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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불교의 어제와 오늘 / 이지범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자
[5호] 2000년 12월 10일 (일)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자
1. 머리말

남북관계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정점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 대 정부의 하이 폴리틱(High politics)적 개선이 이루어지는 한편, 종교단체 등을 비롯한 남측 NGO들이 지난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를 직접 참관하는 등 로 폴리틱(Low politics)적 관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관계의 화해무드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종교 교류가 활성화되는 데에는 많은 난제가 존재한다. 북한이 여타의 부문과는 달리 종교 교류에 소극적인 이유는, 종교 개방은 사상의 교류를 뜻하며, 이는 곧 북한 주민들의 심적·사상적인 동요를 일으킬 수 있으며, 북한 체제의 유지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1)

이런 사정으로 인해 종교 교류가 타분야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북한 내부의 종교 지형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98년 헌법의 재개정2)을 통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제75조 신설)한 것이나, 북한의 종교단체를 대표하는 조선종교인협의회 장재언 위원장(조선 천주교인협회 위원장)이 북한 적십자사 대표를 맡고, 그 활동 범위도 크게 확대되고 있는 데에서도 그 변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 내부의 종교현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제한적이며, 따라서 이 글 또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이하에서 북한의 종교정책과 북한불교의 조직 및 여러 가지 제도 등을 통해 북한 내에서의 불교가 어떠한 활동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살펴보겠다.

2. 북한불교의 조직과 그 활동

1) 북한의 종교정책 변화


오늘날 북한 사회는 김일성 주석이 주창한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단일공동체와 같은 사회로 되어 있다. 이 체제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면서 그들의 역사에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타냈다. 그 하나는 반제국주의 투쟁이며, 다른 하나는 봉건적 요소의 척결이다.

반제국주의적 투쟁사는 미국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종교(기독교)라고 여겼고, 결국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봉건주의에 대한 투쟁은 국가정권과 생산 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봉건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되었는데, 그 봉건세력을 지탱하게 하는 지배적인 사상이 종교였다고 보았기 때문에 불교와 유교 등 전통적 종교들에 대해서도 반봉건의 기치하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48년 이후 종교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철저히 통제해 왔던 북한은 72년 사회주의 헌법의 채택을 통해 북한의 체제와 제도가 인민민주주의 제도에서 사회주의 제도로 변화되었음을 선포하고, 주체사상을 북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사상화하였다. 이러한 각종 작업을 거쳐 종교의 본질과 형식이 사회주의 제도에 맞게 개조되고, 당시 북한체제 수립에 봉건잔재 대상(63년의 성분조사사업)으로 지적된 종교가 종교행위 금지와 물적 구조의 와해로 약화되자, 북한은 70년 초기부터 종교를 위험시했던 과거의 태도에서 종교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불교도연맹(73년), 조선기독교도연맹(74년) 등을 재조직하여 통일전선의 활동을 강화하고, 사찰 및 교회의 건립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고, 팔만대장경 번역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등 외적으로는 다양한 종교활동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북한 종교계의 모든 실상은 그들의 주장이 부정확하고 방북자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종교에 대한 태도가 종전에 비해 크게 진전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북한 종교인들의 활동이 순수한 종교 활동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종교 행사를 병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종교인들과도 교류를 시도하고 있어 향후 북한의 종교계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북한 종교계의 변화에는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폭과 깊이를 달리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아직까지는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기보다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다.3)

왜냐하면 주민들은 의식주(衣食住) 측면에서나 교육을 통해 종교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받았기에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사회에는 6·25전쟁을 전후로 약 50년 넘게 반종교정책을 실시하여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새로운 정치적 종교(political religion)라는 하나의 주체사상이 종교와 같은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4)

그렇지만 북한 사회의 구성원인 북한 주민들에게 종교적 심성이 일반적인 무관심과 주체사상의 등장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5)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이 “정초가 되거나 불교 명절이면 손수 농사지은 오이, 수박 등을 가지고 가까운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린다.”고 한 것처럼, 주민들은 나름대로의 잠재적 종교 욕구를 가지고 있다. 종교심은 인간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사회에도 진정한 종교 신앙인이 있을 것이고, 깨달음과 포교화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평화통일과 상생(相生)을 기원하며 북한의 신앙인과 격의 없는 꾸준한 교류를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들의 시도는 북한과 북한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부의 학자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이 일종의 신흥종교의 가르침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북한 사회를 총괄적으로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사상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흑백논리나 냉전 이데올로기로 북한의 종교를 논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현실의 일부 측면만을 확대하여 북한의 종교를 과대평가하는 오류도 피해야 할 것이다.

