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특집 > 기획특집
     
한국 여성불자의 위상과 역할
민성효 원광대 여성학 강사
[3호] 2000년 06월 10일 (토) 민성효 원광대 여성학 강사

1. 들어가는 말

종교는 대체로 정의·자유·평등·평화를 지향한다. 종교는 인간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인간이 존재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나가도록 가르친다.

우리가 종교를 창시한 위대한 성자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간다면 자기 중심적인 자아의 통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보다 높은 차원의 자아나 신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보다 낮은 차원의 자아를 통제하는 데 있다.

신이나 부처님의 성스러운 본질을 닮으려 노력하는 것이 곧 수행이다.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잠재된 능력과 존엄성을 드러내어 갈등과 좌절의 원인을 제거하도록 돕는 것을 소명으로 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이 경험하는 사건에 관한 궁극적인 해석의 틀이고 설명체계이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의 제시가 교리라고 볼 때 종교의 경험은 성(性)의 차이와 무관해야 한다. 우리 시대는 유례 없이 서로 다른 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이다.

종교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고, 세계 각 지역의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온 것은 공통적이므로 오늘날 여성에 대한 종교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은 세계사적 과제이다.1) 20세기 후반의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강한 성차별주의적 제도가 종교 조직임을 깨닫고 여성의 가치를 복원, 지도자의 위치를 떠맡고 성경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신이 남성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며 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성들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제한·상징·언어·해석 등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신성을 다룬다. 한편 불교는 어떤 절대적인 신이나 신의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기초하는 합리적인 실천을 목적으로 한다. 부처님을 본받아 스스로 완성된 삶을 추구하고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각성된 사회를 이루려고 한다.

2. 인도불교에서 여성의 위상과 역할

일반적으로 여성의 역할은 종속적이었다. 여성의 자유와 교육이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여성은 사제, 구루(guru)보다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었다.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는 여성의 상징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들은 순결, 자비, 사랑의 상징인 여신·동정녀·어머니로 격상되어 온 동시에 변절, 적의, 욕망의 상징들인 매춘부·마녀·색마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사회적·종교적 지위가 여성 자신들의 능력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불교에서 여성들은 어떤 존재로 표현되고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

부처님 재세 당시 초기 불교교단에서 여성의 출가가 받아들여진 것은 세계종교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만큼 부처님은 여성에 대해 차별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경전이 결집될 당시 여성에 대한 긍정적 견해는 퇴색하여 여성은 승려의 수행에 장애가 되고 성적으로 굶주려 있으며 탐욕스럽고 질투심 많고 어리석으며 불쾌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승가 안에서도 비구니의 지위는 점차 낮아지고 성적인 절제를 강요받았으며, 여성의 몸으로는 부처를 이룰 수 없다거나 여자는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과 마왕(魔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과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2)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라도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면 보살이 될 수 있고, 일체 중생에게는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에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을 쌓아가면 성불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초기 대승경전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대승불교의 지지자로 표현되고 있다. 선남자·선여인이라는 말이 대승경전의 도처에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대승교단에서 여성의 지위는 부파불교와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에서 말한 여성의 불성불(不成佛)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직면하였고,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이에 대해 여자는 남자의 몸으로 변해야 성불할 수 있다는 변성남자성불설(變成男子成佛說)이 나온다. 중기 대승경전 가운데 재가의 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마경》과 《승만경》에서는 여자의 몸으로도 성불이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여주인공인 승만부인은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를 천명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으며 그 성불의 수기를 자신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대승보살도를 실천하는 선남자와 선여인, 즉 일체 중생에게 확대하고 있다.

