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회원

1. 자아의 죽음

완벽한 죽음이 도대체 가능이나 할까? 이런 질문이나 의문이 놀라운 것은 난이도 때문이 아니다. 물음의 생경함 때문이다.

삶의 목적은 죽음이 아니요 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설교자들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딱히 누구인지는 몰라도 무척 자상하게 그렇게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생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여 살아가기란 너무도 힘들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어떤 행동을 취하지도 못한다. 분명한 자기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슬픔 같은 게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은 다시 메아리친다. 그리곤 안위 비슷하게 우리를 감싼다. 비밀을 다 알지만 발설하지 않는 그런 거다. 이렇게 생은 일종의 습관이나 존재 자체의 무게로 진행된다. 이게 답인지도 모른다. 삶의 이유를 알려면 반복의 횟수를 세든지 아니면 저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아무 까닭 없지만 삶을 지향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그 반대는 부정적이거나 허무적이다. 적어도 일상에서는 그렇다. 여기서 삶의 반대는 죽음이다. 죽음은 삶을 마감하는 사건으로 보이기 때문에 삶과는 대립적인 형식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과연 죽음은 최종적인 상황일까? 불교적 입장에서 죽음은 최종 상황이 아니다.

죽음은 단지 하나의 굽이일 뿐이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약간의 요철을 지나면 또 그렇게 진행되고 차이 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죽음은 삶보다 더 즐겁지도, 더 고통스럽지도 않다. 어떤 의미에서 불교는 죽음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죽음을. 이 색다른 죽음에서는 생과 사는 요절한다. 생사를 매개하는 주체의 죽음 때문이다. 이렇게 주체의 부정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불교 전통은 그것의 근거로 연기법을 제시한다. 연기적 상황에서 자아나 주체는 설자리가 없다.

중관철학은 자아와 주체의 부정형식으로 연기법을 극한까지 밀고 간다. 이 극적인 도약은 용수에 의해 주도됐고 중국에서는 승조(384∼414)의 강렬한 문장을 통해서 전파된다. 자아에 대한 승조의 입장은 《중론》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먼저 주체의 죽음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런 도발적인 단언은 당시 중국인의 사유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시도일 수 있었다.1) 1)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중국인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한 점은 윤회관과 반야공관이다. 윤회설은 종교적인 면에서, 특히 죽음과 관련하여 중국인들에게 불교의 특수성 같은 걸로 비춰졌다. 윤회설이 처음 수입되고 나서 도대체 뭐가 윤회를 하는지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 불교의 수준이 무아윤회설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나’는 육체와 정신이었다. 이런 이원론적인 사고는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중국 사유가 이원론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육체와 정신 가운데 정신이 윤회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교 내부나 외부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그들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반해 반야공관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상당히 철학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이것은 철학적 담론 수준에서

이제설을 통해서 현실적 존재와 화해를 시도하지만 근본적으로 주체나 자아에 대한 부정적 진술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승조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서 우리는 자아나 주체의 의미에 대해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같은 몸이며, 백 살이 되더라도 그 몸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지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만을 알고 몸이 시간을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바라문이 출가를 해서 흰머리가 되어서 귀향하더라도 이웃 사람들은 그를 보고 “옛날 그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라고 한다. 바라문은 “내가 옛날의 그 사람 같지만 사실은 옛날의 내가 아니다.”라고 한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 바라문의 말을 괴이하다고 여겼다.2)2) 〈물불천론〉, “人則謂少壯同體, 百齡一質, 徒知年往, 不覺形隨. 是以梵志出家, 白首而歸, 隣人見之曰: ‘昔人尙存乎!’ 梵志曰: ‘吾猶昔人, 非昔人也.’ 隣人皆愕然, 非其言也. 所謂有力者, 負之而趨, 昧者不覺. 其斯之謂歟?”

여기서 승조는 일상의 인식을 통해서 현상에서 포착하는 자기 동일성(identity)을 언급하고 아울러 그것에 대한 비판을 진행한다.3) 동일성은 형상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고 지속한다. 오히려 형상의 변화나 시간의 경과를 통해서 동일성은 굳건하게 확보된다. 3) 일각에서는 서양철학의 전통은 동일성의 사유이고 중국철학 내지 동양철학은 차이 혹은 관계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점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적어도 중국철학이나 동양철학으로 분류되는 여러 철학 유형에서 동일성의 철학과 관계성의 철학을 모두 볼 수 있기

동일성은 변화라는 상황이 제시되어야만 여러 지점에서 ‘구분 불가능한 것들의 지속’이라는 속성을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동일성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에서는 바로 이런 동일성을 통해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동일자와 타자라는 형식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A라는 동일성을 가진 것과 B라는 동일성을 가진 것, 그 둘의 거리를 차이(difference)라고 한다. 둘 사이의 거리만큼 차이는 발생한다. 그래서 A를 B와 다른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그려내는 방식은 언제나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항이 있어야만 가능한 동일성이다. 차이와 마찬가지로 동일성도 관계에 의해 확인된다. 하지만 동일성의 본래 의미는 관계 항을 갖지 않는다.4) 4) 여기서 동일성은 자립적인 실체를 가리키며, 이런 실체들 간의 거리를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들뢰즈 등의 차이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중론》에서는 자성과 타성의 간격이 바로 차이이다. 하지만 자성과 타성을 인정하지 않는 중관학의 입장에서는 동일

사람들은 늙은 바라문이 나타났을 때 수십 년 전의 바라문이 다시 돌아왔다고 놀라워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살아 돌아왔다고 좋아한다. 살아있는 게 기뻐할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졌던 기억들이 다시 되돌아와 활동할 때는 분명 새로움이 있다. 그래서 즐거움 또한 발생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을 사람들은 무척 반가워한다. 하지만 바라문은 자신이 옛날의 그 사람과 유사할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아니라고 진실을 알려준다. 물론 ‘동일성과 차이’라는 일상의 구도에 혼란을 안기는 바라문의 주장을 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승조는 이쯤에서 개입한다. 우리가 한 개체의 생노병사를 두고 형상의 변화와 함께 개체의 동일성을 함께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을 인식할 뿐 몸이 그것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몸은 5온(蘊, skhandha)을 가리킨다. 즉 물질적 현상이나 정신적 현상 모두 포괄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무상한 실체이다.

하지만 승조는 사람들이 이런 오온 배후에 뭔가를 상정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바로 동일성 내지 자아이다. 사람들은 육체의 배후에 행위를 조작하고 생을 책임지는 주체가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시간의 경과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는 동일성이다. 승조는 그것이 파편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야말로 오온개공의 진리를 확인시키고자 한다. 초기경전에서는 오온과 무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염마가여, 물질과 몸[色], 감수작용[受], 지각작용[想], 의지와 충동[行], 분별의식[識]을 떠나서 여래가 존재하더냐. 아닙니다.

