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삶의 저변의 한 축을 이루는 종교계가 짊어져야 할 사명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불교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한 길을 제시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가 사회적 고통을 감싸고 치유하기보다 자체 무게를 감당하기조차 힘겨워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돌아보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불교의 가치로 우리 사회를 맑고 따뜻하게 만들기 위한 불자들의 몫, 특히 사회참여의 교리적 근거, 참여불교의 특징, 사회의식의 제고, 그리고 구체적인 사회참여의 내용과 한계 등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불교학이나 사회학 전공자가 아닌 발제자로서는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학술적으로 심도 있는 발표를 하기엔 미흡하다. 이 원고는 한국불교의 사회참여에 관한 학문적 접근이라기보다 불교운동 현장에서 피부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해 본 글이라는 점을 밝힌다.

2. 한국불교의 현주소

1) 한국 종교의 지형 변화

2006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라 종교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의 종교인구 변화는 천주교의 약진, 불교 정체, 개신교 쇠퇴로 요약되어 한국의 종교 지형이 크게 변화해 왔음이 확인되었다.

불교 인구는 1995년에 비해 3.9% 늘었으나, 같은 기간의 인구증가율 5.6%나 종교인구 전체 증가율 10.5%에는 오히려 못 미쳐 결과적으로 인구 구성비는 23.2%에서 22.8%로 0.4%포인트 감소한 셈이 되었다. 반면에 천주교는 10년 동안 74.4%(219만 명) 증가하여 신자 수가 514만 명이 됨으로써 인구 대비 10%를 넘어섰고, 개신교는 오히려 1.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아래 표 참조).

종교유형별 인구 추이
(단위: 천명, %)19952005증감인구구성비인구구성비인구증감율 총 인 구44,554 100.0 47,041 100.0 2,488 5.6 종교 있음22,598 50.7 24,971 53.1 2,373 10.5 ․불 교10,321 23.2 10,726 22.8 405 3.9 ․기독교(개신교)8,760 19.7 8,616 18.3 -144 -1.6 ․기독교(천주교)2,951 6.6 5,146 10.9 2,195 74.4 ․유 교211 0.5 105 0.2 -106 -50.4 ․원불교87 0.2 130 0.3 43 49.6 ․기 타268 0.6 247 0.5 -21 -7.7 종교 없음21,953 49.3 22,070 46.9 117 0.5 통계청, 2005 인구주택총조사

물론 조사방법상의 문제점이 전혀 없을 수 없고, 종교마다 자체의 신자 기준도 달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천주교의 급부상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를 어느 학자는 대내외적 이미지에서 청렴성ㆍ저항성ㆍ조직력ㆍ(정치사회적)결속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실제로 사회지도력 제고 및 지도자의 부정적 이미지 차단과 함께 불교 및 전통문화를 유연하게 소화한 소위 ‘토착화 전략’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면에 불교와 개신교는 대중에게 신뢰를 주는 데 상대적으로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4년도 갤럽의 조사 결과를 보자. 우선 종교지도자에 대한 신뢰도에서 ‘소속 종교단체 성직자에 대해 만족한다.’라는 응답이 개신교인은 76.1%, 천주교인은 67.4%인 데 비해 불교인은 58.0%로 불교인들의 교계 지도부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과 자비를 잘 실천하고 있다.’라는 응답도 개신교인은 73.8%, 천주교인은 63.0%, 불교인은 56.9%로 답해 역시 종교의 사회적 역할도 불교가 상대적으로 낮음이 확인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2005년 갤럽 조사에서 무종교인의 호감 종교가 불교 37.4%, 천주교 17.0%, 개신교 12.3%로 나타나 불교가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는 그동안 수십 년간 천주교가 1위를 차지했던 점을 고려하면 미래 사회에 불교가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불교의 경우 외부 여건은 호의적이었음에도, 내부 구성원들의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도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불신이 크며, 따라서 불자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생활하거나 포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정체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2) 한국불교의 정치·사회적 위상

조선조 수백 년의 탄압으로 역사의식을 상실했던 불교인들은 일제 침략기에 사상적으로 동질적인 일본에 강한 친화력을 보여 해방 후 한반도가 미ㆍ소 중심의 세력 판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비하여,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며 한불전쟁 끝에 선교의 자유를 획득한 천주교와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강력한 후원 아래 교육ㆍ의료ㆍ복지 등 물량 선교를 시작한 개신교의 활동 여건은 너무나 일방적이어서(특히 해방 이후) 불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승만은 일본 친화적이고 민족문화 전통으로 영향력이 살아 있는 불교계에 의도적으로 내분을 조장하여 시대적 상황에 합당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할 기회마저 박탈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친미사상과 기독교의 선교 공간을 열어 놓았다.

