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귀남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1. 소수자 새터민

요즈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라는 측면보다 ‘소수자’라는 문제제기는 차별의 문제를 선명하게 했다.1) 가끔 ‘누구 커밍아웃’이라고 해서 뉴스거리가 되고, 이러면서 ‘다 같은 사람임’을 강조하는 소수자 인권 담론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인권의식이 보편화하고 민주화 물결이 미시사회로 확산되고 있음을 말한다. 또, 사회의 다양성과 다문화 체험이 가능한 현실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국무회의에서는 〈차별금지기본법(안)〉(2007.10.4.)이 의결되었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 보호 수준을 포괄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화교, 혼혈아 등 인종과 민족적 차별을 받는 소수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아직 낮다.

또 하나 사회적 소수자인 탈북자가 있다. 법적 용어로는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대부분 공산권 해체와 북한의 경제난 이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여기까지 왔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가 된 탈북자는 동포이면서도 인종적ㆍ민족적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모순이 큰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 새터민이란 인식은 새로운 위상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즉, 이들을 대등한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하는 새로운 문화로 상호 수용해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말한다. 귀순용사,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정착민 등 이름 따라 정체성도 달라진다.2)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절에는 귀순용사로 받아들였다. 그를 영웅으로 대접하면서 체제 우월성을 과시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가 그들은 어떻게 감당할지 혼란이 생겼다.

1994년을 기점으로 탈북자가 급증했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내 입국 탈북자를 ‘보호 대상자’로 여겼다. 이들의 정착지원은 이들을 우리 사회의 주류 문화에 하루빨리 적응시키는 일이었다. 1999년 148명 입국 이후 매년 수백 명씩 왔으며, 2002년 1139명 입국 이후는 해마다 1, 2천 명이 들어오고 있다. 2007년 1월 마침내 새터민 인구 1만 명대가 되었다.

이런 입국현황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의 핵심 부서인 하나원(1999. 7. 8. 개원)의 수용능력을 초과했다. 정착교육에도 불구하고 부적응과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았다. 2004년 통일부에서 국민 의견을 물어서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새터민’이란 새 이름을 지었다.

내국인이 탈북자들에게 가지는 이질감을 해소하고 이들에게 같은 한민족이라는 소속감과 희망을 안겨주는 뜻을 담고자 했다.3)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는 ‘탈북자’를 떼어내고, 텃새가 심한 정착 환경을 넘어서자면, 새터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정착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극복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새터민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고 전제하고, 소수자도 인권은 평등하다는 보편성을 수용하고서 생각해보자. 하지만 현실에서 새터민이 받는 차별의 아픔은 크다. 이런 소수자 새터민 문제를 불교 사상의 차원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당시 계급사회의 지배이념에 사로잡힌 잘못된 견해를 깨뜨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 시대의 편견과 고통을 낳는 소수자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터민이란 이름으로 구별되는 이들의 정체성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의 벽을 헐어냄으로써 공존의 길은 열린다. 그러할 때 사회의 다양성과 다문화 체험이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불러내고 있는지 그려보자. 그래서 이 주제는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 새터민의 선우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지켜오던 단일민족의 혈연과 지연의 틀에 금이 가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2001), 2005년 총출입국자 약 2,926만 명, 국제결혼자 수는 전체의 13%, 2006년 이주노동자 4, 50만 명4), 2008년 1월 새터민 1만3천 명 등 보다시피, 우리는 다종족·다문화 시대에 들어섰다. 다양성, 혼합, 크로스 브리딩(cross-breeding) , 퓨전(fusion) 등은 우리 시대 문화 조류를 반영하는 새로운 유행어들이다.

