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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불교론은 허구의 맹종인가 / 이봉춘
- 한국불교의 긍정적 자기 인식을 위하여
[5호] 2000년 12월 10일 (일) 이봉춘 동국대 교수

1. 머리말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순기능 때문이다. 정체성은 곧 그들 자신의 존재의미와 연관되며, 새로운 비전의 모색에도 중요한 이념적 근거가 된다.

이 같은 정체성의 기능과 역할은 종교집단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한국불교 또한 이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다. 그 동안 한국불교는 회통(會通)불교 또는 통불교적(通佛敎的) 특성을 통해 그 정체성을 소중하게 인식해 왔다. 이런 한국불교의 특성에 대해서 불교학자는 물론 일반학자들까지도 대체로 이를 긍정적으로 인정해오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회통불교는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 학계 일반의 견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학계 일반의 견해가 반드시 진실의 반영인가 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불교학계 내에도 회통불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음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런 뜻에서 최근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그 특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일어나고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의가 제기되어 온 문제라면 학문적인 논의와 검토는 당연히 필요하며, 그럴 경우 관점과 견해의 차이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정체성 논의에 있어서 그 특성 규정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거나 무의미한 일로 거론되고 회통불교론이 허구의 맹종으로까지 단정되는 논조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비판적 검토가 ‘정확한 진실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읽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러한 주장들에서는 적지 않은 논리적 비약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정체성 담론 및 회통불교 논의에 대한 필자 나름의 관심과 참여의 뜻을 지닌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심재룡 교수의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인가〉(〈불교평론〉 통권3호, 불교평론사, 2000. 여름호)와 길희성 교수의 〈한국불교 정체성 탐구〉(〈한국종교연구〉 제2집,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2000.)에서 한국불교 특성에 관하여 제기한 문제점들과 비판적 관점들을 주목하면서, 필자의 생각을 말해 보려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에 참여하는 이 글의 기본 입장부터 밝혀 둘 필요를 느낀다. 필자는 위 두 편 논문의 상당부분 지적들에 크게 공감하는 입장이다. 이들 논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이지만, 가령 회통불교론을 포함해서 그 동안 한국불교계의 자기 본위적 최고의식과 자화자찬의 경향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부담감을 갖고 있다. 한국 불교문화 지상주의 내지 불교인들끼리의 자찬은 한국불교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이제는 떨쳐버려야 할 자기애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이 곧 한국불교의 긍정적 자기 인식까지도 부인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 본위의 무조건적인 최고의식과 긍정적 자기 인식은 엄연히 구분된다. 즉 전자가 유아적(唯我的) 자화자찬의 모습이라면, 후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고 그 당위성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이 글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비판에의 대응이나 호교론적 충성에서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긍정적인 자기 인식 문제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정체성 및 특성 논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2. 특성에 대한 비판적 관점들

위에 제시한 두 편의 논문은 다같이 한국불교 및 그 연구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인가〉(이하 A논문이라 함)에서 통불교와 연관하여 심재룡 교수가 보태고 있는 ‘쓴소리’의 지적들은 그의 기대대로, 현대 한국불교의 장래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위해서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또 길희성 교수는 〈한국불교의 정체성 탐구-조계종의 역사와 그 사상을 중심으로-〉(이하 B논문이라 함)에서 종래 불교학계의 연구방법과 그 결과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국불교의 지난 역사와 그 현재의 모습에 부합하는 선에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논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역시 한국불교학 연구에 있어서 참고할 만한 방향의 제시라 하겠다. 이 외에도 이들 두 논문의 유익한 지적들이 적지 않지만, 특히 그 동안 아무런 제지 없이 안주해 온 한국불교 지상주의와 자찬의 경향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은 한국불교의 자기 반성과 발전에 좋은 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어느 의미에서이든 불교학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기에 충분한 두 편 논문에 대한 이해와 검토를 위해 여기서 그 논지의 대강을 일별하기로 한다. 이들 논문은 대체로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거의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A논문이 주로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 회통불교에 관한 문제에 논점을 모으고 있다면, B논문은 이 문제와 함께 특히 한국불교의 대표성을 지닌다 할 조계종의 역사와 현재상황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논증에 더 큰 비중을 둔 차이는 있다. 그러나 두 편 논문은 다같이 한국불교의 특성을 통불교 또는 회통불교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종래 불교학계의 연구경향 및 그 결과적 현상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음은 거의 일치한다.

불교학계의 통설이 되어온 회통불교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의 논지는 한마디로 학계일반의 견해에 대한 전적인 부정으로 읽혀진다. 그것은 우선 두 편의 논문에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비판적 관점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① 한국불교의 역사적 실체에 대하여 고유한 특성을 찾고 논하는 일이 가능하며 또 의미가 있는 일인가. 더구나 한국불교의 특성을 ‘회통불교’라는 식으로 말하는 단언적 규정은 어떤 정당성과 의미가 있는가.

