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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와 동남아불교 교류의 어제와 오늘
이치란 해동영한아카데미원장
[36호] 2008년 10월 10일 (금) 이치란 dhammapower@naver.com

1. 시작하는 말

한국불교가 동남아불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동남아불교는 소승불교이고 불교의 정통성은 대승불교인 북방불교에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남아불교에 대한 북방불교의 우월의식은 정당하지 않다. 동남아불교는 부처님이 가르친 교법과 계율을 비교적 충실하게 전승해 온 불교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통성 문제에 관한 한 대승불교에 더 많은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폄하는 상호불신의 장벽만 높일 뿐이다.

다행한 것은 최근 들어 교통과 통신, 뉴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상호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특히 1950년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창설 이래 다양한 부문에서 상호교류가 진전됨에 따라 상당 부분 오해가 풀려 가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양측의 완전하고 성숙한 이해가 이루어지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양측의 불교는 지난 수천 년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 오랜 역사적 뿌리를 바탕으로 한 발상을 교정하는 데는 보다 진지한 상호이해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직접 방문하면서 현장에서 상대 불교에 대한 체험적 이해를 늘려 가는 것이다. 실제로 양측 불교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적지 않은 교류를 해 왔다. 현재 우리가 이런 정도의 문제의식이라도 갖는 것도 과거의 교류를 통해 얻어낸 성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양측은 보다
진지하고 심도 있는 교류가 필요하다.

이 소론은 이런 인식을 전제로 현대에 들어와서 북방불교의 중심축의 하나인 한국불교가 동남아불교와 어떻게 교류했는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방불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교류를 확장하는 것이 근거 없는 교리적 교단적 우월주의를 극복할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동남아불교의 개념과 교류의 역사

동남아불교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는 불교를 일컫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는 발생지인 인도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서 전파되었다. 하나는 인도 북쪽을 기점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넘거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중국, 몽골, 한국, 일본으로 전해진 불교다.

이를 지리적으로는 북방불교, 교리적으로는 대승불교(Mahayana)라고 한다. 또 하나는 인도의 남쪽인 스리랑카를 거쳐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등에 전파된 불교다. 남쪽으로 퍼져 나간 불교라 해서 지리적 개념을 앞세운 남방불교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교리적으로는 상좌부 불교라고 한다.

대승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소승불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폄하의 뜻이 포함돼 있어서 근래에는 사용하지 않고 그쪽에서 부르는 상좌부 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상좌부 불교(테라바다)라는 말은 보수적 장로들이 불교의 전통을 지켜 왔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이를 동남아불교라고 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방불교의 승려들이 남방불교와 교류한 기록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동진(東晉)시대 구법승인 법현(法顯, 337~422)이 남긴 《불국기(佛國記)》에 따르면 그는 육로로 인도에 갔다가 귀국길에 석란도(錫蘭島=스리랑카)에 들른다. 스리랑카에 체류하는 동안 아바야기리(無畏山寺, Abhayagiri)에서 불교전적들을 중국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당나라 때에는 의정(義淨, 635~713)이 산둥성에서 출발해 해로를 통해 인도에 갔다가 다시 해로를 통해 귀국했다. 전후 30여 년간 구법여행을 한 그는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이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그가 머문 곳 역시 스리랑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8세기경 신라의 혜초(慧超, 704~787)를 비롯한 구법승들이 인도를 다녀왔거나 그곳에 머물다 입적했다는 기록들이 전한다. 의정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는 모두 56명의 구법승의 행장이 소개돼 있는데, 이 중 신라의 스님은 아리야발마를 비롯해 혜업, 현태, 혜륜 등 7명의 이름이 남아 있다.

 이들이 해로를 통해 인도로 갔다면 틀림없이 남방불교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설이기는 하지만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의 딸 허황옥(許黃玉)과 그녀의 오빠 장유(長遊) 화상이 바다를 통해 가야국에 왔다는 기록도 있다. 또 백제에 처음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는 천축의 고승이었다는 기록 등은 고대부터 우리나라가 인도나 남방불교와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었음을 추측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연이 그 후로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는지는 자료가 부족해 알 수 없다.

다만 한국불교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세계화, 국제화 과정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남방불교를 만나게 된다. 그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개인적 경험과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스리랑카
스리랑카 불교는 상좌부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다. 서력 기원전 3세기에 마힌다 장로에 의해서 상좌부 불교가 소개된 이후, 21세기인 지금까지 상좌부의 계맥에 의한 법통과 전통이 단절됨 없이 계승되고 있다. 인도에서 출가한 마힌다 장로와 상가미타는 아소카 대왕의 자녀들로서, 스리랑카 최초의 비구, 비구니로 일컬어진다.