하지만 2007년 3월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문화 다양성 시대에 걸맞는 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현실에서 소수자 중에 소수자인 새터민이 발디딜 땅은 더욱 좁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면, 우리 사회에서 동남아 노동자, 조선족 동포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고 자조적으로 말할까? 최근에는 수백 명의 새터민들이 영국, 스웨덴, 미국 등지로 다시 이탈했다고도 알려지고 있다. 정착에 불만족한 새터민들이, 청소년들의 영어교육에 드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기에 아예 영어권으로 가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문제를 해결하자고,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여 일자리를 찾아가자고, 또는 노후 불안과 선진사회의 복지정책에 대한 기대를 갖고서 다른 나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5)

우리 정부는 2007년 현재 기본 정착지원금으로 1인 가족의 경우 주거지원금 1,000만 원, 초기지급금 300만 원, 2년 분할 지급금 7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외에 남한 사회 편입 5년 이내의 경우에 노령자, 장애인, 장기치료자, 편부모 아동보호를 위한 가산금이 360만 내지 1,540만 원이 지급되고, 장려금으로 직업훈련ㆍ자격취득ㆍ취업을 하는 경우 최고 1,540만 원을 지급한다. 이런 경제적 지원까지 하면서도 왜 새터민의 불만을 사고 정착 실패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인가.

새터민 앞에서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탈북자라고 드러내놓고 살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새터민들은 학연, 지연, 혈연의 연고주의로 뭉친 사회에 들어설 틈이 없다는 절망감, 고비용 사교육비,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냉혹하게 느낀다. 이것이 개인이 해결해야 할 체제와 문화 차이에 따른 부적응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새터민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다.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서 청정한 삶을 사는지 물었을 때, “괴로움을 두루 알기 위해 청정한 삶을 산다.”고 대답했다.6)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열반으로 회향하는 8정도,7) 즉,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 그 방도라고 했다.

아난다여, 나를 훌륭한 친구로 삼아, 태어나야 하는 중생은 태어남에서 해탈하고 죽어야 하는 중생은 죽음에서 해탈하고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의 상태에 있는 중생은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에서 해탈한다. 아난다여, 훌륭한 벗과 사귀는 것, 훌륭한 친구와 사귀는 것, 훌륭한 도반과 사귀는 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고 알아야 한다.8)

선우(善友)는 청정한 삶의 전부이며, 청정한 삶은 괴로움을 완전히 알고 거기에서 해방되는 8정도로 나아가는 삶이라 말한다. 우리가 괴로움의 구체적 내용을 모른다면 그 문제를 어찌 풀어내며, 행복을 어찌 얻겠는가. 유마거사가 문병온 문수보살에게 “중생이 아프니 내 몸이 병들었다.”고 했듯이, 고통에 대한 ‘체험적 이해’ 없이 그것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새터민의 괴로움과 아픔을 제대로 알려고 하는 사람은 새터민의 좋은 벗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문제와 행복은 몸과 마음처럼 연결되어 있다. 아난존자가 눈먼 아니룻다의 옷을 깁는 일에 도반들의 동참을 권유할 때, 부처님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부처님은 아난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두 가지 행복의 의미를 깨우쳐 준다.

부처님은 최고의 행복을 얻기 위해 ‘열반으로 회향’하는 일에 삶의 전부를 투입했다. 일 하나하나의 총합이 전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마다 궁극을 지향하여 삶의 전부를 투입한다. 이것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라는 뜻이다. 또 하나, 도반과 함께 하여 옷 깁는 일은 도의 절반을 이룬 것과 같다고 흐뭇하게 말하는 아난에게 “훌륭한 도반과 함께 하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고 고쳐서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기에 일부를 왜 전부라고 말하는가?

부처님 전생 설화에서 비둘기 목숨을 대신해 그 몸무게가 될 만큼의 허벅지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렸을 때, 저울대가 기울고 만다. 이 저울은 살점의 무게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로 중량을 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둘기와 수행자는 1:1로 대등한 생명 존재임을 말했다.

이처럼 개별자를 보편 가치로 묶어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보편적 진실에 의한 개인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계급사회처럼 한 집단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편견 속에서 차별받는 계층의 고통이 발생할 때, 그 가운데 개인이, 또는 약자나 소수자가 그것이 잘못된 견해임을 알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있는가. 또 그 진실을 굽히지 않고 말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부처님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투쟁을 선택하지 않았다. 기존 견해가 옳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 먼저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부터 따지고 점검하여 새로운 견해를 세움으로써 자신과 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틀림없이 바라문 계급이기 때문”에 개인이 훌륭해 보인다고 말했을 때, 부처님은 그것을 분명하게 옳지 않다고 하고, 출신을 묻지 말고 개인의 행위를 보고 말하라고 명쾌하게 지적했다.