염마가여, 여래 가운데 물질과 몸, 감수작용, 지각작용, 의지와 충동, 분별의식이 존재하더냐. 아닙니다.
염마가여, 물질과 몸, 감수작용, 지각작용, 의지와 충동, 분별의식이 아닌 것이 여래더냐. 아닙니다.(《잡아함경》 제5권 104경)

사리불이 염마가 비구에게 오온과 자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은 오온이 한 개체를 온통 대변할 수는 없지만 오온을 떠나서 그 개체의 모종의 특수성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신이 자아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외부에 자신의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아를 집에 두고 외출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적어도 ‘자아’는 그런 관계 속에서나 이야기할 법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명한 감각이나 인식활동에 근거해서 그런 것의 주체를 상정하고, 그것의 지속을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승조는 사람들이 몸이 시간의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된다고 간주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사리불의 말대로 오온을 떠나서 여래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여래 가운데 그것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온이 여래이지도 않다. 자아라는 사실은 그런 관계에서 잠시 포착되는 상황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중론》에서도 자아나 실체가 자기 독립적으로 형성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도 시각과 그 밖의 다른 모든 기능들에 앞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각 등의 어떤 하나에 의해서 어떤 순간에 알려지는 것이다.”(9-6)5) 여기서 사람은 개별 실체를 가리킨다. 하나의 개체를 독립시키는 주체이다. 5) 《중론》 인용은 김성철 역주, 《중론》(경서원, 1993)과 스트렝, 남수영 옮김, 《용수의 공사상연구》(시공사, 1999)의 부록으로 번역된 《중송》을 함께 참고했다. 《중론》인용에서 몇 품, 몇 송인가를 숫자로 표시했다.

《중론》에서는 이것을 본주(本住, pu칞va)라고 했다. 감각활동에 앞서서 그 활동을 주재하는 존재가 바로 본주이다. 자아나 주체, 또는 동일자는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모든 기관을 관장하거나 기관의 활동을 종합하고 판단한다. 다시 말하면 연기하는 상황을 벗어나서 무언가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본주이고 또한 이것이 모든 활동 또는 현상에 앞선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중론》의 제11장 〈관본제품〉에서는 생사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과거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산출된 것(ka칞ya, 果)과 그것의 원인(ka칞an.a, 因), 특징(laks.an.a, 相)과 특징지어지는 것(laks.ya, 可相), 감각(vedana? 受)과 감각하는 자(vedaka, 受者)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사물들,(11-7) /윤회의 ‘과거의 끝(Pu칞va?kot.i, 本際)’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모든 사물들의 ‘과거의 끝’도 찾을 수 없다.(11-8)

《중론》의 제9품에서 제기한 본주(本住)는 공간적으로 어떤 사건에 선재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여기서 말하는 본제는 시간과 관련된다. 불교적 입장에서는 어떤 사건도 그것의 시작을 가지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는 둘의 관계를 통해서 그것의 형식이 수립된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라는 출발시간은 없다. 어느 사건을 시간의 좌표 상에 고정시키고, 그것의 발생과정을 역추적 한다고 해서 사건의 처음 시간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출발하자마자 벌써 사건은 사라지고 만다. 그 사건은 과거에 있지 않다. 불교의 논리를 따르자면 사물은 태초를 가지지 않는다. 태초를 사유하는 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반면에 태초를 사유하는 철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넘쳐난다.

불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도철학과 종교가 그러하고, 중국의 도가나 유가의 사유에서도 이런 점은 충분히 발견된다. 불교는 최초 형성기부터 형이상학적 실체를 거부했으며 자아라는 주체를 상정하길 원치 않았다. 모든 골칫거리는 바로 자아 내지 주체라는 관념에서 발발함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그들은 줄기차게 무아(無我, ana칣man)와 무자성(無自性, nih.svabha칥atva)을 웅변했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들은 탈주체의 사유를 통해서 현실의 속박을 돌파하려 했다. 승조도 사물의 무자성을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앞서 동일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언급했지만 변화라는 관념은 시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선행해야 한다.

만약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이르지 않고 현재의 사물도 과거에 이르지 않는다면 사물 각각의 성질은 그것이 속한 고정된 시간에 한정될 뿐이다. 어떤 사물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거나 현재에서 과거에 이를 수 있겠는가?6)6) 〈물불천론〉, “若古不至今, 今亦不至古. 事各性住於一世, 有何物而可去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변화의 부정이 아니다. 그는 변화라는 관념에 깔려 있는 자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중론》에서는 “같은 존재는 변화하지 않고 다른 존재 역시 변화하지 않으며, 젊은이가 늙은이로 되지 못하고 늙은이도 젊은이로 되지 못한다”(13-6)고 말한다. 이것은 승조의 언급과 동일한 맥락이다. ‘늙은이’라는 자성을 가진 존재는 ‘젊은이’라는 자성으로 전환할 수 없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자성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반야계 경전인 《금강경》에서도 공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공(空)’이라는 술어가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신 ‘부주(不住, apratis.t.hita)’라는 개념이 제시된다. ‘부주(不住)’나 ‘무주(無住)’는 머물지 않음이다. 여기서 머뭄(住, pratis.t.hita)7)은 운동체가 한 지점에 정지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의식이 한 지점을 중심으로 간단없이 배회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런 중심을 향해서 모든 의식의 흐름을 조작한다.7) 물론 본래 의미는 住着, 즉 執着이다. 의식이 가지는 습관적인 지향을 가리킨다. 이것은 다른 의식의 활동을 제어하고 필요에 따라서 왜곡하기도 한다.

이것은 의식의 강한 습속이며 엄청난 관성이다. 이렇게 패인 골로 의식의 물살은 가쁘게 흘러 다닌다. 공성의 다른 이름인 무주는 이렇게 꿈 없이 흐르는 물길을 함부로 뛰쳐나오는 것이며, 온통 범람하는 것이며, 결국 길을 지우는 것이다. 유마거사도 이야기했다. “보살이 이렇게 길 아닌 길을 갈 때, 비로소 온갖 불법을 성취합니다.”8) 이것이 자아의 죽음을 여미며 공성을 실천하는 불교의 윤리학이다. 8) 구마라집 역, 《유마힐소설경》 중권, 〈불도품〉(대정장14, p.549상).

2. 존재의 형식

승조가 생활한 시기는 흔히 위진 남북조로 알려진 정치적 혼란기였다. 하나의 통일제국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침략전쟁이 빈번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뜻밖에도 다양한 철학실험이 가능하게 했다. 단지 국가나 사회의 통치술이라는 측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유 공간과 시도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대의 철학이 주로 관방 유학에서 그친 것과는 달리 위진대는 그런 정치적 맥락과는 다소 거리를 둔 사유들이 존재했다.9) 철학사에서는 위진시대를 현학의 시대로 쉽게 기술한다.9) 현학이나 불학이 정치적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몇 가지 점에서 그들도 통치 집단이나 정치와 관련되어 있었다. 경제나 정치면에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던 대귀족들은 굳이 정계에 진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정치지위는 세습됐기 때문이며 그들의 대규모 장원은 충분한 경제력을 확보하게 했다. 바로 이런 정치 경제적 토대 위에서 발랄한 사유가 실험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동진의 귀족 정치에

하지만 현학만이 독존했고 유학이나 불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현학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발전했다는 말일 것이다. 현학가들의 철학적 논쟁은 주요하게는 ‘유와 무’의 문제(有無之爭)로 귀결된다. 몇몇 고전 주석가들이 선도한 논쟁은 중국철학사에서 철학 자체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 계기였다. 이런 철학적인 맥락 속에서 승조를 위시한 반야학자들이 나타난다.

