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캬 디타 대회 참가기

들어가는 글

과학문명의 발달로 지구가 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고, 사상과 종교 문화도 국경을 넘어 보급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도에서 발생하였지만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더니, 이제는 서양은 물론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주까지 전파되어 많은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전혀 다른 문화와 풍토에도 불구하고 수행할 여건을 스스로 마련해가며 해탈을 위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유럽·미국·호주 등지의 외국인 수행자들을, 특히 여성 수행자들을 보면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찬란한 불교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는 오히려 서양의 교육제도·종교·사상에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드는데 정작 그들은 불교에서 그들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새로이 발심 출가하는 외국의 수행자들은(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과거 전통에 무조건 적응하려 하지 않고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만행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를 통해 기존의 불교 전통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샤캬 디타 대회’이다. 오랜 역사 동안 가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설사 출가했어도 남성 수행자보다 아랫자리에 머물러 종속된 위치를 면치 못했던 여성 수행자들이 도도한 시대의 흐름에 합류하여 자신의 입지를 밝히고 발전을 모색하는 모임을 열게 되었으니 이것이 샤캬 디타의 시작인 것이다.

샤캬 디타란?

샤캬 디타는 국제 여성 불자들의 모임으로 ‘샤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의미하고, ‘디타’는 범어로 딸들이라는 뜻이다. ‘샤캬 디타 대회’는 2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며 개최지는 전 회의에서 거론된 후 임원들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회장은 스리랑카의 여성 불자인 라자니이고, 부회장은 일본 여성학자 코코이며, 고문은 미국의 비구니 렉시 쏘모이다. 샤캬 디타는 남방 불교권인 스리랑카의 재가여성 라자니, 태국의 불교학자 차슈만 카빌싱과 독일 출신으로 스리랑카 불교에 귀의한 비구니 아야 케마, 미국 출신으로서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렉시 쏘모 등에 의해 1987년 2월 부처님의 성도지인 인도의 보드가야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결성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증진하고 ● 전 세계를 통해 여성 불자들의 의사교환 조직망을 창출하며 ● 다양한 불교 전통에 대해 화합과 이해를 증진하고 ● 불법을 지도하는 스승으로서 여성을 교육시키는 데 격려하며 ● 여성이 연구하고 수행하는 시설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고 ● 현재 비구니 승단이 없는 곳에 비구니 승단이 설립되도록 돕는다.

이상을 보면, 불교의 전통과 역사가 없는 서양 비구니들은 다양한 제도와 전통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싶어 했고, 비구니 승단이 없는 남방 불교권 여성 불자들은 구족계를 받은 비구니 승단을 설립하려는 원력에서 샤캬 디타가 처음 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차슈만의 보고에 의하면 태국과 싱가포르의 불교계에서 많은 지원을 하여 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샤캬 디타 대회’ 참가활동

우리 나라에서 샤캬 디타 회의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91년 10월 25∼29일까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개최된 2차 대회부터였다. 당시 비구니회 회장이었던 고(故) 혜춘 스님과 묘엄 스님·상덕 스님·수정 스님·현주 스님·일연 스님·대우 스님 등 비구니계 대덕 스님들이 참석하였고, 대불청 여성회장인 선영란 씨 등 재가불자도 참석하였다. 이미 보드가야에서 첫모임이 있었지만 세계적인 모임이 된 것은 방콕 대회부터였고 우리 나라는 거의 30명 가까운 인원이 대거 참석하여 주최측에서 놀라는 반응도 보였다.

혜춘 스님은 축하인사에서 태국·미얀마 등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하는 남방 불교계 여성 수행자들이 비구니계를 받도록 촉구하였고, 수정 스님은 토론에서 출가와 재가의 모임이 구분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묘엄 스님은 세계인들이 서로 이해하는 장이 되기를 바라면서 젊은 수행자들의 참가를 격려하였다.

