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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일상화와 번뇌의 사회화 / 하정남
하정남 영산원불교대학교 교수
[19호] 2004년 06월 10일 (목) 하정남 wmuch@youngsan.ac.kr

1. 21세기의 화두; 생명과 평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평화와 생명가치"에 대한 인류의 욕구가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미국이 대이라크 전쟁을 선포했을 때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전평화운동의 열기는 너무나 뜨거웠다.

미국 내에서도 수백만 명의 군중들이 반전시위를 했다. 당시 평화네트워크에 올라온 감동적인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내용의 요지는 지금 세계에 가장 두 큰 힘이 있는데 하나는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부시대통령과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풀뿌리 민중들의 평화연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있는 평화연대는 바로 새로운 세상 즉 평화세상을 향한 막을 수 없는 새로운 막강한 기운이며 그 운수는 부시의 편도 아니고 후세인의 편도 아니고 김정일의 편도 아닌 바로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 풀뿌리 민중들의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일찍이 지금처럼 평화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풀뿌리 민중들의 대거 참여로 되어진 적은 없었다. 21세기 평화의 기운이 주도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이렇게 뭉친 에너지는 분명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이 쨍쨍 내리 쬐는 곳에도 그들은 있듯이 아무리 봄기운이 돌고 봄이 와도 생명을 잉태할 씨앗이 없다면 그 기운을 받을 수 없듯이 평화는 꿈꾸지 않은 자에게 올 리 만무하다. 내 마음에 미움과 내 행동에 폭력의 관습을 남겨 두고 꿈꾸는 평화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평화 세계의 건설은 마음에 삼독심(三毒心) 즉 탐심과 증오심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지혜와 자비심을 기르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이러한 세기의 흐름에 세계 곳곳의 많은 불자들이 참여하고 역할하고 있으며, 이것은 근본불교와 대승불교를 이어 새로운 법륜의 굴림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도 참여불교의 운동이 재가 출가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는 폭력에 무딘 사람들이 많다. 어떤 면에서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처럼 가부장적 관습으로 일상화되어 있는 폭력이기 때문에 새롭게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경제적 세계화에 따른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 조직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가해자이거나 피해자라는 인식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특정한 문화와 시대와 사회 속에서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개개인은 국가라는 조직에 속하고 세계의 정치 경제적 장치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 다른 생명체들과 다가오는 수많은 후손들에게 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그러한 악업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개인적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이를 자각하고 악업의 고리를 끊으려는 수행자의 자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수행자의 첫 번째 과제가 바로 내가 속해 있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종류의 폭력들과 그 원인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본고는 일상화되어 있는 수많은 종류의 폭력들과 그 속에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폭력의 내면에 있는 힘에 대한 인식과 문제를 찾아보고, 그리고 폭력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폭력의 반인륜성을 짚어볼 것이다.

2. 성차별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가족문화, 그리고 은폐된 폭력들

여러 가지 사회폭력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은폐된 폭력은 성차별에 따른 폭력이다. 여성운동 혹은 여성학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젠더(gender) 이슈에 관련된 근본 문제는 한 성(性, sex)이 다른 성에 가하는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틀이 바로 젠더 규범(gender stereotype)이기 때문이다.

젠더 이슈에 관련된 남성에 의한 여성폭력의 예를 들면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젠더 이슈와 관련된 폭력은 중세 시대 마녀사냥(witch hunting)을 위시하여 산부인과 관련의 의료행위와 태아감별과 여아낙태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이외에도 중국에서 문제로 되는 여아살해의 문제도 여아낙태와 관련된 부계혈통제에 따른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가부장적 가족문화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여아낙태나 살해 등 여성과 여아에 대한 인권유린과 폭력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라는 심각한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이에 관련된 폭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해 보자.

1) 아내 학대와 폭력의 원인과 실태

가부장제의 규범적 성별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한국의 가족문화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간과해 왔다. 뿐만 아니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번씩 두들겨야 제 맛이 난다",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좋다"는 등의 남성중심의 메시지들은 여성을 비인간화시키면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남성의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유교가 결혼한 여성을 "출가외인"으로 하여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족과 거리를 두게 하고, 또한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을 여성윤리의 기본으로 하면서 종교적으로 사회제도적으로 이러한 남성중심의 가족문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은폐시키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또한 가족은 보호되어야 할 성스러운 장소로 인식되면서 가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금기시 해 왔기 때문에 가정폭력은 오랫동안 수면에 떠오르지 못하였다.