《승만경》은 불교경전 가운데 여성의 위치를 가장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경전이며 승만부인은 가장 이상적인 불교의 여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불교의 여성관은 불교사상의 전개에 따라 변천했고 교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기(道器)로서의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나라 불교에서 여성 불자들의 위상과 역할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3. 한국불교사에서 여성 불자들의 위상과 역할

1) 삼국시대 여성 불자들의 위상과 역할

석가모니 부처님은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여 남성과 같이 정신 세계의 동참자가 되게 하였다. 이로써 인도 여성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였으며, 그 전통은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전래 초기부터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불교를 수용하면서 여성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불교는 역사 속에서 한국 여성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해내었던 것이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불교가 각각 그 성격이 다른 것과 같이 불교 내에서의 여성들의 지위나 역할, 또는 신앙 형태도 각각 그 모습을 달리해왔다. 그 가운데 특히 신라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의 불교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신라에서는 전래 초기부터 왕실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불교의 수용에 참여했다.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이 흥륜사(興輪寺)를 일으킬 때 그 왕비도 왕과 같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영흥사(永興寺)를 개창했다.

이때는 불교가 공인된 지 불과 8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로서 왕비에게 상당한 재량권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음 대인 진흥왕의 왕비도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에서 살았다. 이들 두 왕비의 행적은 신라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비구니가 되는 여성들이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진흥왕 12년 고구려에서 온 혜량 법사(惠亮法師)를 국통(國統)으로 삼으면서 국통의 다음 직급에 해당하는 승직에 도유나랑(都維那娘)을 두고 비구니를 임명하여 비구니들을 통솔하게 하였다. 이는 통솔할 만큼의 비구니가 있었으며 비구니의 지위가 높았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백제에서는 위덕왕 24년 경론과 율사와 선사 등을 일본에 파견할 때 비구니도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평원왕 때 법명(法明) 비구니가 일본에 가서 일본 비구니의 교육과 수계를 담당했다고 한다. 특기할 것은 《승만경》이 신라에 전래되어 신라 상류층 여성들의 신앙에 모범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진흥왕 37년 안홍 법사(安弘法師)가 중국에서 가져온 《승만경》은 신라 여왕의 이름에 그 주인공의 이름이 쓰여질 정도였다.3) 승만 부인의 도덕성과 천부적인 변재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로서 신라 왕실의 찰제이종(刹帝利種) 의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며 이런 인식에서 승만부인의 이름을 따서 여왕의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특히 세 명의 여왕 가운데 선덕여왕은 그 인품이 승만부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흡사했다. 황룡사 9층탑을 세우는 등 불교적 치세 이외에도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위문, 구제하고 죄수를 사면하는 등 승만부인이 10대수(大受)에서 말한 대승보살의 행을 보여주고 있다.

또 잘 알려진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나 여왕을 사모하는 평민에게 팔찌를 벗어주는 일화 등에서도 대승보살의 지혜와 자비심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신라불교에서의 여성은 여신성불(女身成佛)의 주인공으로 기록되고 있으며,4) 수행자를 시험하고 경책하는 선지식이기도 하고,5) 어머니의 신앙심으로 아들을 출가시키거나 눈먼 자식의 눈을 뜨게 하는6) 등 불교적 경지에 있어서 남성과 동등한 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볼 수 있다.

2) 고려시대 여성 불자들의 위상과 역할

고려 여성에게 있어서 불교는 차원 높은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의 일부였던 것 같다. 고려시대 상류층 여인들의 묘지명을 통해서 본 당시의 불교신앙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습속화되어 그것이 생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여성의 불교신앙은 개인적인 면과 집단적인 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여성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불경을 암송하고 낮에는 길쌈을 하다가 밤이 되면 다시 불경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할 정도였다.

불교에서 독경과 송경은 중요한 법사(法事)로서 경전을 수지하고 독경하고 해설하며 베껴서 공양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금강경》 《화엄경》 《아미타경》 《천수경》이 당시 여성들에게 널리 읽히던 불경들이었는데, 이들은 주위에 베풀 것을 강조하고, 종교적 수행의 기본이 되는 행동의 원칙들을 설법하여 이를 따라 행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성들에게 심어 주었다.