지배계급의 가치관에 사로잡힌 편견을 먼저 생각하게 하고, 다시 ‘실천’으로 완성함을 보여준 것이다. 숙명론적인 업의 이론에서 윤리가 나올 수 없는 까닭도 마찬가지다.9)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거짓되게 주장한 윤리는 현실의 인과관계로 따져 성립되지 않음을 확인시키고, 이는 거부되어 마땅하다는 말이다.

편견과 모순,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는 핵심은 “나에게는 나의 진실이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자신을 지키는 노력 속에 있다.10) 말하자면, 기존 집단의 가치에 저항하는 개인, 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세우는 데서 진실이 관철될 수 있다. 남에게 속박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말미암아 있는 자유(自由), 즉 자기 정체성의 주인인 나로부터 변화를 만든다.11)

이런 가르침에서는 새터민에게 “빨리 우리 사회에 적응하라.”고 말할 수 없다. 적응이 아니라 변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때 변화는 관계의 변화를 뜻한다. 소수자 새터민과 기존 사회 구성원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우리를 찾는다면, 변화는 함께 일어난다.

그래서 새터민과 선우가 되어 가는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올바른 견해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구현하기까지 ‘열반으로 회향하는’ 과정에서 후퇴하지 않는다. 즉 8정도는 처음과 끝이 같아지는 온전한 실천이 된다. 이 멈춤 없는 회향이 편견을 변화시키는 실질적 힘이다. 그래서 아난에게 “훌륭한 도반과 함께 하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고 고쳐서 일깨웠다.

따라서 새터민과 선우됨은 새터민의 고통부터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혜롭게 풀고자 하는 실천의 길로 들어섬을 뜻한다.

3. 새터민의 고통: 차별과 정체성의 혼란

부처님은 고통 문제를 청정한 삶의 전부로 삼았던바, 현실에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즉, 지금 여기 문제의 미시적 성찰과 함께 세계의 총체적인 연관고리까지 거시적으로 살펴서, 고통의 실상을 분명하게 밝혀 치유하고자 했다. 자기 문제는 몸과 받아들임과 마음과 사물을 일일이 관찰하는 것으로 살펴 보았다.12) 개개인의 고통은 인(因)과 연(緣)의 사회적 관계를 따져 하나하나 헤아려 말한다.

천민 출신 이발사 우발리, 창녀 암파바리, 문맹자 주리반특가, 대장장이 아들 춘다, 똥 청소부 니이다이 등의 경우처럼 부처님은 진리의 길에서 하층계급과 평등한 인격으로 만난다. “사람은 원래 신분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계급 차별로 겪는 소외, 불평등, 억압, 폭력과 무지의 고통은 편견일 뿐이다.

부처님은 이를 깨뜨리기 위해 그 인과관계를 친절하게 깨우쳐 스스로 차별 없는 주체임을 직시하게 한다. 부처님은 불가촉천민 니이다이13)의 손을 잡고 선우가 되어 함께 진리의 길에 들게 함으로써 기존 계급사회의 모순과 고통을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정착교육 과정은 새터민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만든다. 북쪽에서의 생활방식을 하루 빨리 잊고 ‘타자’의 정체성을 이식시키라는 말이다. 이것은 삶의 주체에 고통이 된다.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통나물 자라듯 쑥쑥 자라는 것도 아닌데 정착, 적응, 너무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자살하지 않고 생존해 있는 것 자체도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한사회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학생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들의 노력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14)  

우리는 새터민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새터민에게 이 사회를 이해하고 적응하라고 한다. 또는 탈북자를 경제난민이나 부적응자로 전제하여 베푸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로 대한다. 이처럼 우월감을 가지고서는 북한의 민중이나 그 출신자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없다. 이런 관점을 바꾸지 않는 경우 북한 출신 민중들은 동북아 경제의 가장 억압받는 피착취 계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15)

새터민이 누구인지, 또 그들의 고통의 실상을 미시적이고, 또한 거시적인 접근을 통해, 개별과 전체, 현재와 미래를 원근법처럼 조명한다면, 한반도 평화문제가 가시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실제 고통에서 문제에 접근하면서도 총체적 맥락을 놓치지 않을 때, 새터민은 분단의 고통을 제대로 말해줄 좋은 벗이 된다. 