더욱이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식으로 남편의 아내 폭력을 미화하면서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다. 의처증을 가진 남편이 아내를 집안에 감금하여 칼로 아내의 배를 난도질하고 다리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일이 보도된 바 있다. 이것은 특수한 예가 아니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신체적 불구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폐를 가져오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실정인데도 가족은 보호하고 지켜야 할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법적 대응을 하지 않다가 여성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가정폭력은 수년 전부터 형사법으로 취급되고 있다.

즉 1997년에 가정폭력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제도적 법적 제재를 하게 되었다. 법이 제정되고 난 후 초기 몇 년 동안은 남자들이 주류인 경찰이나 법조계의 적절한 협조와 조치가 되지 못했었다. 법적 제도적 장치가 이루어지면서 여건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가부장적 가족문화와 남편들의 권위 의식은 가정폭력의 근원이 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남편의 경제력상실은 가정폭력을 더욱 심각하게 한다. 얼마 전 인기 여자 코미디언들의 가정폭력 문제가 세상에 노출된 데에서 보듯이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권위의식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나은 아내에게 폭력으로 자주 나타났다.

2) 성폭력의 원인과 실태

가정폭력이 아동학대와 아내에 대한 남편폭력을 포함하지만, 가정폭력의 주류는 여성에 대한 남성폭력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남성폭력은 가정폭력 외에도 성폭력이 있다. 특히 한국의 성문화가 남자와 여자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하면서 성폭력을 부추긴다.

즉 남성에게는 영웅호색을 여성에게는 순결이데올로기를 적용해 온 전통적인 관행은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되게 한다. 남녀관계가 상호간의 사랑과 존경과 책임을 바탕으로 하는 인격이 결여된 성관계는 원조교제나 매춘문화로 나타나는 것은 남성의 성문화 즉 영웅호색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보며 여성의 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남성의 성문화는 전쟁의 경우 여성들에게 보다 치명적이다. 과거 고려 시대 몽고군이 침략했을 때 정복군이었던 몽고군은 피정복국인 고려의 여인들을 무차별하게 납치해 갔고 강간했다.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끌려간 여인들은 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거나 노비로 되었고, 그러한 수모를 견디다 못해 몰래 도망나와 집으로 돌아온 여성들은 시댁이나 친가로부터 다시 내쫓김을 당하면서 자살을 하거나 기녀 혹은 천민의 신분이 되었다.

또한 일제의 한반도 침략당시 조선의 젊은 여인들은 일본군을 위한 위안부로 끌려갔고, 사회적인 이슈로 남아 있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시각으로 올바르게 풀려야 할 과제이다. 독립이 된 이후에도 그들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고, 그들은 순결을 잃은 죄인으로 가족과 이웃으로부터도 냉대를 받으며 혹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며 한 많은 인생을 살아야 했었다.

여성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가 사회의 표면으로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고 정치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는 일 자체가 바로 정신대 할머니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일이다.

3) 젠더와 의료행위에 관련된 폭력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의료행위에서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중국의 여아살해문제가 여성인권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10억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중국에서도 산아정책을 정부에서 시행하자 부계혈통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 때문에 여아는 아예 호적에 올리지 않거나 버리는 사례가 문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에도 유사한 일이 한동안 있어 왔다.

1970년대 국가의 산아정책은 태아감별과 여아낙태의 문제를 낳았다. 그러한 이유로 1980년대 유치원을 비롯하여 초등과 중등 학교에 남녀 성비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성차별적인 문화 속에서 남자인 의사에 의한 클라이언트인 여자에게 행해지는 산부인과 의료행위에서도 폭력성은 나타난다.

즉 산모가 출산을 할 때 의료행위는 산모의 편의와 아이를 위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사의 편리와 의료진의 편리함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와 함께 산모의 건강과 아이의 정서문제가 여성계에서 제기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자연분만과 비폭력적 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유럽의 마녀사냥(witch hunting)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이단심문이라는 이름 속에 이교도들을 학살했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성들이었다. 특히 주로 여성들과 사람들을 돕는 산파나 지혜로운 여성들이 주로 타겟이 되었고, 그들은 남성 사제들과 남성 의사들에게 위험인물들이었고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4) 아동학대의 원인과 실태

아동학대의 경우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가장 많은데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와 함께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외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이야기이지만 이미 아동이 가장 위험한 지대가 바로 친부모나 친권을 행하는 가족 속에서라는 인식이 알려졌지만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한국의 가족문화에서는 거의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물론 모르는 사람에 의한 유괴 납치 등의 아동학대가 없지는 않지만 가장 쉽게 드러나지 않게 아동학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친부모나 가족에 의한 것이다. 특히 여자뿐만 아니라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 의식과 가족문화는 자녀의 생사여탈권을 마치 부모가 가진 것처럼 여겨져 왔다.

