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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의 회복을 위해
이창숙 동국대 강사
[3호] 2000년 06월 10일 (토) 이창숙 동국대 강사

1. 머리말

언제부터 우리 나라에서 여성 불자를 보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여성 불자를 ‘보살’이라고 부르는 데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피상적인 생각이긴 하나, 이것은 여성 불자로서 30년 가깝게 일주문을 드나들면서 겪었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보살은 누구인가. 대승에서의 보살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 자’라고 정의되는데, 그 이전에는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던 부처님의 전생, 즉 무수한 유정류(有情類)로 태어나서 윤회하던 석가보살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승불교에 들어오면서 그 ‘보살’을 석가보살에 한정하지 않고 일체 중생에게 개방해서 ‘누구라도 깨달음을 향해 노력해 가면’ 보살이 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여성 불자도 ‘보살’이 된 것이다. 대승의 보살이 닦아가야 할 실천 덕목은 육바라밀이다. 그 여섯 항목 중에서 인욕(忍辱)바라밀이라는 항목이 특히 한국의 여성 불자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성 불자라면 이 인욕 하나만은 확실하게 닦을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인욕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욕을 참는 것이다. 욕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억압과 소외와 오해와 편견과 무시 등등이다. 각종 욕의 경계에서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서, 그 순간에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업(業)으로 남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인욕이다.

불자가 인욕해야 하는 근거는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실체가 없음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 교단 내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여성에게 남성보다 더 많이 인욕해야 하는 경계를 제공하고 있다. 내가 여성 불자와 보살을 연관시켰던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였고, 이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두서없이 떠오른 것이 평소의 나의 그런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1999년 6월 26일부터 3일간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서 조계종 포교원 주최로 ‘여성 불자의 새 흐름을 모색하는 워크숍’이 열렸었다. 종단 차원에서 재가 여성 불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모임을 기획한 것이 아마도 한국불교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주최측의 예상보다 많은 여성 불자들이 참가하여 강의와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황을 보였는데, 이 워크숍에 참석한 여성 불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여성 불자들이 가진 생각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107명의 참가자 가운데 67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는데, 앞으로 여성불자포럼을 정례화할 경우 대다수의 여성들이 참가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여 주었다(88%). 종단에서 여성과 관련해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여성 불자 교육을 첫째로 꼽았으며(40.3%), 그 교육의 중심 내용은 여성 불자의 정체성 확립(49.3%), 불교 수행법(16.4%), 리더십 개발(14.9%)의 순위였다.

이제는 여성 불자들도 교단 내에서 여성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욕구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불자는 불자이면서 동시에 일반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우리의 여성 사회에는 1970년대 중반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6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서구의 제2기 페미니즘의 물결이 1970년대 중반에 도입되면서 그 영향으로 여성문제에 대한 담론이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이론으로서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응하는 여성운동도 활발해졌다.

가족법을 위시한 각종 법들이 여성도 남성과 같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것에서부터, 사무실 또는 회식 자리에서 남자들이 다반사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들을 희롱하던 일을 금지시킨 것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끈질긴 노력은 실로 많은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페미니즘은 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에서는 여성신학의 이론적인 연구와 각 교파 내에서 여성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단체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가장 느린 반응을 보이는 곳이 바로 불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구니의 경우 수행과 포교와 교학의 연찬에 있어서 비구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단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가여성들의 경우 그들의 발언이 표출될 수 있는 대표성 있는 여성단체가 아직도 구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불교 내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각기 다른 이중 체계 속에서 여성 불자들이 정체성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불교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가부장적인 역사와 평등주의적인 사상이 혼재함을 발견하게 되고, 그 모순에 당황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부장적인 역사가 불교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본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있어서 여자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비구니 교단이 탄생할 수 있었다.

부처님 생존시 여자도 남자도 동등하게 아라한이 된 기록 또한 엄존한다. 그런데도 여성을 비하하는 가부장적인 역사가 지속되었던 것은 경·율전의 결집에서 전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여성이 참여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과 교단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왜곡되었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아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부처님의 근본 사상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부처님은 여성을 남성과 차별하지 않았던 진정한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한편 불교의 공사상 속에 있는 남녀평등사상은 현대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이제 불교 페미니즘을 회복하는 것은 이 시대 불교의 과제이며, 서구 페미니즘의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도 될 것이다.