독경과 송경의 신앙 행위는 복을 빌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일 뿐 아니라 해탈을 위한 종교적 수행이다. 또한 경전에 대한 서사(書寫)와 해석을 통해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여성들은 신도로서 사원에 시주와 보시의 활동을 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출가하여 니승이 되기도 하였다.

신도로서 사원에 시주하는 일은 불상이나 석탑을 주조할 때 소액을 내거나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주는 일이 일반적이었으나 절을 새로 지어주고 절의 운영비용을 대주는 큰 규모의 시주도 있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불가능했던 당시 상황을 볼 때 이것은 고려시대 재산상속제도가 남녀균분(男女均分)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사가의 노비를 사원에 바치는 경우나 가산이 빈약하여 경제적인 시주를 할 수 없을 때 어린 자식을 바치는 일도 있었는데, 이는 절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역시 시주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여성들은 아들을 교육하여 승려로 출가시키는 일을 통해 불교계에 정신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들이 출가한 후 어머니도 출가하여 니승이 되는 일도 있었다.

고려시대 여성의 출가 동기는 남편 사후나 자신의 임종에 이르러 불우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출가하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죄에 대한 형벌로서 출가한 일도 있었다. 왕실 여성들도 출가하는 일이 많았는데,7) 이들은 주로 정업원(淨業院)에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하였다.

고려시대 여성의 출가가 왕실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여성의 출가는 보편적인 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듯하다. 그러나 니승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이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고, 그나마 전해오는 기록도 니승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어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집단적인 면으로는 향도(香徒)로서의 활동을 들 수 있다.

물론 고려 전기에도 여성들이 향도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후기에 여성들은 높고 귀하고 낮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여성들끼리 향도를 구성하여 사원에 가서 재(齋)를 올리고, 등불을 켜는 행사와 사원에 종을 바치는 행사를 벌여나갔다. 향도라는 집단적 신앙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의 종교적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해 나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신앙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기원한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추천(追薦)’을 들 수 있다. 추천은 사자(死者)의 영혼을 공양하고 영혼이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모든 불교행사에서 추구되어지는 바이다. 다음은 ‘질병치료’로 사람은 몸이 아프면 종교에 의지하고 기대고 싶어지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고려시대 불사의 상당 부분이 질병의 치유를 기원하기 위한 것들이었는데 여성들도 병이 들면 불교에 귀의하거나 사원을 찾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셋째는 ‘기자(祈子)’인데, 자식을 얻고자 기구하는 일은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기원하는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이다. 넷째는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에 대한 기원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것과 현세에서의 영달과 번영을 바라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 시대 여성의 신앙 생활 속에 나타난 기원 중 한 가지는 사후구복적(死後求福的)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현세구복적(現世求福的) 성격을 띠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고려시대 여성들은 현재의 바람과 사후 극락왕생의 염원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나 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추구했던 기원을 살펴보면 고려 여성의 불교신앙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기원 내용의 ‘현실성’이다. 앞에서 보듯이 고려 여성들은 내세에서의 행복도 원했지만 현실에서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며 자식을 낳아 가계를 잇고 가문을 번창시키는 것을 보다 중요시했다. 이는 고려 여인들의 묘지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두번째 특징은 신앙 구현에 있어서의 ‘개인성’이다. 여성들은 향도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집단적인 신앙 구현의 모습도 보였으나 어디까지나 중심이 된 것은 가정 내에서의 신앙 생활과 사원에 대한 각종 시주활동을 통한 개인적인 신앙 구현이었다.

