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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김희준 포항교사불자회 회원
[36호] 2008년 10월 10일 (금) 김희준 포항 대동중학교 교사

잠에서 깨어나 무심코 문간에 배달되어 온 신문을 읽었다. '육식'을 하는 신종 소의 고기를 수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 기사가 오늘도 지면을 덮었다. 백만 개의 촛불이 들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의 마음은 또 놀라서 깨어났다.

얼음의 땅 그린란드와 북극의 빙하가 일주일 새 영국 땅덩어리만큼이나 녹아내린다고 한다. 지난여름 순례를 다녀온 히말라야와 티베트의 만년설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갠지스와 황하가 비가 내릴 때만 흐를 것이고, 곡물 생산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굶주려 죽어야 하는 지구별의 미래가 시시각각 현실로 바뀌고 있다는 소식이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천지자연의 생명을 블랙홀과도 같은 인간의 무한 탐욕과 이기주의가 빨아들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우리 시대의 무명과 문명이 빚은 자기모순과 자기파멸의 필연인 것이다.

사나흘 동안 차를 세워 두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에 나섰다. 일 년 만이다. 그저께 내린 여름 비로 머리를 감은 느티나무 가로수의 잎사귀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 간다. 날렵한 바퀴살 사이로 바람이 경쾌하게 일어나고, 길 위에서 먹이를 찾아 어디론가 부지런히 기어가는 개미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호등을 건너고 마천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산비탈 아래로 들어섰다. 아침 댓바람에 토담집 식당 아저씨는 가마솥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다. 나무 타는 구수한 연기 냄새가 아스팔트 길 위에 깔린다.

산비탈 아래 골목길을 들어서자 찻길을 넓힌다고 길가 개울을 시멘트로 새로이 뒤덮어 놓았다. 땅 밑에서 새 맑은 물이 사철 샘솟아 나와 개울가에는 여뀌가 자라고, 새봄이 오면 샛노란 양지꽃이 밤하늘의 별처럼 수를 놓았다. 비단개구리가 알을 낳는 물가의 풀숲에는 뱀딸기가 군침을 돌게 했다.

며칠 전 꿈이 생각난다. 강바닥을 파헤치고 강둑을 깎아 운하를 만들어 놓았고, 길바닥으로 내몰린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등줄기를 드러내며 가쁘게 물을 찾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낙동강이 발원하는 검룡소 바위굴을 지나 태백산 아래 심심산골 마을로 홀로 걸어갔다. 장모님이 동구에 나와 기다리다가 반가이 맞아 주시는데, 꿈을 깼다.

산 중턱에 새로 자리 잡은 학교로 오르는 언덕길 아래에는 몇 집이 오래도록 살아왔다. 시멘트 찻길을 거슬러 오르자 여전히 밤나무가 비릿한 냄새를 퍼뜨리며 꽃을 피우고, 그 아래 우물에는 차가운 물이 솟는다. 꼬부랑 할머니는 울타리 밭에서 지난가을에 씨 뿌린 밀을 거두고 있다. 할머니 집 담벼락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학교 울타리로 걸어 올랐다. 담장 아래 땅바닥에는 거뭇거뭇하게 익은 오디가 밤새 떨어져 있었다.

학교 마당에 자전거를 세워 놓으면 학생들이 무슨 심술이 나는지 안장에다 침을 뱉고 껌을 붙여 놓으며 심지어 타이어의 바람을 빼어 놓기 일쑤였다. 자연과 멀어지고, 공부에 찌들고, 컴퓨터를 동무 삼아 자라는 어린 벗들은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본능을 그렇게 발산하는 것이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퇴근길에 소낙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바람벽 아래에 세워 둔 자전거를 가지러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뜻밖에도, 어느 이가 고맙게도 자전거 안장에 비닐봉지를 씌워 놓았다. 순간, 할머니의 마음이 봄바람처럼 스쳐 갔다.