현주 스님은 시대와 호흡하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가 교환되어야 하며 사회복지를 겸하면서 자기 수행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선영란 씨는 샤캬 디타 대회가 명실상부한 여성 불자들의 국제 교류의 장이 되고 참선과 교리를 아울러 연마하며, 출가와 재가가 더불어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대우 스님은 수행의 교류가 있기를 제안했다. 비구니 계단이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나라는 매우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개회식의 축하인사도 비구니회 회장 혜춘 스님에게 배당될 정도로 구족계 계단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필자는 88올림픽 때 국제포교사로 교육받은 인연이 있어 비구니회 통역자격으로 처음 참가하였다. 호주 출신의 비구니 지광 스님도 필자와 함께 통역을 도왔다.

특히 서양 비구니들은 한국의 참선수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비구니의 수행과 사상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집요한 질문을 해왔다. 서양 비구니 가운데는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비구니들이 많았고, 미얀마 불교·스리랑카 불교·일본 불교에 귀의한 비구니들도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비구니계를 받았거나 대만과 일본에서 비구니계를 받았으며, 한국과 일본, 대만을 거쳐 각 나라의 불교에 귀의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각국의 불교가 서양인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앞으로 우리 나라도 외국인을 받아들일 때 열린 자세로 대화와 교육에 임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통역자로 비구니계 대덕 스님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주로 혜춘 스님의 통역으로밖에 소임을 하지 못하여 전체 참석자들에게 회의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전달을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동시통역 장비도 이용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 선방의 생활을 소개하기 위하여 석남사 선방의 수행 모습과 법거래 등의 장면을 대회 참석자에게 소개하였다.

3차 대회는 1993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개최되었고 한국에서는 비구니회 회장 혜춘 스님과 비구니회 임원 스님들이 참석하였다. 4차 대회는 북인도 라다크의 수도 레에서 1995년 8월 1∼7일에 개최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비구니회 임원진이 아직 조직되지 않았다고 하여, 필자는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한국에서는 선방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대성 스님과 대안 스님과 필자 모두 세 명이 참가하였다. 2차 대회 이후 모든 공문서는 필자의 처소로 보내왔다. 주최측의 말에 의하면 비구니회로 보내면 회답이 없어서 필자에게 보낸다고 했는데, 태국 대회 이후 필자는 본의 아니게 비구니회 국제교류 담당자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공문서를 읽고 비구니회를 찾아가서 그 내용을 전달하고, 비구니회 회장 스님께 참석 여부를 묻고, 그 내용을 주최측에 통보하는 등의 일을 맡아서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비구니 회장단이 교체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필자가 비구니회에 가서 공문서를 전달하며 매달리는 입장이 되었다. 공문서만 전달하면 문제는 간단하겠지만 각지에서 오는 협조(도움)의 공문서는 비구니회에 가져가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태국 여성 불교지인 〈NIBWA〉를 지속적으로 보내오니 지원을 해주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처음 국제 대회에 참가한 인연이 필자를 아주 깊게 엮어매는 끈이 되고 있었다.

4차 대회가 열린 라다크는 히말라야의 서쪽 자락에 위치한 산악 도시로 천 년 이상의 불교전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었다. 해발 3,000m가 넘고 1년 중 눈이 녹는 여름 3달만 길이 개통되어 외부와 연결되는 오지이다. 너무 높다 보니 산에는 나무가 없어 바위산을 하고 있으며, 야크라는 산양을 키우고 보리와 밀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산골지역이다.

함께 참가하자고 사정하여 동행한 대안, 대성 스님은 고산병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경과가 좋지 않아 델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대회에 참가하여 예불도 하고 발표도 하자니 심적 부담이 더 컸다. 라다크는 지형적으로는 인도에 속하지만 옛부터 티베트 불교를 전승하여 오늘날에는 오히려 티베트 본토보다도 더 고스란히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불교왕국이었다. 일반 재가자들은 그렇게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심이 대단하여 사원은 큰 규모로 지어져 있고 승려들의 숫자와 영향력도 아주 크게 남아 있었다.

재가불자들의 집에는 불단이 모셔져 있고 그 안에 비단옷을 입은 부처님과 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올리고 천수를 올리는 등 그야말로 일상 생활 속에서 불교를 실천하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선량한 사람들과 불교, 아마 극락세계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수함으로 꽉찬 곳이 라다크다. 매년 정초에는 스님들을 모셔다 독경을 하고 집안의 대소사에도 스님들을 모셔와 공양을 드리고 축원을 부탁한다고 한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하늘처럼 무심하고 티가 없어 보였다. 대회가 개최된 마하보디 사원은 한국의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지원에 의해 초등학교로 사용되기도 한다.

