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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불교'담론을 중심으로 본 한국 불교사 인식 / 조은수
기획특집-한국불교를 다시 생각한다
[21호] 2004년 12월 10일 (금) 조은수 escho@snu.ac.kr

1.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의 목적은 한국 불교의 성격을 대표한다고 하는 '통불교(通佛敎)'또는 '회통불교(會通佛敎)'론의 기원과 함께, 그 담론이 어떻게 현대 한국 불교계에 지배적 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훑어보고, 그것이 갖는 의미와 타당성을 아울러 점검해 보는 것이다. 1) 이 글을 쓰면서 지난달 61세라는 젊은 나이에 작고하신 은사 심재룡 선생님이 남기신 가르침을 애통한 마음으로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학문적 역정을 통해, 그분은 무엇보다도 사물을 일반화하여 규정하는 것을 경계하고 항상 첨예한 비판의식을 유지할 것을 필자에게 가르치셨다. 필자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80년대 초반 강의와 학술 발표를 통해 한국 불교 일반화의 오류와 회통불교 이데올로기를 비판하시던 선생님의 생각을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받아 적는 제자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제목에서 한국 불교사를 인식한다 함은, 통불교라는 패러다임으로서 한국 불교사를 인식해온 근대 이후 한국 불교계의 자기 인식을 지칭함과 동시에, 통불교 담론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현대 한국 불교학계의 역사를 메타적 입장에서 분석하려는 필자의 인식을 함께 의미한다.

한국 불교의 '회통불교 성격론'은 심재룡 교수의 1985년 논문 <한국 불교는 회통적인가>2) 를 통하여 최초로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학문적 논의의 장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2) 심재룡, <한국 불교는 회통적인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최 국제학술대회 발표문, 1985; Shim Jae-ryong, <General Characteristics of Korean Buddhism: Is Korean Buddhism Syncretic?>,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2 (1989); 이 영문 논문은 Korean Buddhism: Tradition and Transformation (Seoul: Jimoondang Publishing, 1999) 에 재수록 되어 있다.

당시 '회통불교'란 한국불교사에서 나타나는 여러 종교적, 교리적 체계를 기술하는 개념으로, 또는 불교적 태도를 규정하고 그 지향점을 밝히는 당위적 명제로서, 또는 한국 불교사를 통사적으로 접근하여 한국불교의 두드러진 성격으로 정의하고 규정하는 해석적 개념으로서 한국 불교계에서 널리 쓰여 오던 개념이다. 그러나 소위 회통불교가 근대 이후 한국 불교계에서 한국 불교사의 성격을 규정한 지배담론으로서 학문적 논의의 장에 등장한 적은 없었다.

심재룡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세 가지 중요한 맥락을 지적하였다.

첫째, '회통불교'라는 담론의 기원을 따져본 점이다. 그는 이 말이 최남선(1890 1957)이 1930년 <<불교>>지 74호에 발표한 <조선불교 동방 문화사 상에 있는 그 지위>3) 에서 한국 불교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특히 원효의 불교 교학을 통불교라고 지칭한 데서 비롯하였음을 밝혔다. 3) 이 논문은 또 전 15권의 <<최남선 전집>> 제 2권 (서울: 현암사, 1974), pp. 546-572에 실려 있다.

둘째로 '회통불교론'이 당시 한국 현대 불교 교학의 지향점을 규정하고 동시에 과거의 한국의 불교사를 해석하는 지배적 담론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셋째로는 회통 불교의 내적 논의의 차원에서, 과연 한국 불교가 회통 불교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혹은 한국 불교는 역사적으로 과연 회통 불교였는가 하는 것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두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해 부정적 진단을 내렸다.

특히 심재룡 교수는 회통불교라는 말의 기원을 따지면서 최남선이 쓴 '통불교'라는 개념은 당시 한국의 불교계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상실하고, 나아가 한국의 불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마저도 함몰해가는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한국 문화의 오랜 역사와 뛰어난 문화적 성취를 증명하고 다시 드러내는 좋은 실례로서 제시된 개념임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서, 최남선이 한국 불교 전통을 '통불교'라고 부른 것에는 그 시대적 상황, 즉 민족적 자존감을 부양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수식적이고 웅변적인 표현으로서 이해해야지 이것을 확대 해석해서 학문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한국 불교의 성격을 정의하는 학술적 개념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민족주의적 감성에서 나온 용어가 그 이후 역사적 맥락은 무시된 채 학문적 용어로서 채택됨으로써 한국 불교학계에 민족주의적 정서가 강화되는 효과가 부가된 사실도 동시에 지적하였다.

심재룡의 이와 같은 논의는 그 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공감되고 계승되었다. 로버트 버스웰은 베네딕트 안데르센의 이론적 창안인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민족(imagined nation)'이라는 개념을 써서, 한국불교사가 '한국' 불교라는 '민족적 전통(national tradition)'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하면서, 근대의 한국불교 정체성 만들기의 출발점에 최남선의 '통불교' 선언이 있음을 지적했다. 4) Robert E. Buswell Jr., "Imagining Korean Buddhism" in Nationalism and the Construction of Korean Identity, edited by Hyung Il Pai and Timothy R. Tangherlini, Berkeley: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1998.

