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서평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시 보는 티벳 / 강종원
―R. A. 슈타인 저, 안성두 역, 《티벳의 문화》(서울: 무우수, 2004)―
[22호] 2005년 03월 10일 (목) 강종원 boss2112@hanmail.net

1. 티벳열풍과 《티벳의 문화》 출판의 의의

   
최근 우리 사회의 관심사에서 '티벳' 혹은 '티베트'1)에 관한 내용은 점점 더 비중을 높여가고 있고, 이 현상은 가히 열풍이라 불릴만하다. 1) {{ ) '티벳' 혹은 '티베트'(Tibet)란 말은 고대의 명칭인 '토번'(吐藩)을 음역하여 전하면서 서방으로 전해진 이름이다. 티벳인 스스로는 자신들을 '뵈'(bod)라고 부르는데, '티벳사람'은 '뵈빠'(bod pa), '티벳문자'는 '뵈익'(bod yig) 등으로 표현된다. 서구식 표현인 'Tibet'을 일본인들은 '치베토'(チベット)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음성학적으로 모음의 수가 적고 종성(받침) 표현에 약한 일본어의 단점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보통 영어권에서 2음절인 '티벳'에 가깝게 발음되며, '티벳인'(Tibetan)이란 말도 '티벳튼'이라고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 사전에 실린 '티베트'는 한국의 불교학자 혹은 티벳불교 연구자들이 초기에 일본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생겨난 발음방식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글의 장점 중 하나는, 아마도 음성학적으로 원어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티베트'라는 표현은 조속히 '티벳'이란 표현으로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티벳열풍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티벳불교'를 빼고는 이것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20세기 중후반부터 서구,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티벳불교 열풍은 이제는 새로운 현상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비단 티벳불교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지만, 조성택은 "미국사회에서의 불교가 더 이상 동양에서 온 신비하고 비의(秘意)적인 종교가 아니며, (중 략) 불교인구가 약 칠백만을 헤아린다는 최근의 미국에서 일어나는 불교 붐은 미국 주류사회의 중요한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구에서의 불교의 미래>, 《불교평론》 제16호 (서울: 불교평론사, 2003), p.285.}}

배우 리차드 기어의 티벳사회 돕기 운동은 너무도 유명해서 더 이상 미디어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 외에도 수많은 뮤지션과 아티스트들, 과학자, 인문학자 등 그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티벳불교 열풍은 마치 '웰빙(well-being)' 열풍과도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미국에서 '반문화'라 불리는 요가나 명상과 같은 활동들이 각광받게 된 데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히피' 즉, 소위 '여피(yuppie)'로 불리는 이들이 히피족 시절 몸에 익힌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자본주의적 도시생활에 구현한 새로운 삶의 한 방식(mode)이었다. 최근엔 '여피'란 말이 '뉴욕의 부유한 인텔리'란 말로까지 왜곡되어 수입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웰빙 열풍'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기'로 변질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는 히피세대3)를 갖지 못한 한국사회의 불행한 역사가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4)3){{ ) 1969년 여름 반전(反戰)과 평화를 추구하며 2박 3일간 펼쳐진 축제 '우드스탁 락 페스티벌'이 상징하는 이들 세대는, 이제 서구와 일본에서 50-60대가 되었고, 그 중 많은 이들이 주류적인 사회적 위치를 점하거나 선도적 지식인으로 성장하였다.}} 4) {{ ) 박정희 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 가운데 '신중현'으로 상징되는 히피세대를 사장시킨 것은 더없이 불행한 일이다. 제도적 불합리들은 제도만 바꾸면 되겠지만, 사회의 근본적인 문화적 변화는 바로 그 문화를 몸에 익힌 인적 자원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이다.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일본이나 서구 학자들을 만나보면, 일과 대인관계 모두에서 유연한 태도와 방식이 엿보인다. 바로 그 이면에 그들이 젊은 시절을 히피로 지냈거나 히피문화의 영향 하에서 보낸 영향이 작용함을 알고 나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보다 명료히 드러난다. 여유 있는 미소를 지닌 사회적 기간세력을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폭넓게 형성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필자만의 편협한 생각일까.}}

하지만 티벳불교에는 웰빙 열풍의 사조와는 분명히 다른 요소들이 자리한다. 우선 달라이 라마라는 도덕적 인격과 합리적 지성, 그리고 종교적 법력(法力)을 함께 갖춘 위대한 지도자가 그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 그리고 환생을 통한 윤회관의 현실적 구현을 주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티벳이 중국의 폭압에 맞서 불교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비폭력저항'에 나선 피압박 민족이라는 점과, 잘 조직화된 교단을 통한 체계적인 포교와 수행공동체가 가져야만 할 내용과 형식을 두루 갖춘 점도 들 수 있다.

