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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논쟁에 도전하자 / 홍사성
홍사성 (본지 주간)
[3호] 2000년 06월 12일 (월) 홍사성 본지 주간

   

홍사성
(본지 주간)

잡아함 16권에 들어 있는 몇 개의 경전은 수행자들이 대화할 때 무엇을 화제로 올리는 것이 적절한가를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제411경인 《논설경(論說經)》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오후 비구들은 공양을 끝낸 후 식당에 모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날의 화제는 참으로 다양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이어서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또 누군가가 재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이번에는 도둑에 관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사업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으며 다음에는 옷에 관한 얘기로 옮겨졌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남녀간의 사랑에 대하여 화제가 옮겨졌다. 이렇게 계속된 세속적 화제는 서너 시간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몰랐다. 그때 부처님은 식당 건너편에 있는 나무 아래서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부처님은 비구들의 잡담이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음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곁으로 갔다. “지금 그대들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나누고 있는가?” 비구들은 지금까지 했던 얘기의 대강을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수행자는 그런 일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해도 바른 이치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반으로 향하는 데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수행자들은 언제나 진리를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는 법담(法談)만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차라리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다.” 이 경전에 따르면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화할 때 화제로 삼고 토론할 만한 주제는 진리에 관한 것, 청정한 범행에 관한 것, 바른 깨달음에 관한 것, 열반을 얻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밖의 세속적인 화제로 논쟁을 벌이거나 시비를 논하는 것은 무가치한 것이며, 그런 일에 매달리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부처님의 훈계다. 부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은 교단의 역사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는 몇 차례의 ‘결집(結集)’은 바로 정법(正法)과 정률(正律)에 대한 논쟁의 산물이었다. 불멸 직후 마하 가섭의 주도로 이루어진 제1결집은 정법 훼손과 비법 창궐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칠엽굴에 모인 5백여 비구들은 부처님이 가르친 정법과 정률을 정립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베살리에서 이루어진 2차 결집이나 파탈리푸트라의 3차 결집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이루어진 성전 편찬사업이었다. 대승불교와 상좌불교의 쟁론 역시 불법의 참된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상좌불교가 교리를 너무 형식적이고 현학적으로 해석하고 대중 구제를 소홀히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비해 상좌불교는 대승을 비불설(非佛說)이라고 맞받았다. 어떤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 이 논쟁은 불교사상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중국과 티베트 불교 사이에서 펼쳐진 돈점(頓漸)논쟁, 조사선(祖師禪)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혜능(慧能) 계통의 인물들의 신수(神秀) 계통에 대한 공격과 이에 대한 반론 등도 불교사상사에서 유명한 논쟁들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논쟁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높은 문제의식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명감이다.

물론 여기에도 부분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논쟁보다는 교단의 주도권이나 현실과의 동화 문제 등이 개재됐을 여지는 있다. 하지만 보다 주된 동인은 진리와 비진리를 결택하려는 강력한 의지에 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해당 주제를 단순한 ‘다툼’이 아닌 ‘논쟁’의 성격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논쟁들은 불교사상의 심화와 발전을 이끈 동력이었다. 만약 이러한 논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불교는 철학과 사상의 깊이에서 소박한 원시종교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 한국불교의 현실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승속을 막론하고 불자들의 대화는 부처님이 《논설경》에서 강조한 기준이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논쟁의 원인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국불교는 진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기보다는 쓸데없는 싸움에 매달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난 1950년대의 불교계 분쟁은 교단정화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교리나 계율을 중심으로 한 논쟁이 아니라 절뺏기가 목적인 ‘싸움’으로 일관되었다.

1980년대의 돈점 논쟁은 문중간의 다툼으로 매도되었고, 민중불교 논쟁은 그 뜨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아닌 비난으로 일관하다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지난 세기 동안 한국불교의 줄기찬 관심은 부끄럽게도 ‘잿밥’에 관한 것이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54년 정화운동 이후 한국불교는 무려 40여 건의 크고 작은 싸움을 했다. 본말사 주지 임면을 둘러싼 다툼, 중앙집행부의 종권을 장악하기 위한 이권분쟁이 그 원인이었다.

한국불교의 이권다툼은 그 양상이나 행태에서 매우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한번 다툼이 일어나면 이는 곧 집단화, 폭력화, 장기화로 치닫는다. 그 규모나 수법은 분쟁이 거듭될수록 극렬하고 대담해진다. 작년 말에 있었던 조계종 분쟁사건은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아마도 세계의 어떤 종교도 잿밥을 위해 이렇게 지독한 싸움을 한 예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다툼이 얼마나 불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이로 인해 불교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불교계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불미한 일들은 불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왜곡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불교평론〉이 추구하는 것은 이 같은 부끄러운 방식의 싸움을 청산하고 진리를 밝히기 위한 ‘논쟁’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불교가 진정으로 한 단계 도약할 계기가 마련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논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

농경시대에 제정된 계율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옳은가, 출가와 재가는 수평관계인가 수직관계인가, 수행자의 소유문제는 어디까지가 적정한가, 수행과 포교는 일원구조인가 이원구조인가, 대승불교는 무오류의 사상인가, 현재의 수행방법에 문제는 없는가, 나아가 생명공학과 윤회의 문제, 낙태문제나 정치제도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의도적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외면이나 방관으로 일관해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문제를 기피해서는 안 된다. 명확한 주제의식과 냉정한 비판정신으로 불교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불교계의 먹물분자들은 이 문제에 비장한 사명감 같은 것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에도 비탄과 원망과 책임전가와 좌절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새 천년, 우리는 무엇에 침묵해야 하고, 무엇을 논쟁해야 하는가.

이제부터는 침묵과 논쟁에 그 이유와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불교평론〉은 아직도 도전전인 논쟁과 비평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우리 불교계의 풍토에 ‘도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 행보는 이번 호에서도 다음 호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지켜보아 주기 바란다.

<2000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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