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연구위원

1. 머리말

바야흐로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였다. 20세기라고 하면 우리의 머리 속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 독재라는 어두운 역사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러한 부정적인 유산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묻어버리고, 21세기를 맞아 인류 공영과 평화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민족은 분단과 냉전이라는 20세기의 유산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채, 적어도 21세기 초반까지는 그 짐을 그대로 지고 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50여 년 간 분단 상태에 있던 남북관계는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개선시킨 공로로 우리 역사상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현재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의 개선도 급류를 타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한반도 정세 변화는 향후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매우 중대한 사변이다. 한국불교도 민족의 운명과 함께 남북한으로 분단된 채 50여 년을 경과하였다. 이제 남북한은 여러 분야에서 서로간의 적대감을 풀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한의 불교도 새로운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교류와 협력을 활발히 해 갈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통합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우리의 통일운동 속에서 한국불교의 역할에 대해 사상·이념적인 측면과 실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그 변증법적 관계

1) 통일은 평화의 한 과정


일반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말할 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단일한 민족국가로의 통일 또는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처럼 남북한 서로간에 전쟁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적극적 평화’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세력균형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소극적인 평화’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8월 한국 언론사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긴 하지만, 군부 쿠데타나 인민봉기 등 북한의 내부 사정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통일을 이루는 데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대로 20∼30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평화’의 달성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 단계 우리가 추진해야 하는 것은 ‘소극적인 평화’이다. 소극적인 평화라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에 소극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소극적인 평화 상태에서 남북한 사이의 대립이 궁극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6·25 때처럼 서로 무력을 사용해 전쟁을 해야 하는 상태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 평화는 다시 현상 유지적인 적대적 공존상태와 현상 변경적인 평화적 공존상태로 나눌 수 있다. 적대적 공존상태(敵對的 共存狀態)는 휴전선 100km 이내에 전진 배치된 북한군의 병력 및 화력, 그리고 신속증원능력을 갖춘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군사적 균형을 이루는 ‘정전협정 아래에서의 평화’를 가리킨다.

이러한 형태의 평화는 1953년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서, 비록 ‘휴전’이라는 불완전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이 정전협정체제 아래에서도 고도 경제성장을 이어나가 선진국의 문턱에까지 올 수 있었다. 평화적 공존상태(平和的 共存狀態)는 군사적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남북한이 서로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교류·협력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평화보장체제 아래에서의 평화’를 가리킨다.

이 상태는 군사적 균형상태가 깨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소극적’인 평화이지만, 군사적인 신뢰 구축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된다. 적대적 공존에서 평화적 공존으로 나아가는 과정도 다시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 단계는 ‘정치적 신뢰 구축’, 두번째 단계는 ‘군사적 신뢰 구축’, 세번째 단계가 ‘군비축소’로서 이 세 단계를 거쳐 비로소 평화적 공존상태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평화공존체제로 나아가는 첫 단계인 정치적 신뢰구축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2) 평화에의 길은 평화 그 자체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는 불교사상의 가장 큰 특징을 평화주의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불교의 평화사상은 목적으로서의 평화뿐만 아니라 “평화에 이르는 길은 평화 그 자체”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평화’라는 목적이 아무리 옳고 고귀하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위해 ‘전쟁과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염원은 ‘통일’에 있다는 점에 대해 남북한이 모두 뜻을 같이 하고 있고, 통일만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궁극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적극적인 평화’의 길이라는 것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단 50여 년 동안 ‘적극적인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를 내걸면서도 북한은 적화통일 노선을 걸으며 군비증강을 계속하였고, 한국은 한국대로 한때 ‘북진통일’의 구호를 내걸었다가 북한의 체제위기 이후에는 흡수통일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분단 50여 년 동안 남북한이 얼마나 많은 군사적 충돌을 겪었으며 또한 남북한의 군사적 경쟁에 얼마나 많은 민족 에너지를 소모했던가.

