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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근대화와 불교 / 김제란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 그리고 현대 신유학
[22호] 2005년 03월 10일 (목) 김제란 redhairran@hanmail.net

1. 사상적, 역사적 배경

중국 근대 시기에 불교가 맡은 역할은 매우 독특하다.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으로 대변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로 인한 민족주의의 위기를 본질로 하는 중국 근대에서, 전통사상인 불교가 동서문화 교류의 계합점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서문화가 충돌하는 근대의 공간에서 불교는 서양철학에 대항하는 사상적 무기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였다.

서양사상이 새로운 시대 사조로 대두하게 되자, 근대 이전, 주자학에 눌리고 있던 불교와 양명학이 다시금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근대에 들어와 대승불교가 발전하였고, 특히 유식불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 체계적이고 정밀하며 분석적인 유식불교는 서양의 칸트나 헤겔 사상에 못지 않은 관념론 사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양의 관념론 철학이 중국에 소개되고 중국 전통사상은 인식론이나 논리적인 부분이 약하다고 비판받는 상황에서, 서양의 관념론 못지 않은 인식론과 논리로 무장한 이 동양의 관념론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식불교는 그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격 때문에 칸트나 헤겔 같은 서양 관념론을 대치할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여겨졌고, 유식불교에 대한 관심은 바로 그것이 서양과 중국 전통사상의 계합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1) 주어진 주제로 볼 때 근대화와 관련하여 상세히 서술해야겠지만, 지면 제약상 근대 중국불교사상의 변화만을 중심으로 다룬다.

근대 중국불교는 오직 유식불교를 매개로 한 것이다. 인도불교에 속하는 유식불교는 1900년 이후에 일본에서 다시 역수입되어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구체적으로 중국 근대에서 유식불교를 부활시킨 주된 동력자는 양문회(楊文會, 1837∼1911)였다. 그는 1850년 우연히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복사본을 발견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비록 유학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불교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정하였다. 1878년 그는 런던에서 막스 뮐러 교수를 만났고, 그를 통해 중국대장경의 목록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인 학생 난지로를 알게 되었다. 1890년에 그는 난지로에게 모아놓은 불교 서적들을 일본에서 보내 달라는 편지를 썼고, 그 결과 중국대장경 목록에 들어 있지 않은 수백 권의 중국 문헌들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수집된 문헌들 속에는 현장(玄훻)의 《성유식론(成唯識論)》에 대한 규기(窺基)의 주석인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오래도록 일실되었던 것이다.2)

1901년 규기의 《성유식론술기》가 간행된 뒤, 양문회는 구양경무(歐陽竟無)와 매광희(梅光羲) 등을 격려하여 유식불교 연구에 몰두하게 하였다. 이후 태허(太虛) 대사와 한청정(韓淸淨) 등의 학자들이 합류하였다. 이는 강유위(康有爲), 장태염(章太炎), 여징(呂?), 담사동(譚嗣同), 양계초(梁啓超), 양수명(梁漱溟), 웅십력(熊十力) 등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모두가 유식불교의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 근대 이후 유식불교가 새로이 부활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3)

그러나 유식불교는 원래 인도사상에 속하는 것이고, 중국불교의 전통은 《대승기신론》 계통의 천태, 화엄, 선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대승기신론》 계통의 법성종은 맹자의 성선설을 흡수하여 인간이 본래 불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 실천을 통하여 그 불성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불교에서 엄격한 논리체계를 가진 철학적 측면보다 수양과 관련된 종교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라는 시기에 불교가 서양철학과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논리체계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중국불교 전통의 깨달음에 기반을 둔 종교성을 강조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인도 유식불교의 계보를 이은 현장-규기 계열의 유식불교를 진정한 불교철학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중국적 전통을 이은 《대승기신론》의 이론을 진정한 불교철학으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당시의 지적 분위기와 연관된다. 서양문화의 충격으로 동양의 전통철학을 반성하게 되는 지성적이고 비판적인 분위기에서 지적인 이해가 없는 신앙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은 신앙을 강조하는 《대승기신론》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대승기신론》과 완전히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유식불교가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대승기신론》이 중국불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중국의 정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비판에 반대하였다.

