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선 불교 조형연구소 소장

1. 들어가는 말

새날이 밝았다.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세기인 21세기가 밝았다. 그리고 이른바 ‘새 천년’이 밝았다.

여러 언론매체들이 앞서 떠들며 지구촌이 걱정했던 ‘Y2K’도 큰 문제 없이 지난 것을 보면, 21세기는 지난 20세기보다는 장밋빛일까. 지구촌 여러 나라는 20세기의 세기말을 보내며 다가올 21세기를 준비하여 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 대통령 자문기구로 ‘새천년위원회’를 설치하여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천년 사업은 평화·환경·인간·지식창조·역사라는 다섯 가지 내용 축과, 비전과 방향 제시, 천년화 사업, 천년 행사, 관련 행사, 방법과 실행이라는 다섯 가지 형식 축으로 각각 서로 교차하며 엮어진다. 이 두 축을 지지하는 이념축은―엄지손가락―‘평화와 비전, 방향의 제시’이다. 이러한 천년 사업은 일시적 행사가 아닌 장기적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사업으로 ‘새천년 특별법’ 등 제도적·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추진할 것이며 2000년 새 천년의 첫해가 지난 후 ‘새천년 보고서’가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제시되어질 것이다.

새천년위원회가 제시한 다섯 개 항목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입안한 내용치고는 너무나 관념적이고 낭만적(?)이어서 실망스럽다. 이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우리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지녀온 일본의 예를 보자. 한 출판사에서 몇 년간의 준비 끝에 1995년부터 ‘21세기 문제군 북스(21 seiki mondai-gun books)’를 기획·출판하였다.

모두 24권으로 간행된 이 출판물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물로서 지난 천년과 다가올 천년을 지구와 인류의 공동체적 발전이라는 거시적·진보적 흐름으로 조망하고 분석한 21세기에 대한 연구서들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를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이 ‘21세기 문제군 북스’의 첫째 권은 나카무라 유지로(中村雄二郞)의 《21세기 문제군―인류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이 책은 전체 기획의 전반적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서두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들은 곧 닥쳐올 21세기를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해, 혹은 미래를 향해 걷고 있는 자신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기 때문에 맨처음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즉 이 질문이 오늘날 얼마나 대답하기 힘든 물음인가를 깨닫기 위해서이다.1) 질문은 지극히 평범하다. 조금만 사려 깊고 분별력이 있는 이라면 커다란 전환기를 맞아 스스로에게 한번쯤은 물었을 물음이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결코 쉽지 않다.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오늘날, 미래에 대한 전망이 특히나 잘 서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은 지금까지 유력했던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 예측’ 및 ‘역사관, 역사 철학’이 현저히 신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단지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무력해진 것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여러 학문들, 특히 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 및 그것의 긍정적, 부정적 작용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 관계, 즉 인간과 세계(혹은 지구)의 관계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요구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로놓여 있다.2) 우리 사회는 20세기가 저무는 때 공교롭게도 나라 살림이 부도 직전에 이르는 위기를 맞았고 21세기와 더불어 그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고 있다.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느라 남들보다 차분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어제를 뒤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에 겨를이 없었다. 우리에게 지난 20세기는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끝내는 남북분단으로 이어져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참혹한 어둠의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불교계의 상황은 더욱 답답하다.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아수라장.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역경을 딛고 희망을 가꾸며 새로운 역사 창조에 노력해온 신앙 깊은 민초들이 있었고, 진리를 찾아 용맹정진하는 수행자가 도처에 있음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보았고 또 오늘도 이를 믿는다. 이제 우리들은 21세기를 맞아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지금껏 행함보다는 앎에 그것도 얕은 알음알이에 기울었던 나를 참회하며 새해 벽두에 손을 씻고 향을 사르며 이 글을 쓴다.

2. 과거의 빛과 어둠―최근 사례를 중심으로

잘 아다시피 이 땅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 수용된 때는 4세기 말이다. 인도에서 기원하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파된 불교는 이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1,600여 년 동안 외래문화였던 불교는 이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꽃피웠다. 우리 나라 고대사를 연구할 때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삼국유사》에는 이러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절들은 별처럼 펼쳐 있고 탑들은 기러기떼처럼 줄을 지었다. 법당을 세우고 범경을 달았다. 뛰어난 스님들은 천하의 복전이 되고 대승·소승의 불법은 나라의 자비로운 구름이 되었다.