이는 ‘평화에 이르는 길’ 자체가 평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는 불교의 가르침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결코 적극적 평화나 통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대량살상력을 갖춘 현대의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통일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민족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대전제는 전쟁과 혼란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어느 한 체제로 통합하는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은 모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의혹이 불거지자 1994년에 미국은 영변지역의 핵 의혹시설에 대한 무력공격을 계획했지만, 핵 문제의 무력해결 시도가 자칫 한민족의 공멸을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문제제기 때문에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수단을 동원하는 통일은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해 놓은 경제적 성과는 물론이고 오랜 투쟁 끝에 싸워 얻은 사회적·정치적 민주주의마저도 빼앗아 갈 것이며, 그렇게 해서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가뜩이나 깊이 패어 있는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불신과 적대감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민족통일의 문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가 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품격 있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남북한의 경제체제 및 경제발전의 수준 차이, 그리고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이질적인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과제는 전쟁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과 그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관리하는가 하는 점인 것이다.

3. 통일운동에서 제기되는 사상과 방법의 문제

1) 신라, 고려의 통일경험과 불교의 사상적 역할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통일은 두 차례 있었다. 제1차 통일은 신라에 의한 백제, 고구려와의 통일이요, 제2차 통일은 왕건의 고려에 의한 신라, 후백제와의 통일이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민족형성의 통일인 반면, 고려에 의한 삼국통일은 분열된 국가를 재통합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남북한의 통일 과업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보다는 고려에 의한 통일과정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의 통일과정에서 통합의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한 것은 모두 불교사상이었다.

통설로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통일논리로써 원효대사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 적용되었다고 하나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신라와 고려의 삼국통일에 실제적으로 동원되었던 논리로는 《법화경》 〈비유품〉의 ‘양녹우삼거(羊鹿牛三車)’ 비유와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 그리고 화엄사상의 원융무애·사사무애(圓融無碍·事事無碍)의 세계관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통일신라 말기에 분열된 국가를 재통일한 고려의 민족통합방식에서 불교사상의 역할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고려는 통일신라시대 지배세력에서 소외되었던 지방세력의 연합이 주체가 되어 건설한 왕조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처음에는 비록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였지만, 최종적으로 국가와 민족의 통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과정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던 그의 능력 덕분이었다. 왕건이 고려로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 동원했던 것이 바로 불교사상이다.

고려왕조는 다양한 독립된 실체를 인정하는 가운데 이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사회적 통합력을 발휘하는 화엄의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관에 입각해 제2차 민족통일을 이룩하고 민족을 통합하였다. 하지만 고려는 다양한 독립된 실체를 그대로 인정하는 데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양녹우삼거’의 비유와 ‘회삼귀일론’을 동원하여, 신라말기 이래 심화되어온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새로운 국가체제의 용광로에 집어넣어 새로운 사회통합, 민족통합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새로운 국가건설의 배경 속에는 성문·연각·보살의 삼승(三乘)처럼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다양한 세력의 존재가 아니라 일불승(一佛乘)과 같은 통합된 국가와 민족이 있을 뿐(唯有一佛乘, 無二亦無三)이라는 것과, 불난 집에서 아이를 나오게 하기 위해 양수레·사슴수레·소수레를 보여주어 달래지만 사실은 이들 모두 흰 소가 끄는 큰 수레(白牛大車) 위의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가 뒷받침되어 있었다.

고려 초기 중앙정부는 지방세력에게 그들의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 주고 지방세력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였지만, 왕조 건국에 참여한 다양한 성향의 지방세력들을 하나의 국가체제로 통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가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은 제3차의 통일국가를 준비해 가는 시점에 서 있다. 통일한국의 주체는 한국이 될 수도 있고, 또는 한국이 주도하고 북한이 협력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다종교사회이기 때문에 제3차 통일과정에서는 불교사상이 제1, 2차 통일과정에서와 같이 독보적인 역할을 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교사상이 제시했던 역사적인 경험과 그로부터 얻어진 교훈을 통해 제3차 통일운동의 사상적이고 이념적인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에서의 좌우 극단과 중도

50여 년 동안 두껍게 남북을 가로막고 있던 분단의 얼음벽이 지난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급격히 녹아내리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김정일 신드롬’이라 하여 북한에 관한 한국민의 고정관념이 일거에 무너져 버렸으며, 북한 사회도 우리 못지 않게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분단 50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한 이산가족의 집단상봉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한 것이라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뒤이은 ‘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북한당국의 태도를 보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일고 있다. 현재 북한의 변화는 아직 본질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최고위층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북한체제의 특성으로 볼 때 하루아침에 태도를 정반대로 바꾸어 문을 닫아 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북측의 진의를 의심하고 있다.

