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아파 우는 소리를 들었다."

2003년 2월 5일~3월 14일까지 '38일 간', 2003년 10월 4일~11월 17일까지 '45일 간', 2004년 6월 30일~8월 26일까지 '58일 간', 천성산을 살리기 위한 지율 스님의 단식 기록이다.

'천성산 살리기'란 곧 고속철의 천성산 관통 반대를 일컫는 바, 단식일수의 가파른 상승은 개발과 속도의 완강한 관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2001년 3월 어느 날, 내원사의 산감이었던 지율 스님은 '산이 아파 우는 소리'를 듣는다. 고속철이 뚫고 지나갈, 이른 바 원효 터널 공사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이때부터 지율 스님은 '홀로' 천성산 살리기에 나선다. 천성산에 기대 사는 뭇 생명들에게 '지켜 주겠노라'고 약속을 한 것이다. 공사현장에서 굴삭기에 맞서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리고 스님은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스님은 머리띠를 두르지도, 붉은 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들지도 않았다. 투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시인의 감성(실제로 지율 스님은 빼어난 시적 감수성의 소유자다)으로 생명의 시를 써 내려간 것이다. 그것이 지율 스님의 '단식'이다.

2002년 10월 26일,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인으로서 영남의 맥을 끊는 고속철도 건설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느냐? 나를 믿어 달라."며, 한국 정치판의 고전적인 레퍼토리인 지역감정을 불사하며 '백지화'를 공약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 표가 아쉬운 선거 국면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공사는 강행됐다.

2003년 2월 5일, 스님은 1차 단식에 돌입한다. 3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리인 자격으로 문재인 수석이 단식 현장을 방문하여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고 했다. 3월 14일, 단식을 풀었다. 노선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노선재검토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노선은 '재'검토되지 않았다. 사실상 노선재검토위원회는 정부의 '기존 노선 고수'를 정당화시켜주는 절차상의 민주적 구색 갖추기에 불과했다. 노선재검토위에 50여 단체로 구성된 천성산 환경보호대책위는 물론, 공동대표로 이름이 올라있던 내원사 주지 스님과 지율 스님마저 철저히 배제됐던 것이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것이다.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심각한 오점을 남긴 사례로 기억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4일, 지율 스님은 2차 단식에 들어간다. 곡기를 끓은 목숨의 임계점이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은 45일 간 계속됐다. 그리고 이 무렵 '천성산 도롱뇽'을 원고로 한 고속철도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을 울산지법에 낸다. 도롱뇽 소송인단 서명이 시작됐다. '지율 스님부터 살리고 보자'는 시민 사회 단체의 동참이 시작된 것이다. 서명자는 2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조계종에서는 향후 종단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45일 째, 단식을 풀었다. 그리고 2004년 4월, 도롱뇽과 사찰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며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소송인단은 부산 고법에 항고했다.

2004년 6월 30일, 지율 스님은 3차 단식에 들어갔다. 이번엔 청와대 앞이었다. 메아리 없는 외침이 공허해서였을까. 그렇지만 청와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1, 2차보다 훨씬 고통스런 단식이 계속됐다. 10년 만에 최고라는 혹심한 더위는 그래도 견딜 만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시민들의 무관심과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스님의 태도가 부담스런 조계종단과 환경 단체의 '곤혹스런 거리 두기'가 아니었을까.