다른 곳의 보살이 세상에 나투고(이것은 분황사의 진나와 부석사의 보개 그리고 낙산사의 오대 등을 말한다.) 서역의 이름난 스님들이 이 땅에 오니 이 때문에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사해를 통털어 한 집이 되었다.3) 간결하지만 함축된 표현 속에서 불교가 화려한 꽃을 피우며 우리의 삶에도 밝은 빛을 비추었음을 잘 서술하고 있다. 일연 스님은 한국사 전개에서 불교의 역할이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승려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뛰어난 지성인으로서 투철한 역사의식에서 그 본질을 파악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삼국사기》에서는 이런 표현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신라가) 부처님의 법을 받들어 그 폐해를 알지 못하고 여항에는 탑묘가 벌여 서고 평민들은 사찰로 도망하여 승려가 되매 군사와 농업이 점점 줄어들고 국가는 날로 쇠하여 가니 어찌 어지럽고 멸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4)

신라 말에 이르러 신라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무분별하게 개인이나 가문의 기복을 위한 탑이나 불상 등이 조성되는 것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워지고 도가 지나쳐 망국에까지 이르렀던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유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역시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으로서 불교가 한때 우리 역사에서 드리웠던 어둠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역사에는 빛과 어둠이 있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빛과 어둠을 만드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지 역사 그 자체의 책임은 아니다. 불교적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때 그곳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의 공업(共業)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어찌 공시적(共時的)으로만 적용되겠는가. 오히려 우리는 통시적으로 볼 때 더욱 명백하게 역사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다.

지난 세기 불교는 얼마나 밝게 비추었으며 그림자 또한 얼마나 어둠을 드리웠는가. 수많은 언론매체들은 다투어 지난 천년 동안 또는 지난 1세기 동안에 일어난 중요 사건이나 그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을 선정하여 공개하였다. 우리 불교계는 어떠한가.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최근에 이루어졌던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보자.

1) 역사의식의 결여와 신앙적 미망(迷妄)

서울 강남에 있는 수도산 봉은사는 전통 있는 사찰이다. 특히 조선시대 선종(禪宗)의 으뜸 사찰이었으며 조선 명종 때 풍전등화 같던 조선불교를 새로 일으킨 보우(普雨) 스님의 원력이 깃든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최근 거대한 석조 미륵상을 조성하였다.

전통 깊은 선종사찰에 무슨 연유에서 갑자기 미륵신앙을 내세운 불사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무리 우리 나라의 불교가 통불교란 전통을 지녀온다고 하여도 이러한 중대한 변화는 불교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진지한 검토를 거쳐 그 타탕성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불교계의 침묵(?) 속에 그 불사는 몇몇 사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다. 이러한 예는 또 찾을 수 있다. 팔공산 동화사에 세워진 이른바 거대한 석조약사여래상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이른바 ‘통일대불’이란 명분으로 건립되었다.

팔공산 동화사는 그 창건 인연으로 보면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한 법상종의 전통을 지닌 명찰이다. 이러한 오랜 전통이 무시되고 현실적인 명분만을 내세우며 불사가 이루어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거대한 석불이 조성되면서 빚어진 여러 가지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전통의 파괴와 비문화적인 것들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만 지적하여도 그 엄청난 규모가 빚어내는 부조화와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산줄기를 잘라내어 새로운 진입로를 만들고 주차장까지 마련한 것은 경관 훼손의 정도를 넘어 동화사가 지닌 성소로서의 신성함을 파괴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무지막지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주차장 바로 아래쪽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삼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진 비로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유서 깊은 비로암의 정취와 경건함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다.

2) 청정성을 잃어버린 도량

조계사의 경우를 보자. 최근 주변 건물을 사들이면서 경내를 확장하고 있고 또 덕왕전을 비롯하여 새 건물을 지었다. 게다가 똑같은 석등을 세 쌍씩이나 덕왕전 앞쪽과 대웅전 옆쪽에 놓았다. 전통적인 가람배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혼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혼란스런 것은 뒤쪽 옛 중동고교 쪽으로 낸 거대한 해탈문이다. 주된 출입구에는 일주문 또는 중문도 없는데 뒤켠에다 커다란 문을 세운 연유는 무엇인지.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주차장인지 도량인지 구별이 안 될 만큼 넘치는 차량이다. 아무리 자동차가 문명의 이기가 되었다고 하지만 경내에 주차장을 마련하여 요금까지 징수하는 상황은 경건한 신앙심을 갖고 있는 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이라면 용납하기 어렵다.