예를 들면, 새터민이 한국에서 중국을 통해 고향 친지와 연락하는 데, 중국의 전화를 이용하거나 조―중 국경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한다. 이때 바깥세상의 정보와 돈이 들어가고, 내부 소식이 밖으로 나온다. 들어간 돈과 정보는 생계를 위한 장사 수단도 된다. 따라서 새터민은 북한 사회 내부 변화에 주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셈이고, 기층에서 남―북―중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또한 새터민은 우리 사회로 편입한 새로운 이산가족이며 실향민이다. 한반도에 평화정착이 완성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 이산가족문제는 2중  3중으로 진행된다. 새터민은 기존 분단모순이 확대재생산되는 상황 아래 존재한다. 정착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터민은 분단 지속과 결부된 피해자로 계속 남는다. 그래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는 ‘탈북자’를 떼어내고> 새터민으로 살 수 있게 되지 않는다.

남북 통합과정에는 무수한 갈등이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안겨온 새터민과도 소통할 수 없는데 남북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동독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독일 통일과정에 참여했던 울리케 포네 베를린 기독학술원 원장은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세하게 아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남과 북이 어떻게 다른지 다방면에 걸쳐 교육하고, 학교에서도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프로그램을 짜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16)

그렇다면 새터민은 우리 사회에 통합 충격을 완충하는 스펀지와 같다. 이들은 북한을 영영 부정하고 남한에 적응하고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양쪽을 경험하고 양쪽을 이어주는 변화의 촉매자이다. 북의 삶, 남의 삶, 양쪽을 이어주는 삶, 실제로 이렇게 넓은 폭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다.

4. 통일문화복지사

마음의 선우로서, 우리가 새터민의 고통을 두루 바라보면서 새롭게 발견되는 새터민의 정체성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가는 거시담론과 무관할 수 없다. 통일부 통폐합 시비가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새 정부에 의해 ‘대북정책의 역전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남북 관계를 외교로 접근하면 북은 ‘타자’이다. 그러나 통합과정으로 접근하면 남북을 잇는 거시적 관점이 확보된다. 분리지향과 통합지향은 양극적으로 흐른다. 이런 가운데 보수―진보 갈등 내지 남남갈등까지 겹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양극적 갈등은 특히 ‘변화하고 있는 이북’의 실상에 대한 이해와 ‘평화공존철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개혁ㆍ개방을 부정하고 ‘개건’을 고집하고 있는가? ‘정상국가’로 연착륙하는 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가? 고통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되도록 통찰하여 ‘열반으로 회향’하듯이 민중과 땅의 평화를 향한 보편적 실천은 무엇인지? 우리는 미시적이고 또한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터민의 고통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의 수뇌부는 외부 영향에 의해 주민의식이 변화됨을 두려워한다. 밑으로부터 개방은 체제변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조선신보에 따르면 ‘2월 명절’을 앞두고 평양시 만경대 구역에 있는 평양 밀가루 가공공장에서 국산 속성국수(인스턴트 라면)의 대량생산을 재개했다. “우리 제품으로 외국산 국수를 모두 밀어내겠다.”는 구호는 경제면보다 ‘자본주의 바람’을 막아야 한다는 정치노선 의지를 더 크게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상품이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유통됨은 그만큼 외부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고, 이 때문에도 개혁과 개방을 부르는 요인을 안고 있다 하겠다. 국산 속성국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선망을 가지는 주민들에게 환상을 갖지 말라고 경계시키는 상징적 대체물과 같다. 하지만 비싼 라면은 서민이 못 먹는 자본주의 맛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변화를 불러오는 행위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체제 변화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직결된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사회의 심층적 이해는 한반도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따라서 분단의 고통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고 고통을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일에 불교계는 평화정착과 통일과정의 장기정책 프로그램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때 새터민과 선우가 되어 함께 함은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지름길이 된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엮여 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미 생겨난 불건전하고 악한 상태의 것에서부터 아직 생겨나지 않은 불건전하고 악한 상태까지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겨난 건전하고 선한 상태의 것에서부터 아직 생겨나지 않은 건전하고 선한 상태까지 유지하도록’17) 대응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통일 미래의 주춧돌은 과거와 현재를 꿰뚫는 힘으로 세워지며, 여기서 핵심은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

