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오진 동방연구회 연구원

1. 들어가는 말

일본에 있어서 동남아 불교 연구는 일본이 쇄국정책을 풀어 주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한 제국과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명치(明治, 1868~1912) 시대를 지나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또한 강점 의욕이 강해지기 시작했던 대정(大正, 1912~1926) 시대 중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1)

당시에는 ‘동남아 불교’라는 명칭은 사용치 않고 ‘남방불교(南方佛敎)’라 했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이 끝난 뒤, 국내외의 많은 사정으로 인해 그 연구가 정체(停滯)됨과 동시에 그렇게 많은 연구의 성과를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특히 1945년 이후의 동남아시아 불교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실태 조사 연구는 미비했으나, 간혹 개최되기 시작한 세계 불교도 회의 개최 등에 의해서 그 교류는 활발해졌지만, 동남아시아 불교의 현상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그렇게 획기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2)

이 같은 시기에 한 사람의 승려가 동남아시아 불교학을 개척하게 된다. 즉, 그 한 승려는 일본 정토종 승려이며 학자인 후지요시 지가이(藤吉慈海) 박사이다.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 후 1951년부터 2년간에 걸쳐 일본이 전쟁이 끝난 후 최초로 인도 정부 초빙 유학생으로 베나레스 힌두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인도의 여러 종교의 실태를 조사한 후 대단한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스리랑카에 건너가, 동남아시아 불교 교단의 승려가 되어, 사원 생활을 체험하면서 교단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종교와 정치에 관해서도 탐구하게 되었다.3) 이 탐구에 대한 연구 결과를 《현대 인도의 종교》(京都, 其中堂 발행)와 《인도 실론 기행》(불교문화연구소 발행)에서 상술하고 있다.

이 후지요시 박사로부터 시작된 현대 동남아시아 불교 연구는 그 후 결코 활발한 연구 진척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미비함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일본에서 새로운 연구 방법과 범주에 의해서 실시되고 있음을 특기할 수 있다. 그것은 동남아시아 불교에 대한 연구가 비단 불교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문화 인류학자 또는 종교 인류학자들이 각층의 전공 분야에서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척되고 있음이라 생각한다.

그 한 예로서 스즈키 마사타카(鈴木正崇) 박사의 《스리랑카 종교와 사회》(동경, 春秋社, 1996년. 912쪽)를 들 수가 있다. 이 저술은 동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민족종교를 포함해 스리랑카를 포괄적으로 다룬 종교 인류학적 연구서로서 대단히 방대한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불교학 전문 학자들로서는 대개 인도불교학이 주전공인 사람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중요한 한 예로 최근의 동남아 불교 현황의 일단을 보기로 하자. 즉, 초기불교(일본에서는 ‘원시불교’) 연구 학자로서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높은 마에다 에가쿠(前田惠學) 박사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마에다 박사는 《원시불교 성전의 성립사 연구》(동경, 山喜房佛書林, 1964년)로 동경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음과 동시에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일본학사원 은사상이라는 학자로서 일본 최고의 상을 수여받는 등 그 명성은 필자가 새삼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저명한 학자이다.

동시에 마에다 박사는 상기한 박사학위 논문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원시불교 성전 즉, 팔리어 성전을 역사적 및 문헌학적으로 치밀하게 연구한 대저로서 출간 4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원시불교 즉,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자는 이 책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초기불교 연구자의 필독 명저로 그 평가가 높다.

다시 말해서 이같이 일본 전통의 문헌학 및 역사학적 연구의 전형적인 학자 마에다 에가쿠 박사가 “문헌학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인류학적, 민속학적, 종교학적 등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학을 가미한 연구가 되지 않으면 동남아 불교의 현 상황에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불교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마에다 박사는 1977년 뜻을 같이하는 팔리 불교 학자들과 함께 ‘팔리 문화 연구회’를 발족해 매년 꾸준한 연구 활동과 학회 논문집을 발표하는 등 부단히 매진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7년에는 정식으로 ‘팔리학 불교 문화학회’를 창립, 마에다 박사 자신이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눈부신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경의와 찬탄을 금하지 않고 있다.

