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성 <본지 주간>

불기2545년 9월5일. 이날은 한국불교사에 영원히 남을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다. 불교 전래 1600년, 고려대장경이 완성된 지 700년 만에 드디어 우리말로 번역된 한글대장경을 완간하고 기념법회를 가진 뜻깊은 날이기 때문이다.

총 318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한글대장경 완간을 바라보는 불자들의 가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1964년에 설립된 동국역경원이 2년 뒤에 《장아함경》을 출간하면서 시작된 이 불사가 회향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37년이나 됐다. 국고보조와 종단지원비, 후원금 등 총 2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간 역경(譯經)사업은 역경(逆境)을 극복한 끝에 이루어낸 불사(佛事)였다. 사업비 부족, 전문번역가 부족 등의 어려움으로 한때 중단될 위기에까지 놓인 이 불사가 성공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초로 이 사업을 발의한 초대 역경원장 운허(耘虛)스님, 그의 제자이자 4대 원장인 월운(月雲)스님의 원력과 공덕은 역사에 남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사업이 어느 정도 가치 있는 것인가는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현존 세계의 대장경은 어본(語本)을 기준으로 하면 다섯 종에 불과하다. 경전의 원본으로 꼽히는 팔리어본 즉 남전대장경은 불멸(佛滅) 후 4차례의 편집회의를 거쳐 경율론 삼장의 형태로 정리된 최초의 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팔리어가 일정한 서체가 없는 까닭에 필요로 하는 나라의 서체로 전환이 가능하다. 이 장점 때문에 팔리어대장경은 동남아 각국에 전파되었고 근대에 와서는 스리랑카, 타이, 미얀마 등의 국가가 자기 나라 문자로 활자화했다.

팔리어본을 제외하면 번역본은 한글대장경을 포함해 4개어 본에 불과하다. 집록(集錄)이 가장 풍부한 대장경으로 일컬어지는 한역(漢譯)대장경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번역사업이 시작돼 무려 9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역경승의 각고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한역대장경을 완성했다. 한역대장경은 송대에 이루어진 송장(宋藏)을 비롯해 금장(金藏), 원장(元藏), 명장(明藏) 청장(淸藏) 등이 있고, 우리 나라에서 집대성한 고려대장경, 일본에서 정리한 대정신수(大正新修)대장경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대장경인 티베트대장경도 7세기에서 14세기까지 800년에 걸쳐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 번역사업을 추진한 끝에 완성된 것이다. 티베트의 송첸감포 왕은 대장경 번역을 위해 범어를 모방한 문자를 만들고 문법서를 만들어 경전을 번역케 했다. 티베트대장경은 경장과 율장을 칸규르, 논장을 덴규르라고 하는데 북경판, 넬게판, 나르탕판 등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완성된 번역본은 1881년 리즈 데이비스가 주동이 돼 런던에서 결성된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가 영어로 번역한 팔리대장경이 있다. 색인을 포함해 56권으로 이루어진 PTS판 팔리대장경은 불교를 서구에 소개하고 연구케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장경이다. 일본의 경우는 1929년부터 10년간 한역대장경을 일본어로 번역한 국역일체경, 팔리대장경을 번역한 남전대장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나라도 고유의 말과 글로 번역된 한글대장경을 갖게 된 것이다.

한글대장경의 완간은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대장경 가운데 또 하나의 역본을 갖게 되었다는 외형적 성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로 인해 파생될 숫자로 계량할 수 없는 효과와 공덕이다. 그 징후는 이미 한글대장경의 첫 권이 출간되던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불교는 불경이라면 《화엄경》이나 《법화경》 《능엄경》과 《금강경》을 전부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함의 경전은 가치가 없는 소승경전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출간된 아함부 경전은 부처님이 육성으로 가르친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자료였다. 이제는 상식이 된 초기불교의 중요성이 고익진에 의해 ‘아함불교’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도 아함부 경전이 번역된 이후의 일이었다.

한글대장경의 완역이 갖는 최대의 성과는 이렇게 누구나 쉽게 불교의 경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까지 불자들이나 일반인들이 부처님과 만나는 접근 통로는 스님의 설법, 또는 개략적인 개론서 등을 통해서였다. 물론 모든 불자들이 다 대장경을 완독할 수 없는 형편에서 이 방법은 가장 효과적인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시하지 못할 함정이 있다. 불설(佛說)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멋대로의 설법이나 해설에 빠질 가능성이다. 불교의 역사는 이런 왜곡과 변용이 적지 않게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전은 이때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무엇이 외도의 가르침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거울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대장경 완역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글대장경의 완역은 이제 한국불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한글 불교’로의 과감한 전환이다. 우리 나라 불교는 그 동안 우리말과 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중심으로 종교생활을 해왔다. 경전의 독송과 해설은 한문경전이 중심이었다. 심지어는 의식마저 한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왔다. 뜻도 모른 채 입으로만 불경을 외우고 의식에 참여해온 것이다. 그 결과 불자들은 읽고 있는 경전과 행하고 있는 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농맹(聾盲)이 되어야 했다.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 배포하고, 천주교가 1975년부터 라틴어 《미사경본》을 한글로 번역해 우리말 전례(典禮)를 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한국불교가 이처럼 한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문경전을 원전으로 인식해온 탓이 크다. 무슨 이유에선지 우리 나라에서는 한문경전만을 ‘불경’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경의 원전은 팔리어경전이나 범어경전이다. 한문경전은 범어나 팔리어 경전을 번역한 것이다. 왜 중국이 원전인 팔리어나 범어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국사람들에게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한국불교가 굳이 한문경전과 한문의식을 고집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한글대장경 완역 출간을 계기로 한국불교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은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기록하고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이다. 부처님은 남전 율장 《소품》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이른바 성전(聖典)언어인 범어로 가르치지 말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야메루와 테쿨라라고 하는 두 비구가 있었는데 그들 모두는 바라문 출신이었다. 좋은 음성과 함께 좋은 발음을 구사하였다. 그들은 세존에게 와서 예를 올리고 존경을 표할 만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이름과 성과 집안 그리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출가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말을 써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성스러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세존이시여, 저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베다》의 싯구어(chandaso)로 옮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그들을 꾸짖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어떻게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느냐? 그것은 결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의 바꿈이거나 아니면 그러한 것을 더 바뀌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바뀌지 않을 것은 그대로 두고 사람들을 되돌리는 것이 차라리 낫다.”

부처님께서는 두 바라문 출신의 비구를 꾸짖고 난 후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깨달은 자의 가르침은 ‘《베다》의 싯구어(chandaso)’로 가르쳐져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베다》의 싯구어(chandaso)로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가르치면 돌길라(突吉羅=惡作)죄를 범한 것이 된다. 비구들이여, 나는 깨달은 자의 가르침은 각각 ‘자신들의 언어(saka?a niruttiya?’로 배우도록 한다.”(Vinaya Pitaka, vol.Ⅱ.139. Cullavagga)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이제 더 이상 악작(惡作 ; 나쁜 짓)을 짓지 말고 하루 속히 한글 불교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한글경전을 독송하고, 우리말로 된 의식을 행하며, 법어도 우리말로, 법당의 주련도 한글로 걸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한글대장경 완간의 참뜻이 살아난다. 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도 신수대장경이 아니라 한글대장경을 읽고 인용하는 일이 상식으로 통하는 그런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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