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균 전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편집자 주
 이 논문은 계간 불교평론(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향회 발행)이 후원한 불교심리학회 학술회(2008년 5월 24일 조계종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발표된 것임.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그 출발부터 심리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증상들을 가진 사람들을 돕기 위한 학문 분야이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4법인이나 4홍서원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을 괴로움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필자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유학, 노장사상, 불교사상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던바, 상담이나 치료의 이론적 내지 실제적 측면에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불교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느낌은 불교가 다른 어떤 동양의 종교나 사상보다도 인간의 내적 심리과정과 그것의 수련방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불교와 상담을 비교하는 글들(1970, 1978, 1982a, 1982b, 1986, 1991, 1998, 1999)을 발표하였지만, 대체로 알음알이뿐인 관념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기론이 심리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벗어나는 데에 극히 유용할 수 있다는 체험은 1997년 여름의 한 내담자와의 만남에서이다. 당시 필자는 “일체 유위의 법은 꿈이나 허깨비나 물거품이나 그림자와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라든지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닌 줄 보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표현의 뜻을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에 대한 지각과 생각은 공상이다”라고 이해하고 이것을 심리적인 문제의 이해와 그것으로부터의 탈피에 활용해보고자 하고 있었다. 즉 내담자의 문제는 그 스스로 그렇게 지각하고 생각하는 공상일 뿐 사실이 아니며 이것을 내담자가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 상담이요 치료라는 관점을 가지고 상담을 하고자 하였다. 이런 필자의 관점이 타당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내담자는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이 내담자와의 상담내용(윤호균, 1998, pp.39~40; 1999, pp.367~368 참조)을 간략히 소개한다. 그는 대학 입학 후부터 대형 강의실, 큰 식당, 도서관, 시장, 붐비는 거리나 백화점에 가길 두려워했고 전철을 타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는 형제 중 둘째이며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인상은 많이 어두웠다. 아버지가 데리고 왔으며 그 학생의 문제를 자세히 얘기하며 걱정하였다.

아버지를 상담실 밖으로 내보낸 뒤 학생과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그의 형은 소위 일류 대학에 재학하고 있어 형제 경쟁을 의심할 만하였으나 필자는 그의 어린 시절이나 과거를 자세히 다루거나 그의 대인관계나 증상 등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지도 않았다. 필자는 그의 문제 중 하나인 전철 타는 것에서의 어려움을 다루었다. 즉 그가 전철을 탈 때의 내적 반응의 연쇄과정을 탐색하였다. 이런 탐색을 통해 그의 전철 탑승의 문제가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공상에서 비롯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철을 탄다 - 여러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있다 - 창피하다, 전철에서 내리고 싶다-가슴이 뛰고 답답해진다-얼굴이 붉어져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다-이런 증상 및 생각들이 의식된다-증상들이 증폭되고 더욱 두려워진다.’

필자는 이런 일련의 연쇄반응들이 사실인지 그 자신의 생각인지를 내담자와 함께 검토하였다.
예컨대, ‘전철을 타면 여러 사람들이 쳐다본다’에서 얼마나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에서 쳐다보는 것이 꼭 무시하는 것인지, ‘무시받는다 생각하면 창피하고 전철에서 내리고 싶다’에서 무시받는 경우엔 항상 창피를 느끼고 전철에서 내려야 하는지 등을 하나씩 검토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그런 지각과 생각이 진정 사실에 터한 것인지 자신의 상상을 투사한 것은 아닌지를 함께 생각하고 검토하였다. 그는 이런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 하였으며 자기가 얼마나 많은 공상을 사실처럼 여겨 괴로워하게 되었는지를 자각하게 되었다.

이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서 필자는 소위 심리적인 문제나 괴로움은 공상을 공상인 줄 모르고 현실로 착각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데서 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이 공상은 주어진 사실들 및 이것들과 관련된 기억들이나 관념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생긴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그 결과 공상이 생겨나고 이 공상에 집착함으로써 심리적인 괴로움을 느끼는 과정을 연기론이 아주 적절하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게 되었다.