② 한국불교의 회통론은 육당 최남선의 ‘화려한 선언’ 이후 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그것에 박수를 보내며 확대시켜 온 민족주의적 담론이며 불교학자들의 호교론적 성격의 주장에 불과하다.

③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서 역사적 탐구와 이념적 논의는 일단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통불교 규정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혹은 이념적 지향성에 따른 것인지가 불분명하여 적지 않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④ 선교 양종의 분리와 통합의 역사에 대해 한국불교의 독창적인 화쟁(和諍)전통으로 해석하는 것은 견강부회이다.

⑤ 선종 계열인 조계종으로 거의 일원화되어 있는 현재의 한국불교가 다양한 경론과 종파적 행법을 포용하고 있는 모습은 화해의 정신 및 회통성과는 무관하다.

⑥ 회통성은 불교문화 자체의 보편적 특성이다.
따라서 그것이 유독 원효와 한국불교만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상은 각기 별개로 쓰여진 두 편 논문에서 공통되는 비판적 관점들을 뽑아 함께 묶어 본 것이다. 따라서 다소 무리가 없지 않겠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우리는 두 논문의 대략적인 논지와 그 성격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요컨대 이들 논문은 무엇보다도 먼저 회통불교 규정의 정당성과 그 연구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①②③). 이어 화쟁·회통 정신과 한국불교 현재상황의 불일치에 대한 지적(④⑤)과 함께, 불교문화 자체의 보편성을 들어 회통성이 결코 한국불교의 전통사상이거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⑥). 두 편 논문에 대한 이 같은 이해를 전제로 이제 그 비판적 관점들에서 느껴지는 문제성을 차례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이는 동시에 회통불교와 연관하여 한국불교인들의 긍정적 자기 인식을 점검해 보는 일이 될 것이다.

3. 회통불교론의 당위성

‘장구한 역사와 다양한 얼굴을 가진 한국불교의 역사적 실체에 대하여 고유한 특성을 논하는 일은 과연 가능하며 또 의미 있는 일인가.’ 이 같은 물음은 곧 그런 일이 ‘하나의 본질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일 것이다(B논문).

B논문에서 우려하는 본질주의적 오류로는 첫째,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적 담론 둘째, 특정시대, 어느 한 사상가에 초점을 둔 한국불교 전체의 특성 논의가 지적되고 있다. 즉 민족주의적 담론으로서 출발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특성 논의는 불교의 보편주의적 성격에 비추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과, 또 한국불교 전체 역사에서 포괄적으로 일반화시킬 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특성으로 규정하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는 견해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역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역사가 장구하고 그 모습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서 한국불교의 특성을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또 찾고 논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체성의 확인 작업인 동시에 긍정적 자기 인식을 위한 당연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특성을 찾고 논하는 일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며, 또한 미래 불교 전개방향의 설정이라는 점에서도 그것에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민족주의적 담론 문제는 후술하겠지만, 특성을 찾는 일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바라보는1) 시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1) B논문은, 한국불교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으려는 종래 불교학자들의 노력이 시대착오적임을 지적하는 UCLA교수 로버트 버스웰의 관점을 빌어 이 문제를 논하고 있다. ‘한국불교’라는 의식 자체를 ‘근대의 민족 국가적 시각이 그 이전으로 투사된 하나의 상상(imagining)의 산물’로 보고 있는 버스웰은 그것을 근대 이전 한국 승려들의 인식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한국의 승려로서보다는 각파와 문중으로 구성된 사상의 학파나 수행전통에 속하는 자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많으며, 국가와 문화적인 경계들을 넘어선 분류법의 고승전(高僧傳) 어느 범주엔가 이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예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분류법과 그 안에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각국 승려들을 배열해 넣은 중국 고승전의 기록을 곧 불법의 보편성에 따른 범불교적 의식을 반영한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본다. 또 동아시아 각국 승려들을 중국 고승전 어느 범주엔가 포함시켜 넣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중화의식(中華意識)의 발로일 수도 있다. 로버트 버스웰, 〈국가시대 이전의 한국불교〉 《21세기 문명과 불교》, 동국대학교 출판부, 1966. 참조.