5차 대회는 1997년 12월 29일∼1998년 1월 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되었다. 국내에서 방송도 하고 홍보도 하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스님들께 회의 참석을 권해 보았지만 이번 대회도 결국 지원자가 없어 혼자 참석하게 되었다. 대회기간도 정초와 동지가 겹쳐 있어 갈 만한 스님은 한 분도 없었고 재가불자들도 양력설이 겹쳐 다들 갈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공부하는 학승으로 여비도 넉넉지 않은 데다가 미국을 다녀온 직후라 참가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필자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한국은 자취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딱한 생각이 들었다. 동국대 교수로 있는 계환 스님이 비구니 학자들의 모임인 ‘담소회’에 건의해서 담소회에서 500불을 지원해 주었다. 여러 사정상 갈 형편도 되지 못했는데 막상 500불을 지원받고 보니 부담이 되고 용기도 나서 참석할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값이 제일 저렴한 베트남 항공으로 택하고 500불은 대회 주최측에 지원금으로 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대만 불광사에서 온 비구니가 함께 방을 쓰자고 하였다.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었는지 호텔비는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불교국인 캄보디아측에서 출가 수행자의 숙박비를 조달해 주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더니 정말 궁할 때 통하는 경험은 궁해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방콕에서 비행기를 갈아 탈 때도 10시간 이상을 미국 여성 불자가 호텔방에서 함께 쉬도록 해주더니 전에 없던 참으로 신기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위기가 닥쳤다. 프롬펜 왕궁에서 개회식이 개최되었는데 각 나라마다 왕실에 자신들의 나라의 오래된 고물을 전달하는 의식이 있었다. 각 나라에서는 아름답게 포장한 선물을 왕비에게 증정하는데 우리 나라는 준비한 것이 없어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국제회의를 가면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왕실에 선물을 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였지만 난감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개최지는 왕궁 가까이 있는 사원이었다. 인도와 동남아 사원은 대부분이 2∼3층 규모이며, 아래층은 예불이나 독경 등 주로 의식을 집전하는 곳이고 위층은 좌선하는 곳으로 사방이 트이고 조용하다. 숙소에서 잠만 자고 나온 후 좌선할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하여 절 2층으로 향하였다. 캄보디아의 전통은 태국과 유사한 점이 많아 보였다.

사원의 건축양식도 그렇고 불교왕국인 점도 그렇고 사람들 생김새도 비슷하다. 캄보디아 인들은 자신을 ‘캄퓨차’로 부른다. 그들의 언어는 ‘크메르’라고 하여 고대 남인도의 브라만 경전에 사용된 말이라고 한다. 시장에 가면 외국인을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고 외국인에게 바가지 요금을 부를 줄도 모를 만큼 때가 묻지 않았다.

5차 대회는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불교를 전공한 Dr. 헤마의 역할이 돋보였다. 팔리 어로 율장을 해독할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이 있고, 말보다는 발로 다니며 대회 참석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은 지식만 있고 실천이 없는 학자들의 모습을 초월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손수 잡고 안내원 노릇까지 기꺼이 하는 그녀의 행동에서 누가 재가·출가를 따지겠는가?

이번 대회에는 마음 속에 다른 대회보다 부담이 컸는데, 주최국의 선물도 장만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무엇인가 특별한 선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참선을 소개한 뒤에 기(氣)운동과 간단한 요가 자세를 소개했더니 참가자 모두 반기며 좋아했다. 좌선하거나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손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이 유용해 보였던지 누구나 대회 내내 하고 다니며 고마워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도움이 되고 즐거운 행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제발표로는 〈한국에서 비구니계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발표하였다.

대회가 끝난 후 앙코르 왓트 참배가 있었다. 불교와 힌두교의 유적지로 유명한 앙코르 왓트 주변에는 사원들도 있었는데 우리 나라도 명산에는 대찰이 있듯이 사원 주변은 선선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돌아 불자들의 지혜는 예전이나 이제나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6차 대회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2월1일∼7일에 부처님의 탄생지 네팔의 룸비니 고타미 사원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에도 11월부터 방송을 하고 홍보를 하였지만 갈 만한 스님들도 모두 바빠서 갈 수 없다고 했다. 마침 논문 관계로 운문사 강사 스님이 네팔과 인도성지 순례를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참가하자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번에도 담소회에서 500불을 지원해 주어 마음의 부담이 줄었다.