때문에 군사문제의 해결 등 평화정착을 위한 조치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경제협력이나 사회문화교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 평화 후 교류·협력’의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남북한이 적대적인 공존상태라고는 해도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해 왔는데 새삼스럽게 평화협정이니 해서 새로운 불안요인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기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게 되면 필연적으로 유엔사령부의 해체를 포함해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현재와 같은 한미 연합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막아낼 수 있는데 공연히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다가 평화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현상 유지론’의 주장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간의 화해분위기에 편승하여 보다 급진적인 통일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철폐하고, 남북한 평화체제의 구축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여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한다. 여기다가 “대포를 녹여 쟁기로” 만들자는 급진적인 군축론, 평화운동도 가세하고 있다. 남북정상이 합의한 ‘남북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조차도 분단고착화의 여지가 있는 방안이라고 비판하면서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내세우는 것이 ‘급진적 현상변경론’의 주장이다.

어느 사회에나 보수와 진보는 있게 마련이고, 어느 정도의 의견대립도 있는 법이다. 진보적인 시각이나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원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입견을 갖고 상대방의 입장이나 정책을 백안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극단적인 사고를 피해야 할 것이다. 보수 또는 진보의 이데올로기적 깃발 아래 실체적 진실보다는 극단적인 자기 주장만 펴는 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적인 접근이다.

중도(中道)는 곧 정도(正道)를 말하는 것으로, 단순한 대립적인 시각의 중간항이나 절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파적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벗어나 현단계 남북관계의 성격을 올바로 바라보고, 우리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대승적인 자세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3) 현단계 남북관계의 성격과 통일운동에 주는 시사점

북한의 최고실권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과 한국언론사 사장단과의 대담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국가보안법의 폐지’ ‘연방제의 수용’과 같은 기존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상호 무력사용의 금지’도 약속했다.

이것은 제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참석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앞으로 남한에 적대적인 군사긴장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데서 재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북한측은 ‘평화조항’을 집어넣는 데 강력히 반대하였다. 제1, 2차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측은 군 관계자를 참가시키지 않아 군사적 신뢰구축문제를 제기하려던 우리 정부를 당혹케 했다.

국방장관회담에서도 우리측이 군사적 신뢰조치를 포함시키려 한 것과는 달리 북한은 ‘경의선의 복원’에 따른 군사조치에 의제를 국한시킬 것을 끝까지 고집하였다. 한국과 군사문제의 논의를 회피하려는 북한의 입장은 과연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것인가? 북한은 한국과의 경협 및 이산가족상봉에 관한 협의를 뒤로 늦춘 채,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미사일 문제와 테러 지원국 명단해제 문제를 논의하였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해 대미 접근을 위한 용한술(用韓術)이 아니었나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현단계 남북관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일 뿐이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휴전선 일대 100km 이내에 전진 배치되어 있는 북한 인민군의 병력과 화력, 그리고 50만 명까지 신속증원 가능한 주한미군과 상대적으로 첨단무기를 보유한 한국군 사이에서 재래식 군사력 면으로 볼 때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핵무기까지 고려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국은 비록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밑에서 보호받고 있는 데 비해, 동북아지역에서 북한만이 유일하게 핵무기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절대군사능력이나 상대군사능력으로 평가할 때 한국과 미국의 연합전력이 재래식무기만으로도 북한 인민군의 전력을 압도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지만, 피해제공능력으로 평가할 때는 1,000만 인구의 서울이 휴전선에서 불과 45km밖에 떨어지지 않아 우리측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1994년 3월 남북접촉에서 조평통 서기국 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북한의 군사적 우위요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데서 북한측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통일의 상대는 한국이지만,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 미국인 것이다.

따라서 ‘선 평화, 후 교류·협력’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선 교류·협력, 후 평화’ 방안도 매우 취약한 것이다. 교류·협력과 평화정착의 노력은 병행되어야 하지만, 북한과의 군사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한미 연합전력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매진하되, 평화정착의 문제는 한미 연합전력의 주체인 한-미 두 나라가 협력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옳은 해결 방향이며, 그것이 바로 1999년 9월에 발표된 〈페리보고서〉의 해결방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는 화엄의 ‘사사무애관’처럼 일정 시기 동안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인 가운데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적대시하거나 무력을 사용하지 말고 평화공존을 해 나가자는 데 있는 것이다. 또한 ‘회삼귀일론’의 가르침처럼 남북한의 실체 인정이 분단체제의 영구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불승과 같은 통합된 국가와 민족으로 귀일시켜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진전과정은 분단구조를 영구화하려는 현상 유지론과 다른 것은 물론이고, 선 군축·주한미군 즉각철수를 주장하는 급진적 현상 변경론과도 다른 것이다. 남북한의 민족국가적 통일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면서도 현단계에서는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이 제도화된 틀 속에서 서로의 적대감을 해소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감축 등을 준비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역사상 세번째로 맞이하게 될 통일의 정도(正道)인 것이다.

