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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참여에 대한 출가자의 태도 / 마성스님
특집-종교와 정치권력
[35호] 2008년 06월 10일 (화) 마성스님 ripl@ripl.or.kr

1. 머리말

‘정치와 종교(politics and religion)’ 혹은 ‘국가와 종교(state and religion)’의 관계에 대한 담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치와 종교는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금도 정치와 종교가 하나인 ‘정교일치형’ 국가가 존재하고,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종교단체에서 결성한 정당이 있는 것만 보아도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치와 종교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다. 또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이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도 종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종교의 정치화, 상업화, 금권화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불교와 기독교 종교인 학자들이 자신의 종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성하는 학문적 토론의 장이 열렸다.1) 이것은 아마 대선과 총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종교인들의 지나친 정치참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종교인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혹은 종교인들이 정치와 결탁하는 것이 정교유착(政敎癒着)은 아닌가?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의혹에 답하기 위해 이와 같은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을 것이다.

이 글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불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색해 보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개괄적으로나마 정치와 종교가 어떤 관계로 유지되어 왔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불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고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인도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살펴보고, 붓다는 정치권력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출가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불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개관

서양의 역사는 한마디로 정치와 종교의 관계, 즉 ‘정교관계사(政敎關係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양에서는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과 긴장 및 유착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근대 서구 사회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이 등장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오늘날에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정교일치형’ 혹은 ‘정교합일형’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국의 헌법에 정교분리와 종교자유를 보장한다는 두 조항을 함께 병기하고 있다. 정교분리와 종교자유라는 두 가지 원칙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정교분리가 되어야 종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고, 종교자유 원칙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이 두 원칙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은 틀림없다.2)

정치와 종교의 관계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정치와 종교의 영역 자체가 미분화되어 있거나 합일되어 있는 경우이다. 둘째는 정치와 종교의 영역이 의식적 제도적 차원에서 분리되어 있는 경우이다. 전자를 ‘정교일치형’이라고 하고, 후자는 ‘정교분리형’이라고 한다.3)

정교일치형 사회의 대표적인 예는 흔히 ‘제정일치’ 사회라고 불리는 과거나 현재의 씨족사회나 부족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최고 지도자가 제사와 통치의 대권을 동시에 행사하고 있다. 오늘날 이슬람 국가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국가들도 ‘정교일치’ 혹은 ‘정교합일’의 이념에 기초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무하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은 처음부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않고 정교일치를 표방하였다. 무하마드 자신은 처음부터 최고의 종교지도자이자 최고의 통치자로 간주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서구적 근대화의 영향으로 이슬람 국가의 정교일치 체제가 약화되기는 하였으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부흥으로 이 체제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 특히 1979년 팔레비 정권을 붕괴시키고 새로이 등장한 이슬람 공화국 이란은 오늘날 가장 전형적인 정교일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란 혁명의 기수였던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최고의 종교지도자이자 최고의 정치지도자로서 이슬람의 종교법이라고 할 수 있는 샤리아(Sharia)로 팔레비 시절에 ‘타락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성하고자 하였다.4)

서구에서의 정교일치형 국가는 종교개혁 당시의 제네바나 오늘날의 바티칸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종교개혁가 칼뱅이 최고 통치자로 군림하던 당시의 제네바나 교황이 국가원수로 활동하는 오늘날의 독립국가 바티칸은 사실상 ‘신정국가(神政國家)’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체제에서는 ‘종교법’과 ‘세속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신이 제정한 것으로 간주되는 ‘성법(聖法)’만이 존재한다.5)

그리고 현재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티베트는 불교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정치와 종교를 구분할 수 없는 ‘정교일치형’ 국가에 속한다. 이른바 티베트는 불교적 이념으로 건립된 나라다. 현재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승려의 신분이면서 티베트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의 자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형태를 ‘종교국가’라고 부른다.

한편 이와는 달리 종교적 이념이 국가권력의 형태로 나타난 경우가 있다. 이른바 세속 권력이 특정한 종교를 선택하여 국교로 삼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종교와 정치를 의식적 차원에서 분명히 구별하고 있지만 정치권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종교를 이용하는 체제이다.