존재와 현상 일반은 그 자체로서의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관계의 흐름임을 연기론은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

이 연기론은 우리 자신과 세계 그리고 사건과 사물이 각각 고유하고 절대적인 어떤 특성이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가 조건이 되어 주고 상대가 되어 줌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무상하고 무아인 것임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옳음과 그름, 선함과 악함, 밝음과 어둠, 원인과 결과, 생성과 소멸, 풍요와 빈곤 그 어느 것도 그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위 문제라는 것도 정상을 설정함으로써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

다음으로 12연기론은 인간의 괴로움, 문제가 나타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무명(無明)이 행(行)을 초래하고 (진리에 대한 무지가 있어 무지의 작용이 일어나고)
  • 행이 식(識)을 초래하고 (무지의 작용이 있어서 마음의 움직임을 불러오고) 
  • 식이 명색(名色)을 초래하고 (마음의 움직임이 있어서 정신적 물질적 대상을 초래하고) 
  • 명색이 육입(六入)을 초래하고 (정신적 물질적 대상이 감각기관 및 의식을 자극하고) 
  • 육입이 촉(觸)을 초래하고 (감각기관 및 의식의 자극이 정신적 물질적 대상과의 접촉을 초래하고) 
  • 촉이 수(受)를 초래하고 (정신적 물질적 대상과의 접촉이 감각적 느낌을 초래하고) 
  • 수가 애(愛)를 초래하고 (감각적 느낌이 좋고 싫음의 감정을 초래하고) 
  • 애가 취(取)를 초래하고 (좋고 싫음의 감정이 접근 또는 회피하려는 집착을 초래하고) 
  • 취가 유(有)를 초래하고 (접근 또는 회피하려는 집착이 그에 따른 행동을 초래하고) 
  • 유가 생(生)을 초래하고 (접근 또는 회피하는 행동이 삶의 모습을 초래하고) 
  • 생이 노사(老死)를 초래한다 (삶의 모습이 삶의 문제를 초래한다.)

이상의 12연기론은 감각과 알음알이의 세계, 모습의 세계, 생멸의 세계, 유위(有爲)와 유심(有心)의 세계 속에서 개인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괴로움에 이르게 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12연기론은 무명(無明)이 원인이 되어 행(行)을 일으켜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라는 결과가 초래되고, 다시 수를 토대로 하여 애(愛)와 취(取)가 나타나고 이 애와 취가 원인이 되어 유(有)를 일으켜 삶에서의 갖가지 괴로움을 겪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보고자 한다.

무명과 행 : 생물학적 조건들이나 경험요소들이 생성되고 소멸해가는 사건들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존재와 현상을 그 자체로서의 고유한 모습이나 특성을 지닌 존재와 현상으로 실체화하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나타낸다. 이 과정에서 ‘자기’와 ‘자기 아닌 것’, 존재와 존재 아닌 것, 주체와 대상 등의 분화가 이루어진다.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 경험이나 학습내용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명색·육입·촉·수 : 자기와 세계 또는 존재와 현상들이 현재의 의식상에서 감각 및 지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식에서 촉까지는 감각적 또는 직관적 자료들이 감각기관 등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의식에 떠올라 감각을 구성하는 과정이며, 수는 그 감각을 토대로 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색채를 첨가하여 구성한 자기와 세계에 대한 지각 혹은 느낌이다.

애·취 : 현재의 지각 혹은 느낌 속에 등장한 각종의 존재와 현상에 대하여 좋아함과 싫어함, 사랑함과 미워함 등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도를 개입시켜 그것에 접근하려 하거나 멀리하려 하는 감정적 또는 동기적 반응을 나타낸다.

유 : 현재의 감정이나 동기에 따른 생각, 말, 행동을 나타낸다.

생·노사 : 현재의 생각, 말, 행동이 초래하는 심리적, 신체적 결과를 뜻한다. 생·노·병·사나 각종 심리적 즐거움이나 괴로움을 뜻한다.