캄보디아 대회의 기억을 살려 인사동에서 구입한 관세음보살 족자도 하나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주제발표가 미리 주어졌기 때문에 준비를 치밀하게 하여야 했다. 주제는 〈한국사원에서의 생활〉이었다. 한국불교의 역사와 비구니 선방·강원·구족계·수계 등의 일정, 수행 내용과 과정 등 상세한 자료를 조계종 교육원에서 얻어 준비할 수 있었다. 역사에 약한 필자는 한국불교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사부터 다시 시작하는 만학을 해야 했다.

학위를 취득한 후 인도에서 3학기를 머무른 동안 회비를 걷어 주지 못해서 주최측에 미안했는데 운문사 명성 강사 스님의 논문집에 렉시 쏘모를 초대하여 원고료를 보내주어 위기는 조금 모면되는 것 같았다. 이번 대회에 쏘모는 특히 짜증을 내었다. 혼자 조직하고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회의 참석을 권유해서 5차대회까지 참가하지 않았던 베트남 비구니들을 대거 참석시키더니 너무 힘들어 보였다. 샤캬 디타의 회비는 예전에는 1인당 10달러이었는데, 지금은 15달러, 30달러, 75달러, 150달러 등 4종으로 세분되어 납부된다.

2차 대회 이후 승가대 교수인 본각 스님이 승가대 비구니 스님들에게 권하여 20∼30명씩 회원을 모집하여 주었고, 이번 대회에도 30만원을 보시해서 한국의 특징을 나타내는 작은 선물들을 넉넉히 준비할 수 있었다. 조계사 앞의 대복전 보살님도 지장보살도를 보시해 이번에는 주목염주·소경전·옥연꽃장식·목탁장식·관음도 등 다양한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 보이는 일도 원력과 서로 돕는 마음이 있어 풍성하고 다양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비구니 계단이 존재하고 비구니 위상도 높은 우리 나라에서 주도하지는 못할망정 참석이라도 하여, 새로이 발심하여 수행하는 서양 비구니들과, 비구니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남방 불교권 수행자와 재가불자들을 지켜보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회는 룸비니에서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비구 법신 스님의 절인 대성석가사에서 머무를 수 있었고, 운문사 강사 스님께서 저녁예불 시간에 석가사에서 빌려온 소종으로 쇳송을 해서 다른 대회보다 한층 개성 있는 한국불교의 면모를 보여 줄 수 있었다. 또한 강원의 생활을 소개하기 위하여 운문사 승가대학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 주었다. 베트남 비구니들은 한국 비구니의 교육 과정과 구족계를 받는 과정에 대한 필자의 자료를 가져갔다.

2차∼5차 샤캬 디타 대회의 내용과 활동 사항

2차 방콕대회는 개회식이 끝나고 점심공양 후 렉시 쏘모의 〈향후 세대에 여성 불교도의 역할을 결정함에 있어서 사회·문화적 요소 인식의 중요성〉이 발표되었다. 발표 후에는 그룹토의가 있었다.