불교가 한 국가나 지역 사회나 문화권마저 초월하여 전파되어 온 보편주의적 종교라는 사실과 각 지역 불교에서 각기 그 특성을 찾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만일 불교의 보편주의적 성격 때문에 지역 불교의 특성을 논하는 일이 옳지 않고 불가능하다면, 각기 다른 역사적 전개를 보여 온 각 지역 불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나의 역사, 하나의 불교이념으로서만 그것을 바라보고 논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특성을 찾고 논하는 것이 결코 불교의 보편주의에 반하는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랜 불교의 역사와 다양한 모습 가운데서 어떤 사실과 정신을 특성으로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일은 물론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다. A·B논문이 함께 지적하고 있듯이, 그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실로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제가 그러한 만큼 당연히 어느 한 시대의 특정 사실이나 어떤 한 인물의 사상을 앞세워 그것을 전체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 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불교의 역사와 실제 또는 이념적인 면에서 비교적 일관성을 띠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긍정적 자기 인식을 위해 특성을 찾고 논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우선적으로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회통불교적 경향과 그 전통일 수밖에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불교의 역사적 경험과 정신 가운데 공통성과 일관성을 띤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아무래도 회통성이 그것에 가장 가깝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회통불교 이외에 다른 특성도 생각할 수 있다. 국가와 불교와의 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호국성 역시 한국불교의 한 특성임에 분명하며,2) 그 밖에 또 다른 특성 규정도 가능할 것이다. 2) 불교의 보편적 정신에 비추어 호국불교의 정당성 여부의 문제는 상존한다. 그러나 한국불교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호국성이 한국불교의 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그것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의 특성을 싸잡아 (회)통적이니 호국적이니 하는 식의 단언적 규정이 어떤 정당성과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회의적 반응이 그것이다(A논문). 그러나 특성을 찾고 표현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단언적 규정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교적 공통성과 일관성에 가까운 어떤 사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언적 규정보다도 그 규정이 역사와 이념을 포함해서 한국불교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겠는데, 이에 관해서는 앞서 회통불교에의 관심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자신의 특성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스스로 찾고 세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이나 긍정적 자기 인식을 위해 필요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역사적 또는 이념적으로 전혀 근거 없는 허구가 아닌 한, 그것은 타인의 논란이나 비판의 대상이 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국불교의 회통론이 육당 최남선의 ‘화려한 선언’3) 이후 불교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그것에 박수를 보내며 확대시켜온 민족주의적 담론일 뿐이라거나(A논문), 나아가 불교신자들의 호교론적 주장에 불과하다는(B논문) 비판들은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

3) 최남선의 논문 〈조선불교-동방문화사상에 있는 그 위치〉 제4장 ‘원효, 통불교의 건설자’에서 육당은 원효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의 완성자’라고 찬양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효성(曉聖)을 불교의 완성자라고 함에는 그 이행(易行)과 보급에 대한 공적의 밖에 더 한층 박대(博大)한 가치창조가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효성의 불교가 불교적 구제의 실현인 일면에 다시 통(通)불교, 전(全)불교, 종합(綜合)불교, 통일(統一)불교의 실현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못씀이다.”(《佛敎》 제74호, 1930, 8.)

어느 정도 그 개연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회통불교론의 전체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비판에서 느껴지는 문제성은 부분적인 사실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전체의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를 소홀히 하거나 애써 그 의미를 축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일정 부분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견해나 설득력 있는 비판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회통적 특성에 관한 논의는 육당의 논문이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두 논문의 지적대로, 한국민족 내지 불교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던 제국주의적 논리에의 대응으로 통불교론이 제시된 만큼 그 출발이 민족주의적 담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특성론이 일어난 사정과 그 논의의 확대과정 때문에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의 회통불교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논의가 일어나게 된 사정이나 확대의 과정보다도 그 실제의 내용인 것이다. A논문은 육당 이전에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1913)·권상로의 《조선불교사》(1917) 등 어디에도 한국불교를 ‘(회)통불교’라고 규정한 예가 없음을 들면서, 해방 이후 일관된 연구의 축적도 없이 육당의 선언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해 온 것이라고 말한다. 원효의 사상과 실천을 가리켜 ‘통불교·전불교·종합불교·통일불교’라고 규정한 것은 물론 육당의 논문에서이다.

그러나 표현된 용어는 다를지라도 이와 동일한 내용의 원효에 관한 인식은 일찍이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이나 하천단(河千旦)이 원효를 ‘화백가이쟁(和百家異諍)’한 인물로 평가하였고, 의천의 영향으로 숙종이 원효에게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를 추증했음은 주지하는 일이다. 이같은 원효에 대한 인식 및 그 정신은 고려·조선시대의 불교에서도 형식을 달리하면서 이어져왔다.

다시 말해서 한국불교의 회통론이 처음부터 끝까지 신라시대 원효 한 사람의 사상과 실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란 뜻이다. 한편 이런 정신 전통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근세의 불교에서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불교 개혁론의 선구자라 할 권상로의 불교사상에 원융성이 엿보이고,4) 조명기의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고려 대각국사와 천태사상》도 그러한 내용이 드러나 보이는 연구들이다. 4) 이재헌, 〈권상로의 불교개혁사상 연구〉 《보조사상》 제13집, 보조사상연구원, pp.551∼553.