2. 페미니즘의 어제와 오늘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처음 활자화된 것은 영국신문 〈아테네 신전(The Athenaeum)〉의 1895년 4월 27일자 서평란에 쓰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이 널리 쓰여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페미니즘은 일반적으로는 사전적 의미로 ‘남녀 평등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여성의 권리 주장’이라고 해석되고 우리말로는 ‘여성주의’라고 쓰이고 있지만, 여성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규명해 들어가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시대에 따라서도 나뉘어지고 있다.1)

여성 억압의 원인과 그에 대한 처방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 들어가느냐에 따라 페미니즘은 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급진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것이 통례이며, 근래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서구 페미니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교 분야에서는 여성신학이 등장하여 개신교 내에서의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그 영향으로 다른 종교에서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그 종교의 여성관을 고찰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1792년에 발표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의 옹호》는 영미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라고 할 수 있으며, 다음 세기에 발표된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예속》(1869)과 함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기본 사상이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평등하며, 개인의 권리는 집단의 선보다 앞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인간이란 대체로 남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2)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여성은 남성보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육체적으로도 약하기 때문에 남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자유주의의 원칙은 여성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었던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제한하는 법적이고 관습적인 제약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울스톤크래프트는 여성도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밀은 여성에게도 참정권과 차별을 전제하지 않은 교육권이 주어져야 하고, 결혼생활에서의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시몬느 드 보봐르가 쓴 《제2의 성》은 60년대 이후의 제2기 페미니즘의 모태가 되었다. 보봐르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키워질 뿐이다.”라는 가설을 역사와 신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밝혔다.

보봐르는, 성의 분리를 정당화해 줄 만한 정해진 여성적 천성은 없으며, 여성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항상 남성에 비추어서 정의되었으며, 여성에 관한 모든 신화는 남성들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봐르는 실존적 자각에 의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 회복을 여성들에게 촉구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여성 문제 해결의 전략에 있어서 개인적 접근 방법을 주장하여 제도적 접근을 흐리게 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975년, 베티 프리단과의 대담에서 보봐르는 제도적인 변혁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였다.3)

1963년에 발간되어 100만부를 돌파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또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의 중산층 여성의 삶을 조사 분석한 프리단은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임무를 하는 대신 하나의 인간으로서 행동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파악하고, 여성에게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것의 정체를 ‘여성의 신비’라고 이름지었다.

여성은 전통적 역할에 의해서만 만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에 상반되는 행동을 할 때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신비’에 젖어 있는 여성들에게서 특이한 모순이 발견되었다. 전통적인 역할을 해내면서도 그들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프리단은 집밖에서의 일을 권하며, 여성 취업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영향으로 그 당시 미국의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학교에 재입학을 했다고 한다. 프리단의 처방 역시 기득권 여성문제에 한정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 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엥겔스는 루이스 모르간의 문화진화론에 관한 저작인 《고대 사회》와 자신의 사회주의 이론을 결부시켜 여성 억압의 기원을 도출해내었다. 인류 역사의 발달 단계와 가족 구조, 혼인 형태의 변화 과정 사이에는 일치하는 점이 있다고 본 엥겔스는, 모르간이 사회 발전과 가족 및 혼인의 진화를 결부시킨 틀을 기조로 하여, 혼인 형태와 가족 구조를 나누어 설명하고, 그 마지막 단계인 일부일처제 가족에서 여성 억압이 시작되었다고 분석했다.

부의 사유화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부의 상속과 그 관리를 위해 가정 내에서는 여자보다 남자에게 중요한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고, 그 동안의 상속 순위(원시 공동사회에 있어서 여성의 지위는 모계제도로 인하여 우위를 차지했었다고 보았다.)를 전복하려는 목적에서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일부일처제 가족하에서 최초의 분업이 이루어져 남성이 담당하는 생산수단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여성이 담당하는 가사기능을 보조적인 것으로 인정하여 여성의 지위가 전락하게 되고, 이것으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이 생겼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에서 공적 소유로 바뀔 경우 현재의 가족제도는 바뀔 수 있다고 엥겔스는 처방하고 있다. 현대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엥겔스의 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여성 억압을 근본적으로 자본의 노동 지배에서 야기된 산물로 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경제와 재산제도에만 결부시킴으로써 여성만이 겪는 특수한 억압을 보지 못한 점과 공산사회에서 여성들의 노동 참여가 여성에게 과중한 부담만을 줄 뿐 실제로 평등을 이루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다.