승조가 불교사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현학과 결합한 상태로 지속되던 애매한 반야학을 《중론》의 문법을 통해서 다시 기술했기 때문이다. 현학가들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던 사물의 진실성을 승조의 중관철학은 과감하게 부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한 궁극적인 자유의 본체로서 도나 혹은 무의 존재와 그것에 대한 추구를 부정했다. 승조가 말하는 진실한 존재란 현학가들이 진실하다고 말하는 그 사물의 공함 자체이다. 사물이 공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실하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식의 문제이다. 존재의 궁극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로 귀착한다. 존재론과 인식론이 교차하는 지대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승조는 위진현학의 철학입장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승조부터 격의(格義)가 아닌 진의(眞義)의 불학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원형에 가까운 정도로 철학의 완성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중국불교에서 가장 인도적인 불교가 가장 우수한 불교가 될 것이다.

승조가 위대한 철학자로 자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중관학의 원음에 접근했다는 점만은 아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중국철학사에서 처음으로 존재(bha칥a)와 비존재(abha칥a)를 비켜나서 사유했다는 사실이다. 승조는 처음으로 유·무 논쟁10)의 뿌연 안개를 뚫고 나왔다. 용수의 다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10) 유·무 논쟁에서는 무와 유의 관계, 정지와 운동의 관계, 보편과 특수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우주 본체로서 무와 사물 현상으로서 유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의도이다. 하안, 왕필의 귀무론, 배위의 숭유론, 곽상의 독화론 등 모두 이런 철학 주제를 가지고 유무의 관계를 밝히려 했다. 원정근, 〈위진 철학에서 ‘무’와 ‘유’의 논쟁〉,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 예문서원, 1994, 참조.

모든 존재자에서 존재나 비존재를 보는 어리석은 자들은 대상이 가라앉은 고요한 상태의 상서로움(적멸, upas큑ma)을 보지 못한다.(5-8)11)11) 칼루파하나, 《불교철학사》, 시공사, 1996, 270쪽 참조.

중관학에서는 모든 존재는 공(s큨칗ya)하다고 말한다. 사물의 공함, 또는 공성(s큨칗yata?을 파악하는 것이 존재의 실상(實相, tattvasya laks.an.am)을 터득하는 길이라고 일러준다. 중관학자들은 공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체 법은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다.12) 12) 승조가 비록 중관철학의 입장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용수가 아비달마불교 유부철학을 주요한 논파대상을 삼은 것에 비해 본무종 등 무의 입장을 주된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이점 때문에 중국의 초기중관철학은 《중론》과는 다소 다른 내용을 띄게 된다.

바로 비유비무의 중도실상이다. 서양철학의 용어를 빌리면 ‘존재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나가오 가진은 불교 내부의 존재론을 다루면서 “진정한 존재론은 대승에 이르러, 혹은 나가르주나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다만 그것은 보통 생각하는 긍정의 실재론이 아니라 부정의 원리가 되는 존재론이”13)라고 했다. 여기서 존재론은 관계의 존재론이지 있음의 존재론이 아니다. 13) 나가오 가진(長尾雅人), 김재천 옮김, 〈대승불교의 존재론〉, 《존재론과 시간론》, 불교시대사, 1995, 68쪽 참조.

승조 당시 반야학의 특징은 앞서 말한 유와 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었다. 〈부진공론〉에서는 반야학의 세 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 심무종, 즉색종, 본무종이다. 이른바 6가7종의 반야학의 주장들이 있지만14) 여기서는 승조가 언급하고 있는 위의 세 가지에 대해 알아보자. 단지 반야에 대한 견해뿐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고 유형도 잘 드러난다. 14) 湯用칽, 《兩漢魏晉南北朝佛敎史》, 북경대학출판사, 1992, 제7장 〈석도안시대의 반야학〉 참조.

승조에 따르면 심무종(心無宗)은 “우리의 마음이 외물에 대해서 집착이 없는 것이며 외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15)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분명 현실적으로 번뇌의 소멸이라는 유용성이 있지만 외물에 대해 집착이 없지만 사물의 실상인 공성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15) 〈부진공론〉, “心無者: 無心於萬物, 萬物未嘗無. 此得在於神靜, 失在於物虛.”

그래서 승조가 가장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주장이다. 이런 심무종에 비해 즉색종(卽色宗)은 좀더 생각해볼 점이 있다. 그들은 “물질은 스스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물질이 아니”16)라고 한다. 물질은 그 “자체로서 물질”(卽色)이어야 함에도 그것은 근원이나 기원을 가지기 때문에 궁극적인 의미에서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17) 물론 현학가의 모든 주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귀무론〉 등 사물의 근원을 무로 보고, 세계를 무로 귀속시키려는 경향을 말한다. 아마 이런 주장들도 여러 편차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성향을 말하고 있다.

즉색종은 단지 물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물질(색)이 그 자체가 실체가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 점은 당시 상황에서는 무척 중요하다. 물질현상이 실제 존재하지만 어떤 특수한 조건 하에서 생성했기 때문에 이것이 ‘공’이라는 견해는 잘못된 공의 이해이다. 이것은 사물이 어떤 지점에서 연장했다는 관점에 기반한다. 현상의 배후에 있는 기원이나 이데아 같은 실체를 상정하고 있다. 현상이 공하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현상을 실체라고 보고 있다.

공관에서 부정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실체성이다. 그래서 사물의 출발을 묻지 않고 그것의 나이를 묻지 않고도 충분히 공성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승조가 언급하는 반야학의 일파는 본무종(本無宗)이다. 그들은 당시 상당한 호응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현학가들과 유사하여17) 어쩌면 쉽게 수용됐을 것이다. 그러기에 차라리 더 위험했다. 본무종은 “심정적으로 무만을 숭상하여 말하는 것 모두를 무로 귀결시켰다. 그래서 유를 부정할 때는 유는 무라고 말했고, 무를 부정할 때는 무도 또한 무라고 말했다.”18) 이들은 모든 것의 출발을 무로 돌린다. 18) 〈부진공론〉, “本無者: 情尙於無, 多觸言以賓無. 故非有, 有卽無; 非無, 無亦無.”

이것은 ‘무’를 공성과 착각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매우 많았다. 특히 구마라집 이전의 중국불교의 대표자였던 도안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들은 비유비무의 중도법이 공성인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조론》 주석으로 유명한 감산덕청(감山德淸)은 무에 대한 집착과 관련해서 “차라리 수미산 같은 유견(有見)을 일으킬지언정 개자씨 만큼의 무견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19)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찬드라키르티는 《중송》 제13품 8송을 주석하면서 부처와 가섭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오 가섭이여, 공을 허무주의라는 견해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수미산 같은 거대한 자아 이론을 갖는 것이 낫다.”20)고 했다.

이렇게 공을 무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강하게 경계했다. 본무종은 승조 이전의 불교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승조는 이렇게 반야학가들이 내세운 존재의 여러 형식들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아울러 사물의 본질은 결국 공이라고 단정한다. 〈부진공론〉이란 이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승조는 “참이 아니기 때문에 공(不眞故空)이”라고 했다. 이것은 《중론》의 “의존적으로 발생한 것을 우리는 공성(s큨칗yata?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가명이며 또한 중도의(中道義)이다.”(24-18)라는 대목과 관련된다.

《대지도론》에서 “모든 사물은 특질(相, laks.an.a)21)을 갖는 것도 아니고 특질(相)을 갖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중론》에서는 “모든 사물과 현상은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다. 이것이 제일의제”라고 말한다.22)21) 상(相, laks.an.a)은 특징이나 특질을 말한다. 그것은 모습, 특징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대상에 특징을 부여하고 모습을 밝히는 定義도 의미한다. (가지야먀 유이치, 우에야먀 ?페이, 정호영 옮김, 《공의 논리》, 민족사, 1989, 65쪽.) 이것은 일종의 개념화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은 단지 특징이나 특질의 의미만이 아니라 개념이나 관념 일반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22) 〈부진공론〉, “《摩訶衍論》云: 諸法亦非有相, 亦非無相. 《中論》云: 諸法不有不無者, 第一眞諦也.”