이러한 논의를 통해 버스웰 교수가 증명하고자 했던 더 큰 명제는, 한국 불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적 전통(national tradition)'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따라서 다른 불교 전통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으로 '한국'의 고유하고 유구한 전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서 필자 또한 다른 기회에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5) Eunsu Cho,"The Uses and Abuses of W nhyo and the T'ong Pulgyo Narrative", Journal of Korean Studies, forthcoming (December 2004).

여기서는 그 논문을 중심으로 회통 불교를 중심으로 한국불교를 재인식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설명하고, 그런 시도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국 불교사를 재인식해보려고 한다. 한국 불교사에서 통불교라는 개념의 자취를 살펴보고, 통불교 담론을 통해 한국의 불교적 정체성이 불교의 발전사상에서 나타난 주요 특징들을 화합하고 그 다양성을 보듬어 안는 데 있음을 밝히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원효라는 인물이 복잡한 식민지 시대의 와중에서 민족주의적 요구와 필요에 따라 민족적 영웅이 되고 한국 사상의 대표적 인물로 부각되는 과정 역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2. 최남선과 원효의 '통불교'

심재룡이 지적한 바와 같이 최남선의 원효 해석은 한국과 한국 불교에 대한 식민지적 인식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다카하시 토루와 같은 일본 역사가는 <<이조불교(李朝佛敎)>>에서 한국불교를 중국 불교의 아류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원효가 있어 조선불교에 빛이 있고 조선불교가 있어 동방불교에 의의가 있다"고 본 최남선은 도리어 일본 문화의 여러 측면, 즉 문자, 문학, 예술, 공예, 건축 등이 한국 불교와 한국 문화에서 연유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일본문화가 한국을 젖줄로 삼고 있는 것이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서 모유를 먹는 아이와 같고, 가지에 대한 뿌리와 같다고 했다.

최남선이 통불교라는 말을 쓴 <조선불교-동방문화사상에 있는 그 위치>의 제4장 '원효, 통불교의 건설자'의 맥락으로 돌아가 보면, 최남선은 불교의 전개과정에서 볼 때 인도불교는 서론에 해당하고, 중국불교는 각론, 그리고 한국불교 특히 원효의 불교에 이르러 결론에 이르렀다고 보고, 그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의 완성자'라고 찬양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효성(曉聖)을 불교의 완성자라고 함에는 그 이행(易行)과 보급에 대한 공적 외에 더 한층 박대(博大)한 가치창조가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효성(曉聖)의 불교가 불교적 구제의 실현인 일면에 다시 통(通)불교, 전(全)불교, 종합(綜合)불교, 통일(統一)불교의 실현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못씀이다. … 그리하고 이 최고 통일 최후 완성으로서의 신(新)불교는 그것을 특권으로서 일반 소유로 전화함으로써 그 실현의 제 일보를 삼았다." 6) 최남선, 상동, <<최남선 전집>> 2 권, pp. 553-554.

이 인용에서 본다면 최남선의 어법에서 '통'불교라는 말은 '불교'라는 말을 수식하는 여러 형용사 중의 하나로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이라는 말이 회통이라는 말을 축약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면 이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남선은 통(通), 전(全), 종합(綜合), 통일(統一), 신(新) 등의 여러 가지 개념의 형용사를 써서 원효의 불교를 기술하고 수식하고 있고, 그 중 통이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 수식어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남선의 이 구절은 원효의 불교가 당시의 불교의 여러 흐름을 통합하였으며, 한국 불교전통의 발달사에서 그 이론과 실천의 측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썼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전통을 원효가 다시 살려내서 통불교라는 말로 재정립했다고 해석할 수도 없으며, 원효의 대표적 교리 개념이 '통'이었다거나, 원효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회통불교, 즉 통합적 교리관과 세계관을 제창했다는 말로 확대 해석할 수도 없다. 더구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주요 특질이 '통불교'라거나 앞으로 그런 통합사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한국불교가 나가야 한다는 가치론적 선언이 될 수도 없다.

통불교가 불교의 특정한 가르침이나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불교용어일 수는 없다. 만일 최남선이 원효의 불교에서 그 절충성을 대표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회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통불교라는 말보다는 회통 불교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여기서 최남선의 통불교가 원효의 회통불교와는 다른 맥락에서 쓰였으며 따라서 원효의 불교와 차별해서 볼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통불교'라는 말의 연원을 다시 뒤져볼 필요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3. 통불교의 연원에 대한 일별

여기서 우리는 당시 메이지 시대의 일본 불교인들이 자주 쓰던 통불교라는 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7) 또한 호주 그리피스 대학의 존 조르겐센 교수도 이 최남선의 통불교라는 개념이 당시 일본 불교계에서 쓴 용어에서 빌려온 것임을 키틀러의 저술을 인용하여 언급하고 있다. John Jorgensen, "Korean Buddhist Historiography: Lessons from the Past for the Future," <<불교연구>>14 권 (서울: 한국불교학연구,1997): 248.