말하자면 부모가 제 자식을 죽이든 살리든 남이 간섭할 일이 아니며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자녀는 친부모 밑에서 커야 한다는 잘못된 가족문화와 잘못된 자녀관은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를 사회가 방치하게 했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거나 혹은 경제적 파탄에 이르러 함께 동반자살을 하는 등 아동을 자신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부모 위주의 사고는 아동인권의 큰 문제이다.

산업화 급격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마을공동체나 이웃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사회적으로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아동학대의 현장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의 경우를 보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건강문제를 비롯하여 부적절한 환경에 방치하는 경우, 자녀에 대한 무자비한 구타 등 아동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서적 피폐를 불러올 수 있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사회는 전통적인 가족문화에 매몰되어 아동학대를 예방하거나 적절하게 조처를 할 수 있는 사회 제도적 장치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3. 세계화와 폭력; 보이지 않는 손, 얼굴 없는 가해자

직접폭력은 아니지만 폭력의 영향이 광범위하고 보다 심각한 폭력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대국 중심으로 주도되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약소국들에 대한 폭력이다.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WTO 즉 경제적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세계는 구조적 폭력 속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기업들이나 은행들이 다국적 기업들의 손에 들어가고 외국은행에 합병되면서 이제 그들의 경제조치에 따라 우리의 생계문제가 좌우되게 되었다. 특히 세계은행이나 국제구제금융(IMF)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소위 제3세계에 속하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채무국들에게 채무변제를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강요하면서 기업에 대한 자국의 정부규정을 완화하도록 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실업률 증가를 부채질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자유무역체제(WTO)는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농산물 시장개방을 압박하면서 그러한 나라 국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도 박탈하면서 경제적 식민주의를 확장 강화시켜 나아간다. 지난해 칸쿤에서 우리 농민 이경해가 "WTO Kills Farmers!"이라는 메시지를 목에 건 채 자결한 것은 지금의 세계화와 그 논리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화에 따른 기업의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의 프로그램들은 현대 최대의 사회적 과제인 실업자와 홈리스, 저임금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경제적 구조에서 정부가 청년실업자 구제정책을 내 놓아도 그것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이미 농업개방정책에서 일찍이 체험하고 있다. 농촌을 떠난 농민들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제적 폭력의 심각함을 체험하게 된다.

4. 테러와 전쟁이라는 폭력; 종교적 증오심, 타국의 자원권에 대한 음모

반테러 전쟁과 종교적 이념 차에 따른 종교전쟁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경제적 문제 특히 남의 나라의 자원을 수탈하고자 자원에 대한 권리를 갖기 위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

지금 이라크의 전쟁이 바로 그 예이다. 2001년 9월에 일어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에 대한 테러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그 테러의 뿌리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부시행정부가 일으키고 있는 대이라크 전쟁은 세계적으로 설득력을 얻지 못할 뿐더러 점점 더 추악한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세대에 걸친 부시행정부의 대아랍 전쟁의 진짜 이유는 테러에 대한 응징이나 종교적 문제보다도 사막에 매장된 석유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막대한 수자원에 대한 권한을 갖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대이라크 전쟁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과거 중세의 십자군 전쟁에 비유하여 종교적 증오감을 부추기면서 보수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다. 사실 테러의 원인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장기간 분쟁과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아랍계의 분노와 독재자 후세인 정권을 제재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이라크에 가한 경제조치 등이 큰 원인에 속하였다.

그러나 약자들의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는 테러는 범죄로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응징을 위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명분화되는 것이 일상적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테러도 전쟁도 인간에 대한 심각한 폭력이며 그 어떤 이유로도 명분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반생명적 범죄이다.