4.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불교의 실천과제

1) 현단계 통일운동에서 한국불교의 과제


남북관계는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미 및 북-일 수교협상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북-미 및 북-일 수교협상의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평화체제의 정착과 각분야에서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됨에 따라 한국불교의 역할도 커지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불교도 통일운동의 과정 속에서 일대 방향전환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남북한 평화공존시대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남북한 불교의 통합과 그에 따른 제반 문제점을 포함, 통일정책과 평화전략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상설적인 전문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예상되는 현시점에서 남북한 불교계의 통합이 시작될 경우, 엄청난 시행착오와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많다. 이에 대비하여 북한불교 및 남북관계, 통일운동 등을 조사·연구하여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적인 상설연구소의 설립과 전문적인 활동가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통일과정 및 통일 이후 한국불교와 북한불교의 교류·협력과 통합에 따르는 여러 가지 법률적, 제도적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무엇보다 북한불교계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와 한국불교계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불교의 실태 및 통일운동에 관한 연구조사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상황에 발맞춰 국제평화단체와 국제적인 연대방안, 한반도 평화전략도 수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냉전의식의 극복을 위해 불교대중을 상대로 한 계몽적인 불교통일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불교사상의 공생(共生) 이념과는 달리 일부 불교계의 스님들이나 지도급 인사들은 시대상황에 뒤떨어지는 냉전 유지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스님들뿐만 아니라 불교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불교신자의 많은 부분이 40대 중반 이후의 중노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지역 출신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불교계 통일운동의 주요 과제의 하나는 일부 불교대중이 갖고 있는 냉전의식을 부처님의 평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족공생의식으로 전환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반통일적이고 냉전 유지적인 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활동에 참가하는 방법도 있고, 남북공동법회를 개최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가령 8·15 남북한 동시법회의 경우 불교신자들에게 평화통일의 염원과 당위성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냉전적인 의식을 가진 스님이나 불교신자들에게는 불교를 매개로 남북한의 동질감을 확인시키고 통일의 당위성을 불러일으키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불교의 종단들도 자기 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남북한간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고 남북연합의 실현이 가까워질수록 대북 포교·선교를 둘러싸고 종교간에 치열한 경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종교시장’은 포화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지역은 새로운 포교·선교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의 ‘종교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상실한 불교가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통일시대를 맞이해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한국불교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러한 시도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조계종단의 구조 속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해 왔다. 전체 한국불교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을 때 오히려 엄청난 분열과 퇴보를 가져다 줄 뿐이다. 따라서 무리하게 종단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당면한 시대적, 민족적인 통일과 평화의 과제 해결에 앞장서서 실천하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 통일 및 평화운동을 조직화, 제도화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전략차원에서 중요하다.

넷째, 한국불교계는 대북사업을 활성화하여 냉전체제의 해체와 평화체제의 구축에 일조를 해야 한다. 다만 한국불교의 발전전략과 연계되지 않은 단순한 대북 지원사업은 지양하고 통일의 발전단계와 과정을 고려하면서, 남북 불교계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간의 신뢰를 구축해 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통일운동 및 평화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는 각종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나가되 전체 운동과의 연대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며, 이러한 연대활동이 불교계 통일 및 평화운동의 역량강화로 이어지도록 계획을 잘 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면 이슈를 중심으로 한 사업전개와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통일운동을 담아낼 수 있는 조직과 제도의 정비작업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민족통일은 국제적으로 한반도의 주변정세가 평화적인 환경으로 바뀌지 않으면 그 실효성을 보장받을 수 없으므로, 불교계의 통일 및 평화운동은 국제적인 평화단체와의 국제적인 연대를 꾀할 필요가 있다. 가령, 동북아지역을 비핵지대화하고 다자간 안보협력을 통해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와 군축을 위해 일본의 불교평화운동단체나 중국, 미국의 NGO들과 연계하여 명실상부한 탈냉전 평화체제의 구축에 노력해 나가야 한다.