특히 타카다 도오켄 (1858 1923)이 말하는 '통(通)불교'8) 이론은 명치시대 일본 불교에 대한 시카고대학의 역사학자 제임스 키틀러의 연구에서 광범히 다루어지고 있는 바이다.9) 8) 이 통불교 (ts -Bukkyo)라는 용어는 타카다 도오켄이라는 조동종 승려가 1904년에 쓴 <<通佛敎안신>>이라는 저술과 이노우에 세이쿄의 1905년 작 <<最新硏究通佛敎>>(동경: 有朋館, 19, 1905) 등의 저술에서 나타난다. 9) James Ketelaar, Of Heretics and Martyrs in Meiji Japa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p. 177.

이 책은 신도(神道)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와중에서 진화론적 불교 모델을 개발하려던 메이지 시대의 불교도들의 여러 시도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명치 시대 불교도들과 이념가들은 진화론적 불교관이라는 정의에 화합적인 불교관을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비젼과 불교사를 창조해내려 했다. 그 중 통불교 이론 제창가들은 불교의 가르침이 수세기간 점점 더 정치해지는 분화의 과정을 거치다가 이제 다음 발전단계의 문턱에 서있으며, 불교가 보다 단순한 형태로 돌아가 통불교를 예비하는 단계로 진입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통불교 이론은 그 형태나 의미에 있어 어느 한 종파의 입장을 따르지 않으며, 불교의 본체 그 자체를 취하려고 했다고 설명하였다.10) Takada D ken, Ts -Bukky anshin, pp. 2-7; James Ketelaar의 위의 책, pp 184 186, 190 191에서 재인용.

또 키틀러는 메이지 불교도들은 자신들의 통합주의적인 불교관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적 용어들을 찾으면서 13세기의 화엄종 승려인 교넨(凝然, 1240 1322)과 같은 사람에게 주목하여 그의 불교관을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11) Ketelaar의 위의 책, pp. 177 184.

여기서 필자가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아이러니는 이 교넨은 원효의 글을 무척 존중하여 그의 저술에서 상당부분 원효를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12) 예를 들어 교넨은 <<화엄경>>, <<승만경>>, <<범망경>>에 대한 자신의 주석 중에서 모두 십회 이상 원효의 저술을 길게 인용하고 있다. 원효를 인용하면서 교넨은 원효를 구룡대사(丘龍大師)라고 부르고 있다. 김상현, <<원효연구>> 참조.

하여간 통불교라는 용어가 일본 불교도들이 쓴 '通佛敎(ts -Bukky )'라는 말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는 점이 통불교를 선양하는 한국의 학자들에 의해 언급되지 않듯이, 일본의 불교학자들은 원효가 교넨의 교학에 중대한 의미가 있었고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13)예를 들어 교넨의 <<八宗綱要>> 해설서를 저술한 히라카와 아키라도 원효는 전혀 언급치 않는다.

역사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이 두 나라 간에 사상이 서로 교류되는 것은 당연히 일일 터인데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불교와 함께, 최남선의 논문에 등장하는 개념인 '신(新)불교'라는 것도 당시 최남선이 일본에서 머물 때 일반적으로 회자되던 용어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 청년불교도 모임은 1899년에 그 이름을 '신불교연맹'으로 바꾸었으며, 또한 그 기관의 공식회보인 <<신불교(新佛敎)>>라는 것을 1900년에서 1915년까지 출판하였다. 14)이 논문들은 합본으로 만들어져 총 네권의 <<新佛敎 論著 叢書>>로서 아카마추 테신과 칸류 푸쿠시마의 편집으로 재출판되었다 (京都: 永田文昌堂, 1978-1982). 이 잡지의 창간호에는 앞서 말한 이노우에 테츠지로에 의한 당시 불교계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의 해결을 촉구하는 축하의 글이 담겨있다.

이 잡지는 당시 메이지 시대의 불교 혁신운동을 이끄는 주요 논문을 싣고 있다. 당시 불교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신도 이념가들로부터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이고, 반역사적이고(퇴행적이라는 의미로), 염세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런 비판들을 의식하고 불교 내부의 문제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 실천을 알리는 '신불교'를 제창하는 운동가들이 나타났으며, 이들 불교 운동가들은 여러 출판물들을 통해 이런 새로운 불교운동을 제창하는 글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이 잡지도 그러한 운동의 일환이었다. 15) 신불교 운동은 과거의 불교가 타성과 허영과 일상성에 젖어 있고, 피상적이며, 신앙이 결여되어 있고, 이생에 복덕을 바라는 무속적 요소가 있고, 염세적이어서 이 세상에서의 인생의 의미를 설정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본 불교의 혁신 운동에 대해서는 이케다 에이슌의 <<明治의 新佛敎運動>> 참조.