그리고 소소한 내용이긴 하지만, 티벳이 지리적으로 신비감을 자아낼만한 오지라는 점과 산업화 이전의 자연친화적 유목문화를 가진 점도 현대인들에겐 호소력을 갖고 있다. 또한 전문 지식인들에겐 '티벳대장경'이란 보고(寶庫)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산스끄리뜨어로 쓰여진 인도의 원전들이 소실되어버렸거나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은 문헌들도 티벳어로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티벳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 관심의 정도나 출판의 활성화에 비해 티벳에 대해 포괄적 지식을 전해주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티벳'에 대한 관심이 주로 '티벳불교'에 대한 관심에 집중되어, 그나마 불교나 명상을 중심으로 한 논의에만 국한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티벳이라는 민족 혹은 국가를 중심으로, 그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은 세계적 범위에서 살펴보아도 그리 많지 않다.5)5) {{ ) 김규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불교사(佛敎史) 이외에는 제대로 쓰여진 편년체(編年體)적 티베트 역사서는 본토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티베트 역사산책》(서울: 정신세계사, 2003), p.17.}}

현재 우리말로 소개된 개설서들로 주요한 문헌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야마구치 즈이호·야자키 쇼켄 공저, 이호근·안영길 공역,《티베트 불교사》(서울: 민족사, 1990)

이 책은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티벳학 개설서였다. 이 책은 거의 전적으로 불교의 역사에만 논의를 국한시키고 있으며, 매우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엔 부담이 따른다. 만일 다른 정보들을 폭넓게 알고 있는 상태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규현, 《티베트 역사산책》(서울: 정신세계사, 2003) 및 《티베트 문화산책》(서울: 정신세계사, 2004)

예술가이자 저술가, 전직 승려, 작가 이외수의 막역지우로서 홍천의 강가에 수리재(水里齋)라는 이층 초가집을 짓고 사는 다정(茶汀) 김규현은 그 기인(奇人)으로서의 풍모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런 인물됨과 별도로, 그가 저술한 책들은 한국의 티벳학에 큰 다리를 놓았다고 평가할만하다(저 두 권의 책 외에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 포탈라에서 수미산까지》[서울: 도피안사. 2000]가 있다).

그는 장기간 티벳에 체류하면서 티벳미술과 티벳어를 공부했고, 중국유학을 통해 방대한 중국 측 자료들도 연구했다. 현재 티벳학은 일본을 포함하는 서구적 관점과 중국 측 시각이 내용과 방법론 등 여러 면에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자에 속하는 연구자들이 주로 인도학(Indology)을 중심으로 산스끄리뜨어 등과 관련해 연구하며 중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자료를 폭넓게 살핀 김규현의 저술은 무척 가치 있는 것이다. 그의 3부작은 매우 훌륭한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대중적 흥미, 그리고 시각예술가인 그가 직접 촬영한 화보까지 곁들여져 있다.

티벳어에 능통한 그는 주요한 용어들을 적절하고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소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더구나 제도권 학계가 아닌 재야학자의 손에서 이러한 저술이 나왔다는 것은 대단히 놀랄만한 일이다. 그의 저술들을 본고가 다루고 있는 슈타인의 《티벳의 문화》와 함께 교차로 읽게 되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김규현의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에 슈타인의 책이 빠진 것은 의외의 일이다.

    김한규, 《티베트와 중국: 그 역사적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이해》(서울: 소나무, 2000)

서강대 사학과 김한규 교수의 저술. 티벳학자가 아닌 지역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티벳과 중국 관계학의 쟁점 및 주요한 연구목록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사건의 전개도 기술하고 있다.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책으로 전문적으로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할만하다. 특히 불교학이나 인도학, 종교학 등의 자료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들이 다수 참조되어 있어 유용하다.

이 중 김규현과 김한규의 책은 번역이 아니라 저술이란 점에서 가치를 갖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 면에서도 영어나 일본어로 출판되었다면 상당한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책들이다. 최근의 이러한 출판 흐름을 이어 그 정점을 보여줄 만한 또 한 권의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바로 안성두 교수(금강대학교 불교문화학부)가 번역한 R. A. 슈타인(Stein)의 《티벳의 문화(La Civilisation Tib taine)》이다.