세번째는 신앙의 ‘이타성’이다. 여성들은 불사를 통해 추천(追薦)·질병치료·기자·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기원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자신의 질병치료를 위한 일도 있었으나 남편의 사회적 출세와 자식의 건강 등 가족들을 위한 내용이 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앙 생활에서도 여성들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 여성들은 일상에서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주위에 베푸는 삶을 살고자 하였고, 공덕을 쌓기 위해 경전에서 가르치는 행동의 원칙들을 수행의 기본으로 삼는 등 불경을 생활의 지침서로 삼아 살아갔다. 또 향도를 조직하여 사원에서 재를 드리고 때때로 사원에 시주하며 소망을 기원하는 불사를 행하였다.

그러다가 병들거나 늙어 죽음의 순간이 오면 사원을 찾아 내적인 평화를 찾았고, 죽은 후에는 사원에서 화장의 절차를 통해 장례를 치르고 사원 부근에 묻혔다. 매년 기일(忌日)이 되면 사원에서 극락왕생을 비는 제례를 행하였다. 곧 고려 여성들은 일생 동안 생로병사의 매 순간마다 사원을 찾았고 죽은 후에도 사원을 통해 극락왕생의 소망을 이루고자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들의 강렬한 신앙심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불교가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생활하였으므로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생활의 중심은 가정이었다. 사회적 활동이나 성취는 불가능하였다.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불교를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신앙 생활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불교는 여성에게 종교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불교라는 공인된 창구를 통해 종교적인 신앙심과 더불어 그들 나름의 제한된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려시대에 불교가 여성 생활에서 갖는 사회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3)조선시대 여성 불자들의 위상과 역할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통치 이념이 되고 불교는 정치·사회적으로 그 영향력을 잃게 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폈지만, 여성들은 유교보다는 불교에서 구원을 얻었다.

조선불교가 산중불교(山中佛敎)로나마 그 명맥을 유지한 데는 여성들의 신심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 국가적인 제제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신앙 활동과 불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태종은 즉위 후 “나라에서 행하는 불사는 내가 이미 파하였으나 궁중의 부녀들이 그 아들의 수를 연장하기를 바라면서 사재를 써서 예참(禮懺)을 베풀거나 수륙재(水陸齋)를 행하니 금하고자 해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세종 11년에는 부녀자가 절에 가는 것과 승려가 과부의 집에 출입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조선 초기 역대 왕들은 여성들의 불사에 대하여는 강·온의 양면 정책을 쓰며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왕실 여성들의 불교에 대한 열의는 특기할 만하다. 성종 때 인수대비는 불교를 옹호하는 언문교지를 내렸다. 그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역대 제왕이 불교를 배척하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것은 인심이 동요할 것을 걱정해서이다.”라는 내용과 같이 불교를 비공식적으로 묵인하는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명종 때의 문정대비는 불교를 정책적으로 일으키려고 시도하여 승과를 부활하고 퇴락한 사찰을 복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문정대비가 서거한 후 불교의 부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문정대비의 이런 노력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청허휴정은 문정대비에 의해 부활한 승과에 급제하여 산중불교의 법맥을 유지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고승이다. 불교와 관련된 사건이 조금만 있어도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의 신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사회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불교를 다시 일으키려 했던 이들 왕실 여성에게서 한국불교 여성의 정신력을 엿볼 수 있다.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할 정도였던 조선시대에는 불교 자체의 위상이 어려웠던 만큼 평민 여성들의 경우 불교에서의 위상은 논의할 만한 것도 못 되었을 듯싶다. 다만 탁발을 나온 승려들에게 시주를 하고, 가족의 안위와 건강을 위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정도였을 것이다.

