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칼럼 > 사색과 성찰
     
골목길의 아이들과 자동차 / 정성운
[20호] 2004년 10월 10일 (일) 정성운 불교정보센터 대표
최근 대구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7월부터 한 달에 두 번 꼴로 대구에 들렀다. 해인사 불사검토협의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인데, 해인사에 가기 위해서 대구를 경유지로 삼기 때문이다. 차를 갈아타느라 1시간 정도는 대구에서 머물게 되는데, 지난 주 월요일에는 대구 시내를 한가하게 걸어보았다. 회의가 일찍 끝난 데다, 네다섯 번을 들러 가면서도 휑하니 지나치는 게 왠지 한 도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해서였다.

거리를 걷다가, 마침 배가 고파 서부버스터미널 부근의 식당에 들렀다. 테이블이 두 개인, 부업으로 하는 작은 식당이다. 된장찌개를 주문해서 오랜만에 아주 천천히 이른 저녁밥을 먹다가 아이들 몇이 건너편 골목길에서 축구공을 차는 놀이를 하고 있는 풍경과 마주쳤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꽤 오래인 것 같다. 그래서인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어른 두 사람이 두 팔 벌리면 닿을 정도의 좁다란 골목.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셋과 여자 아이 하나. 어김없이 골목길에는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차 밑으로 들어간 공을 꺼내기 위해 다리를 길게 늘이는 것이 나의 어릴 때 모습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시끄러우니 다른 데 가서 놀라고 창문 사이로 소리 지르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집안에 있을 어른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거기서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고 놀이를 하면서 그들 사이에 소통되는 질서와 언어를 익히며, 그들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골목은 골목이라는 공간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골목길은 자동차의 차지가 되었다. 그들만의 공간을 자동차에 내어 주고 밀려났다. 마치 개발에 의해 산등성이와 산등성이의 나무들이 자취를 감추고, 거기에 살았던 이웃들이 뿔뿔이 흩어졌듯, 예전에는 골목길의 주인이었던 아이들도 자동차에 떼밀려 골목길을 뺏기고 말았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마당도 없는 집에 갇히게 되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했던지 놀이터라는 시설을 만들어 주었는데, 인디언 보호구역 같은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골목길 풍경도 변하게 마련이다. 바닥은 보도블록이 깔려 단단해졌고, 거기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에서 아이들 놀이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아이들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 입에서 바쁘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두세 군데 가야 하니 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니 동아리 지어 놀 만한 아이들이 없다. 놀이의 모양도 바뀌어서 컴퓨터 게임이 골목길 놀이를 대신한다. 더구나 골목길이 자동차 주차장이 되어 버렸으니 아이들 차지가 되지 못한다.

《자동차, 문명의 이기인가 파괴자인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일본의 오비히로 축산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스키타 사토시 교수가 쓴 책인데, 자동차가 아이들의 공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비판과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의 길과 자동차 길의 분리를 대안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자동차에 대한 그의 비판의 강도는 매우 높다.

“오늘날 자동차는 문명을 갉아먹는 흉기가 되어 버렸으며, 인간의 비인간적인 경향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바뀌어 버렸다. … 운전자는 훨씬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며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 그러다 보니 운전자는 더욱더 자신을 뭔가 선택된, 특별한, 뛰어난 인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 그리고 그와 비례해서 외부의 보행자는 하찮고, 불쌍하고, 초라한 존재로 비치게 된다. 특히 자동차가 내는 엄청난 속도 때문에 보행자는 풍경 속에 붙여진 듯 대수롭지 않아 보이고, 풍경의 일부로 화해 버릴 정도로 더 한층 그렇게 비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운전자는 자연히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지게 된다.”
스키타 교수의 자동차에 대한 혹독한 비판도 그러하거니와 전공과 거리가 먼 글을 책으로 엮은 동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키워 본 부모들은 대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8년 전 태어난 내 아이가 아장아장 밖을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지금까지 보아온 세계가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 사회가 이렇게도 위험에 가득 차 있는가 하고 새삼스럽게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의 안전을 매일같이 신경 쓰면서 이 현실, 자동차가 제 마음대로 달리면서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어린이 교통안전 체크리스트라는 것이 있다. '길을 건너기 전에 우선 멈추어 좌우를 살핀다'는 등의 9가지 항목 앞에 네모 칸을 만들어 아이들이 잘 지키는지 여부를 확인해서 지도하라는 것인데, 이 체크리스트를 읽은 부모들은 아마 아이들을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나가지 않는다.' '모든 길에서 항상 멈추고 차를 확인한다.' '차가 주정차 된 곳에서 놀지 않는다.' '운전자와 눈을 맞추어 운전자가 나를 보았는지 확인한 후에 길을 건넌다.'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나는 우리 아이를 체크리스트의 네모 칸에 넣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이다. 잘 보이지 않는 차창 안쪽의 운전자와 어떻게 눈을 맞추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노는 곳에 자동차를 세워둬선 안 되는 것이 당연한데, 아이들에게 놀지 말라니!

골목길을 빼앗은 어른들이 이제 아이들을 체크리스트의 네모 칸 안에 가두고 있다. 아이들을 옥죄는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