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나룻배

반야심경
나는 반야사상에 대해서 깊은 학문적 관심을 갖고 있으며, 강의를 한 일도 있고 《금강반야경》에 대해서는 강의서를 낸 일도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스님과 학자들이 쓴 《반야심경》 해설서도 읽어 본 일이 있다. 그러나 근간에 김사철, 황경환 선생에 의해서 공동 저술되어 출간된 《반야심경》 해설서는 나에게 큰 충격으로 와닿았다. 이 해설은 종전의 어떤 해설에서 볼 수 없었던 독창적 관점과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반야심경》을 해설함에 있어서 학문적 바탕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모든 불경은 다 불설(佛說)이라는 막연한 시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교사상사의 측면에서 보면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많은 대승경전들이 편찬되어졌고, 이 같은 대승경전들은 모두가 불설(佛說)이라는 입장에서 전개되었음을 밝혔으며,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이 경전의 찬술자를 인도의 ‘갑돌이’라는 편찬자로 염두하면서 경전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승불교를 시대별로 크게 초기대승, 중기대승, 후기대승의 3기로 나누기도 하고 학자에 따라서는 초기대승 앞에 원시대승을 설정하여 4기로 나누기도 한다.

이럴 경우 초기대승의 사상으로는 반야사상, 화엄사상, 법화사상, 정토사상으로 크게 분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대승사상은 반야사상계의 《8천송반야》(漢譯의 《道行般若經》)라는 것에 대해 여러 학자들은 합의하고 있다. 이 경의 해설자도 설명하고 있듯이 반야계의 경전도 시간적으로 전후가 있고, 그 내용에도 증광(增廣)이 있어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이 《반야심경》이야 말로 가장 짧은 내용으로 그 방대한 사상의 대강을 압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둘째는 해설의 방법이나 그 용어가 참신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처음 이러한 경전 해설을 읽는 이들은 대단히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으며 해설 자체가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산스크리트 원어를 그대로 음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동안 우리들이 중국어 번역에 너무 친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불교 용어는 중국에서 한역된 것이므로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산스크리트 원어를 직접 대한다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역은 아무리 번역이 훌륭하다 하여도 원어의 뜻을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이 점에 있어서 파격적인 시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흔히 접하고 있는 오온(五蘊)이라는 것, 즉 다섯 스칸다의 그 구조와 작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함으로써 소위 ‘오온은 다 공(空)하다’는 어려운 문제들을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다.

저자는 “다섯 스칸다(五蘊)는 텅 비어 있는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주 자체가 거기에 충만해 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오로지 스스로 하는 무조건적인 것이고 절대적이고 안정되며 불변한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것뿐이다. 이 모든 것은 있으나 다만 안정되고 불변하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스스로 존재하는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는 상태를 고오타마는 간단히 ‘비어있음(순야타아-空)’이라고 했다.”라고 설명함으로써 공의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

흔히들 공(空)을 설명하면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미 《8천송반야》(소품반야경)에서도 가짜 바라밀(相似波羅蜜)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밝힌 바 있다. 공성(空性)과 무상성(無常性)을 구별하지 못하여 공을 무상으로 해석하는 것을 가짜 바라밀이라고 했다. 어떤 사물이 현재는 있지만 앞으로 없어지므로 공이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이것은 공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무상을 설명한 것이다. 무상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뜻으로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물이 수증기가 되고 다시 물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공의 설명이 아니라 무상의 해설이다. 여러 책에서 이러한 것은 잘못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그러나 이 책에서는 정확하게 공의 바른 뜻을 파악하고 이것을 수행의 실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셋째, 지금껏 《반야심경》을 하나의 사상서로서만 이해한 것이 일반적 통념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실천수행의 길잡이로서 접근시키고 있다. 참으로 이 같은 해설은 귀중한 것이고 탁월한 견해이다. 이 책이 그 부제를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을까?’라고 한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우리 모든 중생들은 깨어나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깨어남을 경험하고 그 깨어남의 길을 가르쳤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그의 제자들은 그 깨어남의 길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을까.

과연 깨어남의 세계는 즐겁고 행복한 것인가. 지금까지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아온 중생으로서는 그 이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즐거움과 행복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하나하나의 단계를 설명하면서 깨어남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부연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은 반야심경을 해설함에 있어서 대승경전이 아닌 아함(阿含)이나 니카야에서 그 근원을 찾고자 함이다. 이 같은 해설은 필자의 불교세계가 그만큼 깊고 넓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승의 반야사상이 근본 불교의 사상체계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 주는 좋은 반증이 되고 있다. 진실로 불교를 바로 알고 실천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국대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철학박사.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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