《청소년 토지》의 머리말 '청소년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박경리는 “40년 동안 우리 민족문화가 난도질당한 데는 삼박자(三拍子)가 맞았다고나 할까요? 일제는 나라를 빼앗고도 민족을 말살하고자 우리 문화 파괴에 혈안이 돼 있었고, 기독교 문화와 동경 유학파, 그러니까 새로운 지식인들이 일본에서 들고 돌아온 소위 계몽주의는 각기 그 속셈은 달랐지만 우리 문화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에는 손발이 맞았습니다. ……기독교 문화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넓혀 주었고 새로운 문물에 눈뜨게 한 공은 있었지만 종전에 있어 온 고유의 종교, 가치관, 생활양식을 배격했습니다.

새로운 지식인들 역시 서양의 합리주의를 신봉하고 새 시대를 뛰어야 한다는 성급한 마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올린 것들을 부정했습니다.”라며 우리 것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재기불능으로 만든 문화사대주의를 탄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불교는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한 채 신행 형태도 사회성이 탈각되고 개인 중심의 기복신앙 성격에 머물게 되면서 이른바 은둔불교ㆍ산중불교ㆍ치마불교로 굳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는 불교의 급격한 사회적 영향력 감소라는 당혹스러운 현상을 빚고 말았다.

사회현상에 가장 민감하다는 정치인을 예로 들어 보자. 1987년 정치인이 본 서울 시민의 종교 성향은 개신교 20.9%, 천주교 6.0%, 불교 5.8%였다.(월간 중앙 1994년 4월호) 그에 비해 1991년 인구 대비 종교인 분포는 불교 27.6%, 개신교 18.6%, 천주교 5.4%로 발표되었다.

국회의원의 종교 분포도 종교 세력을 가늠하는 잣대의 하나가 될 수 있다. 14대(1996년)까지 역대 국회의원 당선자 1,983명 중 자료가 있는 842명의 종교 분포를 분석한 결과 개신교 367명(18.5%), 불교 283명(14.3%), 천주교 156명(7.9%), 유교 36명(1.8%) 등으로 평균 종교인 비율은 42.5%, 불교계 대비 기독교계 의원 수가 1.8배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16대(2000년)부터 종교인 비율은 점점 늘어 18대(2008년)에는 82.6%까지 증가했으나, 불교인은 오히려 17대(2004년)에 34명(11.4%)까지 급격히 줄었다가 18대에 56명(18.7%)으로 다시 증가하여 겨우 숨을 돌리는 정도이다. 불교인 대비 기독교인(개신교+천주교) 증가 역시 16대에 4.1배, 17대에 5.1배로 최대치를 기록하더니 18대에 이르러 3.4배로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아직 국민 평균 종교인 비율과는 차이가 크다.

한마디로 불교는 정치·사회적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경종에 대해 불교지도자 누구 하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렇게 사회에 초연하거나 무관한 모습이 불교의 원래 속성인 양 자포자기하는 태도이다. 물론 교리 해석을 포함한 불교 내부의 근본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리 자체보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몰이해와 현재 불교지도자들의 의식 부족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다른 종교에 비해 사회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이제 더 이상 불교 교리 자체가 사회성이 취약하다는 근거 없는 논리로 불교를 왜곡, 스스로 패배감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동남아와 티베트의 활발한 참여불교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3) 2등 국민 대접받는 불자들

“다종교 국가 중 한국만큼 비기독교인으로 사는 데 불편을 느끼는 나라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힘 숭배’의 종교인 기독교가 모든 국민이 공유해야 할 공공 영역마저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공격성과 패거리 문화 때문일 것이다. 종교의 오염과 무례, 더 나아가 종교차별과 종교폭력 등 인권침해까지 감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한국사회를 ‘불안한 동거’라고 표현했던 어느 학자의 말이 실감 난다.

종교의 권력화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헌법 20조가 무색할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공직 신분을 이용한 종교 활동은 공권력의 사적 도용이며, ‘세속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함께 이용하는 위헌적 행위이다.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인 공직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도시선교 사업을 지원하는 소위 ‘성시화(聖市化) 운동’도 편파적 정보 제공이나 권력 집행에 대한 의혹을 살 만한 대표적인 정교(政敎)유착이며 종교권력화 현상이다.