결국, 12연기론에 의하면 각종의 심리적, 신체적 괴로움의 근본원인은 모든 존재와 현상은 여러 요소들이 뭉쳐지고 헤어지는 사건들의 일시적 상태임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변하지 않는 특성과 모습을 가진 실체로 여기는 무명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와 현상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등의 감정을 내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그런 감정에 따른 생각이나 말 또는 행동을 함으로써 인간의 각종 괴로움,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필자의 의문은 12연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단선적인 인과관계의 연속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의문과 관련하여 느낌 또는 지각〔受〕에서 아무런 매개요인 없이 좋아하고 싫어함〔愛〕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잠시 뒤에 다시 하겠다.

온마음 상담에서는 개인의 지각, 생각, 감정, 의도 등의 경험은 경험자가 자신을 개입시켜 주관적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모든 경험은 주어지는 감각적, 직관적 사실과 개인의 인식체계(변별평가체계)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자기 자신의 신체를 포함해서 모든 경험 대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 자체가 직접 우리의 의식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경험이 구성되는 과정을 <그림 1>과 같은 흐름으로 표현한 바 있다(1999).

대상(對象)엔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물론 자신의 신체도 포함되는데 이 대상은 유기체적 경험을 일으키고 이 유기체적 경험은 변별평가체계와의 상호작용을 거쳐 현상적 경험이 된다. 여기에서 유기체적 경험(有機體的 經驗)은 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에 대한 유기체로서의 심신의 즉각적이고 자연발생적이고 총체적이며 직접적인 반응이다. 이 유기체적 경험은 경험자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관념 등이 덜 개재된 비교적 순수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 유기체적 경험은 바로 그대로 의식할 수 있는 지각, 생각, 감정 및 의도인 현상적 경험(現象的 經驗)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기체적 경험의 일부는 곧바로 현상적 경험으로 의식되지만, 다른 부분은 경험자 나름의 변별과 평가를 거쳐 변형되어 의식되거나 완전히 의식에서 배제된다. 현상적 경험은 말하자면 자신과 세계 또는 존재와 현상에 대해 경험자 자신이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삶의 세계 그 자체이며, 그의 특정한 과거 경험이나 그의 기존의 관념이나 지식 또는 기대에 맞추어 변형되고 편집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변형과 편집 또는 배제 때문에 현상적 경험은 유기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자 스스로 자기 나름대로 가공하고 채색하고 편집하여 재구성한 자기중심적으로 창조된 경험이라는 점에서 공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고, 관련된 생각, 감정, 지각을 불러일으키며 어느 기간 지속될 수도 있으며, 의도에 따른 말이나 행동 또는 신체 반응으로 표현(表現)될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그것은 그 나름의 결과를 초래하여 그 사람의 삶의 모습과 색깔을 좌우할 것이다.

유기체적 경험이 현상적 경험이 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변별평가체계야말로 개인의 삶, 즉 그 자신과 세계에 대한 그의 주관적 경험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과거 경험, 기존 관념, 지식, 기대 등은 현재 그가 접촉하고 경험하는 자신과 세계, 존재와 현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런 과거 경험이나 관념에 어울리게 변형하고 채색하고 편집한다.

이 변별평가체계는 그의 세계와 삶을 자기중심적으로 보도록 만드는 일종의 안경이다. 이 체계는 사건의 연속으로서의 순간순간의 새로운 삶의 경험을 고정된 실체로 박제화한다. 그 결과 예컨대 한때의 실수는 한때의 실수로 지나간 것이 되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있는 실수가 되며, 어떤 상황에서의 우월의식은 그 상황에서 끝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의 우월의식으로 고정된다. 이처럼 고정된 실체로 만드는 기제가 동일시(同一視)이다.

동일시는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에서도 기대하는 것을 말한다. 어렸을 때의 개구쟁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개구쟁이일 것으로 보는 것처럼 한때의 모습을 다른 때에도 기대한다. 어느 상황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 자체가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일부의 모습을 가지고 그의 전체적 혹은 본질적인 모습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동일시는 어떤 존재나 현상에 대한 경험을 과거 경험이나 기존 관념 또는 지식 등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규정짓고 고정된 실체로 여기게 함으로써 그 존재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동일시 경향은 개인의 자기 존재가 자극받는다든지 그의 중요한 바람이나 두려움이 자극받을 때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상에서 필자는 존재와 현상에 대한 경험과 관련하여 연기론의 설명과 온마음 상담의 견해를 간략히 살폈다. 연기론과 온마음 상담은 지각이나 생각 또는 감정 등 어떤 경험이든 그것은 그 자체로서 실체성을 지닌 고정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들 또는 요소들이 이합집산하거나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나는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사건 또는 흐름이라고 보는 점에서 일치한다.