2) 조선불교도 연맹의 성격

북한의 종교 중에서 불교는 가장 활발한 활약상을 보여 왔다. 해방 이전 북한불교의 교세는 193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조사에 의하면, 전국 31본산 가운데 9개 본산이 북한지역에 있었으며, 403개소의 사찰과 49개의 포교당, 1,572명의 승려와 72명의 포교사, 그리고 37만 5,438명의 신도가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그 교세는 현격히 약화되었다.

북한의 불교를 대표하는 조직은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약칭 조불련)이다. 전국적인 조직으로 구성된 이 단체가 조계종과 같은 법맥으로 단일 종파를 형성하고, 45년 해방 이후 여러 이름으로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불련은 45년 11월 26일 김세률, 유빈암, 한영규 등 총 16명의 상무위원과 연맹원 375,438명으로 창립된 ‘북조선불교총연맹’을 모체로 55년경에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각 시·도위원회를 공식 조직화한 단체이다.

조불련은 결성 목적을 “전 조선불교의 통일단결과 신앙자유의 확보를 기하며, 불교도의 노동정신을 앙양시켜 국가산업 경제 부흥 발전사업을 협조하는 데 있다.”고 하였고, 그 교의는 “석가 여래의 교법을 신해(信解)하여 견성성불함을 목적으로 하고, 교주 석가 여래의 홍법(弘法) 이래 용수의 대승사상과 달마·혜능의 선지(禪旨)와 원효의 원융만행(圓融萬行)과 보조의 집노연력(執勞蓮力) 정신과 서산·사명 및 용운(龍雲)의 애국적 행원(行願)을 전통으로 하여 등등상전(燈燈相傳)으로 이를 계승하고 있다.”6)고 밝혔다.

이로 미루어 보아 조불련은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사업에 동조 또는 협력하는 조직으로 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순응 또는 협조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 비해 탄압의 정도가 훨씬 적었다. 조불련은 1955년 1차에 이어 1984년 8월 제8차 확대전원회를 열고 위원장에 박태화 스님을 재선출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80년대부터 제3국과의 불교교류, 자국 내 종교의 자유 홍보, 사찰 및 문화재의 관리 등을 주요사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1992년에 입주한 평양시 모란봉 흥부동의 단독 2층 양옥 건물에서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조불련의 활동상을 보면 불교의식과 행사는 사찰에서, 승려교육과 양성은 불학원(佛學院)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불학원은 1960년대 말 함북 갑산의 중흥사에 설립되었다가 1991년 평양의 광법사로 이전했다. 20∼30대 젊은 스님과 전문교역자 30여 명 정도가 3년 과정으로 역사 및 교리해석, 불교경전, 염불습의 등 불교에 관련된 교과목을 교육받는다.

현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육과정이 중단되어 있다. 국가 차원에서의 종교교육은 1990년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의해 김일성 종합대학교 사회과학대 역사학부에 종교학과를 신설하여 5년제로 운영된다. 매년 20명을 선발하였는데, 1994년 첫 졸업생이 배출된 이후 800여 명이 졸업하였고, 현재 1백여 명이 재학중이다. 전공과목은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천도교, 천주교 등 5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희망에 따라 전공을 택할 수 있다.

종교학과에서 배출된 전문인력은 각기 전공에 따라 학업을 계속하거나 정부기관 또는 각 종교단체의 조직에서 일하게 된다.7) 김일성대학 종교학과의 기능은 북한 당국의 종교정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는 것이다. 북한의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불련의 성격은 한마디로 사판승가(事判僧家) 조직과 국가 공공(公共)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조불련의 스님들도 참선·경전 강론을 하며 수행한다. 현재 각 사찰에서 부문적으로 참선(조불련 스님들의 법계에서 禪師 등 품계가 있음)과 강론(불학원이라는 교육기관에서 講主와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음), 교류를 통한 홍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 시책으로 이루어지는 금요노동에 참가하고 사찰의 관리업무 등 사무행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점 등이나 다음의 사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판승가와 공공기관의 성격이 강하다. 첫째, 해방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불교계를 이끄는 지도자 그룹은 대처승이다. 조불련 소속의 구성원은 대처제도가 공식 인정되고 있으므로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할 수 있다.