최남선이 한국 불교의 장점을 선양하기 위해 일본의 방법론을 빌려왔다는 것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 하에서 한국의 지성인들은 메이지 시대의 일본 불교도들이 당면했던 것과 같은 과제에 직면했다. 즉 전통적이며 토속적인 색채를 띤 불교를 근대적이고 국가적인 모습으로 다시 재창조해야 하는 임무를 자각한 것이다. 최남선과 같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처한 처지의 모순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타카하시와 같은 학자의 식민지사관에 근거한 모욕적 이론에 대항할 만한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당시의 지배적 담론도 같이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 불교가 일본 불교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일본인의 기술을 반박하기 위해 한국을 지배한 그들의 사고방식인 진화론적 발전론적 사관을 채용하는 아이러니를 범한 것이다. 예컨대, 원효를 한국인의 우수성의 상징으로 치켜 올렸지만 결국 당시 제국주의자들의 프레임인 발전사관 진화론적 모델과 그러한 목적론적 진행방향 속에서 그의 불교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과 종교계에서는 서양세력의 동점에 이념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불교와 동양사상을 발굴하고, 소위 전근대적이라고 여겨지는 한문 불교, 전통 불교에서 벗어나,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통한 '근본불교(original Buddhism)'을 직접 접하기 위해, 당시 인도학의 중심지였던 유럽의 여러 국가로 유학생들을 대거 보낸 것을 상기하면, 일본인의 한국 문화 폄하에 대항하여 한국의 고전을 출판하고 불교를 포함한 유구한 한국문화의 전통을 선양하고자 했던 최남선의 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원효와 통불교에 대한 그의 웅변적 서술은 당시 식민사가들이 주창한 초종파적, 초국가적, 그리고 범인류적인 이념 제창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남선은 이것을 "분열(分裂)로서 통일(統一)에, 파별(派別)로서 화회(和會)에, 속성분화(屬性分化)의 절령(絶嶺)에 달한 당시의 불교는 새로이 일생명체(一生命體)로의 조직과 및 그 힘있는 표현을 요구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불교와 원효의 불교는 당시에 시대적으로 요청되던 이념의 맥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그 정신을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최남선은 그리하여 한국과 한국 불교를 선양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원효의 불교는 이전에 나타난 모든 불교의 이론과 실천의 정화를 꿰뚫고(通), 모든 것을 담아 안고 있고(全), 포괄하고(綜合), 합치고(統一), 새롭게 하였다고(新)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남선은 초종파적, 초국가적, 그리고 범인류적인 이념의 개발이라는 당시의 지배 담론 속에 들어있는 제국주의적이며 식민주의적인 가정을 묻지 않았다.

그 지배담론이 한국이 처한 식민지적 상황 내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문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그것의 문제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의 위대함을 발굴한 근대의 가장 주요 인물이자 '한국적 성격(Koreaness)'의 위대한 선양자였으며, 한국의 전통을 속속들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최남선이 후대 사가들에 의해 친일파로서 평가된 것은 역사적 비극이라 하겠다.

4.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의 사이에서

식민지 시대에 이같이 원효를 현양한 저술로 장도빈(1888 1963)의 <<위인 원효>>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신문관에서 1917년에 <<수양총서>>라고 하는 시리즈의 첫 권으로 출판되었다. 신문관은 최남선이 설립하여 운영하던 출판사로서 당시 조선학 운동의 중심지로서 유명하다. 물론 이것은 식민지 시대의 압박 속에서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 일반인들을 교육시키려는 목적에서 기획된 시리즈이다. 64쪽 길이의 이 글은 당시로서는 원효에 관한 가장 긴 전기로 국한문 혼용으로 씌어졌다.

또 하나의 전기로는 당시의 민족주의 지식인이자 운동가였으며 해방 후 제1공화국 시절 정치가로 활동했던 조소앙(1887 1959)에 의해 씌어졌다. 조소앙은 학생시절 일본에 있을 때 보편주의 이론을 제창하였던 일본의 철학자 이노우에 데츠지로(1856 1944)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글을 한글로 번역하여 <<대한흥학보>>등의 잡지에 기고한 적도 있다.

신문관에서 출판된 한국 불교와 관련한 서적으로 권상로(1879 1965)의 1917년 작 <<조선불교약사>>와 1918년 출판된 이능화(1869 1943)의 <<조선불교통사>>가 있는데, 한국의 불교인들이 한국 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소개하기 위한 노력의 소산으로서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책들은 한국의 불교 전통을 역사로 기술하고 전통의 원천을 고양한다는 점에서 당시 대거 출판되었던 여러 한국 역사서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권상노의 <<약사>>는 한국 불교의 주요인물과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책으로 자신의 개인적 해석을 첨가하지 않고 있는 반면에 이능화의 통사는 광범한 자료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불교 해석을 담고 있는, 한국 불교사상 최초의 근대적인 의미의 본격적인 학술 저작이다.

이능화는 한국 불교 1600년 역사의 자부심을 한국의 선불교에 두고 있다. 그는 한국불교의 선과 교의 전통은 서산 휴정이 두 가지를 겸수할 것을 강조한 이래 통합이 되었으며, 이것을 선과 교의 '화회'라고 불렀다. 여기서 이능화는 불교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통이나 회통이라는 말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조화와 일치라는 뜻의 '화회' 또 통합의 뜻으로 '융통'이라는 말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능화의 '화회'라는 말이 현대 통불교 담론의 회통이나 통이라는 말의 연원을 상고할 때 가장 유사한 말이며, 이와 같은 유사어들의 합성을 통해 애매하면서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통불교라는 개념이 해방 이후 한국 불교 전체에 적용되는 특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같이 모호한 개념인 '통'과 그것의 무차별적 적용은 한국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단순히 의미론적 혼란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이후 불교와 다른 한국 문화와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도 적용되면서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상과 같이 그 강조점과 방법은 다르지만 식민지시대 한국 불교도들의 저작에는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 불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추고자 하는 노력이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일제강점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한국 역사를 찬술하거나, 한국의 불교전통을 재발견하려는 출판 운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며, 또한 여러 다양한 출판 매체를 통해 일어난 이 운동은 당시의 국민 국가형성이라는 더 큰 역정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5. 이념으로서의 통불교- 해방 이후 회통 불교 담론의 등장과 그 전개 과정