조명기는 이들 저서에서 한국불교의 특성을 ‘총화(總和)불교’로 이해하고5) 이 역시 원효에서 근거한 것임을 서술하고 있다. 화쟁·통(일)·원융·총화, 어떻게 표현하든 이들은 결국 회통불교를 말함에 다름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회통불교 논의의 연원은 고려시대로까지 소급시킬 수 있으며 또한 근세의 연구에서도 그것에 주목해 온 경향이 분명한 만큼, 회통불교론이 무조건 육당의 선언에 동조해 온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5) 조명기,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p.36 및 《고려 대각국사와 천태사상》 p.46, 140.

요컨대 회통불교론은 근거 없는 허구적 담론이 아니며, 그와 같은 정신이 한국불교의 역사에서 비교적 일관성 있게 발견되는 것이라면 이를 굳이 외면하거나 비판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민족주의적 담론의 성격을 띠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위의 언급에서도 짐작되듯이, 회통불교론은 “민족주의에 의한 강한 정서적 애착과 정열로 실상을 왜곡하여 근거 없이 자화자찬하거나 과장해 온” 담론이(B논문)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회통불교론이 불교학자들에 의해 확대되어 왔고 그들 대부분이 불교신자들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것을 호교론적 주장일 뿐이라고 보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불교의 특성을 찾고 논한다고 할 때 그 주체는 당연히 불교학자들이며, 이들 대부분이 불교신자일 것임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불교학자들의 한국불교 특성 규정과 논의를 굳이 호교론적 주장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회통불교론이 아닌 다른 주장, 예를 들어 호국불교론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인가.

이는 자칫 논리적 독선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한국불교의 특성을 불교와는 무관한 학자이든가 아니면 최소한 비불교신자가 논하고 규정할 때 비로소 그것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을 간추리면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특성에 관해서는 언제라도 탐구 논의하고 규정할 수 있으며, 긍정적 자기 인식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면 그것은 결코 시대착오적인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또 그것은 식민주의 시대에 신라의 원효를 내세워 통불교임을 선언한 육당의 주장이 기폭제가 되었더라도, 회통불교론 전체가 원효의 사상과 실천에만 국한하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회통불교론을 민족주의적 담론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나 불교학자들의 신앙심에 의한 호교론적 주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것은 원효로부터 시작된 한국불교 정신의 역사이자 이념의 반영이다. 회통불교를 말할 수 있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회통정신의 역사적 전개

한국불교의 역사와 경험 가운데 특히 회통 정신에 주목하여 이를 특성으로 규정할 수 있음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특성을 통해 한국불교의 과거와 현재에 걸친 모든 사실과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특성의 기능이랄까 그 필요성은,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인 및 미래의 방향 모색에 한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특성의 규정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이 정도로서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 안에는 간혹 회통성 또는 그 전통을 한국불교의 모든 사실에 적용시켜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역사적 우연을 회통 정신으로 설명하려 한다거나 절충과 혼합의 양상을 회통과 동일시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는 회통성의 과장이며 논리적 비약일 수밖에 없다. 무리한 주장이 바로 이런 태도에서 나오며, 이 때문에 오히려 회통의 본래 의미가 왜곡되고 그 정신이 훼손을 입기도 한다. 또 자화자찬이기 쉬운 회통성의 주장들이 그대로 통할 리도 없다.

예를 들자면, “선교 양종의 분리와 통합의 역사에 대해 한국불교의 독창적인 화쟁 정신으로 해석하는 것은 견강부회”로 비쳐질 뿐이다. 현재의 상황에 회통성을 적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종 계열인 조계종으로 거의 일원화되어 있으면서도 다양한 경론과 종파적 행법이 허용되고 있는 한국불교의 모습에서 화쟁의 정신과 회통성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견강부회에 불과하다.”는 지적을(이상 A논문) 받게 되는 것이다.

무리한 주장들이 자초한 당연한 결과이다. 회통 정신이 한국불교 안에서 훌륭한 특성으로서 인식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불교의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하려 하거나 적용하고자 할 때 이 같은 비판적 지적을 면하기는 어렵다. 굳이 외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화쟁, 회통, 통불교를 너무 안이하게 적용해 온 한국불교 안의 경향은 분명 자성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그런 뜻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적 지적은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일로 본다. 다만 이와는 별도로 언급하고 넘겨야 할 점이 있거니와, 논란의 현실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즉 회통성의 과장이나 그 확대해석을 문제로 삼더라도 이를 불교학계 전체의 현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는 뜻이다. 사실 불교학계라 해서 회통성의 과장에 모두 공감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불교학계의 주류적 경향이거나 전체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A논문이 지적하고 있는 ‘견강부회’의 사례만 하더라도 실제 그 구체적인 경우를 학문적 논의에서 찾아보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다시 말해서 회통성의 과장과 확대해석은 학문적인 논의라기보다는 다분히 대중적 정서로서 드러나는 현실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불교학계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정서라는 것 또한 불교학계가 보여온 경향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비판은 여전히 불교학계의 몫임에 분명하다. 학문적 논의로든 대중의 정서적 현실에서든 문제가 되는 것은 회통성의 지나친 강조와 그 확대해석이다. 이점을 인정하더라도, 그러나 회통성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바로 한국불교의 역사적 사실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 같은 역사적 사실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의미를 축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주장의 근거로서 충분하다고 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한국불교에서 그 회통성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중시되어 오고 있다. 이제 그것을 잠시 살펴보려 한다. 한국불교의 회통정신을 말하고자 할 때 으레 신라시대 원효(617∼686)의 사상과 실천을 떠올리게 됨은 대부분 불교인들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역시 육당의 선언에 영향을 입은 때문일까? 어쨌든 한국불교에서 원효는 불멸의 성승(聖僧)으로 추앙된다. 그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국내학자는 물론 외국학자들까지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왔고, 그 성과 또한 적지 않게 축적되어 있다.6) 6) 국토통일원 조사연구설, 《원효연구논총》(1987), 부록 ‘연구문헌목록’;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11·12(1995), 목차 참고바람.

