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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불전도(佛傳圖)와 불교 도상(圖像)
유근자 동국대 강사
[30호] 2007년 03월 12일 (월) 유근자 yoogj65@hanmail.net
* 이 원고는 '한국의 문화, 불교에 녹다'라는 주제로 2007년 2월 10일과 11일 양일간 개최된 한국 불교학회 겨울 워크숍에서 발표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1. 불교미술과 불전도상

불교미술의 시작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후 그의 유체(遺體)를 화장하여 수습한 사리(舍利)를 봉안한 진신탑(眞身塔)에서 비롯되었다. 석가모니불의 열반 후 불탑(佛塔)은 불교도들에게 생존의 석가모니불을 대신하는 정신적 귀의처였고 석가모니불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공양(供養)을 위해 불탑을 찾은 이들에게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묘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본생담(本生譚, 前生譚, J칊taka)과 불전(佛傳)을 미술로 표현한 본생도(本生圖)와 불전도(佛傳圖)이다. 석가모니불이 금생(今生)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것은 금생의 수행과 더불어 세세생생 쌓은 공덕의 결과라고 한다. 본생담은 전생에 쌓은 공덕을 기술한 것이고, 불전(佛傳)은 인간의 몸으로 산 금생의 일을 말한다.

불교도들은 나라와 시대에 관계없이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세계를 가시적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노력 속에 탄생한 것이 불전도와 본생담이며 넓은 의미의 불교미술일 것이다. 즉 사바세계에 불국토를 건설하려던 것이 바로 불교미술의 시작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생도와 불전도는 자연스럽게 불탑 주위를 두른 난간이나 탑문(塔門)·탑신(塔身)·탑기단(塔基壇)을 장식하여 불탑을 찾은 불교도들에게 석가모니불을 알리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였다.

석가모니불의 일대기와 전생담의 미술적 표현은 중인도의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에 제작된 바르후트(Barhut) 탑, 보드가야 탑, 산치 대탑, 그리고 기원후 1세기~4세기에 제작된 남인도의 아마라바티(Amaravati)와 나가라주나콘다(Nagarjunakonda)의 탑문(塔門)과 탑 주변을 두른 울타리인 난순(欄楯)에서 찾을 수 있다. 중인도와 남인도의 불전도는 주로 석가모니불의 일대기 가운데 중요한 사건인 탄생·출가·성도·초전법륜·열반 등을 압축해서 표현한 사상도(四相圖) 혹은 오상도(五相圖)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굽타 시대에 들어와서는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압축한 팔상도(八相圖)가 정착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우리나라의 팔상도와 약간 다르다. 즉 굽타시대 인도의 팔상도는 탄생(誕生)·성도(成道)·초전법륜(初轉法輪)·취상조복(醉象調伏)·원후봉밀(猿?奉蜜)·사위성신변(舍衛城神變)·33천강하(三十三天降下)·열반(涅槃) 등이다. 즉 전법 시기의 활동이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북인도에 속하는 간다라 지방에서 제작된 불전도의 내용은 현재 확인된 것만 110가지 정도로, 중인도와 남인도에 비해 다양하게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간다라 미술은 쿠샨 제국의 중심지였던 간다라 지역에서 기원 후 1세기에서 4세기까지 번성한 불교미술로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다룬 불전도를 어느 지역보다도 다양하게 제작하였다. 이러한 간다라의 불전도는 불교미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불교 도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가운데 본 발표에서는 항마성도(降魔成道)·범천권청(梵天勸請)·열반(涅槃) 도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간다라 미술과 불전도

간다라 지역은 좁은 의미로는 페샤와르 지역만을 한정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페샤와르·탁실라·스와트·아프가니스탄 일부 지역까지를 포함한다(圖 1).

간다라 미술은 서구적인 표현과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되어 있어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 간다라 미술의 주류이자 대표적인 것이 불교 조각이고 여기에는 이러한 매력이 잘 반영되어 있다.