이 남매 출가승들은 상좌부 불교의 소개와 더불어 현재는 세계 최장수 보리수로 자라게 된 보리수 묘목을 부다가야에서 이식해 왔으며, 팔리삼장(Pali Tipitaka)의 구송 전통을 스리랑카에 들여왔다. 이후 구송으로만 전수되던 삼장(三藏)은 BC 30년에 상좌부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싱할라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대승불교 전통이 수용되기도 하였으나 오랜 기간 공존하다가 마침내는 상좌부 전통이 계승되게 되었다. 16세기 초부터 450여 년 동안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아 불교가 쇠퇴했으나 미얀마와 태국에 전해 줬던 상좌부 계맥을 이어 와서 스리랑카는 다시 상좌부의 전통을 확립했다. 18세기 이전에는 단일 승가였지만 태국과 미얀마로부터 계맥을 이어 온 관계로 지금은 태국에서 계맥을 이어 온 시암 니카야(Siam Nikaya)와 미얀마에서 이어 온 아마라푸라 니카야(Amarapura Nikaya)와 라만나 니카야(Ramanna Nikaya)로 나뉘어 있다. 이밖에 카스트의 배경을 가진 군소 종파들도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스리랑카불교와 한국불교의 만남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조계사 법당 앞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는데, 1930년 9월 14일에 봉안된 탑이다. 이 탑에 안치된 진신사리는 스리랑카의 고승 다르마팔라(1864~1933)가 1913년 8월 한국을 방문하여 기증한 것이다.

당시에 발행된 잡지 《불교》에 따르면, 한국불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었던 다르마팔라 스님은 방대한 승단과 불교도가 있는 한국불교를 보고 감명을 받아 자신이 지니고 다니던 사리 1과를 기증했다고 한다. 이 사리는 조계사 주불 왼쪽에 모셔 두었다가 17년이 지난 1930년에 탑을 세우고 봉안했다. 다르마팔라는 스리랑카 출신 스님으로 대각회를 창설해 인도불교 부흥에 헌신한 인물이다.

스리랑카와의 교류는 1970년대에 들어서서 이루어졌다. 1950년 5월 25일에 세계불교도우의회(WFB)가 콜롬보와 캔디에서 개최됐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국불교 대표단은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별반 교류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1970년 10월 10일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불교지도자대회’에 스리랑카 대표단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청담 스님의 후원 아래 범어사 주지를 역임한 능가 스님의 주도로 개최된 이 대회에는 대만의 백성(白聖) 대사를 비롯하여 베트남과 스리랑카, 태국 등지에서 온 상좌부 고승들이 상당수 참석했다. 이 대회를 계기로 2년 후에는 통도사에서 22명의 한국 스님들이 남방 상좌부 전계사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하는 행사가 열렸고, 황색 장삼과 가사를 수하는 스님들도 일부 생겨났다. 또한 조계종의 몇몇 스님들이 상좌부 불교권인 태국으로 수행 연수를 떠나기도 했다.

한국불교 대표단이 스리랑카를 방문한 것은 1972년이다. 당시 스리랑카는 제3세계 비동맹국가로 활동함으로써 우리나라와는 외교관계가 없었다. 이에 한국정부가 제3세계와의 외교관계 개선을 위해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 불교 대표단을 보낸 것이다. 당시 종정이던 서옹 스님이 이끌었던 불교 대표단의 방문은 한국과 스리랑카의 우호 교류에 물꼬를 트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에 힘입어 1972년에 통상대표부를 설치한 우리 정부는 1977년에는 대사관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청담 스님도 스리랑카불교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삼각산 도선사와 스리랑카 캔디 소재 불치사의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스리랑카와 한국불교의 본격적인 교류는 19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4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WFB 대회에, 한국불교 대표단이 참석하면서 활발한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서경보, 김경우, 서의현, 이진철 스님 등과 원불교를 대표한 박길진 총장과 전팔근 교수 등이 이 대회에 참석했으며, 김광태 현 법화종 총무원장, 김구산, 김철 교수와 양범수 불교신문 편집부장, 김기남 조계종 총무원 국제과장 등이 함께 참석하였다. 이후 조계종의 원명 스님 등이 스리랑카에 가서 잠시 남방 상좌부 불교를 연수하였고, 오병문 스님이 출가하기 전 대한항공 콜롬보지사에 근무하면서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를 공부했으며, 외국어대학 송위지 교수도 켈레니야 대학교에서 상좌부 연구와 팔리어를 수학했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는 일반 불교신도들이 스리랑카로 성지순례를 가기 시작하면서 교류의 폭이 확대되었다. 1980년대 초에 와지라 라마 사원의 시바리 스님이 수원의 작은 태고종 사찰에 와서 잠시 한국불교를 연수하고 간 적이 있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는 몇몇 스리랑카 스님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체류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스리랑카의 팔리불교대학교(Pali & Buddhist University)가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서 분교 형태로 문을 열어, 졸업생 다수를 배출한 바 있다.