대표적인 예는 절대주의 시대의 유럽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국가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국가통합의 수단으로 특정한 교파나 종교를 국가종교로 삼았던 것이다.6) 남방 상좌부 불교국가인 태국·스리랑카·미얀마 등이 이 부류에 해당될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국가종교’라고 부른다. 전자는 종교와 정치의 미분화 상태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태이고, 후자는 종교와 정치가 분화되었지만 국가권력이 종교를 통합이데올로기로 이용하고자 할 때 주로 나타난다.7)

그러나 ‘종교국가’가 되었건 ‘국가종교’가 되었건 그 어느 것도 현대 사회에서는 지배적 담론이나 제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와 국가를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일치시키는 정교합일 모델은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낯선 현상이거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종교국가’가 아니라 ‘세속국가(secular state)’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세속국가’ 모델의 인식론적 토대가 ‘정교분리 원칙’이며 그것의 법적 장치가 ‘정교분리 제도’이다.8)

그런데 이러한 정교분리 원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종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종교의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된 정치단체, 즉 정당이 그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단체를 결성하여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민주당(Christlich-Demokratische Partei)이다. 그리스도교 정당이 처음 창당된 것은 19세기 초 프랑스에서였다. 1878년에는 독일에서 기독교사회노동당(Christlich-Soziale Arbeiterpartel)이 창당되었고, 1894년에는 프랑스에서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민주당(D?ocratie Chr?ienne)이 결성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18년 이탈리아 국민당이 창설되어 파시스트 정당에 대응하여 국민 주권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다가 1941년에서 1943년 사이에 기독교민주당(Democrazia Cristiana)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와 같이 각국에서 다른 경위와 배경을 가지고 발전해 온 기독교민주당은 각 국가별로 의회에 진출하여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우선 유럽을 중심으로 유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프랑스·벨기에·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스위스·오스트리아 등의 기독교민주당이 모여 신국제 팀을 형성하였는데, 1956년 11월에는 마침내 파리에 본부를 둔 NEI(Nouvelles Equipes Internationales)를 탄생시켰다.9)

한편 일본에서는 불교종파의 신도단체인 창가학회(創價學會, CGI)가 ‘공명당(公明黨)’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창가학회가 추구하는 목표는 당초 국회의 결의를 통해 일련정종(日蓮正宗)의 국교화(國敎化)에 두고 있었다.10)

그리고 남방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리랑카에서도 2004년 2월 불교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자티까 헤라 우루마야(Jathika Hela Urumaya, JHU)’, 영어로는 ‘National Heritage Party’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그해 4월 2일 실시한 총선에서 9명의 승려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전체 의석 225석에서 9석을 차지함으로써 6.0%의 지지를 받았다.11) 최근 국내에서도 통일교(통일교의 정식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에 토대를 둔 ‘평화통일가정당’과 개신교에 기초한 ‘기독사랑실천당’이 창설되어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1석도 얻지 못했다.

이처럼 종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표방하는 종교적인 이념과 현실 정치 사이에는 간극과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5년 당시 일본 자민당 정무조사회 회장이었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는 종교단체의 정당 활동에 대해 “종교는 한 사람의 교조의 가르침을 원리로 하여 행동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의회제 민주주의와 양립하지 않으며 종교가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12)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채규철은 “종교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종교문화와 정치문화가 본격적으로 결합한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다. 종교가 정치권력에 의해 지배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이용되어 본의 아니게 정치에 개입되든지 아니면 종교가 자신의 세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스스로 정치에 뛰어들든지 간에, 종교가 정치세력화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배타적 성격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신념이야말로 유일한 진리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그 신념을 타인과 타 집단에게 강요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고, 결국 절대화된 권력은 신념마저 절대화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13)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종교가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정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일이기 때문이다.”14)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는 “종교가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양자의 장점만이 나타나리라고 기대하지만, … 그것은 양자가 동반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할 위험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종교가 국교로 발전하는 계기로 되어 종교적 평등성이 저해될 우려마저 있다.”15)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현재와 같이 상호 불간섭과 비개입의 입장이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16)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교일치형’이나 ‘국가종교’로 되돌아가겠다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면 될 수록 ‘정교일치형’이나 ‘국가종교’는 ‘정교분리형’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다종교·다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지구촌시대(Global village)에 살고 있다. 그리고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국제간의 분쟁과 복잡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면 정치는 타협과 협상을 통해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종교를 바탕으로 한 정당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최선책을 고집할 것이다. 이때 만일 종교적 가치를 표방한 정당이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그러한 정당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되고,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한 미래에는 종교도 지금과는 달리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된다.

