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혜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

낯선 땅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배낭을 꾸리고 지도를 챙겨 넣으며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밤잠까지 설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이자 힘이 아닐까? 여행을 마무리하고서 다시 일상생활 속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뒤돌아보는 머뭇거림이나 망설임 없이 일상으로 회귀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성공적인 여행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했다.

물론 지금도 이렇게 지나온 많은 여행길의 에피소드, 그 흘러왔던 순간순간의 소중한 만남들, 각 나라의 특색 있는 문화충격 등 여행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감격의 순간들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고 있지만…….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발동해서인지 일본 여행은 생각보다 발동이 곧장 걸리지는 않았다. ‘여행’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배낭부터 꾸릴 나인데, 일본 여행은 날짜를 자꾸만 미루기 일쑤였다. 어느 험난한 나라, 낯선 곳에서도 금방 적응해왔는데 이상하게도 일본만은 예외였다.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 동아시아일진대 내게 있어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역사교육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 스스로 한계 지어놓은 고정관념이었다.

마침 교환학생으로 교토에 가 있는 후배 선영이의 초대가 없었다면, 그 이후 몇 년간도 스스로 마음을 내어 일본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배야 진작부터 일본으로 초대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결국 올해 2월 24일이 되어서야 일본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흙내음, 바람결, 물소리와 영롱한 별빛을 노래하며 살아온 시골 출신으로 골짜기 물이 강으로 모이듯 경주로 흘러들었고 그렇게 만났다. 자연히 소담스런 분위기와 불교문화재들이 넘실대는 경주에서 꿈을 키워왔다. 또 다른 후배 은주를 대동하고서 이번 여행길에 일본에서 모두 조우할 것을 생각하니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무엇이든 첫 느낌과 첫인상은 강렬하게 남는 법이다. 대도시 도쿄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경주처럼 문화와 옛 수도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유지시켜온 간사이 지방이 제격이었다. 일생 중에 처음 찾는 일본의 첫인상이 고풍스러운 옛 도시라면 일본에 대한 나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일반적인 교통편 대신에 크루저 배를 선택했다. 부산항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무려 18시간이나 소요되지만 저렴한 가격이 학생인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을 즐겁게 해주었다. 시간의 여유만 허락한다면 장기간·장거리의 배낭여행이 제격일 텐데, 새학기 시작의 시간제약으로 이번 여행은 아쉽지만 1주일로 정했다.

드디어 배에 몸을 싣고서 현해탄을 건넌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이 물결, 일렁이는 푸른 바다, 뱃몸에 요동치는 파도, 온몸 구석구석 스치는 바람과 밤이 되면 드넓은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

이 현해탄 위의 호화 크루저 대신 일장기가 꽂힌 낡은 배에 몸을 실었던 시인 윤동주가 불현듯 내 마음 가득히 투영되었다. 순수를 노래하며 고국의 아픔 때문에 지극한 슬픔을 지닌 채 현해탄을 건넜던 그 당시의 윤동주와 대비되게 즐거운 만남의 기대로 잠을 못 이루며 별을 헤는 내 모습도 처연해졌다.

크루저 안 객실 침대칸에 누워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 과연 이 혼란한 현실 속에서 신의(信義)와 다짐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비록 지금은 역사현장에서 핍박받고 있는 암흑 속의 일제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상처와 흠집내기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 또한 허무맹랑하게 먼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현실의 상황이 싫다고 도망을 가도 현생(現生) 어디에도 숨어들 곳이 없으며, 스며들 곳도 없다. 사랑만 하여도 부족한 이 순간순간들을 헛되이 보낼 수 없기에 한국과 일본, 관계의 재정립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서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도 그러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했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해를 따라서 그렇게 배는 움직여 갔고, 어느덧 그렇게 ‘태양의 나라’ 오사카 항에 당도했다. 코를 찌르는 바다 특유의 잔잔한 짠내음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일본어, 그 틈에서 나를 발견하고서 눈물부터 왈칵 쏟아내는 후배 선영이를 따뜻하게 안았다.
함께하는 짧은 며칠 간의 일정에서 우리 세 사람은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교토, 고베 등을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번화한 편인 오사카는 부산 느낌이 많이 났다. 도톤보리 고쿠라쿠 상점가(道頓堀極樂商店街)는 오사카의 옛 거리와 상점을 재현하고 인정활극 뮤지컬 공연도 하는 고문화(古文化) 보존과 유지를 자부하는 일본인 특유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익살스런 표정, 몸짓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즐거운 가락의 일본 옛 노래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타인에게서, 이웃에게서 배울 것은 배우고 받아들인 것은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나와 너의 상생(相生)의 길이다. 우리 한국도 우리 고유의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보전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호흡할 수 있을지를 좀 더 간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사카에서 교토로 이동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역으로 가는 길에 쏟아지는 일본인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선한 눈빛의 사람들도 지나쳐 갔지만, 눈에 가장 띄는 사람들은 차가운 눈빛과 강한 에너지를 지닌 이들이었다. 도요토미와 이에야스와 같은 전쟁과 살육의 피가 흘러서일까?

