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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노인들을 바라보며 / 원욱 스님
원욱 스님 목동 반야사 주지
[19호] 2004년 06월 10일 (목) 원욱 스님 목동 반야사 주지
세상에 욕심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기꾼이 넘쳐나는데 사기도 참 매정하고 고약하게 친 사건이 있었다.
평소에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의 목소리를 가장하여 교통사고를 내서 급히 합의금이 필요하니 통장으로 얼마를 부쳐야만 경찰서에서 풀려날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 전화를 해 노인들을 사기 친 사건이었다.
노인들은 한결같이 그 목소리가 자신의 아들딸이었다고 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동네방네 뛰어다녀 돈을 마련해서 송금하고 난 뒤에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자식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펄쩍 뛰니 노인으로선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작 노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사기당한 돈이 아니라 자식들의 핀잔이었다고 한다. 자식보기에 부끄러워 말도 못 꺼냈다는 노인도 있다고 하니 빚진 돈을 갚아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어쩌다 자식의 목소리도 분간을 못하고 사기를 당했나 싶으니 부모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늙어 쓸모 없는 퇴물이 되었다는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겠는가. 이게 다 외로움 때문이라고 한다. 노인들이 오랫동안 안부전화도 없이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고 지내다 사고를 당한 자식들의 울먹이며 “엄마~! 아버지~!”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당연히 의심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된 것이지요. 평소에 자식을 그리던 기다림이 지혜의 문을 닫히게 했으니 그 원인은 무심한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은퇴와 함께 소득의 단절로 인해 빈곤하다. 수입이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못한다는 심리적 요인이 대외활동을 꺼려할 만큼 위축되어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니 결과적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린다.

물론 빈곤 때문에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게 된다. 혹은 자식들의 부양태도에 따라 온갖 갈등을 하다 보니 자연히 소외감과 외롭다는 생각을 넘어서 불안감까지 지니게 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건만 어리석게도 사기사건에 말려들어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입었으니 자식에게 구구하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남는 것은 부채에 대한 부담감과 갚아야 할 현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질책과 허망함뿐이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길, “사람은 마땅히 다섯 가지 일을 가지고 친족을 경애해야 한다. 다섯 가지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물질을 급여함이요, 둘째는 좋은 말이요, 셋째는 서로 이롭게 함이요, 넷째는 협력이요, 다섯째는 속이지 않음이라.”하셨다.

사실 재가자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은 많이 하고 있지만 출가자인 나도 그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다. 《초발심자경문》에도 마음속에 애욕을 멀리한 것을 수행자라고 하고, 세속의 잡된 일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진정한 출가라 한다. 그러나 재가자들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상담을 듣고 있노라면 내 어머니도 무척 외로우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 나도 다른 이들처럼 용돈이라고 몇 번 드린 적이 있지만 받는 이도 주는 이도 이것처럼 불편한 것도 없다.

내 나름대로 원고료나 다른 수입원으로 생긴 돈을 드리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그것도 시주물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니 내내 마음은 편하지 않다. 노모는 돈은 다시 보내시진 않지만 그 돈이 다하고도 계속해서 온갖 먹을거리를 만들어 택배로 끊임없이 보내신다. 괜한 일을 해 가지고 노모의 마음에 나에 대한 애착만 생기게 한 것은 아닐까, 신도들에게 속가와의 관계를 통해 괜한 오해를 낳는 것은 아닌가 하여 소심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내 맘을 노모가 알아채시고 마음에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런다고 부모 자식지간이 변하는 것은 아니나 새삼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항상 자비심으로 모든 이들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거기서 내 친족을 빼고 가 아니라 그런 구분을 하지 않는 평등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모 전에 효도하는 것도 재가자와 출가자는 다르다. 출가자 입장에선 이미 속세를 떠난 수행자이기 때문에 세속의 윤리를 초탈해야 하고 그 대상도 부모를 뛰어넘어 일체중생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부모를 가슴 아프게 하고 떠나온 길은 분명히 그 목적이 있었음이고 그 목적인 깨달음을 향해 쉬지 않고 정진하는 것으로 효도를 해야 한다. 출가한 목적도 잊어버린 채 재가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불효가 되는 것이다.

《심지관경》에 출가가 불효가 아닌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임을 비유를 들어 설하고 있다. 어떤 총명한 부호의 아들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악인이 부모에게 독이 든 음식을 먹게 하여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아들이 해독약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약을 얻은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해독약을 주어서 살게 했다고 한다. 부모가 번뇌의 독약에 중독되어 생사고뇌에 헤매므로 총명한 자식은 애정을 끊고 잠시 부모를 떠나 불도에 들어 큰 의사를 만나 완전한 수도 끝에 집으로 돌아와 법약으로 부모를 고통에서 구하고 열반의 경지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 《심지관경》을 들어 혹시 외로울지도 모를 내 어머니 앞에 맹세코 열심히 중노릇 잘하고 살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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