실제로 1920년대 이래 중국 불교학계는 《대승기신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전개하였다.4) 이러한 논쟁은 1920년대에는 구양경무와 태허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뒤에는 남경내학원(南京內學院)과 무창불학원(武昌佛學院) 학자들로 이어졌으며, 1950년대에 인순(印順)과 여징의 논쟁으로 재현되었다. 《대승기신론》을 비판하는 구양경무의 입장은 후대에 장태염, 왕은양 등 내학원 학자들과 여징의 견해로 계승되며, 이에 반대하는 태허의 입장은 양계초, 진유동, 당대원 등 불학원 학자들과 인순의 견해로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 근대불교는 구양경무가 재생시키려 한 유식불교, 태허의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한 전통 중국불교의 옹호, 그리고 유식불교에서 시작했지만 이를 비판하고 유학과 결합하여 근대화된 새로운 철학을 시도한 웅십력의 신유식론(新唯識論)이라는 세 갈래 조류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국 근대불교의 이 세 가지 상이한 형태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2. 유식불교의 부활: 구양경무와 남경 내학원 학자들

철학적으로 볼 때 유식불교는 본체와 현상, 진여와 현상, 법성과 법상을 구분하는 것이 해탈의 목표를 분명히 하게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봄과 동시에, 분석적·과학적 방법을 택함으로써 신앙에 의한 구원을 저평가한다. 반면에 《대승기신론》은 주로 본체와 현상의 종합이라는 교리, 그리고 진여를 우주의 마음(宇宙心)으로 파악하는 관념론에서 그 사상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5) 《대승기신론》은 본체와 현상, 진여와 현상, 법성과 법상을 일치시켜 봄으로써 모든 중생의 불성을 확신하는 보편적인 구원을 주장하며, 이는 신앙에 의해 가능해진다. 유식불교는 엄밀하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철학인 반면, 《대승기신론》은 일원론, 또는 전체성의 철학이다.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근대라는 시기에 전체성과 단일성의 철학보다 개인적이고 다양한 철학이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구양경무(歐陽竟無, 1871∼1944)이다.
구양경무는 불교의 주된 사상은 공종, 유종의 두 종이라고 보고, 이와 다른 중국불교의 진여연기론을 비판하고 유식불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불교는 불교의 이론적 측면을 도외시한 맹목적 깨달음으로서, 미신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비판하였다.6) 그는 특히 선종 등 기존의 중국불교가 불교의 이론적 측면과 학문적인 관찰을 중시하지 않는 점을 주로 부각시켜 비판하였다. 과거 중국불교의 흥성으로 ‘불교의 진정한 의미가 미약해졌고’ ‘서방불교의 불법과는 비교할 수 없고’ ‘불법의 빛이 어두워졌다.’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이상의 폐단을 제거하려면 먼저 유식, 법상의 문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7)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중국불교가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는 원인은 그 학설의 근거가 《대승기신론》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구양경무가 《대승기신론》을 비판하는 논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진여가 훈습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자 없이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식불교에서는 진여가 의식의 세 가지 전변에 포함되지 않으며, 언제나 부동의 상태로 남아 있고 자기 보전적이며 영원하다. 단지 본래부터 존재하는 유루종자와 무루종자가 장식에 근거해 있고, ‘깨끗한 것은 그 깨끗함을 확대하고, 더러운 것은 그 더러움을 확대한다’는 방식으로 현행이 생겨난다. 즉 장식에 있는 종자들의 현행으로 현상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하게 된다. 그러나 구양경무가 보기에, 이러한 훈습과 현행의 상호작용은 어디까지나 ‘상(相), 용(用) 중의 일이고, 체(體)와는 관련이 없다.’ 진여는 부동의 상태로 이들 종자들과 떨어져 달리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양경무는 진여의 성격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논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진여를 ‘부동(不動)’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은 옳지만, ‘수연(隨緣)’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구양경무가 보기에, 진여는 적멸적정하고 부동하며 현상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것이므로 결코 훈습의 대상이 될 수 없다.8) 유식불교의 아라야식 연기설에서는 염정(染淨) 종자를 따로 분리하여 설정하기 때문에 깨끗한 진여와 오염된 현상을 혼동할 염려가 없는 반면에, 《대승기신론》의 진여연기설에서는 깨끗한 진여가 오염된 현상으로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염정(染淨)이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못하고 따라서 더러운 현상이 깨끗한 진여에서 나온다는 모순이 생겨난다. 깨끗한 진여와 오염된 현상이 상호 융합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더러운 현상을 혁파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목표 설정이 어렵게 된다. 그리하여 구양경무는 진정한 연기론은 유식불교의 아랴야식연기뿐이라고 결론지었다.