1970년에 나온 슐라미스 파이어스턴의 《성의 변증법》과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서이다. 60년대에 신좌파운동에 참여했었으나 남성 지배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독립을 선언한 파이어스턴은 여성 예속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경제결정론을 배격하며 여성 예속의 원인은 성 그 자체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에게는 사회적 억압이 있기 전에 출산이라는 경험이 있으며 과학적인 힘에 의해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어스턴은 피임법, 인공 수태를 가능케 하는 생명 과학 기술의 발달, 생물학적 가족제도의 폐기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으나, 생물학적 현실을 과학 기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극단론이라는 비판을 면치는 못했다. 케이트 밀레트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라는 전제하에서, 성과 정치의 연관성에서 이 지배구조를 포착하고 있다. 밀레트는 기질이 다르므로 역할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므로 지위가 달라야 한다는 부권제 사회의 여성 억압의 논리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줄리엣 미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반역사적,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경제구조의 변화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성문제를 계급문제만으로 한정할 경우 여성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놓치게 된다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라도 가부장적인 인식이 해소되지 않으면 여성은 여전히 억압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가사노동이 생산노동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미첼은 여성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생산적 직업, 자녀 출산, 성관계, 자녀 양육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이것들의 변화 없이는 여성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핵가족제도의 일률화를 지양하고 가족 형태의 다형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상에서 서구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의 주요 관점들을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보았다. 여성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 남녀관계를 변화시켜 누구나 평등하게 잠재능력을 발휘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이념일 뿐만 아니라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4)

70년대까지의 페미니스트들은 남녀의 성차(性差)를 설명할 때 남녀는 같다는 것에 주목하여 논의해왔다. 마가렛 미드5)의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1935)은 미국 여성운동가들에게 성차 부정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으며, 여성들은 광부, 우주인, 트럭운전사 등 종래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직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화되어가고 있었지만 남성의 여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여성들이 가정과 직업의 이중 부담으로 고통과 갈등만 맛보게 되었다.

80년대부터 여성들은‘여자가 어때서?’ ‘왜 남자처럼 돼야 하나?’ 하면서 회의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 페미니즘은 남녀가 다른 주체로 형성된다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속성들로 여겨졌던 여성적인 경험과 특성들을 재평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캐롤 길리건은 《다른 목소리로》에서 남성 중심의 맥락에서 무시되거나 열등한 것으로 평가되던 여성의 경험에서 다른 도덕관을 끌어낼 수 있음을 밝히면서, 그것을‘보살핌의 윤리’라고 이름지었다.

또한 90년대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포괄적으로 다룸으로써 인종·민족·종교가 다른 경우 발생하는 각각의 여성문제의 특수성을 간과했던 것에 대한 반성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제2기 페미니즘의 물결은 70년대 초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중간집단교육의 하나로‘여성 사회’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했던 여성해방운동의 이념이 도입되었다. 새시대의 여성운동은 여성지위향상운동이 아니라 여성 인간화 운동이라는 이념이었다.6)

그 이후 1977년에 이화여대에 여성학 강좌가 처음 개설되었고 서구의 여성해방론이 번역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유신 말기부터 있었던 재야의 민주화운동은 계속되고, 이 운동과 연계되었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진보적 여성운동 그룹이 형성되었다. 이 진보적인 여성그룹이 여성 문제를 거시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바라보면서 노동자와 농민, 빈민 여성을 여성운동의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주체로 설정하여 80년대에는 이들 여성과 관련된 여성운동이 활발했다.

한편에서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간에 이념 논쟁이 벌어졌었으나 공산사회의 붕괴와 함께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여성운동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교육, 환경, 통일, 정신대 문제가 여성운동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고, 성폭력, 성희롱에 대한 담론도 90년대 여성운동의 주요한 주제였으며, 지도자 중심의 여성운동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든 계층의 여성들이 주체로서 등장하고 있다.

페미니즘 물결의 영향으로 한국의 여성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의 틀이 과연 우리 사회의 특성――민족 분단, 종교 다원화 사회, 아직도 뿌리깊은 유교적 전통 등――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3. 불교의 가부장적 역사

불교의 가부장적인 역사는 계율 문제와 성불 문제에서 나타난다.