둘째 날 태국의 술락시바락사 교수의 〈각기 다른 문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주제에 대한 토의와 발표가 그룹별로 진행되었다. 매일 새벽 6시30분에는 각 나라의 예불과 수행법이 소개되었다. 중식 후에는 미국의 유명한 여성학자 리타 그로스의 〈페미니즘, 재가불교와 미래불교〉라는 주제발표 후 그룹토의와 발표가 있었다. 여성은 수행에 장애가 있고 동·서양에도 차이가 있는데 전통 불교국가에서는 생활과 종교가 일치하지만 서양 불자들은 그렇지 못한 여건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는 여성 수행자가 없고 캄보디아는 전쟁과 가난으로 지원자가 너무 많다는 현재의 상태도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서양 여성은 불법을 배우는 데 손수 찾아다니며 적극성을 띠지만 동양은 소극적 자세로 전통을 따르는 것도 지적되었다. 태국은 비구 스님에게 정부가 지원을 하지만 통제와 간섭이 있으며, 여성 수행자에게는 보조를 해주지 않아 답보적 상태에 머물고 있고, 정보도 부족하여 학회를 창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불교를 믿을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셋째 날 에메랄드 사원, 태국 비구니 스님 사원, 왕궁, 황금사원 등을 참배하면서 태국불교의 실정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태국에는 비구니 스님이 몇 분 안 되는데 챠슈만의 어머니는 그 가운데 한 비구니 스님으로, 절은 방콕 교외의 아늑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특히 모든 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점심공양을 준비해 주었다. 결혼 후 출가했지만 자신의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해마다 비구 스님을 위해 가사불사를 하며 많은 보살행을 한다고 한다. 챠슈만 역시 지금은 〈야쇼다라〉를 발간하며 매춘여성을 교육하고 비구니 계단 설립을 위해 힘쓰는 여성학자이다.

이번 방콕대회는 챠슈만이 재직하고 있는 삼마삿트 대학에서 개최되었다. 앞으로 출가의 원력을 세우고 학문과 교화 보살행에 힘쓸 뿐 아니라 수행도 하는 아름다운 불자이다. 챠슈만이 한때 한국을 방문하여 필자가 안내한 적이 있었는데 조계사 앞에서 한국 스님들의 걸음걸이와 큰 목소리에 놀라워했다. 비파사나 관법이 생활화되어 있는 태국은 국민들의 말소리도 조심스럽고 걸음걸이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에 고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승불교권이라도 남방불교권의 장점은 수용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입적한 아야 케마는 넷째 날 〈불교교육에 있어 스님과 신도와의 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케마는 독일신도 남녀 20명 정도를 동반하고 다녔는데 서양 불자들에게 스님에 대한 태도를 여법하게 교육시킨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기 스님에게만 복종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보고 ‘나무상주 시방승’의 개념도 일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마는 참가자 중에서도 마음을 쉰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에서 체면이나 권위에 눌려 사는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 보였다.

저녁에는 차슈만의 〈여성의 관점에서 본 불교경전의 이해〉라는 주제 발표가 있었다. 차슈만은 부처님 당시 출가 여성들이 대부분 부처님 친족인 왕족 출신이라 그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남들에게 겸손하게 대하고 기존 승단인 비구 스님에게 자문을 구하라는 의도에서 ‘비구니 팔경법’을 제정하였지, 여성의 능력이 열등해서 팔경법이 제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발표를 하였다. 실제로 내려오는 율이나 제도는 그 시대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제정된 것이 많다. 그 뜻을 모르고 글자에 막혀 버리면 지혜로운 불자는 아닐 것이다. 요즘은 갓 출가한 사미승들이 법랍이 높은 비구니 스님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잘못 이해된 법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나라 사회는 남녀 칠세부동석의 시대는 아니다.

나이가 많은 재가 여성에게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데 하물며 같은 해탈의 길을 걷고 있는 출가 수행자에게 방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삼업의 정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부처님은 생사의 흐름을 역류해 가는 수행자들에게 행여나 순류할 인연이 만들어질까 염려하여 기존 승단인 비구 중심의 법을 제정하신 것이지, 여성의 업이 무겁다는 의미에서 여성 출가를 반대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출가 여성은 모름지기 자립적이고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 날은 잠파 비구니의 〈현대사회에서의 불교 계율의 적절성〉이라는 주제발표가 있었다. 잠파 비구니는 형식을 탈피하고 현재 실행 가능한 계율을 재정립할 필요성가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패널 토의에서는 중국의 혜범 스님이 〈미래를 관망하면서〉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오후에는 각 그룹의 발표가 있었고 폐회식이 있었다. 태국은 불교왕국으로 남성들은 왕까지도 3개월씩 출가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고 한다. 불교문화가 풍부한 이 나라는 불교를 문화상품으로 발전시켜 세계의 관광객을 유치시킨다. 방콕 시내의 강둑을 따라 전개되는 아름다운 사원들은 근대의 현명한 왕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는데, 서양식 기둥과 태국 전통양식을 복합한 멋진 사원을 세우고 세계적으로 관람객을 유치하여 사원 그대로가 불교 포교지처럼 보였다. 푸른 빛이 도는 청련화가 경전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태국불교를 보면, 이 나라가 비록 근대화에는 늦은 감이 있지만 문화적인 강국임을 느낄 수 있었다.