남측과 같이 평상시에 법복을 항상 착용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으며 사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둘째, 구성원들은 행정과 연관된 종교단체업무·사찰관리 및 운영·교류사업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즉, 각종 법률과 제도에서 명문화된 종교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며 북한 내의 불교 대표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승려교육 기관의 운영과 불교의식을 주관하며 사찰의 관리 및 행정업무을 관장하고 있다.

그리고 남측 불교계를 비롯한 제3국과의 불교교류 및 행사를 개최한다. 셋째, 승가조직으로서 계율과 수행적 측면이 부족하다. 조불련 스님들의 법계에서는 볼 수 있지만, 정기성과 집단적 측면에서 볼 때 남측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종립선원 및 강원, 율원 등 전통적 수행 조직체계가 미흡하다.

조불련은 조계종과 같은 계통으로 소개되고, 불교 3대 명절 법회와 몇몇 사찰의 대중법회는 부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이판(理判)조직의 특징인 안거제도와 같은 전통적 방식은 활용하지 않고 있다. 넷째, 조직 구성원의 수에서 사판승의 인원이 이판승의 인원보다 훨씬 많다. 다섯째, 주요업무와 정책은 ‘확대전원회의’라는 협의기구를 통해 결정되고 시행된다. 대중공사 내지 임회(林會), 종회(宗會) 등 공의제도와 같은 불교의 전통적인 승가회의 방식보다 국가시책이 쉽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의 회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전원회의는 60년대 말기부터 공식적으로 5년마다 개최하고 있지만 현재는 부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여섯째, 국가 행정단위의 조직으로 편제되어 있다. 관할지역이 남측과 같은 교구 본사말 중심의 교단적 조직편제가 아니라 행정구역을 바탕으로 한 중앙위원회와 각 시·도·군을 단위로 한 공공기관의 형태로 각종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각 지역은 ○○인민위원회과 상호 연계를 맺으면서 사찰관리 및 운영,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일곱째, 이름과 직위를 법명보다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조불련 스님들은 일정한 법계(5품 法系)를 갖추고 법명을 가지고 있지만, 승가의 전통적 법명 호칭보다 직책과 이름을 먼저 사용하고 시기에 따라 그 이름과 법계를 혼용하여 쓰고 있다. 여덟째,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각 사찰의 주요 업무 가운데, 약초 생산과 경제 건설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수행의 한 과정으로 노동 활동을 하기보다 사회주의 경제발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3) 조선불교도연맹의 조직체계

북한에는 남한처럼 여러 종파가 있는 불교가 아니라, 오로지 조선불교도연맹이라는 하나의 조직이 전국을 관장하고 있고, 종교단체이자 하나의 사회단체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8)

이러한 조불련의 조직체계는 1대 김세률(45. 12∼미상, 48년 이후 김숭격으로 교체됨), 2대 안용숙(63. 2∼78. 최고인민회의 3∼5기 대의원 역임), 3대 박태화(79. 5. 5∼현재. 최고인민회의 8∼10기 대의원, 조선종교인협의회 부위원장, 98년 조국통일상 수상) 위원장이 조불련의 최고 지도자이다. 그 다음으로 황병준 부위원장, 심상진 서기장, 책임부원과 부원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조불련의 조직은 〈표1〉과 같다.

〈표1〉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의 조직체계9)

위와 같은 조불련의 조직체계는 중앙위원회에서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서기국에서 담당업무를 조정하여 시행하게 되어 있다. 별도기구로 교육기관인 불학원과 법계자격고시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모든 사무행정을 총괄하는 서기국의 산하에는 조직부·교양부·국제부·경리부가 별도 부서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서의 관장 업무를 살펴보면, 조직부는 중앙 및 시·군 위원회의 조직업무와 인사업무를 관장한다.

교양부는 법계자격고시 교육과 각종 법회(염불 등)를 주관하며 승려교육과 교리학습 등을 관장한다. 국제부는 대외업무 및 대회행사 개최시 의전업무 등을 관장한다. 경리부는 연맹의 재정 및 경리사무를 관장한다. 각 시·군의 불교조직은 시·군 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전국 10개 특별시와 50개 시·군별 조직이 구성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조직활동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불련은 불교 조직의 특징인 법계자격고시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 제도는 60년대 말부터 시행하였으나 본격적으로는 80년대 중반부터 시행되고 있다. 현재는 2∼3년 또는 4년마다 1회 정도로 개최되지만 이 또한 부정기적으로 조불련 중앙위원회 차원에서 열린다. 이 제도는 남북한의 불교체계의 동질성을 가장 강하게 나타내는 제도로서, 5품계로 법계가 이루어져 있다.