구양경무의 뒤를 이어 남경내학원 학자들도 역사적 고증의 방법과 인명학(因明學)의 방법을 활용하여 《대승기신론》을 비판하고, 이를 위론이라고 판정하였다. 1950년대 들어 구양경무와 동일한 입장을 취한 여징은 《대승기신론》이 인도불교의 위서에 지나지 않으므로 별로 가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이 제기한 ‘진심본각설(眞心本覺說)’은 인도불교의 ‘심성본적(心性本寂)’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수양의 방법도 ‘반본(返本)’이 위주가 되어 인도불교에서 ‘혁신(革新)’을 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적(性寂)’과 ‘성각(性覺)’이라는 두 용어는 인도불교학설과 중국 위설의 근본적인 변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하나는 자성열반(즉 性寂)에 근거를 두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성보리(즉 性覺)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는 새롭게 고치는 것(革新)이고 다른 하나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返本)이므로, 서로 상반된다고 한다.9)

여기에서 말하는 ‘성적’‘성각’이라는 용어는 심성이 본래 깨끗하다는 것(心性本淨)의 두 가지 해석이다.10) 그러면서도 여징이 성각을 위론이라고 보는 이유는 성적만이 심성이 본래 깨끗하다는 데 대한 올바른 해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11) ‘성적’은 오염된 현상을 떠나서 외부의 절대 경지인 진여, 진리에 의지하여 바꾸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여의 세계는 현상세계와는 분명하게 분리되어 존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유식불교의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진여의 세계를 자성열반이라고 한다. 반면에 ‘성각’은 내면의 각성의 힘을 중시한다.

인간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자각에 의해 스스로 밝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심성 자체가 진여의 표현이라는 중국불교의 사고방식이다. 이때에는 오염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객진(客塵) 때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를 자성보리라고 한다. 여징은 성적의 입장은 오염된 것을 오염된 것으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하므로, 오염된 것을 떠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각은 오염된 것을 깨끗한 것으로 잘못 알고 그대로 확대해 나아가므로, 결국 오염된 속에 빠져 버리고 말게 된다고 중국불교를 비판한다.12)

여징이 보기에 이것은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나누어지게 되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다. 중국불교는 《대승기신론》에서 시작하여 《점찰(占察)》을 거쳐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원각경(圓覺經)》 《능엄경(楞嚴經)》까지 일맥상통하게 성각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본다.13) 이러한 성각의 관점을 취하는 일련의 불경은 모두 위론, 위서에 속한다는 것이 여징의 생각이다. 유식불교에서는 진여를 생멸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아라야식과 진여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아라야식만이 현상계의 본원이 된다고 본다. 그런데 모든 중생이 아라야식에 본유의 무루종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가진 것이 아니어서 모두가 부처가 될 수는 없다.

이에 반하여 중국불교에서는 불성인 진여가 항상 편재하고 있으므로,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14) 유식불교는 자신 속에 존재하는 더러운 것(染)을 모두 깨끗한 것(淨)으로 바꾸어 가야 하기 때문에 ‘혁신’이라고 할 수 있고, 《대승기신론》과 이에 근거한 중국불교에서는 이미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불성, 즉 마음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심성을 되돌아봄으로써 깨달을 수 있으므로 ‘반본(返本)’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징은 진정한 변화는 ‘혁신’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유식불교의 관점을 전적으로 옹호하였다.