4) 근·현대 여성 불자들의 위상과 역할

(1) 불교 내에서 여성 불자의 위상
불교 내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여성 불자는 한국불교 내에서 우선 수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재가 불자의 70∼80%가 여성이며 한국불교 최대의 종단인 조계종 내에서 비구니의 수는 약 절반을 차지한다. 한국불교를 떠받치고 있는 저력은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 불자들의 역할도 점점 증대해 가고 있다. 우선 비구니의 경우 수행과 포교에 있어서 그 활동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전통 사찰의 강원과 선원에서 교학과 참선 수행에 정진하는 것 외에 국내 대학에서 또는 외국유학을 통해 교학을 연찬하는 비구니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심의 포교당을 운영하고 유치원 운영에도 참여하며 사회복지 사업에도 적극적이다.도심의 포교당이나 선원에서는 수많은 여성불자들이 공부를 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비구니가 교수가 되어 비구를 가르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찰 외호의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면서 간경·참선·염불·진언 등 자신에게 맞는 수행을 하는 한편 사회 봉사, 불교 문화 행사에 참여하는 재가 여성 불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조계종에 등록되어 있는 불교 교양대학의 숫자는 50여 개이며 참여자의 다수가 여성이다. 여성 불자들 사이에서 불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알아야 하겠다는 지적 욕구가 확산되어 가고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2) 일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 불자의 위상
60년대 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여성운동의 이념은 UN이 정한 ‘여성의 해’(1975년)를 전후하여 우리 나라에도 도입되었고 그 이후 20여 년간 여성들의 노력으로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는 차츰 향상돼 가고 있다. 또 일반 사회의 여성들이 여성 문제 내지 사회 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해가고 있는 반면, 여성 불자들의 여성운동적인 활동은 미약한 단계에 머물고 있다.

여성 불자를 조직화하고 있는 몇몇 불교 여성 단체가 결성되어 있기는 하나 일반 사회와 비교할 때 아직 초보의 단계이다. 여성 지도자의 부재와 결집성의 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여성 불자 단체는 불교 내에서는 여성의 입지를 확보하는 역할을 해야 함과 동시에 일반 사회의 여성 단체, 시민 단체 또는 다른 종교의 여성 단체들과 연대를 갖고 여성 문제, 사회 문제의 해결에 일익을 담당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다방면에서 남녀 평등이 이루어져가고 있는 시기에 불교가 이 시대에 맞는 종교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다하려면 불교 교단과 불자가 남녀평등관에 입각한 불교관을 정립하며 그에 맞는 신행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4. 여성 불자들의 역할 증대와 위상 강화를 위한 방안

1) 올바른 불교 여성관 확립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남녀 불평등 요소는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8)과 전녀신설(轉女身說)·여인왕생원(女人往生願) 등을 들 수 있다. 불교에서 간주되고 있는 가장 부정적인 남녀 차별적 견해는 여인은 여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의 경계는 여래 즉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성불할 수 없다는 것이니 이는 여성 불자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여자는 성불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여인오장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인의 몸으로는 여래가 될 수 없다는 여인오장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 당시부터 부파교단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수행의 마지막 계위가 아라한과였다. 성불은 대승불교의 극과인 것이다.

여인오장설은 부파불교시대 말기, 대승불교초기에 잠깐 제기된 주장이라 볼 수 있다. 여인오장설에 나오는 여인불성불(不成佛)은 곧 변성(變成)남자성불설을 대두시키게 된다. 여자는 남자 몸으로 바꾼 뒤에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자는 여래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한 걸음 양보된 것이다.

《불설초일명삼매경》에서도 혜시녀가 원래 남녀 구별이 없음을 보이기 위해 여자의 몸을 바꾸어 남자가 되어 부처님께 성불수기를 받는다. 대승불교경전 중 변성성불을 교설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법화경》이다. 〈제바달다품〉에서 8세 용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의 몸으로 바꾼 뒤 바로 성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는 《법화경》이 가지는 특징적인 회삼귀일의 사상이 반영된 것임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처음 대승불교는 부파불교를 소승이라 비판하고 ‘우리 모두 다함께’라는 기치를 들고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다 소승까지 일불승으로 포섭하게 되니, 소승을 배제하고서는 ‘우리 모두 다함께’라는 대승정신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배반한 과보로 산 채로 지옥에 떨어졌다는 제바달다가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의 과거세 선지식으로 나오며, 변성성불설은 제바달다교단에서 전해져 오던 것이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수록되면서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인왕생원은 여신(女身)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한 자비행원과 직결된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생리적으로 고통이 많다. 출산의 고통뿐만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받는 고통도 그에 못지 않게 크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으로 인해 다시는 여자의 몸을 받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여신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것은 자비심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의 몸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여성관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불전에 보이는 부정적 측면은 부처님의 근본정신에 맞지 않는 견해이니, 그것은 부처님 재세 당시 인도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당시의 잘못된 인습의 사슬을 끊고 사성 평등과 남녀 평등의 공동체인 교단을 마련해 여성도 받아들였으며, 비구니들도 깨달음을 얻고 모든 이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게 해주었다. 부처님은 여성의 인권과 능력을 평등히 인정했다.