승조는 존재와 비존재에서 비켜나기를 시도한다. 기존의 철학자들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는 어떠한 틈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둘이 연합하면 세계는 완벽하게 포괄된다.23) 그래서 그것들은 어떠한 외부도 갖지 않으며 우주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간주된다. 일상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그 사이를 상상할 수 없다. 세계는 이 개념 쌍 안에 낱낱이 걸려든다. 이것이 일상이다. 23) 이와 관련하여 《중론》의 〈관열반품〉의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3송에서 “존재와 비존재가 함께 합하여 이루어진 것을 어떻게 열반이라고 부르겠는가? 열반은 무위이고 존재와 비존재는 유위인데.”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존재와 비존재로 포착되지 않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불교의 존재 분류 형식을 빌어서 유위와 무위로 구분

그것이 일상인 이유는 어느 때나 어렵지 않게 만나고 포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 쌍은 너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제나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불행한 사고로 사망했다고 하자. 친구의 자리는 빈다. 그 자리로 보면 친구는 부재하며 친구는 자리에 대해 비존재이다. 이렇게 존재라는 대립항을 통해서 비존재는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세계는 천변만화한다.

그래서 한 사물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데 그 사물이 있을 때 없음을 상상하여 비존재를 이야기하고, 없을 때는 있음을 상상하여 존재를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존재와 비존재를 지양한 것인가.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존재와 비존재를 바라볼 때 시간이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중관철학에서 말하는 사물의 공성과 비유비무(존재 아님과 비존재 아님)의 논리에는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다.

《중론》의 〈관시품(觀時品)〉에서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듯 시간의 비진실성을 인정한다면 이런 시간의 개입을 인정할 수 없다. 만약 시간(ka칕a)이 개입되어 한 사물을 바라본다면 한 공간에 여러 가지 사물을 쌓아 놓은 꼴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비유비무의 사실은 사물의 공성을 즉각적으로 알아챈 결과이다.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은 일체의 사물을 완벽하게 제거하거나 눈이나 귀 등의 감관의 활동을 중단하여 아무런 감각 내용이 없고 그래야만 진제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24) 공성은 감각의 무능력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24) 〈부진공론〉, “尋夫不有不無者, 豈謂滌除萬物, 杜塞視聽, 寂寥虛豁, 然後爲眞諦者乎?”

이와 같다면 사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참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물이 참된 존재가 아니라면 무엇을 물질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불경(《유마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질의 본성이 공인 것은 사물이 소멸하고 나서야 공인 것이 아니다.” 성인은 사물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일체법이 모두 공함을 인식한다.25) 어찌 그것을 해체하거나 분석하고 나서야 본성의 공함을 깨닫겠는가?26)25) 공한 존재를 이야기할 때, 공의 의미는 시간이 개입되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상정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현재의 모습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현재적으로 그것의 공성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공의 바른 이해이다. 26) 〈부진공론〉, “如此, 則非無物也, 物非眞物; 物非眞物, 故於何而可物?

무상과 공성은 동일하지 않다. 사람이 살지 않는 초가집은 백 년 정도 지나면 흉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상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서 공성을 느끼면 이는 인식의 과장이다. 무상은 사물의 비영원성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 한 사물이 지닌 자기 정체성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비교적 소박한 자연법칙이 무상이다. 인용문에도 이야기하고 있듯 사물의 공성은 이런 무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공성은 시간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공성을 파악하려고 우리가 인내할 필요는 없다. 눈앞(現前)에서 직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3. 반야(prajn쁝?의 의미

전통적으로 반야의 의미는 사물(事)이나 세계(界)에 대한 바른 이해방식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지혜로 번역했다. 즉 올바른 세계인식이다. 하지만 승조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불교의 반야개념은 다소 변화했다. 그것을 미세하게 분석한다면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크게는 두 가지로 구분가능하다. 지혜와 진리의 의미이다.

두 번째의 의미는 반야가 열반이나 공성 등의 진리개념과 등치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실상을 파악하는 눈으로서 반야는 이제 실상 자체가 되었다. 이것은 중요한 전환점이며 중국불교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고리이다. 이런 전환점은 이후 화엄학이나 선종이 개창할 수 있는 이론적 징후였다.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부진공론〉보다 〈반야무지론〉을 더 크게 평가해야 한다.

물론 중관철학자로서 승조의 면모는 〈부진공론〉에서 잘 나타나지만 그가 가진 독창성은 〈반야무지론〉에서 훨씬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산 혜원과 벌였던 서신 논쟁27)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론》의 편집자가 첨가했다고 보여지는 〈종본의〉28)에서는 반야의 함의를 잘 정리하고 있다. 27) 《조론》에 수록된 유유민과 사이에 오고갔던 서신은 사실 유유민이 스승 혜원을 대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8) 〈종본의〉는 승조의 저술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조론》이 편집되고 나서 최후로 서문의 형식으로 첨부된 글이다. 승조의 중관철학을 완전히 장악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승조 이후의 중국불교의 공사상의 맥락을 잘 짚어주고 있다. 여기서는 승조에 대한 주석의 의미로 〈종본의〉를 사용한다.

방편과 반야는 대지혜를 명칭한다. 일체법의 실상을 반야라고 하는데 형상을 통하지 않고 증득할 수 있는 것은 방편의 역량 때문이다. 중생을 적절하게 교화하는 것을 방편이라고 하는데, 번뇌에 물들지 않는 까닭은 반야의 역량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야의 도리는 공을 관조하고 방편의 도리는 유를 경험한다.29)29) 〈종본의〉, “찉和般若者, 大慧之稱也. 諸法實相, 謂之般若. 能不形證,

반야의 두 가지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지혜도 물론 반야를 가리키는데, 〈반야무지론〉 전체에서 사용되는 반야는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 바꿔 말하면 반야는 방편과 실상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중국의 주석가들은 흔히 삼종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방편·관조·실상 셋이다. 위에서는 앞의 방편과 관조 반야가 하나로 묶여있다. 중요한 것은 실상반야이다.

반야는 앞서도 말했듯이 진제나 실상 개념이 아님에도 이렇게 의미변형이 일어나고 있다. 반야는 실상을 관조하는 지혜로서의 역할임에도 이제는 그 자체로 실상이다. 위에서 형상을 통하지 않고 증득할 수 있는(能不形證) 역량을 방편(반야)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매개적 인식이다. 이런 무매개적 인식의 대상은 다름 아닌 실상이자 진제의 세계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반야의 역할이다.

온갖 개념(prajn쁝pti)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세계를 만나는 방식이다. 《중론》에서 용수가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일체의 상(相)을 저버리고, 개념 등의 매개를 뿌리치고 실상을 만나는 활동이다. 원강(元康)은 《조론소》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형(形)은 현(現)이다. 성문승은 공을 관조할 때 현상을 통해서 깨닫는 데 반해 보살이 공을 관조할 때는 현상을 통하지 않고서 증득할 수 있다.”30) 우리의 일상적 인식은 인식 훨씬 이전에 존재하는 관념 틀에 의해 상처받는다. 30) 원강, 《조론소》(대정장45, p.166중), “形, 現也. 聲聞觀空, 卽現取證. 菩薩觀空, 能不現證.”

