라, 이 나라가 한국이다. 아시아 지도를 펴보라. 기독교가 들어가 성공한 나라가 거의 없는데 아마 이 남한만이 유일한 예외에 속할 것이다(필리핀 제외). 성공해도 이렇게 빨리 성공한 나라가 없다. 전국이 십자가로 도배되어 버렸다. 어떤 마을에 가든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농촌에 교회가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하다 못해 가장 유교적인 마을이라고 하는 하회 마을에도 교회가 있다. 그런데 거개의 국민들은 이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한 종교가 어떤 나라에 들어온다는 것은 결코 그 종교만이 들어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항상 그 종교를 만들어내고 받아들였던 나라들의 문화가 같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가령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고구려의 소수림왕이 아무 마찰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불교가 지니고 있었던 문화가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에 그대로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불교가 만들어진 인도나 그 뒤에 불교가 전파된 중앙아시아나 중국의 문화들이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뒤쳐져 있었던 고구려나 백제는 그 최상급의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됐을 때 기독교의 교리와 함께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가 엄청난 기세로 들어오게 된다. 특히 기독교의 주종을 이루는 개신교는 미국 일색의 종교로 보면 된다. 개신교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경우 미국 문화나 미국적인 가치관을 나의 것으로 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이런 분석은 내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헌팅톤은 이 책에서 한국은 문화적으로는 중화문명권에 속하나 천만이라는 친미 혹은 친서양분자들이 있어 앞으로 정치(문화)적으로 중국이나 미국 가운데 어디에 붙을지 귀추(歸趨)가 주목된다고 하였다. 이 친미(서양)분자들이 누굴까? 바로 천만에 달하는 기독교 신자들이다. 더 나아가서 중국이 초강대국이 된 다음에 미국과 패권을 다투게 된다면 그때 한국이 과연 어느 편에 설지 궁금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는 친미주의자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기독교인이 됨으로써 문화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미국적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입으로만 반미를 외친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정한 반미가 되려면 바로 이러한 미국적인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아니 반미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엇가서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데 어찌 반미를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시급한 일은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일 아닐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단 시일 안에는 죽었다 깨나도 미국의 손바닥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정신만 차리면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 차리는 것이 자꾸 어려워지는 것은 기독교 세력이 자꾸 증가하고 또 그들이 실세를 장악해 나아가고 있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의 성장세는 멈출 줄을 모른다. 아니 드디어―실제의 세력 면에서는 이미 불교가 기독교에 뒤져 있었지만―수적으로도 불교는 기독교에 밀리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민족 종교 가운데 가장 큰 종교인 불교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인 학자 가운데에는 불교를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데 불교 학자들 가운데에는 기독교 신학을 전공한 이가 거의 없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게임은 끝난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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