어떤 존재나 현상을 고정적인 실체로 보이는 것은 사실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자신의 무지 무명 때문에, 또는 그의 인식체계의 투사를 통해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개인이 경험하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 자체라기보다 그가 만들어낸 공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경험이 끊임없이 변하고 실체가 없다고 보는 점에서는 연기론과 온마음 상담이 일치되지만 경험의 전개 과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12연기론에서는 무명(無明)에서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단선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경험의 구성과정을 단선적 연결이 아닌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12연기의 순관(順觀)에서처럼 아무런 매개작용도 거치지 않고 한 과정에서 다음 과정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예컨대, 어떻게 아무런 다른 요인의 개입도 없이 감각〔觸〕에서 느낌 또는 지각〔受〕으로, 그리고 느낌 또는 지각에서 애착 또는 혐오〔愛〕로 넘어갈 수 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그러한 이행과정에 무명의 영향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내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하자. 그 때 들리는 소리 자체〔촉〕는 특별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즐거운 소리로 느낀다〔수〕 하더라도 그 순간 그렇게 느낄 뿐 그 소리에 애착을 느낀다든지〔애〕, 더 나아가서 그 소리에 대한 집착〔취〕을 갖는 상태에 이를 이유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무명이 영향을 준다고 가정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소리는 과거에도 즐거웠듯이 현재에도 즐거운 것으로 느껴질 것〔수〕이며, 좋아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애〕이며, 그 좋아하는 소리를 소유하고 싶어질 것〔취〕이다. 왜냐하면 그 소리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변함없는 실체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이연기론의 근본 뜻이 과연 단선적일까? 필자는 그러한 단선적 표현은 당시의 경전암송을 통한 진리의 전파 방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단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십이연기론은 무명(無明)의 작동〔行〕으로 말미암아 의식〔識〕이 자신과 세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지각(受〕한다고 봄에 비해, 필자는 자신〔有機體〕과 세계〔對象〕 자체는 당연히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달리 말해, 연기론에서는 마음이 개인 자신과 세계를 현실적인 실체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의 발단이라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상담이나 치료 접근법들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세계의 현실적인 실체성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보고 그 자신과 세계를 의식 상에서 어떻게 보고 느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십이연기론과 온마음 상담의 세계 인식과 목표에서의 차이에 기인한다. 연기론은 개인과 세계 자체의 초월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겨 수행자로 하여금 그러한 세계에로 초월할 것을 목표한다. 그러나 상담이나 치료는 내담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리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 현실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 심리적인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한 연기론과 온마음 상담에서의 설명을 살펴보기로 한다.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나 괴로움은 자기중심적이고 끈질긴 생각과 감정에서 온다. 그의 생각, 감정, 지각, 욕구 등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나 세계를 반영하기보다 자신의 과거 경험, 기존 관념, 지식 등에 의해 크게 채색되고 왜곡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 생각, 감정 등이 사실과 다르다든지 다를 가능성이 제기되더라도 그 경험을 검토하고 규명해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정당성을 고집한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지각, 생각, 감정 등에 묶이고 예속될 때 그는 그런 생각이나 감정의 노예가 되는 셈이다.

연기론에 의하면, 인간의 문제나 괴로움은 갈애〔愛〕와 집착〔取〕에서 생긴다. 즉 어떤 존재나 현상을 과도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에 빠져들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될 때 심리적인 문제 또는 괴로움이 일어난다. 갈애는 감각적 만족, 인정, 소유나 성취, 권력 등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또는 그 반대의 상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집착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추구하는 것 또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회피하려 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며 그런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넘어 그 애착이나 미움에 사로잡히거나 그대로 밖으로 드러내어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이르면 그 결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고통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갈애 자체보다 감정이나 생각이 거기에 묶인 상태, 즉 집착이 심리적인 문제나 부적응을 초래한다.

