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648년 열반절 아침이다. 남방 상좌부계통에서는 베삭절(음력 사월 보름)에 불탄과 성도 및 열반절을 함께 기리지만, 중국을 포함한 대승권에 속한 우리는 음력 이월 보름을 따로 기념하고 있다. 오늘이 세시절기로는 경칩, 입춘이 지난 지 한 달이 되었는데도 어제 오후부터 내린 눈은 대설주의보와 함께 서울을 온통 덮어버렸다.

삼월 강설량 기록으로는 근백년래에 최대의 적설량을 보이며 교통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지구 도처에서 기후가 불순한 난조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으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와 생태계의 교란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 각자는 물론 공동체 살림살이를 살펴보며 아만과 부주의 및 무절제를 반성하고 더 큰 과보와 재앙을 받지 않도록 마음 깊이 뉘우치고 행동을 삼가야겠다. 지난 며칠 사이에 황악산 직지사를 두 번 다녀왔다.

이 시대의 선지식으로 통한 관응 큰스님께서 2월 28일 저녁에 입적하시어, 삼일절에는 영전에 분향하고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단과 함께 다녀왔고, 이틀 뒤에는 학생들과 영결 다비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영결식이 진행될 때부터 황악 산정으로부터 내려오던 눈보라는 다비식이 끝날 때까지 일만여 사부대중에게 심신의 통한을 느끼게 했으며, 그때는 눈이 전혀 내리지 않던 서울 지역이 어제부터 눈사태를 보이고 있다. 착잡한 심정으로 큰스님을 추모하며 몇 마디 단상을 적어본다.

그분의 행장을 보면, 경북 상주에 태어나 어려서 이른바 사서삼경을 공부하여 유학의 소양을 갖추셨고, 약관에 인근 남장사로 출가 득도하시고는 금강산 유점사 불교전문강원에서 전통교학을 연마하셨다. 그 후 서울의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신학문을 익히셨으며, 일본 용곡대학교에서 현대 불교학을 섭렵하셨다.

귀국 후에는 오대산과 가야산 등 제방에서 안거 정진하시다가 40대 후반에 직지사 조실로 추대되셨다. 정화운동 당시에는 서울 조계사 주지와 포교사로 시중의 막중한 역할을 하셨고, 이어서 동국학원 이사와 용주사 주지를 하시며 강석을 베풀어 교육 불사를 일으키셨다. 50대 후반에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 들어가셔서 6년을 정진하셨고, 나오셔서는 청화산과 불영산 등지에서 수 년을 안거하신 후, 70대에 다시 직지사에 주석하시면서 95세까지 후학을 가르치시다가 원적에 드셨다.

대강 열거한 바와 같이, 세간과 출세간의 외전과 내전, 전통과 현대, 선과 교, 이판과 사판, 전문교육과 대중포교 등을 아우르는 그분의 학문과 수행 및 교화 편력의 진폭과 내용은 다양하고 다채롭다. 여늬 사람은 한 분야의 대가도 되기 어려운데 그분은 혼자서 여러 방면에 걸쳐 대가의 모습을 보이며 후학에 모범을 보이셨다. 그분의 삶을 음미하며 되새겨 보고 거기에서 교훈과 시사를 받아 우리의 살림살이를 돌아보며 다짐을 새롭게 하여야겠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 있다. 종교적인 표현으로는 ‘순례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현대의 여행자는 교통 및 통신 기술과 시설의 발달에 따라 광범위한 지역을 편리하고 빠른 방법으로 둘러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지역에만 머물러 있고 그 속에서 안일을 즐긴다.

여행이든 순례든 힘들고 고달프기 마련이지만, 남보다 더 많고 넓은 견문과 학식을 확보하고 탁마와 시련을 통한 경험을 쌓아 인격형성의 기회와 역사창조의 경륜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옛날부터 일반인들은 구경과 놀이삼아 단순한 여행을 하기도 했고, 웅지를 품고 탐험과 개척을 한 이도 있으며, 수행자는 구도의 길에 목숨을 걸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도 북쪽으로는 대륙과 남쪽으로는 해양에 걸쳐 민족의 저력을 보이셨고, 구법 고승들은 중국은 물론 인도에까지 족적을 남기시고 순교하신 분도 많다.

신라의 자장과 원광을 필두로 의상과 혜초, 백제의 겸익, 통일 신라 말엽의 도의와 홍척, 고려 중엽의 대각국사 의천과 말기의 태고 국사 및 나옹 왕사 내지 근세에 용성과 만해 선사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외 편력 위인들의 삶을 통해 그분들의 간절하고 투철한 구도와 홍법의 원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분들의 회향으로 말미암아 동시대의 탁월한 안목과 경륜을 갖춘 선지식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하심으로 세간 및 출세간의 사표가 되었음이 주목된다. 관응 스님의 유학과 그 회향의 삶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로서, 교육과 포교에서 보이신 그분의 용심과 행화의 폭이 얼마나 너그롭고 원만한지 알 수 있다.

근래에 ‘지구촌’ ‘세계화’ 같은 현실을 반영하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지구촌에 사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안목과 소양을 갖추어야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고루하고 편협한 사고와 무지에서 오는 국집과 편견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사회 공동체 생활에 한계를 보이고 사회발전에도 지장을 준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조기유학’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는데, 졸속의 부작용도 따르겠지만 유학의 가치와 의미를 알아차린 것은 긍정할 만하다. 유학을 할 수 있으면 그 장점을 살리고, 할 수 없으면 없는 대로 인터넷 등 오늘날 문명의 이기와 자료들을 활용하여 세계적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고 세계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바람직한 미래세계 건설에 동참하여야 하겠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 하에서 다양하게 앎과 삶의 폭을 넓히고 속 살림살이도 알차게 하여 정신적으로 풍요한 삶을 가꾸어 가야겠다. 산중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교학과 참선 수행을 하다가 세계에 회향코자 늦게 유학의 기회를 가졌던 소납에게 충실한 회향을 당부하셨던 관응 큰스님의 유훈을 되새기며 속히 사바에 다시 오시어 다시 가르침 펴시길 거듭 기원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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