비록 조계사가 창건된 연혁은 짧지만 조계종 총무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또 그 지리적 위치가 도심 한복판이 아니던가. 마땅히 격식을 갖춘 도량으로 가꾸어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요즈음 사찰 환경은 고요하고 경건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각종 구호를 내건 현수막이 일주문부터 걸려 있으며 심지어는 금당의 정면에도 무슨 기도요, 무슨무슨 입재(入齋) 등을 알리는 현수막이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의 편액을 가린 채 걸려 있는 경우도 많다.

3) 문화적 맹목(盲目)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후기에 지어진 목조건축물로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백제식 건축양식을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건축미가 매우 뛰어나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편안하면서도 아릅답다. 한데 몇 년 전 이곳에 대웅전을 그대로 모방하여 시멘트건물로 거대한 규모의 ‘황화루’란 누문(樓門)을 지어 그 좋은 전망을 가렸다.

어디 그뿐인가. 절을 참배하며 오르던 호젓한 길은 온데간데 없고 거대한 돌계단의 조악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어이없는 변모에 놀란 뭇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를 나무라니 끝내 조악한 돌계단은 철거되고 말았다. 엄청난 정재를 헛되이 낭비하고 수덕사가 지녔던 그 고풍스럽던 옛 가람의 향취는 파괴된 셈이다. 이 일을 계기로 수덕사의 중심 구역은 새롭게 정비되고 있다. 이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서울 승가사의 화려한 석탑 조성도 좀더 사려 깊은 안목이 있어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승가사가 자리한 북한산의 비봉 아래는 수려한 바위와 고목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바위로 이루어진 천연의 산세는 그곳에 마애불과 석굴을 조성할 수 있었던 자연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최근 화려한 조식(彫飾)이 넘치는 거대한 석탑을 절 입구에 건립하였다. 아무리 눈을 씻고 바라보아도 주변의 바위산에 비해 이 인공을 극한 석탑의 존재는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다. 지나친 기교는 어리숙함만 못하다는 잠언에 꼭 들어맞는 경우라 여겨진다.

4) 전통의 파괴

불교계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안타까운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최근에 이루어지는 불사 가운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로 주금당(佛殿)의 불단장엄(佛壇莊嚴)을 꼽을 수 있다. 좀더 정확하게 문제점을 말하면 주금당의 평면 구조에서 주불을 봉안하는 불단의 위치 문제이다.

전통적인 평면 구조는 불단이 금당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예배자가 불상을 향하여 우요삼잡(右繞三?)할 수 있는 요도(繞道)를 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만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강당이 마련되지 않아 금당에서 법회가 열리면서 불단 앞의 공간이 비좁게 되자 불단을 후벽(後壁)에 붙여 요도를 위한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사태가 자꾸 늘어가고 있다. 가람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가람 배치나 구조에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져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예불의식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불교문화권에서는 정체성(正體性)을 지녀왔고 이 전통을 지키며 가람구조 특히 탑과 금당의 평면 구조를 설계해 왔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가 최근에 와서 아무런 검토 없이 임의로 바뀌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성보(聖寶) 도난과 그에 뒤따르는 문제점이다. 불가의 성스런 예배 대상인 성보를 물욕에 눈먼 자들이 훔쳐가 이를 호사가 등에게 팔아 넘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찰에서는 이를 막느라 도난방지시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심지어 수행을 위해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적한 곳에 절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옛말이 되고 오히려 절에서 개를 기르며 도둑을 막고 있는 실정이다. 한 도둑 열 사람이 못 지킨다는 말처럼, 여러 가지 방지책에도 불구하고 성보의 도난은 그치기는커녕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도난방지를 위한 마지막 대책으로 전각에 봉안된 성보를 모셔내어 창고에 비장(秘藏)하거나 박물관으로 이관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성보의 도난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나 오랜 동안 예배공양을 받던 성보를 도난이 무서워 사찰 스스로 성보로서의 가치를 상실시켜가며 창고에 감출 수밖에는 다른 묘안은 없는 것일까.