지금까지 종교가 담당해온 영역을 대체종교(alternative religion) 혹은 대용종교(surrogate religion)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전통종교가 담당해 왔던 종교의 위안 기능이나 긴장 해소 기능 등을 스포츠나 레저, 관광산업에 의해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된다.17)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원시시대의 제정일치로 되돌아가려고 하거나 어느 특정 종교로 국가를 다스리겠다는 생각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에서는 종교를 바탕으로 한 정치집단, 즉 정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러한 종교의 정치집단화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치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 인도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관계

일반적으로 인도는 종교의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의 영역이 구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도의 헌법에는 분명히 ‘세속국가’라고 선포하고 있다. ‘세속국가’는 종교와 정치를 의식적 제도적 차원에서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으며,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고, 나아가 모든 종교에 대한 국가의 ‘중립’을 선언한다.18)

인도는 서양과는 달리 일찍부터 정치와 종교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아리야(A칞ya)인들이 인도 아대륙에 이주해 오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사성계급 제도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성계급이란 브라흐마나(bra칑man.a, 婆羅門, 사제계급), 끄샤뜨리야(ks.atriya, 刹帝利, 무사계급), 바이샤(vais큮a, 吠奢, 평민계급), 슈드라(s큨칍ra, 首陀羅, 노예계급)를 말한다. 네 계급 중 브라흐마는 사제계급으로서 제사와 종교의례를 담당했고, 끄샤뜨리야는 무사계급으로서 정치와 군사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바이샤와 슈드라는 위 상위계급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인도의 전통에 따라 불교에서도 정치와 종교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인식하였다. 붓다 당시의 바라문이나 사문은 오직 종교적 활동만 허용되었고, 국가를 통치하거나 군사를 운용하는 것은 군주나 왕의 고유 권한이라고 간주하였다. 초기경전에서 붓다는 정신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은 물질적인 영역을 담당한다는 상징성은 정치와 종교의 역할이 서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붓다의 출가는 정치권력과의 단절을 뜻한다. 붓다는 인간사회의 문제들 중에서 세속적인 통치자가 해결할 수 없는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였다. 한마디로 붓다는 스스로 ‘정치의 길’을 버리고 ‘종교의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따라서 바라문이나 사문이 직접 세속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의 역할은 오직 자신들의 수행을 통해 사회 환경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혹 통치자가 자문을 구하면,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여 통치자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 단적인 예를 하나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Aja칣asattu, 阿?世王)가 대신인 왓사까라(Vassaka칞a) 바라문을 붓다께 보내 왓지(Vajj┓)국을 공격하고자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을 구했다. 붓다는 이 질문에 대한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다만 곁에 있던 아난다(A칗anda, 阿難) 존자에게 왓지들은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七不退法)’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아난다 존자가 그렇다고 답변하자, 그러면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19) 마가다국의 대신 왓사까라가 붓다와 아난다 존자 간의 대화를 듣고 왕에게 어떻게 보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아자따삿뚜는 왓지국을 공격하지 않았다. 출가자와 절대 권력자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정치와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괴로움이 없는 보다 살기 좋은 이상사회(理想社會)를 건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사회란 개인완성(個人完成)과 사회완성(社會完成)이 동시에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사회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이다. 그런데 괴로움에는 근본적인 괴로움과 사회적인 괴로움, 즉 근본고(根本苦)와 사회고(社會苦)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근본고는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통, 즉 자연적(自然的)·생리적(生理的)인 괴로움을 말한다. 후자의 사회고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생기는 고통, 즉 인위적(人爲的)·윤리적(倫理的)인 괴로움이다.20)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근본고와 사회고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곧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가 곧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21) 그러나 근본고와 사회고의 원인과 그 해결 방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근본고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무지(無知, 無明)와 집착(執着, 渴愛)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괴로움의 극복 또한 근본적으로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하지만 사회고의 원인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며, 그것은 잘못된 정치와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괴로움의 극복 또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치와 제도의 개선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22) 여기서 정치가 담당해야 할 부분과 종교가 담당해야 할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붓다는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치자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기회 있을 때마다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를테면 붓다는 《전륜성왕사자후경(轉輪聖王獅子吼經)》에서 빈곤(da칕.iddiya)이 절도, 거짓말, 폭력, 증오, 잔혹 등과 같은 부도덕과 범죄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고대의 왕들은 오늘날의 정부처럼 형벌로써 범죄를 억제하려고 노력했다.23) 그러나 붓다는 《꾸따단따숫따(Ku칣.adanta-sutta, 究羅檀頭經)》에서 이러한 형벌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가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말하고, 그 대신 붓다는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종자와 다른 농업 설비가 농부와 경작자에게 공급되어야 하고, 자본금이 무역업자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며, 적정한 임금이 고용원들에게 지급되어야만 한다.24) 이와 같이 국민들에게 충분한 소득을 올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만족하게 될 것이고, 근심과 불안을 갖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나라는 평화롭고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하였다.