대선사쭻선사쭻대덕쭻중덕쭻대선 순으로 법계가 나뉘어져 있다. 자격 기준으로는 중덕의 경우, 연령 25세 이상 남자, 대학졸업자, 불학원 수료자, 승랍 10∼15년이 경과된 자, 3∼5년의 안거(선사는 5∼8년)를 마친 자 등에게 자격을 부여한다. 자격고시 내용은 서류 자격심사, 염불습의, 경전해석, 역사 및 불교교리 이해 정도 등과 개인적인 도덕성과 불교발전에 대한 기여도를 가격고시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대선의 경우는 자격기준에 이르면 법계 응시자격을 부여받는다. 대선사와 선사의 경우는 중덕과 대덕 법계의 품계를 자진 자에게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특히 대선사와 선사 법계는 또한 선사의 법계 자격에 해당된 자와 불교발전과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덕망을 얻은 자를 대상으로 추천받아 법계자격고시를 거치지 않고 법계를 인정받기도 한다. 현재 조불련 스님들의 법계품수 현황은 〈표2〉와 같다.

5) 북한의 승려 및 신도들의 종교활동

북한은 6·25전쟁 이전까지 800여 명의 승려들과 10만여 명의 불교도들이 500여 개의 사찰을 중심으로 신행활동을 하였다고 한다.11) 그러나 91년 조불련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현재 동 연맹에 가입된 신도의 수는 약 1만 명이고, 승려는 300여 명이며, 60여 개의 사찰에서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승려와 신도들의 활동을 보면, 사찰에서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불공 등 기원예식, 불교의 3대(성탄절, 성도절, 열반절) 기념일 예식 등 여러 가지 불교의식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례대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사찰 및 문화재의 관리와 함께 각 지역의 사찰에는 불교전문 교직자와 승려들이 배치되어 신도들의 신행활동을 돕고 있다고 한다.12)

그리고 각지 사찰들에서는 세계 평화의 날, 인권옹호의 날 등 국제적인 날에 즈음한 행사들과, 전쟁 반대와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와 외국 불교도들과의 연대성 법회와 같은 행사들이 수시로 개최되고 있다.13) 특히 북한의 승려들과 불교신도는 사찰의 관리 및 유지보수는 물론 약초 생산, 경제건설에 대한 노력과 물질적 지원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14)

이와 같이 종교활동을 하는 북한의 불교 신도 수를 추산할 수 있는 근거는 87년 묘향산 보현사 복원, 92년 4월 고구려 때의 사찰인 평양 대성산 광법사(조불련의 총본산 기능을 하는 사찰임)의 복원과 함께 조불련 중앙위원회 사무실이 92년 평양시에 개소되면서 중앙과 지역 연맹에 가입한 신도들의 숫자, 또는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은 대규모 불교 경축일에 국가적으로 공인을 받아 동참하는 수로 그들이 공양물을 올리고 탑돌이나 예불의식에 참여하는 수를 고정 불교신도로 추정한 경우이다.

그러나 남한과 같이 해당사찰에 신도카드를 비치해 인명부에 등재된 사찰의 재적신도는 없다. 현재 조불련이 추산하는 신도의 수는 약 1만 명인데, 이 중 남녀의 성비는 6대 4 정도로 거의 대등한 구성비이다. 이 중 4에 해당하는 여성의 수치는 북한 여성의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는데, 그들의 가정생활이 공식적인 루트 즉, 협동농장과 기타 공장에 가족전원이 취업을 하고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종 행사에 참가하는 여성의 수는 남자와 거의 비슷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여성이 북한의 종교형태에서 영향을 받는 경우는 전무하다. 이들은 종교적인 신앙활동과 사회조직원(영육아 및 가정살림 등)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없으므로 남한의 경우와는 정반대라고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불교의 신도는 대부분 중앙과 지역인민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사찰의 승려와 가족 그리고 각 위원회의 교직자, 사찰과 인접한 사하촌(寺下村) 주민들이 대부분이며 남한과 같이 먼 거리에 있는 사찰의 신도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통행의 제한과 인구정책이 계획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체계가 유동 인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정책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가해졌지만,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통제기구는 운영되고 있어 자율적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학생들은 소풍과 같은 집단적인 활동에서 인근의 사찰을 찾아가고 있으나 그 문화재들이 불교와 연관되어 있을 뿐 종교적인 신앙화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귀순자들의 증언에서도 “그 사찰에는 가 봤다.”는 정도이고 사찰에 있는 스님(중이라고 표현함)은 책임지도원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만의 경우가 아니라 타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국내언론에 보도된 경우와는 달리 북한 정부의 종교적인 인정과 수용은 아직 어려운 실정이다.