슈타인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 1990년 사망 시까지 오랜 기간 파리의 '꼴레쥬 드 프랑스'(Coll ge de France)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스땅'이란 프랑스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6) 6) {{ ) 가령 일본어 번역서도 그의 이름을 '스땅'(R. A. スタン)으로 표기하고 있다. 山口瑞鳳·定方 晟 譯, {チベットの文化}(東京: 岩波書店, 1971) 참조.}}

그의 주요 저서인《티벳의 문화》는 티벳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친 균형 있는 서술로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본어권에서는 티벳학의 대가 야마구치 즈이호(山口瑞鳳)가 두 권으로 저술한 《티벳(チベット) 上·下》7)이 출판되어 이 두 문헌이 학술과 교양의 양면 모두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7) {{ )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마이니치(每日)출판문화상'을 받은 저술이다. 상권의 초판은 1987년에 나왔고, 하권의 초판은 1988년에 나왔는데, 필자가 구입한 책으로 보면 하권만 2004년 개정판으로 되어 있다. 상권의 개정판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야마구치 즈이호는 원래 불교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저서《티벳》이 문화와 풍토, 여타 종교에 대한 장들을 포함함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중국학 연구자로 출발한 슈타인과는 여러 면에서 관심과 논의방식을 달리한다.

티벳학 전반에 관한 폭넓은 내용들이 전달되어야 할 현 시점에서, 슈타인의 《티벳의 문화》가 신뢰할만한 번역자에 의해 출판된 것은 학계 전체로 보아도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언젠가 야마구치 즈이호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은 바 있으며, 일본의 신진 티벳·몽골 불교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오노다 슌조(小野田俊藏) 교수에게 필자는 적절한 개설서에 관한 조언을 구한 바 있다. 8) {{ ) 오노다 교수에 대해서는 필자가 《법보신문》 제744호(2004. 2. 25. 참조), 세계의 불교석학들 제13편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야마구치 즈이호의 책과 슈타인의 책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슈타인의 책이라고 추천하였다. 슈타인 저술이 가진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2. 티벳, 어떻게 볼 것인가

본고를 작성하는 동안, 달라이 라마가 4월 중순 일본에서 한국 불교신자들을 위한 특별법회를 개최할 것이란 보도를 접했다.9) {{ ) 한국 불자를 위한 법회는 달람살라와 뉴델리에서 개최된 바 있지만, 일본이라는 지근거리에서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2005년 2월 2일자 참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 세계평화의 심볼로 등장한 이 망명정부의 수장은 이제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을 제외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전 국민의 3분의 1 이상이 불교 신자인 한국에, 그리고 심지어 똑같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의 치세 동안에도 달라이 라마는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물론 경제적으로 필연적 의존관계로 성장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한국정부의 외교정책과, 동북아의 민감한 지정학적 상황이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사실이다. 그러나 범죄자나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자가 아닌, 적어도 한국에 대해 배타적 자세를 조금도 보인 바 없는 이국의 한 종교지도자가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입국을 거부당하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문제점을 던져준다. 굳이 친 티벳파 한국인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가 한국 땅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될 보다 합리적 이유를 들을 권리가 있다. 만일 그러한 이유가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면, 그의 입국으로 인해 한국의 안위가 얼마나 위협받을지에 대해 책임 있는 설명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의 방문에 찬성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제시된 결론을 한국이란 공동체가 하나의 사회적 합의로서 받아들일만한 것인지 정도의 논의는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그의 한국방문이 거절당하는 어떠한 합리적 설명도 공식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티벳이란 존재를 한국사회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당장 그의 입국 여부 자체가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되는 이 나라에서, '티벳'이란 이름을 '파키스탄'보다 더 먼 타자로 놓아두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

먼저 국가적 이익을 고려하는 실리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 경우 대 중국정책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티벳에 대해 전략적으로 연구한다는 보고는 찾아볼 수 없다. 가령 티벳의 자치 혹은 독립이 중국의 국가질서에 미치는 영향과 파장이라든지, 만일 그것이 현실화되었을 때 나타날 후폭풍으로서 위구르나 몽골, 혹은 만주의 문제,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과 중국의 영토분쟁 등의 가상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전략적으로 연구할만한 주제이며, 황당한 가상 시나리오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

혹은 대 중국정책에서 티벳과의 관계를 미국이나 일본처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연구도 수행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한편, 친티벳주의자 혹은 도덕적 원칙주의의 입장에서 살펴보아도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현재로서는 티벳의 도덕적 정당성이 그들에겐 자명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라는 도덕적 개인으로 인해 현재 대부분의 문제들은 수면 아래 잠복되어 있다.