건국 초기부터 친기독교로 일관한 정책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불교가 홀대를 받아 온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군승제도 도입(1968년),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1975년), 불교방송 개국(1990년)이 군목(1948년), 크리스마스(1949년), 기독교 방송(1954년)에 비해 각각 20년, 26년, 36년이나 뒤처진 것도 파행적 기독교 우대 정책의 결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4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여 물의를 일으키더니, 2005년 청계천 준공식 때도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기에 먼저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테이프를 끊었다.”라고 자랑하여 일반 시민들은 어리둥절했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그가 국립묘지에 이어 가장 먼저 달려간 공식 방문지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실용정부 1백일 동안 불거진 종교편향 사건들이 참여정부 5년간 있었던 종교 문제 발생 건수와 같다고 한다. DNA에 새겨진 장로 대통령의 기독교 색깔이 근본 원인이란다.

현직 목사가 청와대 비서관이란 사실도 일반국민으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촛불집회의 배후를 언급하면서 ‘사탄의 무리’ 운운했던 추부길 목사가 물러나온 다음에도 김진홍 목사의 비서를 역임했던 박영모 목사가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고 하니 이제 목사가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조차 없게 되었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수도권 대중교통정보시스템 ‘알고가’에서 작은 교회까지 소개되면서 대형 사찰마저 의도적으로 모조리 빼 버린 사건, 어청수 경찰청장의 전국 ‘경찰복음화’ 대성회 광고 사진 게재, 경기여고 교장의 불교문화재 훼손 등 공직사회의 연이은 반불교적 행위에 불자들은 불안하다.

종교사학 내 종교 강요 문제, 종교사학에서 교직원 채용 시 종교 제한 등도 위헌 소지가 큰 종교차별이자 인권침해다.

공교육 현장에서 아직 성숙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 대해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심각하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게 무슨 죄라고 노예처럼 강제로 설교를 듣고 교리를 배우며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해야 하나. 2004년 6월 헌법에 보장된 종교자유를 위해 ‘예배 선택권’을 달라던 당시 대광고 학생회장 강의석 군 사건에 대해 2007년 10월 1심은 “종교의식 강요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강 군의 손을 들어 주었다.

마치 2004년 헌법재판소가 “흡연권(吸煙權)은 상위의 기본권인 혐연권(嫌煙權)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되어야 한다.”라고 밝힌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지난 5월 8일 고등법원은 “입학 당시 선서, 고2까지 별다른 의사 표현 없이 참석했으므로 강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원심을 뒤집었다.

평준화 제도 아래 학교 선택권도 없고, 종교사학일지라도 국고 지원이 중ㆍ고등학교의 경우 각각 82%, 51%가 넘고 재단전입금은 평균 1.8%도 안 되어 실질적으로 공립학교나 마찬가지인 데다, 더 본질적으로는 언제 어디서든지 허용되어야 할 ‘개종의 자유’까지 고려하면, 개인의 기본권보다 학교의 재량권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항소심 판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꺼림칙한 것은 법원이 예민한 종교 인권 문제에 세심한 배려 없이 독실한 개신교인 재판장에게 사건을 배정한 사실이다. 더구나 재판장은 대광고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교단 소속 교회의 장로라고 한다. 뒤로 내통하여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자신의 종교를 위해 결론은 미리 내려 놓고 궁색한 변명을 찾으려 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힘 있는 자는 권력을 동원해 조용히 자기 뜻대로 일을 꾸민다. 촛불집회 소용돌이 속에, 부처님오신날 축제 기간에 슬그머니 내놓은 개신교인 재판장의 판결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전국적으로 170여 개의 기독교 중ㆍ고등학교에서 15만여 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예배를 보고 종교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종교 야만국이자 인권 후진국으로는 선진사회 진입이 불가능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의 교사 임용을 특정 종교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므로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기독교 학교들이 끄떡도 하지 않는 현실에서 사회통합은 꿈꿀 수 없다.

‘기독교공화국’이란 비난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종교자유와 정교분리의 헌법 정신을 지켜내려는 불자들의 의식화와 단호한 결단 없이는 2등 국민 대접을 면할 길은 없어 보인다.

3. 절실한 불자 의식 변화

1) 출가승단의 문제

우선 승려 개개인의 수행자 또는 지도자로서 자질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사판승 중의 일부는 출가의 동기도 불확실하며 수행도 하지 않고 전문성도 부족하면서 너무 많은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자질과 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출가 정신은 실종되고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아 현실과 부딪치는 접점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켜 전체 승가의 권위와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사설 사암(寺庵)은 날로 증가하여 개별 생존 시대가 되어 버렸고, 말사 주지 인사 시 금품 수수, 국고보조금 횡령 등 각종 낯 뜨거운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대중공의의 전통은 사라지고 파벌과 금권이 지배하고 있으니 교단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하다.