3차 단식도 사실상 '홀로'였던 것이다.(홀로를 강조하는 이유는 함께 한 몇몇 희생적 운동가의 존재나 연대한 환경단체를 몰라서도 아니고 그들의 노력을 낮춰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은 그 동안의 환경운동과 분명한 변별 요소가 있고, 그것을 분명히 해야만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차 단식에서 청와대 담장의 작은 균열이 일기 시작한 건 40일이 지나서부터였다. 8월 11일, 수경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이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만나 공사 중단 등 수습실마리를 찾는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합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철도시설공단은 항소심 판결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지율 스님은 단식을 중단하고 법원의 판결에 무조건 승복한다."는 합의문 초안에, "천성산의 보존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해 달라."는, 지율 스님으로서는 상당히 양보한 수준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월 16일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불가능'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이어서 50일째인 8월 18일, 불교환경연대와, 녹색연합, 민노당, 전교조 등 20여 단체가 주축이 되어 '도롱뇽 소송 시민행동'을 발족한다. 드디어 8월 25일 오전, 문재인 수석이 지율 스님을 찾았다. 단식 57일 째였다. 걸어서 5분도 안될 거리를 57일 만에 찾은 것이다. 지율 스님의 목숨과 관련된 '최악의 사태'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어서 곽결호 환경부 장관이 방문한다. 이때서야 지율 스님의 단식은 비로소 텔레비전의 9시 '뉴스'가 된다. 참여 정부의 '참여'가 무엇인지를 회의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8월 26일, 단식 58일째이자 마지막 날, 환경부와 '도롱뇽 소송 시민행동' 간의 협의가 이루어지고, 지율 스님은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합의서에 서명을 한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환경부와 시민행동은, 천성산 터널 공사가 고산 습지에 어떤 영향(동 식물 포함)을 미치는지 '전문가 검토'를 거치도록 하고, 환경영향평가제도의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공동 연구팀을 9월 중 구성하여 연구에 착수한다는 것에 협의했다. 지율 스님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항고심 판결까지 공사와 단식을 중단하고 양자는 법원의 재판 결과에 승복한다고 합의했다. 이것이 간략한 지율 스님의 단식 전말이다.

변죽이 길었다. 사실 이 글의 목적은 지율 스님의 단식 과정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손익계산서 투의 분석과 선무당 같은 전망을 하려는 건 더욱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환경운동으로서 지율 스님 단식의 본질적인 성격과 이것에 비추어 본 생명 담론의 허와 실, 삶의 태도로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과 환경윤리를 살펴보는 데 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은 한바탕 '판소리'였다

비유컨대, 지율 스님의 단식은 '판소리'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완창'을 하지는 못했다. 왜 판소리인가? 그리고 왜 완창을 하지 못했을까. 판소리는 장르의 특성상 합창이 불가능하다. 명창이라도 똑같은 소리를 두 번 할 수 없다는데, 어찌 여럿이서 입을 맞출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완창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벼락 맞을 생각이다. 아니리(말)와 발림(몸짓) 없이 소리(창)만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 씩 걸리는 전 곡을 아니리 없이 소화하기란 불가능하다.

앞에서도 '홀로'를 강조했었는데, 그건 결코 스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독선'이나 '비타협'의 의미가 아니다. 스님의 운동 방식 자체가 웬만한 수준에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노조의 단식처럼 시도 그 자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삼은 것도 아니었고, 릴레이 1인 시위와 같은 방식의 연대가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사안은, 전략 전술적 사고로는 끝(불가능)이 빤히 보이는 거대한 국책 사업의 방향을 돌리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헤미안적 낙천과 시인의 낭만에 더하여, 투사의 열정을 함께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승려라는 신분의 특수성도 이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 앞 단식 때 많은 환경단체들이 심정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적극 전면에 나서지 않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식 30일을 넘기기까지 불교계와 환경단체에서도 지지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명분만으로 나섰다가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게 되면 스님에게도 자신들에게도 좋지 않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를 스님은 태평스럽게(?) 해냈다. 공룡 같은 상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비로소 연대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욕먹을 소리가 되겠지만)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도덕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언론에 공개된 범불교대책위 공동대표인 박광서 교수의 "우리가 과연 순수하게 운동을 하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화하거나 변질된 것은 아닌지 지율 스님의 외로운 싸움을 계기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의 근본적인 차이를 순결성이 아니라 '순진성'에서 찾는다. "산이 우니까, 그것을 닦아 주겠다"는, 옳다고 믿는 일을 곧이곧대로 실천에 옮기는 아이 같은 순진성이, 전략적 사고로는 도저히 무모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상을 넘는 고통스런 실천을 감히 '태평스럽게' 해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지율 스님을 환경단체의 범주에서 일정 부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단식 중단과 함께 나온 합의(협의) 사항에 대한 일부 일간지의 논조 때문이다. 입을 맞춘 듯이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금(근거를 모르겠지만 연 2조)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국민의 생태의식 고취 운운으로 대응하는 것은 구차스럽다. 특히 보수적 신문은 사설을 통해 환경단체에 굴복했다고 정부를 질타하는데, 엄밀히 말해 정부는 굴복을 한 것이 아니라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대부분 지율 스님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특히 <문화일보>의 이신우 논설위원은 시론(9월 1일자)을 통해 '헌법'까지 들먹이며 단식을 조롱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본새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있다. 공사 중단 합의가 "여승의 습관적 '단식 소동' 앞에서 청와대가 사실상 무릎을 꿇은 것"이고, "한 나라의 실정법을 희화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여승의 습관적 단식소동'이라는, 누가 봐도 악의적인 표현은 두고라도, 실정법 희화화는 사실 관계에서 잘못된 표현이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 중단과 단식 중단은 법원의 권고 사항이었다. 그리고 시민단체와 지율 스님을 싸잡아 비난한 것은, 이신우 위원이 지난 해 '교육정보시스템(NIES)' 논란 때 '교육부총리와 전교조 간의 화해'를 두고 당사자 자격을 따지며 '부당 주연의 오류'라고 말한 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주연은 지율 스님이었다. 그리고 지율 스님은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라는 정부의 실정법 위반을 바로 잡았고, 잘못된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의 가능성을 열었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지율 스님의 개인적 성 정체성을 굳이 '여승'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마초 근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는 영국에서도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것은 1918년이었고, 그것도 방화와 투석, 교도소 내에서의 단식 투쟁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을 지적해 둔다.