4차 대회는 ‘21세기 생존을 위한 여성과 자비의 힘’이라는 주제로 1995년 8월 1일∼7일 북인도 라다크에서 개최되었다. 라다크 불교도 대표자들이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안내하는 모습에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자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당도하는 낯설은 공항에서 고유 의상을 입고 불교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여유가 있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8월 1일 개회식에는 죠캉 사원에서 라다크 전통무용이 소개되고 라다크 불교연합회장의 인사도 있었다. 수도인 레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일정은 오전 7시에는 각 나라의 전통 수행법이 소개되고 9∼5시에는 발표·토론·워크숍, 오후 5∼6시에는 각 나라 전통의 예불이 집전되고 오후 7시 이후에는 문화행사가 진행되었다.

주최국의 발표는 대개 첫날 기회가 주어지는데 달라이 라마 14세의 메시지도 발표되었다. “부처님은 일생을 집 없는 승려로 여생을 보내셨고, 체험을 듣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나누어주신 분이다. ‘연기법’과 ‘남을 해치지 말라’는 가르침은 누구나 가능하면 도와주는 것과 비폭력을 실천하는 것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선을 위한 가장 큰 힘으로 남아 있고, 비폭력은 우리 모두에게 이바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메시지의 주된 내용이었다.

발표된 주제는 〈불교 여성 수행자들의 변화〉 〈법에서의 화합〉 〈불교와 여성과 정의〉 〈부파불교 전통에서 비구니 승단이 없어진 역사〉 〈어제와 오늘의 티베트 여성 수행자들〉 〈티베트에서의 여성과 불교〉 〈잔스카의 출가 여성 사원〉 〈불교와 여성건강〉 〈여성과 발전〉 등이었다. 라다크는 티베트 불교가 전승되는 곳으로 여성 수행자들은 비구와 같은 옷을 입었으나 대부분 비구와 같은 위상은 아니고 교육면에서나 수행면에서나 뒤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회의 참석자들이 고산병으로 고생하자 전통의약 처방으로 매우 끔직이 돌보는 자세를 보여 세계 어디를 가도 선량한 불자들이 존재함을 보여 주었다. 4차 대회 기간중 만난 스리랑카의 비구니 가운데 일부분은 개인적으로 한국 절에서 행자기간을 보내고 비구니계를 받아 왔다고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니 신림동의 비구니 스님 절에서 아침·저녁 예불하고 지냈다고 한다. 스리랑카나 인도를 순례하는 비구니들을 인연으로 비구니계를 받아 왔다고 하고 《반야심경》은 한국말로 외우고 있었다. 비구니회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할 일이 개인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들이 개별 암자에서 배운 것이 한국 비구니 전체의 수계과정으로 오인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한국 비구니계 전체가 평가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으므로 그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5차 대회는 1997년 12월 29∼1998년 1월4일에 캄보디아의 수도 프롬펜에서 열렸으며 주제는 ‘불교에서의 여성―일치와 다양성’이었다. 첫날은 개회식과 등록이 있었고, 캄보디아 전통무용이 소개되었다. 매일의 일정은 7시에 참선하고 8시 조공, 9시에 주제발표와 그룹토의, 11시30분에 점심공양, 오후 2시 워크숍, 4시 차공양, 5시 예불, 6시 문화행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주제 발표는 〈여성 수행자와 여성의 역사에서의 애매모호성〉 〈성행위와 음행〉 〈캄보디아에서 런찌운동의 재생〉 〈미얀마 여성불교〉 〈크메르 여성 불자들의 생존〉 〈폭력에 대한 침묵〉 〈마명(馬鳴)의 사운다라란다에서 나타난 여성의 자연스런 매력〉 〈페미니스트의 이론〉 〈과거 캄보디아 여성불자들의 재발견〉 등이 있었다. 서양에 많이 전파된 티베트 불교에서 수행자들의 성행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으며, 산스크리트에 능통한 인도학자들에 의한 산스크리트 불교문헌 발표와 서양학자들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다양한 발표는 참가자들에게 많은 정보들을 제공해 주었다.