2) 남북한 불교계의 교류와 협력 문제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현재와 같은 적대적 공존단계에서 평화공존 단계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평화공존 단계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제4항에서도 합의했듯이 각 분야에 걸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 질 것이고, 특히 내년 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게 되면 남북한 불교계의 교류도 활성화될 것이다.

남북한 불교계도 역시 손쉬운 교류·협력에서 출발하여 점차 완전한 남북한 불교계의 통합으로 나아가는 단계적인 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교류와 협력의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남북한 불교의 관계는 ‘일방적인 지원’과 ‘대등한 상호협력’의 두 가지 형태가 예상된다. 일방적인 지원 형태란 한국 불교계가 중심이 되어 북한 불교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북한 내 사찰을 비롯해 전통문화재의 수리와 복원, 식량·비료 등 인도적 물품의 지원, 조선불교도연맹과 같은 북한 불교단체를 통한 각종 사회복지시설이나 교육 관련시설의 지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불교계 시민단체인 한국 JTS(대표 법륜 스님)가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 고아원 지원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나, 지난 9월 방북한 진각종 대표단이 조선불교도연맹 청사 안에 컴퓨터훈련소 설치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의 교육시설 지원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대등한 상호협력 형태로는 학술이나 문화재 차원에서의 남북한 불교교류를 들 수 있다. 그 동안 쌓아올린 남북한 불교학계의 연구성과를 서로 공유하고 전문가·유학생을 서로 교환하는 인적교류도 여기에 속한다. 남북한 불교관련 학자들이 공동으로 전통문화재를 공동 발굴하거나 연구하고 공동학술회의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가 대북 사업을 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자의 이론은 열 명, 정치가의 선동은 백 명, 종교인의 설법은 천 명의 대중을 포섭할 수 있다.”는 러시아의 격언처럼, 종교의 파급 효과는 어느 것보다도 크다. 그런 점에서 자신들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개방하려는 북한당국은 한국 종교계의 대북 활동을 인도적인 지원에만 국한시키고 포교나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달가워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한국의 북한 내 종교활동에 대해서 상당 기간 규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불교계에서는 불교의 포교를 앞세우기보다는 전통문화의 복원과 민족 동질성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한 불교계간에는 문화재의 복원, 학술교류 등 비종교적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다만 전통사찰의 복원, 단청 지원 등 문화재 복원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데 비해 포교 효과는 작기 때문에 비용 대 효과라는 면을 고려하여 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환경, 문화, 보건 등으로 광의의 통일운동으로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한 불교계의 교류·협력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교류와 협력의 주체 문제이다. 현재까지 한국불교계의 대북 창구는 조선불교도연맹(이하 조불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납북한 불교간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통합이 논의될 때면 새롭게 주체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측의 조불련은 한국의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과 같은 종단도 아니고 종단협의회와 같은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한국불교계의 단체와 대비시킨다면, 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불추위)나 조국평화통일불교인협회(평불협), 그리고 금년에 새로 발족한 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가 북한측 조불련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불련이 한국의 종단과 대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국 종단들이 조불련을 상대로 사업을 펼치는 것은 어딘지 격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남북불교의 교류에서 대북 창구의 일원화 문제가 다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측은 조불련으로 단일화되어 있는 데 비해 한국 불교계는 중구난방으로 종단별로 단체별로 조불련을 상대하고 있다. 한국 불교계의 창구단일화 문제는 정부가 대북사업을 통제한다는 기존의 ‘창구단일화’ 논리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것은 한국 불교계의 통일운동 역량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중복사업의 배제 등 대북 사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나 조계종의 특별기구에 대해 대표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3) 남북한 불교계의 통합을 위한 준비: 주체와 방식, 속도

남북한 불교계의 교류·협력사업을 해나가는 데서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남북한의 통일, 남북 불교계의 통합에 대비한다는 전략적 태도와 자세이다. 남북한 불교계의 통합도 염두에 두면서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체 문제 및 사업방식과 속도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만 한다.