그 가운데 특히 원효의 중심사상으로 일컬어지는 화쟁사상에 관한 것만 해도 하나의 연구사를7) 구성할 정도이다.7) 김상현, 〈원효화쟁사상의 연구사적 검토〉 《불교연구》 11·12.

여기서는 원효의 사상을 부연해서 설명하기보다는 《한국사상사》에서 논하고 있는 박종홍의 견해를 빌어 그것을 대신하고자 한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개합(開合)과 종요(宗要), 입파(立破)와 여탈(與奪), 동이(同異)와 유무(有無), 이변비중(離邊非中), 일미(一味)와 절언(絶言)의 논리를 통해 백가의 이쟁을 화해하게 하려는 것이며8) 이는 곧 진리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보는 원효의 기본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효의 이 같은 사상은 그 자신의 삶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8) 박종홍, 《한국사상사-불교사상편》(서문당, 1975), pp.85∼106.

그는 진제와 속제의 차별성을 뛰어넘는 실천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기 활발하게 전개된 불교대중화 운동도 바로 이런 원효의 진속무애한 실천적 삶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불교 회통성의 역사가 원효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9세기경 신라에서도 이미 주목되었지만,9) 그 가치가 크게 재인식된 것은 고려 전기 대각국사 의천(1055∼1101)에 의해서였다. 의천은 원효에게 ‘효성(曉聖)’ 또는 ‘해동교주(海東敎主)’ ‘원효보살(元曉菩薩)’ 등 최고의 존칭을 사용하여 존경심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특히 원효의 탁월한 화쟁사상에 대한 귀경(歸敬)이라고 볼 수 있다.10) 9) 애장왕 때(800∼808)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화상비문에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원효의 대표적 저술로 들고 있는 데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10) 《대각국사문집》 권16, ‘祭分皇寺曉聖文’ “오직 우리 해동보살이 성(性)과 상(相)을 밝혀 은근히 고금 백가(百家)의 날카로운 이쟁(異諍)들을 융화시켜 일대의 지극히 공평한 논의를 얻었다.”

그밖에 원효에 대한 여러 가지 추앙으로 미루어 의천의 불교사상과 활동은 원효로부터 받은 영향이 가장 컸던 것으로 짐작되며, 그의 천태종 개창에서도 그것이 엿보인다.11) 화엄과 천태를 동시에 수용한 의천은 천태의 5시교판이 화엄의 5교판과 대동(大同)하다고 파악하고, 천태의 교(敎)와 관(觀)이 화엄을 비롯한 여러 교학과 선의 대립을 극복하여 하나로 융합시킬 수 있는 최상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다. 11) 위의 책 권14, ‘大宋天台塔下親參發願疏’

고려 천태종은 의천의 이 같은 확신 위에서 개창된 것이다. 교관겸수를 강조하며 화엄과 천태의 조화를 모색하고, 나아가 선과 교의 대립을 극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고려불교를 통합하고자 했던 의천의 천태종 개창은 선교통합사상체계의 수립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그의 교종과 선종의 통합시도는 절충적이고 과도기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여기에다 정치적 의도까지 작용함으로써 사상적인 면에서 한계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12) 12) 최병헌, 〈한국화엄사상에 있어서의 의천의 위치〉 《한국화엄사상연구》, 불교문화연구소(1982), p.209.

