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림스님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사슴이 알을 품는 소식

海低燕巢鹿抱卵
火中蛛室魚煎茶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 거미집엔 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의 소식을 뉘라서 능히 알랴
흰구름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달린다.

효봉선사(曉峰禪師, 1888~1966) 출전, 《효봉선사어록》


일제 치하 평양의 판사출신 승려 효봉의 오도송이다. 그 시의 언어가 매우 상징적이다. 효봉이 오도를 하고 이 게송을 지은 시점은 서구사회에서도 아방가르드가 유행했다. 그래서 지식인이었던 효봉이 서구의 모더니즘을 모방한 것일까.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선사들은 이미 천 년 전부터 문화의 최첨단에 서 있었다. 그들의 언어는 초현실적이었으며 극단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효봉의 오도송의 언어는 이미 천 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라고 하는 이 말을 이해하면 앞으로 전개될 선시들을 마땅히 읽을 자격을 가진다. 하하! 그렇다고 말에 속지는 말라. 무서운 함정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효림(曉林) 스님/ 시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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