십이연기론에 따르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집착은 갈애에 의해, 갈애는 느낌 혹은 지각〔受〕에 의해 유발되고 조건지어진다. 갈애를 촉발하는 지각 혹은 느낌은 무심한 상태 가운데서 무지〔무명〕로 말미암아 심리적인 자극〔명〕 또는 신체적 생리적 자극〔색〕이 감관〔육입〕을 통해 의식〔식〕 위에서 감각〔촉〕됨으로써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지각은 감관〔根〕, 대상〔境〕, 의식〔識〕이 서로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접촉을 거치지 않은 지각이나 느낌은 직관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환각이거나 공상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 세상이나 사건 등은 지각되지 않으면 아무런 감정과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지각을 거치지 않은 생각이나 감정은 구체적인 사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공상이나 환각에 터한 헛 생각, 헛 감정이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헛 생각, 헛 감정을 마치 현실적인 감정이나 생각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고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소위 내담자나 환자들은 이러한 정도가 좀 더 심하기 때문에 적응상의 문제나 곤란에 부딪힌다. 반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은 그러한 헛 생각이나 헛 감정을 헛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헛된 갈애와 집착, 그리고 지각은 연기론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무명에 기인하다. 이 무명 때문에 개인이 느끼고 지각하는 모든 존재와 현상이 앞에서 서술했듯이 인연의 흐름임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의 일시적인 모습이나 특징을 그 존재나 현상의 진정한 모습, 실체로 지각하고, 그런 모습이나 특징을 지닌 그 존재나 현상에 대해 사랑과 미움, 애착과 혐오를 느끼고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무명에서 깨어나 존재와 현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한, 어떤 개인도 그러한 갈애와 집착 그리고 이들이 초래하는 지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온마음 상담에서는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는 자기중심적인 변별과 평가로 말미암아 주어진 존재와 현상을 왜곡되게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는 데서 온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유기체적 경험을 암암리에 자신의 존재나 자신의 바람과 두려움을 정당화시키는 쪽으로 이해하고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를 정당화할 수 있는 특정한 과거 경험, 기존 관념, 지식, 기대를 통하여 눈 앞의 존재나 현상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려 한다. 즉 지금 여기의 사람이나 일을 과거의 어떤 사람이나 일 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관념이나 지식 등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그의 지각, 생각, 감정 등은 지금 여기의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나 그 일과는 관계가 적은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에 토대를 두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그러한 지각과 생각, 느낌 등은 현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공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나 괴로움의 원인은 그의 생각과 느낌 등이 공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그것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그것에 매어달리고 집착하는 데에 있다. 누구든 공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공상일 수도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때 그 가능성을 확인·검증해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을 고집할 때, 자율적인 조절 가능성은 사라지고 문제가 생겨날 가능성이 커진다.

그는 그런 생각과 감정이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한때의 마음속의 일로 보고 수용하는 데서 그칠 수 없다. 그는 그런 생각과 감정의 늪에 계속 빠져 있어서 불필요하게 괴로움을 연장시키거나 그것을 마음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현실이나 사실과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는 공상 그 자체보다 그것에 집착하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연기론이든 온마음 상담이든 심리적인 문제나 괴로움은 자기와 세계, 존재와 현상에 대하여 개인이 부지불식간에 구성한 공상적 현실을 실제 현실로 지각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이에 집착하는 데서 생긴다고 보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연기론에선 개인의 심리적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존재와 현상에 대한 감정과 욕구(즉 갈애)를 강조하는 데 비해 온마음 상담에서는 공상을 실제인 것처럼 보는 것을 더 강조한다.

그러면 심리적인 문제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불교 수행자들은 헛된 갈망과 집착으로 인한 번뇌로부터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또한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은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인한 심리적인 문제와 증상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을 보다 창조적이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수행의 출발은 종밀(宗密)의 도서(都序-禪源諸詮集都序의 약칭)에 의하면, 각돈오(覺頓悟), 즉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깨우치고 망념은 본래 비어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覺心淸淨, 覺妄本空〕과 4가지 믿음을 일으키는 것〔起四信〕 즉, 진여, 부처, 진리, 승가에 대한 믿음을 내는 것에 있다. 본래의 마음은 조건에 따라 생멸하지 않는 청정한 것이며, 조건의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고 변하는 마음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임을 믿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수행의 기초로서 우선 알아차려야 할 것으로 강조된 본래 마음과 허망한 마음은 무엇인가?