첫째 계율 문제는 비구니교단이 생기는 과정에서 파생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모이면서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 고타미(摩訶波?波提 瞿曇彌)는 부처님에게 세 번이나 거절을 당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추종자인 5백 명의 석가족 여인들과 함께 다시 부처님에게 가서, 당시 부처님을 시봉하고 있던 아난 존자의 도움으로 비구니가 될 수 있었다.

이로서 당시 비구만으로 구성되었던 교단은 양성의 교단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난 존자의 물음에 대해 부처님은 여인들도 수행하면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비구니팔경법(比丘尼八敬法)7)을 제정했으며,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와 5백 명의 여인들은 부처님이 제정한 여덟 가지 계를 수지하고 출가하여 최초의 비구니들이 되었다고 경·율전은 전하고 있다.

비구니팔경법이란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해야 하는 여덟 가지 법이다. 여성 차별주의의 극치임을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구니팔경법이 여성 출가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비구니교단이 성립된 이후에 여성이 출가한 것을 귀찮게 생각한 비구들이 정리, 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8)

교단의 주도권을 행사하던 비구들에 의해 이 비구니팔경법은 불교 역사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서 오랫동안 쓰여져 왔다. 둘째, 성불의 문제를 보면 부파불교에서는 여자에게는 오장(五障)이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과 마왕(魔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과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불설초일명삼매경(佛說超日明三昧經)》에서는 여자가 이 다섯의 인격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열거하고 있는데, 요점은 여자의 성품이 천박하고 수행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파불교에 이르러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신격화가 이루어졌다.

부처님과 같은 인격은 왕자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만으로는 형성될 수 없으며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유정류로 태어나서 윤회를 거듭하면서 수많은 부처님 밑에서 수행하고 이타행을 베푼 결과로서 금생에 부처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타행의 결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 백겁수행시대에 석가보살은 남자로 태어나며, 32가지의 묘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32상 가운데 제10상인 음마장상(陰馬藏相)은 여래의 남근이 말처럼 감추어져 있다는 것인데, 여자에게는 남근이 없으므로 부처의 조건인 32상의 구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파불교시대에 여자가 성불할 수 없다는 사상이 형성된 근거는 이 32상의 문제로부터라고 본다.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몸으로 변해야 성불할 수 있다는 변성남자(變成男子)성불설이 나오는데, 이 변성남자성불설은 한국의 여성 불자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성불설이다.

4. 공(空)의 평등성과 성(性)평등

불교의 평등주의적 사상은 대승의 공(空)사상과 여래장(如來藏=佛性)사상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여성과 관계된 공사상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Vimala沖irti-nirdes첺-su?ra)》을 들 수 있다. 반야개공(般若皆空)의 사상에 입각해 대승 보살의 실천도를 천양하고 있는 《유마경》의 〈관중생품〉에는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가 나온다.

유마힐의 방에 있던 한 천녀가 천화를 가지고 보살들과 제자들의 머리 위에 뿌렸는데 보살들의 머리 위에 뿌린 천화는 땅에 떨어졌으나 제자들에게 뿌린 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때 천녀가 사리불에게 왜 꽃을 털어내려 하느냐고 묻는다. 사리불은 법답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천녀는 꽃에는 분별이 없는데 사리불이 분별을 내기 때문에 법답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즉 출가한 이로서 분별을 내는 것이 법답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천녀의 법력에 감동된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는데서 여신(女身)의 문제가 제기된다. 사리불과 천녀의 대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리불:그대는 어찌하여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

    천 녀
    :내가 12년 동안이나 여자의 모양을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바꾸겠나이까? 마치 요술하는 사람이 요술로 사람을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찌하여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 한다면 이 사람이 묻는 것이 옳겠습니까?


    사리불
    :옳지 아니 하다. 요술로 만든 사람은 일정한 모양이 없는 것이거늘 무엇을 바꾸겠는가?


    천 녀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일정한 모양이 없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인의 모양을 바꾸지 않는가’라고 묻습니까?