이 학교는 오병문 스님이 주선하였고, 운영은 석가산 스님이, 마성 스님이 교무 업무를 본 바 있다. 지금은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한국분교가 부산의 동국불교전법대학에서 문을 열어 허성현 거사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태국 마하출라롱콘불교대학교와도 학술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1990년대 초에는 조계종 비구니 스님 몇 분이 스리랑카로 건너가 콜롬보에 한국 사찰을 열고 교민 불자들을 상대로 포교 활동을 하면서 팔리어와 상좌부 불교를 연수하였다. 이후 부산 영도 태종대에 소재한 태종사의 영공 스님이 상좌를 파견하여 지금까지 한국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원로인 영공 스님은 해인사 총무 소임을 본 1960년대 중, 후반부터 상좌부 가사를 수하고 다녔으며, 지금도 상좌부의 전통에 입각한 수행과 전법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상좌부의 전통에 따라 팔리어로 예불을 하면서 포교를 하는 태종사에는 스리랑카의 비구들이 상주하며 한국어와 한국불교를 연수하고 상좌부 불교를 전파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조계종뿐만 아니라 여러 종단에서도 나름의 채널을 가동하여 교류의 폭을 넓혀 왔다. 진각종은 스리랑카 출신 비구인 대오 스님(한국 법명)의 주선으로 콜롬보의 한 사원에 복지시설을 지어 주고 기술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성남 약사사도 패엽경 사원에 건물을 짓고 삼장 간행 및 역경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태고종의 스님들도 한국ㆍ스리랑카 불교협회를 결성하여 몇 차례 상호 방문하면서 교류 행사를 열었으나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조계종은 한국ㆍ스리랑카 문화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캄파 지방 파살라에서 고아원, 유치원, 종합관리사무소 등 각종 시설이 마련된 10동의 건물을 건립하여 조계종복지타운을 열었다. 8,000㎡ 부지에 들어선 이 현대식 종합복지센터는 고아 60여 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2단계 사업으로 2008년까지 한국전통사찰과 수행체험센터도 건립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편, 1990년부터 시작된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교와 한국불교대학, 동국불교전법대학 간 학문 결연으로 100여 명 이상의 한국 학생들이 학위를 받았다. 이에 따라 싱할라어와 팔리어에 능통한 졸업생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일부는 스리랑카 현지에 가서 팔리어와 상좌부불교 공부를 계속하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비구들도 한국을 찾아 한국불교를 연수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이 중 패엽경사원 출신의 난다나타라 스님은 동국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동남아 상좌부권 불교로서는 한국불교와 교류가 양적, 질적인 면에서 상당히 두텁게 쌓여 가고 있음을 볼 때,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류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2) 미얀마
미얀마는 중세 상좌부 불교의 전통인 승가와 불탑사원의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파간의 천불천탑(千佛千塔)은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파간 왕조의 여러 왕에 의해서 건립된 불탑사원들이다.

이 시기에는 상좌부 불교의 중심 역할을 했을 정도로 미얀마 불교가 흥성했었다. 외형적인 건축양식뿐 아니라 승단도 훌륭한 전통이 잘 계승, 발전되어 왔다. 인도 불전결집의 맥을 이어 삼장(三藏) 연구에도 아주 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남방 상좌부권에서는 가장 때가 덜 묻은 청정 승가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상좌부권 국가 중에서는 명상수행이 승속을 초월하여 가장 보편화되어 있어서 명상 인구가 많고 수행에 대한 의식이 높은 나라이다.