해방 이후에 원효가 오늘과 같은 위상으로 끌어올려진 데에는 박종홍(1903 1976)의 공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해방 후 남한의 철학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서 그의 한국 사상 '재발견'은 한국의 불교를 정당한 학문의 영역 속에 편입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1958년 논문 <한국사상 연구에 관한 서론적인 구상>은 한 시대를 구획할 정도의 중요한 업적으로, 거기에서 한국 사상과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혁신적인 케이스를 만들었다.16) 박종홍, <한국 사상 연구에 관한 서론적 구상>, <<한국 사상>> 1 (1958); 박종홍 전집 제 4권, pp. 3-13에 재수록.

박종홍은 여기에서 한국 유학과 불교는 발굴을 기다리는 보물과 같은 것이라 하고, 한국인으로서 한국 철학을 탐구하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한국인이 된 사명이라고 했다. 그는 그 동안 쓴 한국 사상에 관한 논문들을 모아 <<한국사상사>> 라는 제목으로 불교편과 유학편을 1972년과 1983에 각각 출판하였다. 이들 책은 현재까지도 한국 사상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술로 인정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한국 불교학계에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불교의 철학적 성격이라는 다소 혁명적인 개념을 불교철학이라는 이름으로 공적 영역에 도입한 것이다. 그는 <<한국사상사>>에서 원효에 관한 장을 '화쟁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열고, 원효사상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천명하면서 그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탐구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여기서 그는 화쟁을 원효 사상의 가장 근본적 특성이라고 진단하고 화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석가모니 당시에는 몇 가지 견해와 입장만 존재하여 그 속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상이한 이론과 해석들이 등장하게 되고, 누가 옳고 그른지 다투게 됨에 따라 교리적 반목이 심해지게 되었다. 이런 갈등과 분쟁 속에서 원효의 사상이 등장함으로써 모든 논쟁들이 중재되고 다양한 견해가 통합되기에 이르렀다"17)는 것이다. 17) 박종홍, <<한국사상사-불교편> (서울: 서문당, 1972), pp. 86-88.

당시 한국사회의 처지로 볼 때 화쟁사상을 새로운 도덕 원리로 고취하고, 원효의 철학을 여러 이견과 분열을 하나로 화합하는 한국적 사례로서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음직하다. 근대화 사업을 위해 전통적인 국가 철학과 가치 체계가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공통의 선이 가장 존중되는 모랄로 강조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박종홍 선생의 한국철학에 대한 재평가는 당시 지배 그룹이 전통 사상을 민족적 이데올로기로 탈바꿈시키려는 의지와 결부되었고, 박정희 정권의 새로운 민족성 창조라는 논리와 맞물렸을 것이다. 이 말은 박종홍이 그렇게 의도했다고 보기보다는, 정치적 유세의 전략을 찾고 있던 당시의 정권에 의해 화쟁 개념이 변질 내지는 이용되었으며, 반대 의견을 차단하기 위한 정권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화합과 국민 총화라는 이념으로 변질당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8) 여기서 화쟁이라는 말에 깃들어 있는 의미가 정치적 영역에 적용할 때, 단지 사회적 조화와 평화를 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순응하고 일치한다는 의미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일 수 있다. 종전 후에 많은 일본 학자들은 "和"의 정신이라는 것이 전쟁 당시의 정치가들에 의해 숭상되고 이용당한 사실을 지적하는 글들을 썼다. 예를 들어 비판 불교를 제창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 하카마야 노리아키 교수가 일본의 민족중심주의와 문화적 우월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불교의 본각(本覺)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에토스에 이념적 배경을 제공하였다고 선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 나아가서 그분이 일본 문화에서 오랫동안 숭상되고 있는 개념인 '和'라는 이념이 "和는 숭상되어야 한다"로 시작하는 쇼오토쿠 태자의 17조 헌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원효의 화쟁에서 나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원효의 화쟁이론이 극단적인 절충주의이며, 이를 이용하여 조화와 일치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기초작업을 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는 원효의 화쟁사상이 전쟁 이후 일본의 전체주의 이념이 부활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원효(617-686)보다 쇼오토쿠 태자(574-622)가 시기적으로 앞선 문제에 대해 그는 원효의 화쟁 이념에 영향을 받은 신라의 삼론종 학승이 일본에 건너와 그 이념을 퍼뜨려서 당시 지배층에 회자되었고, 나중에 <<일본서기>>가 편찬되면서 쇼오토쿠 태자의 17조의 하나로 기록된 것으로 보았다. 袴谷 憲昭, "和の反佛敎性ど佛敎の反戰性 <東洋學術硏>> 26-2, 1987, p. 11; 袴谷 憲昭 <<批判佛敎>> (동경:大藏出版社, 1990), pp. 275-304에 재수록. 이 논문을 필자에게 소개해준 이시이 코세이 교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한편 조명기의 <원효의 화쟁론 연구>는 박종홍의 경우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그는 동경대학 유학시절인 1937년에 <원효의 화쟁론 연구>라는 논문을 써서 유학생회의 잡지인 <<금강저>>에 발표했는데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교육가로 활동하던 동국대학교 총장시절 위의 논문을 개편하여 한국 불교와 화(和)의 사상 이라는 이름으로 재출판하였다. 19) 조명기, "Kankoku Bukk to wa no shis ", <<自由>> 14, No.2 (1972).