가령 '달라이 라마제(制)'라는 특유의 권력창출과 집권방식이 가진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적어도 티벳역사를 통해 달라이 라마제 하에서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던 여러 시기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단순히 현재 한 사람의 성군(聖君)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설득력을 갖긴 어렵다. 혹은 현재의 티벳임시정부 체제하에서 달라이 라마의 친인척 중심 인사관행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점 등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티벳 임시정부에 대해 비판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에 대해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기 힘든 도덕성을 가진 위대한 종교지도자와 그 불굴의 의지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의 공동체, 즉 한국사회가 친·반 티벳파 어느 쪽을 막론하고 아직은 무지의 언덕 너머에서 거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지'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 무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란 국가가 티벳을 연구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티벳학'이라는 학문공동체 혹은 학계가 아직 성립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10) {{) 현재 한국에서 티벳어 및 티벳불교를 강좌로 개설한 대학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가 유일하다. 그러나 인도철학과는 인도의 고전문헌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티벳학을 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2004년 가을에 열린 한국인도철학회 학술대회는 티벳불교만을 주제로 다룬 행사로, 한국 티벳학의 저변 확대를 보여준 최초의 제도권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티벳학을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보는 것은 아직 성급한 판단이다. 하나의 학문분야가 제도권 학문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학 대에 학과 혹은 연구과정의 설립, 해당 학술단체(학회) 및 학술저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티벳학은 이 중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다.}}

어찌되었건 티벳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종국에 귀결되는 쟁점 가운데 하나는 티벳과 중국 사이의 역사적 종속관계 문제이다. 김한규의 책에서는 이에 대한 많은 찬반 양론의 입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11) {{) 김한규, 《티베트와 중국: 그 역사적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이해》(서울: 소나무, 2000), pp.15-34.}}

그의 책은 비록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슈타인의《티벳의 문화》를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슈타인 역시 티벳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매우 담담하게 사실만을 기록한다. 12) {{) 슈타인 저, 안성두 역, 《티벳의 문화》, pp.93-104 참조.}}

김한규에 따르면, 서구의 지식인들과 중국 내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은 티벳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역사를 가진다고 보며, 반면 대부분의 중국 지식인들은 티벳이 중국의 영토라고 보는 데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티벳'이란 문화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와 가까운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 원(元)의 침입과 함께 전래된 몽골불교는 그 원형을 티벳불교에 두고 있다. 몽골 침입기의 티벳에는 사꺄 빤디따(Sakya Pa ita)라는 위대한 학승이 있었다. 통일왕조가 없었던 티벳의 부족장 회의는 몽골왕에게 공납을 바치러 갈 대표로 사꺄 빤디따를 선출하였다.

일찍이 몽골의 패권지배를 예견했던 샤까 빤디따는 군사적으로는 몽골에 화평을 하더라도 종교·문화적으로는 도리어 몽골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도 했다. 13) {{) 사꺄 빤디따가 보냈다는 편지를 보면 그의 이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山口瑞鳳, 《チベット(下)》(東京: 岩波書店, 1988), p.71 참조.}}

그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어린 조카 둘을 데리고 1244년 몽골의 구덴왕을 방문한다.14) {{) 슈타인 저, 안성두 역, 《티벳의 문화》, p.120 참조.}}

그 후 몽골 황실의 스승은 계속해서 티벳의 학승들이 맡게 된다. 샤까 빤디따의 사후 그 계승자는 그를 따라갔던 조카 팍파('Phags-pa)로, 쿠빌라이 칸의 국사(國師)가 되었다. 15) {{) 山口瑞鳳, 《チベット(下)》, 앞의 책, pp.70-72 참조.}}

팍파는 원나라의 공용문자인 '팍파문자'를 만든 사람으로, 과거 일본학자들 가운데는 이 팍파문자가 바로 한글의 원형이라 주장한 이도 있었다. 최근엔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던 신미대사가 범어와 티벳어에 능통했다는 설{{)이 대두되는 등 티벳의 학문전통과 한글창제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시사하는 논의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16) 《법보신문》,773호, 2004년 9월 29일자 참조.}}


결과적으로 사꺄 빤디따의 희망이 실현되어 티벳불교의 영향 하에서 조직화된 몽골불교는 원의 침입과 더불어 고려로 들어왔다. 실제로 고려시대 부장품 가운데 티벳대장경은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으며, 불교미술의 양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규현은 설화나 전설 등에서 한국과 티벳이 매우 많은 공통점을 가는 데 놀라워하는데,17) 이는 이 설화들이 기원 당시부터 어떤 공통성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민담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들은 고려시대를 기점으로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17 ){{)《티베트 역사산책》, pp.54-70 참조.}}

