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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는 회통불교인가
심재룡 서울대 철학과 교수
[3호] 2000년 06월 10일 (토) 심재룡 서울대 철학과 교수

1. 서론

20세기 이래 정보의 양이 폭주하고 그 흐름 또한 급격히 가속화됨에 따라 동서양 문화의 전면적 충돌로 인한 어지럼증을 겪는 한편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 이제는 동서양을 구분해서 얘기하는 것조차 불가피한 사안이 아닐 경우에는 어색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종교를 포함한 일반 문화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태도도 다원화되었다.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좁혀지면서 각 지역의 문화는 동등한 지위를 갖고 상호교류를 하게 된 것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문화에 있어서의 호혜평등의 이상이 금세기에 와서야 명실을 갖추게 된 듯 싶다. 우리의 근대사는 지난날 문호개방과 함께 밀려든 서구문물에 주눅들어 전통문화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비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지나친 겸양으로 일관하기가 일쑤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국수주의적 냄새가 풍길 만큼 고유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월의식에 젖어 역시 객관성을 잃은 사례가 많았다. 어느 편이든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답지 않은 소아병적 반응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통불교 논의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인데)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극단적 병리현상에서 벗어난 공정하면서도 비판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 주제인 통불교 논의가 균형잡힌 학술적 연구의 결론인가를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의 특성을 싸잡아 호국적이니 (회)통적이니 하는 식의 단언적 규정이 과연 어떤 정당성과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십수 년 전에 이미 본 주제와 관련하여 논의할 기회를 몇 번 가졌었다.1) 그리고 지금도 대체적인 틀에 있어서는 그 당시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비록 충분하게 개진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통불교에 관한 논의는 일단락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기왕에 통불교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기존의 결론을 바탕으로 장차 한국 불교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한국불교 성격론의 긍정적 면모를 점검해보기로 하였다. 이것은 기존의 필자의 논의에서 지나치게 비판적 입장만이 부각된 점을 바로 잡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오래 전에 이루어진 논의의 이론적 토대를 보완함으로써 오랜 빚을 일부나마 청산하는 심정으로 본고를 초한다.

2. 통불교라는 성격론의 발단과 전개

한국불교의 성격에 대해 통불교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것이 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불교―동방문화사상에 있는 그 지위〉라는 논문이 효시가 아닌가 한다. 문제의 논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발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이 불교에 가지는 진정한 자랑과 독특한 지위는 따로 조선적 독창의 상에 있을 것이다. 곧 불교의 진생명을 투철히 발양하여 불교의 구제적 기능을 충족히 발휘하여 이론과 실행이 원만이 융화하여진 ‘조선불교’의 독특한 건립을 성취하였음에 있다. 인도 및 서역의 서론적 불교, 지나의 각론적 불교에 대하여, 조선의 최후의 결론적 불교를 건립하였음에 있는 것이다.2)

육당이 이 글을 발표한 것은 일제치하이던 1930년 태평양불교학자대회에서였다. 아마도 일본 관학자들의 매도성 한국문화론에 대한 대응으로서 민족 자존심을 세워 보려는 시도였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들이 한국문화의 성격을 당쟁, 고착성, 반도적 성격 등 부정적 시각으로 매도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는 한국불교를 “다만 지나 불교의 이식”으로 보고 “고착성과 비독립성이 있을 뿐 창조적 사상이 발생할 수 없었다.”고 혹평한 것이다.

육당의 서론, 각론, 결론 불교설은 다카하시류(流)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는 성격이 뚜렷하다. 이어서 그는 조선 통불교의 건설자로서 원효를 지목하였다.

그런데 반도에서 이 영광스러운 임무의 표현자가 된 이가 누구냐 하면, 실로 당시로부터 대성의 칭호를 얻은 원효가 기인이다.…… 효성을 불교의 완성자라고 함에는 그 이행과 보급에 대한 공적 이외에 더 한층 위대한 가치 창조가 있음을 알지 아니 하면 아니 된다. 그것은 효성의 불교가 불교적 구제의 실현인 일면에 다시 통불교, 전불교, 종합, 통일 불교의 실현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못씀이다.…… 분열로서 통일에, 파별로서 화회에, 속성분화의 절정에 달한 당시의 불교는 새로이 일 생명체로의 조직과 및 그 힘있는 표현을 요구하였다.…… 원효의 불교사에 대한 자각은 요하건대 통불교, 전불교의 실현이니, 이 거룩한 포부를 담은 것이 《십문화쟁론》 2권이었다.……3)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포함한 제 논문에 감명을 받은 고려의 의천이 화쟁국사라는 시호를 원효에게 헌상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거니와 전 한국불교를 일괄적으로 (회)통불교라고 그 성격을 논한 글은 육당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다.4)