결국 의천의 천태종 개창을 통한 선교 통합의 시도는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의천의 사상활동은 한국불교 회통성의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임에 변함이 없다. 의천은 원효불교의 전정한 발견자였으며, 그의 사상활동은 그대로 원효의 화쟁사상의 계승 노력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의천에 이어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출현함으로써 한국불교의 회통적 사상활동은 다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원효와 함께 한국불교의 2대 사상가로 손꼽히기도 하는 지눌은 당시 종교적 순수성을 잃고 오염되어 가던 불교계의 쇄신과 함께 선교 대립의 극복을 위한 사상적 통합에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혜결사(修禪祀)를 통한 선불교 진작이 바로 그것이다. 의천이 교관겸수를 강조하며 교를 중심으로 그것에 선을 통합하고자 하였다면, 정혜쌍수를 주창한 지눌은 선에 교를 포섭하려는 입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지눌의 선사상은 그가 세운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의 3문에 체계적으로 나타난다. 즉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에 입각한 선정과 지혜의 균등한 수행→화엄과 선이 근본에 있어서 둘이 아니라는 관점에서의 성품에 의거한 참선(修禪)→그리고 마침내 지해(知解)와 어로(語路)의 자취를 떨쳐버린 최상의 길로서의 간화(看話) 수행을 차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3문체계의 구조는 매우 독창적인 선교 통합 사상을 보여준다.

전통과는 달리 하택신회(荷澤神會)의 ‘지해선(知解禪)’을 채택하거나(성적등지), 화엄종에서는 방계로 치는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화엄사상을 원용하고(원돈신해문) 있는 데서13) 그것을 알 수 있다. 13) 고익진, 《한국의 불교사상》(동국대학교 출판부, 1987), pp.43∼44.

그러나 지눌의 선사상은 《대혜어록》을 통해 막 일어나고 간화선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데서 그 의취가 더욱 분명해진다. 즉 선에 교를 수용하여 선교의 대립을 극복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간화선으로 쇠미해진 고려의 선법을 크게 진작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런 지눌의 정혜결사는 당대에 큰 성황을 이루었고, 그 후계자들에 의해 고려 후기까지도 계속된다. 지눌의 선사상과 활동의 영향은 오늘에까지도 여전히 미치고 있거니와, 이 역시 한국불교 회통성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회통성은 배불정책하의 조선불교에서도 찾아진다. 조선 초의 11종에서 7종으로, 다시 7종에서 선교 양종으로 폐합을 거쳐, 드디어 무종파의 산중 승단 불교로 존속해야 했던 조선시대에 끝까지 주류를 이룬 것은 선사상이었다.

산중승단의 특성상 선사상이 주류를 형성했을 것임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은데, 이 시대의 선사상에서 지눌의 선법 및 유풍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선종본사였던 흥천사의 초대주지 상총(尙聰)이 ‘송광유제(松廣遺制)’에 따라 법식을 행한 것이나, 벽송(碧松)의 선에 이르러 가는 방식에서도 엿보이지만, 특히 휴정에게서 지눌의 영향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이나 《선교석(禪敎釋)》에 보이는 휴정의 선사상은 지눌의 사상을 거의 문자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할 정도이다.14) 14) 심재룡, 《동양의 지혜와 선》(세계사, 1992), p.26.

이는 지눌이 시도했던 것처럼 조선불교에서도 여전히 선교일치와 통합의 노력이 계속되었다는 반증으로 삼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그 밖에도 함허·휴정·보우 등의 사상에서 알 수 있듯이 유불선 삼교의 회통도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는 불교가 성리학적 이념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논증해 보이려 한 당시의 제한적인 사상 대응의 노력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국불교 회통성의 역사와는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상에서 그 대강을 보아온 것처럼 한국불교는 이견에 대한 화쟁, 선교의 통합을 위한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상활동을 계속해서 이루어왔다. 오늘의 불교계가 여전히 회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그런 한국불교의 역사적 사실과 전통에 있는 것이다.

5. 이념으로서의 회통정신

회통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는 역사적 사실 이외에 다시 회통의 이념 자체를 들 수 있다. 한국불교의 회통성 논의에서 역사에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것이 곧 그 이념이다.

새삼스럽지만, 여기서 우리는 회통의 의미를 밝혀 두어야 한다. 그 이념적 지향을 좀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마다 설명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으며 또 통일된 개념으로 정립된 일도 없어서, 막상 회통의 의미를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A논문은 화쟁사상 및 회통정신의 본질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위해 그 몇 가지 사전적 정의들을 정리하는 가운데, 이기영의 설명을 ‘통불교에 대한 깔끔한 정의’로 보고 있다. 즉 회통은 원융회통의 준말로 “일승사상에 입각하여 불교라는 이름 밑에 광범위하게 포함된 제 교설과 기타의 화의(化儀)들을 적절히 위치 지우며, 그 상대적 가치들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관용적 입장”15)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15) 이기영, 〈한국불교의 근본사상과 새로운 과제〉, 《한국불교연구》(1982), p.267.

이왕 회통에 관한 선학(先學)의 정의에 주목한다면 역시 이기영의 화쟁과 회통을 함께 묶은 다음과 같은 설명도 훌륭한 참고가 된다.