5) 종교 다원사회에서 성보의 관리 문제

국립경주박물관 뜰 한켠에는 분황사에서 출토된 파불(破佛)들이 진열되어 있다. 대부분 목 부분이 잘려나가 머리는 없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석불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교차하곤 하였다. 그 감정이란 불자로서 파불의 흉한 모습을 배견(拜見)해야 하는 부끄러움과 분노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비록 깨어진 석조물이지만 문화유산으로 수습되어 있다는 안도감이랄까 불행 중 다행이다 하는 느낌이다.

불가의 전통에 따르면 예배 대상으로 조성되어 예배 공양되던 불상이나 불화가 파손되었을 경우 예법을 갖춰 불상은 매장을 하고 불화는 불에 태워 정화하기 마련이다. 인체 가운데서 어느 한 부분 귀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마는 일반적인 정서상 머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다. 예배의 대상으로 조성된 불상이 머리가 잘려 나가고 몸체만 남아 있다면 이는 이미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따라서 분황사 출토의 석불들은 이러한 불가의 전통에 의해서 매장되었던 것이라 추정된다. 파불을 매장하는 것도 문화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파불을 수습하여 뭇사람이 볼 수 있게끔 박물관 뜰에 진열하는 일은 비문화적인 행위라고 하겠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상장례는 평생의례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신분에 엄격한 차별을 두었던 전통사회에서 아무리 천한 신분이라도 죽은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예절을 갖추는 것이 당시의 윤리였다. 따라서 시신을 내팽겨둘 경우 이는 차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불교의 수행법 가운데 고골관(枯骨觀)이라는 것이 있듯이 진열된 파불을 통하여 제행무상의 도리를 깨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또는 다원 종교사회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과거의 전통문화유산은 한 종교의 소유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향유할 권리가 있는 것이라고. 곰곰 따져보자. 고골관이라는 수행법이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범부중생이 고골관을 닦아 깨달음을 이룬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마찬가지로 파불을 보고 제행무상의 경지를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진정으로 바람직한 다원 종교사회가 이루어지려면 종교 간에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유산의 참다운 보전관리를 위해서는 그 문화유산이 지닌 본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였는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위에서 근년에 이루어진 불사의 현황을 중심으로 불교미술에 드리운 어둠을 살펴보았다. 이는 불교미술의 현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불상을 조성하거나 가람을 증축 또는 중수하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몇몇 대표적인 예를 간단히 열거하였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크고 작은 숱한 불사의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우리 불교문화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그칠 줄 모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문제의 본질과 그 해법을 찾는 길이 불교미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또 바람직한 내일의 전통을 가꾸는 올바른 길이라 생각한다. 먼저 불교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을 꼽아야 하겠다. 불교미술 또는 성보문화재란 말은 이제 여러 사람들 귀에 낯익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불교미술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본디 미술이란 개념 또는 미술사학이란 근대적인 학문이 서구사회에서 시작된 데다가 우리의 경우 그 수용과정이 일본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시기 또한 불행하게도 일제침략기와 겹쳐 있어 처음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불교미술을 일반에게 널리 계몽 또는 교육할 수 있는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적절한 안내서나 개설서도 거의 없었다. 둘째로 우리 사회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전통문화를 돌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

셋째로 우리 불교계의 몰이해 또는 무관심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급변하는 여러 사회적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안이하고 편의적인 불교문화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과 같은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넷째로 불가에서 전승되던 화승(畵僧) 또는 금어(金魚) 등의 전통이 무너지면서 장인정신 또한 맥이 끊어지게 되었고, 여기에 영리를 도모하는 상업성이 결탁하면서 불교미술은 더욱이나 혼탁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몇몇 집단을 이룬 이들이 크고 작은 불사에 깊게 관여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어 불교미술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현대의 불교 조각가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의존할 수 있는 전통을 직접 물려받지 못했고, 더욱이 그들이 사는 시대는 다양한 재현적인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재현적인 신상의 적절성이나 효능성을 의심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석굴암 불상이나 보살반가상의 재현에 자족하거나, 일본 불상을 모방한 국적 불명의 목조상들을 대단한 걸작처럼 떠벌리고, 복잡다단하게 발달한 시각문화에 익숙한 현대의 제법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전혀 호소력을 지니지 못하는 치졸하고 생경한 도형(圖形)을 득의의 창작이라고 자랑한다. 불교계에서 거상(巨像) 조성이 근년에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들은 그 규모와 거기에 들어갔을 막대한 금액 외에는 전혀 감명을 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5)