본래 마음을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태어나지 않고 생성되지 않으며 창조되지 않고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 만약 창조되지 않고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면, 해탈은 태어나고 생성되고 창조되고 조건지어진 것으로부터 알려질 수 없다. 그러나 태어나지 않고 생성되지 않는 것 때문에 해탈은 태어나고 생성되며 창조되고 조건지어진 것으로부터 알려진다(Udana, VII. 3).1)

결국 수행의 출발부터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생각, 감정, 욕구의 충족을 위해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되돌려서 이러한 마음을 펼쳐내는 본래적인 자기 성품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성품을 듣고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소 깨달아 통찰하는 것이 선(禪)에서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리라.

본래의 이 성품을 깨닫는 길은 선에서처럼 몰록 깨닫는 돈오의 길도 있지만, 위빠사나에서처럼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일상적인 지각, 갈망, 집착 등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허망하고 빈 것임을 점차 깨달아 가는 점오(漸悟)의 길일 수도 있다. 십이연기론에선 삶〔生〕과 늙고 죽음〔老死〕이 자신의 감정과 집착〔愛·取〕에서 비롯하고, 다시 이 감정과 집착은 무지〔無明〕에서 비롯함을 깨닫고, 이 무지의 구름이 걷힘으로써 청정한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깨달음이라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십이연기의 역관(逆觀)으로 표현된 것이다.

‘무명’이 소멸되면 ‘행’이 소멸되고
‘행’이 소멸되면 ‘식’이 소멸되고
‘식’이 소멸되면 ‘명색’이 소멸되고
‘명색’이 소멸되면 ‘육입이 소멸되고
‘육입’이 소멸되면 ‘촉’이 소멸되고
‘촉’이 소멸되면 ‘수’가 소멸되고
‘수’가 소멸되면 ‘애’가 소멸되고
‘애’가 소멸되면 ‘취’가 소멸되고
‘취’가 소멸되면 ‘유’가 소멸되고
‘유’가 소멸되면 ‘노사’가 소멸된다(증부아함경).2)

이러한 십이연기의 역관으로 본다면, 심리적인 문제나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집착과 갈애를 소멸시키려면 느낌과 지각〔수〕을 소멸시켜야 한다. 여기서 소멸시킨다는 것은 알아차릴 뿐 끄달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과 욕구가 일어나면 그 내용과 그것이 일어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일 수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느낌과 욕구가 일어나는 과정이 의식〔識〕, 대상〔境〕, 그리고 감각기관〔六入〕 간의 접촉〔觸〕이라고 여겨진다. 이들 간의 접촉에서 지각과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관찰하면 개인이 느끼고 지각하고 있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생각만으로 느끼고 지각한 허구, 공상임을 깨닫게 되고 그러한 느낌과 지각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건의 흐름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러한 알아차림이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에겐 바른 마음챙김〔正念〕

즉 위빠사나가 바로 이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초래하고 그 과정이 깊어지면 모든 존재와 현상을 지속하는 실체로 보는 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고 보여진다. 바른 마음챙김에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그 현상에 즉(卽)해서 있는 그대로 면밀하게 관찰하여 알아차린다. 그러한 관찰을 통해서 불변적인 존재나 현상은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만 존재하고,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나 자아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존재나 현상도 그 자체로서 실체가 아니라 조건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사건의 흐름일 뿐임을 통찰하게 된다. 이러한 통찰의 결과로 어떤 존재나 현상, 특히 자기 존재와 그에 대한 지각, 생각, 감정, 욕구 등이 실제로는 덧없고 일시적인 것이며, 전혀 지속적인 것도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통찰을 거치면서 수행자는 어떤 사람이나 일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욕망과 감정〔愛〕 그리고 그에 대한 집착〔取〕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존재와 현상이 평소에 생각하던 대로의 존재와 현상이 아님을 깨닫고 모습과 개념의 그물에서 벗어난다. 또한 변화하는 존재와 현상 너머의 본래 존재인 참마음 또는 진여를 깨닫는다. 이 때에 그는 모든 문제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 열반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온마음 상담에서는 내담자를 어떻게 돕는가? 내담자가 그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는 온마음 상담에서의 상담관계의 장(場)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온마음 상담의 특징적인 방법 측면이다.