    그때 천녀가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변화시켜 천녀를 만들고, 자기는 몸을 변화하여 사리불이 되고는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사리불이 천녀의 몸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어찌하여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천 녀:사리불님이 능히 그 여인의 몸을 바꾼다면 이 세상의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것입니다. 마치 사리불님이 본디 여인이 아니로되 여인의 몸을 나타내듯이 모든 여인들도 또한 그리하여 여인의 몸을 가졌지만 여인이 아니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천녀가 신통력을 도로 거두니 사리불의 몸도 예전과 같이 되었다.

    천 녀:사리불님, 여인의 모양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불
    :여인의 모양이 있는 데도 없고 있지 않은 데도 없노라.

    천 녀
    :모든 법도 또한 그리하여 있는 데도 없고 있지 않은 데도 없사오니, 이 있는 데도 없고 있지 않은 데도 없다는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9)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의 요점은 공(空)의 진리란 여자다 남자다 하는 정해진 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입불이법문품〉에서는 공의 진리에 대해 더 말하고 있다.

〈입불이법문품〉에서는 여러 보살들이 각기 자기의 소견으로 입불이(入不二, 悟入)에 대해서 말한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에서 벗어나는 것, 나와 내 것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 죄와 복의 성품을 통달하여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 등으로 대답하지만 문수사리는 무언무설(無言無說)이 입불이(入不二)라고 말하며, 여기서 유마힐은 침묵으로 무언무설을 실천하며, 문수사리는 이것이 바로 입불이라고 한다.

즉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 비도(非道)와 불도(佛道), 생멸과 불생멸이 그 본질(自性)에 있어서는 하나이지만 연(緣)에 따라 둘로 나타나는데, 범부 중생이 그 상에 집착해서 생사다, 열반이다, 번뇌다, 보리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불이중도(不二中道)가 공의 진리이다.

불교의 무아(無我)사상은 모든 존재 속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상일주재한 실체가 없다는 사상이다. 모든 것은 흐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중심 교리인 연기(緣起)는 ‘의존적 발생’이라는 의미로서, 원인과 조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 존재하게 되며, 조건이 바뀌면 그 존재의 상태도 바뀐다는 것이다. 또한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 있는데, 이는 인연화합에 의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그 결과는 다시 그를 발생시킨 원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결과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원인이 되고 연이 되어 다른 존재에 관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다. 이러한 존재의 무자성성(無自性性)과 연기성이 존재론적으로 본 공의 의미이다. 그것은 바로 사물을 연기실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은 이원적 대립을 벗어난(不二) 무집착과 무분별의 세계이며, 언어를 초월한 일미 평등의 세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여성이다 남성이다 하는 분별은 없다는 것이다.

5. 여래장과 여성성불

대승의 수행자는 대승의 가르침을 듣는 것에 의해서,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발견하고 그에 의해서 보살의 자각을 갖고, 보리심을 일으킨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수행자는 ‘누구라도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성청정심이란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다는 의미로서, 대승불교에서 불성, 여래장사상으로 발전했다. 불성이라는 말은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10)이라는 설로부터 보편화되었으며, 여래장설을 처음 선언한 경전은 《대방등여래장경》이다. 불성과 여래장은 동의이어(同義異語)라는 것이 보편화된 학설이다.

여래장의 산스크리트 어 tatha?ata-garbha는 tatha?ata=여래와 garbha=태·태아의 합성어로서 여래의 태, 여래의 태아라는 의미이다. 그 본래 청정한 중생의 마음에 깨달음의 가능성, 다시 말해 여래가 될 수 있는 씨앗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중생 가운데 있는 여래의 인(因)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해석된다. 요컨대 일체 중생에게는 성불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들은 연꽃의 한가운데 좌선하고 있는 여래의 비유를 들어 “일체 중생이 여래장이다.”라고 선언한 《대방등여래장경》에 이어 《불설부증불감경》에서는 중생계가 곧 법계임을 말하고 있으며, 중생삼분설로 발전시키고 있다. 중생삼분설이란 여래장(법신)이 무량의 번뇌에 얽혀있을 때는 중생이라 불리지만, 세간을 떠나서 보리행을 닦을 때는 보살이라 불리고, 일체의 번뇌를 떠나서 청정하게 될 때는 여래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여래장경》과 《부증불감경》에 이어 《승만경》의 여래장설은 여래장설이 포함하고 있는 문제를 거의 모두 종합함으로써 《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에 앞서서 여래장사상을 어느 정도 조직화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11) 특히 《승만경》은 종래 설해져 온 ‘여래장=법신’의 설을 받아서 이것을 종합한 것과 함께, 아직 고찰이 미치지 못한 번뇌와의 관계를 재전위(在纏位)의 법신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전개하고 있다.