남북한 불교계의 통합모형은 옮겨심기형, 씨뿌리기형, 접붙이기형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옮겨심기형 또는 이식형(移植型)은 급진적이고도 일원론적인 접근방식으로 북한 내에 스님이나 불교신도, 단체가 유명무실하여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불교 황무지인 북한에 한국불교를 그대로 옮겨 심는 방식으로, 북한의 사찰이나 불교단체에 스님이나 불교활동가를 파견하여 접수·운영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단일한 불교교단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만약 북한 내에 불교세력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들과의 인간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킬 위험성도 안고 있다. 둘째, 씨뿌리기형 또는 파종형(播種型)은 점진적인 이원적 접근방식으로 북한의 사찰이나 불교단체 등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제도나 정책수단을 도입하여 점진적으로 하나의 교단과 제도로 통합해 가는 방식이다.

이 모형에 따른다면,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이나 개별 사찰과의 활동과 별도로 한국의 스님이나 신도단체가 북한에 진출하여 사찰을 건립하거나 포교당을 개설하여 북한 주민을 상태로 새로운 불교 포교를 전개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불교계와 통합을 모색할 수도 있으나, 중단기적으로는 기존의 북한 내 불교단체나 사찰활동을 인정하고, 이와 중복되지 않는 선에서 한국불교의 활동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접붙이기형 또는 접목형(接木型)은 점진적인 이원적 접근방식으로, 한국불교계가 유명무실한 북한의 불교단체나 사찰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국에서 수련하고 훈련받은 스님이나 활동가를 파견하여 포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불교사찰이나 시설, 그리고 북한 내 스님이나 불교계 인사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단점이 존재한다. 만약 남북한 불교계 인사끼리 협력이 잘 이루어진다면 빠른 시일 안에 커다란 통합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질적인 체제의 불교를 결합시키려는 것이기에 이화불임(異花不姙)으로 나타날 위험성도 존재한다.

남북한 불교의 세 가지 통합 모형 이상에서 살펴본 남북한 불교계의 교류·협력사업과 통합의 모형은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교류협력의 사업모형인 일방적 지원과 대등한 상호협력의 형태는 병행하여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세 가지 통합모형은 선택적인 것이다.

옮겨심기형의 경우는 북한체제의 급격한 붕괴나 사실상의 흡수통일의 경우에나 가능한 급진적 모형이며, 씨뿌리기형과 접붙이기형은 남북불교의 교류협력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점진적 모형으로 보다 현실적인 것이다. 점진적 모형 가운데 어느 것이 현실적인가 하는 것은 모형 타당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불교가 어떻게 문제 해결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5. 맺음말

사무엘 헌팅턴(S. P. Huntington)에 따르면, 어느 비서구 국가가 서구화하고 근대화하는 초기에는 서구화와 근대화에 밀접하게 결부되지만 근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서구화 속도는 떨어지고 고유문화가 소생하기 시작한다.

한 사회 내에서도 근대화가 진척될수록 서구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세력관계가 변화하게 된다. 또한 근대화가 진척될수록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완화되고 복지사회로 접어들면서 문화적, 정신적 가치에 대한 기대가 증대한다. 한국은 60, 70년대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통해 복지사회의 문턱에 와 있다.

비록 IMF 사태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미 선진국의 모임인 OECD회원국이기도 하고 세계 10여 위의 경제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 헌팅턴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도교와 유교가 재해석되고 있고, 한국불교도 민족문화의 적자(嫡子)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한사회의 개방 움직임은 한국불교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도전은 한국불교에게 기회도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포교·선교를 둘러싸고 한국의 종교, 종파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써부터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불교계의 통일운동을 단순히 종교간, 종파간의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한국불교는 신라와 고려에 의한 제1, 2차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역사적인 자부심도 갖고 있고, 다른 사회참여에서 뒤진 것과는 달리 민족화합운동이라든가 북한동포 돕기운동, 남북불교도 교류사업 등에서 타부문에 못지 않은 한 발 앞선 실천을 보여 왔다.

이제 한국불교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여 이것을 한국불교의 자기혁신과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작업의 성패는 오직 한국불교의 능력과 역량에 달린 문제일 뿐이며, 따라서 우리 불자들의 임무가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

조성렬
서울공대 화공과 및 성균관대 대학원 정외과 졸업. 정치학박사. 일본 토쿄대학, 게이오대학 객원교수 역임. 현재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저서로 《정치대국 일본》 《日本防衛産業政策の決定構造と利益政治》 《과학기술의 정치경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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