경전에는 노소·빈부·귀천·계급을 막론하고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선업을 짓고 고통을 해결하며 자신의 특징적인 장점을 잘 발휘하여 드디어는 깨달음을 얻는 재가 여성의 모습까지도 보여진다. 우선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500명의 석가족 여인들이 동시에 출가했던 것을 보아도 당시의 인습의 굴레를 벗고 무명 번뇌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확인할 있다.

여신의 고통 또한 그냥 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원을 세워 왔으며, 여신에게 따르는 고통이 전혀 없는 정토의 건립까지 발원하게 된 것이다. 대승불교운동에 여성이 적극 앞장을 섰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며 수행자상인 보살의 대열에 여성들도 당당히 참여하고 있다. 선여인이 선남자와 함께 발심하고 보살이 되어 사회구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성불을 지향하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에게 보살도를 설하는 법사와 선지식도 되었다.

여성도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고, 여래의 자리에서 여래의 법을 설하는 법사가 되며 사자후를 설한다. 그리하여 불국토를 건설하는 여성 불자의 당당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정신적·육체적·사회적 고통과 모순으로부터의 해방운동에 여성이 동참하고 앞장서온 결과 여성도 당당히 부처님의 제자이며 부처님의 딸로서 인정받게 된 것임을 불교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직도 여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근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리라. 경전은 그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것일진대, 경전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부처님의 근본 뜻을 잘 살피는 것이 현명한 불자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남녀 불자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갈 때 다 함께 즐거운 정토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2) 교단의 제도와 조직에의 여성 참여 확대

이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도 여성 참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집단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99년 1월 현재 조계종 승려수는 사미 2,168명, 사미니 1,811명, 비구 4,077명, 비구니 3,917명으로 사미와 비구가 6,245명, 사미니와 비구니가 5,728명으로 총 11,973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들 비구니 스님들의 활동은 불교학 연구·가람 수호·사회 봉사활동 등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종단의 핵심적인 역할에는 비구니들이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현재 25개의 교구본사 중 비구니 사찰은 한 군데도 없으며, 총무원장·교육원장·포교원장은 물론 각 부장급 스님들도 모두 비구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비구니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국장급 이하 비구니 종무원을 둘 수 있다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또 71년 창립돼 85년부터 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전국비구니회도 활동이 미비해 비구니들의 입장과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비구니 스님들이 그나마 제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 개혁 종단 출범 이후 비구 중심의 종단운영으로 인해 파생되는 폐단이 지적되고 이에 따라 사부대중의 참여가 제기된 이후다. 그러나 무성한 논의와는 달리 비구니 스님이 81명의 종회의원 중 10석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9)

제반 규정사항과 관습적인 면에서 저해 요소가 너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많은 스님들과 일반인들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교단 내 불평등 문제의 해소는 쉽지 않다. 불교는 천주교처럼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종회에 비구니를 지나치게 적게 참여시킨다든지, 아직까지도 비구니팔경계법을 주장하는 비구들이 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보나 시대의 흐름을 보나 맞지 않는 일이다.