그래서 순수하게 사물을 만날 수 없다. 위에서 실상으로서 반야의 의미를 살펴보면 반야의 의미가 어떤 경로로 변화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 방편의 활동이 번뇌에 물들지 않는 까닭은 반야의 역량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반야는 방편의 활동을 청정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도 의미가 미묘하게 교차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공성에 바탕한다.

그러한 방편의 역할도 공성에 바탕하기 때문에 아무런 상(相)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청정하게 활동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의미의 잉여가 있다. 바로 청정한 마음이나 본래적 청정이다. 그것은 마치 자성청정의 여래장심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판가름할 수는 없다. 여전히 중관철학에서 말하는 공성은 유효한 듯하다. 반야가 어떻게 의미 변형을 시도하는가를 구분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인식역량으로서 반야이고, 두 번째는 열반이나 실상과 의미가 교차하는 차원의 것이다.

1) 반야와 세계인식
반야는 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이자 사물이나 세계의 실상인 공성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공성을 파악함으로써 반야는 자신의 능력을 완성한다. 그리고 지식은 세계와 합일한다. 공성을 인식하는 능력은 그것 자체가 공성에 기반한다.

논의를 시도해보겠다. 《방광반야경》에서 “반야는 인식할 수 있는 형상이 없으며 발생하고 소멸하는 어떠한 형상도 없다”고 하였다. 《도행반야경》에서도 “반야는 일상의 지혜가 없으며 일상의 견문도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반야 지혜의 관조 작용에 대해 언급한 것인데 오히려 ‘無相’과 ‘無知’를 이야기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진실로 무상의 반야 지혜와 무지의 관조 작용이 있음이 분명하다.31) 31) 〈반야무지론〉, “放光云: ‘般若無所有相, 無生滅相.’ 道行云: ‘般若無所知, 無所見.’ 此辨智照之用, 而曰無相無知者, 何耶? 果有無相之知,

승조는 무상과 무지를 반야의 속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반야의 인식론적 입장을 주목한 진술이며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반야 이해이다. 반야가 형상을 갖지 않는다는 말은 인식활동으로서 반야의 측면을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개념적 인식에서 탈출한다. 사물을 만나기 이전에 선재된 여러 가지 언어 범주나 사유 범주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식 자체가 어떤 형상을 갖고 활동하지 않는다. 여기서 또 하나의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반야가 인식하는 대상이다.

반야가 인식하는 대상은 당연히 사물의 실상, 즉 사물의 공성이다. 이것이 곧 진제이다. 공성은 사물의 실체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사물의 공함일 뿐이다. 그래서 공성에 대해서는 일상의 인식에서처럼 어떤 본질을 포착하는 형식을 띄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무지는 진제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다. 이런 반야의 속성과는 달리 일상의 인식은 대상을 분별하고 그것에서 어떤 형상을 포착한다.

《중론》에서는 이런 활동을 분별(vikalpa)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승조가 말하는 지(知)이자 망지(妄智)이다. 일상의 인식활동은 이렇게 형상을 포착하여 의식 속에서 그것을 연속적으로 표상하고 관리한다. 인식 대상이 인식활동을 자극하고, 인식 또한 집착을 통해서 인식 대상을 발생시킨다.

이렇게 인식 대상과 인식은 상호 관련 속에서 발생한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인식활동은 둘의 관계릍 통해서 이룩된다. 상호 관련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일상의 사물은 의식상에서 연기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만약 유식가라면 의타기(依他起, paratantra)라고 했을 법한 그런 것들이다. 그것들은 진실한 존재일 수 없으며 반야의 인식 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일상의 인식과 반야의 차이는 인식활동 자체의 차이와 그것이 인식하는 내용의 차이로 구분된다.

공허와 무생은 대개 반야가 인식하는 내용이며 모든 존재의 본질이다. 성인의 신명(반야)으로 뛰어나게 깨닫지 않는다면 어떻게 비유비무의 중도 실상(有無之間)을 완전하게 터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인은 완전한 지혜로써 무한의 영역을 탐구하면서도 어떠한 장애도 없으며, 눈과 귀 등의 감각기관으로써 현상들을 힘써 접촉하지만 그러한 현상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다. 분명 만물의 본성이 공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사물들은 신명(반야)을 장애할 수 없다.32)32) 〈반야무지론〉, “夫至虛無生者, 蓋是般若玄鑑之妙趣, 有物之宗極者也. 自非聖明特達, 何能契神於有無之間哉. 是以至人通神心於無窮, 窮所不能滯; 極耳目於視聽, 聲色所不能制者. 豈不以其卽萬物之自虛, 故物不能累其神明者也.”

반야가 인식하는 것은 분명 존재의 공성이다. 공성 자체가 생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것은 존재의 본질(實相, tattvasya laks.an.am)이다. 여기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물을 대하는 인식 자체가 아무런 상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활동이 공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반야의 인식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신명이다.33) 명(明)은 어떠한 오염도 없이 맑게 보는 행위이다. 33) 물론 神明이라는 용례는 불교 쪽이 아니라 노장 쪽에서 먼저 발견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노장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편적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판정하고 넘긴다면 위진시대에는 현학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신명은 불교적 개념이다. 그것은 중관철학에서 흔히 말하는 개념(相)을 통하지 않는 인식 역량이다.

곧 청정한 시선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념(prajn쁝pti)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신적(神的)이다. 신적이라는 말에 오해할 필요는 없다. 브라만이나 유일신을 상정한 개념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작위적인 행위를 벗어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일상적이지 않으며, 범부적이지 않으며, 인간적이지 않다. 이런 까닭에 승조는 신명이나 성지(聖智)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이것은 앞서도 언급했던 무매개적 인식 역량이다. 인식이라는 말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유형의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을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은 공성에 바탕한 인식 기능과 그것의 대상인 공성, 이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봄’이다. 그렇다면 무매개적 소통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34) 《방광반야경》에서는 “반야는 인식할 수 있는 형상이 없으며 발생하고 소멸하는 어떠한 형상도 없다.”고 하였고 《도행반야경》에서는 “반야는 일상의 지혜가 없으며 일상의 견문도 없다.”35)고 했다.34) 무매개적 소통이라는 개념은 강신주,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태학사, 2003, 344쪽 참조. 그는 이것을 장자철학의 고유성을 규정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특히 무매개적 소통은 존재론적으로 마음의 본래성에 기인한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본래성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타자를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는 소통 역량을 말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나 여실지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장자철학과 불교의 구분을 시도하지 않겠지만 개념적으로 그것을 수용했음을 밝힌다. 35)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방광반야경》이나 《도행반야경》의 내용은 승조가 〈반야무지론〉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반야는 “형상을 통하지 않는 인식이며, 그래서 일상적인 인식이 없는 봄의 역량(無相之知, 不知之照)”이라는 사실이다. 〈반야무지론〉의 제명이 바로 여기서 의미를 드러낸다. 무형상의 인식이자 인식 없음의 관조(인식)는 무매개적인 인식이며, 일상의 개념 내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야는 무지(無知)와 무상(無相)을 두 가지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성인의 반야지혜의 작용은 잠시도 멈춘 적이 없지만 그것을 형상에서 찾으려 하면 전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보적이(《유마경》에서) “심의(心意)가 없이 현행한다”고 하였다. 《방광반야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반야가 모든 존재를 건립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존의 교설은 갖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것의 근본 도리는 하나일 뿐이다.36)36) 〈반야무지론〉, “是以聖智之用, 未始暫廢; 求之形相, 未暫可得. 故寶積

여기서는 기존의 《조론》 주석을 통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원강에 따르면 《조론》 본문에서는 구역인 지겸(支謙) 역 《불설유마힐경》을 인용한 것이다.37)

동일한 부분에 대해 구마라집 역 《유마힐소설경》에서는 “以(已)無心意無受行也.”라고 역하고 있다. 지겸역에서 “而現行”으로 번역된 부분이 구마라집 역에서는 “무수행”으로 번역되었다.