우선, 온마음 상담에서의 상담자-내담자 관계는 인간 중심 상담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내담자를 문제나 증상 중심으로 보지 않고 사람, 가능성을 믿고 북돋운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처한 관계, 상황,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그를 환자,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보면 그는 그런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반대로 그를 능력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으로 보면 그는 그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온마음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를 본래 건강하고 소중한 능력과 성품을 지닌 존재로 믿고 그렇게 보고 대하려 한다. 그의 문제, 증상은 특정한 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의 다양한 모습들 가운데 일부일 뿐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물과 물결에 비유하자면 그의 문제는 수면에서 일렁이는 물결이라 할 수 있고 그 사람 자체는 그런 물결을 포용한 물 자체라 할 수 있다. 물결은 표면이고 조건에 따라 다른 모습들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물은 표면과 심층을 모두 포함한 전체이며,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있지만 어떤 조건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면도 있다. 따라서 내담자를 내담자로서만이 아니라 동료, 선배, 선생으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속마음, 비밀, 바람, 공상, 두려움 등을 거리낌 없이 터놓고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Rogers(1957)가 일찍이 상담을 위한 “필요 충분 조건들”로 제시한 진솔성, 수용, 공감 등은 이러한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상담자가 이런 태도로 상담에 임할 때, 내담자는 자신의 치부와 상처, 은밀히 숨겨왔던 비밀들, 그리고 자랑과 자부심 등을 솔직히 드러내고 함께 나누고자 할 것이다.

다음으로 온마음 상담 방법의 특징적인 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위에서 얘기한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겪은 과거나 요즈음의 경험들, 또는 상담 관계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털어놓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런 경험을 상담 장면 속에서 재생시켜 있는 그대로 재경험하고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상담자는 또한 내담자로 하여금 이처럼 그의 경험을 회상하거나 재경험하는 가운데 그 경험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흘러가고 변해가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거나 관찰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1) 그런 경험을 할 때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는지, 2) 자신의 그 경험이 어떤 것에 의해 촉발되는지, 3) 시간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4) 비슷한 다른 상황에서도 항상 그런 경험만이 유발되었는지, 5) 그 상황에서 다른 종류의 경험을 했거나 가능하다고 여겨지지는 않는지 등을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관찰과 검토를 통하여 내담자는 자신의 경험이 주어진 사실(또는 존재나 현상) 그 자체에 기초한 것이기보다는 그 스스로 자신의 과거 경험, 기존 관념, 지식 등을 무심결에 개입시켜 짐작하고 추측한 공상임을 깨닫게 된다. 즉 그의 경험이 그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만든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지각, 생각, 감정 등이 상식이나 논리에 어긋나는 것임을 발견할 수도 있고, 크게 어긋나지 않더라도 항상 그런 경험만을 하지는 않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 그는 그런 경험을 불합리한 채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보다 논리나 상식에 맞도록 수정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그는 다른 종류의 경험들을 떠올리고 경험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강한 감정 또는 신체 반응을 유발하는 경험과 반복되는 경험들은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감정이나 신체 반응은 강한 집착을 나타내는 지표로 볼 수 있는바, 그런 반응을 유발하는 지각, 생각, 욕구 등이 그의 존재 자체나 바람 및 두려움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런 지각이나 생각 등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의 존재 또는 그의 바람 및 두려움과 관련되는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집단 상담에 참가했던 한 여성은 집단원들이 자신들을 소개하는 시간에 그와 알고 있던 다른 집단원이 자기가 말을 하고 있는 중에 끼어들었을 때 엄청나게 화를 내며 방을 뛰쳐나갔다. 그녀는 그 후 계속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때로 그녀는 신음 소리를 토해내기도 하고, 발버둥을 치기도 하였으며 심한 두통으로 괴로워하였다. 그러한 울음과 두통 속에서 그녀는 자기가 4, 5세경 부모의 격렬한 부부싸움을 보면서 혼자 오들오들 떨며 두려워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말하자면 자기의 말을 채고 들어오는 다른 집단원의 반응이 그녀의 존재가 위협받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재생시켰다.