너무 당연한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다른 방법이 없어 택한 '단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그리고 시민단체를 들먹이는 데는 '정부 돈'을 받은 시민단체의 관변성을 염두에 뒀을지도 모르겠는데, 지율 스님이야말로 그런 관변 단체의 피해자다. 이른바 노선검토위원회의 민간단체는 '시민종교대책위'였는데, 지율 스님을 철저히 배제시킨 상태에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듯한 그 단체의 핵심 중 하나가 '부산환경운동연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율 스님의 단식은 시민운동의 속성을 띠며, 환경단체도 큰 역할을 했다. 여기서 다시 판소리 얘기로 돌아가 보자. 소리꾼만으로 판소리는 불가능하다. '고수'가 있어야 한다. '일 고수, 이 명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리판에서 고수의 역할은 중요하다. 환경단체는 분명 고수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뒤늦게 소리판에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능란한 솜씨로 소리꾼을 이끌지 못한 측면이 많다.

소리꾼과 고수와 함께 소리판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청중'이다. 청중의 질이 소리판의 수준을 결정할 정도라고도 하는데, '얼씨구' '좋지' 하는 추임새로 소리판의 한 주체가 된다. 그리고 빼어난 청중을 '귀명창'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번 지율 스님의 단식 과정에서 '귀명창'은 얼마나 되었을까? '도롱뇽 소송인단'에 서명한 사람들이 청중이었다면, '도롱뇽의 친구들'은 귀명창일까? 앞으로 100만인 서명이 이루어진다면, 이 땅은 파랗게 변할까?

'환경과 개발' 혹은 '성장과 분배'

환경보호와 개발은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 성장과 분배는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하는 것일까? 위의 두 대립쌍이 충돌과 배제의 관계만이 아니라면 절충점 혹은 부분 집합의 크기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환경을 위해서, 미래 세대를 위해서 개발의 이익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는 있는가? 분배의 정의를 위해서 소득의 감소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다수는 '아니오'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한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전력 예비율이 제로에 육박하고, 정부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클린 에너지라는 속삭임도 빠지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한 에너지라고 반대한다. 그러면서도 에어컨은 잘도 돌아간다. 물론 자발적으로 에어컨을 자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환경주의자라 했을 때, 과연 몇이나 될까? 핵 폐기장 논란이 있을 때마다 '환경'을 이유로 완강히 반대하지만, 한바탕 소란 뒤에는 보상금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반목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에서 자발적으로 유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당근은 '돈'이다.

돈에 관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우울하다. 최근 <대학문화신문>이 전국 대학생 952명을 대상으로 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랑, 명예, 건강, 희생, 부 가운데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는 '부'였다고 한다.