출가자에게 재가자보다 욕심 없고 청정하며 자비롭고 참을성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대마저 접을 수는 없다. 반사회적 행위로 불교계를 먹칠하는 승려는 소수라며 항변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지만, 종교계나 교육계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소수 비리라도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모든 권한과 의무가 출가 승단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과도한 업무와 비전문성에 따른 운영의 부실화, 그리고 재물을 직접 다루는 데서 오는 출가승의 세속화와 타락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마련이다.

 승려 대부분이 본업인 ‘수행과 교화’는 휴업 또는 태만인 채 재정ㆍ인사ㆍ행정이나 건물ㆍ산림ㆍ문화재 등의 관리, 그리고 각종 의식 및 재(齋)를 주관하는 일로 많은 출가 인력이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재산 관리자’ 또는 ‘영혼 관리자’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재가 지도자나 지식인 또는 사회여론 주도층의 참여 봉쇄나 관리 부실로 방관과 이탈을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작은 것을 챙기고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교단 차원의 승풍 진작과 개혁 의지의 상실 또한 중병을 방치하게 된 큰 요인 중의 하나이다. 조계종은 1994년 개혁과 1998년 사태 이후 승려교육ㆍ종단안정ㆍ사회참여ㆍ신도조직 정비 등 여러 측면에서 나아진 점이 분명히 있으나, 오히려 그 조그만 성과에 자족하며 안주해 온 업을 이제 받고 있지 않나 싶다. 게다가 내부 문제에 발목이 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 사회적 의제나 갈등 해소에 대한 불교적 대안 제시 및 선도적 통합 능력의 부재로 말미암아 국민은 물론 불자들에게마저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재가불자의 문제

불교가 인류의 가장 높은 가르침이란 자부심은 그것이 어떻게 이 사회에 적용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또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르침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의 여부는 그것이 불자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지나치게 기복적(祈福的)이고 사회성이 부족하다. 많은 불자가 자기 자신이나 기껏해야 자기 가족의 복을 구하는 일에만 매달릴 뿐, 이웃이나 사회의 고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사회성, 즉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업중생(共業衆生)의 개념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얘기다. 물론 기복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더라도 점차 더 큰 ‘나’인 ‘사회’에 대한 보살핌으로 의식이 진화하지 않는다면 저차원의 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 개인의 행복은 그 사람이 몸담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가 남아 있는 한 지켜지지 않는 법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복 행위나 수행만으로는 끝까지 개인의 행복이나 평안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는 무관할 것 같은 교단 또는 사회의 문제들이 결국 그 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모든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자각이 바로 불교의 연기 세계를 눈뜸이요 대승 보살의 밑거름 아닌가.

대승불교 최고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첫 번째인 보시에도 인색하다. 재물ㆍ지식ㆍ시간 등을 이웃을 위해, 불교를 위해, 사회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불자들의 일차적인 의무이자 보살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보시금이 모든 분야에서 대체로 기독교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사실은 나눔의 문화가 정착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사찰이나 스님들이 재정 문제를 십시일반 보시로 해결하고자 시종일관 포교와 교육에 열중하기보다 주로 하드웨어적인 건축 불사(佛事)나 천도재 등 각종 영혼 관리비 또는 입장료 등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신도들의 보시 행태에 대해 교육하고 지도하는 데 소홀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할 재가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보시 문화가 척박한 것은 재(財)보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생명나눔이나 봉사활동 등 사회적 고통 분담 전반에 우리 불자들의 나눔 정신이 부족한 것은 종교인으로서 치명적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불교가 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출가 지도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자들의 99.8% 이상을 차지하는 재가신도들, 그중에서도 특히 재가불교 지도자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자들의 낮은 의식 수준도 우리 교단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자들의 사고와 일상적인 삶은 대체로 불교적 가르침과 관련성이 적거나 아예 반대인 경우마저 있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의식이 부족하고 ‘종교 따로 삶 따로, 가르침 따로 행 따로’이다. 따라서 한국불교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불자들이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으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재가 교육이 불교의 이상 구현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종단 발전을 위한 기본 토양이 되며,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이고 가장 핵심적이며 최우선 과제라는 문제의식 없이는 불교 발전과 사회참여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 매사에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다고 견고한 출가승 벽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생산적이기보다 소모적일 가능성이 크다.