전통에 따라 더러 불교 외적인 요소가 가해진 것이 개방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비판과 시정의 도마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절인연으로 보인다. 전통이 다르더라도 참다운 지혜라면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방불교의 ‘오후 불식’은 티베트 불교에도 수용되고 있으며, 아시아권의 ‘채식 전통’은 동남아와 티베트 불교에서도 수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교류의 장을 통하여 폐쇄된 전통의 모순이나 잘못 계승된 제도 등은 과감히 개혁되어야 한다. 부처님의 근본정신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고 수행법도 계발되었지만, 근본정신과 사상에 위배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서 수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은 오히려 혼란만 가져 올 수 있으므로 기존 전통의 제도를 존중하면서 보완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심법(心法)만 강조해온 우리 나라는 신체의 바른 자세와 구조에 너무나 소홀히 해온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6차 대회의 특징

6차 대회는 2000년이 시작되는 2월 1일∼7일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의 룸비니에서 ‘개인, 가족, 사회, 세계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그동안 참가하지 않았던 베트남 비구니들이 대거 참석하였으며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도 참가하여 명실상부한 세계여성불자들의 모임이 되었다.

개최지의 지형관계로 티베트 불교에서는 겔룩파·까규파·닝마파·샤카파 등의 비구니들도 참석하여 각기 자신의 불교에 대한 긍지를 보여 주었고 젊은 스님들의 유창한 영어 구사력은 앞으로의 시대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회가 개최된 고타미 국제사원은 미얀마 불교에 귀의한 네팔 비구니 사원으로 샤캬 디타 대회를 위해 건축되었으며 비록 공사가 완성되지 않아서 불편한 점은 있었으나 법랍이 6년밖에 안 된 비구니들의 원력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 7시에는 각 나라의 명상법이 소개되었고 이어서 주제발표, 오후 5시에는 예불, 6시에는 문화행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대회는 불교교리의 과학적 이해가 돋보였고, 지도자 교육에서는 ‘역할 바꿔 하기’ 등을 통해 완전학습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었다.

보스턴에서 카루나 센터를 운영하는 미국의 여성 불자는 불교교리와 심리학을 접목하여 상담치료에 응용하는 것을 소개했고, 그밖에 무용과 마술 등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도 제시되었다.

네팔은 티베트에서 피난 온 티베트 불교가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대회에 대거 참가시킴으로써 일찍 국제화에 눈뜰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샤캬 디타 운영위원이 미국 여성들이 많다 보니 그들의 입김이 너무 세고 동남아 국가들이나 소수 참가자들의 참여는 제한되는 느낌이 들어 앞으로 형평성 고려에 대한 의견도 제시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회는 특히 전통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보다는 타당성이나 합리성을 찾아 선택하려는 서양 불자들의 태도도 엿보였다. 주최측인 네팔 불교도연합에서는 대회기간 내내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불자들의 신심 있는 태도에서 샤캬 디타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네팔 여성 불자와 장애아들의 합주공연은 세상은 더불어 능력을 계발하면서 함께 살아가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네팔의 전통무용은 밀교의 오방불(五方佛)을 표현하는 종교와 문화가 융합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부분의 서양 불자들의 보시와 원력 그리고 일본 여성학자인 코코의 헌신과 렉시 쏘모의 보살행으로 샤캬 디타는 10년째 개최될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나라도 이름에 걸맞는 실천과 원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샤캬 디타 대회에서 보고 들은 각 나라의 여성불교 현황