한국불교와는 1954년 12월 3일에서 17일까지 제3차 WFB가 양곤에서 개최됐을 때, 접촉할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 한국불교는 미얀마 대회에 참가할 여유가 없었다. 초청은 받았지만, 불교정화운동이 한창이었기에 겨를이 없었으리라.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우 찬 툰(U Chan Htoon)이 1958년부터 1963년까지 WFB 회장을 역임하고, 본부가 미얀마에 있었으나 1954년 대회를 끝으로 미얀마에서는 총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1956년 카트만두 대회와 1958년 방콕 대회 1961년 프놈펜 대회와 1964년 인도 사르나트 대회에 참석한 후에는 대표단도 참가하지 않고 있다. WFB 회장으로서 우 찬 툰의 최대 공적은 유엔 산하에 룸비니개발위원회를 설치하여, 룸비니 성역화 개발을 촉진한 것이었다.

미얀마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들에게 까다로운 비자 발급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켜 왔으며,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일행의 아웅산 묘지 참사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한국과 관계가 무척 소원해졌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관계가 개선되어 미얀마를 찾는 한국의 불자들이 차츰 늘어났다.

1990년 11월 19일 미얀마 반체제 학생들이 양곤행 타이항공을 납치한 사건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필자는 그 당시 타이항공 납치 피해자이기도 하다. 1991년에는 불교신문 양범수 편집국장과 필자(당시 WFB 한국본부 사무국장)가 미얀마의 양곤, 파간, 만달레이 등을 순례하고 《불교신문》에 소개하면서 미얀마 불교에 대한 인식과 성지순례 붐이 조성된 계기가 마련됐다. 일반 불자들의 미얀마 방문이 늘어났으며 비파사나 수행을 하는 한국의 스님들도 방문이 빈번해졌다. 특히 김열권 거사가 미얀마 비파사나를 소개하는 책을 저술하여, 한국의 불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명상에 권위 있는 미얀마의 고승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비파사나 관법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상당수의 한국 스님들과 불자들이 미얀마에서 명상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미얀마 비파사나 관법 수행을 지도하는 선원(禪院)이 여러 군데 있다. 또 한국에 와 있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미얀마 사원도 찾아볼 수 있다.

비파사나 명상 교류 외에도 혜은 스님이 미얀마와 교육 사업을 위한 교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10여 년간 미얀마에 머물면서 미얀마어와 팔리어에 능통하게 된 강종미 양은 팔리어 경전 등을 번역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금정산 일대에 명상센터를 건립하려던 범어사와 부산 금정구청은 미얀마의 명상법과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고자 2005년 미얀마를 방문한 바 있으며,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2007년 9월 미얀마 민주화 봉기를 계기로 미얀마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현지에 실사단 파견을 고려 중이다. 또 숫자는 많지 않지만 천태종 금강대학교 등에 유학하여 한국불교를 공부하는 미얀마 스님들도 있다.

3) 태국불교
동남아 상좌부 가운데서도 태국불교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에 익숙하다고 할 것이다. 1989년 외국여행 자유화 이전에도 동남아 여행은 태국이 주를 이루어서 태국불교와 태국의 스님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태국불교와 한국불교의 교류는 1960년대 중,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56년 제4차 WFB 네팔 대회를 다녀오면서 자연스럽게 태국을 경유하게 된 중진 스님들은, 상좌부 비구 승가에 호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인재양성 과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이유가 동기가 되어 범어사와 통도사의 스님 몇 분이 처음으로 태국에 연수를 떠났고, 이후로는 태국 방콕의 왕립사원인 와트 벤차마 보피트(일명 대리석 사원)에서 비구 연수를 하는 스님들도 생겨났다. 홍법, 승찬, 일타, 혜정, 무진장 스님 등이 1세대 태국 비구 연수승(僧)이고, 2세대로는 1970년대 거해 스님을 비롯하여 공철 스님, 김하우, 김구산 교수 등이 있다. 1980년대 초에 들어서는 제3세대라고 할 수 있는 필자(이치란)와 이진수(오스트리아 및 헝가리 평화탑사 주지) 등이 있다.