문제는 이 고려 말의 역사가 민족주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이민족의 침입기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굴욕의 역사로 해석되었고, 몽골의 영향은 자연스레 무시되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문화적 교섭의 역사로 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우리는 티벳 연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18) {{) 고려시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북경으로 끌려간 왕자들 중에는, 단순히 볼모생활만 한 것이 아니라, 원나라 황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사례 가운데 어떤 경우 현 티벳자치구의 수도인 라싸의 승원으로 유배 갔던 경우도 존재하여, 그 기록이 티벳어 사료로 남아 있다는 보고도 있다. 만일 우리가 티벳어와 만주어 기록들을 보다 자유롭게 다루게 되면, 우리의 역사를 보다 다면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티벳의 역사를 새롭게 보는 작업은 동북아라는 지역적 특성과도 연계된다. 새롭게 성장하는 거인 중국과,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동북아에서 새로운 군비경쟁과 패권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더구나 분단국가 한국은 이러한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보다 발전된 미래상을 제시할 필요가 대두된다.

새로운 상생의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그것이 단순히 '선하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란 설득력도 지녀야 할 것이다. 아마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나 '한·일 해저터널' 같은 말들은 그러한 이상(理想)을 암시하는 화두일 수 있을 것이다.

도쿄에서 서울을 거쳐 기차로 북경과 유럽까지 간다!

이러한 지정학적 시각의 변화는 실제 한국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철도로 이어질 새로운 실크로드의 많은 지역들은 원래 유목민(nomad)의 땅이었고, 자원을 영구히 소유함 없이 그것을 잠시 이용한 이들에게만 통행을 허락한 대지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고구려사와 만주의 역사가 새로운 쟁점이 되는 이 때, 티벳에 대한 관심은 유목민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반영할 것이다. 유목민의 길들을 따라 먼 옛날 몽골제국의 역사가 있었고, 그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은 티벳이었다.

그러나 티벳인들은 단순히 몽골을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티벳인들 스스로 몽골인과 동일한 유목민이었고, 서쪽으로 이란에서부터 중국과 인도를 가리지 않고 문물을 받아들인 유연성과 다원주의를 가진 민족이었다. 심지어 그들의 외모 역시 몽골계에서 백인과 유사한 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을 간직한 것이 티벳이란 문화권이다. 슈타인의 책은 이러한 내용도 잘 기술하고 있다.

만일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가 티벳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내게 된다면, 다음으로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은 그들에 대한 애정이 될 것이다. 언어적 관습과 생활방식, 음식문화와 놀이문화, 의복과 의례 등등 티벳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고향을 보게 될 것이다. 슈타인의 책은 바로 티벳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해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탐구를 위한 출발점이자 이정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껏 티벳을 상징하던 불교만이 아니라, 뵌교와 같은 전통종교를 포함하여 티벳사회의 모든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유발시켜 줄 것이다.

3. 출판에 대하여

원래 프랑스어로 쓰여진 슈타인의 책 《티벳의 문화》(Paris: 1962)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일본어로 번역된, 山口瑞鳳·定方 晟 譯, 《チベットの文化》(東京: 岩波書店, 1971), 영어로 번역된, J. E. Stapleton Driver (tr.), Tibetan Civilization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72), 그리고 독일어로 번역된 Die Kultur Tibets (Berlin: 1993)등이 있다.

이 중 안성두 교수는 최신판으로 나온 독역을 저본으로 하면서 불어본과 대조하여 번역했기에, 최신판의 내용을 모두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역과 영역 역시 필요한 부분에서 참조되어 있어서 내용적으로 매우 신뢰할만한 번역이다. 또한 역자의 전공분야가 인도불교 및 티벳불교에 관한 문헌학적 연구라는 점도 미더운 부분이다.

책을 대하면 무우수(無憂樹)라는 신생 출판사가 이 책의 출판에 기울인 사명감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원서에서 발췌했을 사진들 역시,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색도분해를 통해 추출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꼼꼼한 교정도 편집자의 정열을 느끼게 한다. 다만 간간히 나타나는 수동태 표현과, 두 문장으로 나누지 않고 지나치게 장문으로 놓아둔 직역체의 번역문들은 옥의 티로 남았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티벳학이나 티벳불교, 심지어는 중앙아시아 역사나 실크로드 문화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만한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강종원
동국대학교 교무기획팀 전임연구원. 동국대 인도철학과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전 교토 불교대학 연구원. 논문으로 〈중론에 나타난 성언량(聖言量)의 논리적 필연성에 대한 고찰〉, 〈인식과 표현: 구사론의 서술방식에 관한 일고(一考)〉, 〈철학함과 문헌학: 불교학 방법론에 대한 성찰〉 등이 있고, 역서에 《무소유의 경제학: 간디가 생각한 경제》, 《현대불교학 연구사: 문헌학을 중심으로》가 있다.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