5.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집단주의와 다름에 대한 증오, 권위주의적 교권행사

요즘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을 자녀들의 "왕따"문제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지 않기 위해 같이 한 아이를 괴롭혔는데 그 아이가 "왕따"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자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초등학생이나 중등학생에 관계없이 학교폭력은 극에 달하여 아이들을 자살의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원인을 보면 못생기거나 잘난 체 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경제적인 부유함이나 교사들의 사랑을 받는 것 등이다. 즉 자신과의 다른 점이 따돌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청소년 상담실에서 밝히는 "왕따"당하는 학생들의 유형을 보면, ① 오직 공부만 하는 학생, ②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학생, ③ 제할 일을 못하며 멋만 부리는 학생, ④ 소극적이거나 이기적인 학생, ⑤ 부모에 의해서만 의사를 결정하는 학생, ⑥ 특이한 행동으로 시선을 끄는 학생, ⑦ 못생기거나 신체가 특이한 학생, ⑧ 잘난 체하며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학생, ⑨ 집안이 부유한 학생, ⑩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당하는 학생이다.(인터넷 청소년 상담실)

이러한 분석을 보면 과거와 달리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한두 자녀만 기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특히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 특히 내 자녀는 다른 아이들과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욕망이 아이들이 사회성이나 인간성 교육에 마음을 쓰지 못한 원인도 있다. 그 동안 아동들은 "왕따"의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성적위주와 학벌위주의 사회문제와 그에 따른 경쟁적인 학교생활은 아동들의 친구 사귀기나 공동체적 심성을 기르기 보다 경쟁적 심성을 기르게 하는 것도 문제로 된다.

학교폭력의 실태는 집단 따돌림 외에도 청소년 폭력조직, 교사의 학생구타 등으로 나타난다. 최근 뉴스에서 농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학생들이 자신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수준의 상처를 줄만큼 폭력을 가했다. 교육적인 매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교육적인 매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경우들이 없지 않다. 이것은 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교육관행이 탈권위주의 시대에 사는 청소년들과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6. 자연적인 삶을 거부한 식문화와 폭력

폭력의 양상이 가시적인 폭력 이외에도 비가시적인 폭력들이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들은 우리가 폭력이라고 자각도 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발휘하므로 그 실태가 은폐되고 있는 일상화된 폭력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전통적인 자연적 삶을 거부하고 서구식 식문화와 생활을 따라가는 데서 발생한 것이 많다. 특히 현대인의 육식을 선호하는 식문화는 동물사육현장에서 비인간의 생명체에 대한 심각한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변화해 가는 식문화의 기저에는 상업적 음모가 깔려 있는데 그에 대한 예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1) 분유산업의 상업적 음모; 모유에서 분유로
얼마 전 중국에서 가짜 분유로 유아들이 사망하거나 영양실조 혹은 머리만 지나치게 커지거나 하는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들이 발생하였다. 모유를 먹이는 대신에 우유를 먹이는 사례가 늘면서 중국의 분유시장은 한국기업에도 관심거리이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중국에는 가짜 분유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아이들을 위한 필수 영양소를 갖추지 않은 가짜 분유를 유통시키는 악덕업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한때 한국에서도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아이를 가진 부녀자들이 집안일 대신에 직장을 갖게 되고 그러다가 보니 분유산업은 자연히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마치 모유를 먹이는 것은 야만적인 육아이고 분유를 먹이는 것이 보다 문명적인 육아로 생각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한 배후에는 분유산업의 상업적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선진국들에서부터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이 건강이나 영양 상으로 그리고 정서 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모유 먹이는 수가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 혹은 산업화 과정에 들어가는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분유의 수요는 점점 늘어가면서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 유아들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일이 일어날 수 폭력성이 숨겨져 있다.

2) 인간에 대한 동물들의 증오; 조류독감, 구제역병, 광우병
한동안 조류독감으로 닭과 오리를 먹지 않는 사태들이 발생했고 많은 조류들을 산채로 매장하는 사례들이 공중파를 통해 전해졌다. 이제 막 깨어난 새끼 조류로부터 다 자란 조류들까지 전염병이 도는 곳에서는 무조건 생매장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 중심의 사고와 육식문화에 심한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때는 돼지구제역 때문에 돼지를 도살하고 매장하는 사례들이 일어났고 광우병이 나타나자 유럽 지역에는 소들을 불태우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현대의 육식문화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한다. 우리들의 육식문화는 동물들에게 심각한 폭력이 된다는 것이다.