간다라 미술의 연구는 19세기 말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으나 간다라 불교 조각의 편년과 성격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간다라 미술은 불상의 기원설과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논의가 분분했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간다라는 불교학자들에게는 대승불교의 발상지 또는 발전의 중심지로, 불교미술사가들에게는 불상의 발생지로 주목받아 왔다. 예를 들어 《법화경》과 《대아미타경》 등 여러 초기 대승경전들이 내용상 이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든지, 또 이 지방에서 출토된 명문들에 대승불교와 연결될 만한 구절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점들을 그러한 근거로 꼽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지방에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의 부파불교가 융성했고 대승불교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다고 생각되지만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

쿠샨 시대의 불교 교단은 포교를 위해 그 방법의 하나로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불전(佛傳) 문학으로 집성하거나 미술로 표현하여 사원을 찾는 불교도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방법을 강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각적인 자료로써 탑원(塔院)의 불탑이나 차이티야(caitiya) 안에 봉안한 탑, 또는 대탑(大塔)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탑(小塔)에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나 전생담을 묘사하는 탁월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표현한 불전도는 출가자와 재가자를 포함한 불교도들에게 불교를 이해시키는 포교의 한 방법이었을 것이며, 정주(定住) 생활을 시작한 승려들에게는 승원을 유지하는 재원의 확보 방법도 되었을 것이다.

3. 간다라의 항마성도(降魔成道) 불전도상(佛傳圖像)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표현한 불전도 가운데 항마성도(降魔成道)는 석가모니불의 깨달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불교가 시작되는 일대 사건이다. 이러한 항마성도 장면을 미술로 표현한 것이 바로 ‘항마성도 불전도’이다. <오른쪽 그림 항마성도 베를린 국립인도미술관>

석가모니불의 항마성도 불전(佛傳)은 인도 고대 초기 불교미술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기원전 2세기에 조성된 바르후트(Barhut) 대탑의 난순과 기원 후 1세기의 산치대탑의 탑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는 무불상(無佛像)의 시대였기 때문에 석가모니불의 모습은 형상화되지 않았고, 보리수(菩提樹)·법륜(法輪)·탑(塔)·금강보좌(金剛寶座)·산개(傘蓋)·불족적(佛足跡) 등으로 상징화하였다. 그런데 쿠샨 시대 간다라인들에게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석가모니불을 인간 형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간다라의 ‘항마성도 불전도’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한 석가모니불을 오랫동안 상징해 온 보리수 대신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양을 한 인간 석가모니불을 창안해 내었다. 이 도상은 이후 석가모니불의 대표적인 수인으로 자리 잡아 불교 도상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4. 간다라의 범천권청(梵天勸請) 불전도상

간다라의 ‘범천권청’ 불전도는 간다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부터 만든 불전도상(佛傳圖像)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스와트의 붓카라(Butkara) Ⅰ 사원지와 로리안 탕가이(Loriyan Tangai) 등지에서 출토된 범천권청 도상은 불상의 기원설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간다라의 초기 불전도상을 이해하는 데 그만큼 중요하다. <왼쪽그림 범천권청 1세기 베를린 국립인도미술관>

항마성도와 더불어 석가모니불의 성도기(成道期)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 바로 범천권청(梵天勸請)이다.

범천권청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불에게 범천(梵天)이 법을 설해 줄 것을 간청하여 전법(轉法)이 이루어진 것으로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범천권청 불전(佛傳)은 석가모니불의 사대사(四大事)인 탄생·항마성도·초전법륜(初轉法輪)·열반과 함께 이른 시기부터 미술로 표현되기 시작한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성도지의 기원전 1세기에 조성된 보드가야 대탑 난순에도 범천권청 장면을 묘사한 불전도가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증명해 준다.

항마성도가 깨달음을 얻은 한 아라한의 등장을 의미한다면 범천권청은 비로소 중생 구제를 염두에 둔 부처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러한 범천권청 불전도는 삼존 구도의 시원 양식으로 범천과 제석천이 석가모니불을 협시(脇侍)하지만 대승불교 시대에 보살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석가모니불의 옆자리를 보살에게 내어준다. 이교도의 조복을 염두에 두어 차용한 범천과 제석천 도상은 이제 보살행을 강조한 대승불교 시대에는 더 이상 효력이 없었다.

불교의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 바로 범천권청 불전도이고 삼존구도의 시원 양식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범천권청 불전도상은 초기의 불교 도상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5. 간다라의 열반(涅槃) 불전도상

간다라의 열반(涅槃) 도상은 사자(死者)로서 횡와(橫臥)의 석가모니불 도상을 창안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오른쪽 그림 열반 캘커타 인도 박물관>

즉 열반은 번뇌가 소멸된 상태로 불교 최고의 이상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것을 간다라인들은 사자(死者)인 형상으로 석가모니불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된다.