시기적으로도 해방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겨우 빠져나온 지 반세기도 되지 않은 일천한 불교 연구의 역사에서, 한국불교 안에서 어떤 일관된 흐름을 찾아보려는 업적이 축적되기도 전에 대부분 저 화려한 육당의 선언에 무비판적인 동조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아무튼 한국불교에 대한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 1970년대부터 한국불교의 성격론(이른바 통불교라는 합의)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화쟁불교, 혹은 통불교라는 타이틀이 원효 일개인에서 한국불교 자체, 더 나아가 한국 사상 자체로 외연이 확대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5)

그러나 한국불교 연구가 이렇게 통불교론 일색으로 흐른 것은 아니다. 서경수는 그의 논문 〈한국불교사상에 나타난 화(和)의 개념〉(1985)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획일적 규정 내지는 개념의 무분별한 유희를 비판하였으며, John Jorgensen은 통불교라는 개념의 연원을 근대 일본의 불교사 안에서 찾고, 내용적으로도 한국불교를 통불교라고 규정하는 것을 마뜩지 않게 보고 있다.6)

그러나 최근에 이르기까지 원효의 ‘화쟁’사상, 혹은 ‘회통’사상에 대한 연구는 적어도 수적인 면에서는 한국불교 연구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다. 한국의 불교사에서 그토록 애호되어온 통불교론이란 ‘회통정신이 한국불교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과연 그런가?

3.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

철학을 연구하는 방법 가운데에는 각 사상 사이의 다름을 봄으로써 각 사상조류의 특성을 구분해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같음에 착안 내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제 사상의 원형에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음은 다름을 전제하지 않을 때에는 무책임한 일원론으로 흐르기 쉽고, 다름이 같음을 전제하지 않을 때에는 피상적인 관찰에 그칠 위험이 크다. 따라서 다르다 해도 그 다른 점에 지나치게 매일 것도 아니요, 같다고 해도 같다는 것에 집착할 것도 아닌 것이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가진다. 보편성은 인간의 내외적 경험이 유형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데 근거한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인간의 유전자는 99.9퍼센트가 동일하다는 ‘과학적’ 사실은 경험의 보편성을 훌륭하게 보증하는 듯하다. 이러한 인간의 생물학적 유사성(구체적으로는 오관과 의식구조의 유사성) 덕분에 인간의 지적, 정서적 활동의 총화인 문화현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개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불교는 불교라는 거대한 문화현상의 일부라는 점에서 인도, 중국 등 여타 지역의 불교와 어떤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붓다의 근본 사상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는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넓은 의미에서 모든 유파의 불교가 붓다의 초기 교설과 그것을 계승한 부파불교의 논장 및 대승 경장을 소의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통성이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전승된 경론에 대한 학파나 종파 간의 해석의 차이이다. 이 해석의 다양성을 반드시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백론의 논주라고 불린 원효에 따르면 그것은 소경들이 코끼리 더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소경들의 견해가 다른 것은 코끼리가 아닌 다른 동물을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분을 만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이해한 것이다.

하나의 교설에 대해 견해가 다른 것은 그것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혹은 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론 혹은 특정 교설에 대해 제가의 견해가 다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경우에도 인도 및 중국불교와 근본 사상에 관한 한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동아시아 불교의 한 축으로서 초기 인도불교와 교리상의 문제, 예컨대 무아, 연기, 공 등 비실체론적인 불교사상과 여래장사상 계열에서 보이는 실체론적인 경향과의 갈등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상존하고는 있지만 동북아 불교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문화의 보편성은 문화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보편성이란 문화현상에 내재한 특질이지만 문화현상의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문화현상의 구체적 모습은 그 특수성에 의해 드러난다. 그만치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성이며 특수성이다.

