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기 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

최악의 지진이 중국 사천성을 강타한 후 표면적인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멈추었다. 티베트 망명정부뿐만 아니라 티베트 본토의 사원에서도 중국인 희생자들을 위한 티베트인들의 기도회가 열리는 등 재난 수습에 마음을 합치고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항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2008년 봄 티베트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너무 끔찍했다. 과연 지난 봄 티베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이번 시위는 3월 10일 시작되었다. 3월 10일은 1959년 티베트 민중들이 중국의 강점에 맞서 봉기했던 기념일이다. 이 날을 기해 티베트 3대사원의 하나인 라싸 드레풍 사원의 스님 수십 명이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지난해 가을 중국 경찰의 애국훈련에 항의하다 잡혀간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애국훈련은 중국이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을 강요하는 매우 악명 높은 식민 동화정책의 하나다.

10일 시위는 매우 평화적이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라사 도심을 행진하는 스님들은 마치 소풍가는 듯할 뿐 어떤 긴장감도 찾을 수 없다. 설산사자기도 플래카드도 없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중국 공안은 최루탄과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수십 명이 부상당하고 투옥되었다. 그러자 3월 11일 이번에는 간덴 사원의 스님들 6백 명이 라싸 도심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평화로웠지만 또다시 폭력적으로 진압되었다. 이때 스님들이 구타당하는 장면은 라싸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졌고, 공분을 불렀다.

휴일을 보낸 14일, 이번에는 시민들이 모여 경찰에 항의하였다. 역시 평화시위였다. 그런데 이날 오후 해질녘쯤 시위는 폭력적으로 변했다. 우리가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본 화면들처럼 성난 시위대들은 상점과 차량에 방화를 하기도 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평화스럽던 시위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달았던 것일까? 억눌린 분노가 폭발하였다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도화선이 있었을 것이다.

3월 14일 라싸에 있다 탈출한 티베트인은 중국정부가 시위대에 발포를 함으로써 시위대의 행동도 과격해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체포되면 군인들이 죽일 것 같아 가족을 놔두고 탈출했다고 한다. 군의 발포에 의한 시위대의 과격화. 이것은 우리가 1980년 광주에서 목격했던 것과 유사하다.

몇 가지 의혹이 여기서 시작된다. 첫째, 라싸에는 중국 공안들만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리칭이라는 양심적 중국 지식인은 티베트 내 중국 경찰과 군대만 150만 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소 10만 이상의 공안이 있는 경찰도시가 라싸다. 그런데 기껏 수백 명에 불과한 평화로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바로 투입되었고, 군대는 투입되자마자 바로 발포하였다.

둘째, 중국 공안 수백여 명이 시위대의 폭력을 부추기기 위해 티베트 전통복장을 갈아입고 폭력을 유발하였다는 의혹이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화교 여성의 증언으로 영국 BBC에도 방영되었다. 셋째, 3월 16일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라싸의 소식통을 근거로 “14일 탱크가 시위대를 향하여 돌진하였고, 이를 본 군중들이 흥분하여 폭력적으로 변하였다고 증언했다. 탱크에 깔려 사망한 수십 구의 시체를 군인들이 싣고 외곽으로 향했다”고도 보도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번 항쟁이 티베트인들의 계획된 폭동이었다는 중국정부의 주장을 믿기는 어렵다. 지금 티베트 내 여론도 비슷하다고 한다. 얼마전 라싸에 있다 온 한 중국인으로부터 “중국 군인이 일부러 폭력시위를 유발했다고 라싸 시민들 대다수가 알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티베트 독립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중국정부가 그물을 쳤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대부분 잡혔다고 한다. 판결 이유도 없이 무기징역 등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는 뉴스도 보도되었다.

만약 이번 티베트 항쟁이 중국정부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소수민족 일부의 폭동을 유도한 뒤, 그것을 진압함으로써 55개 소수민족에게 엄포를 놓고, 아울러 티베트 독립분자들도 잡아들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려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이런 끔찍한 추측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정부의 의도 여부를 떠나 티베트 망명정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최소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4천 명 이상이 구금되었다. 대부분 산악지대로 피신해 있는 시위대들이 얼마나 더 희생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중국정부가 판단 착오한 한 가지가 있다. 라싸에서의 시위는 바로 진압이 되었지만, 오히려 티베트 동북부 캄과 암도 지방(사천성, 운남성, 감숙성 등)으로 시위가 급속히 확대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4월 집계한 바로 티베트에서 시위가 발생한 50여 곳 가운데 80%이상이 동부 유목지대였다.

도시의 소수 티베트인들과 달리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은 시위가 확대되자 집안 깊숙이 감춰두었던 티베트 깃발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번에 지진 진앙지와 가까운 사천성 아바현 등에서 일어난 시위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 지역들은 일부 도시와 달라 한족화가 덜 진행된 곳이고, 거주민들의 다수가 티베트인들이다. 여전히 시위가 재발할 개연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50여 곳 이상에서 벌어진 시위의 양상은 대부분 드레풍 사원의 경우와 비슷하다. 중국 공안이 애국훈련에 항의하는 스님들을 잡아가고, 동료스님들이 구속되자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공안청을 항의방문하고, 그 스님들을 폭력진압하는 장면이 시민들에게 목격되면서 시민들이 가세하여 시위가 확산된다. 시위대 규모가 늘어나자마자 군대를 투입하여 총을 쏘고, 이런 과정이 지역별로 불과 2, 3일 사이에 이뤄졌다. 너무 야만적이거나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중국정부의 행위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런 중국정부가, 절대 이해 못하는 것이 있다. 지금도 티베트 전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애국훈련’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반감이다. 애국훈련은 사찰에서 승려들을 모아 놓고, 돌아가며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을 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바닥에 놓고 차례로 밟고 지나가게 하기도 한다. 승가를 보물로 치는 불자들, 더구나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는 티베트인들로서는 이를 용납하기 힘들다. 이걸 중국정부와 상당수 중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깟 비난 한마디 하면 되고, 사진 한번 밟으면 되지, 달라이 라마가 밥을 주는가, 떡을 주는가?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지녔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것조차 마다 않으며, 인과를 확고히 믿는 티베트인들에게 애국훈련은 끔찍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중국의 식민통치가 악랄해질수록 티베트인들은 더 달라이 라마에 의지한다. 그래서 시위마다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가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이다.

비록 일부 도시지역에서 한족으로의 동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그건 소수다. 대다수 티베트인들에게 불교는 여전히 삶 자체다. 농노와 같은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아도 좋고, 도로나 철도를 안 깔아도 좋고, 공장을 안 지어도 좋으니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여 그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 이런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중국정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도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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