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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재가논강"을 회향하며 / 박희승
[20호] 2004년 10월 10일 (일) 박희승 조계종 포교원 연구차장, 중앙신도회 정책위원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 안거 기간에 조계사에서는 "백일법문 재가논강"을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재가논강 공부프로그램에는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텍스트로 하고, 각화사 태백선원 선덕 고우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셨습니다. 주최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주관은 재가논강준비모임이 맡았습니다.

교계와 일간 신문에서는 처음으로 재가자들이 논강이라는 공부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에 주목하여 비중있게 소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신문의 보도 덕분에 당초 108명만을 모집하려던 계획에 접수자가 수백 명이 되는 성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장소 관계로 130명만 등록을 받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해달라는 안타까운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재가논강은 모두 7번의 공부 프로그램과 1박2일 수련회 일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일곱 차례 공부 중에서 1회, 4회, 마지막 7회에는 증명법사의 법문이 있었고, 2~3회와 5~6회는 동참 대중 또는 관계 재가불자의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10년만의 무더위와 휴가철에도 적지 않은 참석률을 보여 40여명 이상이 개근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북 부안에서 농사짓는 분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공부에 참여하셨답니다.

이번 재가논강은 작년 동안거에 실상사에서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으로 한국불교를 다시 본다."는 주제로 열린 선우논강을 참관하면서 착상했었습니다. 그 같이 좋은 공부모임을 서울의 중심지인 조계사에서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재가논강을 기획한 것은 무엇보다 증명법사 고우 스님의 가르침이 힘이 되었습니다. 3년 전 어떤 분의 추천으로 봉화 각화사 서암에서 고우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불교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부처님께서 깨달은 중도(中道)를 이해하면 가치관이 바뀌고 생활이 달리진다.", "중도를 이해하면 남과 다툴 일이 없어지고, 무한경쟁이 아니라 무한향상으로 갈 수 있다.", "인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중도사상이다.", "중도를 알면 매일매일 좋은 날, 모든 일이 좋은 일이 된다."고 강조하시며, 불교의 방대한 교리를 다 공부할 것이 아니라 핵심인 중도만 바로 이해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고우 스님은 이 중도를 이해하는데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이 가장 좋다."하시며, "《백일법문》의 제1장에서 3장까지 반복해서 읽고 자기 생활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도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길이다."고 고구정녕 일러 주셨습니다.

저의 경우 스님 말씀대로 《백일법문》을 공부하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도 생활도 달라졌습니다. 부처님의 깨침과 가르침이 생활에서 이해되고 운용되어 마음도 평안해지고 자유와 행복한 삶의 길도 이해가 되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좋은 부처님 법을 혼자만 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던 차에 지난 2월 어느 날, 중앙신도회 정책위원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우리 재가불자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스님들께만 돌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공부하고 탁마하고 좋은 일하여 스님들도 외호하고 종단에도 기여하는 그런 공부를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백일법문》 논강을 하면서 중도를 공부해보자고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아울러 한국불교의 전통인 안거 공부 문화를 재가자와 도시에 확산시키는 계기도 만들자는 생각에서 하안거 기간에 공부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번 재가논강의 발제와 토론자 섭외에서 견지했던 원칙은 불교의 이론 공부만이 아니라 수행을 하고 있는가, 대중의 생활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리 위주의 세미나나 어려운 법문, 교리 강좌와 다른 방향을 고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체 공부에서 특이한 점은 과학기술원 학습기억현장연구단장이신 신희섭 박사님의 "뇌과학 연구의 입장에서 본 마음"이란 주제의 논강이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번 《백일법문》 공부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시야를 좀 넓혀 불교에서 "마음이 부처다"는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이 마음에 대한 뇌과학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고 《백일법문》을 혼자서 공부하신 신 박사님의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토론하였던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이런 공부 프로그램이 교계 내외에 주목을 받으면서 전국 사찰과 단체에서 공부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불자라면 불교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먼저 바른 이해를 해야 바른 실천이 될 수 있는바 이러한 공부 문화가 대중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이번 논강은 재가자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가 공부인들의 공부 안목과 역량의 단면을 보여 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논강에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부처님과 역대 조사 선지식들께서 깨치시고 한결 같이 일러주신 중도연기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여러 모로 부족하였습니다. 아직 우리 교계에는 중도(中道) 정견(正見)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합니다.

중도 정견이 서지 않으면 진정한 신심과 발심이 되지 않으며, 수행도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중도 정견이 서면 수행의 목표가 분명히 서서 인생의 발걸음이 가볍게 됩니다.

이번 재가논강을 계기로 한국불교계에 특히 재가 공부인들 사이에 중도 정견을 세우는 다양한 공부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시설되어야 한다는 점을 깊이 느꼈습니다. 《백일법문》뿐만 아니라 《육조단경》, 《돈오입도요문》, 《서장》 등등의 조사어록을 통해 정견을 세우고 발심 수행할 수 있는 공부 문화가 더 다양하게 확산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재가불자들이 산중에서 수행에만 전념해 오신 선지식들을 자주 찾아뵙고 법문을 들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선지식들께서도 시중으로 나와 재가 공부인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 재가 생활인들의 고민과 번뇌,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해결 대안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조사 선지식들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단지 번뇌망상에 가려 자신이 본래 부처인줄 모르고 경계에 끄달려 살 뿐입니다. 자기가 왜 본래 부처인지 알고 부처가 되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중도 정견을 세우고 발심 수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재가불자들 사이에 발심 수행은 아닐지라도 교법 이해를 바로 하여 중도 정견을 세우는 이가 늘어 가면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하면 출가와 재가 수행자들이 서로서로 돕고 이끌고 밀어 주는 아름다운 수행 공동체로 가는 길도 보다 가까워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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