이 ‘팔리학 불교 문화학회’는 일본에서 동남아 불교연구를 위한 전문적인 연구 단체로서, 팔리 불교권의 문화를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연구해 그 성과를 발표해 왔다. 그리고 현대의 동남아 불교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종합연구를 위해 일본 문부성과 일본의 3대 신문사 등으로부터의 연구 보조금을 받아 동남아 불교국들을 현지 답사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성과 중 대표적인 저술 하나를 소개하면 1987년에 발표된 《현대 스리랑카 상좌불교》를 들 수 있다.

이 《현대 스리랑카 상좌불교》는 B5사이즈의 크기로 1000쪽을 넘는 방대한 서적으로, ‘현대’라고 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스리랑카 불교를 모델로 삼아 학제적(學際的)이며 또한 종합적으로 스리랑카 각지를 현지조사를 실시한 연구결과이다.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연구비를 지급 받고, 일본의 3대 신문의 하나인 아사히(朝日)신문 학술 장려기금을 받는 등 각계 각층에서 그 연구 성과에 대한 기대가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연구 성과가 발표됐을 때는 아사히신문사로부터 아사히 학술장려상, 주니찌(中日)신문사에서 주니찌문화상,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 공로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할 정도로 동남아 불교의 중요성을 제시한 역사적인 대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일본에서 이 《현대 스리랑카 상좌불교》라는 서적을 거치지 않고서는, ‘현대 불교연구’를 진척시킬 수도 없으며, 또한 ‘불교학’을 말함은 있을 수 없을 것”4)이라는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이 저술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마에다 박사는 일본에 있어서 동남아 불교 연구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불교학 전체에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진취적 연구 방법을 적용하였으며, 동남아 불교 연구를 모델로 삼아 일본 학계에 그 이정표를 제시했다. 이로 인해 일본 불교학계는 지금까지의 불교 연구 방법과는 다른 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하 그 일부분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2. 동남아 불교학 연구대상과 그 방법

불교학 연구 대상은 물론 불교다. 학문으로서의 불교학은 먼저 연구 대상을 정할 필요가 있다. 종교를 연구하면 종교학, 법률을 연구하면 법률학이지만, 그 연구 대상이 먼저 있어 그것을 어떻게 연구하면 좋을까하는 방법론이 문제가 된다. 방법론이 연구 대상보다 선행(先行)할 리가 없다. 먼저 연구 대상이 있는 것이 학문으로서 통례(通例)이며, 인문과학도 자연과학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러면 불교학 연구 대상이 되는 불교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적지 않은 학자들이 발언해 왔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었을 뿐 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없었다. 설혹 있다 해도 우리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한 대답이 아니었다.

예컨대 우이하쿠슈(宇井伯壽)5) 박사는 “불교란 불타가 설했으며, 부처가 되는 가르침이다.”라고 말해, 이에 대한 지지자도 많았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불타가 되고, 성불(成佛)한다고 하는 것은 대승불교 전반에 걸쳐 공통적 목적으로 삼고 있으나, 상좌불교의 경우를 생각하면, 부처는 현세(現世)에서는 오직 한 부처 즉, 석가모니 세존뿐으로 그 제자들은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나는 독자적인 정의를 제시했다.

“불교란 불타를 개조(開祖)로 하며, 열반 또는 깨달음과 구원을 최고의 구극적 가치 혹은 목적으로 보는 문화의 종합적인 체계다.”라는 제안이다. 불교가 과거 2,500년에 걸친 역사를 갖고 있음과 동시에, 인간 사회 중에 현재 존재함에서 미래를 향해 그 자신의 전개 과정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불교학은 본래 이 전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종래의 불교학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점을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결락(缺落) 부분을 남기고 있다. 특히 현대 불교 연구는 거의 연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나는 “불교학은 현대 불교를 연구하지 않고는 완결된 불교 연구라고 할 수 없다.”라고 주장을 거듭해왔다. 현대 불교를 명확히 하면, 과거의 불교를 보는 눈이 정확해지는 부분이 있다.