늘처럼 작년 이맘때도 문간 밭둑에 오디가 시커멓게 익어 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보이질 않고 쉰 살은 넘은 며느리로 보이는 여인이 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오디를 하나 따서 맛보아도 되겠느냐며 허락을 구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구석에 세워 둔 바지랑대를 들고 달려오더니 뽕나무 가지를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말없이 하얀 이를 보이며 땅에 떨어진 오디를 마음껏 먹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아, 어찌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그이는 벙어리였다. 할머니는 꽃길을 가꾸고 밭만 일구고 사신 것이 아니었다. 말 못하는 따님과 장성한 아드님과 백구(白狗)도 봄바람 같은 품속에서 키우고 계셨다.

겨울밤이면 뒤꼍 키 큰 감나무에 부엉이가 날아와 울고, 모란이 피어나던 화단가와 두레박으로 찬물을 퍼 올리던 우물이 있는 고향집은 이젠 흔적도 없이 뜯기어 나갔다. 하지만 잊을 수가 없다. 이젠 이승 사람이 아닌 뒷집 할매가 등에 업혀 칭얼대는 손자를 달래려고 늙은 뽕나무에 올라가 있던 나에게 가지를 흔들어 달라고 하였다. 담장 너머 고샅길에 시커먼 오디가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한 됫박은 되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할머니가 따님과 내 또래의 아드님과 같이 며칠 전에 베어서 길가에 세워 둔 밀짚 단에서 이삭 하나를 뽑아 들고 교무실로 올라갔다. 앞에 앉은 두 분 선생님께 물으니 보리라고 하고, 옆자리의 캐나다에서 온 영어 선생님께 보이니 모른다고 한다. 교실에서 북한의 밀, 감자, 수수, 옥수수 농업과 식량난의 현실을 아들 또래의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면서 밀 이삭을 들어 보였다. 아무도 밀인 줄을 모른다. 작년 대홍수의 여파로 햇감자가 나오기까지 보릿고개를 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녘에 여러분 같은 어린이들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굶주려 죽어 나가고 있다고 하였다. 대꾸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십 년 전에도 무려 삼백만 명의 동포들이 굶어 죽었다고 하였다. 심드렁한 표정들이었다. 그것은 형광등 푸른 불빛 아래의 종이 속에 박제되어 있는 우리 교육의 얼굴이었다. 시장 논리로 작동하고 있는 학교 현장은 아이들의 감수성을 빼앗아 가는 반교육의 마당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학교에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서약서 종이를 나누어 주며 종례를 하였다. 오늘도 여섯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지친 몸을 하고 솔숲 길을 걸어 할머니 집으로 내려갔다. 대문 앞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며 자전거로 다가가는데 놀랍게도 할머니가 오디를 한 양푼 가득 담아 내 자전거 바구니에 올려놓지 않았는가.

어저께 우리 반 제자 한 녀석에게 뽕나무 가지를 잡고 오디를 따 주며 이것이 오디라고 하는 것인데 한번 먹어 보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뒤에서 언제 보셨는지, 어저께 내가 오디를 먹는 것을 보았다며 비닐봉지에 그 오디를 담아 주었다. 할머니는 나를 낯선 침입자로 경계하지 않았다. 아니 할머니는 이제껏 나를 다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날마다 귀한 손님이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던 것이다.

고맙다고 연방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바구니에 오디를 싣고 페달을 밟아 산비탈 아랫길을 내려오는 내 가슴에 할머니의 또 다른 말씀이 울려 퍼졌다. 저 뽕나무 가지에 산새들도 날아와 오디를 물고 간다고 하였다. 나는 추억으로 오디를 먹지만, 새들은 생명을 잇기 위해 먹는 것이다. 새들의 절실한 양식을 뺏어 가는 나는 정말 미안하였다.

다른 생명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천둥 같은 가르침을 베푼 스승이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앉아 오디를 주워 먹는 내 입가가 거멓게 물들었다고 아내가 웃는다. 하지만 북녘에는 끼니가 떨어진 창백한 얼굴의 엄마가 입술이 검게 타들어 가는 자식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다. 소리 없이 오디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이 여름날, 북녘에는 생명의 촛불이 바람 앞에 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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