95년 5월에는 중국 북경에서 열린 남북불교실무대표자 회담에서 조불련 박태화 위원장으로부터 확인한 바와 같이 《석문의범》에 의거해 염불을 하고, 평양시 개선문 청년공원 내에 위치한 용화사에는 매월 격주간으로 정기법회가 열리고 있는데 약 1백 명 정도의 승려와 신도가 고정적으로 참석하여 신앙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기법회에 참석한 불자들이 불경이나 찬불가집 등 의식에 필요한 도서 및 자료를 가지고 법회를 보는 일은 없다.

6) 북한불교의 분화상태

북한의 불교계는 남한 불교계와는 몇 가지 공통점과 여러 가지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는 불교적인 측면만을 고려하여 남북한의 불교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화와 미분화 상태로 정리하였다.(표3) 다음과 같이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통제받지 않는 종교활동은 불교의식(염불방식), 3대 불교기념행사, 복식 및 삭발, 승려(출가) 및 신도(가입) 신분, 계율적 내용, 법계 및 법호 사용, 불교기관 교육기회 등이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집중적인 통제를 받는 종교활동은 외국 및 집단적인 포교와 선교활동, 종사자의 급료 및 지위, 단체의 대표성, 사찰 및 문화재의 관리와 설치 등에 많은 규제를 가하고 있다. 북한에서 종교의 각 부문이 통제받는 것은 국가에서 사찰 건립 및 문화재 보수를 관장하고 예산을 지원하거나 시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포교활동은 대외 개방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심적 오염’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집중적인 통제를 받는다.

기타 통제를 받는 부문은 국가에서 관장하는 업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결국, 북한 당국으로부터 집중통제를 받는 영역은 우리들에게 북한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불교의 사회적 기능을 봉건 잔재 요소로 규정하거나, 1970년대 주체사상이 등장하면서 더욱 불교에 관한 연구가 심화되고 대상이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오늘날 북한 종교인들의 애국적 역할에 대한 언급과 제의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3. 맺음말

북한의 불교는 남한불교와는 달리 자립성과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북한불교가 첫째는 전통적 교리에 대한 신앙과 실천의 자유, 둘째는 신앙집단 조직운영의 자율성, 셋째는 신앙과 집단행사 및 종교의식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적 공인 장소(聖所) 확보의 세 가지 요소를 종합적이고 완전한 형태로서 갖추고 있지 못한 점에서 기인된다.15)

그러나 북한은 92년부터 헌법상 종교적 독립성을 다소 보장하고 있으며, 불교문화재가 80%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북한의 종교는 “(종교를) 장려하지도 박해하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16) 90년 이전 통제된 형태의 종교지형(religious terrain) 위에서 아직까지는 ‘북한 내의 반종교선전 강화’라는 실질적 과제와 ‘남한 종교와의 통일전선 구축’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동시적으로 결합시킨 종교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17)

북한의 불교는 이러한 종교정책으로 인해 80년부터 2∼3년을 간격으로 묘향산 보현사 팔만대장경 보관소(87년), 광법사(91년), 조불련 청사(92년), 정능사(93년) 등 대규모의 사찰을 꾸준히 복원함으로써 서서히 종교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1998년는 황해도 성불사에 주지 스님(정모, 2000년 5월 입적)을 배치하는 등 전국 사찰에 스님을 상주하게 하고, 불학원에서는 승려교육과 함께 삭발과 법복 착용을 하고,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은 불교 3대 명절 이외에도 가정과 사찰에서 불공을 할 수 있게 하였으며, 특히 불교행사에서 찬불가와 법문을 불교의식에 포함하여 개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89년부터 금년까지 7회에 걸쳐 북한을 다녀온 법타 스님과 평불협 미주본부 임원들에 의해 많이 알려지고 소개되었다. 이러한 북한불교의 변화가 아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이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불교가 남한 불교계와 동일한 불교의식·법복 착용·삭발 등 외형적으로나마 변화된 것은 중요한 ‘동질성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북한 사회의 변화를 추측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으며, 종교에 대한 개방의 정도가 곧 북한 개방의 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끝>

이지범
경주에서 출생하여 지금까지 불교민주화와 북한불교연구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 94년에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으며, 지난 10월 9일∼14일까지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 참관을 위해 방북한 바 있다. 저서로는 《북한 고향 가는 길 안내도》 《현존하는 북한의 사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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