내 생각으로는 현대 불교를 시야에 넣지 않으면 불교의 정의를 내릴 수 없다고 본다. 종래의 불교학은 현대 불교에 그 위치를 내어주지 않았다. 과거의 불교 연구를 하고 그것만으로, 그것도 그 일부분만의 연구로서 불교를 알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현대의 생동하는 불교를 그 시점에 넣었을 때, 불교의 생동하는 모습을 취급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된다. 그 결과 불교를 문화의 종합적인 체계로서 보아야 한다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문화의 종합적인 체계’라고 하면, 불교 또는 종교 등은 문화를 초월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불교의 ‘최고의 구극적인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제시한 것이다. 동시에 불교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측면도 또한 경시(輕視)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경시 또는 무시해 온 곳에 종래 불교학의 결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 연구인들은 자신들의 연구 분야에서 예컨대 중국불교를 연구하는 사람은 수·당 불교뿐만 아니라 한 번쯤은 현대의 중국불교를 연구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중국불교 연구는 대단히 어렵다. 유명한 사원의 유적 답사나 그야말로 관광여행의 일원으로서의 사원 견학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지금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승려들, 신도들과 만나 그 협조를 얻어서 현실을 조직적으로 충분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 불교에 관해서는 타이완이나 한국이 중국보다는 조사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조사할 수 있는 지역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미국이나 유럽의 불교도 이제까지와 같이 그 나라의 대학에 가서 산스크리트어 등의 어학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불교가 생동해 움직이고 있다. 불교 신자나 실천 수행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들 연구인들은 매년 한 번 이상 연구 발표를 해 5년이나 10년을 지나게 되면, 아마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 분량이 될 것이다. 10년에 한 권씩 30년간 연구 생활을 계속하면 3권 정도의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종래의 석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철저히 관철해 대성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불교가 ‘문화의 종합적 체계’인 이상, 여러 부분의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제분야에서 이것을 복합적인 시각에서 종합적인 연구를 하지 않으면 불교학자라고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종래는 한 기술이 뛰어나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해왔다. 이제부터는 모든 분야에서 고찰(考察)해서 종합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만약 이 같은 것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가능할 경우에는 가능한 연구인들과 함께 공동 연구를 계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6)

이상과 같은 불교학 연구 대상과 방법론이 발표된 뒤 일본 불교학계 특히 젊은 연구인들의 불교학 연구 시점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그것은 다음에 열거한 오늘날 일본 불교학계의 동남아 불교 연구 현황을 그 논술로서 확인하면 일목요연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및 인도 등에 관한 연구를 열거하면서 중요한 단행본은 간추려서 별도로 소개했다.

계속해서 일본에서의 동남아 불교 연구 현황을 각 학술 잡지에 발표된 논문을 중심으로 계열별로 나열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동남아시아’ 즉,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으로 구분하며, 인도, 스리랑카 등은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남아시아’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지면 관계도 있고 또한 본 논고의 테마가 ‘동남아시아’이므로 남아시아 부분인 스리랑카나 인도 등에 관한 학술지 논문 보고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또 하나는 이하 열거하는 논문에 관한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일본어로 개재된 내용 그대로를 보고한다. 그것은 일본어 그대로가 독자 제현들께서 인터넷 상에서 그 상세한 내용을 찾아볼 때 한국어가 원어가 아니므로 별 의미가 없으며, 일본어 그대로가 검색에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임을 밝혀 둔다.

순서로서 단행본은 1.저자 이름 2.책 제목 3.출판사 이름 4.발행년도 5.쪽수의 순번이며, 논문에 관해서는 1.저자 이름 2.논문 제목 3.게재 논문집 이름 4. 논문집 번호 및 쪽 수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상의 보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에 있어서 동남아시아 불교 연구는 역사적인 시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폭넓은 범위에 걸쳐 연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및 금후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해야 할 것을 포함해 불교와의 관계 등에 관해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동남아 여러 나라들의 불교에 대해서 ‘소승불교(小乘佛敎)’라는 선입견에서 그렇게 중시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불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점유하는 불교의 비중은 상상 이외로 다대하다고 생각한다. 계율적인 일상 생활방법이나 또는 명상 또는 좌선법에 대한 관심의 심도도 역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동남아시아의 불교를 관찰할 때, 지금까지 우리들이 선입견으로 일축해버렸던 사고방식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으며 지금 현재의 불교를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아니었는가를 자각하게 된다. ■

석오진 / 승려. 일본 동경 고마자와(駒澤)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현재 재단법인 동방연구회(東方硏究會) 연구원, 도쿄 동방학원(東方學院), 스루가다이 대학 강사 및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객원연구원. 저·역서로 《기독교인가 불교인가-역사의 증언》 《파아나두라 대논쟁》 《中村元》 《비교 종교 사상론》 《원전으로 읽는 원시불교의 세계》 《붓다가 남기고 싶었던 말》 《석존과의 대화》 등과 100여 편의 논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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