위 경전에 의하면, 정치만으로는 이 사회의 범죄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상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최소한 다섯 가지 기본적 계율, 즉 오계(五戒, pan쁟a-s┓la)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된 도덕적 생활을 영위해야만 비로소 사회악(社會惡)을 뿌리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25)

이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종교가 해결해 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치와 종교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정치권력을 적대시하거나 정치권력과 너무 가깝게 유착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서로 담당해야 할 역할이 다르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한편 붓다는 당시의 국왕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비굴하게 정치권력에 아부하거나 종속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왕과 대신들은 붓다와 그 제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받들었으며, 그들이 수행과 교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각별히 배려해 주었다. 정치와 종교의 이상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붓다가 이루고자 했던 이상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붓다는 초기경전의 도처에서 불교가 지향해야 할 이상사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26) 초기경전에 따르면, 불교의 이상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사회임과 동시에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덕적인 성숙과 정신적 자유(궁극적으로는 죽음의 극복)를 통한 인격적 완성을 이룬 사회를 말한다. 결국 정신적인 충족과 물질적인 충족의 두 가지 기본 원리가 불교 이상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27)

이와 같이 “붓다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사회라는 것은 구성원 전체가 고(苦)에서 해방된 혹은 구성원 전체를 고(苦)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28) 다시 말해서 불교의 이상사회는 개인적인 근본고와 사회고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 초기불교에서 선(善)과 악(惡)의 판단 기준은 어떤 행위가 무집착으로 이끄는가 집착으로 이끄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불교의 이상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집착으로 이끄는 정책,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 사회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승가(僧伽)는 이상적인 불교 사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이상사회론(理想社會論)은 대승불교에 이르면 정토사상(淨土思想)으로 체계화된다.