3. 전통 중국불교의 옹호: 태허와 무창불학원 학자들

태허(太虛, 1889∼1947)는 중국 근대에 불교의 개혁과 재생에 선봉 역할을 하였던 실천적 승려이다. 그는 구양경무와는 반대로 전통 중국불교를 추숭하였고, 선종의 사상이 중국불교 개혁의 최대의 정신적 동력이라고 파악하였다.15) 태허가 보기에, 불교의 여러 종파의 사상은 모두 평등하며 상호 융섭되어 있고, 중국불교도 인도불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불교만이 불교의 핵심을 파악하였다.”16)라고 하여 중국불교를 유식불교에 비해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중국불교가 비판을 받으면 중국 정법의 명맥이 그치고 서양 문화의 도전에도 맞설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중국불교를 비판하는 구양경무의 견해에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중국불교에 대한 구양경무와 태허의 이와 같은 대조적인 견해는 우선 순위를 철학에 둘 것인가, 깨달음이라는 종교에 둘 것인가의 차이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논리적, 철학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구양경무의 입장은 유식불교를 지향하게 되고, 철학적인 접근과 함께 종교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태허의 입장은 중국불교를 지향하게 된다.

실제로 태허는 《대승기신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성격을 오히려 옹호하였다. 태허가 보는 진여는 《대승기신론》에서의 진여와 같이 ‘절대부동(絶對不動)’과 더불어 ‘수연(隨緣)’의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17) 그는 법성과 법상을 통일하는 논리를 제시하고, 법성과 법상을 병행하여야 만유의 근본 원인과 그 본질을 추구해 볼 수 있다고 본다.18)

그리고 이러한 법성과 법상의 통일적 논리를 《대승기신론》 체계 안에서 찾는다. 그는 본체와 현상이라는 두 가지 세계가 한 가지 같은 진리의 두 측면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체와 현상은 진여의 두 측면이고, 단일성과 다양성은 존재의 두 가지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은 여러 차별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라는 원교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는 불교의 새로운 이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가 한 일은 불교 여러 종파의 특징들을 결합하고 모순들을 제거하여 유식불교와 화엄, 천태 불교를 조화시킨 것이었다. 실제로 무창불학원에서의 태허의 강의는 모든 불교 종파에 대해 이루어졌으며, 그는 종합이 중국사상의 발전을 가져온 가장 큰 특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는 《대승기신론》의 진여연기론의 합리성을 강조하고 이를 우회적으로 변호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무창불학원 학자들도 남경내학원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대승기신론》과 중국, 인도불교의 관계를 둘러싸고 《대승기신론》의 진위를 판정하려고 하였다. 남경내학원 학자들이 《대승기신론》을 위론이라고 판정하고 그 사상을 소승불교나 외도(外道)의 학설이라고 비하한 반면, 무창불학원 학자들은 중국 전통의 ‘체용불이’ ‘원융무애’ 사상에 기반한 ‘원극일승’의 대승불교라고 생각하였다. 《대승기신론》은 당연히 인도의 마명이 지은 것이고, 그 사상은 인도 공종과 유종 두 학설이 서로 위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두 가지를 초월적으로 통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승기신론》이 인도의 찬술일 뿐만 아니라 인도불교 최고의 발전이라고 보았다. 불학원 학자들은 《대승기신론》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중국불교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때문에 극력 그 합법성을 옹호하고 중국불교의 가치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서양문화의 도전이 거센, 근대라는 시기에 동양의 전통과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승기신론》과 유식불교가 서로 회통한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인순(印順, 1906∼ )이다. 인순은 중국불교의 핵심인 《대승기신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대승기신론》이 진심(眞心),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중심으로 한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에 속한다고 보았다.19) 《대승기신론》의 ‘중생심’은 생멸하는 잡염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그 본질은 불생불멸이고 청정하므로, 유심(唯心)이면서도 진상(眞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도의 유식불교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20) 그런데 이러한 사상적 특징은 중국불교가 그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 사상에 근거하여 진여의 ‘불변(不變)’의 측면과 ‘수연(隨緣)’의 측면을 융합함으로써 유학의 성선론 경향과 일치하게 됨을 의미한다. 현상계가 본체인 진심의 현현임을 말하는 진상심 사상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면에서 유가의 성선론 경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순은 중국불교와 유학을 아우르는 동일한 정신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중국불교를 잉태한 《대승기신론》에서 찾으려 하였다.