비구니팔경계법은 현실적으로 사문화되다시피 하였고 또 사문화시키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데도 필요할 때는 비구니를 통제하는 기능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은 비구니를 통해 여성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가 여성 불자들 또한 실질적으로는 사찰을 운영하는 중요한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불자들의 의견을 사찰운영에 반영하도록 하는 기구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들은 주로 공양간에서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의 일을 하거나 법당에서 기도나 불공을 드리는 정도의 활동을 할 뿐이다. 재가 여성 불자들이 사찰운영에도 출자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여성들의 잠재적인 능력이 불교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재가 여성 불자들은 불교교단 운영의 필수적인 존재였다.

초기교단부터 재가 여성 불자들은 교단의 경제적 후원과 외호를 책임져 왔다. 승원의 건립과 음식과 의복의 공양은 재가자의 몫이었다. 수행과 전법의 전당인 사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재가자들의 후원과 보시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재가 여성 불자들이 사찰 운영의 일부 소임이나 관리를 분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부 사찰의 경우 ‘사부대중 공동체’ 개념에 의해 재정운영을 공개화하고 관리를 재가자에게 맡기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스님들이 전적으로 행사해왔던 사찰운영권의 많은 부분을 운영위원회에 넘기고 본분소임에 맞는 수행과 포교를 지도하고 감독만 하는 것이다.

현대처럼 전문화, 분업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출가자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으므로 재가자와 출가자의 역할분담이 필요해진 것이다. 특히 사부대중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여성 불자들의 사찰운영 참여는 교단에서 여성 불자들의 역할을 증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3) 여성 불자 조직 확대 및 활동 강화

여성 불자들의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전문인력의 부족과 조직화의 미비를 들 수 있다.

일정한 재정적인 뒷받침과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인력이 양성되기 어렵고, 개인적으로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는 불자들이 있다 해도 조직화를 할 수 없다면 여성 불자들의 활동을 극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 교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단체의 활동은 극히 미비한 실정이다. 한국여성불교연합회가 유일한 사단법인으로 전국적으로 10개의 지부가 결성돼 있으나 그나마 제대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대구, 포항, 경남, 경산지부 등 서너 곳에 불과하다.

1965년 창립돼 70∼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하던 대한불교부인회도 이젠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밖에 대한불교정각여성회, 한국불교전국여법사회, 여성불교회, 불교어머니회, 부산여성불자회, 부산불교여성문인협회, 경불련 여성위원회 등이 여성 불자 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미약한 조직체계와 운영으로 정체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성 불자들의 모임은 친목이나 신행, 사찰 외호 세력으로 그치고 있으며, 여성의 권익과 자질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모임은 드물다. 이렇게 교계 여성단체의 활동이 위축되어 있는 원인은 여성 불자들의 인식부족과 전문인력 및 프로그램의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불자들이 불교를 역사적 교리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실천하기보다는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기복신앙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의식과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봉사 및 사회 참여활동은 활성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여성 불자들의 의식개혁을 위해서 교리 강좌, 경전 읽기, 봉사활동 등 다양한 차원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

그럴 때 봉사나 사회활동이 형식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신앙 생활로 이어지는 동시에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조계종 포교원은 1999년도 사업계획 가운데 ‘여성 불자의 조직화 사업’을 포함시켰다. 이 같은 여성 불자 조직화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개인적이고 기복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던 우리 나라 여성 불자들의 활동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성 불자 조직화 사업은 성격상 장기사업에 해당한다. 여성 불자들의 신심이 비록 대단하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의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조직화 사업을 성공하려면 이 일을 추진해 나갈 지속적인 지원체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교단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고무적인 일은 최근 들어 전국 사찰에서 실시하는 ‘불교교양대학’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교리 공부를 통해 바른 종교관을 확립하고 보살도 실천에 나서려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여성 불자들의 평균 연령도 낮아지고 학력 수준도 높아져서 과거와 같은 맹목적이고 기복적인 성향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조짐의 하나다.