1, 2세대가 진보적인 종파인 마하니까야의 사원에서 수련한 반면, 3세대인 필자 등은 보수파인 담마유타니까야의 사원인 와트 보워니웨에서 현재 승왕인 쏨뎃 냐나삼와라 스님 문하에서 엄격한 율장에 따라 혹독한 수련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18세기 태국불교 개혁의 본산인 이 사원에는 태국 승왕이 주석하고 있으며, 외국 승려들이 주로 머무르면서 태국 상좌부 율장 연수와 특히 사마타 명상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도 거의 1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데, 한마음선원과 능인선원 지부가 교민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곳 마하출라롱콘 불교대학교에는 다수의 한국 학생이 유학하고 있으며, 매년 5월 개최되는 ‘웨삭데이’ 행사에는 조계종의 스님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WFB의 본부가 태국 방콕에 소재한 관계로 WFB 한국지부 관계자들이 자주 태국불교 행사나 회의 등에 참석하는 등, 동남아의 불교국가 중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인적 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2000년에 들어와서는 개인이나 단체 차원의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한국의 스님과 불자들이 매년 수차례씩 태국을 방문하여 상좌부 불교를 연수하고 있으며, 붓다 몬톤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등, 일일이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교류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세계 제1의 불교대학으로 일컬어지는 마하출라롱콘 불교대학교는 청도 운문사 비구니 승가대학과 정기적으로 상호방문을 시행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동국대학교와 학술교류 자매결연을 맺었다. 하지만 가장 실질적인 교류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10여 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부산의 동국불교전법대와 마하출라롱콘 불교대학교 간의 학술 자매결연으로, 현재까지 50여 명의 학사가 배출되었으며 10여 명의 대학원 과정 학생들이 태국 현지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마하출라롱콘 불교대학교의 총장을 비롯한 태국의 교수진도 해마다 수차례씩 부산을 방문하여 강의와 세미나와 판차실라 법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4) 라오스
 라오스는 동남아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지정학적으로 살펴보면, 사방이 꽉 닫힌 비좁은 공간에서 태국과 베트남과 캄보디아 미얀마의 사이에서 사면초가와 같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형국에 처해 있다. 바다가 없고, 모든 교통 통로는 태국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언어 역시도 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

게다가 현재 태국 동북부 영토는 옛날에는 라오스 영토이기도 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태국에 의존도가 심할 수밖에 없는 라오스의 불교 역시, 여러 면에서 태국의 불교와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종교의 독립성이 보장된 태국 승가와는 달리 라오스 불교는 정부의 통제를 엄격하게 받는 관제불교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는 외교 관계가 오랫동안 단절되었었기에, 양국의 불교 교류 또한 199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태국에서 비구 연수 생활을 할 때, 탐마야노(Thammayano) 라오스 승왕을 친견한 바 있다. 또한 198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 있는 라오스 사원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에는 태국 치앙마이 지역에서 활약했던 라오스 왕사 아잔 마하타완 문하에서 비파사나 수업을 받은 바도 있다. 프랑스에 라오스 이민 사회가 형성되어 라오스 사원 세 곳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1999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ABCP 이사회가 열렸을 때, 필자가 대표로 참석한 것이 아마도 한국불교계와 공식적인 첫 접촉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후에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맡고 있던 원택 스님 일행이 라오스를 방문하여 불교교류 문제를 협의하여 발표한 바 있으나, 현재까지는 한국불교와 공식적인 교류는 없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서 ‘지구촌 공생회’의 총재인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이 우물 파 주기와 유치원 지어 주기 등으로 라오스를 돕고 있다.

라오스는 아직 불교 활동이 대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교류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르며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자국에서 열린 ABCP 이사회 이외에는 라오스 불교 대표단을 외국에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6백만 인구 중 70%가 불교도인 불교국가이지만 그만큼 폐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5) 캄보디아
한국불교와 캄보디아 불교는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교류 사업으로는, 조계종 실천불교전국승가회(공동의장 효림, 성관 스님)가 2006년 앙코르와트가 소재한 시엠립(Siem Leap)에 ‘아름다운 세계, 캄보디아(BWC, Beautiful World of Cambodia)' 건물 준공식을 하고,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한 복지 사업을 꼽을 수 있다.