또한 1960년대의 저술에서 그는 그것을 '총화 불교'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원효에서 시작하는 한국 불교의 특색으로 규정하였다. 20) 조명기,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서울: 신태양사, 1962), p.36.

이것이 당시 박정희 정권의 구호인 '국민총화'라는 구호가 만들어지는 데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그 개연성은 무시할 수 없다고 하겠다.

이후 1970년대 말과 80년대를 통하여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함께 더욱 강한 민족주의적 열정이 등장하는데 이 흐름은 민족의 주체성 추구 내지는 전통문화에 대한 재평가로 특징지울 수 있다. 이것은 정권으로부터 가해진 압력이라기보다는 대중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된 것으로서 전통적인 민족의 철학을 규정하고 유니크한 한국의 전통을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비록 관이 주도한 것이지만 1981년의 국풍 운동 이래 대중문화 속에서 인도의 신비주의적 구루들이 새로운 문화적 상징으로 등장하고 고래로 내려오는 선도의 전통을 미화하는 <<단>> 등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등이 그런 예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나 저술들은 개인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추구를 다루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종교적인 열의와 민족주의 정서는 쉽게 결합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로 인해 이전의 동양 사상의 특징적인 면모가 부각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지혜는 우리의 조상과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식민지 시대와 전쟁, 그리고 그 후 근대화의 역정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것이었다. 신비주의 사상과 수련에의 탐닉과 동양사상 일반에 대한 열정은 한국 전체를 관통하는 유사 종교 문화가 전파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민중 운동 또한 이러한 민족주의 정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후반 이후 한국의 정치상황은 급격히 달라졌지만, 원효와 통불교는 한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인자로서 그 역할을 지속하였다. 1970년 후반부터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통하여 한국 불교학계에 회통 담론을 등장시킨 주역으로는 이기영이 있다. 이기영(1922 1996)은 불교에 대한 열정에 기반한 연구와 강의 그리고 사회적 활동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원효의 회통 불교에 대한 고취는 원효를 한국 불교의 절대적 성인의 지위로 승격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기영은 회통이라는 말을 원융회통이라는 불교 용어의 준말로 정의하고 원융무애와 같은 말이라고 주장한다. 21) 이기영, 한국 불교의 근본 사상과 새로운 과제, <<한국불교연구>> (서울: 한국불교연구원,1982), p. 267.

이 정의는 대승 불교의 여러 학파의 다른 입장을 회통하는 데에 적용될 뿐 아니라, 한국의 심성과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에까지 적용된다. 그에 따르면 원융무애의 철학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어 차별의 지양과 포용의 도덕이론을 제공한다. 22) 이기영, "원효의 화쟁 사상과 오늘의 통일문제," <<불교연구>>11, 12 집 합본 (서울: 불교연구원, 1995): 455-456.

6. 회통의 교리적 연원과 의미

위에서 회통이라는 말이 근대 한국 불교학의 주도 담론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통(通), 회통(會通) 그리고 화쟁(和諍)이라는 일련의 개념들을 보다 분명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많은 학자들이 이 개념을 매우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눌이 선과 화엄을 통합하여 조계 선종을 세운 것도 회통이고, 조선조의 선종과 교종의 통합도 또한 원융회통이라고 부르는 등, 그 정의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광범하고 무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3) 이종익은 지눌과 한국의 선불교를 회통불교라고 명명하면서 이것이 한국 불교를 관통하는 성격이라고 하였다.

차제에 회통이라는 말의 불교 경전 내에서의 용례를 간단히 검토해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하여야 할 것은 회통이라는 말이 원효의 저술에서만 발견되는 용어가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학, 특히 화엄 사상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라는 점이다. 회통은 그 의미와 용례에 있어서 매우 유연하고 광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교리적 맥락에 따라 여러 다른 용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회통이라는 말의 가장 전형적 예로는 종밀의 <<원인론>>에 나오는 "회통본말"이라는 구절을 들 수 있는데, "본(本)과 말(末)을 회통한다"는 의미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글의 맥락에 따라 부연한다면, 종밀의 오교의 교판 체계 내에서 "유학과 도가를 자신의 최종적 우주론 속으로 회통해 낸다"24)는 뜻이다. 24) Peter Gregory, Inquiry into the Origin of Humanity: An Annotated Translation of Tsung-mi's Y an jen lun with a Modern Commentary (Hawaii: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5), p. 189에서 인용.

즉 회통은 중국 화엄학의 전통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여러 다양한 입장이나 이론들을 취합하고 그것을 꿰어 통일적으로 해석해 낸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로 디지털 대장경을 검색해보면, 화엄종 말고도 중국의 각 종파를 대표하는 논서들 거의 모두에서 이 용어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 초기불교의 저술 가운데 승조 (384 414?)의 <<조론>>과 길장 (549 623)의 저술 가운데 <<이제장(二諦章)>>이나 <<중론소(中論疏)>> 등에서 이 용어가 발견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길장이 이 용어를 자주 또 중요한 개념으로 씀으로써 이후 동아시아 불교에서 중심 개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이것은 귀납적 작업에 의한 결론이라기보다는 필자의 심증에 불과하다. 앞으로 연구과제로 남겨두겠다).

