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창홍 분당 야탑고교 교사

해마다 연말연시에는 서편 저녁하늘에 붉은 노을을, 다음날 아침 동쪽하늘에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이 푸른 별 지구에 생존해 오면서 그 섭리에 잘 순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발달되면서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이 거듭되고 점차 서구의 과학이 기계화를 부추겨 인간의 편리함과 경제논리를 앞세우며 개발(開發)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 훼손하여 돌이킬 수 없는 이 땅의 황폐화를 재촉함에 식자(識者)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예고, 경고를 하고 있다.

불교는 경전(經典)의 여러 기록에서 보듯이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부터 자연과 환경에 대해 미욱한 중생들이 깨닫고 행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홀수 달에 한 번 꼴로 진행하는 ‘53선지식을 찾아서’ 야외 법회가지난 3월 16일 있었다. 서울 경기지부의 연례행사로 철원 철새 도래지에서 봄나들이 끝자락 기회이기도 해 버스를 얻어 타고 새벽 걸음으로 나섰다. 신철원(갈말읍)에 당도하여 마중 나오신 도연 스님의 1톤 트럭의 허술해 보이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얼룩무늬 위장도색을 보고 왜 이런 차를 타시냐고 물었더니 자연과 새들과 가까워지려면 이런 차를 타야 된다고 자랑처럼 말씀하신다.

두루미의 생태를 보면 애틋한 가족 사랑으로 부부가 언제나 함께하고 새끼를 항시 가운데 두고 먹이 활동을 하며, 성장한 두루미는 뺨에 붉고 커다란 점이 생기면 어미를 떠나 또 다른 암수무리를 지어 생활하다 짝을 찾아 가족을 이루는데, 비록 짐승이지만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교훈이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스님의 특별 이벤트는 탁자 위 음식 그릇을 치우고 동참한 모두에게 두루미 활동상(活動像)을 그려 즉석 화제(畵題)를 붙여 주시며 따스하고 인정어린 추억을 남겨 주시고 도연암 토굴로 가시자고 앞장 서신다. 군인훈련장 포진지 옆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도연암이라 쓰인 선바위 위에 불두가 갸름한 미소로 반겨주어 너무 인상적이었다.

스님의 법당이며 다실이며 수행공간인 작은 컨테이너로 안내받아 좁은 자리도 불편하다 생각할 겨를 없이 불도를 닦는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신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환경지킴이로서 당장 목전(目前)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하는 지역주민들, 사업하는 단체들과 투쟁하려면 가정에 딸린 식솔에 겉치래가 많은 세속인보다는 이도 저도 없는 스님이 제일 적임이라 하시며 그동안 철새와 함께한 수많은 사연과 생태환경의 파수꾼으로 일해온 과정이 너무도 가슴 뭉클하면서도 숙연하게 하였다.
환경 자연보호, 왜 이런 저런 조건이라고 안 되겠는가. 다만 핑계와 변명이 아닐까?

나 자신이 과문한 탓으로 작은 신행단체지만 근 10여 년간을 함께하면서 경향각지 사암을 다녀봤지만 지금까지 이런 암자와 스님은 처음이어서 새삼 가르침을 얻었다. 물론 수많은 스님들마다 수행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정진하시느냐는 차이가 있겠으나 그날 도연 스님의 말씀은 오늘의 세태와 상황에서 절실하고 역시 부처님의 제자로 앞장서 가신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무언가를 지키려면 주인 정신으로 목표를 세우고 지키고 유지하려고 애쓰는 자세가 있어야 하리라. 요즘 불교방송에서 월호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명하고 몸으로 실천해 보이고자 나름대로 애쓰게 된다. 다만 그들이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그 소중함을 깨달아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슴에 새기길 바라면서.

예전에 학교 내에서 선도 대상학생을 교화하는 도구로 야생화 기르기를 통한 자연 사랑을 일깨워 보려고 학교에 화분 놓는 공간을 만들어 그 꽃의 이름과 기르는 조건과 생태와 자라서 꽃피는 과정을 설명해준 적이 있다. 화분에 꽃을 기르는 정성과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너희를 가르치는 정성이 이러함이며 너 자신도 이 화분을 사랑으로 물주고 풀 뽑아주며 기르도록 대화를 통해 선도했다. 반응이 매우 좋아 가정에서도 화분을 부모님과 함께 키우도록 나눠주어서 학교와 가정이 학생의 인성지도를 함께하여 비뚤어가던 청소년을 잘 지도해 사회로 진출시킨 지난일이 떠오른다.

요즘은 수련(垂蓮)을 기르며 동료교사와 학부모님들, 인근의 주민들에게 분양하면서 심오한 뜻을 지닌 꽃 중의 지존임을 말하고 불교의 꽃임을 포교한다.

수련은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그 생태가 꽃이 4~5일 피고지고 했다가 지는 꽃은 추한 모습을 더 보이기가 부끄러워 물속으로 잠긴다 하여 잠길 수(垂) 자로 이름 한다는 삼성동 봉은사 전 주지이신 원혜 스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꽃시장을 찾아가 해매다 어렵게 구해서 귀동냥과 실수의 반복을 거듭하며 터득한 기술로 약 10여 년의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불가에서 처염상정(處染常淨)을 말하듯 늘 마음에 새긴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외형상 느끼는 세상사를 본다. 즉 견(見)으로 흔히 표현한다. 눈〔眼〕 으로 바라보고, 귀〔耳〕로 들어보고, 코〔鼻〕로 맡아보고, 혀〔舌〕로 맛보고 몸〔身〕으로 느껴보고, 이는 오감으로 느낌을 말함이며 무엇을 어찌할까를 결정하는 일상적인 수단일 것이다. 단순한 중생의 마음이라 아직 마음으로 보는 관(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가 아닐까? 언제나 자비를 품에 지니고 수행자의 길을 오롯하게 간다면 그 길이 훤히 보일 것인데……

마음에 두고 있다가도 예전에 감정이 좋지 않던 사람을 만나면 이해와 배려하자는 마음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미워지는데 이를 어찌 할 것이냐! 다행히도 그간에 공부가 효과를 보는지, 근자에 들어 마음 닦음이 조금씩 소제(掃除)되어 가는지 동료를 타이르고 잘못됨을 화(禍) 내기보다는 순서와 요령을 설명해 주기로 바뀌어 있음을 보며 부처님께 감사의 경배를 올린다.

이 모두가 자연 사랑과 부처님 법의 진리가 일맥으로 상통하는 점을 느낀다. 자연 환경보호를 열심히 외치면서도 새만금 갯벌을 막고 고속도로를 위해 산허리를 뚫고 이제는 경부운하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대체 무얼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큰 것은 부수고 망가졌는데 조그만 것을 지켜서 어찌하겠다는 심사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분들의 마음이 조금 더 열리고 자연 사랑의 발심이 하루빨리 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우리가 언젠가 돌아갈 자연이 훼손되고 망가지도록 더는 용인해서도 안 되며 지킴이 실천을 여실하게 하겠다는 발원을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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