 캄보디아 정부와 협정을 맺어 추진한 BWC 사업은 캄보디아 측으로부터 총 50년간 무상으로 임대받은 시엠립의 약 4만㎡ 부지에 100여 명의 고아를 수용할 수 있는 보육원과 학년별로 30명 안팎인 6년제 초등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실천불교승가회는 중학교 건립 등도 순차적으로 추진하여 이 일대를 종합교육지구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인구 95% 이상이 불교도인 캄보디아는 현재 문맹률이 55%에 달하고, 20만 명 이상의 고아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교육 사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실천불교승가회는 2002년 이후 컴퓨터 100대와 다량의 생활필수품을 전달하는 등, 캄보디아 지원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실천불교승가회 측은 이 사업을 계기로 현지에서 한국불교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앙코르와트 부근 와트 라지보 사원과 2003년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삼각산 도선사는 2006년, 컴퓨터 30대를 비롯한 물품들을 기증한 바 있다. 2007년 5월에는 주지 뽄셈 스님을 초청하여 장기적인 교류 방안을 협의하는 등, 앞으로도 후원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구촌 공생회’의 총재인 월주 스님도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우물 파 주기 사업과 함께 초등학교 건물 보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캄보디아에 이미 1980년대부터 역경 불사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인구 1천3백만 명 가운데 대부분 인구가 불교도이며 역사적으로도 불교 강국이었던 캄보디아는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라는 세계적인 불교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캄보디아는 곧 옛 영화를 되찾으리라고 본다. 불교국가들의 지속적인 후원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6)베트남
동남아의 대부분 국가가 상좌부 전통을 따르고 있고, 특히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들 또한 상좌부 일색이다. 하지만 베트남 불교는 특이하게도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정토(淨土)와 선종(禪宗)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출가 승려들인 비구, 비구니들은 선을 수련하고 재가불자들은 정토 사상에 따른 신앙을 충실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호치민 시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투룩 람 총림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큰 선원이 있는 사원으로 선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선 불교 지도자 틱낫한(釋 一行) 선사도 베트남 출신일 정도로 베트남 선불교는 양적 질적인 면에서 역사적 뿌리가 깊다.

최근 베트남 불교는 급성장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이 설립한 반한 불교대학교는 재학생이 1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드물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비구, 비구니들은 이른 나이에 출가하여 대부분 불교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승려 신분을 유지하면서 교사, 교수, 의사, 변호사, 언론인으로도 사회참여를 활발하게 하며,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실력 있는 엘리트 스님들은 역경사업과 베트남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인구 8천7백만 명 가운데 92%가 불교도인데, 그중에서도 3백만 명은 교리와 계율을 비교적 철저하게 지키며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1천만 명은 정기법회에 빠지지 않으며, 3천만 명은 불교 행사에 수시로 참여할 정도로 베트남 불교는 왕성하게 발전하고 있다.

사회와 함께하는 불교를 표방하는 것이 베트남 불교의 특징이다. 사원에서 학교와 고아원, 의료 장애인을 위한 시설 등을 운영하며, 스님들과 함께 재가불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불교청소년협회인 지아 딘 팟 투(Gia Dinh Phat Tu, 부처님 자녀들의 가족)은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와 유사한 청소년 조직으로 유명하다.

비구와 비구니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오히려 비구니들이 활동을 더 활발하다고 할 수도 있다. 대승불교가 주류이지만, 상좌부 사원도 100여 개나 되는 베트남 불교는 1980년부터 진행 중인 팔리 경전과 대승불전 역경사업도 눈길을 끈다.

한국불교와 베트남 불교의 교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한국군이 베트남이 불교국가인 점을 고려해 한월(韓越) 교류의 첨병으로 군법사를 파견한 것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파견된 군법사들은 베트남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친선을 도모했다.

전쟁이 끝난 뒤 단절되었던 양국 불교가 교류를 재개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월남전 때 군종병으로 참가했던 은해사 주지 법타 스님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교류를 모색하였는데, 사찰과 지인을 통하여 접촉을 시도했지만 아직은 뚜렷한 교류 주체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2007년 9월 대만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만난 반한 불교대학교 부총장의 말에 따르면, 한국 교민이 증가하고 있어서 한국 교회는 설립되어 있으나 한국 사찰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

한국 불자들의 베트남에 대한 인식도 캄보디아 가는 길에 관광차 잠시 거쳐 가는 길목 정도일 따름이다. 베트남뿐 아니라 교민이 거주하는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 한국교회는 여러 곳이 있으나, 한국 사찰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 앞으로 가장 활발하게 불교가 융성할 국가는 베트남이라고 생각된다. 작금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불교 또한 급성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08년 5월에 ‘웨삭데이’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한 바 있는 베트남 불교계는, 2010년에도 대규모의 웨삭데이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미 국제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 회의를 가질 정도로 기민성과 역동성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불교와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어 가사와 법복도 동일한 색으로 통일할 정도이다.)

