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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 홍사성
홍사성 본지주간
[5호] 2000년 12월 12일 (화) 홍사성 본지주간
   

홍사성
본지주간

중국 신문학의 개척자 노신의 대표작 《阿Q正傳》은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유랑하는 날품팔이꾼 아큐의 일생을 통해 중국 민족의 약점과 중국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병폐가 무엇인가를 폭로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큐는 4천년간 퇴영을 거듭한 중국 사회가 빚어낸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민족적 위기 앞에서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궁핍한 물질생활에도 정신적 만족에 그쳐 현실을 외면해 버린다. 민족의 치욕을 잊어 버리고, 병을 앓으면서도 의사를 기피한다. 남의 뒤를 따라 공연히 부화뇌동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아첨한다.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근성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면서도 지난날의 영광을 자랑하면서 행복은 다만 환상에 맡기려 한다. 아큐의 이같은 행태는 중국 민중이 가지고 있는 퇴영적 관념주의로, 노신은 이를 ‘정신적 승리법’이라고 비꼰다. 정신적 승리법이란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침닉(沈溺)되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서 자기 만족에 젖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중국 사회가 반식민지 반봉건적 사회를 극복하지 못하고,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아큐가 보여준 과거의 영광에 대한 자랑과 정신적 승리주의는 한국불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보면 과거의 영광을 들먹이는 데 불교만큼 열심인 종교도 없다. 한국불교는 언필칭 1,600년 역사와 2천만 불자를 자랑으로 내세운다.

불교는 곧 한국 민족과 동의어며, 불교를 제외하고는 종교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생활용어 대부분이 불교용어이고, 사유체계와 가치체계는 불교에서 절대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정문화재의 70% 가까이가 불교문화재이며 외국인에게 보여줄 만한 것은 사찰을 빼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이것만 보아도 불교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영향력 있는 종교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불교가 수천년간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옛날의 일이지 현실은 아니다. 과거에는 몰라도 현대에서는 전혀 영양가 있는 종교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불교를 역사적 유물이거나 미신적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유명한 고찰을 찾는 사람들은 역사유물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지 종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사찰이 역사적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 수준으로 전락할 때 불교는 생명력 없는 박제종교의 신세를 면할 수 없다. 형편이 이러한데도 과거의 영광만 들먹인다면 불교는 너무 깊은 나르시즘에 빠져 있는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정신적 우월주의는 도리어 불교를 희화화하고 있다. 현대사회가 서구적 물질문명과 그에 따른 문제점으로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양을 지배해왔던 이분법적 사유체계는 대립과 투쟁, 압박과 피압박의 갈등구조를 재생산할 뿐이다.

현대의 지성들은 이데올로기의 갈등, 인간상실, 환경문제와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으로 불교를 주목한다. 서양에서 불교가 붐을 일으키는 것은 불교가 새로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사상인가를 말해준다. 바야흐로 세계는 불교의 원융적이고 불이적(不二的)인 논리에서 인류문명의 미래를 전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 자체로 보면 이같은 기대가 한낱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불교의 현실은 전혀 이러한 기대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가 단순한 이론체계가 아니라 실천을 전제로 한 종교라고 할 때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동체대비(同體大悲)’ ‘세계는 연기적(緣起的) 존재’와 같은 단음절의 용어나 구호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이 경우 가장 적절한 비유다. 훌륭한 가르침과 진리를 가진 종교라도 그 역할을 못한다면 훌륭한 진리는 도리어 웃음거리의 소재가 된다는 뜻이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한국불교는 너무 어깨에 힘만 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무조건 불교가 최고라고 폼만 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서 떠나갔다. 종교인구 분포에서나 사회적 영향력에서 서양종교에 뒤쳐진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도 한국불교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 보아야 서양종교는 한계에 이르렀으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이념은 불교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록 시세불운하여 서양종교에게 독점적 위치를 내주었다고는 하나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와 같은 신념과 고집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불교는 노신이 말한 대로 현실의 문제를 도피하는 ‘정신적 승리법’에 너무 깊게 침잠돼 있다. 현재 한국불교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화살처럼 빠른 문명의 진보를 따라잡기에도 숨이 헉헉 차는 판에 아직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불교라고 착각하고 있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고민에 대한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불교는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는 종교인 것이라고 믿는다.

한마디로 환상과 착각이 불교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한 가지만 물어보자. 주기적으로 세속을 실망시키는 모습으로 과연 새로운 시대를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술 주정하는 사람치고 스스로 술에 취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마취와 몽환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몽환에 빠진 사람은 현실을 거꾸로 보거나 착각한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성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다가 다리를 헛딛어 허방으로 떨어진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몽환상태는 이렇게 자신을 망친다. 몽환적 마취상태는 현실이 아니다. 취중에서 아무리 육도삼략을 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한 걸음도 꼼짝할 수 없다. 한국불교는 지금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냉정하게 깨달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태로는 아무리 불교가 위대한 진리라 하더라도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나 다름없을 뿐이다.

노신은 〈요극(姚克)과의 담론〉이라는 글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어떤 절세미인에게 부스럼이 생겼다고 하자. 이를 본 애인이 그 사실을 감추고 다만 미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인은 부스럼이 깊어져 미모를 망칠 것이다. 참으로 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지적해 미인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서 의사를 찾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다.” 지금 한국불교를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실을 회피하고 ‘정신적 승리법’에만 매몰돼 있는 몽환의 상태를 일깨우는 일이다. 지식인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불교 지식인들조차 당장 있을지 모를 미인의 눈흘김이 두려워 입을 다문다.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두려워 아예 피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깊은 잠에 빠진 미인을 누가 깨울 것인가. 전도몽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바로 불교의 깨달음이다. 남을 깨닫게 하기에 앞서 불교부터 전도몽상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불교평론〉은 이런 사명감으로 창간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아직은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달려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난 1년간의 성과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많은 기대를 해주었으면 한다. 그 동안 뜻을 같이하고, 분에 넘치는 성원을 보내준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우리는 계속 정진할 것이다.

2000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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