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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편향, 더 이상은 안 된다 / 황순일
황순일 / 본지 편집위원
[36호] 2008년 10월 10일 (금) 황순일 본지 편집위원

   

황순일 
본지 편집위원

요즘 불교계가 많이 어수선하다. 편향, 폄훼 등과 같은 전혀 불교적이지 않은 용어들이 사찰의 현수막과 교계신문의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편향이란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의미이고 폄훼란 깎아내려 헐뜯는다는 의미이다. 불교는 예로부터 어떠한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지향해 왔으며, 남을 깎아내리고 헐뜯는 행동을 열 가지 그릇된 행위(惡業, akuśala karmapatha)에 포함시켜 경계해 왔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떠나가기 위한 종교로서 시작되었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많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침묵해 온 전통이 있다. 한국불교 또한 재가신도를 포함한 전체 불교인들을 위한 종교라기보다는 출가 스님들을 중심으로 하는 한정된 종교라는 인상을 남겨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우리가 속한 사회로부터 어떻게 효과적으로 떠나갈 것인가를 중심으로 가치관을 형성해 왔으며,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첨예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목표와 방향성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보여 왔다.

하지만 오늘날 불교에 호감을 가지는 현대인들은 더 이상 불교를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떠나가기 위한 종교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교의 자비와 평화 정신 그리고 명상 등을 통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좀 더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종교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불교의 이러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자기발전은 불교가 기존의 방황과 사회적 고립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사회와 소통하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현 정부의 종교편향과 불교 폄훼는 사분오열되었던 여러 불교종단과 조계종단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불교가 출세간의 고고한 이상으로부터 복잡다단한 세간의 현실로 내려오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불교적 수행에서는 시비를 초월해야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며, 사회 모든 부분에서 차별이 없어져야만 한다는 주장들에서 변화하는 한국불교의 새로운 힘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규탄, 투쟁, 종식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 불교적인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불교가 한 번쯤은 기존의 타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회에 올바로 잡아야 할 것들을 요구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200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불교, 개신교, 천주교 인구는 각각 22.8%, 18.3%, 10.8%이다. 비록 지역적인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다종교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혹독한 동서의 지역갈등과 치열한 좌우의 이념대립을 겪어 왔다. 그리고 현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극심한 종교적 갈등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갈등의 중심에는 서울시장 시절부터 자신의 종교적 색채를 숨기지 않아 왔던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현 정부의 인사정책을 꼬집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기독교적 편향이 너무 심하다. 이러한 대통령의 종교편향적 경향을 의식해 정부 부처의 관료들이 마치 종교코드 맞추기 경쟁이라도 벌리는 듯 행동하면서 사태를 자꾸 나쁜 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종교편향 방지 범정부 회의체를 구성하고 공직자 종교편향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이 해결될 가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회의체를 구성하고 법안을 만드는 구태의연한 요식행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청와대와 대통령은 보란 듯이 국가원수 간의 공식 오찬에 목사나 초청하는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54%가 현 정부의 종교편향성을 지적하고 불교계가 정부의 종교차별 금지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시점에서 청와대에 포진한 종교 인맥과 대통령이 특정 종교를 선호하는 듯한 처신들을 계속한다면 일선 공직자들의 머릿속에 도대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겠는가! 시 예산의 1%를 성시화(聖市化) 운동에 사용하려다 고역을 치른 끝에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 임명된 전 포항시장과 조찬기도회 참석 강연 후 감사원장에 임명된 전 대법관이 스쳐 지나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경찰청장이란 사람은 경찰복음화 광고 포스터에 등장하고, 어느 구청장은 특정종교 일색으로 대학생 멘토링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또 어떤 학교 교장은 불교 문화재를 땅에 묻으려 했고, 급기야는 일개 경찰공무원에 의해 불교계의 수장이 검문당하는 황당한 사건들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일련의 이런 사건을 보는 불교도들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관용과 인내를 미덕으로 삼으라고 가르쳐 온 것이 불교이고, 그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애써 온 것이 불교도들이다. 불교의 이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둔 것은 세속을 통치하는 권력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원후 1세기경 카니시카왕 치하의 쿠샨왕조에서 불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었다.

당시 쿠샨왕조는 로마와 중국을 연결하는 무역 루트를 장악하고 있었고, 대대적으로 금화를 발행하여 자신들의 힘을 사방에 과시했다. 카니시카왕이 발행한 금화의 뒷면에는 그리스의 신 아네모스, 이란의 신 미트라, 인도의 신 시바 등이 여러 종교의 신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카니시카왕의 치하에서 쿠샨이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된 배경에는 다민족 다종교 사회를 차별 없이 공평하게 통치하려고 했던 왕의 숨은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와는 반대되는 일도 수없이 많았다. 불교의 역사에서 수난이 일어난 것은 왕권의 박해 때문인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해 가던 10세기 전후의 사정이 좋은 예다. 인도를 침입한 이슬람은 과격한 폭력으로 불교의 승려와 사찰을 박해했다. 중국에서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이 일어나 사찰이 무너지고 승려들이 환속 당한 사태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혹독했다. 조선왕조 5백 년은 숭유억불의 정책에 의해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불교의 포용과 인내의 가르침이 종교나 이념에 의해 번번이 배반당하게 될 때 법륜(法輪)은 그 수레바퀴를 멈추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오늘의 불교도에게 하나의 교훈이 되고 있다. 매우 세속적인 발상이지만 ‘법 앞에서 잠자는 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라는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사소한 일’일 수도 있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불교도의 도량이 협소해서가 아니라 이교도들의 편향과 폄훼가 지나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불교는 ‘땅 끝까지 선교’나 ‘코란이 아니면 칼’을 내세우는 일부 광신적 이교도들과는 심성 자체가 분명히 다르다.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일반 세속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겨도 그저 견인불발의 인내를 보여 온 것이 불교도들이다. 그러나 그 인내도 이제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 하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사태가 도래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여러 소수 종교와 함께 공존하면서 종교 간의 평화를 유지해 온 나라이다. 이러한 평화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에 의한 종교차별이 결코 없어야 한다. 물론 불교계가 제기한 종교편향 사례들 중에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공직자들의 대통령을 의식한 의도적 종교코드 맞추기가 만연한 시점에서 이들의 과잉충성과 타종교 폄훼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하나뿐인 듯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직자들의 종교편향적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이를 대통령 스스로부터 먼저 실천하는 것이다.

불교계는 8월 27일 범불교도대회를 통해서 현 정부의 종교편향과 불교 폄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고 있다. 한국불교가 역사적으로 호국불교의 전통에 입각하여 집권층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호국불교란 전체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는 것으로서 집권층에 대한 무차별적 옹호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교도들이 생각이다. 종교편향과 타종교 폄훼의 근절을 통해서 진정한 국민통합으로 나가야 한다는 불교의 목소리를 정권의 담당자들은 겸허하게 경청해야 할 것이다.

종교편향과 타종교 폄훼, 정말로 더 이상은 안 된다.

황순일 /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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