7)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가 자리를 잡고 있는 인도의 벵골 지역은 역사적으로 어느 곳보다 후기 대승불교가 강성했던 지역이다. 그래서 인도 대륙에서는 불교가 쇠퇴하여 사라졌던 12세기경까지도 이 지역에는 사회‧문화적으로 불교가 왕성하게 살아 있었다. 결국 종교 문제로 인도와 분리되고 말았지만, 원래는 캘커타 지역의 서벵골과 같은 문화권이었던 방글라데시는 신비주의와 비밀주의가 섞여 있지만, 순수밀교가 압도적인 밀교의 본고장이었다.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불교교류는 1990년경이다. 조계종의 장이두 스님을 단장으로 하여 천마산 보광사의 화담 스님과 필자 등 10여 명이 치타공을 방문하여 치타공 불교협회의 비키란 바루아 박사와 만남을 가진 것이 최초이다. 담마 빌리지(佛法 마을) 기공식을 하고, 이 지역의 사원과 고아원 등에 후원을 하였으며, 이후에도 세 차례 정도 더 지원을 하였으나 경제적 여건 때문에 더 이상 교류가 진전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방글라데시 출신 스님이 조계종에서 연수를 하는 등,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찰이나 개인 단위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계종 총무국장을 역임한 흑석사 주지 기연 스님이 한국에 와 있는 방글라데시 비구들을 돕고 있다.

방글라데시에 대한 '좋은 벗들' '불교자원봉사연합회'의 구호활동과 자원봉사, 지원사업도 갈수록 활기를 띠고 있으며, 가장 왕성하게 국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JTS'는 의료·건축·농업·기술 분야의 국제 NGO, 자원봉사단 등을 활용해 인도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 대한 개발 구호사업을 확대해 사업장을 갖출 계획이라고 전해진다.

8)인도네시아
세계 네 번째로 많은 2억 3천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이슬람국가임에도 인도네시아의 불교 역사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다. 당나라 구법승 의정(義淨)은 인도 순례 길에 수마트라를 방문했으며, 인도 나란다의 석학으로 유명한 다르마팔라(Dharmapala) 교수와 남인도의 석학 바즈라보디(Vajrabodhi)가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를 방문하여 불법을 전파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한때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 다음으로 큰 종교였던 만큼, 아직도 많은 불교 유적이 남아 있다.

한국불교와의 교류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와 세계불교승가회를 통해서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의 불자들이 간간이 보로부두르를 찾고 있을 뿐, 아직까지 뚜렷한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9)말레이시아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인구의 53%를 차지하는 말레이족은 거의 이슬람교도이며 인도계는 힌두교를 신봉한다. 말레이시아에서 불교를 믿는 주요 민족집단은 중국계와 상좌부 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말레이시안 싱할라족과 타이족이다.

말레이시아의 페낭 섬은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셀렝고르와 보르네오에도 불교문화가 적지 않게 산재해 있다. 쿠알라룸푸르에는 스리랑카 출신의 고승, 스리 담마난다 장로가 대승불교나 상좌부 불교를 가릴 것 없이 큰 영향을 끼쳤다.

말레이시아에는 유명한 불교 웹사이트인 ‘부디스트 채널(WWW.The Buddhist Channel)’이 운영되고 있어, 영어권 불교도들에게 ‘세계의 불교 뉴스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는데, 특히 동남아 지역에 대한 불교 뉴스와 정보에 관하여 정평이 나 있다.

상좌부 대승 바즈라야나가 참여한 말레이시아불교협회는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불교계가 함께 힘을 모아 ‘웨삭데이’ 행사를 봉행하고 있으며, 불교전법협회는 청소년 포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불교와 말레이시아 불교계는 WFB 활동을 통해서 유대를 맺어 왔다. 2002년에 WFB 대회가 셀렝고르에서 개최됐으며, 페낭에서도 세계불교행사가 개최되어 그때마다 한국 대표들이 참가하여 말레이시아 불교계와 교류를 강화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렇다 할 한국 사찰은 찾아볼 수 없으며, 앞으로 교민들의 불자 인구가 늘어나면 한국 사찰이 건립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정도이다.

10)싱가포르
경제적으로 매우 발전된 세계적인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460만 명을 넘어선 인구 중, 61%가 불교도이다. 중국계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싱할라족과 타이족의 상좌부 불교, 티베트 불교를 모두 아우르는 싱가포르불교연맹이 조직되어 종파를 초월한 신행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불교에 도교적 요소가 다소 혼합된 양상을 띠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한국 교민이 4천 명가량 살고 있으나, 아직은 뚜렷한 한국 사찰은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중반, 원명 스님이 이곳에 거점을 마련하여 포교 활동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계승되지 못한 상태이다.