육식을 선호하는 서구화된 음식문화가 부(富)의 상징이 되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동물사육의 현장은 점점 더 반생명적으로 폭력적으로 되어 간다. 하루에 두어 번의 알을 낳게 하기 위해 닭을 재우지 않고 계속 먹이를 주는 일,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조류를 동시에 키우기 위해 항생제를 먹이는 일, 소와 돼지도 좁은 공간에 집단으로 키우면서 동물들의 사육 환경은 극도로 나빠질 뿐 아니라 항생제를 투여한다.

이렇게 잔인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동물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항생제를 먹으며 자라 인간의 밥상 위에 오르게 된다. 인간의 동물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그대로 육식을 통해 인간에도 전달되고 동물들의 복수가 몸 속에서 이루어 질 수도 있다. 음식은 인간의 건강과 심리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동을 채식 식단 그리고 공해 없는 유기농 식단으로 치료하는 사례도 있다.

7. 폭력의 반인륜성

국내외의 여러 뉴스채널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미군의 이라크인 포로학대 문제를 보며 다시 한번 전쟁의 비극을 보게 된다. 가정에서 동네에서 사랑 받던 20세의 한 여자 린다 잉글랜드는 인간으로써 평범한 상태에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행동을 연출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웃는 얼굴을 보면서 세계는 경악했다. 뉴스를 통해 악마의 화신처럼 보여지는 그 여자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진술을 했다.

명령으로 통하는 군사 조직과 전쟁은 한 평범한 여자의 인격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수많은 전쟁포로를 인간 이하로 다루게 했던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만들어 낸 최악의 인간을 보면서 전쟁이 단순히 총칼로 상대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빼앗고 상대편의 생존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외형적인 참혹함만이 아니라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의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여자는 전쟁이라는 상황과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가 된 셈이다.
전쟁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들이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인간성마저도 파괴하거나 파괴되면서 모두를 비인간화시킨다. 말하자면 폭력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폭력에 직접 가담을 하거나 않거나 관계없이 단지 특정 사회에 속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경험한 1970년대 베트남전쟁 그리고 남북전쟁 당시 미군이 행한 노근리 주민과 피난민들의 학살 사건을 기억해 보자.

수 년 전 노근리에서 남북전쟁 당시 참전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이 수면 위에 떠오른 적이 있고, 진상규명을 위한 단체가 만들어지고 주민들이 증언을 하고 미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소리가 한동안 일어났다. 당시 동시에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들도 여자와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을 비롯하여 군인이 아닌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들추며 '부끄러운 역사에 참회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군이 베트남 참전으로 한국은 지금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한국민은 원하든 원하지 않는 집단적으로 가해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400만 명에 달하는 월남민을 학살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되었으며, 그 참전의 대가로 지금의 부를 이루었다는 가해로서의 자각은 비인간적인 행위에 자신도 모르게 참여했다는 피해 의식과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사례를 들었지만 폭력의 피해자의 경우 아무리 사소한 폭력도 자살의 원인이 되거나 타살 혹은 타해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폭력 자체의 해악이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록 우리에게 사소하게 보이는 '왕따'의 경우를 보자. 학교에 '왕따'를 당한 아이가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결과로 가해 학생은 한 아이를 죽게 할만큼 인간성이 왜곡되거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예를 우리는 자주 듣고 본다. 비단 전쟁뿐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지 특정문화 집단이나 조직에 속하면서 폭력과 그 문제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없다면 누구나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기 쉽다.

폭력에 따른 또 다른 문제는 폭력이 대물림 혹은 세습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의 경우 아버지의 폭력을 증오하던 아들도 이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지면서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딸의 경우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폭력 이외에는 다른 의사표현과 소통의 방식을 전혀 배우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뿐만 아니라 지금 중동 전쟁에도 과거 십자군 전쟁의 망령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비록 정치적으로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배타성을 이용하고 있지만 사람들 속에 자리잡은 세습되어 온 종교적인 반감이나 혐오감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8. 폭력에 내포된 힘에 대한 인식과 문제

폭력에는 아동학대나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위시하여 국가폭력에 해당하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게 마련인데,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는 힘 즉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문화에서 힘은 중요시되었고 힘이 모든 사회의 규범을 정하는 원천이었다. 그 힘은 가정에서 아버지, 사회에서는 남자, 나라에서 왕 혹은 통치자, 그리고 세상에서는 신으로 상징되었다. 근대 국가주의 시대에 이르러서 서구에서는 유럽중심주의와 동양에서는 화이론(華夷論) 즉 중화주의(中華主義)로 정당화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대전들은 이러한 힘의 경쟁이었고 제국주의의 확산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모든 패권주의는 가부장제 사회문화와 그 힘에 대한 인식에 뿌리하고 있는 것이다.