즉 ‘서로 다름’이 문화의 문화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보편과 특수의 문제는 동양사상사 안에서 보더라도 일(一)과 다(多)의 문제, 현상과 본체, 무(無)와 유(有) 등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양자가 따로 떨어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것이면서도 다르지 않고,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로서 파악된다.

화쟁사상은 원효, 혹은 나아가 한국불교의 특수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다른 불교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화쟁정신이 불교사상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차제에 원효의 화쟁사상을 비롯하여 한국불교사에서 구현된 회통정신의 본질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보자.

4. 회통성의 본질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몇 가지 의문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회통성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인가?

《십문화쟁론》을 통해 본 원효의 회통사상의 특성은 무엇인가? 오로지 원효와 한국불교만 회통적인가? 회통성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짚어봄으로써 우리는 회통사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 ‘회통’의 사전적 정의

① 위에서 인용한 육당의 글에서 한국불교의 성격은 ‘통불교, 전불교, 종합, 통일 불교’라는 것이며 그 내용은 ‘분열로서 통일에, 파별로서 화회’에 이르는 것으로서 그 문헌적 근거는 《십문화쟁론》 2권이다.

② 이기영의 정의에 따르면 회통은 원융회통의 준말로 “일승사상에 입각하여 불교라는 이름 밑에 광범하게 포함된 제 교설과 기타의 화의(化儀)들을 적절히 위치지우며, 그 상대적 가치들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관용적 입장”을 의미하는 것이다.7)

③ 김영태는 통불교를 “소승, 대승, 일승을 회통한 것”이며 “통일적이고, 중도적이며, 총화적”8)인 한국불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심지어 현대 한국이 단 하나의 불교 종파인 조계종으로서 종파를 초월해 있는 유일한 불교국이며 이를 원효의 회통사상의 유덕으로 보고 있다.9)

④ 그러면 원효 자신의 저술에서 화쟁사상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열반경종요》에서 그의 저술정신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여러 종파의 모든 경전들을 통일시켜서 무수한 진리의 가지들을 하나의 진리로 되돌리고, 불타사상의 지극히 공평함(위대한 보편성-필자 주)을 입증하여 다양한 논쟁들을 화해하였다.10) 이상의 몇 가지 예를 통해 회통사상이 교리간의 논쟁을 화해시키고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그 구현자로서 원효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한다면 이러한 사전적 정의는 구체성이 없이는 막연한 수사학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들춰봐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2) 《십문화쟁론》을 통해 본 원효의 회통사상

물론 3문밖에 남아 있지 않는 《십문화쟁론》의 복원을 시도하거나 그 사상적 함의를 여기서 논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논의의 전개상 원효가 ‘회통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만을 확인하면 그것으로 족하다.11)

① 공유이집화쟁문(空有異執和諍門):공과 유의 화해 ② 불성유무화쟁문(佛性有無和諍門):불성의 보편성에 대한 논증 ③ 인법이집화쟁문(人法異執和諍門):인법에 있어서의 공유의 화해 ④ 열반이집화쟁문(涅槃異執和諍門):열반의 다양한 정의에 대한 포용(긍정과 부정의 화해) ⑤ 불신이의화쟁문(佛身異義和諍門):부처의 상주론와 단멸론의 화해 ⑥ 불성이의화쟁문(佛性異義和諍門):불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의 화해 ⑦ 삼성이의화쟁문(三性異義和諍門):유식학의 삼성 간의 화해 ⑧ 이장이의화쟁문(二障異義和諍門):두 가지 장애와 지혜의 화해 ⑨ 진속이의화쟁문(眞俗異義和諍門):진제와 속제의 화해 ⑩ 삼승일승화쟁문(三乘一乘和諍門):삼승과 일승의 화해 논문의 구체적 내용을 분석하지 않고 제목만 일별하더라도 원효의 관심과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화해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듯이 보이는 법들이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불이(不二)라는 것은 원효의 체계에서는 일심의 보편성을 가리키는 것이며 불일(不一)인 것은 일심이 드러나는 작용 및 양태가 다름을 가리키는 것이다. 《십문화쟁론》의 주제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 공과 유, 인과 법, 진과 속 등 같고 다름, 보편과 특수, 하나와 여럿으로 나뉘어진 모든 대립적인 것들은 일심(體)의 다른 양상(相), 혹은 작용(用)이라는 《대승기신론》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앞의 삼문(三門)은 《십문화쟁론》 가운데에서 현존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항목은 사실상 대소승 경론의 주된 논지에 일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화쟁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을 뿐, 전혀 새로운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승과 일심사상에 대한 독창적 해석과 같은 화쟁의 방식이나 원리적인 면에서 그의 독창성과 식견이 돋보이는 것이다.12)