지겸역을 의거하면 “세존이 보리수 아래서 마귀에게 항복 받았는데 그는 이미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일상의 인식이나 의식이 사라진 상태에서 단지 그 몸만이 현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는 의미이다. 구마라집의 역문에 의하면 번뇌를 일으킬 만한 일상적 인식이나 의식의 장애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행업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행(行)’은 인업(因業)이나 행업을 가리킨다.

반야가 모든 존재를 건립한다는 것에 대해서 원강은 “등각은 반야이고, 성인의 반야지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진제에 중생을 건립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재는 “《방광반야경》 29품에서는 ‘부동의 진제는 제법의 건립처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38)고 경전을 원용하고 있다. 하지만 반야는 지혜로서 진제를 관조하는 기제이다.38) 문재, 《조론신소》(대정장45, p.215상), “《放光》二十九云: 不動眞際, 爲

불은 그것을 통해서 열반과를 증득한다고 했다. 결코 반야로서 지혜가 사물을 건립하거나 진제를 건립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서 승조가 사용하고 있는 등각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반야와는 다른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바로 공성의 의미이다. 모든 존재가 가능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공성이자 실상이다. 《중론》에서는 “공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성립할 수 있다. 만일 공의 이치가 없다면 어떤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24-14)고 했다.

2) 반야와 열반(聖心)
승조에게서 반야는 실상이나 공성, 나아가 열반의 의미로까지 확장한다. 그는 성심이나 성지라는 개념을 통해서 반야와 공성 및 열반을 교차시키고 있다.

성심은 미묘하게도 고정된 관념(相)을 갖지 않아서 그것을 존재라고 할 수 없으며, 공능이 아주 분명하기에 비존재라고 할 수도 없다. 비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성인의 지혜는 존재하고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언어는 단절된다.39)39) 〈반야무지론〉, “夫聖心者, 微妙無相, 不可爲有; 用之彌勤, 不可爲無, 不可爲無, 故聖智存焉. 不可爲有, 故名敎絶焉.”

〈반야무지론〉에서 열반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열반자가 가지는 완전한 지혜, 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이 바로 열반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성심과 성지를 통해서 반야를 나타내고 있다. 공성과 연결된 열반은 존재와 비존재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열반이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듯 성심 또한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다. 《중론》에서 열반이 존재와 비존재를 벗어나는 이유는 그것이 공성을 체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성심은 인식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무런 인식틀이나 범주 없이 보기 때문에 공성이면서 또한 공능을 가진다. 그래서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다.

경전에서는 “반야의 의미는 개념을 통해서 지시하거나 설명할 수 없으며,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며 실제도 아니며 허무도 아니”라고 했다. 공하지만 관조의 공능을 상실하지 않고, 관조의 작용을 하면서도 반야의 공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것은 명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어로써 비록 표현할 수 없지만 언어가 아니면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성인은 언제나 언어로써 표현하지만 아직껏 표현한 적이 없다.40)40) 〈반야무지론〉, “經云: 般若義者, 無名無說, 非有非無, 非實非虛. 虛不失照, 照不失虛, 斯則無名之法, 故非言所能言也. 言雖不能言, 然非言無以傳. 是以聖人終日言, 而未嘗言也.”

공성은 어떤 작용력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의 공함일 뿐이다. 이것이 실상이다. 하지만 이런 실상을 체득하는 자는 공능을 가진다. 이것이 공성과 성심의 차이이다. 성심은 공성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형태의 관념상의 허구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런 관념의 허구 내지 세계에서 발생하는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작용이다. 그렇다면 성인의 지혜, 즉 반야는 기필코 존재한다. 하지만 성심의 관념상의 일종인 명교(名敎, 施設)는 단절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명교의 의미를 좀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힐난: 성심이 비록 무지라고 하지만 그것은 만물과 호응회합하는 방면에서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그래서 호응할만한 것은 호응하고, 호응할만하지 못한 것은 그대로 보존한다. 그렇다면 성심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생기하고 어느 시기에는 소멸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41)41) 〈반야무지론〉, “難曰: 聖心雖無知, 然其應會之道不差. 是以可應者應之, 不可應者存之. 然則聖心有時而生, 有時而滅, 可得然乎?”

여전히 도가적 의미의 실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의 인식 활동을 완성된 주체의 활동으로 파악하려 했다. 사물과 호응한다는 말만으로는 그것이 도가적 의미인지 불교적 의미인지 분간할 수 없다. 물론 이런 식의 표현이 현학가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위진대의 불교전적에서 이런 용어를 차용하면 곧바로 현학의 영향 하에서 이루어졌다고 판정한다. 이런 성급함은 그야말로 장자가 〈제물론〉에서 말한 성견(成見)에 해당한다.

중국말로 씌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중국사상일 수 없듯이 그런 술어를 구사했다고 해서 그것이 현학이거나 현학의 일부로 환원될 필요는 전혀 없다. 위의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자연과 회합할 때 성인이 주체적으로 자기 조절을 한다면 성인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만 호응의 능력을 드러내는 셈이다. 이것은 성인의 역량은 활동(생)하기도 하고 정지(멸)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성인이 일시적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는 벌써 성인이 사물과 호응할 때 자기 의식 내지 자기동일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선입견이 배어 있다. 이것은 호응의 불교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혼란이다.

중관학에서 말하는 반세가 세계를 인식할 때 어떠한 사물과도 걸림이 없다는 말은 이제설(二諦說)을 바탕하고 있다. 승의제와 세속제가 공성을 통해서 관통된다. 반야를 통해서 공성을 인식하지만 공성이 어떤 형상을 갖지 않기 때문에 반야는 ‘인식 없는 앎(無心之心)’이다. 그래서 이런 앎을 통해서 사물과 호응한다. 결국 사물의 공성과 호응함으로써 공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물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성을 파악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긍정을 도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야는 사물에 대해서 항상적인 호응이 가능하고 반야의 활동은 생멸이 불가능하다. 승조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이른바 생멸은 생멸심이다. 성인은 이런 생멸하는 망심이 없는데 생멸이 어떻게 발생하겠는가? 하지만 성인이 정말로 아무런 심적 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상의 심적 활동이 없는 마음’(無心之心)일 뿐이다. 또한 사물과 호응회합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단지 작위적인 호응회합이 없는 호응일 뿐이다. 그래서 성인이 사물과 호응하는 방법은 흡사 사시의 질박한 운행과 같아서 단지 공성으로써 그 내용을 삼기 때문에 그것은 생기할 수도 없고 소멸할 수도 없다.42)42) 〈반야무지론〉, “答曰: 生滅者, 生滅心也. 聖人無心, 生滅焉起? 然非無心, 但是無心心耳. 又非不應, 但是不應應耳. 是以聖人應會之道, 則信若四時之質, 直以虛無爲體, 斯不可得而生, 不可得而滅也.”