이러한 조건은 이제야말로 여성 불자를 조직화하고 새로운 여성불교운동을 전개할 좋은 시기임을 말해 준다. 새롭게 추진되는 여성 조직은 종단의 후원을 받되 독립된 단체로서 활동할 수 있어야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기관과 사찰의 재정적인 지원과 출가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여성 불자가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적인 면에서 여성 불자들은 남성 불자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한국불교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이다. 이제까지 우리 나라 여성 불자들의 종교활동이 사회적 활동과 거리가 멀었던 것은 이들을 불교 여성운동단체로 조직화시킬 전문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성 불자 가운데 전문인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여성 불자들이 전문적 지식과 직업관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일하며 직장 속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동시에 여성 불자의 직능별 연대모임을 통해 문제점을 공유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단 차원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4) 여성 불자 교육 강화

1999년 6월 26∼27일, 조계종 포교원 주최로 열린 워크숍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여성과 관련하여 가장 시급히 전개해야 할 일은 여성 불자교육(40.3%)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교육의 중심 내용에 대해서는 정체성 확립(49.3%), 불교 수행법(16.4%), 리더십 개발(14.9%) 등이었다.

또한 여성단체가 구성된 후 수행해야 할 사업에서도 68.2%가 교육사업이라고 답해 역시 교육에 대한 여성 불자들의 높은 욕구를 실감하게 했으며, 관행 및 제도개선사업, 사회여성운동, 신행개선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다.10)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여성 불자들이 종단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기반으로 한 신행활동과 사회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여성 불자들이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여성 불자의 대다수가 주부 불자임을 감안해 어머니로서의 역할교육과 탁아시설 확보 등도 중요한 과제다. 또한 신행활동과 사회활동의 연계방안 모색,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단체를 활용한 전문분야의 교육실시 등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5) 사회 여성운동 참여

오늘날 여성 불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 문화를 형성해가야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여성 불자들이 소비보다는 나눔의 주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세계화와 민주화의 연장선에서 배타적인 이기주의와 폐쇄적 집단주의, 인간 경시풍조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사회에 걸맞는 여성상을 세우는 데 여성 불자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불자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초석을 다질 때, 우리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부유함, 풍요로움이란 얼마를 금고에 간직해 두고 있는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을 나눌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불교 내에 여성의 입지를 확보하고 사회적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는 우선 교단 내의 여성조직을 정비하고, 이웃 종교의 여성단체나 일반 사회여성단체와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 불자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단 내 여성운동은 물론이고, 일반 사회여성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할 때 여성 불자들의 역할이 강화될 뿐 아니라 불교계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도 향상될 것이다.

5. 마무리 말

인류의 역사상 종교는 여성들에게 해방을 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통제와 억압을 주었다.

오늘날 여성 종교인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각 종교에서 소의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교단 내에서 제도와 조직, 관행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하고 있다.

불교는 명실공히 세계의 종교이며, 인류의 미래에 방향을 제시해 줄 으뜸되는 가르침이라 믿는다. 시대는 변하고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도 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가는 중심집단이 되어 가고 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모든 인간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 여성의 삶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남자나 여자 어느 일방의 입장만을 수용한다면 그 종교는 유지될 수도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고해에서 헤매이는 중생들을 건져주기 위해 오셨다. 부처님은 여성들에게 고통과 질곡의 삶을 벗어나 광명의 삶을 살게 하셨으니 오늘날 부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제도나 관행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전의 올바른 해석을 통해 남녀 평등의 교리를 밝히고, 교단의 제도나 조직에 여성 참여를 넓히며, 여러 부분으로 나눠진 여성단체를 조직화하고, 여성 불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의식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 불자들이 스스로에게 걸맞는 위상을 찾고 대사회활동에서도 한층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끝>

원광대학교 원불교 학과 졸업.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졸업.현재 원불교 화산교당 교무.원광대학교 여성학 강사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