4. 불교의 유학화: 웅십력의 신유식론

중국 근대에서 유식불교를 추종하는 학자들과 《대승기신론》을 옹호하는 학자들 간의 논쟁은 많은 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보다 독창적인 제3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웅십력의 신유식론(新唯識論)과 그를 바탕으로 한 현대 신유학의 등장이다.21) 웅십력의 신유식론은 유식불교를 비판하되 유식불교의 논리와 용어를 그대로 활용하여 전통 중국불교를 유학화시킨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본래의 마음(本心)’, 또는 ‘우주의 마음(宇宙心)’이라는 본체가 현상으로 현현한다는 사상이다.

그는 관념 작용(識)의 원인으로 종자를 상정하는 유식불교에 반대하여, ‘우리 마음 속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에너지’를 원인으로 제기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속뿐 아니라 전 우주에 흐르는 생명의 힘, 즉 생명력으로서 본체에 해당한다. 이것은 유학의 생명 본체이자 도덕 본체의 전통을 잇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웅십력 철학은 《대승기신론》을 지지하는 입장과 방향이 일치한다. 사상적으로 중국불교가 진상심 사상 중심으로 된 것은 유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상계가 본체인 진심의 현현임을 말하는 진상심 사상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학의 성선론 경향과 일치한다.22) 사람이면 누구나 진심, 자성청정심, 불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중국불교의 인식은 사람은 본래부터 선성(善性), 양지(良知), 사단지심(四端之心)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유학의 사고방식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23) 따라서 《대승기신론》의 중국불교적인 성격은 유학사상에 대한 긍정과 연결될 수 있고, 현대 신유학이 구양경무와 내학원 학자들이 견지한 유식불교를 비판하면서 태동하였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웅십력의 신유식론은 《대승기신론》에 근거한 진상심 사상에 가깝다. 예컨대 태허는 웅십력의 신유식론이 진여종(眞如宗)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고,24) 인순도 웅십력 사상이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에 가깝다고 판정하였다.25) 여징은 “그대의 논의는 완전히 ‘성각(性覺)’에서 나온 학설로, 중국의 모든 위경, 위론과 한 콧구멍에서 나온 숨이다.”26)라고 하여, 웅십력의 신유식론이 중국의 위서와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비판하였다. 웅십력 자신은 성적과 성각을 구분하는 견해에 대해서 반대한다.

성적과 성각은 본성의 서로 구분할 수 없는 두 측면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27) 웅십력은 성적은 본체의 적정(寂靜)한 면과, 성각은 본체의 끊임없이 흐르는 생성 변화의 측면과 연결시킨다. 웅십력 본체가 가지고 있는 불변의 측면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측면을 성적과 성각이라는 말로 표현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유식론》은 근본적으로 불교와 유학을 융합하여 형성한 체계라는 것이다.28) 이때 성적은 불교, 성각은 유학에 해당한다. 따라서 웅십력은 “성각을 위론이라고 구분한다면, 위론도 존중받을 만하다.”29)고 하여 《대승기신론》을 폄하하는 견해에 반대한다.