패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힘은 바로 정복하고 군림하기 위한 힘(power-over)이다. 이러한 힘의 대한 인식은 일찍이 佛陀께서 설파한 모든 존재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 사실은 우리가 권력관계에서 고통받는 것도 바로 우리 존재들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인식에 따르면, 힘은 자신이 소유하는 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며 타인이나 타물을 정복하면서 힘은 키우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그러한 힘의 인식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고,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가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며 폭력을 정당화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듯이 타인이나 다른 존재를 해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도 그 해가 미친다.

이러한 전통적인 힘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자각하면서 여성을 비롯한 주변화된 계층들의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고, 힘에 대한 잘못된 인간의 견해와 관습을 밝히고 생명존중과 인간존중에 바탕한 진정한 힘의 원천을 탐구하였다. 그들은 패권주의를 뒷받침하는 세계관이 기계론적 세계관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모든 존재들이 상호의존적이 아니라 개개 물물을 독립된 실체로 인식하며, 주관과 객관을 분리시키면서 자기 중심적 사고를 구축한다. 또한 기계론적인 세계관은 이러한 자기 중심적 그리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념적인 세계관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러한 관념적인 세계관과는 달리 우리가 체험하는 실제 세계는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이 상호연결되어 생명의 그물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고도의 산업사회 속에서 제기되는 생태계문제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단순한 물질 덩어리로 보아 온 대지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체험케 한다.

우리가 생명력이라고 하듯이 모든 존재는 자신을 유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생물이건 미생물이건 인간이건 동물이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힘이 없이는 존재를 형성할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다. 생태계의 모습 자연계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개개의 존재들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자율적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된다.

상호의존의 유기적 세계관에서는 힘이란 개개 물물이 소유할 수 있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자각에서 나온 힘에 대한 인식은 시너지 synergy 혹은 power-with에 관한 것이다. 또한 그 세계관은 자와 타 혹은 주관과 개관의 이분법이 아니라 전체 즉 삶과 생존의 시스템을 중요시 여기며 힘은 정복이 아니라 공감과 협동에서 나오는 것이며, 소유하는 것이 공유되는 것임을 안다.

맺는 말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와 산업사회가 함께 하는 사회 속에서는 남녀노소 그리고 모든 종족과 계층을 망라한 모든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생태계마저도 안전하지 못하다. 그들의 논리기반에는 자와 타, 주관과 객관, 남과 여,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이분화 시키면서 전자는 후자를 지배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인류문명 속에 패권주의를 형성시키고 정당화시켜 왔다.

특히 서구문명의 기계론적 물질적 세계관의 형성과 과학문명을 발전은 이 이분법에 근거하여 형성되었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문명의 이기를 앞세운 산업사회의 확산은 대립과 투쟁의 인간관계를 더욱 심화시켜 왔다. 서구의 과학기술과 산업화의 영향으로 인간생활이 많이 편리해지고 온갖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한 삶을 누리고 지속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생존 기반인 생태계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또한 끊임없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약소국을 침입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폭력의 문화를 확산시키면서 전 인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그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다행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인간 문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또한 현대인이 추구하는 편리함과 안락한 삶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계층의 소수인에게만 속하는 특권이라는 것을 안다. 뿐만 아니라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가 공유해야 할 자원을 끊임없이 약탈해야 하며 더 많은 빈곤층을 낳으며 종국에는 지구에 속한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함께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의 고통을 체험하고 고통의 원인을 깨닫는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난 2, 30년 불교는 서구세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부흥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불교의 무아설(no self)과 연기설(dependant co-arising)은 이러한 고의 원인과 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 해결하고자 하는 실험들을 하고 있고, 그러한 노력이 미래 우리사회의 희망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선방중심의 불교수행과 출가중심의 관행에서 벗어나 인권과 생태와 평화를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한국불교와 세계불교계와 그러한 활동을 촉구하는 불교평론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를 기대해 본다.

 하정남
영산원불교대학교 교수·여성문화연구소 소장. 주요 논문으로 〈한국 신종교의 남녀 평등사상 연구〉 〈종교적 영성 및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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