화쟁의 원래 의미는 “편견에 사로잡힌 싸움을 지양하고, 회통적인 이해를 통해 원융무애한 관계를 이룩하는 것”이다. 회통적이란 말의 기원을 우리는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에서 찾을 수가 있고, 원융무애라는 말의 기원을 우리는 《화엄경》의 법계무애(法界無碍)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원효는 이 두 가지 내적 외적 이상을 묶어 인간생활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것이 귀일심원(歸一心源) 요익중생(饒益衆生)이란 모토이다.16) 16) 이기영, 〈원효의 화쟁사상과 오늘의 통일문제〉 《불교연구》 11·12, pp.455∼456.
다소 긴 문장을 인용한 것은 회통의 기원과 그것의 (원효적) 활용이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음을 참고하기 위해서이다. 위의 정의와 설명에 의지하여 회통의 의미를 다시 정리한다면 일단 ①‘일승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상대적 교설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관용적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에 더하여 ②‘법화·화엄사상에 근거한 인간생활의 목표로서 귀일심원·요익중생’을 회통의 의미에 추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선학의 견해를 빌어 회통의 의미를 규정해 보았거니와, 한국불교의 회통성 주장에는 이같은 회통이 지니는 의미가 하나의 뚜렷한 이념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회통론은 적어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이념의 지향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회통정신의 완전한 구현을 지향하는 것이 회통불교론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2장에서 보인 바와 같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서 역사적 탐구와 이념적 논의는 일단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통불교 규정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혹은 이념적 지향성에 따른 것인지가 불분명하며 적지 않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B논문). 이런 비판은 물론 한국불교의 구체적인 역사현실과 회통불교라는 이념과의 괴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불교의 역사적 실체를 놓고 고유한 특성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말하면, 역사현실과 이념과의 거리가 너무 크다고 보는 만큼, 회통불교라는 어구조차 민족주의적 담론이거나 호교론적 주장에 불과한 것으로 비쳐졌을지 모른다. 회통불교의 규정에 있어서 역사적 탐구와 이념적 논의의 구별을 요구함은 결국 양자의 괴리를 지적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종교의 특성 규정에서 반드시 지나온 역사의 반영만을 인정해야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학문적 논의를 강조하지만, 한국불교 특성의 규정은 불교라는 종교의 한 존재의미에 대한 규정일 수도 있다. 여기서 회통의 이념적 지향의 논의가 동시에 가능하다고 본다. 일정하게 제시된 이념이 선행함으로써 그것이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관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회통성의 역사적 현실과 이념간의 거리 때문에 회통불교의 이념이 허구가 되지는 않는다.

플라톤 식으로 말해본다면 이념의 본질은 이념을 모사(模寫)하는 현실과의 그 ‘거리’에 있다. 그런만큼 현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이념은 이념일 수가 없게 된다.17) 17) 박종현, 《희랍사상의 이해 》(종로서적, 1982), p.205. 207.

현실과의 괴리가 곧 이념을 이념이게 만드는 것임은 한국불교의 회통론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그 거리는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 플라톤적인 이념의 거리를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심각한 결과는 사상을 불허한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보편(Catholic)’이라는 가톨릭의 이념은 현실과의 괴리로 당장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가톨릭의 이념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또 역사 속에서 언제 그것이 현실화되어 왔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개신교회들을 어떻게 보편이라는 이념 속에 동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가톨릭 교회에 대해 그 보편의 이념을 허구적인 주장이라고 논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가 지녀온 고유한 이념적 지향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회통성은 곧 불타(佛陀)의 정신이며 불교문화 자체의 보편성을 지칭함에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화쟁·회통이 유독 원효와 한국불교만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A논문).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원효의 화쟁사상에 각별히 주목하고18) 그것으로부터 전개되어 온 역사적 사실들을 깊이 인식하면서 회통불교를 특성으로서 삼는 것은 한국불교의 이념적 지향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8) 화쟁·회통은 원효만의 특성이 아닌 불교의 보편적 사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효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에 이르러 가는 원효의 논리적 방법의 독창성이다. A논문이 회통론과 관련하여 원효의 〈10문화쟁론〉도 내용적으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지만 10문 자체가 어떤 것인지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속단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불타의 가르침과 불교문화의 보편성 및 세계성을 추구하고 지향하고자 하는 한국불교의 이념이 회통정신이라는 특성 속에 담겨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다시 이런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회통정신은 인도불교에서부터 나타나고, 중국불교 또한 선교일치 및 유불도 3교의 융회(融會) 등으로 보편적 회통성을 보여 왔음은 모르는 일이 아니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한국불교가 회통성을 주장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없지 않다.