통합과정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만남을 뜻한다. 베트남, 예맨, 독일의 경우를 돌아보면18) 남북관계의 조화를 위한 통일 코디네이터 내지 ‘통일문화복지사’와 같은 인재를 미리 길러내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통일 후 가장 큰 숙제는 지역감정 문제였다. 통일 직후, 북쪽 사람들이 사회를 주도하여 남쪽 사람들은 패전시민으로 전락했다. 북쪽 사람으로 구성된 교육계의 상층 지도부는 남쪽 주민과 청소년의 특수한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그들에게 사회주의 인간개조 교육을 시작했다.

그들은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부인되고 심각한 정체성 상실을 경험했다. 그 결과 사회통합은커녕 반발이 더 커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다 1982년 12월 제6차 전당대회에서 제기된 도이모이(개혁ㆍ개방) 바람이 불면서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남쪽 사람들이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또 다른 지역갈등, 계층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예맨은 1990년 5월 남북이 상호 합의에 의해 평화통일에 성공했지만, 1994년 7월 북의 무력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되는 재통일이 일어났다. 예멘은 분단 상황에서도 아랍계 특유의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1962년 분단이 고착되던 시점에도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1980년 모든 학교에서 단일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여 사회문화 측면의 미래를 준비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력에 의한 재통일이 된 것은 인구와 경제 수준의 차가 컸기 때문이다. 북예멘이 정치, 경제, 외교에서 통일 정부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즉, 통일 후 자본주의 체제였던 북예맨 중심의 불균형이 무력으로 재통일하는 불씨가 되었다. 이후에는 사회적·심리적 사회통합을 위한 과제들이 남게 되었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 이후, 동독지역 청소년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 극단적 극우주의, 반유대주의적 성향 등 자본주의 사회에 부적응한 결과가 나타났다. 특히 동독 출신자들이 2등 국민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불만을 가졌고,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여기서 차별 없는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예상할 수 있다. 상대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점진적인 접근이 중요함을 자각할 수 있는 이런 선례가 있으니,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19)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새터민을 새롭게 보고, 일방적 적응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상호변화의 자세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먼저, 새터민을 남―북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통일문화복지사로 길러내는 일에 불교계가 앞장서면 좋겠다.

통일문화복지사란 통합과정에 나타나는 고통과 갈등을 치유하고 통일문화,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매개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제도를 통해 우리 사회 복지사처럼 통일과정에서 소외자에 대해 사회적 배려를 하자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사람의 힘에서 나온다. 통일교육과 인력개발은 통일과정의 성공을 좌우한다. 남―북을 잇는 매개자 역할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새터민부터 통일문화복지사로 길러내면, 사회적 소수자로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고통을 동시에 풀어낼 수 있다.

이때 불교계는 통일문화복지사를 배출하는 핵심 교육내용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불교수행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체제 변화에 따르는 심리적 혼란, 불안에 대한 처방을 위해 수행법을 상담치료와 접목하고, 사회적 평화와 심리적 안정을 통합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무엇보다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불교계의 통일과정 참여는 수행의 강점을 평화정착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중장기적인 프로그램 개발로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터민·탈북자·북한 주민의 사회심리 이해, 정서불안 치료, 나아가 남―북 마음의 통합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을 통합과정의 단계를 반영하는 중장기 계획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불교계에서 이런 전망을 가지면 사회적 소수자 새터민 문제에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 것이다. 지금부터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볼 일이다. ■

노귀남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문학박사. 주요논문으로는 <문학의 분단해소와 이북문학의 수용>, <북한의 주민생활>, <북한의 가정생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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