재가불자들이 승가의 인식전환과 종단의 실천의지 부족만을 탓하고 있을 만큼 한국불교는 여유가 없다. 경우에 따라 재가불교 운동이 출가 승단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고 건전한 경쟁과 협력을 유도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훈련하는 평생교육 체제를 구축하지 않고는 불교의 희망을 말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4. 불교의 사회참여

현대사회에서 한국불교는 전통에 걸맞은 제 기능을 다하고 못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출·재가 지도자들의 자질과 의식 부족, 그리고 교리의 현대적 해석을 통한 사회적 담론 형성의 실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불교가 새롭게 제자리를 찾으려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불교적으로 사유하고 불교적으로 행동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불교 사회참여의 교리적 배경은 무엇인지, 동남아에서 시작된 참여불교 정신은 어떤 것인지, 사회참여를 위해 해결되어야 할 전제조건들, 그리고 그 참여의 내용과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1) 사회참여의 교리적 배경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 의해서 존재한다.'라는 상의상존적(相依相存的) 질서에 대한 확신이 깨달음의 본질이자, 불교의 사회성을 뒷받침하는 기본 가르침인 불교의 이른바 연기적(緣起的) 세계관이다.

부처님께서는 연기적 세계와 깨달음의 사회성에 관해 간곡하게 이르셨다. 《무량수경》에서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해도 그 국토의 사람들이 미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절대로 깨달음을 얻지 않으리라” 하셨고, <보현행원품>에서는 “보리는 중생에 속한 것이니 중생이 없으면 일체 보살이 마침내 무상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하셨음을 상기하자. 미혹한 중생과 사회가 있는 한 깨침을 뒤로 미루며 심지어 위없는 깨침을 얻을 수조차 없다고 하신 것이다.

《화엄경》에서도 "회진향속(回眞向俗) 회지향비(回智向悲)"라 가르치지 않았는가. 부처님 재세 시 가까운 도시에 와 계신 부처님을 빨리 뵈려고 죽어 가는 환자를 돌보지 않고 지나쳐 온 제자들을 향해 부처님은 그것이 옳은 행동이 아니었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그만큼 중생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는 것을 일깨우셨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난 후 대중들에게 설할 것인가 말 것인가 21일간 고민하시다가 제석천왕의 간청에 의해 비로소 입을 여셨다는 얘기는 후세에 부처님법의 심오함을 부각하고자 꾸민 이야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개인 안에 머무는 특이한 심리 쟁태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어울려 검증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으로 누누이 말씀하셨고, 부처님 자신이 일생을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불교계에 ‘깨달음의 사회화’란 말이 등장했을 때 현실적으로는 피부에 와 닿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이 세상을 맑고 따뜻하게 바꿀 뿐만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도 넉넉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남을 위해 살면 내가 죽는 줄 알지만, 그것만이 진실로 내가 사는 길”이란 성철 스님의 사자후가 귓가에 쟁쟁하다.

사회구조적 고통을 내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불교적 대안을 부단히 제시하고 실천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불교적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승속을 넘나들며 중생구제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간 만해의 종교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만해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종교가 인류를 행복, 희망, 그리고 문명으로 이끄는 데 기여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고 보았다.

불교야말로 신에 의지하지 않는 자력 종교, 자유와 평등의 현대적 가치에 가장 합치되는 종교, 연기론과 보살의 이타정신으로 인류를 묶어 낼 수 있는 종교, 따라서 인류 문명의 이상에 합치되는 유일한 종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중생제도의 목적이 없는, 수행만을 위한 ‘고요한’ 수행에 반대하면서 ‘생사에 집착하는 것 못지않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중생구제에 힘쓰지 않고 열반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질타하였다.

만해의 사상은 불교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러나 불교만을 위하지도, 불교에만 머무르지도 않았던 점이 가장 만해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만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입산 동기가 단순한 신앙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민족이 고통받고 있는데 자기 자신만 자유롭게 되는 해탈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만해에게는 민족독립운동이 중생구제의 현장일 따름이며 불교운동과 별개의 활동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자주독립=중생구제라는 등식이 뼛속 깊이 밴 승려로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않고, 산간에 있되 중생을 품에 안는 자유자재의 수행자’가 바로 만해였던 것이다.

2) 동남아 참여불교의 등장과 그 특징

1963년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 거리에서 틱쾅둑(Thich Quang Duc) 스님이 고딘 디 엠 정권의 압제에 항의하여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화염에 휩싸인 채 명상하고 있는 틱쾅둑의 모습은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틱쾅둑에 이어 다른 승려 36명과 여신도 한 명으로 소신공양(燒身供養)이 확산되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그들의 고통과 저항의 메시지가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반전평화운동 지도자 틱낫한(Thich Nhat Hanh)이 역설한 ‘사회참여적인’ 불교는 이때부터 참여불교라는 용어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독재, 반인권, 폭력과 전쟁, 환경파괴와 무분별한 개발, 나아가 부패한 교단까지-에 대한 참여불교운동의 촉발, 그리고 참여불교 지도자들의 대거 등장은 20세기 초중반 이후 불교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건이었다. 더불어 은둔의 종교였던 불교가 실천의 종교, 사회적 종교로 탈바꿈해 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세계 사상사와 종교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의미 있는 변화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각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참여불교운동의 흐름은 이제 아시아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서구사회로 알려지고 있다.

