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수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재작년 9월경부터 몇몇 사람들과 4부 니까야를 읽고 있다. 일정 분량을 읽고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요약 발표하고 토론을 한다. 이 모임을 하기 전에는 니까야를 빨리어 원전으로 읽는 모임을 했다.

그런데 그 때쯤 디가·맛지마·상윳따 니까야가 번역된 상태였고 앙굿따라 니까야 번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굳이 원전으로 볼 필요가 없어 번역본을 중심으로 4부 니까야를 읽을 계획을 세웠다.

개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4부 니까야를 읽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가지 목적에서 그런 마음을 내었다. 하나는 부처님 가르침이 진정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고 또 하나는 심리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불교가 과연 심리학과 심리치료에 방법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수행을 해왔는데 내가 그 동안 경험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동안 수행하면서 경험은 하였지만 뭔가 확인이 필요한 것에서 도움을 받고 싶었다.

이런 대략의 목적을 가지고 니까야를 읽기 시작해서 디가·맛지마·상윳따 니까야는 읽었고 이제 앙굿따라 니까야를 읽고 있다. 아마 예정대로라면 올 6월경에는 다 읽지 않을까 한다.

아직 앙굿따라 니까야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처음에 목표한 두 가지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얻었다.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정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은 먼저 부처님께서 경험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여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경험하신 것이다. 그 경험이 보편적인 것이 되어 다른 사람도 똑같이 경험이 가능한 것이다. 마치 실험실에서 동일한 조건이 되면 동일한 결과가 나오듯이.

사실 니까야를 읽기 전에는 경은 부처님의 말씀으로만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니까야 속에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의외로 많았다. 사실 내 경우에는 사리불이나 아누룻다와 같은 뛰어난 제자들의 대화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면 아누룻다가 아직 아라한이 되기 전에 사리불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천안통을 얻어 천의 세계를 본다.

정진력은 뛰어나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었고 마음은 집중되어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 집착이 없어지지 않아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는 못했다.”고. 그러자 사리불이 “천안통을 얻어 천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아만이고, 정진력은 뛰어나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었고 마음은 집중되어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도거(들뜸)이고,아직 집착이 없어지지 않아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는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회한이니 마음을 불사(不死)의 세계로 향하도록 하라”고 이야기해 준다.

아마도 사리불은 아누룻다가 자신의 경지를 드러내면서 이야기할 때 앞서 말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후 아누룻다는 사리불이 한 이야기대로 해서 아라한이 되었다.(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셋의 모음 아누룻다 경2 :A3:128) 아마 결집 때 아누룻다가 대중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대중은 중요한 내용으로 생각해서 경에 포함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니까야에 많이 들어 있다.

니까야를 읽어보니 부처님과 제자들이 공유한 세계 그리고 그 당시 승가와 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수행하면서 경험은 했지만 확인이 필요한 것에 대해 그 당시 외도나 제자들이 부처님께 질문을 하고 부처님께서 대답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을 확인하는 법도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 누가 아라한이라고 선언하면 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말고 다음의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면 다음 질문을 하고 또 바르게 대답하면 계속적으로 어떻게 질문해서 아라한인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자세히 말씀하셨다.(맛지마 니까야 제4권 112경 여섯 가지 청정의 경)

오늘날처럼 다양한 수행법이 발달하고 사람의 성향이 다양할 때는 자신에 맞는 수행법으로 수행할 수 있다. 자신의 수행법으로 어떤 경지를 경험하면서 부처님을 스승으로 생각한다면 니까야를 통해 자신의 경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보고 계신다. 또한 본질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부처님이 보는 우리의 본질과 우리가 처한 상황의 본질은 윤회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윤회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조금이라도 위험에 처하지 않고 고통을 받지 않게 하고 싶듯이 부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니까야에 나오는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법은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향해 있다고 나는 본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니까야를 읽으면서 부처님이 세상을 보듯이 보게 되면서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나의 두 번째 목적인 불교가 심리학, 심리치료의 길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 나는 불교가 아주 훌륭한 심리학, 심리치료의 길이 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니까야를 읽기 전부터도 불교수행을 통해 내가 경험한 보편적인 경험을 불교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환자와 같이 나누면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니까야를 읽으면서 터득한 지혜 그리고 니까야를 통해 내 자신 스스로 확신한 내용을 환자와 나누면서 환자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환자는 불교신자도 있고 기독교신자도 있다. 나는 부처님의 지혜가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이해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탐, 진, 치의 소멸을 통한 모든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는 데 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가 정신장애나 심리적 괴로움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정신장애나 심리적 괴로움이 본질적으로 볼 때 탐, 진, 치를 잘 다스리지 못해 오기 때문이다. 다만 치료자가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충분히 체득하여 종교를 떠나 보편적인 이치로 이해하면서 환자가 스스로 체득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쓴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도 적절한 시기에 4부 니까야를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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