또 유식의 전적에서 본다면 원측의 <<인왕경소>>와 규기의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 그리고 현장의 <<현양성교론>>, <<유가사지론>>, <<순정리론>> 등의 번역에서 이 용어가 산견된다. 그 밖에 많은 선종의 문헌들에서도 회통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5) 컴퓨터로 C-BETA 데이터베이스의 대정 신수장경 가운데 회통을 언급한 사례를 무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灌頂, 基, 吉藏, 道世, 李通玄 無著菩薩, 彌勒菩薩, 法藏, 僧肇, 圓測, 元曉, 義淨, 宗密, 智儼, 澄觀, 天台智者, 湛然 등이 있고, 경전이나 논서로는 開元釋敎錄, 景德傳燈錄, 高僧傳, 觀心論疏, 俱舍論頌疏論本, 金剛般若經疏, 金光明最勝王經疏, 大唐內典錄, 大般涅槃經疏, 大方廣佛華嚴經疏,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抄.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略疏, 大毘盧遮那成佛經疏, 大乘起信論別記, 大乘法苑義林章, 大乘義章, 大乘玄論, 廬山記, 歷代三寶紀, 摩訶止觀, 妙法蓮華經文句, 妙法蓮華經義記, 妙法蓮華經玄義, 妙法蓮華經玄贊, 般若波羅蜜多心經幽贊, 百論疏, 飜譯名義集, 梵網經古跡記, 法苑珠林, 法華論疏, 法華文句記, 法華遊意, 起信論疏, 法華玄論, 法華玄義釋籤, 辯正論, 四敎義, 三彌勒經疏, 三部律抄, 西方要決釋疑通規, 說無垢稱經贊, 續高僧傳, 勝?寶窟, 新華嚴經論, 十二門論疏, 阿毘達磨順正理論, 涅槃經義記, 涅槃宗要, 原人論, 瑜伽師地論, 瑜伽師地論略纂, 瑜伽師地論分門記, 維摩經義, 仁王經疏, 仁王護國般若經疏, 一字佛頂輪王經, 淨名經, 淨名玄論, 肇論, 注大乘入楞伽經, 注維摩詰經, 中觀論疏, 止觀輔行傳弘決, 顯揚聖敎論, 華嚴經義海百門, 華嚴經探玄記, 華嚴一乘敎義分齊章 등이다.

원효의 화쟁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 역시 회통의 경우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이다. 이기영은 화쟁을 "화쟁의 원래 의미는 '편견에 사로잡힌 싸움을 지양하고, 회통적인 이해를 통해 원융무애한 관계를 이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26) 이기영, <원효의 화쟁 사상과 오늘의 통일문제>, <<불교연구>> 11 12, pp. 455-456.

하지만 회통이라는 말은 원효의 화쟁이라는 말과는 그 정의와 사용법에 있어서 분명히 구별되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원효의 화쟁이 개념이 반드시 '융합적' 사유 방식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화쟁이라는 말을 쓸 때 이미 어떤 분쟁이나 쟁론이 먼저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당장 주의를 요하는 어떤 상황이 펼쳐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효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렇게 해석해야 할 필연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저 그 당시에도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들이 존재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효의 화쟁이 반드시 화해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필요도 없다. 단지 원효는 여러 주석서와 저술을 통해서 다양한 불교 교학의 이론들이 망라된 문헌적 자료와 전거를 제공함으로써 겉으로 보기에 모순되는 듯한 이론들이 제각기 교리적이고 문헌적 전거를 통해 검증되고 승인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서로 다른 듯이 보이는 입장과 이론은 실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소통될 수 있는 것이어서, 더 나은 생각의 교류와 토론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27) 박재현이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한 재고>(<불교평론> 2001년, 가을호)에서 말하고 있는 소통이론을 통한 화쟁의 해석에서 참고하였음.

7. 맺는 글

통불교 담론은 한국의 불교사를 관통해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담론은 종종 그 개념이 형성된 맥락을 무시하거나 그 근원을 상고하지 않은 채 사용되는 경우가 많음이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되었다.

즉 그 이념이 태어난 식민지적 상황은 완전히 배제된 채 원효의 학술적 업적을 견강부회하여 통불교나 회통불교의 '통'이라고 하는 이념적이며 교시적인 원리가 만들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조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문화적 지침으로 기능해온 것이다.

통불교 논쟁은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불교평론>>지에 발표된 심재룡의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인가> 하는 논문에서 한국 불교의 고유성을 묻는 질문의 맥락에서 회통 논의는 다시 재점화 되고,28) 이것은 이봉춘의 반박문인 <회통불교론은 허구의 맹종인가>로 이어진다.28) <불교평론> 3호 (2000년 여름). 29) <불교평론> 5호 (2000년 겨울).