참여불교의 출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불교적 가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20세기의 참여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즉 ‘내적 수행과 사회적 실천의 조화’라는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함으로써 대개는 국가권력의 주변에서 안이하게 머물고 있던 기성 교단에 경종을 울렸다.

“내 수행도 안 되어 있는 내가 어떻게…….”라며 사회적 실천을 뒤로 미루기만 했던 많은 불자는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인식했던 수행과 실천, 나와 남, 사람과 자연의 조화가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한 문제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개인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듯이 ‘깨달음과 보살행’을 함께 추구할 수 있고 바로 그것이 붓다의 가르침에 가장 근접한 삶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여불교는 개인의 수행을 중시하되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를 검증하려 한다.

그러나 참여불교는 단순한 실천불교와 또 다른 분명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사회적 실천만을 강조한다 해서 이를 바로 참여불교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얘기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나 베트남의 틱낫한과 같은 대표적인 참여불교지도자들은 세간의 고통을 돌보는 보살행과 자신을 돌보는 수행이 결코 둘로 나뉘거나 자기수행을 끝내고 나서 중생을 돌보겠다는 선후 또는 단계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철저히 연기의 관점에서 보아 자기수행과 보살행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달라이 라마의 경우는 더욱더 완전한 자기수행은 깊은 산중에서 혼자 이룬 어떠한 경지를 말함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비치는 자기 모습, 타인을 위해 내뿜는 자기 마음과 에너지로 검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중생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친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참여불교라고 할 때 피해 갈 수 없는 두 가지 조건은 첫째, 불교적 사유로 해답을 내놓아야 하고, 둘째, 말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중생고를 치유하는 데 나서야 한다.

3) 사회책임과 보시정신

효율적인 사회참여를 위해서는 의식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한 사부대중 공동체의 복원이 시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출가승단의 자기보호 본능과 의식 부족으로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대로라면 사회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가 결국 죽어 버린 과거의 종교로 도태되고 말 것이다. 필요하다면 승가의 변화를 기다려 가며 일정 기간 재가신도 자원들을 스스로 재교육ㆍ재조직함으로써 자각된 재가공동체로 먼저 묶어 세우는 방법밖에 없을 듯싶다. 불교계가 사회적 역량을 키우려면 사회책임의 의식화와 보시문화의 체질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사회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사회책임에 대해 의식화된 주체를 형성하는 일이다.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재가불자의 수행은 어떤 방식이라야 할까? 매일 틈틈이 예불ㆍ참선ㆍ염불기도ㆍ경전 읽기ㆍ사경 등 전통적인 자기 돌아보기 방법 중에서 한두 가지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자기 점검을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고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많은 시간을 내서 할 수 없으므로 수행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지금 여기’의 현실적인 문제를 화두로 들어야 한다.

아무 데도 없다(nowhere)는 ‘부정과 절망’을 지금 여기(now here)라는 ‘긍정과 희망’으로 세상 바꿔 읽기를 가르쳐야 한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민족의 독립’을 화두로 삼았음을 상기하자. 오히려 ‘이뭐꼬’나 ‘뜰앞의 잣나무’보다는 자기 본업이나 사회문제를 화급한 문제로 들고 온 심신을 바쳐 풀어 가야 한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기업인은 돈을 벌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학자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을, 군인은 국방의 업무를, 시민운동가는 사회의 구석구석 막힌 곳을 뚫는 것을, 직장인은 회사의 번영과 개인의 전문성 제고를, 주부는 가족의 건강과 친척 간의 화합을, 운전하는 이는 승객의 안전과 아늑한 여행을, 건설인은 안전과 쾌적한 시설 마련을, 청소하는 사람은 청결과 상쾌한 환경 조성을 자기 화두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처한 곳에서 일상생활의 8만4천 가지 번뇌를 피해 가야 할 잡사(雜事)로 치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안고 가야 할 수행거리로 삼기에 8만4천 가지 화두를 드는 셈이다. 또 그렇게 할 때만이 생활인으로서 성공과 불자로서 수행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사회성 탈각을 벗어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다만,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며 모든 일상을 중생을 위한다는 마음만 놓지 않으면 된다. 재가불자들에게는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모든 중생사를 ‘피하거나 싫증 냄 없이’ 백 퍼센트 살아 내는 것이 자신과 이웃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수행운동이라는 확신으로 살아갈 것을 제안하고 싶다.