상주불멸(常住不滅)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사리탑(舍利塔)에 사자(死者)의 형상을 한 석가모니불의 열반 장면 묘사는 분명히 획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열반 도상은 항마촉지인 도상과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쳐 팔상도(八相圖)의 열반 도상에 계승되고 있다.

6. 간다라 불전 도상 연구의 의의

이와 같은 항마성도(降魔成道)·범천권청(梵天勸請)·열반(涅槃)은 부파 교단과 대승 교단에서 불타관(佛陀觀)과 결부되어 초기부터 중요시되었던 교학적인 문제였다. 간다라 불교와 불교미술을 살피는 데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불전도상이다. 따라서 간다라 불전도상 가운데서도 항마성도·범천권청·열반 도상 연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간다라 불전도는 처음으로 인간 모습의 석가모니불을 표현한 것으로 분명 당시 불교도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불교 도상학의 커다란 변화였다. 이러한 간다라의 불전도는 대소승(大小乘)을 막론하고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승불교의 흥기와 불전문학(佛傳文學)의 발전은 간다라 불전도 제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각 율장(律藏)에 석가모니불의 생애가 부분적으로 등장하고 있어 초기에는 당시 가장 널리 알려진 불전(佛傳) 내용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서 불전도로 제작했을 것이다. 불전문학이 불전도 제작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역으로 당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를 표현한 불전도를 보고 불전 작가들이 불전(佛傳)에 삽입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즉 불전문학과 불전도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본 발표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불교미술을 통한 불교의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간다라 불전도상을 통한 불교미술의 도상 파악이다.

첫 번째 목적인 불교미술을 통한 불교의 이해는 곧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위대한 성인(聖人)의 삶은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석가모니불의 80세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은 바로 불교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지름길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간다라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본생도와 불전도이다.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담은 불전(佛傳)은 일반적인 전기(傳記)와는 내용이나 짜임새가 다르다. 석가모니불이 인간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 즉 일체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된 것은 인과(因果) 사상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그것은 과거의 무수한 겁(劫) 이전으로부터 보살로서의 커다란 수행을 쌓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상적인 바탕을 갖고 있는 본생도와 불전도의 도상 이해는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파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석가모니불 생애의 한 장면을 압축해서 표현한 간다라 불전도야말로 쿠샨 시대의 불교학과 예술이 만나 빚어낸 불교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로 표현된 불전도라는 시각매체는 불가시(不可示)한 석가모니불의 진리 세계를 담으려고 고심하면서,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인간 모습의 석가모니불을 불교미술에 도입하였다.

사원에 불전도가 장엄된 탑을 봉안한 당시 사람들은 석가모니불의 사리가 봉안된 탑을 예배하면서 불전도를 통해 석가모니불의 생애와 가르침에 다가갔을 것이며, 그 영향은 이후 사상도(四相圖)·오상도(五相圖)·팔상도(八相圖)로 자리잡아 갔을 것이다. 전생담부터 열반 후 사리탑 건립까지 마치 경전을 옮겨 놓은 듯한 불전(佛傳) 표현은 분명 간다라인들의 불교 이해를 위한 획기적인 방법이었음에 틀림없다.

두 번째 목적인 간다라의 불전(佛傳) 도상 연구는 불교미술의 도상을 이해하는 근간이 된다는 점이다. 간다라 불전 미술은 석가모니불의 전생 이야기와 80년에 걸친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을 선정해 한정된 공간에 압축해서 표현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장인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불전도의 장면 하나하나에 석가모니불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상의 주요 수인(手印)은 석가모니불의 생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탄생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치는 모습은 천지인(天地印)으로, 수행기 때의 참선 자세는 선정인(禪定印)으로, 마왕을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첫 설법 때는 전법륜인(轉法輪印) 혹은 설법인(說法印) 등으로 도상이 확립되어 갔다. 이러한 도상 해석에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다룬 간다라 불전도의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간다라 미술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못한 편이며 불전도상 연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간다라와 인도의 불전도상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불교 미술 도상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유근자 /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박사 과정 졸업. <간다라 불전 도상의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및 동국대 강사. 논문으로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 <간다라 범천권청 불전 도상의 지역별 비교 연구>, <디르 박물관의 간다라 불상 조각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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