생멸은 생사와 마찬가지로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번뇌이다. 그렇다면 생멸심은 번뇌심이다. 《중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분별심의 연장일 뿐이다. 성심에는 당연히 생멸심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성심, 즉 반야 지혜도 아무런 형상 없음으로서 공성이지만 미혹과 지혜 또한 공성이 아닌가. 그렇다면 둘 다 공성이긴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가?”43) 번뇌즉보리이고 진속불이라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구분하는가. 그냥 모두 공이거니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닌가. 43) 〈반야무지론〉, “難曰: 聖智之無, 惑智之無, 俱無生滅, 何以異之?”

내부로는 홀로 관조하는 공능을 가지며 외부에는 만법의 실상이 있다. 만법이 비록 실상을 가지지만 관조를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내외가 상호 조화하여서 그것의 관조 공용을 완성한다. 이것은 성심과 관조의 대상이 동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공용이다. 내부로 비록 관조 작용이 있지만 일상의 인식 작용은 없고, 외부에 만법의 실상이 있지만 어떠한 형상도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내외가 적연하여 상호 모두 무이다. 이것은 성심과 관조의 대상이 상이할 수 없는 점인 공적이다.44)44) 〈반야무지론〉, “內有獨鑒之明, 外有萬法之實. 萬法雖實, 然非照不得. 內外相與以成其照功, 此則聖所不能同, 用也. 內雖照而無知, 外雖實而無相, 內外寂然, 相與俱無, 此則聖所不能異, 寂也.”

공성을 통해서 진속을 관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그것을 체득하고 삶의 윤리로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번뇌와 보리가 다르지 않음은 그것을 깨달은 자의 몫이다. 그것이 엄연히 둘이라고 느끼면서 둘이 아니라고 우긴다고 해서 그 둘이 같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성심은 공성을 통해서 실상을 보는 인식 자체이다. 그런 인식 자체가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실재인 열반일 것이다. 여기서는 성심과 관조의 대상이 만난다. 둘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이다. 공성은 이렇게 드러난다.

4. 언어(s큑bda)의 지위

일상을 굳건하게 지탱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언어이다. 언어는 관념을 만들어내고 사유를 만들어 내고 자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다시 사유와 사물에 생명의 박동을 선사한다. 그것은 심장처럼 끊임없이 생명력을 뿜어내 사물이 존재케 한다. 그것은 신의 권능이기도 하다. 그의 권능에 도전하는 것은 비록 진리를 향한 추구일지라도 심각한 실존적 고민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은 쉽게 탈출할 수 없는 울타리이자 감옥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의 울타리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개념 혹은 사유’와 영속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진리의 한 줄기 빛은 없다. 승조는 사물의 실상을 가리고 있는 게 언어라고 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사물의 실상을 대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론》에서 희론이나 분별을 경계한 점을 떠올려 보면 언어에 대한 승조의 부정적인 태도는 쉽게 이해된다. 중관학자들은 개념이나 관념의 분석을 통해서 “언어의 그물에 포획된 정신적 힘들을 전환시키고자 했다.”45) 이런 태도는 붓다의 무기설과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중관학자들이 붓다의 침묵과 다른 지점은 그들은 언설이나 논리를 사용하면서 세속적인 분별이나 희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는 사실이다. 45) 스트렝, 위의 책, 109쪽.

이렇게 중관의 언어관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언어는 그 자체로서 진리를 진술할 수 없다. 두 번째, 언어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유도할 수 있다. 아마 첫 번째는 언어의 위선일 것이고 두 번째는 언어의 쓸모일 것이다. 중관학에서 언어는 이런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논리를 통해서 논리를 돌파하고 명상(名相) 분석을 통해서 명상을 배제한다. 이런 점은 중관학 뿐만 아니라 유식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서 언어가 참값을 나타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가지는 가치는 그것의 유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용성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유용성이라는 아주 훌륭한 덕성을 갖추고 있더라도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면 그것의 가치는 다시 고려돼야 한다. 〈반야무지론〉에서는 말(s큑bda)과 사물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힐난: 사물 자체만으로써는 사물과 소통할 수 없다. 그래서 사물에게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사물과 소통한다. 사물이 비록 명칭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명칭을 부여할만한 사물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명칭에 부합한다. 그래서 명칭을 통해서도 사물의 실상을 탐구할 수 있다. 사물은 자신을 은폐할 수 없다.46)46) 〈반야무지론〉, “難曰: 夫物無以自通, 故立名以通物. 物雖非名, 果有可名之物當於此名矣. 是以卽名求物, 物不能隱.”

여기서 힐난자는 명칭의 유용성과 필연성을 변호한다. 현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물과 사물을 소통시켜야 하는데 사물이 자신의 이름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들 사이에 혼돈만 있을 뿐이다. 아무런 소통도 불가능하다. 스치지도 않고 공존할 뿐이다. 사물이 구별되지 않고, 포착되지 않고, 장소 없이 존재한다면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시한다. 자신의 모습을 확립하고서야 존재간의 유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명칭이 자기 존재성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명한 존재성을 가지고 있을 때, 즉 주체로서 자신의 노릇을 감당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타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연기관계의 성립은 분명한 지점간의 소통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런 사고는 《중론》〈관인연품〉에서 용수가 진행한 연기법의 부정과 비교해보면 유효하다.

독자적인 존재성(自性, svabha칥a)이 없는 사물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은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해서 존재한다.”는 말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1-10)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의 일반 정식이다. 하지만 용수는 이 사실을 부정한다. 이것은 연기법에 집착하지 말라는 단순한 집착 방지용의 언급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법의 진정한 의미로 연기법의 정식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 결과다. 용수에 따르면 이런 식의 연기법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만약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다른 하나의 개체와 만난다면 그것은 연기법일 수 없다.

실체를 가진 동일자가 타자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앞서도 승조가 지적한 바이다. 언어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한 사물의 건립이자 실체론의 확립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승조를 비롯한 중관학자들이 제시하는 언어의 허구성은 실체론의 부정이라는 보다 먼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과 사물의 관계로 돌아가 보자. 명칭이 지시하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명칭과 사물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언어의 활동 공간은 반드시 사물의 존재를 기반하기 때문에 사물은 실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물이 실재한다면 명칭을 통해서 사물을 포착할 수 있다. 힐난자는 사물은 자신을 은폐할 수 없으며 언어를 통해서 충분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사물이 자신을 은폐할 수 없다는 것은 불교에서도 인정하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이 사물 자신인가를 질문한다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사물이라고 했을 때는 공성을 표현하고 있는 사물이다. 즉 진제와 함께 하는 속제인 셈이다. 이에 반해 힐난자가 말하는 사물은 실재하는 속제를 가리킨다. 이 속제는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이 잠복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언어를 통해서 충분히 포착된다는 입장이다. 언어의 사실성을 주장하는 힐난자에 대해 승조는 이름과 사물이 갖는 관계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언급을 한다. 그는 이렇게 중국 철학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명실(名實) 문제로 접어들게 된다.

