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소렌슨

최근 호국불교를 과연 한국 불교의 특징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불교국가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그런 것처럼 중세 한국불교(고려, 조선)에서만은 이것이 분명한 특징인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사대부들에게 끊임없이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의 한국불교는,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승려들 스스로 승군을 조직하여 관군과 함께 외적에 맞서 싸우기까지 했으니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민족주의와 관련되어 근본적으로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전제로 성립하는 근대적 호국불교 이데올로기가 왕조 시대의 호국불교를 둘러싼 논쟁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한국은 광복 이후 박정희(1961-1979)가 문을 연 군사독재 아래에서 한국 파시즘이 시작되면서 호국불교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변화를 겪었다. 군부 통치 아래에서 승려들은 불교 계율이 최우선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살생계와 상관없이 군대에 가야 했다. 물론 이런 낯선 변화를 광복 이후 왜색의 대처승과, 한국 불교를 정화하겠다던 개혁 조계종 승려 사이의 길고 지리한 분쟁의 한 부분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한국 불교 전통의 윤리 수호자로서의 주도적인 위치를 다시 얻은 조계종단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박대통령의 명령을 따라 젊은 승려들을 징집에 따르게 했다. 이런 특이한 변화 때문에 한국 불교는 도덕적 완결성을 잃었고 그에 따라 정통이라는 허울과 윤리적 고결함 역시 완전히 사라졌다.

박정희 정권은 승려를 징집하는 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목적에 맞도록 한국 불교사를 조작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한국 역사에서 정권의 군사적 목적이나 민족주의적인 프로그램에 기여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았다.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호국불교라는 이념을 만들어내는 일은 정권이 반공산주의를 선동하는 데에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이었다.

고려시대의 팔관회는 물론, 임진왜란을 통해 서산(1520-1604)과 사명(1544-1619)이라는 인물을 예로 들 수 있는 영웅적인 승군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애국적인 승려의 역할 모델로서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캐스팅이었다. 이들이 전쟁에 참가하여 같은 인류를 살해하는 반불교적인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나라를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교 교단을 지키려고 했던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자신들이 계를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당시는 나라가 잔인한 외적의 침략을 받고 파멸의 위기에 있을 정도로 극한 상황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이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승려까지 군대에 가야 할 만큼의 급박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박정희와 군부는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불교학자들을 이용하였다. 이들이 정부의 극단적인 우익 선전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한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은 대부분 동국대학교 출신으로 한국 불교사와 한국 불교 수행에 대한 학술 연구를 통해, 중요한 핵심은 호국불교에 있다고 강조하였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군사 독재의 수호자로서의 불교"를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호국불교에 대한 저술의 근본적인 동기는 중세(그리고 그 이후 시대) 한국 불교에 나타난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진정한) '호국불교'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자면 한국 불교사의 어떤 특정 부분을 밝히려는 학문적인 노력이 아니라, 당시 군사 통치를 강화하려는 분명한 이념적인 태도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의 불교학계는 정부의 반공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불교학계가 그려낸 호국불교의 모습은 뒤틀리고 편향적인 것이었다. 왕조 시대에 펼쳐진 역사적 사실 그대로의 호국불교를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확장,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호국불교라는 표현이 왕조 시대에 걸맞는 것은 사실이나 박정희 정권이 재창조하여 사용한, 파시즘과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연관된 불교로서의 호국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정희 정권은 불교에 우호적이고 불교 역시 이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정부에서 한 일이 막대한 돈을 쓰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통치 자체가 불교의 의지라고 선전하였다. 불교는 (역사 속에서만 왕조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민족 국가를 위해 기여하고 이러한 민족 국가 역시 불교를 지원한다. 박정희는 비판 발언을 하는 모든 반체제 종교인들(당연히 불교인들을 포함해서)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탄압을 가했으면서도 자신은 독실하고 신심 깊은 불자 역할을 하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생뚱맞은 불자인가!

아무튼 한국의 불교 교단은 이런 아슬아슬한 역사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후 계속된 군사 정권의 의도에 나약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점에서 왜 한국의 승려(는 물론 일반 재가신자까지)들이 아직까지 징집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입대는 계율의 핵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고 보살의 서원을 짓밟는 일이다. 이런 불행한 상황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물론 조만간 이런 정책을 폐지하리라는 기미도 없다. 한국 불교계는 언제쯤 고개를 들고 한국의 윤리적 정신적 역할의 선봉을 일구어 갈 것인가?

전반적인 불교 윤리의 측면에서, 특히 대승 불교 입장에서 승려의 입영은 그 자체로 중대한 문제이지만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승려가 입대한다는 것은 곧 현실적으로 승려로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모든 계율을 어긴다는 말이다. 군대에 가면 가사를 벗어야 하고 고기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사창가를 들락거리고 흡연할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승려가 군인이 된다는 것은 출가 수계할 때 한 서원을 실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것은 입영한 승려는 바라이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파계 행위는 전통적인 불교 수행을 하는 나라에서는 승단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불교인들은 이런 점을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수계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저 요식 행위란 말인가? 또한 그렇다면 한국 불교는 도대체 어떤 불교란 말인가?

지금 이 시대에 맞는 호국불교라는 용어의 쓰임새를 모색하려면 '나라를 지킨다'는, 기본적으로 전근대적이고 침략적인 군사적 개념보다는 '나라를 보살핀다'든가 '사랑한다'는 느낌이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더 이상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 막강한 외부 세력이 국가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끔씩 긴장감을 조성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심각한 군사적 위협은 되지 못한다(물론 여전히 광적인 독재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러므로 남한은 북쪽 형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 한국의 불교인들 입장에서는 '나라를 보살피는 의미에서의 호국 불교'를 환경 보호, 인권 보호, 민주주의 수호, 정부나 기업의 부패 방지 활동 등에 힘쓰는 형태로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불교 윤리와도 맥을 같이하면서 현대 한국 사회와 분명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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