심재룡은 통불교 담론이야말로 유사종교적 이데올로기이며 이 담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불교의 전통을, 통불교라는 이름 아래에 숨은 의도와 아젠다를 가지고 서로 다른 신념 체계를 함부로 혼합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절충적 사고방식은 가치 체계의 다양성을 무색하게 하며, 모든 것을 감싸는 불교라는 슬로건 하에서 사회적 조화를 고취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봉춘은 "한국불교의 긍정적 자기 인식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 위의 논문에서 한국 불교의 고유성이 회통성에 있다고 보고, 이 회통성이 부정될 때 한국 불교도 같이 부정된다고 보는 것 같다. 즉 한국 불교는 정체성을 상실하는 고아와 같은 입장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문헌학적으로 정확치 않으며, 역사적으로 애매하고, 또한 이념적으로도 수상한 '회통'이라는 성격을 한국 불교에 갖다 붙임으로써 오히려 한국 불교의 고유한 전통이 왜곡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국 불교 발전 과정에서의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과, 원효를 비롯한 과거의 불교사상가들이 발전시킨 다양한 교학체계와 이론의 전체 스펙트럼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한국 불교에 대해 하나의 개념이나 하나의 특징으로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오히려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더구나 이 '회통성'이나 절충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본 것처럼, 이 개념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특징도 말해주지 않으며, 그것이 지향하는 특정하고 뚜렷한 가치나 지향하는 바를 내보이거나 긍정적으로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한국 불교가 회통적이라고 하는 것은 내세울 특징이 없는 무특징의 전통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회통이라는 개념으로 한국 불교를 정의하는 그 자체가 공허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효를 기리고 그의 뛰어난 학적 성취, 그의 창조적 불교 해석, 또한 그의 논리적이고도 유려한 문장을 온당하게 평가하려면, 이러한 공허한 일반화를 거부해야 할 것이며, 대신 그의 종교 사상과 실천적 특성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 한국불교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가 쌓이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한국 불교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는 꾸준한 시도가 나타나고 뒤이어 이러한 시도에 대한 비판도 등장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회통불교 이념이란 교리적 차원에서 화엄의 원융과 같고, 따라서 화엄종 교학의 일반적 특색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한국 불교의 고유한 특색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아울러 호국불교란 개념 또한 그 의미 자체가 모호해서, 국왕에 대한 충성으로 해석되는 한에서는 동아시아 불교 일반에서 발견되는 특색이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신라시대에 국한한다면 호국은 지금 이곳에 불국토를 구현하려는 종교적인 태도로서 인도 대승불교 경전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개념이다. 어느 경우든지 현재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국가개념으로서의 호국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불교에 고유한 특징이 있다는 주장이 실제로는 그 특성이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불교의 특성 부재론의 입장이 한국 불교에 고유한 특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불교의 특성을 부정하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불교에 여타 전통의 불교와는 다른 '유니크한' 특성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규명하려는 민족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문화간의 교류와 습합의 역동적 과정을 간과하고 하나의 문화에는 고유 불변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 에센셜리즘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 불교의 특성을 새롭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작업을 위한 전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30) 조은수, <한국 불교 성격론에 대한 소고-보편성과 특수성의 관점에서>, 금강대학교 국제불교사상학술대회 자료집 , 2004년 10월 15일, p. 1. 이 논문에서는 이상의 전제를 가지고 한국 불교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조선 후기 기성 쾌선 스님에 의해 저술된 염불환향곡 을 분석하였는데, 다음의 세 가지 점에 중점을 두었다. 첫째 저자가 불교의 전통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둘째 그의 저술에서 어떤 한국 불교의 저술이 인용되고 있는가, 셋째로 한국 불교의 특성을 나타내주는 어떤 키워드들이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한국 불교를 만드는 소의 경전이 무엇인지, 한국 불교를 구성하는 교리적 틀이 무엇인지, 또한 자신의 전통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18세기 한국 불교의 교리적 특성을 추출하고자 한 것이다.

우선 한국 불교의 고유한 성격을 따지는 것은 앞에 든 여러 가지 결함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 불교의 다양한 측면들을 찾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불교의 고유한 성격을 밝히려 하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실현된 구체적인 모습으로서의 한국 불교의 전통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전통이 성립하는 조건은 한 시대의 불교인들이 이전의 불교 교리 체계에 대해 자신의 전통이라는 의식(awareness)을 갖느냐 여부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한국 불교 연구는 시대를 뛰어넘어 항구적으로 나타나는 한국 불교의 공통적인 특성을 찾으려 함으로써 오히려 전통에 대한 의식의 총체로서의 한국불교 전통과 자취를 놓치고 있다. 필자는 따라서 한국불교의 '한국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찾기보다는 한국 불교 교학 그 자체를 "함"으로써, 구체적 연구 작업의 총화로서 한국 불교가 가진 다양한 성격들이 나란히 제시될 때, 비로소 한국불교에 대한 지도가 윤곽을 얻고, 그 속에 흐르는 산맥과 강도 그려 넣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 박사 과정 수학 도중 도미(渡美)하여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조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부교수. 논문으로 <The Uses and Abuses of Wonhyo and the 'T'ong Pulgyo' Narrative> <均如 華嚴 敎學의 몇 가지 특징> <깨달음의 理論的 解明> <율곡의 이통기국은 화엄의 법계관에서 유래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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