    다) 특정 종파나 경전의 상대적 우위를 인정하는 종파적 입장을 배제한다. 예컨대 《법화경》과 《화엄경》을 제각기 최고의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지의와 법장과는 달리 특정 경론의 절대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경전이 저마다 상대적 입장에 서있음을 통찰하였던 것이다. 경전과 종파의 상대성을 명료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원효가 그들에 비해 불교를 포괄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유독 원효와 한국불교만 회통적인가

회통성은 어떤 면에서 인간성의 보편적 특성에 근거한 문화 자체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경우도 원효, 혹은 한국불교가 회통적이라기보다는 불교문화 자체가 회통적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도 불교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파와 견해가 공존해왔고, 또 그것이 용인되었다.

유독 불교가 다른 사상 혹은 종교문화에 비해 더 관용적이거나 회통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으로 불교가 다른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관대했고 또 포용적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일이다. 아마도 불교의 포용성은 그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인도 문화 자체의 포용적 성격에 상당 부분 연유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초기부터 불교는 종교적 틀을 구성하는 내용물(천신 및 우주론의 제요소) 뿐만 아니라, 주요 철학적 심리학적 개념들에 이르기까지 인도 전통사상과의 이질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동질성에 근거해서 전체계를 구축하였다. 아트만에 관한 논의가 인도 정통철학과 불교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로 인해 이질성이 지나치게 과장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기원 원년을 전후해서 인도에서 성립한 《화엄경》의 경우에는 그 포용성 내지 회통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一中一切 多中一 一卽一切 多卽一)라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에서 그 통일과 조화의 정신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찾아나서는 53인의 선지식 가운데 이교의 스승이나 비천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는 구도 여정의 설정에서 회통의 정신은 그 극치를 이룬다.

불교는 중국에 전래된 이후 토착사상과 화해와 긴장의 역동적 관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중국의 독창적 불교를 완성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불교의 중국 정복으로 보는 시각과 중국사상의 불교 소화, 흡수로 보는 시각이 모두 가능하다. 그밖의 어떤 견해도 두 가지 입장을 양극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지만 이러한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가 큰 갈등을 겪지 않고 성공적인 문화접변을 이루어낸 데에는 불교의 관용성이 큰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격의(格義) 불교의 공과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지만, 그러한 포용성을 발휘하지 않고, 저 도저한 중국인의 중화정신을 극복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것은 기원 원년 전후이다. 이 시기는 불멸 후 6세기가 경과된 때이고 부파불교 시대를 거쳐 소위 대승불교가 흥기하여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인도 내에서의 전개단계를 밟지 않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다양한 교설을 한꺼번에 접하게 되었다. 양적으로도 방대하거니와 상호모순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교설들을 접한 중국불교인들은 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서서히 성숙해가는 위진남북조시대 중반기부터 불교의 다양한 종파적 입장과 경전의 내용을 근거로 그 내용적 심천과 시기적 전후관계, 혹은 상호 포섭관계를 규명하는 교상판석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경문을 강의, 주석하거나 종파를 건립할 때에는 반드시 교상을 판별해서 경과 종파의 위상을 정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정착되었다. 중국불교사를 어떤 면에서 교상판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각 종파의 종장들이 자파의 교설 및 소의경전을 높이고 여타의 것을 낮추는 교판의 효시는 물론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파간에 자파의 학설을 더 뛰어난 것으로 주장하는 요의(了義), 불요의(不了義) 논쟁의 선례는 이미 인도불교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식과 중관학파가 오랜 세월에 거쳐 논쟁을 거듭한 것은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의 요의, 불요의 논쟁은 붓다의 교설을 시기적으로 나눈 것도 아니요, 엄밀히 말해서 교설의 심천을 두고 우열을 논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붓다의 진의를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내었는가, 아니면 우회적으로(방편설로) 드러내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대소승 경전에 대해 심천과 선후를 논한 예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중국불교의 교상판석은 각 종파나 경론의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을 강조한 ‘구별의 체계’였던 셈이다.

