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한 수행자의 구도, 생명 에세이

얼마 전에 경불련 정책위원회가 실상사에서 열렸는데 바람을 쏘이러 갈 겸 오래간만에 노부호 교수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나는 그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운동 한 번 하지 않고 빠알리 경전 번역에 몰두하거나 잠만 자는 바람에 몸에 쓸데없이 군살이 붙고 정신은 외부세계에 잘 적응하기 어려웠다. 실상사에 도착한 그날 저녁 도법 스님의 강의가 있었는데 당당한 목소리를 통해 우러나오는 명강의였다는 것이 그곳에 참여한 대대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강의를 녹취하여 경불련회지에 실어야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서강대 노부호 교수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불교에 대하여 품어왔던 가슴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을 가졌다고 기뻐했는데 나도 최근 몇 달 동안에 방안에만 틀어박혀 갇혀 지냈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스님의 최근 저서인 《청안청락하십니까》를 읽으니까 스님의 사유가 주옥같은 글 속에 드러나 있어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책 전체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여러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설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는 없지만 어느 페이지를 펼치건 진실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수행자의 향기가 어린 금언과도 같은 체험담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도법 스님은 이 책의 서문에서 “숨가쁘게 달려온 세월의 강물을 들여다보노라니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꿈을 갖고 밤낮없이 땀흘려 왔다. 애씀의 대가로 엄청난 변화와 성과를 이루어 왔으나 체감되는 현실은 부족과 불만,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져 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그가 수행자로서 얼마나 치열한 구도적인 삶을 살아왔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낙원을 찾아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왔던 전 인류에 속한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을 토로하는 고언(苦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필자는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적 미래를 노래하고 있는 현대사회가 총체적인 비인간화와 생명의 위기 문제로 불안, 초조해 하고 있다. 전혀 뜻밖이었던 결과인 오늘의 역사현실은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의 세계관과 그 방법으로 살아온 필연적인 귀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 무지란 바로 이 우주가, 이 세계가 한 몸 한 생명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모르는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게 되어 칠흑 같은 무지를 낳는다. 우리는 그러한 무지에서 깨어나 관계성의 진리를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지향하는 중심사상은 비인간화되어 가는 도시와 황폐화되어 가는 농촌을 한 생명 한 몸으로서의 관계성의 진리를 자각하는 연기적(緣起的)인 세계관으로 통합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내용으로 집약된다.

도법 스님은 이 책에서 “연기론적인 세계관을 지니면 심산유곡에 혼자 있어도 역사를 등질 수 없습니다.…… 연기론적인 세계관으로 투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온 세계를 항상 내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대중 속에 있을지라도 온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바로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주장한다.

49년 제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8세에 금산사로 출가했다. 69년 해인사 강원을 나와 87년 금산사 부주지를 맡았고, 90년 청정한 개혁승가의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었으며, 95년부터 지리산 실상사 주지를 맡으면서 실상사 소유의 땅 3만 평을 내놓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만들어 실제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실천궁행하고 있다. 스님의 이상은 이렇게 높지만 실천은 단순 소박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 이 책은 높은 가치를 지닌다.

스님은 ‘감자의 삶에서 배운다’라는 장에서 소박한 실천을 진솔하게 자신의 글에 담고 있다. “생명살림의 농장공동체를 만들어보려고 걸음을 내디딘 지 5년째 접어들었다. 귀농운동, 귀농학교의 문을 열었다.…… 사기꾼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밭에 나가 일을 거들었다.

밭일을 하는 틈틈이 밭둑에 앉아 천왕봉 위에 둥실 떠있는 뭉게 구름을 바라본다.” 30여 년의 고운 청춘을 다 바쳐 수행에 매진하고도 ‘사기꾼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밭에 나가 일을 거들었다.’는 스님의 겸허하고도 질박한 말씀은 눈물이 날 정도로 오랫동안 나의 심금을 울렸다.