내담자의 많은 문제는 그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사람이나 일과 관련하여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 사람이나 그 일과 관련된 여러 상황 또는 유사한 여러 사람이나 일에 일반화시킴으로써 생긴다. 다시 말해 특정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나 그 일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 사람이나 그 일의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으로 여기거나 또는 유사한 다른 사람이나 일에서도 느끼고 생각한다.

이는 동일시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동일시로 인하여 모습(외양)을 본질과, 부분을 전체와, 한때를 모든 때와, 한 상황을 모든 상황과 혼동한다. 상담은 탈동일시(脫同一視)를 통해 바로 이런 동일시로 인한 착각과 공상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내담자를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하여 내담자가 그 사람 자체를 원래 불친절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 그는 특정한 상황에서의 그 사람의 모습을 그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간주한 것이다. 상담은 이 내담자로 하여금 그 사람을 불친절하게 보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내담자 자신이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규정지은 것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그런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돕는다.

이러한 탈동일시는 다음의 몇 가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선, 다른 상황, 다른 때엔 그 사람이 그 일을 달리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나 일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고정된 것은 없다. 다음으로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고정된 생각, 감정, 욕구는 자신의 기존 관념이나 과거 경험, 지식 등의 투사였음을 자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변별평가체계를 자각하고 거기에서 자유로워져 순간순간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삶의 순간순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의 연속이다. 또한 자기의 존재 자체와 관련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는 것들이 자기 스스로 그렇게 규정한 빈 생각〔空想〕이고 허구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예컨대, 누가 나의 존재를 알아주기 바랄 때, 도대체 어느 누가 나의 무엇을 알아주길 바란단 말인가?

내담자는 특정한 종류의 지각, 생각, 감정, 욕구에 매몰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특정한 과거 경험이나 관념의 시각에서만 자기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그 특정한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그가 그의 지각이나 생각, 감정 등의 내용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알아차림으로써 그의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도 엄청난 것도 아님을 깨달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문제는 모두 해결하거나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활용해야 할 기회일 수도 있고 전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때로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관점을 돌이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필자는 심리적 문제나 괴로움의 해결과 관련한 연기론적 입장과 온마음 상담의 견해를 기술하였다. 이 두 가지 입장의 대표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연기론적 관점에서는 개인은 그가 경험하는 문제나 괴로움은 물론 지금·여기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심리적 신체적 현상들을 일어나는 그대로 면밀히 관찰한다. 그리하여 그런 현상들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현상을 경험하는 자기 자신까지도 무상하고 무아한 그림자, 허깨비 같은 것임을 깨닫고 그런 것들에 대한 갈망이나 혐오 등에 사로잡히지 않게 한다.

온마음 상담에서도 내담자는 자신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문제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떠올리거나 재경험하는 가운데 그것들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검토한다. 이런 관찰과 검토를 통해서 그의 문제나 괴로움 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과거 경험, 기존 관념, 기대 등을 투사하여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도록 돕는다. 또한 그의 기존 관념, 과거 경험, 기대 역시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임의로 붙잡고 매달리고 있음을 보게 한다.

그러나 온마음 상담은 다른 상담이나 치료와 마찬가지로 문제나 괴로움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나 자아를 허구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치료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그러나 다른 치료나 상담에 비하여 문제나 고통을 초래하는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과거 경험, 기존 관념, 기대 등을 투사하게 만드는 자기의 존재와 자기의 바람이나 두려움의 구체적 내용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하여 그것들이 대체로 막연한 생각에 불과할 뿐 구체적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닫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간화선에서 화두를 의심하게 하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 자신의 문제 등의 실체가 무엇인지 의심해보도록 하기도 한다. 이것은 특정한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가 믿어 의심치 않는 관념이나 경험 또는 자기 존재 등의 허구성과 열려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를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윤호균 / 전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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