인도, 중국 또는 일본까지도 다같이 불교라는 보편적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해 가는 논리적 방법 또는 실천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우리는 특히 원효의 독창적인 사상과 진속무애의 실천적 삶에서, 지눌의 탁월한 선교 통합 이론과 적극적인 선불교 진흥운동 등에서 만날 수가 있다. 원효나 지눌이 한국불교의 사상적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화쟁정신이나 회통사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즉 화쟁정신이나 회통사상이 중국불교를 비롯한 모든 불교의 보편정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매우 크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또한 역사적 우연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조선불교 내지 오늘의 불교현실 속에서도 일면 그 영향이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회통성 주장은 보편성 속에서도 특수성을 의식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그런 뜻에서 한국불교의 회통정신은 역사적 사실 외에도 이념으로서의 지향성이 강하며, 그것에는 불교 자체의 보편성을 그대로 구현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가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6. 맺는 말

회통정신이 한국불교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그 동안 심각하게 문제가 제기된 적은 거의 없었다.19) 19) 이 문제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심재룡 교수의 1985년 2월, 1988년 6월 두 차례에 걸친 학술발표논문이 효시가 아닌가 한다. (《불교평론》 통권3호(2000), p.177 각주 1) 참조). 한편 불교학계에서는 서경수 교수가 조선시대 불·유·도 3교에 관한 회통사상을 논하면서 그것이 중국불교 회통론의 연장에 지나지 않다고 지적하고, 조선조의 고승 회통론자들은 진리의 차이에 대한 깊은 자각과 반대도 없었고 따라서 줄기찬 추구도 없었다고 비판한 정도가 눈에 뜨일 뿐이다. (서경수, 《불교철학의 한국적 전개》(1999), p.265.) 그러나 서교수의 다른 논문 〈한국불교사상사에 나타난 和의 개념〉에서는 한국불교 전반의 和사상을 평면적으로 서술했을 뿐 비판적 견해는 보이지 않는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3회 국제학술회의 논문집》(1985), pp.401∼410.)

이는 그만큼 한국불교의 회통적 특성이 불교학계 내외에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최근에 이 문제가 불교계 안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고(A논문) 밖에서도 이에 가세함으로써(B논문)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같은 현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우선 그것은 회통불교론에 안주해 온 한국 불교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줌으로써 스스로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점검과 자성의 기회를 갖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한국불교가 불타의 이상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 낸 최고의 불교라는 식의 자기 본위적 한국불교 지상주의와, 한국불교의 역사와 현실 어디에나 회통성을 적용하고 확대해석하는 경향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매우 적절한 충고가 될 것으로 본다.

또한 한국불교의 특성 및 정체성 논의에 관한 자세 및 연구방법에 대해서도 이들 비판적 지적은 유익한 일깨움을 주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든 이념적 지향에서든, 특성과 정체성은 치밀한 학문적 탐구와 함께 불교권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도 비교 검토하는 관점에서 논해야 할 필요성을 제고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회통성을 거의 부정하는 분위기의 논조와 견해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국불교의 특성 및 정체성 규정을 원효와 그의 화쟁사상에만 국한된 부분적인 논의로 보려 하거나, 육당의 선언에 무조건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여 오늘에도 계속되는 민족주의적 성격의 담론이라고 못박고, 더구나 불교신자 학자들의 호교론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지적 등은 균형잡힌 시각이나 견해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의 회통론은 비록 육당의 선언이 기폭제가 되었더라도 그것은 역사적 우연에 불과하다. 한국불교의 긍정적 자기 인식을 도모하기 위해서 정체성 또는 특성은 언제라도 찾을 수 있고 세울 수 있다. 이를 불교인들은 신라의 원효 이래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져 온 회통성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하고 또한 한국불교가 당연히 지녀야 할 존재의미와 관련하여 이념적 지향으로서 그것을 강조한다.

역사와 현실의 괴리를 지적하고 그 엄격한 분리 논의를 주문하지만 학문으로서만 한정시킬 수 없는 종교로서의 불교의 특성 논의가 반드시 그래야 할지는 의문이다. 특성 논의가 역사적 사실에 못지 않게 이념적 지향의 것이라고 할 때 더욱 그러하다. 플라톤적 이데아론에 대한 반성으로서 실재하지 않는 보편적 ‘본질’의 탐구에 대한 비판과 현상학적 자세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생래적(生來的)으로 이념적일 수밖에 없음을 감안한다면, 한국불교의 이념 지향적인 정체성 탐구를 온통 허구의 맹종이라 몰아치는 데는 분명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불교의 회통적 특성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념적 지향의 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회통불교론은 결코 허구의 맹종이 아니다. 비판이 있으므로 발전할 수 있다는 명제를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실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A·B 두 논문은 그 관점의 차이에 상관 없이 한국불교와 불교학계의 발전에 크게 일조할 것으로 본다. <끝>

이봉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교수. 논저서로 〈삼국·통일신라 불교의 주체적 수용〉 〈조선 전기 불전 언해와 그 사상〉 〈조선 초기 배불사 연구〉 《불교의 역사》 《불교사상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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