이름(名, 기표)을 가지고 사물을 파악하지만 사물(事物)은 이름에 부합하는 실질(기의)이 없다. 사물에 근거해서 이름을 접근하면 이름은 사물의 내용(기의)을 완전히 장악할만한 공용이 없다. 사물이 이름에 부합하는 실질을 갖지 않았다면 합당한 사물이 아니며, 이름이 사물이 될만한 공용을 갖지 않았다면 합당한 이름이 아니다. 그래서 이름은 실질에 부합하지 않고 실질은 이름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름과 실질이 서로 부합하지 않는데 만물이 어디에 위치하겠는가?47)47) 〈부진공론〉, “夫以名求物, 物無當名之實; 以物求名, 名無得物之功. 物無當名之實, 非物也; 名無得物之功, 非名也. 是以名不當實, 實不當名,

이름(기표)은 사물(기의)을 장악할 만한 능력을 가지지 않으며 사물은 이름이 요구하는 실질을 품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름과 사물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이름과 실질이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승조의 언어관은 결국 존재론적 입장에 도달한다. 문재(文才)는 《조론신소》에서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명칭은 사람들의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는 생각에서 정해진다.

어떤 경우는 동일한 사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명칭을 상정하고, 어떤 경우는 하나의 명칭으로 여러 가지 사물을 호칭하기도 있다. 사물이 비록 명칭에 호응하기는 하지만 명칭에 완전 부합하는 실질을 가진 것은 아니다.”48) 문재는 명칭에는 이미 발화자나 언어활동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개입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의도의 개입은 동일한 사물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이름 가운데 선택을 행한다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사물을 명명함으로써 자신의 맥락으로 포섭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그렇게 선택됨으로써 이후 발화자가 전개할 의미맥락을 준비한다. 이것은 일종의 명령체계이자 구성체계이다. 48) 文才, 《조론신소》(대정장45, p.212상), “名自情生好惡何定. 或於一物立多名, 或以一名召多物. 物雖應名, 亦無當名之實理.”

존재와 비존재는 의식의 그림자이자 울림이다. 말과 기호(象徵)는 의식의 그림자와 울림이 구성한다.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가 해소됐다면 의식에는 아무런 그림자와 울림이 없다. 그림자와 울림이 이미 소멸했다면 말과 기호를 포착할 수 없다. 말과 기호를 포착할 수 없다면 도는 어떠한 유형의 존재 형식도 차단한다. 도가 어떠한 존재 형식도 차단하기 때문에 완전한 지혜를 획득하고 사물과 세계의 이치를 완성한다. 그래서 궁극적 완성이라고 한다. 궁극적 완성의 방법은 토대 없음에 근본한다.49)49) 〈답유유민서〉, “夫有也無也, 心之影響也, 言也象也, 影響之所攀豫也, 有無旣廢, 則心無影響, 影響旣淪, 則言象莫測, 言象莫測, 則道絶群方, 道絶群方, 故能窮靈極數, 窮靈極數, 乃曰妙盡, 妙盡之道, 本乎無寄.”

승조는 언어 문제를 좀더 본질적인 부분과 연관시킨다. 그는 여기서 존재와 비존재라는 존재의 형식과 언어가 맺는 관계를 일람하고 있다. 그의 철학이 일관되게 보여준 사물의 바른 인식을 통한 깨달음의 추구라는 철학 전제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존재와 비존재는 인식이나 의식(心)의 습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성지(聖智)나 성심(聖心)과 상대한다. 그것은 전혀 실체가 아니고, 이차적으로만 파악되는 것임에도 마치 태고에서부터 시작된 듯 보인다. 파생된 것이 그것의 기원을 지워버리고 본래 존재로 행세한다.

존재와 비존재는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운다. 더 이상 자신의 기원을 의심받지 않는다. 이렇게 존재와 비존재는 언어를 매개로 해서 자신을 확립한다. 승조는 〈반야무지론〉의 연장에서 “사물의 존재성(존재와 비존재)을 부정한다면 언어와 그것이 지시하는 사물 또한 부정됨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사유와 그것을 포장하는 언어가 실상을 가리고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반야는 바로 이런 것들을 돌파하고 실상을 곧장 만난다.

위에서 말하는 도는 물론 공성(空性)이자 실상이다. 그것은 어떠한 언어나 존재론적 덮개가 낱낱이 사라진 상황이다. 그래서 이 단계는 존재나 언어의 형식을 모두 차단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공성은 그것을 확립시킬 근거나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 언어철학자들이 수행한 작업을 떠올릴 수 있다. 중관철학자들이 실상의 파악으로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완성을 추구했다면 언어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언어 자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중관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분명 실용적인 면이 있다. 용수가 밝히듯 “세간의 언어 관습(세속제, vyavaha칞a-satya)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최고의 의의(parama칞tha)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최고의 의의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열반은 증득되지 않는다.”(24-10.범본) 이것은 언설제의 중요성을 열반과 관련하여 설명한 것이다. 승조는 〈물불천론〉이나 〈부진공론〉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 진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존재나 운동에 대해서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상당히 난해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우리는 승조의 독특한 언술 방식이 무엇을 의도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감’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감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의 항상 관념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머무름’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머무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변화의 관념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어찌 감[去]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움직일 수 있고, 머무름[住]을 이야기했다고 실제 불변할 수 있겠는가?50)50) 〈물불천론〉, “是以言去不必去, 閑人之常想; 稱住不必住, 釋人之所謂往耳. 豈曰去而可遣, 住而可留也?”

여기서 승조가 언어를 통해서 어떤 효용을 노리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 운동과 정지, 존재와 비존재, 동일성과 차이 등의 개념을 부정하면서 사용하는 논법은 거의 흡사하다. 위의 인용문은 운동과 정지를 부정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운동과 정지’의 부정이라는 측면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다. 승조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그것의 부정이 아니다. 그가 부정하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적 자기 연쇄이다. 사물이 운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운동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만약 ‘정지해 있지 않다’고 말하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운동까지 생각을 연장한다. 비유(非有)를 이야기하는 경우 무를 떠올리고, 비무(非無)를 이야기하면 유를 떠올린다. 바로 여기서 의식의 속성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운동하지 않음(不去)’이 ‘정지’에까지 도달하는 의식의 틈이다. 이 공간에서 형이상학적 확장이나 과장이 발생한다. 이런 과장을 통해서 발생하는 것은 ‘존재’ 아님으로 ‘비존재’나 ‘운동’ 아님으로 ‘정지’가 아니다. 사실 여기서 확인되고 강화되는 것은 주체이다.

이런 공간에서 의식은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특이하지만 일반적인 ‘듣기’가 진행된다. 승조가 사물이 운동하지 않음에도 ‘감’을 이야기하거나 정지하는 일이 없는데도 ‘정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식의 습속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용수는 “모든 부처님께서는 때로는 자아를 설하셨고 때로는 무아를 설하셨다. 제법의 실상에서 보면 자아도 없고 무아도 아니”(18-6)라고 말한다. 그리고 《중론》의 사구부정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체는 진실이다.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진실도 아니고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것을 모두 부처님 법이라고 부른다. (18-8)

중관학에서 사용하는 언어 문법은 단지 집착을 멈추라는 종교적 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 일어나는 주체의 생장을 차단하는 기제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언어와 표현 형식들은 단지 인간의 삶을 위한 실용적인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고유의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언어 체계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언급함으로써 필연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51) 51) 스트렝, 위의 책, 178쪽.

그래서 언어는 승조에게 부정의 대상이기도 하고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부정하면서도 긍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언설제와 진제는 불가분리의 것이라고 했다. ■

김영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수료. 논문으로 〈六朝時代神滅不滅論爭硏究〉 〈중국근대불학의 사상기원〉과 《대당내전록》(공역)을 번역하였다.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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