웅십력에게 유식불교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라는 성격과 함께 본체와 현상(종자와 현행)을 이분하고 있다는 특징 때문에 그와 동일한 특징을 가진 서양 철학의 대리로 나타나게 된다. 반면에 《대승기신론》과 중국불교는 진여연기론이 갖는 성선론적 성격 때문에 동양의 정통 사유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웅십력에게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 사이의 논쟁은 서양과 동양사상의 대리전이라는 성격으로 이해되었다. 웅십력의 주저인 《신유식론》은 문자 그대로 유식불교를 비판하고 ‘새로이 제기한 유식사상’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때 그의 유식불교에 대한 공격은 사실은 그와 동일한 특성을 지닌 서양철학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웅십력이 보기에 유식불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종자계와 현행계를 구분함으로써 본체와 현상을 이분하였다는 것과 진여 외에 종자를 본체로 파악함으로써 이 중 본체의 문제를 야기하였다는 것이다.30) 그런데 유식불교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사실상 서양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는 것이다. 유식불교나 서양의 형이상학 모두 본체와 현상의 이분을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웅십력 철학의 핵심은 도덕적 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현실성의 긍정이다. 그를 위해 웅십력은 초현실적인 성향의 유식불교를 비판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妙有) 현실 긍정의 중국불교를 수용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을 싫어하여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인도불교의 해탈이었다면, 이 세상에서의 번뇌가 그대로 해탈의 모습(煩惱卽菩提)이라는 현실 긍정의 종교가 중국불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성의 긍정이 의미하는 것은 동양이 도덕적인 면에서 우월하다는 민족주의적 자각이다.

즉 제국주의라는 서양의 도도한 악의 물결이 동양을 침범한다고 해도 동양의 바탕은 성선론을 통한 인간 긍정과 현실 긍정에 있으며, 동양은 결국 도덕의 측면에서 서양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현실세계 외에 피안의 또 다른 세계는 없으며, 따라서 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도덕적 행위는 최대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웅십력 철학은 송명 성리학의 현세적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되, 신분 계급 질서(禮)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봉건제 대신 반봉건, 반외세의 시대적 변화를 수용한다.

결국 웅십력의 신유식론은 맹자 성선론의 현대적 수용을 위한 장치이다. 그는 이를 통해 중국불교의 진여연기관과 유학의 성선론을 결합하고, 서양에 대한 동양의 도덕적, 철학적 우위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역사적 변환기에 개인 각자의 도덕적 결단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와 연결된다. 유식불교를 매개로 한 웅십력의 철학은 다음 세대 현대 신유가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당대 지식인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5. 근대 중국불교의 성격

동양에서 근대란 단순한 시대 구분만은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동양의 근대는 서양의 충격이라는 세계 체제적 시각과 동아시아의 시각을 결합해 보아야 하고, 따라서 모든 동양 근대사상의 기본 전제는 바로 서양사상과의 대결이다. 이는 중국불교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 근대에 불교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구양경무와 내학원 학자들을 중심으로 유식불교를 재검토해 보았고, 태허와 불학원 학자들은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전통 중국불교의 성격을 재검토해 보았다. 그 흐름을 이은 웅십력을 비롯한 현대 신유가는 불교와 유학의 결합으로 새로운 근대철학을 모색하였다. 유식불교의 부활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유식불교의 이성적, 사변적인 논리 정신을 근대 이후 서양철학의 유입에 대응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생각하였고, 이와 동시에 근대성의 중심이라 할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전통 중국불교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기신론을 부정하는 것은 중국불교를 부정하는 것이고, 중국불교의 정신을 분명히 살릴 때 오히려 서양철학에 대항할 진정한 힘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웅십력의 신유식론에서 더욱 분명하게 계승되었다. 그는 자신의 본체론 철학이 서양철학의 잘못을 구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31) 웅십력에게 서양철학은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은 희론에 불과하며, 서양의 물질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동양정신의 우월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근대 중국불교는 동서문화의 충돌이라는 시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중국불교는 전통불교에 근거를 두고 서양사상과의 대결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응답하여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

김제란

고려대 철학과 및 동대학원 철학과 졸업(동양철학 전공). 한림대 부설 태동고전연구소 수료. 철학박사. 현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중. 논저서로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공저), 《역사 속의 중국철학》(공저), 〈熊十力 哲學思想 硏究: 동서문화의 충돌과 중국 전통철학의 대응〉(박사학위논문), 〈송대 성리학에 미친 불교의 영향〉, 〈명대 심학에 미친 불교의 영향(Ⅰ)(Ⅱ)〉, 〈현대신유학의 철학적 과제〉 등이 있고, 번역서에 《중국의 과학과 문명》 《현대신유학》(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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