비구니 승단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주로 동북아시아 대승불교권으로 한국·대만·일본·베트남 등이다. 대부분 여성 수행자들은 남성 수행자들에게 의존상태에 있거나 통솔 지휘하에 있으며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서양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적극적인 서양 여성들이 각 나라를 직접 방문, 전통과 수행법에 대하여 공부하고 체험하면서 제일 많이 선택한 것이 티베트 불교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출가한 여성 수행자들은 승복도 비구 스님들과 동일한 형태를 허용하고 학문과 수행이 계승된 스승들에게 교육받을 여건도 제공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미얀마·스리랑카·태국·한국·일본 등에도 귀의하였지만 그 숫자는 아주 미미한 편이다. 동남아 불교는 대부분 부처님 초기 가르침을 계승하고, 계율에 있어서도 엄격하며, 심지어는 비구니 승단도 허용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받은 여성 불자들의 불평은 커지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남녀불평등은 점차 소멸하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무조건 기존의 전통만 주장하다 보니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와 위상을 찾으려는 욕구가 높아진 것이다. 드디어 각 나라의 불교를 초청하여 기존 승단에 보여주면서 비구니 승단 회복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구니 승단이 없는 곳은 티베트를 비롯하여 미얀마·태국·스리랑카·캄보디아·라다크·네팔·인도 등 대부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불교국가들이다. 오히려 서양 비구니들은 한국·대만 등을 통해 비구니계 수계를 받아가고 있는데 불교를 생활화하고 있는 나라에서 비구니 승단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랜 세월을 비구 스님 절 옆에서 빨래를 돕거나 청소를 해주며 의존적으로 살아온 출가 여성 불자들을 고무시킨 것은 재가 여성학자들이다. 여성 출가자들은 이제 대승불교국들처럼 비구니 승가를 건립하여 자립하며 사회를 지도하는 입장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립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며, 체계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 위상이 높고 비구니도 선방에서 수행까지 할 수 있는 한국불교는 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샤캬 디타가 조직된 후 많은 출가 수행자들이 대승불교권에서 비구니 수계를 받아 갔으며, 공부와 수행에 전력하고 있다. 대만의 비구 스님으로 세계적으로 대승불교와 선종까지 포교하고 있는 성운 대사는 해마다 부처님 성도지인 보드가야에서 비구니계 수계식을 봉행하고 있는데, 특히 서양에서 출가한 여성들이 비구니계를 받고 있다.

그러나 보름이나 일주일의 교육을 받고 비구니계를 수계했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은 비구니임을 실감하지 못하고 긍지도 못 느낀다고 한다. 수계만 받았지 실제로 교육과 수행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수계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마저 들게 된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 비구니들의 원력과 회향이 기대되는 대목으로 보인다. 유럽에는 일본의 조동종 계통의 선과 티베트 불교가 많이 전파되어 있다. 당연히 서양의 비구니들 가운데 상당수가 티베트 불교와 선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남방불교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불교 전통을 접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에 계율의 문제나 대승사상 즉 이타적인 보살행이 결여되었거나 위배되는 것을 깨닫고, 시정과 개혁을 촉구하며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린포체 가운데 닝마파 등은 인도의 탄트리즘을 수용한 티베트 불교의 원형을 고수하는 전통으로 인해 비판과 도전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는 서양의 발달된 논리학이나 의학을 접목하여 활발히 포교하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의 대부분의 경전과 수행법을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이제는 선종의 어록인 《임제록》이나 《벽암록》까지 번역·보급하고 있고, 심리학과 불교의 유식학이나 기본교리를 결합하여 정신치료나 심리상담 등에 응용하여 센터까지 운영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으며, 다방면으로 현대인의 생활과 불교교리를 접합시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치와 문학과 영화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교리만 고수하거나 사원 안에서만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각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티베트 불교의 순수성과 훌륭한 지도자를 키워 온 전통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며, 사회적으로 불교를 존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출가하여 이루어낸 복합적인 요소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조동종 선사들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무욕으로 수행과 교화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일본을 방문한 서양 불자들은 결혼한 승려들과 장례불교 같은 분위기에 실망하고, 계율이 청정하고 수행 전통이 보존되고 있는 한국 선불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많은 대비를 해야 한다. ‘기무치’만 알다가 ‘김치’를 알게 된 사람들같이 그들은 한국 선방에서 수행하고 배우고 싶어하고 있다. <끝>

운월
비구니 스님.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선방 안거. 봉녕사 강원 대교과 졸업. 동국대학교 석·박사과정 수료. 철학박사. 국제포교사 델리 대학원 산스크리트 어학 수료. 현 동국대 선학과 강사. 논문으로 <고려 요세의 천태선 연구> <삼매 수행론 연구> <보리달마에 대한 고찰> <요가수트라의 삼매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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