중생은 부처와 본질을 같이 하지만 부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량의 번뇌에 감기어 있는 점이라는 것이다. 단지 번뇌는 일시적인 부착물(客塵煩惱)로서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승만경》의 여래장설이다. 《승만경》은 ‘승만왕비가 사자후한 경전(S쳑沖ma?a?ev沖-sim.hana?a-su?ra)’이라는 범어 경전명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승만(勝壬, S쳑沖ma?a?)이라는 한 재가의 왕비가 부처님으로부터 장래 보광여래·응·정변지라는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후, 부처님 앞에서 일승(一乘), 여래장 등 대승불교의 중요한 교의들을 거침없이 설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인가받는다는 내용으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승만부인은 여래장설 이외에 또 10개의 서원을 말한다(10大受). 이 10대수는 3대원으로 요약되며, 이 3대원은 섭수정법(攝受正法)이라는 일대원으로 요약된다. 섭수정법이란 한 마디로 불교를 바르게 믿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섭수정법의 실천자는 대보살이고, 중생을 위해서는 불청(不請)의 벗이 되고 세상의 법모(法母)가 되는데, 승만부인은 당당하게 자신은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섭수정법을 실천하겠다고 서원한다.

《승만경》에서는 재가 여인의 설법을 부처님의 설법에만 붙이는 ‘사자후’라고 함으로써 성불에 남녀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 그 설법의 내용인 여래장 사상은 일체 중생을 그 본질에 있어서 평등하게 보는 입장인데, 이런 사상을 펴는 설주(說主)를 여성으로 설정한 《승만경》에서 여성 차별은 없다.

6. 맺는말:불교 페미니즘의 회복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의 사상 체계가 변천해오는 것과 궤를 같이 해서 경전에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인식도 변천해온 것을 볼 수 있는데, 교리의 발달과 함께 교단의 주도권을 행사하던 전승자들의 여성관이 많이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결집 과정에서 아난 존자는 당시 결집의 좌장인 가섭 존자로부터 문책을 당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난 존자의 권청으로 여성의 출가가 가능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옳지 않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아무리 아난 존자가 간청을 했더라도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부처님과 그 직제자 사이에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여성의 출가라는 문제를 생각하면 그것은 여성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불교가 흥기할 당시 인도의 여성에게는 인권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남아 선호의 사상은 오늘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딸을 낳으면 재앙으로 받아들였다.

여자의 갈 길은 오직 결혼에만 있었는데, 딸을 결혼시키지 못하면 집안의 망신이 되고, 결혼을 하면 결혼 비용 때문에 파산할 지경이 되었다. 남자들은 여자와 결혼하면서도 그 여자가 자기와 같은 신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12)

부처님은 사회적으로 이런 처지에 있던 여성을 정신세계의 동참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결정은 바라문교 사회의 기본 질서인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던 부처님의 평등주의에 입각한 결단이었다. 또한 그런 환경 속에서 여성 출가를 결심했던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와 그의 추종자인 여성들도 페미니즘의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13)