선뜩선뜩한 눈망울과 차가운 몸짓들 때문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조금은 정신이 없었다. 이 또한 내 고정관념이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눈빛은 무서웠다. 만일 봉건시대의 사무라이들처럼 옷을 입히고서 먼저 말을 건네면 딱딱한 장수다운 목소리로 대응할 것만 같았다.

‘창 밖에는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같다’던 일본살이의 느낌 대신에 우리가 마주한 교토의 아담한 불교대학교 기숙사! 창 밖에는 봄을 아쉬워하는 때 늦은 하이얀 눈발이 가득했다. 차디찬 다다미 대신에 좁지만 온기로 가득한 방안을 우리들의 수다로 더 훈훈하게 만들었다.

교토는 역사의 도시답게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옛 일본식의 진갈색 나무로 지어진 아담한 집들이 소박한 모습으로 즐비했다. 특히 불교대학 기숙사 근처는 시골풍이 느껴져서 고향에 온 친숙감마저 들었다. 버스도 전혀 급하지 않고 승·하차시에 승객들과 장애우들의 편의를 위해 펑~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도로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 사소한 모습에서 ‘문화충격’을 받았다.

이웃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 큰 감동을 느끼면서 그 순간 마음의 벽과 고정관념이 허물어져 버렸다. 이런 모습이 우리 모두가 공존하고 함께 어울어진 상생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버스가 신나게 씽씽 달릴 수는 없지만 승객의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쓰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마음이 느껴져 우리들도 덩달아 조급함이 사라졌다. 500엔 짜리 버스카드 한 장이면 교토 시내 전 지역 어디서든 마음껏 다닐 수 있어서 주머니가 또 한 번 즐거워졌다.

고베는 생주이멸의 법칙을 그대로 보여준 곳이다. 1995년 대지진으로 휩쓸려갔던 도시는 재건의 힘을 보여서 지금은 화려한 야경과 고층빌딩 숲이 당당하게 재탄생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때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고베 대지진 메모리얼 파크(memorial park)에서 자연재해의 참담함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는 아찔함을 느꼈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한계 지을 수도 없고 그저 흘러감이다. 안타까워할 찰나 없이 그저 이렇게 흘러갈 뿐이다. 간사이 지방의 여러 사찰들을 찾았지만 무상(無常)함을 가장 여실하게 느끼게 했던 곳이 교토의 긴카쿠지(銀閣寺)의 특별전이었다.

특별전은 일 년에 단 한 번 평소에 개장하지 않던 도구도(東求堂)를 개방한 것으로, 들어서면 모래와 바위만으로 이루어진 일본 특유의 정원이 먼저 보였다. 이 건물 네 모퉁이 앞에는 연못이 있고, 각각의 복도에 늘어선 병풍화폭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방 한 방에 각각 한 폭 한 폭의 그림들이 ‘무상한 심정’을 사계절로 표현한 듯했다. 그림 속 봄·여름·가을·겨울의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바세계의 순환구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일본 특유의 화려한 색채도 어색함보다는 그 순환의 주기를 부각시켜 주는 듯해 온 가슴을 도려내듯이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변화하고 변하는 순환의 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무상함이 의미 없는 허무의 그것 자체는 아니다. 실체가 없지만 여실한 그 무상함의 의미를 체감하지 못하면 그저 그 사계절의 변화가 슬플 따름이다. 이 무상해 보이는 세계도 실상은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것이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보면 깊은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삶을 연습하고, 인내하는 과정일 뿐이다.
네 칸의 건물을 돌다가 아미타여래상과 마주했다. 우리 세 사람은 마주한 일본식 불상 앞에서 합장한 채 미소 짓고 온 정성으로 삼배를 했다. 그런 뒤에 또 미소 짓는다. 우리는 상생의 삶과 인과(因果)를 여실하게 체득하며 살아가기로 서로를 응원하며 다독였다. 이왕 이번 생에 태어났기에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함께하는 신명나는 삶이길…….
한국과 일본 사이도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날 수 있음에 붓다께 감사하고 감사드리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과감하게 뒤돌아보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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