끝으로 사원경제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찰이 근본적으로 자립경제를 이루지 못한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찰은 주지 스님의 개인 역량으로 살림을 꾸려가게 마련이다. 여기에 보시의 참된 정신을 망각하고 개인의 복덕만을 기원하는 불자들이 합세하면서 크고 작은 불사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심하게 표현하면 불사를 위한 불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3. 새로운 희망을 가꾸며―깨침의 미학, 가꿈의 미학

이 땅에 새로운 불교미술을 꽃피우고 나아가 온 누리에 그 향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이제 새로운 틀을 짜야 할 것이다. 그 새로운 틀이란 불교미술의 주목적을 예배의 대상인 성보의 조성보다는 신도를 비롯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가서 알기 쉽고 친근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일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불교미술은 불교가 접촉했던 많은 민족들의 창조적인 천재성에 의해 강력한 영향과 자극을 받아 이것이 불교미술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미술에는 중요한 통일성이 있었다. 이 통일성은 불교미술이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문제들과 그것이 발전시킨 형태들이 일정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이러한 문제들 중에는 의식(儀式)적인 목적과 수도원 생활을 위한 종교적인 건물을 짓는 일, 부처와 보살과 승려와 다른 성인들의 사상을 전달하기에 적당한 상(像)을 창조하는 일, 설화적인 모티프가 풍부한 ‘성스러운 역사’, 곧 이야기와 전설의 보고(寶庫)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 주요한 종교적인 사상을 전달하기 위한 상징의 어휘를 확정하는 일, 그리고 우주의 형이상학적인 구조, 특히 경험적인 지상의 세계를 초월한 곳에 있는 영역의 구조를 믿을 만한 시간적인 상으로 고안해내는 일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해서 고안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형태와 유형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즉 부처의 종교적인 사상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인체를 예술적으로 처리하는 일, 건축과 그림의 구성에 있어서 현세와 초자연적인 세계에 관한 불교적인 세계관을 표현하는 원리를 배열하고 구조화하는 일, 그리고 표현의 내용을 정확하게 상징할 수 있고 동시에 그 표현에 정신적인 자질을 줄 수 있도록 선과 색채구성을 창조하는 일 등이다.6) 올바른 불교미술이 이 땅에 새로이 꽃피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면에서나 실제적인 면에서 새로운 각성과 노력을 요한다.

우선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진지하게 묻고 그 해답을 구해야 한다. 불상(佛像)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어는 붓다 프라티마(Buddha pratima)이다. 이는 부처님 모습을 재현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란 누구인가, 또 불신(佛身)이란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인 물음이다. 따라서 우리의 불교미술이 추구하는 이상은 역시 ‘이 시대에 부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까’ 하는 물음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미술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시대의식으로 부처님의 형상(image)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불교의 이론적 틀을 모색한 결과 ‘장엄(莊嚴, vyu?a)’론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엄은 크게 불국토의 장엄과 보살의 영락장엄으로 나뉜다. 이를 개인적으로 풀이하여 필자는 ‘깨침의 미학’과 ‘가꿈의 미학’이란 말로 생각해 보았다. 깨침의 세계란 깨달은 이 곧 부처님이 계신 정토 또는 불국토의 세계로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우며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으로 가득한 이상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깨침의 미학이란 이러한 정토의 미를 조형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한편 가꿈의 세계란 아직까지 해탈하지 못하고 육도윤회를 거듭하는 범부 중생들의 세계로서 번뇌의 티끌에 더럽혀져 있는 예토(穢土)를 말하는데 우리는 이 예토 곧 사바세계를 가꾸어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듯이 청정한 정토를 이룩하는 것을 궁극적인 이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가꿈의 미학이란 예토를 정토로 가꾸려는 중생의 수행정진과 불·보살 등에 대한 예경을 통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를 실현하는 바람과 서원을 조형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헛된 욕망을 벗어나 해탈의 기쁨을 누리는 일이다. 특히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일(厭離穢土 欣求淨土)’이라면 오늘 우리에게 정토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문제되는 고통의 존재는 무엇인가. 환경오염, 핵공포, 전쟁, 기아, 질병 등 눈앞에 전개되는 숱한 고통의 이미지들. 이제 이들을 우리 모두의 땀으로 씻어내고 뭇삶들이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를 가꾸는 일이 우리의 몫이자 사명이다.7)