부파불교의 여인불성불설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파불교 시대에는 부처님과 동격인 자는 없었다. 아비달마논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를 아라한과(阿羅漢果)에 두어, 부처와 아라한 사이에 거리를 둠으로써 불과(佛果)를 넘보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남자에게도 성불의 도에는 제한이 있었는데 여자가 성불할 수 없다는 것만 강조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비구니팔경법이나 여인불성불설과 같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우리가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갈 때 얼마든지 재고될 수 있는 인식들이다. 한편 페미니즘의 경우, 여성 억압의 원인과 그 해결책에 대한 관점이 각기 다르고 또 그 주장들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만, 그 근간에 흐르는 것은 남녀는 기질이 달라도 그 존재로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따라서 ‘차이’를 ‘차별화’로 가치 전환을 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 중심의 세상보기에서 양성 중심의 세상보기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런 주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여성운동을 채택하고 있다 서구의 페미니즘이 남녀의 ‘같음’에 주목하든지, ‘다름’에 주목하든지, 그것이 이론의 범주에 머무를 때는 ‘ 가부장적 자아’와 ‘억압된 자아’의 대립이라는 공식이 기본이 되고, 정치운동으로 표현될 때는 남녀 양성이 대립하는 집단적인 힘으로 표출된다. ‘같다’ ‘다르다’는 어디까지나 둘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것이 서로 대립하는 한 긴장과 갈등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기득권을 쟁취하기 위한 힘의 대립이라는 양상에 이르면, 힘에 의한 쟁취는 또 다른 지배라는 악순환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 ‘같음’과 ‘다름’의 저간에는 남성적 자아가 모델이 되고 여성적 자아는 그에 비교되는 이원성이 있는데,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자아가 자기 중심적이고 차별적이라는 것을 비판해온 서구의 페미니즘으로서는 비판해온 대상을 비교의 모델로 삼는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서구 페미니즘은 이런 한계를 인식하면서 그 해결을 동양사상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이미 기울이고 있으며, 대승불교의 공사상은 그 대안이 되는 철학적 기초로서 주목받고 있다. 공의 자각은 무아(無我)를 기초로 하고 있다. ‘공’ 안에서 서구사상의 자아, 주체와 객체라는 도식은 의미를 잃는다.

‘가부장적인 자아’도 ‘억압된 자아’도 그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연기에 의해(다시 말하면 조건이 성숙하여)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여기서 내가 너일 수 있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유연성이 발생한다. 공의 자각을 통해서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며,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날 때 나에게 있던 중심을 너에게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중심이동이 가능할 때 대립은 없어지고, 관계만이 남는다. 중중무진으로 겹쳐지는 ‘중심이동’의 세계가 바로 불교가 지향하는 진정한 평등의 세계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은 진리로서의 평등이며 출세간법을 말한다. 그러나 세간법으로 보면 거기에는 분별상이 있다. 즉, 불이중도(不二中道)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다 여자다 하는 분별상이 없는데, 인간세상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구별이 있다. 불교 용어로, 사람을 오온(五蘊)으로 파악할 때 수, 상, 행, 식은 같다고 하더라도(전통적으로는 그것도 다르다고 하지만) 색은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기질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게 살아왔다. 그것이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문화적인 사회화의 과정이라고 해도 그 이전에 ‘몸’이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에게 사회적인 억압이 있기 전에 출산의 고통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곡을 찌르는 일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분별상이 업(業)의 세계이다. 업의 일반적인 표현이 ‘나와 나의 것’이라면 업의 성(性) 표현이‘여자’‘남자’인 것이다. 분별상 너머에 있는 평등성을 모르고 ‘남자다’ ‘여자다’라는 분별상에만 집착해서 사는 것이 인간 세상이고, 이 인간 세상을 지배했던 남성들이 ‘중심’을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두고 여성을 소외시키면서 지배해 온 것이 여성 억압이라는 인류의 공업(共業)이다.

페미니즘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이 인류의 공업에 도전하여 업장을 해탈하자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상의상관성의 법칙에서 볼 때 여성 억압은 여성만을 비인간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남성도 비인간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남성 인간화 운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의 자각을 어떻게 일상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진리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색즉시공 공즉시색’하고 《반야심경》을 외워도 돌아서면 부딪히는 것은 분별의 세계이다. 여기서 수행의 문제가 대두된다. 공의 자각은 오로지 수행으로서만 가능하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출가 수행자든지 재가 신자든지 수행하지 않으면 영원히 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업의 분별에 집착하고 있는 중생에게 공의 평등성은 그냥 하나의 추상적이고도 난해한 관념일 뿐이다. 수행은 불교인의 근본이다. 수행자의 마음은 열린 마음이며 유연한 마음이다. 수행을 통해 ‘남’ ‘녀’라는 업의 분별을 넘어서 그 평등성을 깨달으며, 연(緣·조건)에 따라 ‘중심이동’을 할 줄 아는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불교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 불교 페미니즘은 부처님의 근본 사상으로 돌아가 그것을 의심 없이 믿고, 바로 이해하고, 실천하자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 페미니즘의 회복이다.<끝>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철학박사.대한일보,한국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강사로 있다. 논문으로 <인도불교의 여성성불사상에 대한 연구><불교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사회교육적 기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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