둘째, 보시문화의 정착이다. 불자는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며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큰일을 해내기는 쉽지 않다. 하루 일과 시간이나 한 달간 벌어들이는 수입을 어떻게 써서 회향할 것인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개신교는 수입의 10%, 즉 십일조 헌금이 비교적 뿌리를 내리고 있고, 천주교의 경우는 한 달 30일 일한 것 중 하루치는 하나님 일에 쓰도록 3% 정도를 헌금할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그런 기준을 만들어 오지 않은 것이 불교이기는 하지만, 복잡한 현대인들에게 보시 기준만이라도 간단하게 만들어 우리 의식구조 속에 뿌리내리도록 끊임없이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재가불자들의 보시 기준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농경시대와 달리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생활구조가 복잡한 현대에 10% 보시는 무리일 수 있고, 3%는 종교인의 보시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며 대승불교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을 기준 삼아 수입의 6%를 보시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 6%를 어떻게 나누어 보시할 것인가는 개인에 맡겨도 좋겠지만, 대체로 3%는 직접적인 불교 일에, 나머지 3%는 불교를 통한 사회 회향에 쓰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재보시에 대해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게 있다면, 사후 유산의 회향이다. 유산도 불교 발전과 사회 회향을 위해 각각 10%씩 보시하는 전통을 세우면 불교와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재보시 외에도 개인이 가진 재능이나 시간을 남을 위해 쓰는 봉사도 중요한 보시 형태가 될 것이다. 시간은 생명이다. 유용하고 의미 있게 쓰지 않는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바람직한 재가불자의 삶을 위해서는, 하루 24시간 중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기본 8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6시간(960분) 중 적어도 3%, 즉 30분 이상을 자기를 돌아보는 수행에, 3%를 불교 활동이나 이웃을 위해 각각 할애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일주일이면 각각 3시간30분 정도씩, 즉 오전 또는 오후 반나절씩 자기성찰의 시간과 남을 위한 봉사시간으로 쓰는 습관을 기른다면 불교의 생활화와 사회적 순기능이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4) 사회참여의 내용과 한계

불교가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종교로 어엿이 서려면 어떤 형태로 사회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와 시민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공익사업’과 국가나 특정 권력에서 시민을 지켜 내는 ‘시민운동’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심신의 건강과 직결되는 4대 공익사업은 교육, 의료, 복지, 종교이다. 이 네 분야는 그 중요성에 비해 국가가 전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분야이다. (물론 종교 분야만은 개입이나 지원 자체가 부적절하기도 하지만) 따라서 국가가 민간단체의 공익사업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할 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법인에 대해 각종 세제 혜택을 주거나 경우에 따라 국고로 직접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도 바로 그 공익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생과 헌신이 몸에 밴 종교인들이 나머지 세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 기독교는 정부 수립 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학교와 병원, 그리고 복지기관을 많이 세워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감싸 안거나 교육했는데, 이는 곧바로 지난 수십 년 기독교의 이미지 제고와 세력 신장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에 비해 불교는 정화불사라는 깃발 아래 폭력 유입ㆍ재산 망실ㆍ교육 부재ㆍ지도력 상실이라는 뼈아픈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최근에 와서야 종단이 비교적 안정되고, 그나마 복지사업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참여가 이루어져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학교와 병원은 기독교계의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인도주의와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한 외국 원조 및 지원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데, 이 분야 역시 불교계의 참여 단체는 기독교와 비교하면 숫자나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공익사업이 왜 중요한가? 전체 예산 중 상당한 비율이 국고 지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재정 부담이 적을 뿐 아니라, 불자들의 일자리 자체로서도 중요하다. 또한 이를 통해 행정ㆍ홍보ㆍ모금ㆍ인맥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훈련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라는 장점이 있다.

결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고급 인력을 배출하는 공식적이고 효과적인 통로 중 하나로, 이러한 인재풀의 형성은 결국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기제로서 작용,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모든 불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바이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국가 예산이 집행되는 프로그램의 경우 비록 불교가 후발 주자이지만 종교 간 균형이란 명분 때문에 유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익사업 외에 불교는 어떤 분야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을까? 인류의 행복, 희망, 그리고 문명을 위해서 어떤 가치들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인가? 그것은 자유ㆍ평등ㆍ생명ㆍ평화ㆍ문화가 아닐까 싶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지난한 투쟁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또한 20세기 초중반까지 전 지구적으로 위세를 떨쳤던 사회주의운동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평등’이란 인류의 꿈을 실현하려는 명분 때문이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금지와 장애우 권익 찾기 등 약자나 소수자의 인권운동은 대표적인 평등운동이다.