그리고 붓다는 이러한 이상사회를 이루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그는 초기불교 교단에 60명의 제자들이 생겼을 때, ‘전도선언(傳道宣言)’을 단행했다. 이 전도선언에 붓다의 정치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경전에 나타난 전도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들과 인간들의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너희들도 신들과 인간들의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축복·행복을 위해서. 둘이서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문장이 훌륭한 법을 설하라. 오로지 깨끗한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눈에 티끌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버려지고 있다. 그들은 가르침을 아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우루웰라의 세나니 마을로 간다.29)

위에서 인용한 전도선언의 내용 중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불교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불교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치와 종교의 목적은 똑같다. 다만 정치와 종교는 그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붓다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사회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은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연기법(緣起法)에 의하면 모든 현상〔諸行〕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붓다는 정치체제가 공화제(republican)이든 군주제(monarchical)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교일치나 정교분리는 다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일 뿐 목적은 아니라고 보았다. 붓다가 추구한 궁극적 목표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만 여기서 명심해야 할 사항은 붓다가 전도선언에서 제시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라는 근본적인 목표나 가치관이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불교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를 현명하게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출가자의 정치참여 문제

원래 출가란 정치권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즉 출가자는 스스로 ‘정치의 길’을 버리고 ‘종교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붓다 입멸 후 승단에서는 이러한 근본적인 원칙과 목적을 저버리고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스스로 자멸을 초래한 뼈아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불교사에서 승려들이 지나치게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출가자 본분을 망각하고, 서민 대중의 고통을 가중시킨 사례가 너무나 많았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30) 그래서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다만 여기서는 출가자가 직접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출가자가 직접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상좌부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승려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면 왜 스리랑카에서는 승려들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는가?

스리랑카에서는 처음 불교가 전래될 때부터 국가와 불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현전승가의 계(界, s┓ma? 속에 왕궁까지 포함시켰다. 따라서 왕도 현전승가의 일원으로 간주되었고, 왕의 주된 의무는 불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통으로 말미암아 스리랑카에서는 국가와 불교는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는 “정치는 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종교다. 둘은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마음은 몸에 있고, 종교는 정치에 있다. 정치가 종교를 잃게 되면 죄와 악이 판을 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의 의미는 외부의 의례와 개업식 혹은 관행화된 종교가 아니고, 그 대신 자비, 연민, 지혜와 같은 특질의 촉진을 통해 도덕적 정신적 인격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탁월한 사상과 도덕적 자질이 부족한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정치적 행정은 인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번영은커녕 오직 잠시 동안이나마 큰 불행을 초래시킨다.”31)고 말했다.

그래서 비구들은 “많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bahujanahita칪a, bahujanasukha칪a, loka칗ukampa칪a.)”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비구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붓다의 유훈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사상적 배경에서 스리랑카의 승려들은 정당을 만들어 의회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의회에 진출한지 1년 만에 그들은 승려가 정치에 참여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고 탈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32)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불교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목표가 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시대상황에 따라 불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법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야 불교가 이 사회에 기여하는 종교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의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특정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것은 붓다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불교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자멸의 길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5. 맺음말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인간은 정치와 종교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정치와 종교 간에 긴장과 갈등 속에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근대 국가에서는 정교분리와 종교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아직도 종교단체가 정치 집단화하여 직접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치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인도에서는 처음부터 정치와 종교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불교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그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즉 정치와 종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불교의 승려들이 지나치게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불교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스스로 자멸을 초래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종교가 권력화를 지향할 때 이미 종교의 사명을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종교가 세속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곧 종교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출가자가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러므로 출가자가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정치권력과 유착하거나 야합을 시도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보완과 견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세속의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출가자는 정치인들이 올바르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출가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만일 출가자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권력과 결탁한다면, 그 자신도 권력과 함께 파멸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불교의 쇠퇴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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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수(2)  

2009-05-08 11:47:26
과거가 중요한게 아니라 현실을 말해주세요
왜요 현실은 입장이 난처 합니까?

님은 권력에대한 욕망을 없앴습니까?
그것이 과거보다 중요 합니다
명법사
2009-05-08 11:42:00
종교는 평화 화합 목적, 그러나 권력욕에 더러운 승려들
정치철학도 없이 명예심에 미처서 정치와 결탁하는건 세상을 어지럽히는것
명상 보다는 그런걸 바로 가르쳐야, 권력욕이 가득하면 명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교육이 없는 불교, 그래서 미국에 한인 불자들은 정체성 없어서 모두 기독교로 갔다
전체기사의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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