이 책의 저자는 비단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승려로서 폭력으로 점철된 한국불교의 앞날을 걱정하고 출가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데 나머지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저자의 날카로운 선지(禪旨)가 번득이는 대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들고 싶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쉽게 듣고도 놓쳐버리는 그런 대목이다.

“언젠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한 원로 스님이 ‘내가 이 정도 차는 타야 하지 않겠나’라고 하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것이 한국불교의 마지막 신음소리처럼 느껴진 것은 웬일일까?” 저자가 이 글을 신문지상에 쓴 것이 1990년이니까 스님은 세속보다 더 세속화되어 가는 불교의 앞날을 준엄하게 읽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불교적이고 수행자적이고자 하는 사무친 의지가 살아 있지 않는 한 물량적인 성취와 성장은 허구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기만하는 무지와 몰염치가 되고 말리라.”

이러한 예측은 우리가 알다시피 역사를 통해 예언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책의 후반부에 실린 ‘20세기문명을 비판한 거지성자 페터와의 대담’은 당시에 필자가 통역을 담당했는데 도법 스님의 성숙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대담은 아주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두 분 모두 여법한 수행자로서 현대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담론이었다.

페터 선생은 현대 서구문명에 대하여 반성적인 입장에서 “물질적인 성취가 작은 기쁨, 큰 불행을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동양적인 사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에 반해 도법 스님은 물질을 추구하고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어왔다고 주장하고 맹목적으로 동양에서 구원의 빛을 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동양문화권이나 불교문화권이 20세기를 주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20세기가 가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겸허하게 대답한다.

두 분은 모두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에 욕망만이 남게 되고 욕망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으나 현대문명을 편리하게 만든 도구에 대한 견해에는 간격을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페터 선생은 모든 편리한 것은 편리한 그만큼의 독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노자는 자기가 살았을 당시에 도르래가 발명되는 것을 보고 벌써 인류문명의 타락을 예언했었다.

그러나 도법 스님은 문명의 이기인 도구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며, 선이라는 가치창출의 도구로 쓸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신동아에 소개되었던 소설가 이상락 씨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내용은 주로 그 동안의 스님의 활동을 회고해보는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법 스님이 1994년 조계종단의 개혁회의 상임부위원장을 맡았다가도 훌훌 털고 산사로 돌아간 것, 98년 조계종 사태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사태를 수습한 뒤에 뒤돌아보지 않고 지리산 실상사로 돌아온 일, 농촌운동의 어려움과 황폐한 현실에 관한 담론이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담론 속에는 스님의 고결한 순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화가 두 가지 들어 있다.

스님은 실상사 터가 신라시대에 풍수지리설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새가 날아가다가 앉더라도 그곳이 앉기에 적당한가 아닌가를 나름대로 판단해서 앉습니다.…… 궁합 보고 터를 보고 사주를 보거나 점을 보고 손금을 보는 것은 부처님께서 하지 말라고 유언으로 못을 박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불교신도나 웬만한 스님이나 역사학자들도 실상사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풍수도참설을 끌어들였을 법도 한데 스님은 분명한 불법의 안목으로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단호한 스님의 선지(禪旨)를 읽을 수 있어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또한 1964년에 주조된 실상사 범종에 일본지도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항간의 소문처럼 ‘일본 때리기’가 아니라 자세히 보면 한국지도도 그려져 있는데 한국인에겐 ‘정신차려라’ 일본인에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이 대목 역시 불교의 다르마(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스님은 어떠한 호국이라도 다르마의 진리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수필집이지만 쉽게 읽을 책은 아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소녀 취향의 값싼 감상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치열한 수행자의 고뇌가 녹아 있고, 인간과 자연, 도시와 농촌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명의 숨결이 담겨 있다. 단순에 읽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듯 읽는다면 영혼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재성

서울대학교 졸업.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석박사 과정 수료..철학박사. 독일 본대학 박사과정에서 인도학,티베트학 연구, 현재 빠알이 성전협회 대표. 역서로 <쌍웃타니카야 1,2,3>,<인도사회와 신불교>,<범본대조 서장금강경>이 있고 저서로 <빠알리어 사전1,2><거지성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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