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섭 국회공보관

당신은 분지(盆地)를 한눈에 확연히 본 적이 있는가? 청소년 시절을 대구에서 자란 필자는 대구분지란 말을 귀로는 늘 들어 왔지만 앞뒤의 비슬산이나 팔공산을 더러 오르내리면서도 대구를 왜 분지라고 하는지 눈으로 확인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한눈에 분지란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고 확연히 본 적이 있다. 바로 울릉도 성인봉 아래 7, 8백 미터쯤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나리분지를 올랐을 때다. 사방 직경이 활 두세 바탕쯤 됨직한 널찍한 땅뙈기가 성인봉 산마루에 떡판마냥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그 사방을 성곽 같은 나지막한 산마루가 병풍처럼 삥 둘러쳐져 있는 게 아닌가. 말 그대로 초대형 화분이었다.

이곳에 비가 쏟아지면, 빗물이 빠져나갈 데가 없는 만큼 금세 무릎까지 차 올라 왕사와 자갈투성이인 땅 밑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내려간다. 이렇게 땅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을 복류(伏流)라 한다. 땅속에 엎드려 흐르는 물이란 뜻이다. 산마루 옹달샘에서 시작되어 내려오던 실개천이 갑자기 보이지 않다가 몇십, 몇백 미터 아래에서 다시 땅 표면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을 산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나리분지의 복류는 땅 속에서 폭포처럼 떨어지고 흘러내려 울릉도 북면 해안에 있는 천부로 내려가는 어귀에서 비로소 땅 위로 솟구쳐 오른다. 복류로 수백 미터를 내려온 만큼 그 용솟음치는 힘이 그야말로 대단한 자연분수를 이룬다. 이 자연분수 때문에 저절로 이루어진 연못이 용출소(湧出沼)였다. 용출소를 들여다보니 땅 속에서 마치 용암이 분출하듯이, 물이 용트림을 하면서 치솟는 힘이 내 온몸에 그대로 찌르르 전해져 오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물이, 물이 아닌 듯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어떤 물하고도 용출소의 물은 달랐다. 세상에 이런 물도 있다니! 아니 물의 본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까? 너무 맑았다. 너무 맑고 깨끗해 도저히 물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복류를 거쳐 나온 물은 항상 맑고 깨끗하고 강한 법이라지만, 나리분지에서 복류로 내려온 용출소의 물은 아예 이 세상의 물이 아니었다.

한강의 첫 발원지인 태백산 속 검용소의 솟구치는 검은 물을 몇 해 전 찾아본 뒤 돌아다오면서 눈에 띤 동네 개울물 또한 물이 아니었고, 그 물에 비친 내 얼굴, 네 얼굴은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태초의 물 아닌 물은 이 땅 두 곳에서나마 접할 수 있었는데 태초의 사람 모습은 여태 만난 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대구분지처럼 확연하지 않다.

갖가지 요란한 색과 향과 맛으로 오염된 분별의 물만 대하다가 우리 모두는 무색·무미·무취한 원래 물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이나 아닌지…….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기 전에 물의 본래면목부터 찾아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은 물이 아니고,
그래도 물은 물일 수밖에 없는데,
그럼 물이 무(無)이고, 무(無)가 물이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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