지구촌 화두가 되어 버린 환경 문제는 인류에게 ‘생명’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 때문에 공존의 지혜를 찾는 ‘평화’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며, 물질지상주의와 단선적인 세계화 때문에 빚어진 다원성 및 ‘문화’ 파괴의 심각성은 무엇을 위한 세계화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종교도 이와 같은 인간과 사회의 기본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에 동참할 때만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역할 또한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불교 NGO나 불교시민운동이 생소하기는 해도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일반 국민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특히 연기적 세계관에 따른 생명사상과 평화사상은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의 귀의처가 되고 있고, 한국사회에서 불교가 시민들에게서 박수를 받은 것도 환경운동이나 생명나눔운동, 그리고 사회 갈등을 탄력적으로 흡수했던 평화적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수십 년간 학교와 공공 영역 곳곳에서 종교로 말미암아 차별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인권과 정교분리의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한 종교시민운동을 불교계가 주도하고 있는 것도 비폭력과 자유ㆍ평등의 불교적 가치를 이 땅에 뿌리내림으로써 쾌적한 선진자유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종교인권의 박탈감은 불자들이 실제로 수십 년간 피해자였기 때문에라도 불교계의 각별한 관심이 요청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1997년도 ‘고속철도 경주 도심 통과 백지화’ 운동처럼 불교도 좋은 문화운동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서 호소하고 설득하면 불교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리 몸의 굳어진 근육을 풀어 주고 원활한 순환을 돕고자 육신을 움직여주는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벽을 허물고 막힌 곳을 뚫어 줌으로써 함께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역시 시민사회운동이 절실하다. 불교시민운동의 중요성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불교운동을 통한 사회참여를 논의할 때, 불교적 가치를 담는 내용 못지않게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 즉 논의의 진행 방식 또한 중요하기에 사부대중 공의체가 조속히 회복되길 기대한다. 출가한 스님들이 불성이란 씨앗을 품고 재가불자들은 척박한 땅을 고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설득력과 힘을 얻을 때 의미 있는 사회불사로 회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여의 한계도 분명하다. 우선 모든 활동은 비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 국가나 일반 시민운동단체들이 나서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불자들이 나서서 대신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모든 분야를 다 하겠다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현재 불교계의 역량으로 보아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불교적으로 흔쾌히 할 만한 일, 아니 불교계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 가능하면 불교의 발전과도 관련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물론 정교분리의 지나친 이분법적 해석은 오히려 사회 파괴를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종교의 정치참여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가 무원칙하게 정치를 넘나들 때 종교도 타락하기 쉽고 국민도 불안해한다. 따라서 권력을 쟁취하거나 흔들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 확보를 위해 국민을 감싸 안을 때만 종교의 최소한의 정치 행위는 인정될 수 있다는 한계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맺으며

“불교는 있는데 불교문화가 없다.”라고들 한다. 불교정신이 이 사회에 그 향기를 뿜어내고 있지 못하고 고목화되었거나 병들어 있어 현대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불교가 그동안 불교적 가치관을 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각종 교육불사, 복지불사, 그리고 시민사회운동과 같은 사회로 열린 불사를 외면해 온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일상적인 삶이나 구체적인 행동양식과 무관한 종교가 얼마나 생명력이 있을까. 박제화된 문화, 제도화된 전통의 무게만으로 대접받는 종교를 살아있는 종교라 할 수 없다. 한국불교는 역사의 유구함에 대한 자부심과 사상의 심오함만을 유물로 간직한 채, 중생고와 사회고를 치유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천박한 정치권력과 경제논리에 지배당하는 무기력한 종교, 반시대적 종교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산중에 갇혀 있거나 경전 속에 묻혀 있어서는 안 된다. 불교는 사회와 호흡하고 소통하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의식화된 대중만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해 주겠지 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노예근성이요 무임승차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근본을 살피고 자기를 희생하여 어지러운 사회를 보듬고 함께해 줄 보살을 기다린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정치보살ㆍ경제보살ㆍ통일보살ㆍ인권보살ㆍ환경보살ㆍ복지보살ㆍ문화보살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연기의 법칙이고 동체대비요 공업중생의 가르침 아니겠는가. ♦

박광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미국 Brown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미국 MIT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서강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 불교의 사회참여운동에 적극 나서 (사)우리는 선우(재가신행결사단체) 이사장, (사)생명나눔실천회 이사, 참여불교 재가연대 공동대표 등을 거쳐 현재 참여불교 재가연대 공동대표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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