11)필리핀
필리핀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7세기경으로, 태국 남부와 말레이시아 지역에 걸쳐 강대한 불교제국을 형성했던 스리비자야 제국(Buddhist Srivijaya Empire) 시대의 일이다. 13세기에 이르기까지 팔렘방 수마트라에 불교가 광범위하게 전파될 무렵 불교제국의 힘이 필리핀까지 미쳤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중국이나 인도 상인들이 불교를 전해 왔으며, 14세기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이주해 오면서 그들의 불교가 함께 들어왔다. 7세기 불상과 불교 미술품들도 발굴되고 있어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현재 필리핀의 종교 현황은 로만 가톨릭이 83%, 기독교 9%, 회교 5%, 기타 3%인데, 불교는 이 기타에 속하여, 인구 9천만 중 3백만 명 정도를 넘지 않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다. 중국계의 대승불교와 필리핀계, 베트남 난민 등의 남방불교, 일본불교 창가학회(SGI)와 태국 스리랑카의 상좌부와 티베트 불교까지 열거할 수 있을 정도로 필리핀 불교계는 다양하다.

하지만, 한국불교와는 아직 공식적인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경주 불국사가 필리핀 포교원(주지 법관)을 설립하고 대표적인 빈민촌인 피나투보 지역에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펼친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3. 맺는 말

한국불교가 공식적으로 동남아불교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세계불교도우의회(WFB)를 통해서다. 1955년 WFB에 가입하여 1956년 대회부터 대표단이 참석하면서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계속해서 조계종을 중심으로 스님들이 WFB 대회에 참석했다. 1970년 10월 10일 한국에서 ‘세계불교지도자대회’를 개최한 이후에는 WFB 관련 행사를 전국신도회(조계종 중앙신도회 전신)에 이관하여 스님과 재가 불교지도자들이 함께 대회에 참석하였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70년대부터 한국의 스님과 지도급 재가불자들이 동남아불교를 연수할 목적으로 태국을 왕래했지만, 그 숫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수에 불과했다. 외국여행 자유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부터 사실상 동남아불교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예전과 비교해 본다면 교류의 폭이 상당히 넓어졌지만, 질적인 면에서의 교류는 이제 시작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동남아 불교에 대한 외형적인 인식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또 어떤 면에서는 교류의 기초는 닦아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 상좌부권에서 보는 한국불교의 실상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아직 초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남아 불교권의 한국불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 한국불교에는 여러 종단이 있으며 대표 종단이 조계종이라는 것, 또한 승려도 비구와 대처가 공존한다는 사실까지는 이해할 정도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동남아불교의 인식과 이해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 특히 동남아 상좌부의 3대 불교국인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는 불교와 비구들의 위상이 한국불교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민족지성을 대변하고 여론을 주도하며 국가와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계와 비구들은 각 나라의 교육과 사회봉사활동, 복지시설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구들은 그 나라의 국민에게서 가장 존경받는 대상이다.

동남아 상좌부의 3대 불교국가 외에도 라오스, 캄보디아가 상좌부 불교의 옛 모습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불교는 경제적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소수 종교로서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도 견뎌내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도 소수 종교이긴 하나 화교 중심의 불교이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은 느끼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교세 확장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이지만, 국민의 44%가 불교 인구이다. 또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동남아 불교권과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말레이시아 불교는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훨씬 더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중국계 대승불교와 상좌부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불교와 베트남 불교는 양과 질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남아불교를 제대로 인식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성지순례 차원의 방문도 중요하고 경제적 후원에 의한 교육 복지시설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류는 인적 교류에 의한 생각의 나눔이다.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의 불교에 대한 인식의 격차는 너무 벌어져 있다. 상좌부는 불타의 가르침과 승가 공동체의 전통이 2천5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동남아불교와 교류를 추진할 때 전제해야 할 점은 남방불교에 대한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강압이나 주입식 교류는 남방 상좌부로 하여금, 삼학(三學)을 구족한 율장(律藏)에 근거한 파티목카(Patimokkha)를 내세워 ‘대승비불설’을 내세우는 방어적 대응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고 정보통신 강국이지만 불교학 수준까지도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세계적인 석학과 선지식이 출현하려면 교학 연마와 수행 체계에 변화가 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동남아불교는 우리의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이치란 
몽골 국립대학교 종교학과 철학박사학위(Ph.D.) 영국 케임브리지대 통번역 과정 수료. 태국 스리랑카 인도에서 남방불교연수. 미국 Lotus University-America Buddhist College 부총장 겸 외국어 아카데미 원장. 현재 해동영한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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