앞서 말한 바 있는, 일본에서 ‘21세기 문제군 북스’ 제11권으로 간행된 《종교의 위기》라는 책을 지은 우에다 노리유키는 머리말에서,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종교가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고, 또한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된다는 것은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이끌리는가. 현존하는 종교 교단을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고 강렬한 논리와 어조로 비난하는 행위 그 자체는 현시대가 종교라는 영역에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면서 21세기 종교상을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21세기 종교에 요청되는 변혁이란 무엇인가. 그 중요한 포인트는 세 가지이다. 첫째, 신자의 울타리로 존재하는 종교에서 보다 열린 종교로의 전환. 둘째, 세계를 적으로 보거나 영적 세계의 차이화를 끌어들이는 등의 시스템화로부터의 탈피. 셋째, 하나의 해답을 주는 종교에서 인간의 존재의 깊이와 다양성을 탐구하는 장이 되는 종교로의 전환.8) 우리 불교계도 새로운 변화가 요청된다. 이 자리에서 주제넘게 그 변화라는 엄청난 일을 말할 개재도 아니고 또 그 일을 감당할 능력도 내게는 없다. 다만 앞서 최근 우리가 현실에서 겪었던 몇몇 사례를 통해 얻은 작은 알음알이로 지말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 변화의 가능성을 위한 실마리를 간추려 보고자 한다. 후기산업시대에 알맞는 가람의 운영은 필연적이다.

우선 가람(사원)경제를 후기산업시대에 맞춰 새롭게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람의 구조와 형식을 크게 출가자 중심의 수행처와 재가자 중심의 예배처로 나누어 이원화하고, 그 운영 주체를 사부대중 가운데 재가인이 중심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수행인이 가람의 관리에 따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며 수행 도량의 청정함을 유지하는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산사에 있는 중요 전통사찰은 엄격한 의미에서 이원화하기가 어렵지만 출가 수행자의 수행처로 삼고(물론 재가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 예경을 드리고 교화를 받는 일은 지속될 것이다.), 이제 홍법을 위해 대중이 모여 사는 도심에 대중이 중심이 되고 대중을 위한 예배와 수행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이 재가자 중심의 예배 공간에서 교화를 베푸는 주체는 출가 수행자이다).

이를 위해서는 출가 수행자인 비구,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도 일정기간을 정해 수행과 교화를 번갈아가며 담당하도록 하는 등 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단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인 계율을 기반으로 한 모든 의례와 그 의례의식의 집행에 따른 장엄을 관장할 수 있는 전례청(典禮廳)을 두어 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이율배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불교의례와 의식의 정립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삶이 보다 풍요롭고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각종 놀이와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가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교문화가 다양하게 꽃필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마련되어야 하겠다. 그 중심에는 한국불교사를 조망할 수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갖가지 전시장·공연장 등의 문화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이들 문화공간은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끝으로 이 모든 일의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에게 절대 부족한 것이 전문인력이다. 사람을 기르는 일은 오랜 시간과 투자가 요구된다. 또한 확보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일을 맡기는 것도 사람을 길러내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울러 사부대중 모두에게 신앙심을 북돋는 일과 더불어 사람다운 삶을 누리고 가꾸는 열린 의식이 뒤따라야 하겠다. <끝>

이기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미술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 문화재관리국, 호림박물관,동국대학교 박물관을 거쳐 성보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을 역임. 현재 불교 조형연구소 소장.저서에 <지옥도><불단장엄>(공저)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조선후기 불화의 도상배치형식에 관한 시론><한국불교미술학의 정립을 위한 시론><금동탄생불에 관하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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