그러나 종파적 입장에서 시기적 선후나 교리적 심천에 근거해서 차별성을 강조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교리상으로 명확한 근거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각 종파의 입장에서 붓다의 교설을 차별적으로 이해한 것은 새로운 문화권에서 붓다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하더라도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동질성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 간과될 때에는 교설이 왜곡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화쟁사상은 이러한 차별의 병폐를 고치기 위한 응병여약의 처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5. 맺는 말

불교사상 자체가 인도 전통사상과 더불어 회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또한 원효의 화쟁사상이 그만의 독특한 사상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경론에 나타난 보편적 교리를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점에서 화해시킨 것으로서 차별성이 강조된 기존의 종파적 태도에 대한 치유책으로서 차별성의 근저에 있는 동질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가 불교사상 유일하게 화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방대한 불교전적이 제각기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논증하고, 모순된 듯이 보이는 교리간의 대립을 화해시키는 것을 주요 과업으로 여긴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필자는 오래 전에 발표한 글이 주로 비판에 기울어 있었던 것을 보완하고 균형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본고에서는 긍정적인 면을 다소 부각시켰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현대 한국불교의 장래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를 위해 통불교와 연관된 쓴 소리 몇 마디를 보태고자 한다.

통불교라는 말 자체가 어떤 역사학자의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름에 비해 알맹이는 대단한 것이 없다는 것은 앞에서 충분히 얘기된 바 있다. 문제는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육당의 뒤를 이은 학자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이었다. 그들은 회통불교론이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유일한 교증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 전체, 더 나아가 한국사상 자체에 회통성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단편만 남아 있는 이 논문에서 확인되는 원효 자신의 화쟁사상 역시 혜안과 독창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내용적으로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13개 종파가 역사적 우여곡절을 거치며 현재의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일원화되다시피 했지만 이러한 의사 단일 종파로 통합된 것이 역사의 우연일지언정 원효의 회통사상 덕분으로 돌린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선교 양종의 분리와 통합의 역사에 대해서도 한국의 독창적 화쟁 전통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의천과 지눌의 시대에 표면화된 선교 양종의 조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은 이론과 실천을 양 날개로 삼고 있는 불교철학의 본질적인 관심사인 것이다. 게다가 선교 화해의 사상은 규봉종밀에게서 이미 선보인 바가 있는 것이다.외양상으로 볼 때, 현대 한국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란 명칭은 혜능이 주석한 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만큼 중국 남종선의 맥을 계승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선종에서 전승되는 수행법이나 이외의 모든 종파적 수행과 경론의 학습을 모두 허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다양한 의례를 행하고 있다. 이는 역대 선사들의 서릿발같은 개성에 비추어 매우 관용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선종 계열인 조계종으로 거의 일원화되어 있으면서 다양한 경론과 종파적 행법이 허용되고 있는 한국불교의 모습에서 화해의 정신과 회통성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한국의 불교가 조계종으로 ‘통일’된 적도 없거니와 모든 교설과 종파적 관점이 ‘화해’해서 공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선교 양종이 ‘표면적으로’ 선종인 조계종으로 통합된 것은 역사의 우연이다.

그리고 이 ‘통일’은 다양성의 상실이라는 면이 강하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불행한 우연이다. 그리고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여러 가지 교리, 행법, 의례의 공존도 알고 보면 아무 원칙도 질서도 없다. 마치 중앙 권력이 무력할 때 지방 세력들이 난립하고 있는 형국과 비슷하다.

이렇게 한국의 통불교론은 그 시발에서 전개,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자못 기형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통불교론의 긍정적인 면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다양한 교리와 서로 다른 종파적 입장은 상대적 가치를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화해되고 회통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식과 원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끝>

서울대 철학과 및 미국 하와이대 철학과 졸업, 철학박사,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저역서로는 <한국의 전통사상><동양의 지혜와 禪><중국불교철학사><아홉마당으로 풀어쓴 禪>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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