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실상과 과학 연구원 원장

미국은 20세기에도 그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아직은 세계 최고의 부강한 나라이고 가장 앞서가는 과학기술 국가로서 세계의 과학계를 리드하고 평가하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잡다한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뒤섞인 이른바 도가니(melting pot)이기도 하면서 겉으로 보기에 서로 화합하며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한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그 속을 깊이 살펴보면 종교적 아집 때문에 종교와 과학 간에 끝없는 갈등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 그것은 그 배후에 전능한 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건이 있을 때면 매스컴에서도 ‘신과 과학의 전쟁’이니 ‘신과 진화론의 대결’이니 하는 그런 제목들이 흔히 붙는다. 그와 같은 시민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러하다.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진화론이 싫습니다.”
“저는 성경이 신의 말씀이라고 믿고 창세기가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원숭이에서 인간을 만들어내지 않으셨습니다.”

미국에서 20세기에 벌어진 신과 진화론과의 분쟁 중 몇 가지만 들어보면 1925년 인간의 근원에 대해 성경 밖의 주장을 가르칠 수 없다는 소위 버틀러 조례(The Butler Act)를 위반하고 진화론을 가르쳤다가 기소된 이른바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Scopes Monkey Trial)’을 들 수 있다. 1928년 알칸사스 주는 대학을 포함한 어느 교육기관에서도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진화되었다는 이론을 가르칠 수 없다는 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은 그후 40년간 유효하였다. 1968년 미 연방 대법원은 그 법을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한 수정헌법조항에 위배된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그 후 30년간 양측의 법정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알칸사스, 루이지아나 등 15개 주에서는 형평성을 위해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가르쳤고 법정 공방도 연이어 일어났다. 법정공방은 1987년을 고비로 수그러들었다. 연방대법원이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수정헌법조항에 위배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어 미국의 과학 교사들은 진화론과의 형평성을 위해 창조론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까지도 미국의 공립학교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은 헌법에 보장한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법적으로 교육기관에서 창조론을 가르칠 수 없게 되자 창조론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이란 새로운 가설로 위장하여 들고 나왔다. 그렇게 하여 처음 일어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법정공방이 바로 2005년에 미국 펜실바니아주의 작은 도시인 도버에서 일어난 이른바 도버 재판(Dover Trial)이다. 전체 미국은 물론 세계의 이목을 모은 이 사건에 대해 미국의 매스컴들이 ‘신(神)과 과학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도버는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이다. 도버의 인구는 20,000명 정도이고 교회는 10여 개가 있으며 고등학교는 하나가 있다. 40년 가까이 도버고등학교에 재직한 과학 교사 바스 버사는 2003년 봄 도버지역 교육위원회 부위원장한테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 교육위원 한 사람이 진화론과 창조론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해 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했다. 문제를 제기한 그 교육위원 앨런 본셀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본셀과 같은 창조론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만 년이 되지 않으며 신이 엿새 동안에 모든 생명체를 지금과 꼭 같은 상태로 창조했다고 믿고 있고 아직도 진화론을 기독교의 적으로 보고 있었다.

앨런 본셀의 부탁을 받은 교육위원 빌 버킹험은 교과서 선정에 관한 요구사항들을 검토하였다. 생물학 교사들은 미 전역에서 널리 사용하는 교과서를 원했지만 버킹험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화론으로 도배한 교재라는 것이다.

당시 도버는 이렇게 진화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 소도시에 깊은 상처를 남긴 갈등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교육위원 빌 버킹험과 앨런 본셀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지적설계론을 교육에 포함시키려고 하였다. 그에 반발한 킷즈밀러 등 학부모 11명은 2004년 12월 14일 펜실바니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내용은 도버 교육위원회가 헌법을 위반하고 종교를 과학 수업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학부모측의 변호는 ‘미국 시민 자유 연맹’과 ‘정교분리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모임’이 맡았다. 교육위원회의 변호는 지적설계론을 지지하는 토마스 모어 법률센터가 맡았다. 그렇게 하여 2005년 9월 26일 펜실바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 법정에서 6주 예정으로 학부모 대 교육위원회 간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도버 재판이다.

판결을 내릴 사람은 존스(John E. Johns the 3rd) 판사였다. 존스 판사는 부시 대통령이 이 재판의 담당판사로 임명하였다. 학부모 측에서는 지적설계론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이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에 피고측 변호인과 증인들은 부시 대통령의 지원이 있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재판은 원고측 변호인들이 선정한 7명의 과학자들과 피고측 법률 대리인이 선정한 8명의 지적설계론 학자들 간에 매우 열띤 공방 속에서 진행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속내를 보이지 않던 존스 판사는 2005년 12월 20일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139쪽 분량의 판결문을 e-mail로 보냈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 지적설계론은 종교적 의도로 만들어졌으며, 그것을 도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미 헌법 수정조항에 위배된다. 지적설계론의 수업은 위헌이다. 피고측과 증인들의 주장은 대부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진화론이 신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적 가설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종교에 바탕을 둔 검증 불가능한 가설을 과학시간에 가르치거나 검증된 가설을 왜곡해서도 안 된다. 도버 시민들은 지적설계론을 교과과정에 도입해야 한다는 교육위원회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몇몇 교육위원들은 그들의 본래 목적을 숨기기 위해 거짓증언을 했다. 제시된 증거들은 교육위원회가 창조론을 교육에 끌어들이려고 하였으며 지적설계론은 그것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제시된 증거들은 지적설계론이 창조론의 재탕이지 과학적 가설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도버 재판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 결과 존스 판사는 타임지의 표지에도 올랐고 타임지가 선정한 그해 100대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존스 판사는 생명을 위협하는 e-mail을 계속 받고 있어 그와 그의 가족은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 전 인구의 삼분의 일 이상이 창조론을 진리로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도버 재판과 같은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