또 우울한 예기 하나. 최근 정부는 경유 값을 휘발유의 85%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경유 승용차의 시판을 앞두고 대기 오염을 줄이겠다는 이유였다.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걸 봤다. 특히 영세한 영업용 화물 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반생태주의 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의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서 기꺼이 운송료의 인상에 동의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편 이 글을 쓰면서, KTX를 타러 가면서 '도롱뇽 소송인단'에 서명을 하고도 조금도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불경스런 상상을 해봤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반생태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설사 모순을 느꼈다고 할지라도 개인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선택지의 대부분은 KTX이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이 단식 중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질과 관계없이) '단식'과 '도롱뇽 소송'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한 곤혹스러움을 털어놓는 걸 본 적이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도롱뇽 소송인단' 서명자 중 다수가 '초록에 공명'한 것이 아니라 지율 스님에 대한 연민 혹은 '장엄한 비장미'에 대한 공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도롱뇽 소송'의 승소를 기대하게 된다. 사회적 유전인자에 승리의 기억을 간직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에서 봤듯이,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개발과, 성장, 자본의 힘을 당연시한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환경 보호'나 '분배'는 개발과 성장의 논리 앞에 '여우의 식탁에 초대 받은 두루미' 혹은 그 반대이기 쉽다. 따라서 국가는 여우와 두루미 모두에게 맞는 그릇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부는(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그렇듯이) 자본가와 개발론자의 편에 선다. 아니 정부가 가장 강력한 개발론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천성산의 예가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참여 정부 초기, 분배에 무게 중심을 둔 경제 정책을 강력히 시사했지만 결국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은가. 혹자는 이를 두고 '좌측 깜빡이를 넣고 우회전을 한다'고 표현했는데, 결국은 불확실성만 키움으로써 더욱 목전의 이익에 집착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천성산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결국 우리 자신의 욕망이 아닌가 하고 자조를 하면서도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개인의 욕망은 자본의 자장에 휘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느림의 미학'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형 인간'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대중적 '생태주의 복음서'가 순식간에 밀리언셀러가 되지만, '도롱뇽 소송인단' 100만 명을 모으는 데는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 우리 사회다.

정향나무와 '미스 김 라일락'

생태가치가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무력한 것은 그 가치가 내재적이고 심미적이며, 목전의 이익과 먼 미래가치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탐욕 앞에서 '자연은 다음 세대로부터 빌린 것' 따위의 얘기는 한심한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자본의 파괴적 관성 앞에서 생태적 재앙은 극성맞은 환경주의자들이 퍼트린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는다. 시화호의 뼈저린 실패를 겪고도 새만금을 가두는 배짱을 보라. 농경지에서 공장부지로 바뀌었다가 그도 저도 아니니까 최근에는 세계최대의 골프장을 만든다는 계획을 퍼트리고 있다. 삼보 일배도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생태적 재앙은 나와 무관한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기는 무관심이 자본의 흉포성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그래서 시민 참여로서 '도롱뇽 소송인단 서명'과 같은 작은 실천과 지속적 관심이 소중하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대중의 건망증을 믿기 때문이다.

잘 아는 식물분류학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수수꽃다리라는 우리 이름을 두고 흔히 라일락이라 부르는 나무와 비슷한 정향나무라는 우리 특산종이 있는데, 1947년에 한 미국인이 채취해 가서 '미스 김 라일락'이라는 이름의 작은 품종으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역수입되고 있다고 한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는데, 자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미스 김 라일락' 같은 작은 수준에서부터 홍수와 한발을 막는 거대한 차원에 걸쳐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작거나 커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여긴다.

천성산은 이제 경남 양산시의 한 산이 아니라 우리 자연의 다른 이름이다. 지율 스님이 만약 천성산이라는 구체적 한 산에만 집착했다면 지율 스님의 단식은 사회적 공명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상징으로 천성산을 살리자고 하는 것이다.

개발론자의 귀에는 '도롱뇽을 살리자'는 소리가 허무맹랑한 말장난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도롱뇽과 인간이 생명의 질량에서 하등 차이가 없다는 근본생태주의적 고공 담론을 '돌봄의 문화'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웃과 동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배려를 통해 지악스런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것만이, 진정 도롱뇽과 생명의 눈맞춤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 말도 인간중심주의라고 욕을 먹을 것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생태 윤리가 더 낮은 수준의 실천 덕목으로 우리 삶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끝으로 자문해 본다. 우리는 지금 진정 천성산을 살리고자 하는가, 아니면 도덕적 부담감 때문에 지율 스님부터 살리고 보자는 것인가. 나는 전자이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설사 천성산이 뚫린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천성산이 살아 있는 한, 지율 스님은 그 큰 눈망울을 끔뻑이며 우리와 함께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천성산 살리기는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모두를 살리자는 생명의 노래 부르기다. 그런데, 왜 이리 힘이 드는가.

윤제학
전 현대불교 취재부장.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 <산은 사람을 가른다>가 있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